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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펭귄클래식 156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피오나 스태퍼드 해설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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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이 1815년에 나왔으니 무려 이백 년이 넘은 작품이다. 19세기 초 영국인들의 일상생활을 적확하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찬사와 사건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웃 사람들의 교류, 연인들의 사랑이 피어나는 무도회, 귀족 계급의 생활상, 가난한 소시민들의 지난한 삶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제는 결혼과 사랑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영원히 지속되는 인류 공통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다 짧은 생을 마감한 오스틴이 어떻게 이토록 흥미로운 작품을 썼을까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에마가 다섯 살 때부터 함께 살면서 16년이나 가르침을 주고 돌보아 주었던 테일러 선생이 결혼식을 하던 날 에마는 큰 슬픔에 빠진다. 친구 같았던 선생님,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따뜻한 성품의 선생님의 부재는 허전함을 금할 수 없다. 그나마 자신이 중매해서 성사된 결혼이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딸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따뜻한 아버지가 있어서 다행이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젊은 아가씨의 얘기 상대로는 부족하다.

 

 어느 날, 하트필드에 기숙학교의 교장인 고더드 부인이 데리고 온 해리엇 스미스에게 흠뻑 빠진다. 누군가의 사생아라고도 했다. 이해력과 분별력이 좀 부족하지만 순수하고 예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금세 친구가 된다. 열일곱 살의 해리엇을 자주 집으로 초대하고 산책도 하며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단짝이 된다. 그렇다고 테일러 선생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지만 에마는 친동생을 챙기듯이 해리엇을 보살피려 한다. 끓는 냄비처럼 갑자기 친해진 두 아가씨를 보며 나이틀리 씨는 걱정스런 마음을 웨스턴 부인(테일러 선생)에 털어놓는데... 이 둘은 끝까지 좋은 친구로 남을까. 해리엇을 불러들인 것을 에마는 후회하지 않을까.

 

 해리엇은 농부인 마틴의 가족과 친하게 지내다가 급기야는 마틴에게 청혼을 받는다. 에마는 두근두근 들떠있는 해리엇을 조종하여 그 청혼을 거절하게 한다. 훌륭한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너의 모든 것을 향상시켜 줄 테니. 부유한데다 친절한 엘턴 목사에게 적격자라며 다리를 놓아 주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 어찌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통찰력 깊은 나이틀리 씨는 엘턴이 매우 잘 생기고 인기가 많은 사람이지만 행동은 무척 타산적인 사람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반대하지만 에마는 밀어붙인다.

 

 결국 뜻대로 되지 않고 엉뚱하게도 엘턴은 에마에게 격렬한 사랑 고백을 하여 당황하게 하는데... 해리엇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고 에마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깊이 뉘우치게 된다.

 

 

나는 사랑에 빠져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런 것은 내 방식도 아니고 내 성격에도 안 맞아.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아.”

-본문 중-

 

 자신은 절대로 결혼을 안 하겠다면서 다른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중매가 취미라니 웃음이 난다. 결혼은 사랑하는 가족을 갈라놓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이라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걸까. 그래도 그렇지. 사랑하는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좋을 텐데. 우드하우스 씨의 마음속을 알 수가 없다. 과연 에마의 연인은 있을까. 누구일까.

 

 전에 읽었던오만과 편견이나설득에 비하면 특이한 사건도 없이 밋밋한 흐름이 계속되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그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여러 개의 복선을 터트리며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조합의 커플들을 만들어낸다. 깜빡 속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겠지. 물론 아무런 갈등 없는 것은 아니다. 오해나 후회를 낳기도 했던 과정이 말끔히 정리되어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공감과 축복의 덕담을 듣는다. 읽는 동안 이야기에 빠져 현실을 잊게 했다. 이것이 바로 제인 오스틴의 매력이 아닐까. 깊이 간직하고 있던 마음,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꽁꽁 숨기고 있던 마음을 드디어 풀어놓는다. 만약 그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을까. 그 느낌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내가 황홀한 프로포즈를 받은 것처럼 짜릿하다! 공포소설도 아닌데 심장이 쫄깃하다. 이쯤 해서 아직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려 한다. 직접 읽어보시면서 만끽하시길!

 

             퍼온 사진: 제인 오스틴이 글을 썼다는 테이블(제인 오스틴 하우스 소재)

 

 아버지 죽음으로 형편이 곤란해져 지인의 집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그녀. 어느 책에선가는 작은 상을 펴놓고 글을 썼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리고 있는 작가가 그렇게 소박한 공간에서 글을 썼다니. 평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살았지만 작품 속에서나마 자신이 꿈꾸던 사랑을 이야기로 풀어내지 않았을까. 외롭고 힘든 삶을 견뎌냈을 텐데도 이야기는 유쾌하고 위트가 넘친다. 부유하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도 항상 걱정을 달고 사는 에마의 아빠 우드하우스, 예절바른 신사, 에마의 형부 나이틀리, 젊은 연인들, 수다쟁이 베이츠 부인 등 등장인물들이 금방이라도 톡 튀어나올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웃 사람들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있었기에 오래도록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고로 여전히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사랑받아 마땅하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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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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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구점만큼 학창시절의 추억이 각인된 장소가 또 있을까 싶다. 이 소설은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편지를 대필하는 이색적인 스토리다. 가나가와 현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츠바키 문구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실제 있는 장소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수국의 계절이라는 6, 지난번 도쿄 여행을 갔다가 가마쿠라를 돌아본 적이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수국절로 유명한 메이게쓰인, 아담하고 수수한 가마쿠라 역 등 실제 지명을 언급하고 있어서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직접 밟지 못하고 스쳐간 곳의 지명이 나오면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화자인 아메미야 하토코는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서도를 배우고 대필업을 물려받았다. (‘비둘기란 뜻을 가진 이름 때문에 애칭 포포로 불려왔다.)

예전에 행정 업무를 대행 해주던 사무소를 본 기억이 떠올랐는데, 편지 쓰기를 대행하는 대필업 이라니. 어떤 사연들을 대필하는 걸까, 흥미로운 이야기에 금세 몰입하게 된다.


 지인들에게 이혼 보고를 대신 해달라는 의뢰, 친구와 절연하기 위한 편지,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에게 거절의 편지 등 사연도 가지가지다. 평범한 내용의 그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는 의뢰인도 있다. 또 너무 악필이라서 걱정인 의뢰인, 천국의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기다리는 노모를 걱정하는 아들도 찾아온다. 참 난감할 것 같은데, 하나하나씩 처리해 나간다.


 직접 상대를 만나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편지로도 쓰기 곤란한 상황을 대필가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전 같으면 대필이란 건 사기라며 선대의 할머니에게 대들고 반란을 일으켰던 포포는 아직 20대 후반의 아가씨 임에도 제법 당차게 해결해낸다.


 편지를 쓰는 과정도 대충이라는 게 없다. 우선 의뢰자의 주소, 성명 등 신분을 확인하고 편지를 받는 사람과의 추억, 살아온 내력을 듣는다. 의뢰자의 모습, 인상 등을 종합하여 그에 어울리는 필기구, 편지지, 우표까지 세심하게 고려하여 선택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의뢰자의 마음이 최대한 전해지도록 온전히 그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마치 배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에 몰입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곤란한 일을 대신 처리해 주고 의뢰인이 후련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엄마의 얼굴도 모르고 할머니와 자랐던 포포는 엄마를 보고 싶어 하거나 불평하지는 않는다. 할머니에게 강요당한 지난날의 청춘을 보상받기 위해 외국을 방랑했던 포포가 어떻게 대필업을 물려받을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 없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편지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과 교류를 하며 행복을 느끼면서도 화해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할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쏟아내는 일이 잦아진다.

 

 이웃의 남작으로부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서히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다. 혼자서 이만큼 컸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탈리아 청년이 찾아와 할머니와 펜팔친구였던 시즈코의 편지 보따리를 주고 간다. 포포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123통의 편지를 모두 읽어나간다. 할머니에게 외국에 펜벗이 있었다는 건 들은 적도 없었는데...


 거기서 낯선 할머니를 만난다. 평소에 보여준 적이 없는 할머니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편안하거나 심각한 편지에도 모두 포포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교육을 위해 엄격한 것도 좋지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뒤늦게 깨닫고 보고 싶고 화해하고 싶지만 할머니는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선대와도, 스시코 아주머니와도 이제 절대로 만날 수 없다. 언젠가 다시 만나서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희미한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절대 무리한 일이라는 걸 오늘, 모리카게 씨를 보고 깨달았다. 나도 선대가 없는 세계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P306)



알고 보니, 아픈 과거를 안고 있는 사람은 포포만이 아니었다.

여러 사연을 갖고 문구점을 찾는 사람들, ‘묻지마 살인으로 아내를 잃은 큐피의 아빠도 이웃들과 그 아픔을 나누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도 할머니의 사랑으로 자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며 철없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화해한다.

 


이제 가마쿠라는 수국의 계절이랍니다.

그러나 수국은 꽃(정확하게는 꽃받침입니다만)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웃에 사는 바바라 부인이 가르쳐주었어요.

바바라 부인은 여름이 되어도 수국 꽃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겨울을 보냈답니다.

그동안 시든 수국은 초라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 시든 모습이 또 그렇게 청초하고 아름답더군요.

그리고 꽃뿐만 아니라, 잎도 가지도 뿌리도 벌레 먹은 흔적조차도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우리의 관계에도 의미 없는 계절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리카게 씨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답니다.

펜팔 친구의 아빠예요.

어쩌면 나도 당신처럼 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길을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주후쿠사의 정원, 예뻤어요.

칭얼대는 나를 업고 당신은 그 정원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당신 등의 온기를 오랜만에 떠올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마워요.

그때 하지 못한 말을 보냅니다.”(P310-311)



 좀처럼 편지 쓸 일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인지 편지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과거의 아픔을 하나씩은 품고 사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과 교류 하면서 성숙해가는 포포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장인정신으로 가게를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반영한 듯, 이 소설에서 대필업을 설정한 소재는 사라져 가는 감성의 향수를 불러일으켜주었다. 손님을 맞이하고 차를 끓이고, 편지를 구상하고 써 내려가는 모습이 영상처럼 그려진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묵향을 맡으면서 글씨를 써내려가는 포포가 멋져 보이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살아가는 존재인가보다. 가마쿠라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가마쿠라,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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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01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츠바키 문구점 일드 보셨나요? 원작 읽고난후 영상속에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화들이 정말 재밌어요 배경인 가마쿠라도 멋졌고 ^,^

모나리자 2021-02-01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일드 있단 말은 들었는데 아직이에요..
나중에 봐야겠네요.ㅎ 가마쿠라에 여행객들이 얼마나 많던지 가보고 싶었던 곳을 못보고 왔어요. 멋진 곳이죠. 가마쿠라..
감사합니다.^^
 
일러바치는 심장 문득 시리즈 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박미영 옮김 / 스피리투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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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검은 고양이><어셔가의 몰락>등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이 귀한 시절이라 무엇이든 좋았다. 읽다보니 두 작품의 오싹하고 충격적인 장면과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도 기억에 있는데 나머지는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 두세 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망하고 부유한 상인이었던 숙부 존 앨런에게 입양되어 풍족한 생활과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기도 했다. 사촌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하여 10년 남짓 행복했지만 버지니아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절망에 빠진 에드거는 극심한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된다. 부모의 죽음과 입양으로 두 개의 성을 가진 에드거는 존재의 분리로 인한 불안의 정서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 거의가 음울한 분위기와 폭력성,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참으로 섬뜩한 이야기였다. 사형선고를 받고 내일이면 죽을 몸이 되어 영혼의 짐을 덜겠다는 고백적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릴 적부터 유순하고 정이 많은 성품이었던 가 비슷한 성향의 아내와 결혼하여 애완동물을 기르면서 나름 행복한 생활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술이라는 마귀가 붙어 아내는 물론 동물들에게도 학대가 시작된다. 고양이의 한 쪽 눈을 파내고 급기야는 아내를 끔찍하게 살해하더니 시신을 은폐하기에 이른다. 끝까지 숨길 수 있었던 승리감에 벅차오르면서도 뭔가를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데... 선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잔혹함을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 내면의 음습한 심연이 어떤 인과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소름끼치도록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구덩이와 추>는 종교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가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과정을 몰입도 있게 그려냈다. 감방의 바닥은 악취가 진동하는 구덩이가 있고 천장에서는 거대한 강철 추가 진폭을 넓히며 점점 하강하면서 끔찍한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다. 몸은 결박된 채 배당된 음식을 탐욕스런 쥐들에게 빼앗긴 나는 지혜를 짜내기 시작한다. 남은 음식을 결박에 골고루 발라 누워 있다가 냄새를 맡고 달려온 쥐떼들에 의해 결박된 몸은 자유를 찾는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어떻게 그런 묘안을 떠올렸을까.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더 절망적인 불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 치 발 디딜 곳도 없는 감옥 안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어디선가 뻗어 온 구원의 손길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벼랑위에 선 인간이 강렬한 삶의 의지로 결국 스스로를 구원한 예를 접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 없는 소박한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절망을 빠져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깨닫곤 한다.


 <일러바치는 심장>은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가 의아했었다. 여기서도 신경질적이고, ‘천국과 지상의 온갖 소리가 들리는 가 나온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건강한지, 그리고 차분한지 살펴보라고 한다. 그 늙은이를 사랑했다고 했다. 목적도 열정도 없는데 그 생각일단 싹트고 나자 밤이고 낮이고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생각이란 노인을 죽이는 것이다. 맨 정신으로 그 작업을 하고 완벽하게 흔적을 없애고 승리감에 도취된다. 그런데 별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가려는 경찰을 자꾸만 불러 세운다. <검은 고양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힌트를 주려고 안달을 한다.


나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끼고 그들이 갔으면 하게 되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귓속에서 종이 울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앉아 수다를 떨었다. 종소리는 점점 더 뚜렷해졌다. 계속해서 더 뚜렷해졌다. 나는 그 기분을 떨치려 더 신나게 말했다. 마침내 그 소리가 내 귓속에서 나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될 때까지.’(P105)


'저걸 듣지 못했을 수가 있나? 전능하신 주여! 아니, 아니! 저들은 들었다! 의심하고 있다! 알고 있다! 내 두려움을 비웃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이 고통보다는 낫겠지! 무엇이든 이 조롱보다는 견딜 만하겠지! 저들의 위선적인 미소를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들어봐라! 더 크게! 더 크게! 더 크게!

악당들 같으니!” 나는 비명을 질렀다. “더는 숨기지 말아요! 인정할 테니까! 바닥 널빤지를 뜯어요! 여기, 여기! 그 끔찍한 심장 박동 소리라고요!”(P106~107)


 가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측한 기사가 떠오른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걸까. 수사를 하러 온 경찰이 증거를 찾지는 못하고 시시한 일로 언쟁을 벌이는데 는 오히려 격분한다. 일부러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불안하고 점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고 곧 터질 것만 같다.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까. 누군가 일러바치지 않았는데 양심 한 조각이 남아서 자신을 괴롭힌다. 폭발할 것 같은 심장 박동, 그것이 바로 일러바치는 심장이었다! 인체기관인 심장을 의인화 한 기발함과 고통스런 마음의 표현이 제목에 절묘하게 묻어난다.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아몬틸라도 술통><절름발이 개구리>에도 나온다. 포르투나토에게 온갖 모욕과 상처를 받은 는 그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한다. 그것을 협박하거나 미리 입 밖에 내지 않고 알아채지 못하게 준비하는 것이 방법이다. 와인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포르투나토를 술통이 있는 지하실로 유인을 해서 술에 취하게 하고 회반죽을 친다. 일련의 작업을 하면서도 는 그저 가벼운 복수를 하는 듯이 후련한 마음이 된다. 우리는 종종 극과 극인 인간의 양면을 종종 접한다. 봉사와 희생으로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거나 흉측한 살인을 하고 웃음을 남기는 소름끼치는 모습 말이다. 두 얼굴의 표정을 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오싹하게 다가온다.


 농담과 장난을 너무 좋아하는 왕에게 난쟁이 어릿광대가 있었으니 절름발이 개구리. 절름발이 개구리는 또 하나의 난쟁이 소녀 트리페타와 함께 각자의 고향에서 끌려와 왕에게 선물로 바쳐진 신세다. 축제가 있던 밤 두 사람을 불러 놓고 와인을 마셨다하면 거의 광기 상태가 되는 절름발이 개구리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그 반응을 즐긴다. 또 다시 재미있는 장난을 주문하는 왕에게 여덟 마리 오랑우탄이라는 유흥거리를 제안하는데... 왕과 일곱 대신은 쇠사슬로 한데 묶여 횃불 속에 타오르는 신세가 된다. 복수 치고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찮은 광대라고 놀려대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대하다가 큰 코 다친 셈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던가. 하물며 사람이라면.


 에드거 앨런 포는 스트븐 킹,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서 코난 도일 등 많은 위대한 범죄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단편 소설의 창시자’, ‘근대 환상문학의 창시자’, ‘추리소설의 창시자’, ‘공포소설의 완성자등의 평가와 찬양을 받았으며 보들레르나 말라르메 같은 유럽의 작가들에겐 당대에 이미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분리의 불안을 떨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어떤 곳을 꿈꾸며 살아야 했던 비참한 영광의 작가이기도 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70여 편이나 되는 단편을 써내려가는 동안에 어느 정도 고통이 치유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밝음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똑똑히 바라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인간세상이 조금은 이해되려나.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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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3
진 웹스터 지음, 애니메이션 <키다리 아저씨> 원화 그림, 허윤정 옮김 / 더모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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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적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같은 제목의 이야기를 접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이 이야기의 일부로 기억한다. 인기 있던 TV만화도 작정하고 본 적이 없어 대략의 줄거리만 알고 있어서 오히려 더욱 재미있게 읽지 않았나 싶다. 고아라는, 어쩌면 불행일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신과 주변의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유쾌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은 빨간 머리 앤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앤에게 영혼의 단짝 다이애나가 있다면 주디의 영혼의 단짝은 키다리 아저씨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일방적인 의무감으로 써야하는 편지이긴 했지만, 주디는 의무감을 떠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더 즐기는 듯했으니까. 더 모던의 감성클래식 작품은 처음 갖게 되었는데 품격 있는 양장본에 TV에니메이션 원화가 들어 있어 읽는 재미와 소장의 기쁨도 누렸다. 이야기는 우울한 수요일과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낸 편지로 짜여 있다.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열여덟 살 최고령이 된 제루샤 애벗은 97명의 어린 고아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허드레 일꾼으로 우울한 수요일을 보내던 어느 날 원장실에 불려가 재단 이사 중 한 부자 신사가 대학을 보내주고 작가로 키우기로 했다는 제안을 듣는다. 그 보답으로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 편지로 쓸 것, 절대로 답장을 기대하지 말고 빚을 갚는 마음으로 꼬박꼬박 쓰라는 특이한 조건이다. 이름도 밝히는 것을 꺼려하니 존 스미스 씨 앞이라고 써서 비서를 통해 전달하라면서. 평생 고아원을 떠나본 적이 없는 주디에게 정말 놀랍고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키 큰 뒷모습을 상상하며 키다리 아저씨라고 칭하기로 하고 자신은 제루샤 애벗이라는 이름 대신 주디라고 불러달라는 부탁과 함께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고아원을 떠나 처음 기차를 타고 신났던 일, 행복한 대학생활의 이야기, 그런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준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새 친구 샐리 맥브라이드와 줄리아를 소개하고 혼자서 방을 쓰게 된 이야기, 농구부에 뽑힌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모두 편지에 쏟아낸다.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고 해서 결코 의기소침해 하지 않는다. 고아원의 목표란 게 아흔일곱 명의 고아 모두를 아흔일곱 명의 쌍둥이로 만든다는 획일적인 교육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자존심 강하고 영리하며 당돌함이 느껴지는 주디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곡을 찌르면서도 감수성 풍부하고 발랄한 소녀의 모습도 보인다.

 

아저씨도 아시겠지만 대학에서 진짜 어려운 건 공부가 아닙니다. 노는 거예요. 다른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저는 반도 못 알아들어요. 아무래도 (저를 뺀 제 또래 아이들이 과거에 다들 경험했던 일과 관련된 우스갯소리들 같은데, 전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고 그녀들의 언어를 몰라요. 그럴 땐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듭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어요.’(P48)

 

 고아원에서 자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말에 자신도 깜짝 놀라게 되는 장면은 얼마나 안쓰럽고도 귀여운지. 질문을 해도 대답을 주지 않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심술이 나서 퉁명스럽게 편지를 썼다가도 금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는 주디의 순수한 마음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상황을 편지에 썼다가 아름다운 장미꽃을 받고는 너무 행복해서 엉엉 울었다는 주디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첫 방학을 맞아 석 달 동안은 난생 처음 록 윌로우 농장에서 보낼 수 있게 되어 기대감으로 부푼 이야기, 줄리아의 삼촌인 저비스 펜들턴 씨와 학교 교정을 산책하고 대화하고 차를 마신 이야기를 자랑하는데...

 

 

아저씨, 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력이 있어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요. 친절과 공감과 이해심도 생겨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상상력을 키워 줘야 해요. 하지만 존 그리어 고아원은 상상력의 싹만 보여도 즉시 잘라 버려요. 그곳에서 장려하는 자질이라곤 오직 의무감뿐이지요. 저는 아이들에게 의무라는 단어도 알려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단어예요. 아이들은 뭐든지 의무감에서 하면 안 돼요.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해야 해요.(P178)

 

 고아원을 떠나 처음으로 세상의 품에 안겨 생활하면서 처음엔 고아원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했지만 조금씩 배우고 넓은 마음으로 변화하는 주디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어디 고아원에만 그치는 이야기일까. 제도적인 교육 전반이 상상력과 창의력은 무시한 채 획일적인 상품을 찍어내기에 급급하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남의 입장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에서 공감과 이해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의무보다는 사랑의 마음이 우선이라는 주디의 말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나게 커다란 기쁨만 중요한 게 아녜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기쁨을 끌어내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의 참된 비결이고, 그러려면 바로 현재를 살아야 해요! 지난 일을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사는 거예요. 농사 짓듯이요. 농사에는 조방농법과 집약농법이 있어요. 저는 집약농법처럼, 매 순간을 즐기며 살아갈 거예요. 또 매 순간을 즐기는 내 자신을 지각할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가는 게 아니라, 경주를 해요. 오직 저 멀리 지평선에 놓여 있는 결승점에 도달하려고 안간힘으로 달리는 거예요. 그렇게 한참 달리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거리게 되고, 그러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속을 지나오면서도 그 풍경을 다 놓치고 말아요. 결승점에 이르러서야 깨닫죠. 자신들이 늙고 지쳐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결승점에 도달하느냐 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저는 길가에 앉아 소소한 행복을 많이 쌓기로 했어요.‘(P243~244)

 

 요즘 소확행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소박한 일로 행복을 찾는 일과 현재를 제대로 살자는 말이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지금을 제대로 살 수 없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쌓여갈 때 우리의 삶이 대체로 행복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풍경도 음미하며 소소한 행복을 쌓기로 했다는 주디의 말이 다시금 위안과 힘을 준다.

 

'3학년에는 경제학을 선택했어요. 다방면으로 유익한 학문이죠. 경제학을 끝내면 자선과 개혁과목을 듣겠어요. 그 과목을 수강하면 고아원 경영에 훤해지겠죠. 제게 선거권이 있다면 바람직한 유권자가 될 것 같지 않으세요? 지난주에 저는 스물한 살이 되었답니다. 저처럼 정직하고 교양 있고 양심적이며 지성을 갖춘 시민을 내팽개치다니 이 나라에 얼마나 큰 손해인가요.’(P229)

 

보세요, 아저씨. 저는 지금 눈앞의 유혹을 완강히 외면한 채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고 있어요. 부디 언짢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저씨의 친절함에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아이라고 여기지도 말아 주세요.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어요. 아저씨의 은혜를 갚는 유일한 방법은 매우 쓸모 있는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여자도 시민일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매우 쓸로 있는 사람이 될게요. 아저씨가 저 매우 쓸모 있는 사람을 내가 키워냈소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로요.’(P259)

 

 학업에 쓰이는 돈 이외의 것을 더 주려고 하거나 유럽에 보내주려고 하는 아저씨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할 줄도 안다. 이런 주디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고아였지만 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당당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해진다. 받은 것에 멈추지 않고 글쓰기를 통해 자립을 꿈꾸며 쓸모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이 계기가 되어 당시 여성에게 없었던 선거권이 주어졌고 고아들의 처우 개선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단다. 문학의 힘이란 역시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은 말이죠! , 그분은 평상시 그대로인데 전 그분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해요. 온 세상이 텅 빈 듯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요. 달빛이 미워져요. 달빛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분이 곁에 없어 함께 볼 수 없으니까요. 아저씨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으시죠?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거예요. 아니라면 제가 뭐라 설명해도 모르실 테고요.(P303)

 

 

주디가 드디어 사랑에 빠졌나보다

달빛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함께 바라볼 사람이 곁에 없다고 아쉬워한다.

맥브라이드 가족의 초대를 받아 별장으로 놀러갈 꿈에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거기에 가지 말고 록 윌로우 농장으로 가라는 아저씨의 명령에 주디의 상심은 이룰 말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세상에, 눈치 없는 주디처럼 나도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알았다. 멋진 반전이다

 

 이 작품을 즐기기 위해서는 두 번 읽기를 권하고 있다. 한번은 주디의 학교생활과 성장의 스토리를 따라 가는 것, 두 번째는 키다리 아저씨인 저비스의 관점으로 읽어보라는 것이다. 고아 소녀를 후원하고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가는 주디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돌아다볼 수 있었다. 내게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만 해 보았지, 내가 주디였다면 그런 상황에 초긍정적인 성격과 당당한 태도로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좀 더 현재를 소중히 하고 소소한 행복을 쌓으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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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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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재밌어서 몇 번이나 돌려 본 일드 <한자와 나오키>가 소설이 원작이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멘트가 얼마나 후련하고 통쾌함을 주었던지. 역시나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는데, 작가 이케이도 준은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대형 은행에서 일했던 은행원 출신이었다. 일드 <루즈벨트 게임>도 재밌게 봤는데 그의 작품이 원작이라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은행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관례화된 비리나 불합리한 점을 끝까지 밝혀내는 용감한 융자과장 한자와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정곡을 찌르는 대사로 상대방을 움찔하게 만드는 언어의 마법사라고 하겠다. 부하직원을 무시하고 짓밟으려는 악랄한 상사에게 할 말 다하며 대들고 출세까지 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 아닐까.


 거품 경제의 전성기였던 1988년 말, 게이오 대학의 한자와를 포함한 도마리, 오시키, 곤도, 가리타 다섯 명의 동기는 청운의 꿈을 품고 은행 취업에 성공한다. 당시만 해도 엘리트의 대명사인 은행원이 된다는 것은 평생의 삶을 보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서부 지점에서 5억 엔을 대출 받은 서부오사카철강이 1차 부도를 내는 사건이 벌어진다. 담보도 없는 신용 대출인데 그것도 6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부도라니. 여기에는 지점장 아사노가 서부오사카철강 대표 히가시다에게 속전속결로 대출을 추진한 미심쩍은 배경이 있다. 우수지점 표창을 노린 성급함에 일사천리로 매듭짓고는 문제가 발생하니까 융자과장 한자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가 되어간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은행원으로서 슬슬 환멸을 느끼던 차였지만, 불어 닥친 폭풍우를 그대로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문은 도쿄 지점까지 무성해지고 한자와의 앞길은 온통 먹구름이다. 부도 낸 회사 사장 히가시다 사장을 만나 대출금을 갚으라고 요구하지만 이리저리 피하거나 안 갚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결산 자료를 검토하면서 분식회계, 매입대금 부풀리기 등 도산이 계획적이었음을 확인하고 경악한다. 결국은 도마리의 조언으로 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목표에 돌입하게 되는데...

 절실하면 통한다더니, 서부오사카철강의 하청업체인 다케시타 금속의 사장과 파트너가 되어 온갖 정보와 자료를 모으며 하나씩 단서를 캐치하는 모습은 마치 탐정의 행로를 보는 것 같다. 주변의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며 도와주는 도마리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준다.

 

과연 한자와는 채권을 회수할 수 있을까

또한 불명예스럽게 당한 굴욕을 어떻게 갚아줄 것인가.

 

날씨가 좋으면 우산을 내밀고 비가 쏟아지면 우산을 빼앗는다-이것이 은행의 본모습 입니다.’(P218)


결국 우리 은행원의 인생은 처음에는 금도금이었지만 점점 금이 벗겨지면서 바닥이 드러나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녹이 스는 것일지도 모르지.”(P331)


 꿈을 안고 은행 취업에 성공했지만 부조리의 산실임을 목격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노력하는 한자와의 여정은 힘겹다. 갑작스런 현장검사와 면담으로 한자와를 불러들이고 편법을 쓰면서까지 잘못을 추궁하고 그것을 인정하게 하려고 혈안이 된다. 하지만 정의의 편에 선 주변 동료들의 도움은 든든한 힘이 된다.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도쿄중앙은행의 행원일 뿐이지. 즉 당신과 똑같은 일개 직원에 불과해. 경영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내 주머닛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는 한 사회인으로서 당신이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 없어. 아무리 귀찮고 힘들더라도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져야 할 거야.”(P227)


제게 책임이 있다면 순순히 인정하겠습니다. 그건 융자과장으로서, 은행원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직장인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제 책임이 아닌 것까지 사죄하는 건 오히려 부끄럽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P289)


난 기본적으로 성선설을 믿어. 상대가 선의를 가지고 호의를 보인다면 성심성의껏 대응해. 하지만 당하면 갚아주는 게 내 방식이야. 눈물을 삼키며 포기하지는 않아. 열 배로 갚아줄 거야. 그리고…… 짓눌러버릴 거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아사노에게 그걸 알려주겠어.”(P336)


 자신의 잘못을 한자와에게 전가하려고 본점의 윗선에 미리 손을 써놓은 아사노의 말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불의를 회피하지 않고 밝혀내려 애쓰며, 지위의 고하를 신경쓰지 않고 할 말 다하는 한자와를 보면서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신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마저 회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의도적으로 부도를 내고 새롭게 다른 이름으로 창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많은 가족들의 생계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악덕업자는 지금도 어디선가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한 답답한 세상에 한자와 나오키의 활약은 극심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청량제나 다름없다

드라마만큼이나 재미있는 원작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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