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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데미안 (블랙 스카이버(가죽) 금장 에디션)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데미안』 금장 에디션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헤세의 이 작품을 고1때 읽었고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독서회 선정도서로 두 번째 읽었으니, 이번이 세 번째인 셈이다. 앞의 두 번 읽은 것은 그 유명한 명문장 말고는 가물가물했는데 이제 겨우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읽기는 초판본 금장 디자인으로 소장의 기쁨까지 누리게 되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이 작품은 1919년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간되었다. 이미 성공한 작가였지만 작품성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명으로 출간했다 한다. 소설가 토마스 만이 출판사에 에밀 싱클레어가 누구인지 알려달라는 일례도 있었고 평론가 코로디가 데미안의 문체를 분석해서 헤세임을 밝혀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어있다.(역자(이순학) 해설에서) 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출간되자마자 이 작품의 작가가 헤세임을 알아보았다는 이야기는 정여울 작가의 클래식 클라우드 헤세에서 알았다.

 

 

 이 작품은 헤세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써 내려간 이야기다. 열 살 때 고향에서 라틴어 학교에 다닐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싱클레어가 다른 두 친구와 함께 프란츠 크로머라는 친구를 따라 놀러 간다. 그들 사이에서 왠지 이방인 같은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까봐 하지도 않은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말로 으스댔다가 크로머에게 덜미를 잡히고 그는 싱클레어에게 2마르크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싱클레어는 물에 빠져 죽어버릴까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게 되고 이전의 따뜻하고 밝았던 세계의 삶이 산산조각 난다.

 

 여기서 헤세의 자전적인 작품 수레바퀴 밑에서의 주인공 한스가 떠올랐다. 모범적이고 마냥 여린 성격의 한스는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수줍어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다가 헤르만 하일너에게 매료되어 결국은 학교생활이 엉망이 되고 병을 얻어 주검이 된다. 그 한스 보다는 조금 베짱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크로머에게 돈을 주기 위해 집에서 좀도둑처럼 물건이나 돈을 훔치기 시작한다. 모범적인 가정, 사랑, 따뜻함의 밝은 세계에서 어두운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어두운 세계가 싫지만은 않아 보인다. 부모님께 사실을 털어놓고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혼자서 고통을 감당하려고 한다. 물론 여러 번 망설이기는 하지만 우선은 비밀로 한다. 혼자만의 비밀을 가진 채 가족들과 지내는 일은 어딘가 어색하고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결국 크로머에게 2마르크를 다 주고도 그 고통은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신비스런 존재 막스 데미안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데...

 

 데미안은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과 동시에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닌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점점 매료되기 시작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읽어낸다. 이미 알고 있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반론을 펼치면서 싱클레어를 놀라게 하더니, 크로머를 때려 죽여서라도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 데미안 덕분에 크로머라는 악마에게서 벗어났지만 싱클레어는 이제 자신의 내면의 어두운 세계와 싸우기 시작한다.

 

 데미안과 열띤 토론을 벌이던 어느 날, 사색에 빠져 딴 세계에 있는 듯한 데미안에게 전율을 느낀 싱클레어는 행복했던 유년 시절이 낯선 것이 되고 무너져 내린다.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고 퇴학처분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어느 날 공원에서 마주친 한 소녀를 만나고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숭배하다가 땅에 떨어질 만큼 비참해진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된다. 데미안이 그리워진 싱클레어는 어떻게든 다시 만나기 위해 집 현관에 있는 문장의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냈는데 그 유명한 문장이 답장이 되어 싱클레어에게 돌아온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P123)

 

 처음 접했을 때부터 참 강렬한 인상을 주는 문장이었다. 신비함을 주는 신의 이름 아브락사스도. 하지만 알이 세계이고 세계란 누구든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장벽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장벽을 깨고 신에게 날아가는데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며 아브락사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를 모두 포괄하는 세계,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 아닌가. 장벽이란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청소년에게 있어서는 성적과 이성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고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삶에서 각자 안고 있는 해결해야 할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 시절 헤세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온갖 고뇌로 인해 들끓는 청춘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락에 떨어졌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내면에서 간절하게 그리던 형상인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내면 탐구를 거의 마칠 무렵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전쟁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외부의 세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험하게 한다. 싱클레어는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은 뭉클한 감동이었다.

 

꼬마 싱클레어, 들어봐! 나는 떠나야 해. 자네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크로머나 그 밖의 일 때문에 말이야. 그땐 네가 나를 불러도 내가 말이든 기차든 되는대로 막 타고 올 수는 없어. 그때 너는 네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이미 너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알겠지? 그리고 또 하나! 에바 부인이 부탁했어. 만약 네가 언젠가 나쁜 처지에 처하면 그녀가 나에게 보낸 입맞춤을 너에게 전해주라고 말이야…… 눈을 감아. 싱클레어!”(P227)

 

 서로 이마의 표식을 꿰뚫어 봄으로써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눈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는 다소 판타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유난히 꿈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몽상가였던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여행이기 때문이었을까. 처음부터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감사와 두려움, 놀라움과 불안감, 호감과 반항심이 뒤섞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닮고 싶은 또는 그렇게 되고 싶은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었을까. 헤세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써 내려간 이 작품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시 헤세의 작품은 여러 번 읽어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다음에 읽으면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무척 기대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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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 - 초판본 비밀의 화원 - 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박혜원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워낙 오래전에 영화로만 본 비밀의 화원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으로 읽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읽어왔던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등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이야기(영화로만 봤지만)등 영국문학의 공통점이라면 비밀스런 공간에 대한 음침함을 더하며 오싹한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작품 중에서도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도 비밀의 화원이라는 공간을 매개체로 주변 사람들의(특히 어른들) 관심에서 멀어진 아이들이 오랜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밝은 웃음과 삶의 희망을 되찾는 이야기다.

 

 메리 레녹스는 인도에서 살고 있었는데 콜레라로 부모를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영국 요크셔에 있는 고모부 크레이븐의 저택에서 살게 된다. 메리를 데리러 온 메들록 부인은 600년 전에 황무지 끝에 지어진 대 저택에 방이 100개나 되지만 대부분 잠겨 있다는 것, 또 멋진 고가구와 골동품, 공원, 화원, 나무들이 있다면서 주인은 이 음산한 집을 나름 자랑스러워한다고 얘기해 준다. 메리는 그 말을 듣고 무엇이건 인도와 다르고 새롭다는 점에서 마음에 끌렸지만 내색을 하지 않는다. 별 반응이 없자 메들록 부인은 다 늙은 사람 같다며 웃어버린다. 왠지 예쁜 구석이 없는 메리의 앞날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또 이미 인도에서 목사 아들에게 들었던 곱사등이라는 고모부 이야기를 하면서 고모는 예쁘고 상냥한 분이었다고.(과거형으로) 그리고 돌아가셨다고 말하자, 메리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놀란다. 고모에게 그렇게 상냥하게 대했는데 고모가 돌아가시자 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예쁜 고모도 없다는 말을 듣고는 그나마 있던 호기심도 사라지는데... 그 분위기를 조장이라도 하듯이 세찬 비가 차창 밖으로 퍼붓기 시작한다. 게다가 고모부를 만날 거란 기대는 할 필요도 없으며 혼자 놀고 혼자 알아서 일을 해야 한다, 들어가도 되는 방과 들어가면 안 되는 방을 알려줄 것이니 여기저기 들쑤시며 돌아다니면 주인이 용납을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으며 잠에 빠져든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쁘고 병약해서, 대단한 미인이었던 어머니는 화려한 파티를 좋아해서 메리가 태어나자마자 아야(가정부- 인도어)에게 맡겨버렸다. 메리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어서 여섯 살 때는 누구보다 포악하고 이기적인 욕심쟁이 아이로 자라 있었다. 그래서 가정교사들도 석 달을 못 버티고 그만두게 되었는데, 스스로 책 읽는 법을 배운 것은 다행이었다. 깡마른 몸과 얼굴이며, 표정도 심술궂어 보여서 사람들이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8km나 되는 황무지를 마차로 지나 드디어 저택에 도착했는데 피처 노인이 와서 주인은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아침에 런던으로 떠날 거라고 말한다. 메들록 부인이 알려준 방과 식사를 하는 방 말고는 들락거리면 안 된다고 하자, 메리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사는 심한 요크셔 사투리로 메리에게 창밖으로 보이는 황무지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 여름이 되면 가시금작화랑 히스 꽃이 피어서 너무 예쁘다며 자기는 황무지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자기와 대등한 것처럼 할 말 다하는 마사를 보면서 인도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인도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양말부터 옷까지 다 입혀주고 갈아입혀 주었는데, 이제는 옷도 신발도 혼자서 입고 신어야 하고 낯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열둘이나 되는 마사의 남매와 가족 이야기, 동물의 마법사인 남동생 디콘 이야기, 혼자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마사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새로운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간다.

 

 무엇보다도 메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고모가 돌아가신 후 10년이나 잠겨 있었다는 화원이었 다. 메리는 이 황무지에서 밖에 나가지 않으면 집에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마사의 수다가 그치고 조용해지면 서운한 마음까지 들게 된다. 장대비가 내리는 바람에 밖에 나가지 못한 어느 날 허락 없이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마침 메들록 부인에게 들켰는데 들쑤시고 돌아다녔다고 혼나고 만다.

 

 날씨가 좋아지자 십년 동안이나 문이 잠겨 있었고 열쇠를 땅에 묻어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그 화원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화원을 탐방하기 시작하는데...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울새가 들려주는 노래 소리를 들으며 메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버려진 화원이 어디 있을까, 고모를 그토록 좋아했다는데 왜 고모의 화원을 잠가버렸을까. 그런 고모부를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돌아오던 길에 정원사 벤과 마주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다가 울새 이야기를 하자 휘파람을 불어 울새가 날아온다. 마치 벤이 마법이라도 부리는 듯한 상황에 메리는 놀란다. 울새와 함께 잘 놀다가 문이 잠긴 화원 이야기를 하자 벤은 정색을 하며 가버린다. 뭔가 비밀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자꾸 쉬쉬하면 더욱 궁금해지고 세상에 비밀이란 언젠가 들통 나고 만다. 돌아다니던 메리는 파헤쳐진 흙 속을 들여다보다가 열쇠꾸러미를 발견하고 비밀의 화원의 열쇠라는 것을 눈치 채고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비밀의 화원에 디콘을 데려가서 장미꽃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낸다. 둘만의 비밀로 만든다. 그동안 메리는 정말 많이 변했다. 하인에게 말하듯 벤에게도 그렇게 말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벤 아저씨에게 존댓말을 한다. 그리고 밖으로 나돌며 황무지 바람을 쐬면서 자기도 모르게 건강해지고 예뻐지고 있었다.

 

 

세 번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간 메리가 콜린과 만나는 모습.(찰스 로빈슨 그림.)

 

 

 또 하나의 비밀은 복도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고모부의 아들 콜린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둘이는 잘 통하는 친구가 된다. 한밤중에 울음소리를 듣고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그 방을 찾아갈 만큼 대담한 메리였다. 고작 열 살의 나이에. 하지만 메들록 부인은 의사와 함께 콜린의 방에 왔다가 기절초풍을 한다. 콜린은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해서 방에만 갇혀있었다. 아버지처럼 곱사등이가 되어 어른이 될 때까지 살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마치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처럼 살고 있었다. 등에 혹이 생길까봐 앉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콜린이 참 가여웠다.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살지 못 할 거라는 말을 믿고 침대에 누워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혼자서 보낸 시간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아들에게 무심했을까. 아내의 눈과 닮은 아들을 보면 죽은 아내 생각이 나서 괴로워서 그랬다지만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되었다.

 

 먹는 것도 싫고 누구와 어울리는 것도 싫었던 메리는 자신이 변화하고 나니 콜린이 처한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보인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조차 싫어하는 콜린을 어떻게든지 비밀의 화원에 데려가려고, 디콘이랑 화원에서 꽃씨를 뿌리고 가꾸는 이야기며 울새 이야기를 들려주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봄이 되자 황무지의 풍경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난 메리는 비밀의 화원으로 달려간다.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화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행복감에 젖는다. 디콘과 메리는 가장 놀라운 기쁨을 맛보게 되는데... 울새가 둥지를 짓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너무 뻔하게 쳐다봐서는 안 된다고 디콘이 주의를 준다. 이렇게 경이로운 것들을 콜린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비밀의 화원으로 어떻게 데려올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콜린을 비밀의 화원에 데려가려고 궁리를 하고 아픈 척 연기를 하며 저희들 스스로 용기를 주며 똘똘 뭉쳐 화합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아이가 열둘이나 되는 마사네 가족이 가난하지만 오두막에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감동적이었고, 저택의 음침한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같은 황무지 안에서도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달랐다.

 

 결국 10년 동안 굳게 잠겨있던 비밀의 화원은 메리가 발견한 열쇠에 의해 열리면서 마법이 시작되었다. 회색으로 메말라있던 나뭇가지들은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으며 마법이 일어난 듯 메리와 콜린도 건강을 되찾고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조그마한 새싹이 흙속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 울새가 둥지를 짓는 모습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는 경이로운 마법처럼 보였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이런 것을 경험한 것은 어떤 교육적인 차원에서의 문제 해결도 아니고 어른들의 도움도 아니었다. 아이들 스스로 찾아내고 대자연이라는 비밀의 화원을 통해서 우정이 생기 있게 피어났다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하겠다.

 

 

 메리가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며 콜린을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했다는 점은 어른들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병약하다고 믿었던 콜린이 죽으면 저택을 물려받기로 되었던 크레이븐 박사는 콜린에게 아프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상기시키거나, 아들을 내팽개치고 장기간 여행을 다니는 콜린의 아버지의 행동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는 슬픔에 갇혀 그 아내의 화원을 닫아버린 것이다. 또 아내의 눈을 꼭 닮은 아들을 외면한 것도 콜린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메리가 저택에 들어와 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이전의 자신을 돌아보며 변화하고 주변 인물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여기서 마사의 공도 참 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다.) 이런 점에서 메리의 성장소설이면서 주변 인물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등 긍정적인 선순환이야말로 이 소설의 큰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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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이야기 - 세상을 담고 싶었던
박성우 지음, 김소라 그림 / 오티움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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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록빛 표지가 싱그러움과 함께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이자 아홉 살 마음 사전으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사랑받는다는 박성우 시인을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컵 이야기작품 소개를 맨 처음 접하고는 어느 그릇에 담겨도 유연하게 적응하는 물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었다. 역시 시인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사물을 가지고도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감탄했다. 몇 해 전 코끼리의 마음으로 만난 김소라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 동화여서 더욱 시적인 이미지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읽은 동화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 박성우 시인은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등 다수 있고 산문집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 청소년 책 사춘기 준비사전등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과 소년시집, 동시집 등 다양한 작품을 펴냈다.

 

 소풍을 나왔다가 버려진 컵 커커가 자연 속의 동식물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자신도 함께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곤충이나 식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투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랫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을 버리곤 한다. 그런데 박성우 시인은 버려진 컵 커커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여러 동식물들의 만남과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 준다. 쓸모없는 존재처럼 버려졌지만 다른 친구들을 위로해 주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다.  따뜻하고 시원한 마실 것을 담아 주었던 머그 컵 커커가 어느 날, 미루나무 아래에 버려진다. 마치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내쳐진 사람의 신세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해서 별로 낙담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렇게 되었으니까. 사람들이 사는 집안에만 있다가 밖에서 느끼는 햇살과 풀냄새, 강바람 소리가 새롭게 느껴진다. 상황이 변화되었으면 이제 자신의 태도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컵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의 전환에 이르게 된다.

 

 맨 처음 나비 나나를 만난다. 언제나 낯선 만남은 어색하기만 하다. 다행히 배추흰나비는 쑥스러워하는 커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커커에게서 꽃냄새가 나고 하얀색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해 주자 둘은 금세 친해진다. 나나는 자신은 원래 털이 숭숭 난 애벌레였고, 커커는 진흙덩이였다는 자신의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털어놓으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이어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 언제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외롭다는 일개미 일일이, 남들과 비교하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참게 차차, 짝을 찾고 싶은 딱새, 외로움에 절어 있었던 깡충거미 외로로, 신나는 모험을 즐기는 땅강아지 삽삽이, 무엇을 보아도 감탄하다가 울음을 멈추지 않는 민달팽이 핑핑이, 나팔꽃 모모, 노래를 못해서 자신감이 없다는 귀두라미 뚜뚜, 뭐든지 당연히 여기던 자신의 이기심을 반성하는 도마뱀 도도를 만난다.

 

 커커는 이들을 품어주는 고민 상담소이자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언제나 외로웠던 일개미 일일이는 진딧물의 꽁무니에서 단물을 빨아내어 어린 애벌레들에게 줄 먹이를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병정개미가 되고 싶었지만 태생이 일개미라서 처음부터 꿈꿀 수 없는 일이었다. 까다롭게 굴며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진딧물에게 화가 나서 무작정 걷다가 하얀 컵 커커를 발견하고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느라 힘들었던 사연을 모두 털어놓으면서 속이 후련해진다. 그러다가 개미함정에 빠졌다가 일개미 동료들에게 구출을 받던 일을 떠올린다. 자신이 받은 고마움은 잊어버리고 불평불만에 빠져 자기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결코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참아내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우리의 미생들의 일상이 겹쳐졌다.

 

나한테도 발이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어, 하지만 커커는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며 사는 일만큼 귀한 일도 드물 것이라는 것을 되짚어본다. 누구인가의 든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건 귀한 일이야, 슬프거나 외롭고 힘든 이가 찾아오면 언제든 그들에게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로 당분간은 살아가야겠다고 커커는 다짐한다.’(P137)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땅강아지 삽삽이를 보면서 커커는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숙명을 가진 커커는 마음을 돌이킨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다른 친구들에게 힘을 주는 삶도 귀한 일이라고. 필요한 이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참게 차차의 삐딱한 자세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커커가 모든 불만을 들어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람의 집에 살 때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끊이지 않게 들었던 커커는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누구보다 익숙했다. 딱새 따따가 어렵게 만나 사랑하게 된 짝 띠띠와 자신의 잘못으로 헤어진 이야기를 털어놓자 상대를 어떻게 배려하고 존중하며 사랑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준다. 다시 만난 딱새부부에게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도록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으며 실컷 울고 싶은 민달팽이 핑핑이에게는 울음통이 되어 준다.

 

 민달팽이 핑핑이의 감성 폭발 이야기는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온갖 것을 보고 감탄하다가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원추리 꽃이 핀 걸 보고 대견해서 훌쩍거리고 노루가 발자국에 마실 물을 남겨 주어 고마워서 운다. 칡꽃 냄새가 너무 좋은데 혼자서 그렇게 좋은 향을 맡아야 하는 게 아까워서 운다. 땅강아지가 구렁이 굴에서 쫓겨나오는 것이 너무 측은해서 운다. 맛있는 상추를 먹다가 상추가 불쌍해서 울고 가녀린 나팔꽃이 꽃을 피운 것에 감동하며 울고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며 울어대는데 정말 못 말리는 민달팽이다. 점점 감성이 메말라가는 우리들에게 소박한 것에 감탄하는 법을 배워보라고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열 번째 주인공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를 보고 뭐든 당연한 듯 여기던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반성하고 자신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도마뱀 도도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습관처럼 마실 것이나 담던 커커는 여러 친구들을 만나던 시간을 되새겨본다. 비운다는 것은 채울 준비를 마쳐두었다는 것, 자신의 안쪽을 비워두었기에(P212)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것에 흐뭇해한다. 버려진 컵이었지만 많은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며 더욱 넉넉한 곁을 내주었다. 아무리 부족하고 나약해 보이더라도 누구나 한 가지의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쓰임새를 찾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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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SF... F.. C.
메리 셸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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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로 회자되고 있으며, 19세기 고딕소설 최고의 걸작이라는 메리 셸리의 대표작이다. 제우스신의 명을 어기고 인간에게 지식과 불을 가져다 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피조물을 만든 결과 자신은 물론 가족과 친구를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넣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영화로 본 기억으로는 피조물의 흉측한 외모를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만 했는데 책으로 읽으면서 피조물의 내면 심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소설의 모티브를 얻은 계기도 너무 유명한 일화여서 읽고 싶다는 기대감을 더해주었다. 셸리 부부와 바이런 경 부부가 모인 자리에서 유령 이야기를 하나씩 쓰자는 제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유전자를 지니지 않고 진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명체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출생을 어느 날 문득 던져진 존재라고 하는데, 이 피조물이야말로 그에 딱 맞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실험정신은 높이 살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지 않고 과학자의 성취에만 모든 것을 걸어도 되는 걸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제1권의 시작은 월턴 선장이 영국의 새빌 부인에게 서신을 전하는 내용이 나오고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가 제2권의 2장까지 이어진다. 이어 3장부터 8장까지는 피조물인 괴물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한다. 피조물을 쫓아 북극까지 왔다가 거의 죽기 직전의 프랑켄슈타인을 월턴 선장이 구조 해준 인연으로 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이나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과학도 프랑켄슈타인은 어머니가 사망 후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난다. 이미 17세에 몇 개의 언어를 할 줄 알고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가르치는 자연과학 이론과 실험에 통달하여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경지에 이른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으로 연구하다가 날을 새기도 하면서 2년의 연구 끝에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피조물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쪼글쪼글한 피부에 검은 입술을 한 흉측하게 생긴 외모에 공포와 혐오감을 갖게 되고 도망치게 된다.

 

 이름도 없는 피조물은 보통 사람보다 키도 크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인간들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덩치만 큰 피조물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겉모습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에 빠지고 절망하게 된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프랑켄슈타인의 동생 윌리엄이 살해되었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하녀 유스틴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피조물인 괴물의 짓이라고 단정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호기심과 부당한 일 때문에 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에 참담한 심정이 된다. 재판이 진행되지만 거짓 자백을 함으로써 유스틴은 희생양이 된다.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을 만들지 않고, 그 과학적 재능을 다른 일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피조물을 창조한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좀 더 숙고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이왕 만들었다면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났으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애정을 주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후회와 고통에 사로잡힌다.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모든 인간은 버림받은 자를 증오하지. 그런데 그 어떤 생물보다 더 비참한 내가 어째서 미움 받아야 하는가! 나를 창조한 당신도 피조물인 나를,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끊어지는 관계로 당신과 묶인 나를, 증오하고 경멸하지. 당신은 나를 죽이려고 든다.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 당신의 의무를 내게 다하면, 나도 당신과 나머지 인간들에게 내 의무를 다하겠다. 당신이 내 조건을 들어준다면, 그들과 당신을 가만히 두겠다. 하지만 거부한다면, 당신의 남은 친구들의 피로 만족할 때까지, 죽음에 굶주린 위를 채우겠다.”(P139)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피조물과 마주치고 분노하자, 피조물도 지지 않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선택의 여지없이 생명을 부여받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피조물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라는 말이 자꾸 뇌리에 남는다. 자신의 피조물에게 사악한 악마라고만 치부할 자격이 있는지 묻게 된다. 나약하고 소중한 생명이 잔혹한 학대의 대상이 되어 스러지는 오늘의 현실도 떠오른다.

 

 버림을 받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어느 오두막집에 숨어들어 먹을 것을 훔치고 연명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안타까웠다. 처음에는 다양한 감각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끼지만, 점차 보고 듣고 냄새를 느끼고 각각의 감각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사물을 인지하고 감각을 익히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으면 불을 발견하고 온기를 느끼며 좋아했는데 그 속에 손을 넣었다가 뜨거워서 기겁을 한다. 보살펴주고 위험요소를 인지시켜주는 보호자가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익혔을 텐데.

 

 가난한 오두막집의 우리에 숨어서 살면서 그들이 가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땔감을 해다가 쌓아놓으며 도움을 준다. 그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놀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들이 경험과 감정을 소통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관찰하다가 불, 우유, 빵 등 단어를 배우고 쓸 줄 알게 되면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다 투명한 웅덩이에 비친 괴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굴욕감에 빠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언어의 기술을 배우려 노력하고 감각을 익히고 사람들의 연민과 사랑을 배우려고 애썼다. 그들이 기쁘면 자신도 기쁘고 그들이 슬프면 자신도 슬퍼한다. 그렇게 공감능력이 생기자 피조물은 자신의 이런 마음을 전하고자 한 가지 계획을 세운다. 젊은이들이 모두 밖에 나간 사이에 앞 못 보는 노인 드 라세를 만나러 방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아들과 딸들이 들어오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딸 아가타는 흉측한 외모에 기절을 하고 팰릭스에 의해 거절당하고 내쫓기자 오두막집에 불을 지르고 그곳을 떠난다.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며 인간의 정을 느끼고 싶었던 피조물은 흉측한 자신의 외모 때문에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숲속에서 어린 소녀를 구해주는 선행을 베풀었음에도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인간을 향해 증오심은 더욱 커지고 복수하기로 맹세한다.

 

 글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자 옷 주머니에서 발견한 종이에서 피조물의 끔찍하고 증오스러운 형상이 세세하게 묘사된 내용을 읽으면서 더욱 고통으로 몸서리친다. 이제 남은 것은 악과 복수심 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서 자신과 같이 흉측한 외모를 지닌 여자를 하나 창조해 달라고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거라고. 언변이 좋은 피조물에게 설득 당한 프랑켄슈타인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친구 클레르발과 함께 영국으로 떠난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곳에서 그 작업을 마치려고 클레르발과 잠깐 헤어진다. 하지만 그 일에 몰두하다가 생각을 바꾸고 만들다 만 피조물을 부숴버린다. 이 모습을 지켜본 피조물은 복수심은 극에 달한다. “네 결혼식 밤에 내가 할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과학적 열정과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생명체를 만들었지만 신의 영역을 침범한 대가를 특특히 치렀다.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게 된 프랑켄슈타인은 끝까지 쫓아가다가 결국 주검이 된다. 피조물은 죽은 자신의 창조주를 바라본다. 증오심으로 여러 사람을 죽였지만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하며 이제 죽음만이 유일한 위로라고 한다. 인간 세계의 정을 나누고 싶었던 피조물은 그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수많은 아류작을 낳는 모티브가 되었던 이 유명한 작품을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욕망과 성취 사이에서 책임감도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인간의 선악과 실존에 대한 궁금증 등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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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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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쓴 시마모토 리오는 처음 만나게 된 작가로 나오키상 수상 작가이며 김난주 번역가가 함께한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17세 때 발표한 실루엣이 군조 신인문학상 우수작으로 선정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2003리틀 바이 리틀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는 등 수많은 상에 언급되고 있어서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고 해서 짧은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연작소설이어서 더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띄엄띄엄 읽었지만 사이사이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이 있어서 좋았다.

 

 첫 번째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길잡이>는 화자인 야마토 요스케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좋아하는 여학생 사쿠라이 마키에게 도쿄에 있는 제1지망 대학에 붙으면 사귀자고 제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자신은 야마토를 좋아하지 않으며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며 신뢰할 수 없다며 거절하는 사쿠라이의 말에 야마토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 가면 마키보다 귀엽고 세련된 여학생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마음을 달랜다. 야마토는 어머니가 알려준 지인의 먼 친척의 딸이 운영한다는 마와타 장을 찾아가기 위해 고향 홋카이도를 떠나는데 찾아가는 여정부터 헤매느라 진땀을 흘린다. 제목에서 왠지 교훈적인 뉘앙스가 풍겼는데, 새내기 대학생이 주변 인물들에 둘러싸여 좌충우돌 깨지면서 조금씩 성숙해가는 야마토를 보고 위트가 느껴졌다. 가까스로 찾아간 마와타 장에서 여고생 야에코, 쓰바키, 고하루, 주인 치즈루를 만나 서로 소개하고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화가 세우 씨 이름이 입에 올랐는데 야마토가 몹시 궁금해 하자, 치즈루는 자신의 내연의 남편이라고 말해서 이상한 분위기가 감돈다.

 

 하지만 한 울타리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 아닐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은 일도 점차 따스한 시선으로 바뀌어 간다. 순박한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눈치가 없는 야마토, 고야 선배로부터 자신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지만 야마토를 좋아하는 고하루, 그것도 모르는 야마토, 하라다를 잊지 못하는 선배 에마에게 휘둘리는 야마토, 이들의 엇갈린 사랑도 안타깝고 흥미를 자아냈다. 강간을 당한 트라우마로 남자가 넌더리난 쓰바키는 인터넷 취미 카페에서 여고생 야에코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호기심도 잠시 자신을 향해 끈덕지게 달라붙는 듯한 묘한 애정 사이에 혼란스러워진다.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은 틈에 트러블이 발생해서 집을 뛰쳐나온 야에코는 자신의 답답한 사정을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였을까. 자주 마와타 장을 찾아오고 마냥 쓰바키에게 마음이 향한다.

 

언니는 지금 나랑 같이 있어. 나는 언니를 좋아하고, 그 마음이 나를 지켜줘. 하지만 무언가를 정하고 약속하는 순간, 나는 보나 마나 몇 배는 약해질 거야.”

……

미안해

언니는 착한 사람이야. 너무 정직해서 고집불통인 거지.”(P75)

 

 누가 이렇게 긍정해주었던 적이 있었을까 떠올리던 쓰바키는 뭉클해지고 점차 야에코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들의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 고하루는 치즈루의 생각을 물어보지만 더더욱 답답한 마음이 된다. 다른 사람은 누구에게 이해받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그냥 놔두라며 무관심 일색이다. 이어서 치즈루는 내가 세우 씨를 보살피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보살핌을 받고 있는 거지.”(P100)라고 말해서 고하루를 놀라게 한다. 어쩌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랑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고하루의 입장에서 보면, 복잡한 연애를 하고 있는 야에코와 쓰바키가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또 방안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릴뿐, 애정 어린 따뜻한 말이 오가거나 그런 분위기를 좀처럼 볼 수 없는 세우 씨와 치즈루 사이엔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저러는 것일까 궁금증만 커진다.

 

 <청결한 시선>, <시스터>, <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까지는 전형적인 성장스토리처럼 보이지만 <벽장 속 방관자>에 이르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바로 17년 전 검은 손에 의해 무너진 치즈루의 이야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 이야기 <마와타 장의 연인>에서는 치즈루가 자신의 내연의 남편이라는 세우 씨와 얽힌 궁금증을 풀어주게 된다. 세간의 잣대로 보자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이 말에 어떤 속사정이 있었을까. 자신을 강간한 사람과 한 지붕 밑에서 살면서 밥을 먹이고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치즈루를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누구 하나, 나를 지켜주지 않았어. 친엄마조차, 나를 완벽하게 소유해주는 사람. 내가 원한 것은 딱 하나, 그거였어.”(P292)

 

 친가에서 땅을 물려받은 후 밖으로 돌던 엄마는 딸의 안위를 걱정하기는커녕, 엄마의 전 애인에게 유괴될 뻔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던 치즈루였다. 언제부터 글을 썼는지 모르지만 치즈루는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그 숱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까. 보통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어떤 정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질타어린 시선을 보낼 때가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바는 밖에서 왈가왈부하는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세우 씨를 향한 치즈루의 마음에서 알 수 있었다. 누구 하나 지켜주지 않았던 자신을 세우 씨만은 어떤 과실과 책임을 묻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 그렇게 자기를 완벽하게 소유해 준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얼마나 엄마에 의해 방치되었으면 그런 세우 씨가 훨씬 낫다고 여기는 것일까,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결말에 이르면 세우 씨는 더욱 강력하고 견고한 속박을 만들어가지고 치즈루 앞에 나타난다. 마치 악몽같다 면서도 행복해하는 치즈루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소설 속 이야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살아온 배경이나 과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런 시선에서 조금은 너그러워 질수 있으려나.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과 여러 가지 색깔의 마음이 있다. 그러니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틀렸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남녀 사이만 정상적이고 건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동성이라도 함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역시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짓기는 참 어렵다. 모래알처럼 결코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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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04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마모토 리오 ‘나리타주‘ 읽었었는데 교사와 제자사이에 사랑,,,,
일본에서 60만 독자들이 읽었다고 해서 기대 엄청 했었는데,,,
기대고 싶은 대상을 원했던 여고생에 미세한 감정을 잘그렸어요.
이분 작품은 거의 영화로 제작될 정도,,,

모나리자 2021-02-04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전 처음 만난 작가인데 이 작품도 재밌더라구요.

스콧님, 아까 스콧님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궁금한 점 댓글 남겼는데 아직 답글을 못 받아서요. 궁금하네요. 못 보신 건가요? 얼른 답변 주세요~ ㅎㅎ

편안한 밤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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