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國 (改版, 文庫)
가와바타 야스나리 / 新潮社 / 1986년 7월
평점 :
품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원서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이렇다 할 줄거리가 없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며 서정성 뛰어난 문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주된 등장인물은 시마무라와 요코, 고마코 단 세 사람이다. 기차 안에서 남편인 듯한 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요코를 만나게 된다. 시마무라에게 요코는 슬플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으로 각인된다.

 



 시마무라는 요코가 처음 기차를 탈 때 서늘하고 찌르는 듯한 아름다움에 놀라서 눈을 내리뜨는 순간 요코의 손을 꽉 잡은 남자의 손을 보게 된다. 요코가 아픈 남자를 돌봐주는 모습을 바라본다. 둘은 끝없이 먼 곳에 가는 것처럼 여겨지고 슬픔을 보는 것 같은 괴로움 없이 영화 속 장면으로 생각한다. 저녁 풍경이 기찬 안에 비친 가운데 그들의 행위가 이 세상에는 없는 상징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묘사가 정말 환상적이고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내용에서 보듯이 시마무라는 관찰자 입장으로 보인다. 기찬 안에 있는 요코의 모습과 저녁놀 풍경 분위기가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저녁 풍경의 흐름 속에 요코가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윽고 짙은 어둠이 깔리자 환상적 풍경이 사라지고 말았다. 요코의 얼굴에서 맑고 차가움을 새로 발견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요코네와 같은 역에서 내리게 된다. 기차 안에서 훔쳐보았던 것이 부끄러워져서 기관차 앞을 얼른 건너간다.

 



 설국에 온 시마무라는 주변 풍경에 놀란다. 여관 지배인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꽁꽁 싸맨 복장을 보면서 놀라고, 이렇게 심한 추위도 처음이다. 눈 색깔로 인해 집집마다 낮은 지붕을 한층 더 낮아 보이게 했다. 마을은 쥐죽은 듯이 바닥에 내려앉은 듯했다. 요코가 돌보는 남자는 시마무라가 만나러 온 여자의 아들이었다. 시마무라는 전날 보았던 저녁 풍경과 요코를 되새긴다. 그 저녁 풍경이 결국은 시간의 흐름의 상징이었을까, 하고 혼자 중얼거린다.

 



 부모의 재산을 받아 여유가 있어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는 추운 곳에 놀러왔다가 산에 다니기도 하고 게이샤를 불러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녀는 19세인데 도쿄에서 술 따르는 일을 하다가 설국에 와서는 일본 무용의 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1년 되었을 때 남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해서 시마무라를 놀라게 한다. 그동안 말 상대가 없어서 굶주렸나 싶을 정도로 수다에 열중하는 자신을 느낀다. 고마코는 화류계 출신 여자답게 격의 없는 모습이었고, 남자의 마음을 대강 알고 있는 것 같았다. 1주일이나 사람과 말을 건 적이 없었기에 반가움과 따뜻함이 넘쳐서 여자와 우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함께 삼나무 숲으로 들어가 자연을 즐기기도 한다. 어느 날 밤 10시가 다 되었는데 고마코가 새된 목소리로 시마무라의 이름을 부르며 갑자기 쳐들어오듯 그의 방에 들어온다. 술에 취한 모습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그녀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시마무라에게 다가오고 싶은 고마코의 마음이었을까.

 



 장면은 바뀌어 시마무라가 회상하는 장면인가, 했는데, 다시 만난 상황이다. 다시 만난 지 199일째가 되었다고 하자, 일기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고 한다. 일기를 쓰고 소설을 읽고 제목이나 작가, 인물의 이름, 관계 등을 적은 노트가 10권이 넘는다는 놀라운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그건 헛된 일이 아니냐고 묻는데...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고요함 속에서 여자에게 매혹당한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 헛된 일만은 아닐 거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존재에게서 순수함을 느낀다. 시마무라는 문득 자신이 외국 서적에서 사진이나 문자에 의지하여 서양 무용에 대해 몽상하고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동질감을 느낀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그림 같다.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모습이나 인물의 모습을 표현한 문장이 정말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주된 묘사는 하늘, 새벽, 밤의 모습 등의 묘사가 많이 나온다. 코마코의 발그레진 얼굴이 거울에 비친 눈 속에 떠오른 모습과 대비되어 형언할 수 없는 청결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시마무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에게 매혹당하지만 동화되지는 못한다. 아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허무주의가 반영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품 전체의 느낌은 차가움, 아름다움, 정적인 느낌이다. 어렸을 때 이후 언제 들었는지 아련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처마에 고드름이 햇빛에 빛나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번역본으로 한번 읽어보고 나서 다시 한번 음미하듯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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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2 2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원서로 읽으시다니 일본어 능력자셨군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너무 아름다운 책~!!

모나리자 2021-05-03 10:52   좋아요 3 | URL
앗! 아직 능력자는 아니구요. 능력자이고 싶은 사람입니다!ㅎㅎ
첫 문장은 너무도 유명한 문장이라 이 작품 읽지 않아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요.
5월도 화이팅입니다. 새파랑님.^^

바람돌이 2021-05-02 22: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원서로 읽으시다니..... 저에게는 이 책 정말 묘사가 끝내주는, 하지만 내용은 재미없는 책이었는데 원어로 읽으면 좀 다를까 싶어지네요. ^^

모나리자 2021-05-03 10:54   좋아요 3 | URL
아직 어렵네요.ㅎ 정말 원문으로 만난 문장들이 너무 좋았어요.
줄거리가 없는, 사람의 심리와 배경 묘사에 치중한 작품이라 그것에 집중하며 읽어야 작품의 멋을 느낄 수 있대요.
번역본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볼빨간레몬 2021-05-02 2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의 첫머리가 잊을 수 없는 문장이었어요. 어릴 땐 이게 뭐지 싶은 책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생각나더군요. 원서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정말 궁금해요.

모나리자 2021-05-03 10:56   좋아요 4 | URL
눈 많은 고장의 풍경을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추운 겨울에 읽으면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scott 2021-05-03 00: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야스나리 문장에는 음표가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산소리‘ 문장에서는 바람부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개울물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설국은 사미센 연주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정도!

소세키작품ㅇㄹ 비롯해 야스나리 원문도 한자어가 어려워서 읽기 쉽지 않을텐데
모나리자님 대단!!


모나리자 2021-05-03 11:00   좋아요 4 | URL
맞아요. 이 작품에도 청각적인 묘사가 꽤 나와요. 그리고 밤의 색깔 묘사도 멋지고요.

확실히 소세키 작품이나 오래된 작품은 한자가 어려워요.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들도 많이 나오더라구요. 아직은 단어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서 힘들어요.ㅎ 일단 술술 읽을 정도가 되는 것이 목표!! 입니다.
감사해요! 스콧님의 격려 말씀에 불끈 힘이 나네요.ㅎ^^!
5월도 멋지게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