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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번역가로 먹고살기 - 책도 읽고 돈도 버는 먹고살기 시리즈
김명철 지음 / 바른번역(왓북)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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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아카데미 특강을 들으러 갔다가 증정받은 책이다. 2011년에 이 책 초판이 나왔고 내가 읽은 책은 20132쇄 발행본이다. 저자는 영어 번역가이지만 출판 번역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다른 외국어 번역가 지망생이 읽어도 유익한 내용이 많다. 저자는 수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IMF 때 명예퇴직을 한 후,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그 가공품을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하다가 부업 삼아 하던 번역으로 30대 중반에 출판 번역가가 되었다. 그 후 바른번역() 설립하여 후배 번역가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 북배틀이 있으며, 역서로는 파는 것이 인간이다등 수십 권에 달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1장 출판 번역가, 제대로 알기 2장 출판 번역가 입문 노하우 3장 출판 번역가로 먹고사는 노하우 4장 출판 번역 실전 노하우를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출판 번역의 매력, 어떤 사람이 출판 번역가에 적합할까?, 자주 듣는 질문 베스트 7가지, 출판 번역 vs 영상 번역 vs 비즈니스번역의 비교가 들어있다.



직업에 관한 농담 얘기를 읽다가 웃음이 빵 터졌다. “의사는 마누라가 좋은 직업이고, 판검사는 처가 집이 좋은 직업이다.” 소위 돈 잘 버는 자 들어가는 일등 신랑감들이 우스개로 자조하는 농담이라고 한다. 이에 저자는 번역가는 본인만 좋은 직업이라고 했다. 의사인 저자의 친구는 대낮에 햇빛 보고 다니는 게 소원이라고 했단다. 남부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도 들여다보면 완벽하게 만족할 수 없나 보다.

 



저자는 상당히 번역가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직장생활도 해보고 사업을 하면서 부업 삼아 책 번역을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편한 직업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가 없고 저자와 나와의 대화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은 그 사이에 끼어드는 법이 없고, 저자의 머릿속을 추리해야 하는 작업이 마치 탐정 놀이처럼 흥미롭기까지 하다며 번역 예찬을 멈추지 않는다. 번역에 뜻을 두고 나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번역이라는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너무나 고생스러운 책을 작업하게 될 때는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조금 지나면 또 해볼 만한 좋은 책이 어디 있나, 하며 의욕이 솟아오른다고 말한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어서 그럴 것이다.




2장에서는 효과적인 공부 방법과 번역가로 입문하는 다양한 사례와 현직 출판 번역가들의 조언이 들어있다. 이중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소개해 보겠다. 먼저 조금씩 꾸준히가 중요하다고 한다. 열정이 앞서다 보면 처음부터 많은 양을 공부하다가 지치게 되고 몸과 마음에 무리가 따른다. 번역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는 것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는 스터디 모임을 활용할 것, ‘작은 목표를 설정하여 스스로 동기부여하기, 글에 대한 감수성 기르기, 독서를 통해 논리력을 높이기 등 번역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3장에서는 출판 번역가로 일을 하면서 그 결실인 원고료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크게 원고지 당 얼마로 결정되는 매절 계약과 인세 계약 두 가지가 있다. 일본어는 영어보다 단가가 낮지만, 번역 속도는 조금 더 빠르며,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는 영어보다 단가가 조금 더 높다는 차이도 알려준다.

 



4장에서는 실전 번역에서 유의해야 할 점 등을 신문 기사나 학생들의 번역문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직업병이라고 하듯이 번역가의 눈에 잘 띄는 것이 있기 마련인 것 같다. 베스트셀러는 가독성 있게 번역되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성경조차 가독성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책이라는 흥미로운 얘기도 한다. 사이사이 번역가 일기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유익하다. 번역가라는 직업의 세계와 일상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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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1-09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출판번역을 하시는 분이 쓴 책이네요. 번역도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다고 하고, 요즘에는 번역 에 쓰이는 전문 프로그램도 있다고 들었어요. 번역가를 지망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모나리자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4-01-12 11:50   좋아요 1 | URL
네, 같은 문학이라도 순수문학이 있고 판타지 등 세분화되어 있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정해놓고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번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궁금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1-10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다면 영어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그럼 글을 훨씬 잘 쓰겠지요. 번역가 출신의 작가들이 글을 잘 쓰죠.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작가, 왕은철 님 등.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가지고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까 하고 궁리하는 직업이니 문장과 낱말을 갖고 보내는 시간이 당연히 많잖아요. 궁리하고 또 궁리하면서 문장을 다듬는 시간을 가지는 직업. 부러울 따름입니다.
모나리자 님도 폼 잡고(키득~) 번역하실 때가 오리라 믿어요. 파이팅, 입니다.^^

모나리자 2024-01-12 11:5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러고 보면 작가 중에 번역도 하시는 분이 은근히 많은데 글도 잘 쓰는 작가들이지요. 정말 번역하려면 문장 하나로도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서 고심해야 하니 그런 훈련이 몸에 밸 것 같아요. 한번 도전해 보심도 좋을 것 같은데요.^^
네, 폼 잡고 번역하는 날 오면 좋겠어요.ㅎ 응원 감사합니다. 페크님.^^
 
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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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단어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유럽 여행도 그렇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고향이라는 프로방스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보랏빛 라벤더가 피어있고 푸른 하늘 아래 평화로운 풍경이 담겨 있는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책은 남프랑스의 한 도시에서 16년 동안 살았으며, 현재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재형 작가의 책이다. 이전에 쓴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에 이은 여행서라고 한다.

 



프로방스에 이렇게 많은 마을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아는 지명은 아를, 니스, 액상프로방스, 아비뇽 등 몇 개 되지 않았다. 역시나 예술가들이 사랑했다는 도시답게 그들의 발자취가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화가들의 삶 이야기와 작품들, 작가들의 문학 배경이 되는 장소, 영화 이야기 등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왼팔에 깁스를 한 채 떠났던 동유럽 여행이 떠올랐고, 언젠가는 온전한 유럽 여행을 꿈꾸고 있는 나로서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여행 기분으로 설렜다. 오랜 세월과 역사를 고스란히 지닌 건축물과 유적지의 풍경, 그들의 삶과 문화를 엿보면서 감탄했다. 인공지능이 어떻고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는 우리가 속한 현실과 달리 시간이 정지된 딴 세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프로방스 여행의 첫 동네는 아를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흐의 발자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여러 미술관과 자주 보아 익숙한 고흐의 대표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두 번째로 마르세유는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 살던 포카이아 사람들이 건너와서 건설한 이 마을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 이탈리아인, 코르시카인, 베트남인, 캄보디아인 등 전 세계 사람들을 받아들인 도시이며 이렇게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프랑스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조화롭게 결합시킨 곳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중 작가는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 동네 르 파니에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존재하는데, 옛것과 새것이,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큰 것과 작은 것이 공존하는 진정한 의미의 동네이기 때문이라나. 또한 마르세유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되는 이프성에 대한 이야기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행복주택단지 얘기도 나온다. 지은 지 7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매년 전 세계 6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다고 한다. 단순한 건축물을 지은 게 아니라 거기서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며 멀리 내다볼 줄 아는 건축 철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부실공사로 인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떠올라 그들의 삶의 철학이 부러워졌다.

 


에즈 마을 안.



니체의 산책로가 있다는 에즈 마을,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마을 골목길의 모습에 감탄했다. 뻥뻥 뚫려 속도를 낼 수 있는 길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정겨운 골목길도 많이 사라졌다. 널찍하고 똑바른 길이 편리하겠지만, 골목길은 골목길나름의 매력이 있다. 에즈 마을의 골목길 모습을 보면서 더욱 설렘으로 다가왔다. 또 가죽의 도시에서 향수의 도시로 거듭난 그라스(Grasse) 마을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라스는 중세 때 최고 품질의 가죽을 생산하여 유럽 전역에 수출하던 가죽의 도시였다. 그런데 16세기 그리스의 가죽 장인 갈리마르는 가죽으로 만든 제품에서 지독한 악취가 났기 때문에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향을 입혔는데 이를 계기로 향수의 도시로 바뀌게 된다. 향수는 베르사유궁에서 널리 사용되었다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궁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지독한 악취를 풍겼는데 그러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향수를 썼다는 내력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르 파니에 마을.



이 밖에도 기원전 3세기의 로마 다리인 쥘리앵 다리가 있는 보니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고르드, 건설된 지 2천 년이 넘었다는 퐁튀가르 다리와 중세가 살아있는 교황의 도시 아비뇽의 건축 이야기와 내력을 읽다 보면 어느새 프로방스 여행은 마무리된다. 또 여행을 가면 빠질 수 없는 그 지역만의 먹거리와 축제 등 즐길 거리 정보도 소개하고 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 프로방스, 우선 책으로 만나게 되어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순한 여행책이 아니다.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아직도 그곳에 살아 숨 쉬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프로방스 여행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풍성한 정보와 함께 기분 좋은 설렘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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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로자 아줌마가 매월 말 받는 우편환 때문에 나를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쯤에 그사실을 처음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또 울었다. 그것은 내생애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 P10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내게 뭐라 딴죽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내가 아랍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학교에 가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싸우지 않았다. 누군가를 때리는 일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 P13

처음에 나는 그녀가 나를 잘 구슬려서 달걀을 도로 찾으려고그러는 줄 알고 호주머니 깊숙이 든 달걀을 더 꼭 쥐었다. 그녀는 벌로 나를 한 대 갈겨주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 엄마들은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서서 진열대로 가더니 달걀을 하나 더 집어서 내게 주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한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맛보았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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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진실. 이 오래된 문제가 다시 등장하여 우리를괴롭히는 것이다. 로라 라이딩은 그 둘 사이에서 자신의 시작행위를 희생시켰다. 그는 자신이 그 오래된 문제에 답변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나, 과연 그랬는지는 논쟁의 대상이다. 우리의 손에 남은 것은 그가 남긴 시들뿐이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움 때문에 그것들에 마음이 끌린다. 로라 라이딩을태만한 시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확고한 원칙에 입각하여그런 태만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약 40년의 부재 끝에다시 등장한 이 시들은 고고학적 기적의 힘으로 우리를 강타한다. 마치 시간의 모래밭에서 새롭게 발굴된, 저 오래전에 실종된 도시처럼. - P74

 독일에서 그는 릴케와 트라클의 동급으로 여겨지고횔덜린의 형이상학적 서정성을 계승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다른 곳에서도 그의 작품은 높이 평가되는데, 조지 스타이너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첼란은1945년 이후 유럽의 주요 시인 중 한사람이다. 하지만 첼란은아주 읽기 어려운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조밀하면서도 불투명하다. 그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특히 후기 시는 너무나 격언적이어서 여러 번 거푸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주 지적이고 현기증 나는 언어의 힘을 구사하는 첼란 시 - P83

는 페이지 위에서 폭발적인 힘으로 튀어 오르고, 따라서 그의시를 처음 읽는 사람들은 아주 인상적인 경험으로 그 만남을기억하게 된다. 가령 홉킨스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끼는 기이하면서도 흥분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 P84

추방으로 인해물 뿌려진 이름들과 함께.
이름들과 씨앗들과 함께,
당신의 고귀한 피로 가득찬 꽃받침 속으로,
게토-장미의 꽃받침 속으로가라앉은 이름들과 함께,
그 장미로부터 당신은 우리를 바라본다아침 심부름으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죽었으되영원히 죽지 않는 당신은.
ㅡ 왕관을 쓰고Hinausgekrönt」 중에서


전후에도 첼란의 삶은 불안정했다. 그는 심한 박해감으로고통받았고, 그 영향으로 만년에는 반복해서 신경 쇠약에 시달렸다. 결국 1970년에 더는 못 견디고 센강에 투신 자살했다. 첼란은 짧은 창작 기간에 수백 편의 시를 써내면서 슬픔과 분노를 토로했다. 첼란 시처럼 분노하는 시는 없으며 첼란 시처럼씁쓸함의 기억이 강하게 침투된 시도없다. 첼란은 과거의 괴룡(怪龍)과 계속 대결을 벌였고 결국에는 괴룡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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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목적과 방식의 일관성이다. 애초부터 로라 라이딩은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알았으며, 자신의 시를 독립된 서정시가 아니라 거대한 시적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읽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아닌지 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바람이 아니다.
집 없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우리를 유혹하는
변덕스러운 기분이 아니다.
우리는 더 잘 분간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낯선 자들을
우리가 아닌 것들이 많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굳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 바람의 이유The Why of the Wind」 중에서 - P61


 추상적 개념을 로라처럼 잘 다루는 시인도 없으리라. 장식이 전혀 없고 앙상한 본질만 내세웠으므로 로라의 시는 일종의 수사법, 혹은 음악처럼 흘러가는 순수 논증으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주제와 반주제의 상호 작용을 창출하고 음악이 주는 것과 같은 형태적 기쁨을 준다.


그리고 대화 중의 대화는 시간 속의 시간처럼 사라진다.
둔탁한 가정(假) 위에 변화의 종을 울리며.
대화에 대화가 이어지고 더는 할 말이 없게 된다.
영원한 독백인 진리만 남는다.
그 어떤 대화자도 진리를 부정하지 못하고,
진리는 진리만이 부정할 수 있다.

「말하는 세계The Talking World」중에서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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