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 상태,
얼어붙은 채로 그렇게 동작을 멈추고 몸이 녹기를, 잠에서 깨어나다시 살아가기를 기다리는 상태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불행은 내가 끌고 가야 할 썰매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를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 그 썰매를 끌면서 곰곰이 살폈다. - P42

어머니는 나를 당신의 거울로 생각했지만, 거기에 비친 모습이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거울을 탓했다. 서른 살 때, 종종 분노에 차서 쓰기는 했지만 거의 보내지는 않았던 편지 중 하나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을 비춰 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거울이 아니고, 엄마 눈에 결점으로 보이는 것들도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 P42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 환경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며, 그 감정과 그 감정을 낳은 잔인한 이유를 알아보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느끼는 일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기다린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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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상처를 어떻게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 주는지 나는잘 안다. 이야기를 하는 이는 물 긷는 장치에 묶인 낙타처럼 계속원을 그리고 돌면서 부지런하게 비극을 길어 올리고, 매번 다시 이야기할 때마다 그때의 감정도 되살아난다.  - P39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내 삶에 분노를 쏟아 냈다. 그녀는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일에서 기쁨을 찾았고, 모임에서 나를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에 몰두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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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툰드라나 얼음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살아가기 위해 폭력이나무감각으로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는 것을 정당화하고 삶의 실패를 변명하기 위해. 그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는 이야기이자 무너뜨리는 이야기, 익사시킨 이야기, 정당화하는 이야기, 고발하는 이 - P13

•야기, 행운의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이야기 혹은 냉•소로 뒤덮인 이야기이다. 이때 냉소는 꽤나 우아해 보이기도 한다. - P14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이야기가 우리를 올라탄다. 그렇게 올라타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면,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따른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 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술탄에게 죽임당한 숫처녀들은 술탄의 이야기 안에 있었다. 셰에라자드는 노동자들의 영웅처럼, 생산수단의 통제권을 쟁취한 다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었다. - P15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왕성한 정신으로 지식을 쌓아가는 반면, 인생의 반대쪽 끝에 있는 이 단계에서는 그 지식들이 해체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인 만큼, 두 단계는 다르다. 

나는 어머니가 뜯어지는 책 같다고 생각했다. 책장이 날아가고, 문단이 뭉개지고, 단어가 흘러내려 흩어지고, 종이는 순수한 흰색으로 되돌아•간다. 가까운 기억이 먼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더해지지는 않는•뒤에서부터 지워지는 책. 어머니의 말에서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 - P24

하며, 텅 빈 자리만 남았다. - P25

동화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 문제에 휘말렸다가 그것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문제 상황은 무언가 되어 가는 여정에서 꼭 거쳐야만하는 단계인 듯하다. 

 대부분의 이야기에 담긴 핵심은 역경에서 살아남는 일,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일이다. 어려움은 늘 필수 사항이지만,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는 건선택 사항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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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했던 패주를, 기구치는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귀환 후에도 전쟁의 기억을 거의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귀환해서 아내와 어린 자식들과의 생활이 시작되자,
그는 이따금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길 없었다.  - P134

예전의 온순했던 기구치를 알고 있는 아내는 너•무도 변해 버린 남편을 그저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 P134

그 자신도 어쩔 줄을 몰라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신음하며 울었다. 눈꺼풀 위에는 시체가 즐비한 그
‘죽음의 거리‘와 구더기가 코와 입 언저리를 스멀스멀 기어 다나는 아직 살아 있는 병사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는 그러한고통을 완전히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재판하려는 일본의 ‘민주주의‘나 ‘평화운동‘을 마음속 깊이 증오했다. - P135

"난 말이제, 전쟁에서 돌아온 뒤로, 기구치 씨처럼 사회생활도 변변히 꾸려 나갈 수 없었다니께. 술이라도 안 마시면 속이갑갑한 기라. 내 맘 이해하겠지?"
이런 대답을 들으면, 그 처참한 지옥을 함께 체험한 기구처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 P137

암담한 심정으로 진료실 창문을 응시했다. 그 ‘죽음의 거리‘
에서 구더기한테 파먹히면서 죽어 간 동료 병사들을 생각하면, 기구치는 자신과 쓰카다의 지금 인생은 여생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렇듯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전•우인 쓰카다가, 체력이 다한 자신을 버리지 않은 덕분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쓰카다를 도와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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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 하, 하."
구관조가 웃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겁쟁이인 그를 조소하는 웃음 같기도 하고, 격려하는 웃음 같기도 했다. 누마다는병실의 전등을 끄고, 지나온 인생에서 진정으로 대화를 나눈것은 결국 개나 새뿐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神)이 무언지알 수는 없지만, 만약 인간이 진심으로 이야기 나누는 대상을신이라 한다면, 누마다에게 신은 때때로 검둥이이거나 코뿔소새이거나 이 구조였다. - P121

그 깃털을 보고 있으려니, 매일 밤 그의 불평올, 힘겨움을 들어 준 새가 죽었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돌연 누마다는 그 구관조에게 "어떡하면 좋으니?" 하고 소리쳤을 때의 제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 녀석………… 내 몸을 대신해 준 건가.)거의 확신에 찬 심정이 수술한 가슴에서 뜨거운 물처럼 솟구쳤다. 자신의 인생에서, 개와 새나 그 밖의 살아 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그를 지탱해 주었는가를 느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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