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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은 왜 우울할까 - 장내미생물은 어떻게 몸과 마음을 바꾸는가
윌리엄 데이비스 지음, 김보은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4월
평점 :
참 굉장한 책이다. 그동안 장 건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책은 그 결정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건강지식과 정보를 알게 되어 유익한 독서가 되었다. 저자 윌리엄 데이비스는 저명한 심장병 예방학 전문의이자 250만 부 이상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밀가루 똥배』를 썼다. 이 저서로 인해 ’밀가루똥배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신드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세상사 모든 게 다 그렇겠지만 건강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도 고정불변의 법칙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예를 들면, 지방과 포화지방 섭취를 줄이고 식단의 중심에 ’건강에 좋은 통곡물‘을 두라는 건강한 식단에 관한 수많은 현대적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믿어왔던 건강상식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얘기가 아닌가. 또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이란 인간의 ‘위장관에 거주하는 건강한 미생물 종’을 의미한다고 한다. 단어를 검색해보니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단체, 유산균을 판매하는 쇼핑몰 등 다양한 사이트가 나왔다.
본문 내용의 구성은 1부 우울한 장, 2부 프랑켄슈타인 장, 3부 상쾌한 장, 4부 상쾌한 장 만들기 4주 프로그램을 다루고 있다. 전에 읽은『염증 해방』에서 저자 정세연은 장에 상주하는 균을 ’반려균‘이라고 하면서 면역 균형을 찾고 염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반려균을 잘 먹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더 나아가 우리 몸속에 있는 장내 미생물이 우리의 건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심지어 우리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까지도 담고 있다. 4부의 ‘상쾌한 장 만들기 4주 프로그램‘ 에서는 발효식품이나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음으로써 장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레시피가 소개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연상태에 가까운 통곡물을 자주 먹으라는 얘기를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의 저서 『밀가루 똥배』를 언급하며 ‘밀’이라는 식물이 어떻게 개량되었는지 되짚는다. 본래 150cm 높이의 식물이었던 밀이 수천 번의 유전학 실험을 거쳐 45cm 높이의 두꺼운 줄기와 굵직한 낱알을 가진 작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고 개발도상국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했으니, 식욕 촉진부터 측두엽 간질, 지루, 셀리악병의 400% 증가 등 당뇨병 1형 및 2형이 흔한 병이 되었다. 이런 영향을 미친 결과가 너무 파괴적이고 비정상적이라서 저자는 밀을 ‘프랑켄슈타인 곡물’이라 부른단다.
장은 ‘제2의 뇌’라고 한다. 장이 건강해야 뇌도 건강하고 건강한 심신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건강한 장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저자는 식단에서 프랑켄슈타인 곡물을 빼면 건강 측면에서 삶을 바꿀 만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밀가루똥배공동체의 경험과 수십 년 동안의 관련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우울증, 사회적 고립감, 증오, 불안, 주의력결핍 과다활동장애 등의 일반적인 정신장애와 심리 문제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붕괴 탓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비만, 자가면역질환, 신경퇴행성질환처럼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질환도 인간의 횡경막 아래 거주하는 미생물군에 일어난 변화 탓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한다. 수렵채집인이었던 조상은 물론 불과 50년 전 조상의 마이크로바이옴조차 현대인의 마이크로바이옴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과연 식재료 가공 방식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먹거리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과민성대장증후군, 변비, 궤양성결장염, 크론병, 다낭성난소증후군, 결장암 등 우울증과 절망감, 사회적 고립감, 자살 충동까지 진짜 건강 공포는 프랑켄슈타인 장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구강에서 항문까지 9m의 위장관은 수많은 세균과 진균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과다증식을 일으키면서 점액을 줄이고 점막을 분해하면서 장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유해균과 유익균의 비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유해균이 더 많은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특히 결장은 보호 점액이 두 층 인데, 소장 점액은 단층이어서 더욱 손상되기 쉽다고 한다. 참고로 점액층은 위장관 속에서 나쁜 미생물과 맞서 싸우며 우리를 보호하는 방어선의 최전방이라고 한다. 이런 결과가 된 것은 비단 곡물 섭취만의 이유는 아니다. 제초제 살충제 각종 항생제, 위산과다 억제제 등 약의 남용도 장내미생물 균총을 붕괴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장내 상황을 어떻게 회복시킨다는 것일까. 위장관에 사는 세균의 주요 먹이는 ‘프리바이오틱스 섬유소’라고 부르는 특별한 형태의 식이섬유라고 한다. 인간에게는 프리바이오틱스 섬유소를 분해하는 소화효소가 없지만, 세균은 프리바이오틱스 섬유소를 대사해서 화합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이것은 인간 장벽(腸壁) 세포의 영양분이 된다. 하지만 프리바이오틱스 섬유소 공급이 줄어들거나 없어져 힘든 시기가 닥치면 일부 세균 종은 인간의 점액을 먹어 치우면서 점액층을 얇게 만들어 숙주인 인간의 건강을 해치고 심각한 합병증을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책에서 보았던 장누수증후군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인간은 장내미생물과 조화롭게 공생할 때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과 과학의 발달이 첨단을 달리고 있음에도 옛날보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생하거나 희귀병도 늘었다.
하지만 인체는 자연치유력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고 저자가 상쾌한 장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알려주는 상쾌한 장을 위한 든든한 지원군을 소개해 보겠다. 비타민D, 올리브유, 오메가3 지방산, 아이오딘, 플라보노이드와 폴리페놀, 허브와 향신료, 캡사이신, 커큐민, 베르베린 등이다. 비타민D가 결핍되면 장 점막이 약화되는 것을 시작으로 면역반응이 손상되고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이 해로운 장내세균 쪽으로 기울어져 급기야는 소장세균 과증식을 일으킨다. 프리바이오틱스 섬유소를 매일 20g 이상 먹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말한다. 프리바이오틱스 섬유소가 함유된 식품은 아스파라거스, 당근, 히카마, 리크, 순무, 민들레 잎, 파스닙, 래디시, 양파, 양배추, 마늘과 샬럿, 방울다다기양배추 등이다.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고 참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지방을 제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건강법이어서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어떤 책에서는 베이컨이 최악의 식품이라고 했는데 저자의 레시피에는 포함되어 있고, 껍질과 뼈를 제거한 닭고기는 사면 안 된다고 말한다. 또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면 세균 종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인간의 점액을 섭취하는 아커만시아 같은 세균 종의 과증식을 촉진하는 등 부작용이 생긴다고 한다. 상쾌한 장을 위한 요구르트를 잠깐 소개해 보겠다. 부드럽고 촉촉한 피부를 원한다면 락토바실루스 루테리를 넣어 요구르트를 만들면 된다. 염증을 줄이고 관절염 통증을 감소시키는 바실루스 코아귤런스 요구르트, 불안을 줄이고 기분을 북돋우며 우울증 회복에 도움이 되는 요구르트와 근육량과 근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요구르트도 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 도움이 되고 사람의 감정에까지 미생물이 관여한다니 놀라웠다.
사람의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건강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건강에 관한 지식과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밀가루 음식을 빼고 나면 먹거리가 상당히 줄어들 만큼 밀은 우리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서구식 식생활로 인해 젊은층의 대장암이 늘었다는 기사 등을 보면 어떻게 장내미생물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 건강이 뇌의 건강이고 온몸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