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 환경부 2018 우수과학도서 선정, 국립중앙도서관 2018년 휴가철에 읽기 좋은 도서 선정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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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우리 시대의 소로’, ‘현대의 시튼으로 평가받는다는 문구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은 나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난 10월 초, 묵은 숙제 같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고도, 아직도 잔물결 같은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든>이 자연주의와 참다운 인생의 길을 제시한 책이라면, 이 작품은 생물학자인 저자가 자연 속에서 살면서 투철한 직업의식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탐사 기록이라 할까. 실제로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메인주는 미국에서 가장 큰 삼림지대이며, 소로와 니어링 부부 등 많은 자연주의자들이 사랑했던 지역이었다. 늘 마음의 고향인 그 메인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이 본능적으로 특정 장소를 찾는 현상을 마주하면서 깊은 과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지난 날 살던 곳이 궁금하거나 그리워서 찾아갔던 적이 있을 것이다. 고향은 말할 것도 없고, 고향이 아니더라도 어떤 특별한 추억이 깃든 곳이라면 살아가는 내내 마음속에 다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신혼 살림을 살던 여수에 다녀온 적이 있다. 거기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 고향에서는 볼 수 없는 깨끗하고 푸른 바다가 있었고, 정겨운 이런저런 추억이 많았다. 시립합창단원 이었던 남편의 공연을 보러 갔던 일,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 음악 감상을 하러 갔던 기억,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동백꽃과 운치 있는 향일암이 있다. 우리 큰 아이가 생후 2개월쯤 되었을 때 이사를 왔다. 우리 가족이 동해안 여행을 하는 중에 들러본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그대로 있었고, 아이들도 신기해하였다. 이처럼 삶에 켜켜이 주름진 추억들이 우리를 부르는 건 아닐까 싶다.


 저자도 소로의 삶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을까. 소로처럼 메인주의 숲에 오두막을 짓고 곤충들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들이 있는 자연 속에 온 감각을 기울인다. ‘귀소성을 주제로 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던 중 고향이나 귀소성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여기던 것이 이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된다. ‘귀소성이란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그렇게 찾아낸 곳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만들고, 떠나갔던 보금자리를 찾아 되돌아오는 능력이라고 한다.


 1부는 태어난 곳, 옛집으로 귀향하다, 2부는 동물들이 집을 짓고 가꾸는 법, 3부는 왜 회귀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있다. 곤충이나 조류 등 여러 동물들의 귀향의 여정을 보여준다. 캐나다두루미 부부, ,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제왕나비, 큰흰배슴새, 큰뒷부리도요, 정원솔새, 1만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거쳐 20년이 지나서 자기가 태어난 해변 근처로 되돌아온다는 붉은 바다거북 등 여러 사례를 보여준다. 밀폐된 상자에 넣어 기차와 비행기로 운반된 큰희배슴새는 어떻게 영국에 있는 자기 둥지로 돌아왔을까 놀랍기만 하다.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먹이는커녕 물도 안마시고 잠도 안자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비행한다는 큰뒷부리도요는 비행을 마쳤을 때 체중은 처음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렇게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릅쓰고 귀향하는 새들의 욕구와 몰입은 어떤 이유일까, 경이로움 그 자체다.


 새들이 떠나는 궁극적인 이유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는 환경적 조건 때문에 이동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고 행동 또한 여기에 맞춰 진화하며 적응해 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간과 오랫동안 친숙한 비둘기는 귀소성의 수많은 양상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으며, 집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하다. 제비도 마찬가지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젖은 흙과 지푸라기 등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조합하여 어쩌면 그렇게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모양 또한 예술이다. 이 책에서도 동물의 집짓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러 곤충과 새들의 둥지 그림을 보여주는데 마치 예술품처럼 정교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보통 동물의 집과 집짓기 행위는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특징일 텐데도 동물의 행동양식을 주제로 한 책 중에는 집짓기를 언급한 사례가 지극히 드물다고 한다.


 오랜 세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방송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 생각난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탐구정신으로 카메라에 포착된 실감나는 생생한 영상. 이 책 또한 저자의 세밀하고 집요한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함께 동거하며 관찰했던 헛간거미 샬롯에 대한 애정을 말하는 데는 웃음이 난다. 천생 생물학자다. 현대는 자신이 나고 자란 보금자리에 대한 정서적 유대는 느슨해지고 그 대용품에 대한 유대관계는 강화되는 경향이 있고, 옛날보다 자신을 키워준 지구에 막대한 해를 끼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새의 둥지는 상당한 비용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소중한 재산 목록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둥지는 암컷을 두고 경쟁하는 혼수품이 되기도 한다.’(P178) 이처럼 집이란 대상은 동물의 세계나 인간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행복과 생존을 위한 본능, 귀소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선천적인 방향정위 능력의 부족은 인간이 집에 머무는 걸 좋아하도록 진화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집이란 과거에 대한 이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계획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은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기억과 감정을 갖는 능력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메리카딱새가 겨울나기를 위해 떠나기 전 유난스레 울던 날,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두고 그곳을 기억에 저장하면서 이듬해 봄 둥지를 틀기 위해 되돌아왔을 때 기억이 되살아나기를 갈망하는 듯한 기억과 감정을 엿보았다는 저자. 자연에서의 삶의 기록이 시적인 문장으로, 유려한 필체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사슴 사냥을 통해 얻는 기쁨, 놀람, 죄책감이 있는 슬픔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주변에 흔한 거미줄을 보면 이제는 예사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미관상 좋지 않다고 마구 걷어냈던 행동이 좀 꺼려질 것 같다. 몰랐던 뭔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생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여행을 통해 실제로 얻게 될 소득은

                       다소 진부한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세상에 집만 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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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사상 - 현대의 고전을 읽는다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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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소개된 책은 사회학자인 저자가 제자에게 자주 추천하는 책들이며, 저자의 정체성 형성 및 학문 연구에 깊은 영향을 미친 현대 고전이라고 한다. 흔히 대학 교양강좌에서 다루는 고전의 목록과는 달리 현대의 고전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오늘날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와 제도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자리 잡았고, 전후 사회 원리와 제도를 분석하고 이러한 사회적 구속 아래 놓인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 현대 사상, 즉 현대의 고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으며, 삶의 의미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이 때 한 시대를 오롯이 담아 놓은 ‘고전’에서 나아갈 길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각 장의 구성은 Ⅰ.문학과 역사, Ⅱ. 철학과 자연과학, Ⅲ. 정치와 경제, Ⅳ. 사회, Ⅴ. 문화, 여성, 환경, 지식인 의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다. 나로부터 그를 둘러싼 사회, 환경으로 나아가는 거시적, 총체적인 시각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커다란 사회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조화를 이루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각 분야마다 작품을 소개한 뒤에 우리 한국 사회에 대입하여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것도 세상살이의 흐름과 더불어 당시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데 용이하다 하겠다. 총 40권의 책이 언급되어 있다.

 

 ‘문학은 크게 두 가지 미덕을 가지고 있다. 삶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생각을 안겨주는 게 하나라면,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다른 하나다. 이점에서 문학은 인문학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놓일 만하다.’(P21) 흔히 문사철, 즉 문학, 역사학, 철학을 인문학의 분야라고 말한다. 특히 문학은 현실에서 있을법한 이야기를 상상과 허구를 가미하여 엮어 놓은 것이라 우리는 쉽게 공감하며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저자의 이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저자는 여러 작품 중 조지 오웰의 <1984>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주목했는데, 그 까닭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는데 있었다. 전자가 현대의 그늘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으며, 오늘날 읽어도 생생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철학 분야에서 인상적인 작품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작품으로 인간과 세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아렌트 르네상스’라고 부를 정도로 전후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해 왔다고 한다. “이 세계에서 행위하며 살아가는 복수의 인간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구절은 복수의 인간들에게 ‘소통’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 준다.

 

 롤즈의 <정의론>이 주장하는 핵심은 사회제도의 제1덕목이 곧 ‘정의’이며,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정의에 목마른 현실을 살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널리 알려진 정치철학자는 마이클 샌델로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200만 권이나 팔렸다고 한다. 반면, 원본 출간이 미국에서는 10만 권 정도에 그쳤다고 하니 꽤 흥미롭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고 갈증이 심한 ‘정의’에 대한 반영이 아닐까 싶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단절의 시대>로 지식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다.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와 ’지식경제‘라는 핵심 용어로 주장한 그의 예측은 적지 않게 현실화 되었다. 그런 예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언젠가부터 새로 개발하는 지역에는 ’지식산업단지’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식사회로 가는 길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고전적인 산업사회에서 멀어져가고 제4차 산업 혁명으로 도래한다고 분분하다.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점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라는 유명한 언명(言明)은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예측한 것이다. 그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예는 2001년의 9.11테러였으며, 이슬람국가(IS)와 난민 문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도 모두 문명의 충돌로써 야기된 것이다. 지금 세상의 흐름을 보면 얼마나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 밖에도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 생태계의 위기를 설파하는 <침묵의 봄>, 페미니즘을 다룬 <여성의 신비>가 기억에 남는다. 후자는 ‘매력적인 아내와 훌륭한 어머니에 대한 이데올로기 또는 신화’로, 프리단은 가정이란 한마디로 ‘편안한 포로수용소’에 불과하다고 했다. 저자들의 사상은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으며, 한계에 부딪혀 악평을 받기도 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이런 일은 항상 존재한다.

 

  소개된 책 가운데 읽어보지 못한 책이 많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한 계기로 관심분야의 책을 선택하여 읽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본래 이 책의 출간은 2016년 <경향신문>의 요청으로 ‘세상을 뒤흔든 사상70년’을 연재했던 것을 토대로 하였으며 국내외 학계와 언론의 평판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고른 것이라고 한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만 읽는 편독의 경향이 있다. 철학은 어려워서, 등등 여러 가지 핑계가 있다. 지식의 확장이나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각 분야의 주제별 책읽기로 심화시키는 것이 절실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분명히 독자들의 그런 목적에 나침반 역할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떤 책이 있을까, 궁금하고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소개된 책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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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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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중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770()나라가 융족에 밀려 동쪽 낙양(낙읍)으로 옮겨온 시대부터 ()이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대략 55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 중 이 작품은 진시황 2(영호해)의 실정으로 혼란해진 진나라 말기부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의 영웅들의 피비린내 나는 각축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일전에 <전국칠웅>을 통해서 춘추전국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참혹한 전쟁으로 점철되었고, 다양한 인물 군상이 활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듯이, 이는 시대적 요구였다.


 열 한 권의 시리즈로 구성된 작품 중 맨 마지막 권인 이 작품은 역발산기개세의 항우와 유방의 불꽃 튀는 대접전 초한쟁패의 결정적 순간들을 담아 놓았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항우와 유방의 대결을 세세히 알게 되었다. 다른 역사서와 달리 저자의 의견과 해석이 언급되어 있는 점이 색다르다. 그는 관중이든 유방이든 옛 왕조 시대의 지도자들은 본질적으로 착취자들이라고 하면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이들은 무결한 成人(성인)들이 아니라 사리를 취하면서도 가끔 공익을 생각했던 사람들, 바로 次善(차선)의 인물들이라고 말한다. 이를 대변해 주듯이, 유방의 성품은 오만방자했다고 한다. 법을 어기는 것도 부지기수였고. 반면, 신의가 있고 실질을 숭상했으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 유방에게는 인재가 많았다. 살림꾼 소하, 번쾌와 조참, 판세를 읽을 줄 아는 장량과 역이기, 또 소하의 간청으로 천하의 명장 한신이 들어온다. 한신의 출병으로 조와 연을 장악하고, 역이기로 하여금 제를 항복시키는데. 승승장구하는 장수 옆에는 항상 이를 시기하는 자가 있다. 책사 괴철의 꼬드김에 넘어간 한신은, 이미 항복을 받은 제를 공격하고, 애꿎은 시기는 역이기를 죽게 했으며, 왕으로 봉해 달라는 속내를 내보인다. 이로써 한신은 유방에게 불신의 씨앗을 남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항우는 질투심이 강하고 의심이 많으며, 성품이 포학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화가 나면 더욱 통제하지 못하고 사람 죽이는 것을 밥 먹듯 하였다. 맹약을 어기고 의제를 시해했으며, 신안에서 항복한 진의 병사 20만 명을 파묻었다. 이 들 다수는 여산의 형도였거나 노비의 자식들로서 군공을 세워 양민이 되어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사람의 마음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는 진리를 가벼이 여긴 항우의 만행은 관중 사람들과 철천지원수가 된다. 공이 있으면 기억하지 않으면서 죄가 있으면 잊지 않고 원한을 갚는 등 상벌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위나라 위문후 때, 오기와 상앙이 떠났듯이 인재는 떠나기 마련이다.


상앙의 철저한 법가(法家)적 설계를 바탕으로 최초의 천하 통일을 했던 진()은 왜 망했을까. 가의는 진의 잘못을 이렇게 꾸짖는다.


(중략) 천하를 한 집으로 아우르고 효산과 함곡관을 궁으로 삼은 진이 일개 필부가 난을 일으키자 7대의 묘당이 무너지고 마지막 황제는 남의 손에 죽음을 당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왜 그랬던가? 어진 마음으로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요, 공격할 때와 지킬 때의 형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진은 전국을 통일하고 천하의 왕 노릇을 하면서도 전국시대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그대의 정치를 바꾸지 않았다.”


 오랜 전쟁으로 지친 인민들을 아낄 줄 몰랐고, 윗사람은 도리를 버렸으며 의심했다. 의심은 배반을 낳고 그렇게 안에서 무너진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으면 그 각오에 맞게 마음가짐도 바꾸어야 하는데, 옛날의 나쁜 버릇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썩을 대로 썩은 악습과 폐습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을 백성이 그냥 두지 않는다. 봉기를 일으켜서 세상을 뒤집는 것이다.


 함양에 입성한 유방은, 진의 가혹한 법에 시달린 백성을 위하여 유방은 약법삼장을 선포한다. 이는 한나라 400년의 기반이 되었으며 당대 인민들의 염원을 대표하는 표어였다. 진의 지배 세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흡수했으며, 점령자 보다는 해방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항우와 대비되는 유방의 관용을 베풀었다. 진을 무너뜨린 주역은 항우였지만, 새 시대의 주역은 유방이다. 이렇게 유방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 방식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버림으로써, 그 감화(感化)로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중략)내가 천하를 얻고 항씨가 천하를 잃은 까닭이 무엇인가?”라고 유방이 묻자, 고기(高起)와 왕릉은 폐하는 군공을 세운 자에게 이익을 같이 했지만, 항우는 능자를 시기하며 공이 있는 자를 해치고 현명한 자를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유방은,


공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대저 군막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일이라면 내가 자방보다 못하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독여 군량을 공급하고 양도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내가 소하만 못하다. 100만 병력을 운용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하는 바는 내가 한신보다 못하다. 이 셋은 모두 인걸이나 내가 능히 쓸 수 있었기에 천하를 취한 것이다. 항우는 범증 하나가 있었으나 그마저 쓰지 못했으니 나의 포로가 되었다.”(P253)고 대답한다 유방은 출신을 묻지 않고 남의 험담에 솔깃하지 않았으며, 제환공의 풍모를 갖고 있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평민 출신이었던 유방의 대담한 성격과 포용력이 좋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혼자서 모든 정치를 맡아서 해낼 수는 없다. 또 도덕적으로 고결한 인품만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와 더불어 전문가의 혜안과 결단력을 갖추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 있는 인재등용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이는 그의 수하들이 아니라 유방 자신이었다는 것.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범이란 다수의 마음이고 절대 다수는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유방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갖춘 위대한 인물이었다. 맨 마지막 장의 법으로 본 진()과 한()’의 본질적인 차이를 진한(秦漢) 제국의 법제사를 다루는 논문들의 예를 언급하며 비교분석하는 부분도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상상과 허구를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은 아니다. 한서,고제기등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적 사료와 철저한 고증과 더불어 저자 관점의 해석으로, 기존의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장점이 이야기 속으로 파고드는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군데군데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보이는 것도 아쉬움이다. 이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 7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춘추전국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삶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세월은 흘렀어도 고래(古來)의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은 외관만 조금 달라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가혹하고 지난한 역사 속에서 인생을 읽어내는 단초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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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장정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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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서문-)고 말하는 『장정일의 공부』대한민국 10만 인을 공부시킨 우리 시대 인문학 고전이며, 출간 10주년 개정판이라고 한다. 늦게라도 자신의 ‘무지’를 되새기며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다. 우리에게 흔한 말이 된 ‘중용’이라는 단어를 대충 편하게 와전시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를 들면, 모를 때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라는 말로 합리화시키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그냥 모르는 것을 시인하기 싫어서 감추기 위한 장치로 둔갑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많은 그의 저서들이 나왔지만, 왠지 강한 인상의 얼굴에 선뜻 다가서는 것이 쉽지 않아 처음 읽게 되는 장정일 작가의 책이다. 역시 입담이 세다. 거침없고 후련하다고 할까. 우리가 이미 겪은 IMF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생각지 못한 쪽의 시선으로 파헤쳐 드러낸다.


 이 책을 통해 박노자(귀화한 러시아인)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불편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이라고 한다. 그는 '난 한국인'이고,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실험정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흔히 사이비 종교로 치부하는 여호와 증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살인을 하지 마라든가 종교적인 이념의 실천(?)으로 수감 중인 사람이 60년 건국 이래 1만 여 명이었다는데. 국민의 4대 의무에 속하는 병역의무에 대한 법률을 개정하지 않는 한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옳다는 것을 어떤 원리로 설명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또 ‘군대 문제는 사회 문제다’는 사안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대체복무의 문제, 복종과 폭력으로 규제된 군대를 개혁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박노자는 “한국 지배층이 그래도 징병제를 신성시하고 성역화 하는 것은, 그들이 ‘노동력의 질’보다 ‘노동력의 충성심과 맹종’을 더 중시”(『당신들의 대한민국』)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군대에서는 전쟁을 치르지 않는데도, 연간 수백 명씩의 장병이 죽는다. 2000년도 국정감사에 의하면 매년 300여 명이 사망하고 그 중 100여 명이 자살했다. 매년 사고사, 의문사, 자살, 구타와 정신병으로 죽거나 다치는 숫자가 소규모 전쟁터에서 죽는 숫자보다 더 많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자료도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잊을 만하면 들리면 군인의 사망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깝다.

이러한 국가주의의 전횡을 당연시하는 한국인의 속성과 함께 그가 한국에 와서 받은 충격 가운데 하나는 유럽 사회나 러시아 지식인들이 당연시하는 비판적인 사회의식을 가지려면, 이 나라에서 ‘운동권’이라는 일종의 ‘반란자’ 대열게 속해야만 한다는 낯선 현실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우리 사회에 익숙하게 젖어들어 외면하거나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관점이 오히려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는 점에 놀라기도 한다. 어쩌면 저자가 서문에서 꺼낸 ‘중용’이라는 것에 타성적으로 빠져 사는 건 아닌가 싶다. 정작 잘 모르거나,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무신경함으로써 중용을 지키는 삶을 살지는 않았을까.


 다양한 책을 읽은 독후감의 소견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단순한 주제만은 아니다. 교육, 군대문제, 조선 최고의 당쟁가 송시열,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의 군사적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레지스탕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입을 빌어 “이 세상은 새로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에 집착하는 나른한 사고방식에서, 프랑스의 군사적 패배가 야기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부르주아와 노동 계급의 반목, 정치에 대한 반감도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개인들의 의식의 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라고 묻는 ‘심성’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 국가에 대한 더 깊은 사유로 안내한다. 이렇게 사회 구성원의 ‘심성’을 만드는 수단은 “가치 체계의 합리적 변화”로 이끄는 교육이 자연스럽게 도마 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왕조시대에 약소국들의 일상이었던 ‘조공’이 지금도 행해지는 것을 알고는 놀라웠다. 바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행태이다. 미국이 참전하는 각종 전쟁에 군비를 각출하기, 미제 무기구입하기, 아랍의 석유 생산 지역을 미국의 통제권에 맡기고 미국의 다국적 석유 기업의 지위 인정하기, 달러를 세계의 기축 화폐로 인정하기 등이 전 세계로부터 거둬들이는 현대판 ‘조공’이라는 것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통해서 안정적인 부를 축적한다는 것이다. 사회, 문화, 정치적 현상의 분석을 통해서 사회를 알아야 할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철학자 하이데거는 왜 나치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은 철학적 사유의 필요성을 안겨준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모르고 넘어갈 뻔 했던, 조봉암을 둘러싼 이승만 정권의 권력을 위한 암투가 지저분하게 얼룩진 우리의 정치 현대사도 알게 되었다. 수동적으로 알았고 세뇌되었던 고정관념을 깨주는 통찰력 있는 시각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언어학자로 알고 있던 촘스키가 실천하는 양심의 지식인이면서 이름난 반미주의자라는 사실도 경이로웠다. 진정한 공부란, 진정한 책읽기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으로 시야를 넓혀주는 공부다.


 “나이 50 이전까지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 대자 나도 따라 짖어 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 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는 『분서』(焚書)의 저자이자,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이탁오의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이 짧은 글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는 장정일 작가. 우리 대다수도 멋모르고 남을 따라 휩쓸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 지 돌아다 볼 일이다. ‘왜?’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다지며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가 절실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의미 있는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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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칠웅
리산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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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전국시대, 중국 역사상 ‘대분열’과 ‘대통합’을 아우르며 나아가는 과정이며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때보다 거의 40년 전 진나라와 조나라의 장평(長平) 전쟁까지의 시기를 담고 있다. 춘추시대에는 모두 140여 개의 제후국이 있었는데,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몇 개의 약소국을 비롯한 일곱 개의 큰 나라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魏) 진(秦) 이 패권을 두고 겨루는 형국이 된다. 기원전 5세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시기다. 지금으로 보면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이 시기는 중국 2천여 년의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의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에 ‘중요’하고, 중국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와 비교할 때 ‘특별’함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집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 이전의 역사는 신권(神權)에 의지한 정신적인 힘으로 통치했으며, 부모 형제간의 기본적인 인륜이 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전국시대에서는 이러한 총체적인 사회 구조가 무너졌다. 전국시대는 권모술수와 속임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였으니 그야말로 인간지옥이었다. 또 전쟁 법칙의 변화와 새로운 인물의 등장도 전국시대의 특징이다. 춘추오패는 싸움을 벌여도 기본적인 예의(禮義)를 지켰는데, 전국시대의 원칙은 직계가 방계를 제거해야 했고, 주먹의 원칙으로 포악한 자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출신 성분이 아닌 자신의 재간을 바탕으로 집안을 일으켰던 책사(策士)들의 활략이 두드러짐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은 소진, 상앙, 오기, 장의 범저 등이다. 그들은 변법을 주관하며 군사적 투쟁을 이끌고 종횡가로서 유세를 벌이며 계책을 내놓기도 했다.

 

 전국시대는 삼가분진(三家分晋)과 전진찬제(田陳纂齊)라는 두 사건으로 구분 지으며, 그 기점은 기원전 453년이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비교한다면, 전자는 ‘혼란’, 후자는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전국시대는 ‘변화’와 ‘혼란’이 공존했다. 삼가분진(三家分晋)은 진(晋)이 한(韓), 조(趙), 위(魏) 세 나라로 갈라진 것이다. 전진찬제(田陳纂齊)는 진(陳)나라에서 제나라로 망명한 공자(公子) 완(完)은 전씨(氏)로 불렸고, 이 완(完)의 후손이 제나라 왕의 자리를 빼앗은 사건이다. 이 두 사건에 써 먹었던 수법의 공통점은 ‘큰 말로 빌려주었다가 작은 말로 되돌려 받으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며 정권을 찬탈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환심 사기’였다. 어르고 달래고 백성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손에 쥐고 나서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져 거둬들이는 것이다. 당시 공교롭게도 위나라를 거쳐, 제나라에 갔던 맹자가 본 것은 ‘들판에는 굶어죽은 이들의 주검이요, 마구에는 토실토실 살진 말’이었다 하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칠웅 가운데 첫 번째 강자로 우뚝 선 위나라를 시작으로 나머지 여섯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 과정과 그에 기여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위문후(魏文候)는 신용을 중시했으며, 현명하고 덕망 있는 사람을 예의와 겸손으로 대했다. 공자의 제자인 복자하를 스승으로, 자공의 제자인 전자방을 친구로, 단간목을 예(禮)로써 맞았으니 나라는 잘 다스려졌고 자신은 한가하고 편안했다는 구절이 『여씨춘추』에 기록되어 있다. 제일 먼저 훌륭한 통치로 위세를 떨치던 위나라의 패업은 70년 간 계속되는데, 달도 차면 기울듯이 위무후(魏武候)에 이어 손자 양혜왕(梁惠王) 때에 이르면 상황의 반전을 맞는다. 위무후(魏武候)때 오기는 초나라로, 상앙은 진나라로 가버렸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었던 것이다. 둘 중 하나라도 붙들어서 잘 썼다면 역사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을까.


 영웅적인 군주였던 제위왕은, 재위 30여 년 동안 제나라를 최고의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명하고 덕망 있으며, 음악에도 정통한 추기는 거문고의 대현과 소현을 군주와 대신들의 비유로 치국(治國)의 이치를 설명한다. ‘온화하고 듬직함’은 군주의 덕목이고 ‘깨끗하고 맑으며 예리하여 그 분명함’은 대신들의 덕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도 이렇게 음악을 깊이 이해할 줄 아는 관리가 지도자에게 현명한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 고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군사전문가인 손빈(孫臏)이 있다. 손빈은 위나라 양혜왕 밑에서 동창인 방연과 함께 있다가 방연의 시기와 미움을 사서 폐인이 된다. 질투는 사사로운 개인 간에도 불협화음을 부르지만, 국가 중대사가 걸린 문제 상황에서는 패망을 부르기도 한다. 폐인이 된 손빈은 인재를 알아보는 제위왕에 의해 신임을 얻어, 자신의 변법으로 방연을 죽이고 위나라의 패업을 끝장을 낸다.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역사의 이야기 참 재미있고도 안타까운 일이 많다.


 상앙은 야심 많은 진효공을 만나서 좌서장에 임명되고 상앙의 변법은 시작된다. 상앙의 변법을 요약하면 ‘이출일공(利出一孔)’ ‘구농귀전(驅農歸戰)’이다. 백성이 부귀를 얻고 토지를 얻으려면,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방법 단 한 가지만 있다는 뜻이다. ‘구농귀전(驅農歸戰)’은 소농(小農)을 중시하고 상공업에 타격을 가하여 세원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얼마나 주도면밀하고 빈틈이 없었는지 아무도 그 제도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2단계 변법은 사람의 머리수대로 세금을 걷는 인두세(人頭稅)였다. 적의 목을 벤 공훈을 앞세웠던 ‘잔인한 나라’라는 심각한 역사적인 결함을 갖게 되었다.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는 이상(理想)으로 진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지만, 최후에는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혓바닥’만 있으면 된다는 장의는 초나라를 속이고, 소진은 연나라 연왕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제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지혜가 넘쳤던 전단(田單)은 화우진(火牛陳)으로 죽어가는 제나라를 되살린다. 상대방의 성격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지닌 책사들은 온갖 계략을 동원하여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목숨을 부지했다. 가족마저도 지위나 재산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소인배였으니, 살아남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나라 조무령왕의 ‘호복기사’를 추진하여 군사강국으로 되는 과정은, 적절한 개혁이 국가의 성장에 기반이 되는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재상 인상여의 대담한 용기와 속 깊은 재치를 알게 된 염파 장군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이다. 국익을 위해 관리들 간의 화합은 필요하다는 것도. 하지만, 속 좁은 염파는 ‘입과 혀’로 공을 세우는 인상여를 시샘하였고, 소통능력이 없었다. 조효성왕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자기 계책만 좇다가, 지위를 박탈당하고 조나라 병사 40만은 포로로 잡혀 생매장되는 비극을 부르게 된다. 장군이 훌륭하면 국가가 안전하지만, 장군이 훌륭하지 못하면 국가는 재앙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전국 칠웅』은 리산 교수의 중국 CCTV-10 <백가강단> 최고 인기강의라고 한다. 강의 를 듣는 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와 번역의 글맛도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는 매끄러운 문장이었다. 변화무쌍한 격동의 전국시대를 살다 간 다양한 인물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드라마를 본 것처럼 생생하다.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재현되고 있는 인물 군상(群像)의 이야기다. 개인, 나아가서는 국가 통치자의 처세와 소통, 적재적소의 인재등용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인생의 덧없음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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