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없는 불안 - 2024 부커상 수상 작가 서맨사 하비 에세이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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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서맨사 하비의 이 책은 그의 단 하나뿐인 에세이라 한다. 그는 2024년 “완전히 독창적인 보석 같은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인《궤도》로 부커상을 받았다. 빨간색 표지가 시선을 끌었고 다양한 매체의 호평이 대단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에세이는 한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해서 본격적인 작품을 만나기 전에 읽으면 좋은 것 같다. 보통의 에세이와 달리 독특하다. 우선 글마다 제목이 없고 ‘불면증’이 주된 테마인데 상실과 기억,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이어진다.

 



불면증이라면 누구나 몇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을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거나 너무 피곤해서 잠에 빠져들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잠은 안 오고 더 초롱초롱해져서 괴롭고 그대로 새벽을 맞이하던 기억. 작가는 사촌의 죽음을 목격한 이래 불면증이 생긴 것 같다. 그리 친하지 않았던 사촌이지만 주검을 목도한 이래 편지를 쓰며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 마치 지금 살아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땅속에 묻히게 되고 한 줌 흙으로 남게 되는 과정을 세세한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인생이란 게 참 경이롭지 않니. 내내 그 안에 난폭한 죽음으로 품고 있다는 게. 그 박테리아는 네가 죽어서 나타난 게 아니라 줄곧 몸속에 있으면서 언제나 너를 먹고 싶어 했어. 또 세포들은 네 부패를 도울 효소를 늘 자기 안에 갖고 있었어. 생존하려는 네 열정이 그 모든 걸 막은 거야. 네 안에서 그렇게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니? 한 번이라도 눈치챈 적 있어?’(p29~30)

 



이미 죽기 전 살아 숨 쉬고 있을 때도 우리는 죽음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생존하려는 열정이 더 컸기에 그 박테리아에게 먹히지 않았다는 것. 죽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가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마흔 시간 쉰 시간을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다는 작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럴 때는 과거의 타래를 풀어헤치면서 어디서 잘못되었는가를 찾아내느라 밤을 지새운다고 했다. 이렇게 잠 못 드는 나날이 늘다 보면 동물로서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느끼는 공포가 크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잠 못 드는 밤을 맞이하는 것도 작가에게는 어떤 영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문장을 생각하며 다음에 쓸 소설을 구상하기도 하며 인간의 언어를 사유하고 또 사유한다. 우리는 각각 분리된 절이 아니라 여러 절이 버무려진 문장을 말하곤 하는데 촘스키는 이것을 ‘회귀(recursion)’의 사례라고 했으며 인간 언어의 특징으로 본다고 한다. 이 회귀는 생각 속에 생각을 놓을 줄 알고 즉각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무한히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이동할 줄 아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말해준단다. 그런데 한 연구 사례를 들며 브라질 아마존 피라항족은 이런 회귀적인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추상을 모르고 경험한 것만 말하고 피라항어에는 미래나 과거 시제 같은 건 없다고 한다. 피라항족 언어와 문화는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증거에 기반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초월적인 존재를 믿지 않고 집단 기억과 이야기와 신화를 대대손손 전승하지 않는다나. 서양인 중 유일하게 피라항족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한 대니얼 에버렛(Daniel Everett)은 그들을 보고 “피라항족은 새로운 것을 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거듭 단정 짓기에 이른다. 또 그들의 존재 방식을 “지금 여기 사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머릿속은 늘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간다. 글쓰기에도 당연히 반영된다. 그런 습관에 오래도록 젖어있던 나로서는 피라항족의 존재 방식이 정말 신기하게 다가왔다. 미니멀의 삶을 제대로 실천하는 부족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의 민족이나 인간이라면 자신들의 전통이나 문화를 전승시키려고 노력하는데. 이렇게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데 집중하고 언어생활에도 그대로 일치되는 부족도 있다니 참 흥미로웠다. 한동안 잠이 안 와 고생하던 날이 있었다. 만약 그런 날이 또 찾아온다면 하얀 여백에 문장을 써 보거나 모르는 작가의 작품 속 행간을 쫓으며 희열을 느껴보리라 생각했다.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와 상담하고 알려준 방법을 실천하고 고민했던 과정은 작가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작가 자신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글쓰기였다고 토로한다.

 



‘글쓰기는 꿈꾸기와 같다. 불과 2년 전쯤 깨달은 사실이다. 글쓰기는 자각몽이다. 의식에 한 발을 담근 무의식이 꿈의 자의성을 딱 적당한 만큼만 활용한다. 글쓰기가 무의식에 의존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내가 볼 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글쓰기가 곧 무의식이며, 그것이 의존하는 것이 의식의 영역이다.’(p178)

 



‘글쓰기가 내 삶을 구원했다. 지난해에 글쓰기는 잠자기 다음으로 최고의 일이었다. 가끔은 자는 것보다 좋았다. 글을 쓸 때 나는 제정신이며 신경이 안정된다. 나는 제정신, 제정신이다. 행복해진다. 글을 쓸 때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쓴 글이 형편없더라도 그렇다.’(p180)

 



어쨌든 잠은 중요하다. 죄수들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도 잠을 안 재우는 일이라고 하지 않나.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문장을 끌어내어 잠을 이야기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근심이 머무는 곳에 잠은 절대 눕지 않는다”,《멕베스》에는 “순결한 잠, 근심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잠”이라고 했으며 잠은 “상처받은 마음에 바르는 약”이라고 했단다. 어쩌면 대문호답게 잠의 의미를 이렇게 정확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 놓았을까 싶다.




‘잠, 잠, 돈과 같이 극히 모자라야 생각하게 되는 것. 그때부터는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한다. 부족해질수록 더 많이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프리즘이 되고, 그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p225)

 



잠과 돈이 이렇게 딱 떨어지는 공통점이 있었다니 미처 몰랐다. 그 통찰력이 감탄할만하다. 이 에세이를 읽고 불면증을 앓으며 힘들어한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내게도 불면의 밤이 한번 찾아와 봐라,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작가가 불면의 밤에 자신과 마주하며 보낸 시간과 사유들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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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9-13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이 안 와도 그냥 누워 있어요 안 자고 다른 걸 하늘 게 낫다는 말도 있지만... 잠이 안 오는 건 한번 조금 자고 일어나서 그런 거기는 했군요 그럴 때도 있고 자려고 할 때 잠이 안 온 적도 있네요 이런저런 생각 안 해야 잠이 잘 올지도...

잠 다음으로 글쓰기가 좋았다니... 어쩐지 부럽기도 하네요 구원해준 게... 어쩌면 늘 써야 구원 받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모나리자 2026-09-2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잠이 안 올 때도 있지요. 그럴 때는 잠을 자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하더군요.
오히려 잠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요.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답글이 많이 늦었네요. 추석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시겠지요. 비가 내려서 이제 좀 기온이 많이
내려갈 듯합니다. 감기조심하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희선 님.^^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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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먼과 더불어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불린다는 유명한 시인임에도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처음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시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장본 겉표지의 하늘거리는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의 작은 공간이 왠지 마음에 든다. 그 공간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밤을 새워가며 시를 썼을까. 이 시집에 수록된 시에는 제목이 없다. 창작 연도 순서로 번호를 붙였다고 한다. 보통 존슨 넘버(Johnson Number)라고 한다는데 독자가 읽을 때 적당한 제목도 지어보고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위대한 이 여성 시인의 시를 잘 모르지만, 재미와 강한 인상을 주었던 몇 편의 시를 내가 느낀 그대로 해석해 보려 한다.

 



36 눈송이

 

춤추는 눈송이를

실내화를 신고 도시로 뛰어내리는 눈송이를 세다가,

그 반란자들을 표현하려고

연필을 집어 들었네.

눈송이는 점점 더 신이 나 춤을 추었고

내가 점잖은 척하길 포기하자,

한때 품위를 지키던 내 열 발가락이

지그*를 추려고 늘어섰네!(p18)

*지그:(jig) 4분의 3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춤.

 


어렸을 때 보았던 눈 오던 날의 풍경이 바로 소환되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마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끝도 없이 쏟아지던 눈. 하나도 같은 크기의 눈송이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하얀 솜털 같은 구름 같은 눈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모습은 너무나 경이로웠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마치 춤추듯이 내리던 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눈을 ‘반란자’로 표현했나. 화자의 상상력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런 광경을 보며 가만히 앉아 그림이나 그리고 있을 수 없었겠지. 신나게 춤추는 듯 보이는 눈을 보며 춤이라도 추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이다. 잠깐이나마 동심의 세계로 초대해 준 시였다.

 



269

언제 고난이 - 끝날지 정해 주세요-

그래야 사람들이 견딜 수 있어요!

얼마나 피를 흘려야 하는지 – 정해 주세요!

생명의 주홍 – 핏방울을 얼마나 – 많이 – 흘려야 하는지-

수학을 다루듯이

영혼을 다루어 주세요!

 

얼마나 많은 시대를 견뎌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그래야-불만 없이-고통을 견딜 거예요-

해가 질 시간을 시시각각 표시하는-

노동자처럼- 고통스러워도- 노래를 부를 거예요!(p58)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고난의 크기와 수용하는 태도는 각자 다를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고통도 있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는 듯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내 고통이 제일 크다는 것. 이럴 때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있다면 덜 힘들 것이다.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노동자가 하는 일이 힘들어도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견딜 수 있다. 정확한 학문인 수학처럼 영혼을 다루어 달라고 말한다. 시인은 이 시를 왜 쓰게 되었을까. 자신의 고난을 이기려고 썼을까. 아니면 고통받는 이웃을 지켜보다가 이 시를 썼을까. 어느 편이든 인간애가 느껴진다. 노골적으로 고난이 끝나는 시간을 정해 달라고 할 만큼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 시를 읽기만 해도 고통이 저절로 가뿐해질 것 같은 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그저 배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통받는 다른 이웃과 나누려고 궁리한 끝에 이런 시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시인의 통찰력과 위트에 감탄하게 된다.

 


 

327

눈이 멀기 전에는

나도 눈이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보고 싶었다-

다른 식으로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하늘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내 몸이 너무 작아, 심장이

터져 버릴 것이다-

 

초원을- 볼 수 있고-

산들을 – 볼 수 있고-

모든 숲들을- 무한한 별들을-

정오에 내 유한한 눈으로

보듯이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내려오는 새의 동작을-

석양으로 물든 호박색 길을-

내가- 원할 때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의 충격으로 죽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무모하게

태양을 바라보지만-

나는 영혼만 유리창에 두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다-(p81~82)

 



눈이 멀기 전에는 무엇이든 볼 수 있었다. 가족의 얼굴, 집안의 물건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꽃들 하늘과 구름도.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떤 일로 눈이 안 보이게 되었나 보다. 당연히 보여야 할 것들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식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냥 건성으로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서 말도 건넬 수 있겠다. 사물을 관찰하며 어떤 영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경지는 꿈도 꿀 수 없는 지금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기만 해도 심장이 터져버릴 만큼 행복할 것 같다. 그만큼 간절하다. 뭔가를 잃은 후에야 우리는 그것을 절실하게 그리워한다.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내가 가진 것을 떠올려 보자.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421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얼굴에 매력이 넘친다-

숙녀는 그 매력이 사라질까 봐

감히 베일을 들추지 못한다-

 

망사 사이로 자세히 살핀 후-

베일을 들까 하다- 포기한다-

직접 보면- 베일 쓴 모습에

만족했던- 욕망이 사라질까 봐-(p102)

 



베일을 쓴 여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드러날까 봐 또는 수줍은 마음에 베일을 들까 말까 망설이는 것일까. 마치 거절 받을까 봐 겁나서 청혼을 주저하는 연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처럼 무례가 넘치는 시대에는 오히려 그리운 장면이다. 사람을 대할 때 한 번이라도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다. 베일을 쓴 숙녀가 조금 망설이고 주저하듯이 한 박자 느리게 하면 불협화음도 줄어들 것 같다.

 



677

살아 있는 것은- 힘이다-

존재- 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아도-

충분히- 전지전능하다-

 

살아 있고- 의지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더라도-

창조주인- 신만큼-

유능하다!(p169)

 


아무리 큰 고통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 해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절망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결국은 끝난다. 위대한 선지자들은 항상 노래했다. 살아 있음은 축복이라고. 아무리 초라한 인생이라도 죽은 사람보다는 산 자가 낫다. 유능해지지 않더라도 살아 있다는 그 자체로 승리자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또 새로운 길이 펼쳐질 것이다. 유한한 인생이라는 걸 명심하고 주어진 삶을 힘껏 살아볼 일이다.

 

 


 

1263

책은 어떤 군함보다

우리를 먼 나라로 데려가고

질주하는 시 한 쪽은-

가장 가난한 사람도

돈 걱정 없이 이 마차를 탈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을 태우는 마차 삯은 얼마나 싼지.(p218)

 


책을 예찬하는 문장을 만나면 늘 반갑고 설렌다. 책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고 좋아하는 저자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온전히 갈아 넣은 책 한 권으로 우리는 많은 지혜를 배운다. 리베카 솔닛이 ‘도서관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성지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지휘소’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 권의 책이라도 아니 한 줄의 문장이라도 더 읽으려고 애써야겠다.

 

 


 

1659

명성은 곧 치울 접시에 담긴

잘 상하는 음식

손님에게 한 번만 내놓지

두 번은 내놓지 않을 음식.

 

남은 부스러기를 까마귀가 살펴보더니

비웃듯 깍깍거리며

그 음식을 지나쳐

농부의 음식 쪽으로 간다-

사람들은 그 음식을 먹고 죽는다.(p236)

 


1763

명성은 벌이다

노래하고-

침을 쏘고-

아, 날개도 가지고 있다.(p247)

 



명성에 대한 두 편의 시다. 누구나 명성을 얻기를 바란다. 성공하고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명성이 언제나 정직하게 성취한 것일까. 누군가를 착취하고 괴롭혀서 얻은 명성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명성은 주변 사람을 아프게 하는 독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벌은 같은 곳에만 머물지 않듯이 이꽃 저꽃으로 날아다닌다. 명성도 마찬가지다. 혼신의 노력으로 쌓은 명성이라도 그 사람의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면 세상이 그를 끌어 내린다. 명성을 ‘곧 치울 접시에 담긴 잘 상하는 음식’이나 날아다니는 ‘벌’에 비유한 시인의 통찰력이 번뜩인다.

 



19세기 영미문학의 대표적 시인 가운데 하나인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친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사후 처음 90년 동안 알려진 그녀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수줍음이 많고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디킨슨을 연구한 여러 비평가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한 재능 있는 시인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 선집을 읽고 나니 전통시와 다른 독특한 리듬과 구두법이 가미된 독창적인 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인간의 내면 감정에 대한 시가 많아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시도 많았는데 자주 소리 내어 읽어보고 음미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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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8-29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휘트먼요.
저의 초기 인터넷 활동명이 ‘대로의 노래‘였지 뭡니까.

에밀리 디킨슨은 직접 구운 빵을 바구니에 담아서는
동네 아이들에게 부탁해 건너 마을 친구에게 전해주곤 했다던데
사실 여부는 장담을 못드립니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그렇게 전해주었다더군요.
이 역시 전해들은 말이고, 사실 여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녀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만 같습니다.

시인이자 철학자라고 늘 생각했지요.
오랫만에 반가운 에밀리 디킨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나리자 2026-09-01 12:38   좋아요 1 | URL
네에.. 휘트먼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시군요. 차트랑님.^^
저는 아직 읽어야 할 작가 무궁무진하네요.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일화도 잘 알고 계시군요. 디킨슨은 참 다정한 시인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를 통해서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요.

어느새 9월이 왔네요. 정말 시간은 얼마나 빠른지요.ㅎ
게으르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정말 유수와 같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한결 시원해져서 살맛 나는 요즘이네요. 9월에도 편안하고 건강한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함께 화이팅입니다. 차트랑님.^^
 
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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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작품을 읽게 된 건 실로 오랜만이다. 벚꽃이 피던 4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6월 중순이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다.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인 이주란의 <겨울 정원>과 후보작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수상작을 포함하여 인상적이었던 후보작 한 편의 감상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겨울 정원>은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마당 있는 집에서 나무를 심고 꽃들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다. 텃밭을 일구고 정원 일을 하다가 힘들면 낮잠도 자고 나만의 작업실에서 글을 쓰면 좋겠지, 상상도 해본다. 소설 속의 주인공 혜숙도 정원을 좋아했다. 막내 언니까지 다 떠나보낸 60세의 혜숙이 친구의 배려로 정원이 있는 주택에 살게 된다. 혼자 오랫동안 살다가 독립해 나갔던 딸 미래가 다시 집에 돌아오고 활력이 생기는 듯했다. 모녀의 생활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혜숙은 오피스텔 청소 일을 하고 미래는 소설을 쓴다. 어느 날 미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하더니 그 사람과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흥분했다. 행복해하는 딸을 보며 혜숙의 마음은 조금 동요가 이는 듯했다. 큰글자도서 모임에서 만난 사람과 1년 넘게 교제하며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었는데. 혜숙은 딸 미래에게 생겨난 그 마음이 내게도 다시 찾아올까 못내 아쉽고 슬퍼지는 것이었다. 화자인 혜숙의 차분하고 절제된 감정 묘사에서 어떤 연민을 느끼게 했다. 속마음을 딸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면 덜 슬펐을까.

 



김성중의 <새로운 남편>은 지금 우리 앞에 바짝 다가온 AI 시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자는 ‘열린 가족 문화 조성을 위한 인공지능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프로젝트는 쉽게 말하면 ‘인공지능 남편’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화자는 ‘새로운 남편’으로 부르기로 한다. 결혼 재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면서 중증의 돌봄 중독, 동반 의존증을 보이는 기혼 여성이 대상이며 내담자에게 소개하고 체험해 보게 하는 내용이다. 인공지능 남편은 ‘프로테시스(prothesis)’ 장치 즉 문제적 남편을 치우고 그 자리에 가져다 놓은 보철물이자 전기신호다. 실제 남편과 똑같은 외형과 목소리를 하고 있는데 공격적인 말투나 통제적인 잔소리가 거세된 ‘이빨 빠진 호랑이’ 정도로 바뀐 모습이고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 속에서의 의사소통, 이것이 핵심이다.

 



몇 명의 내담자가 체험한 인공지능 남편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다. ‘나쁜 점이 거세된’ 남편이었지만 원래 남편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꿔버렸다는 점이다. 육체가 없는 홀로그램과 지내면서 원래의 남편과 똑같아지다니.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증명한 셈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어떤 것에 중독이 된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중요한 일을 넘기고 시간을 낭비하고 결심해 놓고 지키지 않고 넋을 잃고 작은 일에 분개하기도 한다. 이런 타성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야 하는데.

 



‘자기 인생을 살라고? 그 여자들한테 물어봐. 자기 인생이라는 게 원래 있었는지 말이야. 그녀들은 남편에 관해서는 많은 정보가 있어. 언제 격분하는지, 어느 때 달아나야 하는지. 모르는 건 자신에 대한 정보야.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지……고립 속에서 의무가 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루틴이 이 자리를 잡은 거야. 노예를 풀어주고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하면 그 노예가 어디를 기웃거리겠어?’(p59)

 



화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을 향해 말한 외침이다. 대개의 여성의 인생이란 거의 비슷하지 않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요즘 그야말로 AI가 초호황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산업 로봇은 물론이고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까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머지않아 가정에서도 인간과 로봇이 공생하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이런 소재의 소설까지 나오는 걸 보니 인공지능 시대가 마냥 두려운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흥미롭고 경이롭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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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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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너무 뒤숭숭하고 불안하다. 폭사, 궤멸 등 거칠고 원색적인 언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미디어를 강타하는 요즘이다. 4차산업혁명의 꽃이라는 AI를 전쟁에 활용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를 사람을 살상하는 데 사용하다니. 섬뜩한 공포감으로 두근두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느릿느릿 이 시집을 읽어나갈 때만 해도 참 평화로운 세상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이란 공습으로 온 세상은 살얼음판이 된 듯하다. 계엄 후유증으로 힘들었던 날들이 겨우 진정되었나 싶었는데 이제는 힘의 논리로 한 나라를 파괴하고 수많은 초등학생이 죽었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며 모골이 송연해진다.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다시 시집을 들었다. 예전부터 낯익은 제목인데 박 준 시인의 꽤 오래전에 나온 첫 시집이었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고 박 준 시인의 시집은 처음 만났다. 시를 자주 읽지 않아서 그런지 시는 늘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 싶기도 하고 이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시도 있다. 어떤 시인이 시는 읽는 독자의 것이라는 말, 즉 읽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에 용기가 생긴다. 짧은 시도 있고 산문시도 있는데 박준 시인의 시는 그리움과 다정함이 묻어났다. 오래전 추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했다.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대화의 수준을 떨어뜨렸던 어느 오전 같은 사랑이 마룻바닥에 누워 있다‘

(생략)

’미인을 생각하다 잠드는 봄날, 설핏 잠이 깰 때마다 나는 몸을 굴려 모아둔 열(熱)들을 피하다가 언제 받은 적 있는 편지 같은 한기를 느끼며 깨어나기도 했던 것이었다

(p41)-<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중에서

 


봄날 낮잠을 잔 것일까. 미인은 예전의 연인이었을까. 어느 봄날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를 발견했고 미인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잘 진행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대화는 엇나갔던 것 같고 둘의 마음도 그랬나 보다.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미인에게 분명하게 전하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하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자꾸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미인 때문에 늘 ‘손발이 뜨겁’다고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 받은 편지가 떠올랐고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버린 것이다. 늘 지나고 보면 아쉬운 일 투성이다. 그래도 되새길 추억이 있다는 건 우리를 설레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들지 않는가.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골목은, 왼편 담벼락과 오른편 옹벽처럼 닫혀 있다 막 올려다본 하늘이 골목처럼 어두워지고 있다

(p66)-<모래내 그림자극>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 이 시의 묘사와 똑같은 골목을 걷다가 검고 음흉한 사람과 마주치고 소스라치며 달아난 적이 있다. 쫓아올까 봐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 시절엔 그런 사람이 어디든 있었다. 구부러진 골목길이 운치는 있지만 탁 트인 대로를 걷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이 시의 화자는 어두워지는 저녁에 친구들과 그림자극을 하며 놀았던 추억을 묘사한 것 같다. 자신의 몸보다 훨씬 길어 보이는 그림자. 내가 걸으면 계속 따라오는 그림자. 왠지 누가 쫓아오는 것만 같은 그림자. 점점 어두워지는 골목. 무서운 마음을 쫓으려고 노래를 부른다. 울지 않으려고 하나같이 고음(高音)으로 소리내어 노래를 불렀다고 화자는 회상한다. 내가 걷던 그 골목을 문득 걷고 싶어진다. 아마 벌써 사라지고 없겠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머리맡에 있던 초코파이 상자를 품에 안은 일로 그날을 기억합니다


한 여덟 시간 만의 공복이었을까요 상자의 절취선을 뜯어올라가면 으드드득 열두 개의 검은 달이 떴더랬습니다(p102)-<희망소비자가격> 중에서

 


와, 이런 제목으로 시를 지을 수 있구나. 과자 포장지에 쓰여 있는 희망소비자가격. 어린 시절 무엇이든 귀하던 시절 과자도 귀한 거였다. 아마도 기억에 초코파이를 처음 먹었던 게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까만 동그라미 안쪽에 들어있는 흰색은 크림처럼 녹는 것도 아니고 씹는 느낌도 특이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맛은 좋았지만 생전 처음 먹어보았으니 뭐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미묘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먹은 초코파이는 그 옛날의 맛과 식감이 전혀 아니었다. 처음 먹어본 처음 가져 본 그 무엇인가는 우리를 그 시절로 데려다주고 ’그날‘을 기억하도록 도와준다. 지금도 우리는 그 무엇엔가 의미를 붙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p105)-<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중에서

 


시의 첫 행이다. 이 시도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며 쓴 시 같다. 해남으로 떠난 후 오랫동안 연락이 없는 그 사람이 얼마나 야속한 마음이 들었을까. 그렇다고 먼저 연락할 용기는 없다. 그저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뿐이다. 그 마음을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과 동일시하며 자신도 답답한 마음에 울음이 터진다고 표현한 시인의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시를 읽는 기쁨은 이런 것인가 보다.

 



문명도 발전도 좋지만 사람들이 조금 느리게 살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앞만 보고 가려 하지 말고 옆도 뒤도 살피며 걸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더불어 살아갈 때 위안을 얻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 존재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꼭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소중한 생명을 살상하는 전쟁은 함부로 벌이지 않을 텐데. 영원히 살 것처럼 함부로 행동하는 이가 너무나 많다. 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간이다. 지금 우리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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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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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오래전부터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의 에세이를 처음 만났다. 작년 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오래 걸렸다. 핑계를 대자면,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고 훨씬 더 큰 이유는 게으름이 주는 편안함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분발하고 싶다.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부제도 좋았고 책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이 에세이는 2013년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저명한 작가들은 어떻게 읽고 쓰며 고독을 이겨내며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많은 위안을 얻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 책의 추천평을 ‘에세이 모음집, 회고록, 명상의 세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진 책’이라고 말했고, ‘뉴요커’는 솔닛을 ‘서정적인 산문의 대가’라고 평했다.

 



우선 목차의 소제목 구성이 시선을 끌었다. 살구-거울-얼음-비행-숨-감다-매듭-풀다-숨-비행-얼음-거울-살구 순으로 이어지는 글은 마치 돌고 도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 마주한 솔닛의 언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말이 큰 울림을 주었다. 이 문장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한 단락을 인용해 보려 한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p13)

 



왜 리베카 솔닛은 이 말로 글을 시작했을까. 솔닛은 이어서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감정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지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는 또 『천일야화』 속 셰에라자드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매일 밤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었다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살구’라는 제목은 어머니 이야기이며 마지막 글도 어머니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어머니 이야기는 다른 글에도 자주 등장한다.

 



흔히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있다. 솔닛과 어머니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딸의 눈썹이 둥글고 머리칼이 금발인 것을 시기했던 어머니, ‘딸은 나눗셈이지만, 아들은 곱셈’으로 대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백설공주를 향한 왕비의 치명적인 시기심을 이야기한다. 무언가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존재, 외모가 어머니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왕비가 백설공주를 시기한 이면에는 남성이 있고 그들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얘기다. 흔한 동화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고 마는 핵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의 문제와 견주어 해석하는 통찰력으로 번뜩인다. 그렇게 불편한 관계로 지내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고 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수가 줄어들고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런 과정을 함께 견뎌야 하는 가족들의 힘든 일상은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 일인지도 모른다. 별일 없는 소박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솔닛의 에세이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을 알게 되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장소에 가고 모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버마의 양곤에서 승려들이 독재에 맞서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데 그것을 지원하는 집회를 조직하여 참여했던 일화도 있다. 반야심경 구절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동양 문화에도 깊은 관심과 조예가 있는 것에 놀랐다. 정말로 이 작가는 지식인이며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느 여름에 받은 살구 더미는 결국 어머니의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를 하라는 권유처럼 느껴졌고 어머니 이야기를 에세이에 녹여낼 수 있었단다.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수 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안고 주고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행복하기만 한 삶도 없고 불행하기만 한 삶도 없다. 적절히 섞여서 견디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삶이 아닐까.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중 한 명이라는 리베카 솔닛도 읽고 쓰며 삶의 모험을 하며 고독을 견디고 살아내고 있구나 싶어서 큰 위안과 희망이 생겼다. 책과 도서관을 예찬하는 부분도 좋았다. ‘모두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곳’이 도서관의 모습이라고 했다.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책이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이어야 한다고.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라고. 그동안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책을 읽어왔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다음엔 리베카 솔닛의 어떤 이야기를 들어볼까.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p100)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 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 준다. 그것은 그날 늦은 밤까지 해변에서 우리가 했던 일처럼 우리 뒤로 바늘땀 같은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다.'(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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