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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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너무 뒤숭숭하고 불안하다. 폭사, 궤멸 등 거칠고 원색적인 언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미디어를 강타하는 요즘이다. 4차산업혁명의 꽃이라는 AI를 전쟁에 활용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를 사람을 살상하는 데 사용하다니. 섬뜩한 공포감으로 두근두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느릿느릿 이 시집을 읽어나갈 때만 해도 참 평화로운 세상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이란 공습으로 온 세상은 살얼음판이 된 듯하다. 계엄 후유증으로 힘들었던 날들이 겨우 진정되었나 싶었는데 이제는 힘의 논리로 한 나라를 파괴하고 수많은 초등학생이 죽었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며 모골이 송연해진다.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다시 시집을 들었다. 예전부터 낯익은 제목인데 박 준 시인의 꽤 오래전에 나온 첫 시집이었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고 박 준 시인의 시집은 처음 만났다. 시를 자주 읽지 않아서 그런지 시는 늘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 싶기도 하고 이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시도 있다. 어떤 시인이 시는 읽는 독자의 것이라는 말, 즉 읽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에 용기가 생긴다. 짧은 시도 있고 산문시도 있는데 박준 시인의 시는 그리움과 다정함이 묻어났다. 오래전 추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했다.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대화의 수준을 떨어뜨렸던 어느 오전 같은 사랑이 마룻바닥에 누워 있다

(생략)

미인을 생각하다 잠드는 봄날, 설핏 잠이 깰 때마다 나는 몸을 굴려 모아둔 열()들을 피하다가 언제 받은 적 있는 편지 같은 한기를 느끼며 깨어나기도 했던 것이었다

(p41)-<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중에서

 


봄날 낮잠을 잔 것일까. 미인은 예전의 연인이었을까. 어느 봄날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를 발견했고 미인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잘 진행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대화는 엇나갔던 것 같고 둘의 마음도 그랬나 보다.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미인에게 분명하게 전하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하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자꾸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미인 때문에 늘 손발이 뜨겁다고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 받은 편지가 떠올랐고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버린 것이다. 늘 지나고 보면 아쉬운 일 투성이다. 그래도 되새길 추억이 있다는 건 우리를 설레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들지 않는가.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골목은, 왼편 담벼락과 오른편 옹벽처럼 닫혀 있다 막 올려다본 하늘이 골목처럼 어두워지고 있다

(p66)-<모래내 그림자극>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 이 시의 묘사와 똑같은 골목을 걷다가 검고 음흉한 사람과 마주치고 소스라치며 달아난 적이 있다. 쫓아올까 봐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 시절엔 그런 사람이 어디든 있었다. 구부러진 골목길이 운치는 있지만 탁 트인 대로를 걷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이 시의 화자는 어두워지는 저녁에 친구들과 그림자극을 하며 놀았던 추억을 묘사한 것 같다. 자신의 몸보다 훨씬 길어 보이는 그림자. 내가 걸으면 계속 따라오는 그림자. 왠지 누가 쫓아오는 것만 같은 그림자. 점점 어두워지는 골목. 무서운 마음을 쫓으려고 노래를 부른다. 울지 않으려고 하나같이 고음(高音)으로 소리내어 노래를 불렀다고 화자는 회상한다. 내가 걷던 그 골목을 문득 걷고 싶어진다. 아마 벌써 사라지고 없겠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머리맡에 있던 초코파이 상자를 품에 안은 일로 그날을 기억합니다


한 여덟 시간 만의 공복이었을까요 상자의 절취선을 뜯어올라가면 으드드득 열두 개의 검은 달이 떴더랬습니다(p102)-<희망소비자가격> 중에서

 


, 이런 제목으로 시를 지을 수 있구나. 과자 포장지에 쓰여 있는 희망소비자가격. 어린 시절 무엇이든 귀하던 시절 과자도 귀한 거였다. 아마도 기억에 초코파이를 처음 먹었던 게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까만 동그라미 안쪽에 들어있는 흰색은 크림처럼 녹는 것도 아니고 씹는 느낌도 특이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맛은 좋았지만 생전 처음 먹어보았으니 뭐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미묘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먹은 초코파이는 그 옛날의 맛과 식감이 전혀 아니었다. 처음 먹어본 처음 가져 본 그 무엇인가는 우리를 그 시절로 데려다주고 그날을 기억하도록 도와준다. 지금도 우리는 그 무엇엔가 의미를 붙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p105)-<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중에서

 


시의 첫 행이다. 이 시도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며 쓴 시 같다. 해남으로 떠난 후 오랫동안 연락이 없는 그 사람이 얼마나 야속한 마음이 들었을까. 그렇다고 먼저 연락할 용기는 없다. 그저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뿐이다. 그 마음을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책과 동일시하며 자신도 답답한 마음에 울음이 터진다고 표현한 시인의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시를 읽는 기쁨은 이런 것인가 보다.

 



문명도 발전도 좋지만 사람들이 조금 느리게 살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앞만 보고 가려 하지 말고 옆도 뒤도 살피며 걸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더불어 살아갈 때 위안을 얻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 존재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꼭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소중한 생명을 살상하는 전쟁은 함부로 벌이지 않을 텐데. 영원히 살 것처럼 함부로 행동하는 이가 너무나 많다. 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간이다. 지금 우리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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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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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오래전부터 이름만 알고 있던 작가의 에세이를 처음 만났다. 작년 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오래 걸렸다. 핑계를 대자면,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고 훨씬 더 큰 이유는 게으름이 주는 편안함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분발하고 싶다.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부제도 좋았고 책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이 에세이는 2013년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저명한 작가들은 어떻게 읽고 쓰며 고독을 이겨내며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많은 위안을 얻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 책의 추천평을 에세이 모음집, 회고록, 명상의 세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진 책이라고 말했고, ‘뉴요커는 솔닛을 서정적인 산문의 대가라고 평했다.

 



우선 목차의 소제목 구성이 시선을 끌었다. 살구-거울-얼음-비행--감다-매듭-풀다--비행-얼음-거울-살구 순으로 이어지는 글은 마치 돌고 도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 마주한 솔닛의 언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말이 큰 울림을 주었다. 이 문장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한 단락을 인용해 보려 한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p13)

 



왜 리베카 솔닛은 이 말로 글을 시작했을까. 솔닛은 이어서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감정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지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는 또 천일야화속 셰에라자드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매일 밤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었다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살구라는 제목은 어머니 이야기이며 마지막 글도 어머니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어머니 이야기는 다른 글에도 자주 등장한다.

 



흔히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있다. 솔닛과 어머니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딸의 눈썹이 둥글고 머리칼이 금발인 것을 시기했던 어머니, ‘딸은 나눗셈이지만, 아들은 곱셈으로 대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백설공주를 향한 왕비의 치명적인 시기심을 이야기한다. 무언가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존재, 외모가 어머니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왕비가 백설공주를 시기한 이면에는 남성이 있고 그들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얘기다. 흔한 동화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고 마는 핵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의 문제와 견주어 해석하는 통찰력으로 번뜩인다. 그렇게 불편한 관계로 지내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고 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수가 줄어들고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런 과정을 함께 견뎌야 하는 가족들의 힘든 일상은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 일인지도 모른다. 별일 없는 소박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솔닛의 에세이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을 알게 되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장소에 가고 모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버마의 양곤에서 승려들이 독재에 맞서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데 그것을 지원하는 집회를 조직하여 참여했던 일화도 있다. 반야심경 구절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동양 문화에도 깊은 관심과 조예가 있는 것에 놀랐다. 정말로 이 작가는 지식인이며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느 여름에 받은 살구 더미는 결국 어머니의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를 하라는 권유처럼 느껴졌고 어머니 이야기를 에세이에 녹여낼 수 있었단다.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수 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안고 주고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행복하기만 한 삶도 없고 불행하기만 한 삶도 없다. 적절히 섞여서 견디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삶이 아닐까.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중 한 명이라는 리베카 솔닛도 읽고 쓰며 삶의 모험을 하며 고독을 견디고 살아내고 있구나 싶어서 큰 위안과 희망이 생겼다. 책과 도서관을 예찬하는 부분도 좋았다. ‘모두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곳이 도서관의 모습이라고 했다.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책이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이어야 한다고.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라고. 그동안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책을 읽어왔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다음엔 리베카 솔닛의 어떤 이야기를 들어볼까.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p100)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 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 준다. 그것은 그날 늦은 밤까지 해변에서 우리가 했던 일처럼 우리 뒤로 바늘땀 같은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다.'(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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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2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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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요즘 이 계절에 어울리는 소설을 읽었다. 블로그 친구 희선 님으로부터 받은 책 선물인데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서 올해 안에 읽어야지 다짐하고 읽기 시작했다. 작고 얇은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소설 보다시리즈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라고 한다. 각 작품 뒤에는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있다.

 



<빛 가운데 걷기>(김채원)는 어린아이와 함께 사는 노인 이야기다. 아이의 할아버지인 노인은 주기율표를 외우고 수업 노트를 복기한다. 예전에 교사였던 듯하다. 그 정도의 지식인이라면 아이와 친밀한 대화도 할 수 있고 공부도 봐 줄 수 있을 텐데. 아이는 긴 문장으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언어 치료를 받고 있다. 노인은 아이의 엄마였던 딸이 죽은 것에 대해 괴로워한다. 아니 괴로워하기보다는 죽은 게 싫다. 자세한 얘기는 없지만 아마 자살한 것 같다. 딸이 힘들어했을 때 좀 더 마음을 써서 도와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기도 한다. 온갖 상념들은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기만 한다. 햇빛을 받으면 몰라보게 건강해진다고 했던 옆집 남자의 말을 떠올리며 걷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혹시나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되면 아이 혼자 남겨지는 걸 상상하면서 걱정하기도 한다. 노인의 마음은 아주 복잡하고 불안해 보인다. 무얼 해야 하는데 깜빡 잊어버리고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누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어쨌든 살아 있고 또 남은 삶을 이어가야 하니까 감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슬프고 아픈 기억, 복잡한 마음은 어떻게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햇빛을 받으며 자주 걸을 것. 그러면 조금씩 견딜만한 나날도 오지 않을까.

 



<버섯 농장>(성혜령)은 고등학교 동창 기진과 진화의 이야기다. 진화는 10년째 인터넷 쇼핑몰에 다니고 있는데, 금수저인 나이 어린 사장을 저주하고 욕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한다. 기진은 그런 진화의 푸념이나 불평을 늘 참고 들어주었다. 기진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셨지만 남겨진 재산이 있어서 직장을 열심히 구하지도 않았고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진화가 기진에게 전화를 걸어와 휴대폰 개통 사기를 당해서 빚 독촉을 받고 있다는 사정을 털어놓으며 요양 병원에 같이 가달라고 한다. 기진이는 진화의 부탁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준다.

 


 

기진과 함께 요양 병원으로 찾아가 만난 사람은 휴대폰 개통 사기를 친 남자의 아버지였는데 자신의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다면서 아들과 연락도 안 된다. 나는 어머니 병원에 모시기 위해 집까지 판 사람이다. 자신은 아들에게 효도를 받지 못한다. 내가 자식에게 줄 때는 지났다면서 하소연을 하고는 가버린다. 피해자인 진화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기진과 진화는 그 남자 차를 타고 나오는 것을 보고 뒤쫓아 간다. 참외를 먹으며 대화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듯했고, 기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니 남자는 죽어있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진화는 그 남자를 땅에 묻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진은 겁이 나면서도 진화를 돕는다. 어쩌다 보니 사기를 당하는 흔한 이야기인 듯한데 갑자기 사람이 죽었다는 게 뜬금없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왜 기진은 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진화가 하자는 대로 행동했을까. 서로의 부모님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공유한 적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어디에 매이지 않고 사는 자신과 달리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진화에게 빚 갚는 심정으로 그랬을까. 버섯 농장에서 일어난 이 이야기는 흔하게 발생하는 끔찍한 죽음의 사건도 우발적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연필 샌드위치>(현호정)는 작가가 꾼 꿈 이야기를 모티브로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꿈 받아쓰기를 한 셈이다. 왠지 멋지게 느껴졌다. 꿈에 나온 규칙은 식빵 두 장 사이에 연필을 끼워서 샌드위치를 만든다. 양상추와 마요네즈 소스, 토마토 등을 자유롭게 활용해도 좋다는 조건이었다.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하자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하지만 꿈이고 소설이니까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는 있겠지. 꿈속의 공간 복돼지 문구점에서 연필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는 고통은 문구점 아주머니의 감시를 받으며 이어진다.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다고 몸부림치지만 빠져나올 구원의 손길은 없다. 꿈에서도 꿈과 현실 사이를 느끼며 이야기를 쓰는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화자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거식증 이야기까지 상기한다. 건강했던 할머니가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식사를 거부한다. 엄마는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밥을 많이 먹었지만 할머니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건강해지는 쪽은 엄마 쪽이었다. 내가 엄마를 위해 밥을 열심히 먹었던 때처럼 몸이 건강해지지는 않고 오히려 말라만 갔다. 모녀간에 서로 영적인 탯줄로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환타지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희선 님은 이 책을 얇은 책이고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기도 해서 본다고 했다. 나에게도 마음에 드는 소설이 한 편이라도 있기를 바란다면서. 그에 대한 대답을 한다면 첫 번째 단편 <빛 가운데 걷기>라고 말하고 싶다. 제목은 멋진데 내용과 좀 동떨어진 건 아닌가 생각하다가 거듭해서 읽어 보니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되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 딸을 잃은 노인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불안하고 복잡하지만 살아가야만 하는 삶, 그 노인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을 스스로 이해(인정)하고 그러려면 시간과 풍경이 필요하고 그래서 주인공을 걷게 한다는 작가의 말이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와서다. 전혀 몰랐던 소설 보다시리즈와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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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12-12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얇아도 바로 읽지 않기도 하는 책이군요 소설이 세편이어서 부담은 덜 되지만... 어떤 때는 괜찮기도 하고 어떤 때는 뭐가 뭔지 모르기도 하네요 겨울엔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면 좋을 텐데, 햇빛이 덜 받아서 기분이 안 좋아지기도 하겠습니다 사람은 어떻든 살아 가기도 하네요


희선

모나리자 2025-12-12 20:10   좋아요 1 | URL
네, 오래 묵혀 두었다 읽게 되었네요. 덕분에 잘 읽었어요. 희선님.^^
이 시리즈가 꾸준히 나오고 있더군요. 삶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주말에 눈이 많이 온다네요. 감기조심하시고 따뜻하게 잘 지내세요. 희서님.^^

yamoo 2025-12-13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국 소설 읽지 않은지 10년이 넘은 듯합니다. 전경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있죠. 그도 그럴 것이 세계문학 읽을 작품이 너무 많아요..^^;;

모나리자 2025-12-14 21:3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맞아요. 읽을 책은 차고 넘치지요.
읽는 속도가 따라 가지 못하지요. 언젠가 또 한국문학 읽으실 날 오겠지요.^^
 
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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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읽는 의미는 무엇일까. 작품 속 인물들과 교감을 나누고 나아가서는 작가의 생애와 작품에 교감을 나누는 일이다. 이러한 독서 과정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어제보다 성장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당연히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나 작가의 발자취가 있는 곳은 언젠가 찾아가고 싶다는 로망이 된다. ‘독서여행자 곽아람의 문학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이 살았던 도시를 찾아가고 작가의 고향과 묘지를 찾아 꽃다발을 바치며 인사를 한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며 궁금증을 해소한다. 마치 기자의 취재 현장을 보는 듯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몇 해 전에 조민진 작가의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기자 출신의 작가가 해외에서 보낸 1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곽아람 작가는 누구보다도 독서광이었고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도 벌써 초등학교 때 읽었을 정도로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저서로 나의 뉴욕 수업,쓰는 직업,공부의 위로등 다수 있다.

 



이 책은 2018년에 출간된 바람과 함께, 스칼렛의 개정증보판이라 한다. 작품을 소개할 때 원문을 인용하고 있는데 좀 더 깊은 문학작품을 음미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이 문학기행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은 우리의 추억을 소환해 준다. 학창시절에 읽었거나 영화로 보았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1장 문자로 지은 집에서는 빨강 머리 앤, 에반젤린,주홍 글씨,작은 아씨들,위대한 개츠비,마지막 잎새를 소개하며 작품 배경과 작가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2장 바람과 함께, 스칼렛에서는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품 배경과 작품 세계는 물론 미첼의 가족과 어머니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미첼의 어머니 메이벨은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인 남부 명문가 딸로 여성 운동가였다고 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은 작가의 그것이 많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동명의 영화에서 배우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스칼렛은 얼마나 멋졌던가. 강인한 딸로 키운 어머니라는 존재는 참으로 위대하다. 3장 태양 가득히에서는 월트 디즈니의 디즈니 그림 명작’,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 마크 트웨인의톰 소여의 모험,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등 몇 작품과 애거사 크리스티의 카리브해의 미스터리의 작품 세계와 그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간다. 특히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헤밍웨이의 흔적을 그렇게 샅샅이 돌아보고 소개하고 있는데 작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보기 좋았다. 무수한 여성 편력으로 세간에 오르내렸던 헤밍웨이지만 행복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에필로그에서는 미우라 아야코가 1964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빙점을 언급하고 있다. 나도 오래전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라 반가웠다. 광복 이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 소설이 이 작품이라고 하니 당시 얼마나 인기 있는 소설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곽아람 작가는 이 작품을 초등학생 때 읽었는데 얼마나 좋아하는 작품인지 중고생 시절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해서 읽었단다. 이 작품의 배경지인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를 문학적 소양을 길러준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며 힐링하는 모습도 정말 보기 좋았다. 진정한 문학 사랑은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되었다.

 



많은 문학작품과 배경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중 내가 정말 사랑했던 작품 빨강 머리 앤을 소개하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푸르른 이십 대 시절에 내가 번 돈으로 구매한 열 권짜리 시리즈를 읽고 또 읽으며 언제나 씩씩하고 긍정적인 앤을 보면서 미래의 꿈과 희망을 품고 용기를 얻었다. 올해 초에는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빨강 머리 앤 에니메이션을 발견하고 하루 이틀에 다 볼 정도로 정주행을 했다. 이제 하나의 꿈이 생겼다면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에 가서 그린게이블즈와 몽고메리의 생가 등을 돌아보는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은 저마다 꿈과 목표가 있을 것이다. 읽고 쓰고 여행하는 삶은 아마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닐까. 허구로 그려진 소설이라는 장르를 읽으며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곽아람 작가는 이 책을 문학과 현실의 경계에 살고 있는 모든 꿈꾸는 자를 위한 여행기라고 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작품과 작가들의 발자취를 한번 걸어본다는 동기에서 접근해도 충분한 위안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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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5-12-0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취 혹은 흔적을 찾는 여행의 감동과 설레임이 그 어떤것인지
미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사적으로 존경하는 우리 역사의 인물들을 찾았던
그 느낌과 일면 유사할 것 같기는 하지만요.

좀 위험한 책인듯요~
이기기 쉽지 않은 격한 충동질이 전해오는걸 보니까요!!




모나리자 2025-12-09 20:03   좋아요 0 | URL
저는 7년 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산방 기념관이나 도쿄 대학에 있는 산시로의 연못을 찾아가 보고 설렜던 겅험이 있습니다.
6월 초의 한 여름 더위였지만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요.
벌써 7년이 지났다니 시간은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요!

저자가 사랑했던 작품과 작가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여행입니다.
여행을 충동질하는 작은 위험은 있겠습니다.ㅎㅎ

편안한 밤 되세요. 차트랑님.^^

마힐 2025-12-09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께서 꼭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에 가셔서 그린게이블즈와 몽고메리의 생가를 꼭 찾게 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 나중에 감상문 꼭 올려 주셔야 돼요. ㅎㅎ

모나리자 2025-12-10 19:52   좋아요 2 | URL
네, 마힘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겠네요. 여행 다녀오면 꼭 알려드릴게요.ㅎㅎ^^

희선 2025-12-12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보다가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겠습니다 홈즈가 사는 곳 베이커가가 갑자기 생각나기도 하네요 홈즈 별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앤이 살았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정말 많은 사람이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초록지붕집도 있고... 지금 생각하니 그런 책 보기도 했군요 모나리자 님 언젠가 그곳에 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나리자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모나리자 2025-12-14 21:39   좋아요 0 | URL
네 문학작품을 읽다가 실제 지명이 나오면 궁금해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아져야 가능하겠네요.
책 속에서 보았던 곳을 실제로 보면 더욱 뭉클하고 감동적일 것 같아요.

새 한 주가 시작되었네요. 감기조심 하시고 잘 지내세요. 희선님.^^
 
시 쓰기 안내서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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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메리 올리버는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났으며, 열네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해 1963년에 첫 시집 No Voyage and Other Poems를 발표했다. <뉴욕 타임스>는 메리 올리버를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이라고 평했으며, 그의 시들은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단순하고 빛나는 언어로 노래한다. 그는 월트 휘트먼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내면의 독백, 고독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측면에서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되기도 한다. 저서로천 개의 아침을 포함한 스물여섯 권의 시집이 있으며 완벽한 날들, 휘파람 부는 사람, 긴 호흡등 일곱 권의 산문집을 썼다.

 



내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지난 9, 23년 만에 백일장에 참여하고 11월 시상식에 다녀온 것이 계기였다. 그날 문학상 시상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우리 지역 이름의 신인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다른 지역에 사는 고3 여학생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어린 학생이 문학상 수상자라는 것에 놀랐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도 시를 배운지 6개월 만의 성과라고 했다. , 그럼 나도 한번 써 볼까. 그 신인문학상은 오로지 시 장르만 응모할 수 있었다. , 나도 저 단상에 서서 신인문학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일까, 상상했다. 그렇다면 일단 시 쓰기를 배우는 것이 먼저지. 바로 희망 도서로 신청하고 두 달 넘게 기다리다 손에 들어온 책이다. 참 희한하다. 시 쓰기를 배워 볼 생각은 한 적이 없는데. 학창시절 시를 암송하고 애송 시집을 정성 들여 만들었던 추억은 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발상으로 선택한 책인데 미국 문단에서 꽤 유명한 시인이었다는 점과 시 쓰기의 기본기를 알려주는 내용이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이제 시 쓰기 안내를 따라가 보자.

 



목차의 내용은 준비, 시 읽기, 모방, 소리, 소리의 또 다른 장치들, , 몇 가지 주어진 형식, 자유로운 시, 어법ㆍ어조ㆍ목소리, 이미지, 고쳐쓰기, 창작 교실과 고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에서 보듯 시를 쓰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준비 과정이 있고 시를 구성하고 있는 행과 연 등 소리와 이미지는 어떻게 담아내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고쳐쓰기를 한 다음 하나의 시로 탄생한다. 메리 올리버는 시 한 편을 사오십 번 정도나 수정한 뒤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해서 놀라웠다.

 



그렇다면 시를 쓰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메리 올리버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밀 연애 얘기를 꺼내면서 시를 쓰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책상에 앉아있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또 하나는 시 읽기다. 좋은 시는 최고의 스승이라고 했다. 좋은 시와 시인을 찾을 때는 스타일이나 시대, 나라와 문화의 경계에 갇히지 말라고 했다. 시인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단일 부족이고 자신은 그 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라고 말이다. 적어도 크리스토퍼 스마트, 이백, 마차도 같은 시인들의 시를 만날 것을 권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모방을 죄악으로 여기지 말고 최대한 활용할 때 진짜 시를 탐구하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본격적인 시 강의에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져녁 숲가에 멈추어를 비롯한 존 키츠, 윌리엄 블레이크, 에밀리 디킨슨 등 여러 위대한 시인의 시를 언급하며 설명하고 있다. 영시 원문과 번역된 시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알파벳-소리의 계보, 두운, 모운 등 소리의 또 다른 장치들, 행과 길이와 리듬에 대한 설명으로 계속 이어진다. 길이와 리듬에서는 네 가지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1. 운율시에서는 시의 각 행을 운보로 나누고 각 운보는 강세(음절의 소리)로 나누어 전체적인 리듬 패턴을 나타낼 수 있다.


2. 행을 운보로, 운보를 각 구성 요소로 나누는 과정을 운율 분석이라고 한다.


3. 약강격 또는 약강운보는 약한 강세 다음에 강한 강세가 오는 구조다(기호ˇ´)


4. 약강격 다섯 개가 연속되면 약강 5보격이 된다(ˇ´ˇ´ˇ´ˇ´ˇ´).

 


약강 5보격 행은 영어 운율시에서 가장 널리 쓰이며 밀턴의 실낙원,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소네트, 워즈워스의서곡The Prelude등 특히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도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이처럼 5보격 행은 영미 시인들이 주로 쓰는 기본 행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영어 사용자의(영어로 말할 때의) 폐활량에 가장 잘 맞아 특수한 효과에서 제일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고. 일종의 표준이라고 했다.




<사진>54

 


이 부분은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도 시에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어렵게 다가왔다. 세상만사 중 무엇이 첫술에 배부르랴.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직접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 이어 메리 올리버는 시를 읽을 때 가장 강력한 즐거움을 주는 것은 리듬이라고 하면서 새내기 시인은 이 리듬 패턴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는지 기억해두어야 한다고 했다. 리듬은 모든 것의 바탕이라면서.

 



시는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경제적인 언어라고도 했던가. 이 짧다면 짧은 시가 상당히 많은 구성 요소를 내포한다는 것이 너무나 경이롭게 느껴진다. 리듬을 비롯하여 어법과 어조 목소리, 이미지, 수사까지 조화롭게 담아야만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가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물고기The Fish를 소개하면서 어떤 시가 얄팍하고 빈약하게 느껴진다면 시인의 어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꽃들 사이에 오래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를 읽으면 시의 구체성과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시를 쓰는 작업의 고독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창작 교실에서 동료들과 교류하며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키며 귀중한 자양분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지만 시는 시인에게 교류나 가르침이 아닌 깊고도 온전한 고독을 요구한다고 했다. 물론 시 쓰기 모임이나 창작 교실을 만류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고독을 견디고 즐기는 가운데 그리고 자기와의 교감을 중요하게 여길 때 진짜 작업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 쓰기 안내서는 그 누구보다도 시 쓰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책이지만 시를 읽는 사람들도 시라는 장치에 대한 통찰과 시의 역사에 대한 유익한 생각을 얻길 바란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시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나 나아가 시 창작을 목표로 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깊은 인상을 준 문장

 


운동선수들은 몸을 관리한다. 작가 역시 시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감수성을 돌보아야 한다. , 다른 분야 예술, 역사, 철학, 그리고 신성함과 즐거움에 자양분이 있다. (중략) 활기차고 탐구하는 마음, 연민과 호기심, 분노, 음악이나 감정이 가득한 마음도 시의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시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힘이다. 그리고 시는 하나의 비전을, 구식 표현을 쓰자면 믿음을 요구한다.’(p172~173)

 


시는 단어들의 집합이 아니라 추위에 떠는 이들을 위한 불이며, 길 잃은 이들에게 내려진 밧줄이며, 굶주린 자들의 주머니 속 빵처럼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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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9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9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5-12-12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온 건 라디오 방송에서 들어서 알았군요 예전에 메리 올리버 시집 보려다 그만뒀지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시인인 듯해요 산문도 좋아하고... 개를 소재로로 시를 썼던 것 같아요 자신과 함께 살았던 개...

모나리자 님 쓰고 싶은 시 즐겁게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모나리자 2025-12-14 21:42   좋아요 0 | URL
방송에서 들은 적 있으시군요. 워낙 유명한 시인이라 여러 매체에 나왔나 봅니다.
산문도 여러 권 썼다고 하네요.
글쎄... 잘 써질지 모르겠네요. 일단 끄적끄적 시도라도 한다면 그 자체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