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좋은 직업 -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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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는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시작으로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번역가의 일상과 번역에 대한 유익한 정보와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글을 얼마나 재미있게 잘 쓰셨는지. 술술 넘어간다. 번역하는 일은 보통의 독서와 달리 더 세심한 읽기이며 작품과 작가와의 교감의 농도가 더 진할 것 같다. 그렇게 작품 속에서 교감했던 원저자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얼마나 설레는 일일까.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것은 500쪽 가까운 두꺼운 책 번역을 마치고 딸 정하를 만날 겸 도쿄로 날아가 작품 속에 나오는 스위츠를 사 먹으며 여행했던 에피소드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는 유명한 광고 문구가 떠오르고 내가 여행하는 것처럼 기쁘고 설레는 장면이었다. 두 모녀에게도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단다. 이 부분에서는 찡한 감동이 일었다.

 



무슨 일이든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닐 것이다. 번역하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오랜 시간 몰두할 수 있는 정신력과 인내력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더구나 혼자서 하는 일이니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뎌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을 30년 넘게 오로지 한 길을 가면서 인정받는 번역가가 되었다는 것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비결이 있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갔지만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책을 읽고, 책을 번역하는 게 직업이다. 동종 업계의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연중무휴였다.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늦게 들어와도 바로 노트북을 펴고 앉았다. 마감에 쫓겨서도 아니고, 생활비를 벌어야지 하는 압박감에서도 아니었다. 긴 세월 하다 보니 그냥 그게 직업인 동시에 취미 생활로 굳어졌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만큼이나 재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번역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P176)

 



외국어 번역을 해야 하니 책 한 권 뚝딱 읽을 수 있는 실력이면 된단다. 그다음으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하다. 돈을 많이 벌긴 어렵지만, 경력이 책이 되어 쌓이는 좋은 직업이라고 했다. 사실 번역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칠 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일반적인 계산방식으로는 계산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권남희 번역가의 말처럼 그저 좋아서 하다 보니 취미가 되었고 직업이 되어 전문가가 되는 이런 과정을 기꺼이 즐길 수 있는가가 비결이라면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연중무휴라니. 여행도 가야 하고 놀고 싶기도 할 텐데 어떻게 그렇게 일만 하며 살 수 있을까. 전에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매사에 무엇이든 숙제가 아니라 축제처럼 즐길 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한때는 절실했을 때도 있었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취미처럼 하다 보니 30년 베테랑 번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힘들겠다 싶을 만큼 번역은 그의 인생 자체라고 생각되었다.

 



아무리 취미처럼 하는 일이라도 그에 대한 대가가 따르지 않는다면 계속하기 힘들 것이다. 번역을 하고 난 다음 그 수입 즉, 번역료는 어떻게 책정되는 것일까. 보통 매절 계약이 유리하다고 한다. 원고지 장당 얼마의 작업료를 뜻한다. 다른 번역가의 책에서도 단골처럼 나오는 주제는 번역료를 제때 주지 않아서 마음 고생하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고 그런 출판사와는 다시는 일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하지만 감정 문제, 돈 문제를 떠나서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때가 있는데 그후로는 출판사와의 관계가 잘 풀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번역료를 받아내기 위해서 꾀를 내어 시도했다는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든다. 어느 업계든 수고한 대가를 제때 정확하게 정산하여 일하는 사람의 의욕을 꺾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랜 세월 동안 한길을 걸으며 딸 정하를 키우며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 번역가를 로망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많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내가 작게 느껴졌다. 이렇게 늦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오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 걱정 하기 전에 그냥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라도 해 보자고 나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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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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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작가의 산문집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은 지 12년 만에 이 소설을 읽었다. 내가 힘든 시절에 읽었던 책이고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가족사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이야기라 뭉클하고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에 메모한 노트를 들춰 보았다. 작가의 글에서는 어둡고, 쓸쓸하고, 배고프고, 그립고, 외롭고, 억울하고등등 이런 느낌이 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또 농촌에 살면서 느끼는 소박함이나 자연 속에서 얻는 충만한 행복감도 들어있다는 나름의 감상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나를 감동케 했던 말은 작가는 깨끗하고 환한 방에서는 탄생하지 않는다, 습하고 어둡고 쓸쓸한 그런 방이 작가의 영혼으로 태어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했던 말이다. 이 말은 나에게 엄청난 용기를 주었다. 나도 언젠가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희망을 품었고... 작가가 되었다. 정말 신기하다. 사설이 길었다. 공선옥 작가의 소설을 이제야 접한 것을 반성한다.

 



이 작품은 80년 광주, 청춘들의 아픈 이야기이며 우리 시대의 슬픈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수선화 멤버 진만이, 승규, 만영이, 태용이, 승희, 정신이, 화자 해금이, 경애, 수경이, 이렇게 아홉 명이 펼치는 아픈 스무 살 시절 이야기다. 한창 젊음을 발산하고 꿈과 열정으로 모든 걸 태워버릴 수 있는 나이에 그들 앞에 닥친 상황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곧 두려움으로 바뀐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 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밥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 게 이상해. 우리 식군 내가 이상하다지만 말야.”(P76)

 



수경이가 하는 말이다. 이 글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해금이는 매사에 좀 무디고 집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했다. 경애를 따라 성당에 갔다가 의도하지 않게 수선화 멤버가 되고, 지금이 계엄령 상황에 있다는 것도 늦게야 알아차린다. 유일한 친구 경애를 잃은 뒤 수경이는 크게 상심하고 몸져누웠다.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너만 난리냐고. 아픈 수경이 문병을 온 친구들에게 수경이 엄마는 냉대하고 쫓아내다시피 한다. 결국, 경애의 뒤를 이어 수경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승희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죽음, 아빠 없는 아이를 낳고,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는 등 여러 사건이 그들을 에워싼다. 해금이와 친구들은 절망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우정을 나누고 민중을 압박하는 시국에 대항한다. 해금이도 이 분위기에 동요되고 자각하고 행동을 취한다.

 



빛은 어둠 속에서 나온다는 거, 아름다움은 슬픔에서 나온다는 거, 모든 행복은 고통 뒤에 온다는 거. 진짜 빛이 있고 진짜 아름다움이 있고 진짜 행복이 있다면 말야.”(p199)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에서 출발한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의 시간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이라고, 동물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의 과정이야말로 진보의 역사라고, (중략)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 한다.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딜 것.(P241)

 



그러나, 모든 좋은 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행복이, 우리의 청춘이, 우리의 인생이, 우리 인생의 모든 환한 것들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이 세상에 슬픔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으므로, 슬픔은 생겨나는 것이다. (p248~249)

 



중학생 시절 어느 날, 둥근 철모를 쓴 군인들 무리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간 적 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직장인이 되고 나서 그 현장에서 명령을 수행한 적 있다는 남자 직원의 말을 듣고 섬뜩한 적 있다. 그 날 군인들은... 그래서 그랬구나. 권력을 앞세워 방송과 언론을 차단하고 무고한 시민들에게 만행을 저질렀다. 권력 앞에서는 희생이 따라야만 하는 걸까. 무거운 마음 지울 길 없었다. 작가는 진솔한 체험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표현하며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이 책의 제목은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제목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중에서

 



그 시의 일부다. 이 책 주인공들이 살아내야 했던 가장 예뻤을 때잔혹했던 스무 살의 삶과 절묘하게 닮았다. 이 아픈 역사를 젊은 시절에는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30년 만에 썼다고 한다. 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이고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빌어다 쓴 것인데 이 역사를 모르는 어린 작가는 작가님 상상력이 대단하시네요.” 라고 해서 놀랐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공선옥 작가는 2000년대 용산이 80년 광주라고 했단다. 시대는 흘렀고 세상은 좋아졌지만, 아직도 어딘가에 폭력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또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작가이고 싶다라고. 불편한 책을 멀리하려는 독자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 같아 뜨끔했다. 다양한 층의 독자가 읽고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행복한 작가와 행복한 독자만 있는 세상은 오히려 비극에 가깝다. 독자를 행복하게만 만드는 글은 설탕처럼 해롭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불화가 있어야 한다. 내 글을 읽고 불편한 사람이 있는 편이 작가로서 행복하다.”

(출처: 채널예스-80년 광주, 아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사반세기 만에 그리다 - 소설가 공선옥

반세기를 가슴에만 품어둔 이야기가 소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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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7-23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읽었는데 독후감을 올리지 않았네요. ㅎㅎㅎ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공선옥 짱!

모나리자 2024-07-23 16:47   좋아요 1 | URL
아, 읽으셨군요! Falstaff 님, 워낙 다독하시는 분 같은데 댓글과 공감 감사합니다!!
맞아요. 글 잘 쓰시는 작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우기 사회 문제를 소재로 끌어내어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어서요...
장마로 습하고 더운 날이 계속되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여름 나시길 바랄게요.^^

2024-07-25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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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소설가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한국 소설을 한동안 읽지 않아서. 늦게나마 김애란 작가의 책을 만난 건 번역 수업 덕분이다. 번역 공부는 거의 국어 공부라 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좋은 책, 좋은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서 책 제목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꽤 젊은 작가였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상복도 많은 작가였다. 이 산문집은 작가를 있게 한 이름들, 작가와 함께한 이름들을 주제로 썼다. 1부 나를 부른 이름 2부 너와 부른 이름 3부 우릴 부른 이름들 세 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인정받아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인문고등연구소(LASH)에 초대받아 머물렀던 화려한(?) 경험까지 담고 있다. , 정말 부럽군, 했다. 한 사람의 작가가 탄생하기까지 추억이 깃든 장소와 에피소드를 엿보는 일은 늘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작가의 어머니가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팔았던 가게 맛나당은 작가에게도 큰 의미를 부여한 곳이었다. 작가로서의 기질을 키우고 꿈을 꾸게 한 곳이 아니었을까. 김애란 작가는 자신의 정서가 거기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수많은 손님을 만나고 거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그 분위기가 작가의 가슴에 차곡차곡 스며들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그 돈으로 세 딸을 가르치고 생활을 꾸리고 집도 장만했단다. 그곳은 어머니가 경제 주체이자 삶의 주인으로 자의식을 갖고 꾸린 적극적인 공간이었다. ‘맛나당은 작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팔 할의 힘이 되었고 나머지 이 할은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예술학교에 들어간 것이란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어머니를 본받아서 자신이 선택했고, 그것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 두 분의 첫 만남과 사랑 이야기도 재미있고 진한 가족애와 행복한 정경이 전해져 왔다. 또 지인과의 우정, 읽은 책을 소개하며 들려주는 소소한 감상 이야기도 좋았다. 나도 전에 읽다 만 적 있던산해경을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 책은 원래 중국의 신화집 또는 역사서, 지리서 고대 동아시아 풍습과 종교를 다룬 책이지만 문학 텍스트로 읽는다면 창작자에게 먹을 만한 플랑크톤이 풍부한 심해라고 알려 주었다. 귀한 보석을 주운 기분이었다. 선후배 작가와의 여행 이야기도 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는 동료로서 함께 보고 공감했던 시간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하고 충만한 시간일 것이다.

 



글을 쓸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 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P124)

 



우리의 삶은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한 가지를 풀고 나면 또 한 가지가 우리에게 닥친다. 글 쓰는 삶이나 보통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감사를 말하게 된다. 당연한 것들에 놀라는 삶, 그러려고 하는 마음의 다짐이 있을 때 우리 삶은 한층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 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P133)

 



역시 작가다운 통찰이 들어있는 대목 같다. 이 글은 작가가 창비 50돌 축사를 맡게 되어 쓴 축사의 일부인데 너무나 공감이 가는 문장이라 소개해 본다. 작가가 태어나 처음 가보았던 창비 출판사, 마포 사무실을 떠올리며 감개무량에 젖는다. 다시 올 일 없을 줄 알았기에 대충 보고 말아서 기억도 나지 않는 그곳. 그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며 하는 얘기였다. 몇 달 전부터, 자꾸만 가보고 싶은 곳이 떠올라 가봐야지 벼르고 있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내가 20대 시절에 다닌 직장이 있던 동네이다. 언제 한번 가보자고 작은 아이에게 말했다. 벌써 30년도 더 지났는데 그곳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김치찌개가 끝내주던(?) 식당이 있던 골목, 그 뒤편에 수녀원이 있던 동네였다. 지금이라면 휴대폰으로 모든 걸 담을 수 있지만, 그 시절은 온통 아날로그 세상이었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 가게 아줌마들, 그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새삼 그립다. 일찍이 아파트촌으로 뒤바뀐 지 오래여서 그 풍경은 온데간데없겠지. 자세히 보고 기록해 둘걸. 그때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 산문집을 읽은 계기로 김애란 작가와 조금 친숙해진 느낌이다. 에피소드 중에는 작품을 쓰면서 기록해 두었던 창작 노트도 들어있다. 소설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인물들이 작가에게서 떠난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신애라고 했다. ‘쪼그려 앉은여자 신애. 한동안 잊고 살았다고 했다. 이렇게 다른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을 만나면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 속에 그려 넣은 인물들은 분신이나 마찬가지로 애착이 많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은 누구였더라. 막상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였을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만나고 스쳐 지나간 이름들은 얼마나 될까. 무수한 이름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앞으로 내 발길 눈길 닿는 곳은 좀 더 세심하게 보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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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몬드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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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은 인간의 본능이자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 어렵다면 어떻게 될까. 진정한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사랑하는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바로 그런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자 화자 윤재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뜻밖의 사건을 목격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심박사, 윤교수, 곤이를 만나면서 삶의 큰 부침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알렉시티미아1970년대에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애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편도체가 작았던 윤재는 웃지 않는 아이여서 놀라게 했고 자라는 내내 엄마를 애태운다. 어린아이들은 별거 아닌 일에도 잘 웃는데 언제나 침착하고 겁이 없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윤재는 중학생쯤 되는 한 아이가 여러 명에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근처의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저씨는 믿지 않았다. 무서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저씨의 아들이었다니.

 



그 얘기는 사람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졌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더욱 문제가 심각해졌다. 바로 앞에서 넘어진 친구를 보고도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 머릿속의 아몬드가 커지길 기대하며 열심히 아몬드를 먹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윤재를 냉혈한’, ‘사이코’, ‘로봇등 온갖 별명으로 불렀다. 다급해진 엄마는 상황에 따른 감정 표현을 종이에 적어 학습하도록 했다.



차가 가까이 온다. 몸을 피하거나, 가까워지면 뛴다.

사람이 다가온다. 부딪히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켜선다.

상대방이 웃는다. 똑같이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윤재에게는 어렵기만 했다. 이럴 때 이 감정인지 저 감정인지 감정의 이름조차 헷갈렸다.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 암기로 가능할까. 엄마는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어서 7년 동안이나 연락을 끊고 살았던 친정엄마에게 SOS를 날렸고 셋이 살게 된다. 엄마의 끈질긴 노력 덕분인지 그럭저럭 학교에서 별문제 없이 지내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당연했던 본능적인 규범을 배우는 것이 윤재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세 식구가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듯했는데 윤재의 생일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밖에 나갔다가 괴한에게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엄마와 할머니의 빈자리를 느끼긴 했지만 여태 살아왔던 것처럼 슬픈 것도 몰랐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두 여자가 윤재의 세계에서 전부였는데 다른 사람이 하나씩 윤재 앞에 나타났다. 이때 심박사와 윤교수, 곤이를 차례차례로 만나면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었다.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그건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애초에 달랐다.’(P54)

 



윤재가 책을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여러 사람 손에서 막 자란 곤이는 거칠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하는 아이였다. 툭하면 윤재를 폭행하고 괴롭혔다. 그것은 윤재에게 통과의례였을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소년은 어느새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고 때리던 곤이에게 윤재는 어떻게 마음을 열게 되었을까. 본의 아니게 윤교수의 아들 노릇을 하게 된 빚진 마음 때문이었을까. 모두 다 나쁜 아이라고 했지만, 윤재는 곤을 착한 아이라고 했다. 감정 표현을 하는 걸 어려워했던 윤재가 곤이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간 것은 너무나 의아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엄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듯이 서서히 윤재 안에 웅크리고 있던 단단한 어떤 것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것 같았다.

 

손원평 작가는 첫아이를 낳고 그 아기를 보면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 한다. 아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변함없이? 그런 상상에서 윤재와 곤이의 캐릭터를 만들었단다.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교수님의 아들로 곱게 자랐을 텐데.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이 이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윤교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곤이를 보면서 인간이란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흔히 아이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 아이뿐이겠는가. 타인도 그렇고 나 자신도 그렇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따로따로다. 공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윤재는 못 느껴서 괴로운데 곤이는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전부 못 느꼈으면 좋겠다며 울었다. 할머니가 괴한의 칼에 맞아 쓰러지던 날도 아무도 나서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윤재도 그랬다. 우리도 그렇다. 멀리서 일어나는 일은 그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라본다. 아몬드는 국내에서 1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아시아권 최초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 전 세계 30개국에 번역 출간되는 등 청소년, 부모, 성인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담은 것 같다.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하듯이 누구나 내 안에 괴물이 있다. 감정 표현에 장애가 없는 멀쩡한 사람이면서도 우리는 이웃의 어려움을 방관하며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몰입하며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대단한지. 해피 엔딩의 결말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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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하이쿠
마쓰오 바쇼 외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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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이쿠 선집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하여 하이쿠의 대가인 마쓰오 바쇼와 이름만 들어도 설렐 만한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16명의 하이쿠 444구가 실려 있다. 하이쿠(俳句)5, 7, 5의 열일곱 자로 이루어진 일본 고유의 정형시이다. 에도 시대에 하이카이(俳諧)라고 하는 연가(連歌) 형식이 유행하였는데 한 사람이 5, 7, 5음으로 첫 구를 지으면 다음 사람이 이어받아 7, 7음으로 구를 짓고 또 다음 사람이 이어가는 시가 형식이었다. 그때 첫 5, 7, 5음의 구를 홋쿠(発句)’라고 하는데 에도 시대 하이쿠의 성인으로 불리는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는 바로 이 홋쿠를 가리킨다고 한다.(역자 후기 참조)

 



하이쿠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자연계, 또한 그에 따른 인간계의 현상을 읊은 것이다.’-다카하마 교시(책 뒤표지)

 



이처럼 선집에 실려 있는 하이쿠도 사계절로 나뉘어 있다. 보통 하이쿠 선집에는 해설이 달려 있는데, 이 책에서는 해설을 싣지 않았다 한다. 독자 저마다의 방식과 느낌으로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번역은 원문에 맞춰 열일곱 자로 옮기려고 했지만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에 중점을 두었고 원문과 함께 음독을 병기 했음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본문의 작자명은 성씨를 빼고 표기하였다고 일러두기에서 언급한다. 많은 하이쿠 중에서 여운을 남겼던 몇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불을 덮고

편지를 쓰는구나

봄날의 감기

-시키(p18)

 


목련나무의

꽃으로만 가득한

하늘을 본다

-소세키(p22)

 


봄비로구나

몸을 바싹 붙이고

우산은 하나

-소세키(p23)

 


목련꽃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동일시하여 묘사한 소세키의 하이쿠가 절묘하다.

봄비가 내리는 우산 속에 두 사람. 연인일까, 친구일까, 아이와 엄마일까.

아무튼,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에 젖지 않으려면 바싹 붙어서 갈 수밖에.

눈으로 읽기보다는 소리 내어 읽기를 권한다. 짧은 하이쿠에서 계절의 흐름과 리듬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짧은 하이쿠처럼 경제적이고 심플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여름

 


병이 나아서

내 손으로 장미를

꺾었다네

-시키(p51)

 



마사오카 시키는 메이지를 대표하는 문학자 중 하나로 근대 하이쿠를 정립했다 한다.

20대부터 악화된 결핵으로 7년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 지내다가 서른넷에 세상을 떠났다. 한 송이 장미를 꺾는 일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니건만, 오랫동안 병상에 있다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니 참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아프고 난 뒤 건강을 찾고 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많이 아파본 적 있는 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하이쿠다.

 



양귀비꽃

그런 식으로 지니

버릇이 없네

-소세키(p56)

 



양귀비꽃이 어떤 모습으로 지는지 모르겠다.

소세키는 양귀비꽃을 아주 좋아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예쁘게 지는 꽃이 있을까. 피어있을 때는 아름다워도 떨어진 꽃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버릇없이 진 양귀비꽃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재치있게 쓴 하이쿠에 미소가 지어진다.

 



짧은 밤이여

얕은 여울에 남은

한 조각의 달

-부손(p63)

 



때리지 마라

파리가 손 비비고

발도 비빈다

-잇사(p70)

 



한여름에 귀찮게 달라붙는 파리들. 쫓아도 쫓아도 계속 날아든다.

쫓다가 지쳤나. 왠지 측은지심이 발동했나 보다. 손과 발을 비비며 잘못했으니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듯한 파리의 모습이 애처로운지 때리지 말라고 한다.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옛 문인들은 유머를 즐길 줄 알았다.

 



가을

 


뾰로통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도라지꽃이네

-소세키(p98)

 



새하얗고 신비로운 보라색으로 활짝 핀 도라지꽃을 처음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뜨거운 어느 여름날 바람에 하늘거리던 도라지꽃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봉오리 맺은 도라지꽃을 입을 다문 듯 뾰로통하다고 표현한 소세키 님은 나를 더욱 감탄하게 했다.

 

가을의 비가

멎고 나면 눈물이

마르려나

-도요죠(p109)

 



가을밤이여

장지문의 구멍이

피리를 분다

-잇사(p115)

 



가을을 노래한 하이쿠도 재치가 느껴진다. 무슨 마음 아픈 일이 있었나. 가을비를 보면 더욱 눈물이 나는 걸까. 어서 빨리 가을비가 멈추면 좋겠다. 화자가 눈물을 멈출 수 있게.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시원한 바람에 안도하지만, 어느새 살갗에 소름이 돋는 서늘함이 찾아온다. 장지문 구멍으로 들어온 바람. 장지문도 피리를 부는구나. 이렇게 일상에서 계절이 바뀌고 변화하는 것을 시인은 놓치는 법이 없다. 하이쿠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주변의 사물을 바라보며 한번 말을 걸어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겨울

 


못 다 쓴 원고에

틀어박힌 겨울의

해가 짧구나

-소세키(p135)

 



글 쓰는 작가에게 있어 원고 마감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책상 앞에 마냥 앉아있다고 해서 글이 술술 써지는 것은 아닐 테니.

금세 해가 저무는 겨울의 짧은 하루가 못내 아쉽다.



오므려 붙인

추운 밤의 무릎이여

책상 아래

-히사죠(p159)

 



왠지 나도 쓸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생길 정도로 쉬운 하이쿠다.

책상 앞에 앉아 곱은 손을 호호 불며 글을 쓰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 사람 가고

두 사람 다가오는

모닥불인가

-만타로(p162)

 



추운 겨울의 모닥불. 한 사람 한 사람 모닥불 앞에 빙 둘러앉는다.

여럿이 모여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정겹다. 모닥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이웃들의

다정한 이야기도 솔솔 피어오르겠지.

 



이 선집에는 나쓰메 소세키와 시키의 하이쿠가 특히 많이 실려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대학 시절 친구인 마사오 시키에게 하이쿠를 배웠으며 2,600구의 하이쿠를 남겼다 한다. 오랜 세월 병상에서 보냈던 시키는 병든 자신의 상황을 묘사한 하이쿠가 많았다. 아픈 몸이지만 붓을 놓지 않았던 문학에 대한 열정에 뭉클해졌다. 초록이 무성해지는 요즘 공원을 걷다 보면 너무나 기분이 좋다.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살아가는 이끼는 이끼대로 연두색 새잎이 계속 자라나는 나뭇잎들은 나뭇잎대로 그 자체로 아름답다.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한다. 바쁜 일상이지만 자신을 위해 짧은 시간이라도 휴식의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하이쿠를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마음의 여유를 찾는 멋진 휴식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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