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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미술관 - 그림으로 만나는 생의 모든 순간
장혜숙 지음 / J&jj(디지털북스) / 2022년 9월
평점 :
그동안 미술 관련 책을 읽어왔지만 ‘삶’을 테마로 한 책은 처음이다. ‘그림으로 만나는 생의 모든 순간’이라는 부제와 같이 출생에서부터 죽음의 과정에 대한 그림을 다루고 있다. 구성을 보면, 1. 탄생과 유년/태어나고 사랑받고 놀고 배우고 2. 교육/공부하고 꿈을 꾸고, 3. 사랑/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4. 삶의 기쁨/인생을 알아가며 세상을 이해하고, 5. 죽음과 장례/늙어 생을 마감하는 시간 이렇게 5가지 테마를 화가가 중복되지 않도록 30여 명의 화가, 50여 작품(클로즈업 제외)을 선정했다고 한다. 저자 장혜숙은 계룡산 숲과 공주의 산과 들 책 속의 길을 헤매며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후, 전업주부의 시절을 보내고 유럽 미술관 순례를 하는 혜택을 누리며 많은 그림들을 만났다.
그림이 좋아서 지난 15년간 관람객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력을 보면 뒤늦게 그림에 눈을 뜬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해박한 지식 정보를 풀어놓을 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었다. 젊은 날 열렬한 독서의 흔적이 행간에 가득했다. 또 자신의 삶 이야기에는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연민과 연륜이 느껴져 마치 미술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지금까지 읽은 미술책과 달리 저자의 이야기가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제시된 그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독자들은 당황할 정도로 개인적인 감상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베르트 모리조,<요람The Cradle>(1872)
잠자는 아기의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안전한 삼각형 구도와 아기와 엄마의 유대감을 이야기하면서 작가는 아기엄마인 에드마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는 듯 질문을 한다. 결혼과 함께 화가의 길을 떠나 엄마가 된 에드마. 이 그림이 그려진 1872년에 아기 엄마를 보는 시선과 현대의 시선이 같을지 묻는다. 이 삼각형이 ‘보호’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삼각형 안에 ‘갇혀 있는’ 엄마로 인식될 수도 있을 거라고. 과연 오랜 세월이 흘러 가치관이 달라졌으니 그림을 해석하는 관점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끔은 요람을 생각해야겠다. 삶의 온기가 식어갈 때는 내가 요람 속에 누운 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끼지 않을까. 곁에 있는 사람이 미워질 때는 그 사람을 상상의 요람 속에 눕혀보면 새로운 축복의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한 장의 그림,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이 나의 거친 심성을 보드랍게 갈아주는 역할을 한다.’(p19)
정말 기발한 생각이 아닌가. <요람>에 누운 아기가 되는 상상, 별것 아닌 일로 지친 일상을 보내는 우리도 가끔 떠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가지 테마로 말하는 그림 이야기는 규칙적인 리듬이 있다. 예들 들면, 한 화가의 그림과 이야기가 나오고 <작가 알기>에서 작가의 생애를 자세히 알려준다. 이어서 <미술사 맛보기>에서는 미술 사조를 당시 사건이나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알려주고 있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미술 사조가 있었나 놀라웠다.
<첫걸음, 밀레 이후>는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생 레미에 있는 동안 80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밀레 그림을 모사한 것이 21점이나 된다고 한다. 자연주의 화가인 밀레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밀레가 사망한 후 1875년에 열린 전시회에서 그림과 판화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 동생 테오와 요한나, 태어날 조카 빈센트를 생각하며 그린 이 그림을 정작 고흐는 못보고 떠났다.
이 그림을 보니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 떠오른다. 한 걸음 떼기 시작하고 걷고 뛰며 자란 아이들이 어느새 성장하여 자기 몫을 삶을 살아가느라 이러저런 고민을 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좀 더 많이 놀아주고 좀 더 사랑을 듬뿍 주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장면이기에 더욱더 시선이 머물게 되는 것 같다.
눈앞에 펼쳐진 화면에서 나와 연관되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서랍 깊은 곳에 숨어들어간 나의 옛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림 한 점 감상한 보람이 클 것이다. 나와 무관한 남의 그림에서도 나의 인생은 그렇게 타인과 연결된다. 이것이 그림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빈센트 반 고흐의 <첫 걸음, 밀레 이후>를 보면서 인생의 출발점에 선 모든 존재들의 발걸음이 힘차기를 기도한다.(p31)
작가의 시선이 참 따뜻하다. 그림을 보면서 옛 경험이 떠오르고 공감을 하게 되면 다른 이들의 경험에 감정이입이 된다. 그러면서 그림이 말을 걸어오듯이 선명해지는 것이다.
작가 알기(빈센트 반 고흐)
그림 소개가 끝나면 <작가 알기> 코너에서 화가의 생애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미술사 맛보기>
인상주의, 입체파 등 미술 사조는 익숙하지만 생소한 유파를 알게 된 것도 유익했다. 카라바기즘(Caravaggism(c,1600-50), 테네브리즘(Tenebrism),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위트레흐트 카라바기즘(Utrecht Caravaggism)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가와 작품 미술 사조까지 폭넓게 배울 수 있어 미술에 대한 지식과 교양을 쌓을 수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 <괭이를 든 남자 Man with a Hoe>(1860-62)
자연주의 화가 프랑수아 밀레의 <괭이를 든 남자>다. 파리 부르주아 계급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밀레는 ‘있는 그대로 그릴 뿐이라고’(p196) 했다. 옛날의 농경사회는 이제 스마트한 자동화기기의 깔끔한 사무실로 바뀌었지만 가장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프기 그지없을 것이다. 가장만이 아니라 일하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작가는 여기서 <괭이를 든 남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짐을 볼 수 있는 것이 그림 감상의 묘미라며 이렇게 제안한다.
‘자,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보자. 물론 무대는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 내가, 아버지가, 아들이, 엄마와 누이가 ’밀레의 괭이‘를 들고 그림 속 남자처럼 지친 모습으로 서있지 않은가?’(p198)
그렇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보듬어 줄 때 무거운 어깨를 내려놓고 안도할 수 있다. 그렇게 함께 마음을 나누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가의 해설과 감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을 통해서도 책을 읽고 느끼는 마음의 위안이 충분히 전해져 온다.
이 책 <삶의 미술관>은 읽는 독자마다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출생부터 죽음의 테마를 담고 있어서, 지난날을 추억하기도 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조심스럽게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그림 이야기보다 저자의 감상이 많이 실려있어서 공감했던 부분이 많았다. 그림을 보는 재미와 함께 독자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읽는다면 더욱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