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삶의 미술관 - 그림으로 만나는 생의 모든 순간
장혜숙 지음 / J&jj(디지털북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동안 미술 관련 책을 읽어왔지만 을 테마로 한 책은 처음이다. ‘그림으로 만나는 생의 모든 순간이라는 부제와 같이 출생에서부터 죽음의 과정에 대한 그림을 다루고 있다. 구성을 보면, 1. 탄생과 유년/태어나고 사랑받고 놀고 배우고 2. 교육/공부하고 꿈을 꾸고, 3. 사랑/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4. 삶의 기쁨/인생을 알아가며 세상을 이해하고, 5. 죽음과 장례/늙어 생을 마감하는 시간 이렇게 5가지 테마를 화가가 중복되지 않도록 30여 명의 화가, 50여 작품(클로즈업 제외)을 선정했다고 한다. 저자 장혜숙은 계룡산 숲과 공주의 산과 들 책 속의 길을 헤매며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후, 전업주부의 시절을 보내고 유럽 미술관 순례를 하는 혜택을 누리며 많은 그림들을 만났다.

 



그림이 좋아서 지난 15년간 관람객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력을 보면 뒤늦게 그림에 눈을 뜬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해박한 지식 정보를 풀어놓을 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었다. 젊은 날 열렬한 독서의 흔적이 행간에 가득했다. 또 자신의 삶 이야기에는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연민과 연륜이 느껴져 마치 미술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지금까지 읽은 미술책과 달리 저자의 이야기가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제시된 그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독자들은 당황할 정도로 개인적인 감상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베르트 모리조,<요람The Cradle>(1872)

 



잠자는 아기의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안전한 삼각형 구도와 아기와 엄마의 유대감을 이야기하면서 작가는 아기엄마인 에드마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는 듯 질문을 한다. 결혼과 함께 화가의 길을 떠나 엄마가 된 에드마. 이 그림이 그려진 1872년에 아기 엄마를 보는 시선과 현대의 시선이 같을지 묻는다. 이 삼각형이 보호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삼각형 안에 갇혀 있는엄마로 인식될 수도 있을 거라고. 과연 오랜 세월이 흘러 가치관이 달라졌으니 그림을 해석하는 관점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끔은 요람을 생각해야겠다. 삶의 온기가 식어갈 때는 내가 요람 속에 누운 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끼지 않을까. 곁에 있는 사람이 미워질 때는 그 사람을 상상의 요람 속에 눕혀보면 새로운 축복의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한 장의 그림,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이 나의 거친 심성을 보드랍게 갈아주는 역할을 한다.’(p19)

 



정말 기발한 생각이 아닌가. <요람>에 누운 아기가 되는 상상, 별것 아닌 일로 지친 일상을 보내는 우리도 가끔 떠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가지 테마로 말하는 그림 이야기는 규칙적인 리듬이 있다. 예들 들면, 한 화가의 그림과 이야기가 나오고 <작가 알기>에서 작가의 생애를 자세히 알려준다. 이어서 <미술사 맛보기>에서는 미술 사조를 당시 사건이나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알려주고 있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미술 사조가 있었나 놀라웠다.

 



<첫걸음, 밀레 이후>는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생 레미에 있는 동안 80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밀레 그림을 모사한 것이 21점이나 된다고 한다. 자연주의 화가인 밀레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밀레가 사망한 후 1875년에 열린 전시회에서 그림과 판화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 동생 테오와 요한나, 태어날 조카 빈센트를 생각하며 그린 이 그림을 정작 고흐는 못보고 떠났다.





이 그림을 보니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 떠오른다. 한 걸음 떼기 시작하고 걷고 뛰며 자란 아이들이 어느새 성장하여 자기 몫을 삶을 살아가느라 이러저런 고민을 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좀 더 많이 놀아주고 좀 더 사랑을 듬뿍 주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장면이기에 더욱더 시선이 머물게 되는 것 같다.

 



 

눈앞에 펼쳐진 화면에서 나와 연관되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서랍 깊은 곳에 숨어들어간 나의 옛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림 한 점 감상한 보람이 클 것이다. 나와 무관한 남의 그림에서도 나의 인생은 그렇게 타인과 연결된다. 이것이 그림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빈센트 반 고흐의 <첫 걸음, 밀레 이후>를 보면서 인생의 출발점에 선 모든 존재들의 발걸음이 힘차기를 기도한다.(p31)

 



작가의 시선이 참 따뜻하다. 그림을 보면서 옛 경험이 떠오르고 공감을 하게 되면 다른 이들의 경험에 감정이입이 된다. 그러면서 그림이 말을 걸어오듯이 선명해지는 것이다.

 


 작가 알기(빈센트 반 고흐)

 

그림 소개가 끝나면 <작가 알기> 코너에서 화가의 생애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미술사 맛보기>



인상주의, 입체파 등 미술 사조는 익숙하지만 생소한 유파를 알게 된 것도 유익했다. 카라바기즘(Caravaggism(c,1600-50), 테네브리즘(Tenebrism),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위트레흐트 카라바기즘(Utrecht Caravaggism)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가와 작품 미술 사조까지 폭넓게 배울 수 있어 미술에 대한 지식과 교양을 쌓을 수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 <괭이를 든 남자 Man with a Hoe>(1860-62)




 

자연주의 화가 프랑수아 밀레의 <괭이를 든 남자>. 파리 부르주아 계급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밀레는 있는 그대로 그릴 뿐이라고’(p196) 했다. 옛날의 농경사회는 이제 스마트한 자동화기기의 깔끔한 사무실로 바뀌었지만 가장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프기 그지없을 것이다. 가장만이 아니라 일하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작가는 여기서 <괭이를 든 남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짐을 볼 수 있는 것이 그림 감상의 묘미라며 이렇게 제안한다.

 




,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보자. 물론 무대는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 내가, 아버지가, 아들이, 엄마와 누이가 밀레의 괭이를 들고 그림 속 남자처럼 지친 모습으로 서있지 않은가?’(p198)

 




그렇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보듬어 줄 때 무거운 어깨를 내려놓고 안도할 수 있다. 그렇게 함께 마음을 나누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가의 해설과 감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을 통해서도 책을 읽고 느끼는 마음의 위안이 충분히 전해져 온다.

이 책 <삶의 미술관>은 읽는 독자마다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출생부터 죽음의 테마를 담고 있어서, 지난날을 추억하기도 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조심스럽게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그림 이야기보다 저자의 감상이 많이 실려있어서 공감했던 부분이 많았다. 그림을 보는 재미와 함께 독자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읽는다면 더욱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11-08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옆에 붙은 플래그들이 인상적이네요 ^^ 역시 책잘읽는 모나리자님~!!

전 좋았던 페이지는 그냥 끝부분을 접습니다 ㅋ

모나리자 2022-11-08 13:05   좋아요 2 | URL
처음엔 미리 기록하면서 읽었는데 그게 귀찮고 맥이 끊기다보니 저렇게
붙이면서 읽습니다. 붙이다 보면 다닥다닥!ㅎㅎ

접는 페이지도 상당히 쌓일 텐데요.ㅋㅋ
맛점 하셨지요~ 남은 오후도 기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새파랑님.^^

서곡 2022-12-03 0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포스트잇 붙였었는데 너무 많이 붙이게 되더라고요 ㅎㅎㅎ

모나리자 2022-12-06 21:27   좋아요 1 | URL
네,많은 분들이 포스트잇 활용해서 독서하는 겻 같아요.ㅎ
답글을 깜빡 했습니다.. 서곡님.^^
추위에 감기조심하시고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시는 모든 작가들의 욕망이다. 시가 언어의 제왕인 이유는 은유메타포(metaphor)이기 때문이다. 해석과 상징을 거느린 그 자체로사전이다. 그러나 종종 메타포는 비윤리적이다.  - P171

<오감도>에 대한 해석들, 초현실, 절망, 환상, 난해, 공포, 아방가르드, 심지어 민족 독립을 위한 병법까지…………. 나는 공포 외에는동의하지 않는다. <오감도>는 현실적이며 직설적이다 - P172

이상에게 피사체와 인식 주체의 관계를 달리 설정하는 탈식민주의적 상상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전경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오감도>는 가능했다. 비정상사회에서의 정신 분열과 예술가의 윤리가 낳은 걸작이다.
이상은 조감의 주체도 민초도 될 수 없었던 자기 한계에 솔직했다. 다만 건강이 좋지 않아 동경하던 도쿄에서 멜론과 레몬을 찾으며 27살에 죽었고, 신화화되었다. 1972년에 나온 <문학사상> 창간호 표지는 친구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다. 내 책상 앞에 있다. 나는 이 그림을 좋아한다. 예술가의 평범한 얼굴이다. - P173

이 사건에는 간첩과 조작의 모든 요소가 등장한다. 자국이 파견한 간첩을 의심하는 국가, 범인이 유대인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어서 범인이 되는 현실, 그를 반역자로 몰기 위한 대화에서 "120밀리미터 포의 수압식 제동기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드레퓌스가 갑자기 손을 멈춘 것은 뭔가 켕기는 것이 있어서다."라는 식의 유죄 추정, 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에밀 졸라로 대표되는 지식인의 사명(그가 쓴 ‘나는 고발한다!‘가 실린 신문은 하루에 30만 부가 팔렸다. 드레퓌스의 억울함에 재심을 요구하는 세력과 재심 반대파의 10년에걸친 갈등과 투쟁.‥……….

한편 나는 이 사건이 역사의 모범으로서 지나치게 상기되는 것이 다소 불편하다. 드레퓌스의 12년, 아니 평생에 걸친 고통과 양심세력의 투쟁 덕분에 ‘공화국 프랑스‘는 한국 같은 ‘제3세계‘가 본받아야 할 민주주의의 모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자부심이대외 정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프랑스가 알제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라. 그들의 정의는 국내용이지 다른 나라, 다른 인종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 P190

"사람은 누구나 두 나라를 갖고 있다. 자기의 모국과 프랑스다." 이 문구는 "프랑스가 이 나라 자체의 원칙(인권)에 의해 붕괴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사회주의자들과 르낭(Joseph ErnestRenan) 같은 유명 사상가를 포함한 은폐 세력에 맞서, 재심 요구파의 선두에 섰던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ou)가 쓴 감동적인 글의 일부다. 국가는 영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정신으로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클레망소는 후자의 문제, 즉 어떤 가치를 지닌 프랑스가 진정한 프랑스냐고 호소했다. 누구나 두 나라를 갖고 있다. 국가는 실체가아니라 이질적인 이념들이 경합하는 제도다. 국론 통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페어플레이는 중요하다.
-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모나리자 > [오늘의 한문장]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벌써 1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2-07-29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드디어 민음이 잃시찾 완간 한다고 합니다!
모나리자님 열쉼히 열독!^^

모나리자 2022-08-02 19:21   좋아요 1 | URL
정말 반가운 소식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스콧님~^^
 

책 읽기는 물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강을 건널 때는 온몸이젖을 수밖에 없지만 작은 개천을 건널 때는 물방울 튀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깊은 강을 건너다가 몹시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고,
작은 개울이라도 물이 불었을 때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비가 온다면 어느 물가를 건너더라도 온몸이 다 젖을 것이다.
- P18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몸이 슬픔에 잠긴다‘, 기쁨에 넘친다‘, 감동에 ‘넋을 잃는다‘……… 텍스트를 통과하기전의 내가 있고, 통과한 후의 내가 있다. 그래서 간단히 말해 독후의 감이다. 통과 전후 몸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경우도 있고, 다치고 아프고 기절하는 경우도 있다. 내게 가장 어려운 책은 나의 경험과 겹치면서 오래도록 쓰라린책이다.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전‘이다. - P19

독서는 저항, 불복종의 시작이다. 이 책에는 내가 그간 겪은 ‘책,
글쓰기, 공부와 여성/아줌마‘와 관련해 차별, 편견, 무시, 경멸, 혐오당한 일화는 쓰지 않았다. 남들이 봐도, 지금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화가 무궁하다. 20여년동안 거의 매일 하루에 한 건 이상겪었다. 너무 많아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누가 믿을까 싶어서 쓰지않았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가장 강력한 지배는 사람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금지하거나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독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갑‘은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잃을 것이 없는 사람, 덜 사랑하는 사람일지모르지만 권력이 두려워하는 인간은 분명하다. 세상이 넓다는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다.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6월 우연히 TV 화면을 바라보다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쏙 빠져들었다. 글쎄 프로그램 이름이 <지킬박사와 가이드>였다. 문학작품 제목을 패러디한 것도 웃겼고 호기심이 생겼다. 미술을 아주 좋아한다는 의사인 출연자가 명화를 소개하며 호르몬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결국은 장의 면역력이 뇌 건강과 연결되어있다는 건강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은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이고, 뭉크의 <절규>는 도파민, 그리고 프레더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6>은 멜라토닌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들을 바라보면 실제로 해당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얘기였다. 어라, 진짜일까! 정말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의사라서 명화에서 각종 호르몬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그림을 보는 관점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꽤 신선했다. 그렇다면 좋은 그림을 많이 감상하면서 행복한 감정을 자주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책이 나온다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기대감 작렬하며 설렌 것은 물론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바라보기만 해도 잠을 부르는 듯한 이 그림을 그린 프레더릭 레이턴은 정작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에피소드까지 알게 되었다. 저 여인처럼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을 자보고 싶은 화가 자신의 소망을 담았던 것일까. 그림이든 글이든 자신이 처한 상황과 희망을 담아내는 도구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이라고 돼 있어서 온전히 프레더릭 레이턴의 그림만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고흐부터 시작해서 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나와서 너무 행복했다. 이 책을 만난 계기가 너무 우연이고 신기한 기분이 들어서 서두가 길었다.

 




 우선 이 책을 읽고 소장하게 된 기쁨부터 언급하려고 한다. 다른 미술 관련 책보다 의외로 사이즈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속지는 두툼하고 고급의 용지에 선명하게 인쇄된 그림은 그 자체를 보기만 해도 황홀할 정도다. 그리고 글은 적당히 짧고 여유로운 여백이 있어서 읽기에 너무 좋았다. 마치 그림의 힘이라는 테마를 잘 반영하여 독자들을 편안하게 하려고 디자인에도 배려한 듯 느껴졌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미술책과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의 강의를 듣는 듯한 해설을 따라가며, 그림이 주는 치유의 힘을 느꼈다. 이제 그림을 감상하는 참맛을 아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자주 이 책을 끼고 살게 될 것 같다.

 




 저자 김선현은 미술치료 불모지인 국내에서 미술치료계 최고 권위자이자 트라우마 전문가로서 동일본 대지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네팔지진, 세월호 사고 등 수많은 사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20년 넘게 피해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에는 그림 처방전』『중심』『너에게 행복을 선물할게등 다수 있으며 이 책에 실린 그림은 미술치료 현장에서 가장 효과 있었던 세기의 명화 89점을 싣고 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가장 향상시키고 싶은 다섯 가지 영역-‘-사람 관계-부와 재물-시간관리-나 자신’-을 주제로 명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림 치유를 하면서 만난 내담자와의 생생한 에피소드도 좋았다. 나는 주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치유 받았지만 한 장의 그림을 보면서도 불안, 걱정, 고통을 치유받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리뷰는 나의 마음과 시선이 더 쏠렸던 명화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써 보려고 한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


 


몇 해 전에 이웃 블로거의 리뷰에서 이 그림을 본 적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그림을 모를 때여서 그다지 멋진 그림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 그림은 하던 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 있는,

한 박자 멈춰 선 느낌을 전해줍니다.(P27)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는지. 책도 읽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집안일은 쌓여간다. 그렇다고 한번 집안일을 붙잡으면 중요시 여기며 늘 하고 있는 일에 지장이 생기니 오래 붙잡을 수도 없다. 그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언제 그많은 세월을 보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 그림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는 있잖아. 멍때리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생각했던 나. 그러면서 휴대폰은 너무 자주 들여다보는 건 아냐.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




 존 밀레이/눈먼 소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 말이 있듯,

일에 너무 매몰되면 눈먼상태가 되어

주변을 살피지 못하기 십상입니다.(P31)



 

 나는 무엇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다른 걸 잊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는 엄마께 안부전화 하는 걸 한동안 깜빡해서 혼난 적도 있다. 그후로는 자주 전화를 드린다. 전부터 이런저런 공부를 하느라고 스트레스를 좀 받았던 것 같다. 예전에 공인중개사 공부할 때도 미련스럽게 하루 10시간 이상을 하느라고 힘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다. 공부도 일도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에 잠식당한다. 그때 내가 그림의 힘에 대해 알고 자주 그림을 감상하며 공부했더라면 눈도 즐겁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보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책을 만나는 것이나 무언가를 만나게 되는 계기는 모두 때가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노랗고 붉은 난색 계열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선사한다고 한다. 자주 들여다보아야겠다.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림




장 프랑수아 밀레/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3년째 접어든 코로나는 완만해진 듯하더니 다시 확산세로 재유행이 예상보다 빨라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날씨도 덥고 정말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잘 간다. 하루하루 규칙적인 루틴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자주 그림을 들여다보고 휴식같은 음악을 잠깐씩이라도 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저자는 그림을 보면서 편안한 음악을 들으면 효과가 더 좋은데, 슈베르트의 즉흥곡 2번 내림 A장조를 추천하고 있다. 리뷰를 쓰는 내내 들었는데 역시나 마음이 편안했다.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비밀





 빈센트 반 고흐/ 수확하는 농부

 



 평생을 고독과 가난과 함께 싸워야 했던 고흐의 열정은 그림에 쓰인 색깔로도 충분히 전해져 온다. 잘 익은 곡식은 노랑색이다. 노랑은 편안함과 희망을 전해준다고 한다. 굶어죽을지언정 모델을 사서 그림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수하는 걸 택하겠다던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을까.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기를, 그때가 결국 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그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 그림을 자주 바라보며 고흐가 가슴속에 품었을 희망을 떠올려야겠다.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을 때





 프레더릭 레이턴/타오르는 6

 




 보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나는 평생 거의 낮잠이라는 걸 모른다. 그에 비하면 남편은 머리만 닿았다 하면 언제든 어느 때든 잘 잔다. 부러운 일이다. 낮잠 좀 자야겠다, 마음먹고 누우면 잠이 오히려 달아난다. 잠이 안 오더라도 누워서 잠깐씩 휴식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저렇게 예쁜 드레스는 못 입을망정.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나의 문제들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미술치료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는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거든요.(P235)

 



 이 그림은 아주 눈에 익은 그림이다. 그림 설명을 읽다가 작년에 읽었던 설기문 박사의 내 마음의 거리두기가 떠올랐다. 불안, 걱정,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자기객관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3자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 공중에 떠 있는 드론을 상상하며 감정에서 나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자기객관화의 의미를 절묘하게 담아낸 그림이구나 감탄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화가는 자기객관화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이 그림을 그린 것일까. 또 여기에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저자가 그림을 보고 건져낸 자기만의 심리학적 해석일까. 아무튼 너무도 절묘해서 이해되지 않던 어려운 문제가 딱 풀린 기분이다. 전에 이 그림을 다른 미술책에서 보았을 때는 전혀 이런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그림이라는 걸 몰랐다. 이제야 그림이 시원하게 이해되고 재밌어진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니. 미루기만 했던 이 작품을 만날 때가 된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





클로드 모네/우리 집 뜰의 카미유와 아이

 



 화사한 꽃이 피어있는 정원 앞에서 아이는 놀이에 빠져있고 엄마는 바느질 삼매경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면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일깨워주는 그림이다. 우리 아이들도 저 아이 만할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후딱 지나갔는지 아련할 때가 있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들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지금을 즐겁게 살아가세요, 하고 그림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화가의 작품과 유파를 암기하고 시험을 보던 학창시절 미술 시간은 정말 재미없었다. 토막난 크레파스며 말라붙은 그림물감으로 짧은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랬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많은 그림책을 접하고 조금씩 그림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다. 그동안 내가 그림을 마주한 방식은 알아두어야 할 교양이나 미술관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면 이번에 그림의 힘은 그림을 감상하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내가 책으로 힘들 때마다 위로받은 것처럼 한 점의 그림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림의 주인공과 대화하며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바로 그림이 가진 치유의 힘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는 고급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어떤 그림이 좋으면 그걸로 됐다. 어떤 그림에 힘을 얻었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필요했던 그림이다. 그림으로 일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큰 소득이다.

-(채널예스-저자 인터뷰 중)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7-15 2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7p그림은 멀리 광장을 걸어가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뒷모습, 멜랑꼴리로 새겨졌어요
제게는... ^^

모나리자 2022-07-18 14:36   좋아요 1 | URL
네,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니까요.
그것이 그림의 힘이고 매력인 것 같아요.
새 한주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그레이스님.^^

새파랑 2022-07-15 2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꿈>의 표지가 ‘타오르는 6월‘ 이었군요~!! 완전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ㅋ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저 그림은 책 표지로 자주 본건데, 산이 아니라 바다였군요 😅 요책 탐나네요~!!

모나리자 2022-07-18 14:37   좋아요 1 | URL
어머~ 진짜네요~~ㅎ
정말 그림이 너무 예뻐요.
네, 치유의 힘을 가진 그림과 짤막한 해설이 너무 좋았어요.
새 한주도 화이팅 하세요~새파랑님.^^

scott 2022-07-22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미술 관련 서적은 도판이 중요 한 것 같습니다!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비밀

여름 철에는 시원하 에어콘만이 ㅎㅎㅎ

모나리자님 주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모나리자 2022-07-26 10:11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이전에 읽었던 재질이나 그림의 화질이 월등히 뛰어나서
아주 보기도 편했고 힐링의 느낌을 듬뿍 받았어요.

감사해요~스콧님~
장마 끝 무더위라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쭉 화이팅 하세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