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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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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후 문학의 거장이라는 엔도 슈사쿠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슈사쿠의 마지막 장편 소설이며 그의 첫 작품 침묵을 능가하는 엔도 문학의 집대성이자 최고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슈사쿠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고 사후에는 그의 유언대로 이 두 작품은 관 속에 넣어졌다.

 


선과 악이 혼재한 인간의 내면에 살아 숨 쉬는 신의 모습을 그린 역작!’

 


소설은 크게 13장으로 되어있는데 주된 내용은 이소베, 미쓰코, 누마다, 기구치 네 사람이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만나 각자의 사연과 어우러지며 스토리는 무르익는다. 이소베는 말기 암을 선고받은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다. 이소베의 아내는 세상 어딘가에 다시 태어날 테니 자기를 꼭 다시 찾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아내와 살면서 거의 일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남편이었다. 아내가 죽기 전에 쓴 일기나 유품들, 이소베에게 일상생활을 알려주는 메모를 발견하고 점점 아내가 없는 현실을 실감한다. 이소베는 왜 인도 여행을 갔을까. 환생하는 아내를 만날 수 있을까.

 



나루세 미쓰코는 대학에서 불문과를 다니던 시절 친구들에게 모이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강의 텍스트였던 쥘리앵 그린의 소설 모이라(Moira)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모이라는 자기 집에 하숙한 청교도 학생 조지프를 장난삼아 유혹한 아가씨다. 여기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펼쳐진다. 촌스럽고 수동적인 성격의 오쓰라는 철학과 학생이 있는데 후배들은 그를 한번 구워삶아 보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개방적이고 활달한 미쓰코에겐 오쓰가 너무 촌스럽고 답답하기만 했다. 미쓰코는 순진한 오쓰를 장난으로 유혹하다 차버렸고 그 일은 미쓰코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게 된다. 그 오쓰가 신부가 되어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미쓰코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누마다는 동화작가다. 그는 유년시절을 일본의 식민지였던 만주의 다롄에서 보냈다. 부모님의 불화에 괴로워했고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는데 그때부터 누마다는 검둥이나 새한테 비밀을 털어놓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구관조를 키우게 되었는데 투병 생활 중 수술을 하고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구관조는 죽어 있었다. 혹시 내 몸을 대신해 준 건가 누마다는 생각하며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개와 새 등 살아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지탱해 주었는가를 느끼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5장 기구치의 이야기는 태평양 전쟁 때 미얀마 정글에서 겪은 전우 쓰카다와의 처참했던 죽음의 기억을 떠올린다. 알콜 중독자인 쓰카다가 기구치에게 취직을 부탁하자 당시 죽어가는 자신을 구해준 은혜를 갚는다 생각하고 지인에게 소개한다. 쓰카다는 도쿄로 올라와 일자리를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한다. 어쩌다 알콜 중독자가 되었을까. 미얀마 정글에서 죽은 동료의 인육을 먹게 된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평생을 살았다는 것을 기구치도 뒤늦게 알게 된다. 도마뱀 고기인 줄 알고 먹었지만 인육이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고 훗날 그 죽은 동료의 아내와 아들과 눈을 마주친 이후 술을 마시지 않고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없었다고 오열을 한다.

 



이처럼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저마다 고통스러운 사연을 품은 채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렀고 인도 여행을 왔다. 온갖 악취가 풍기는 거리와 깡마른 잿빛 소들이 걸어 다니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어린이를 만나는 등 맨살 그대로의 인도를 경험한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가난한 사람이든 귀족이든 할 것 없이 누구나 갠지스강 물에 몸을 담그고 죄를 씻는다. 그리고 그 시신의 재를 강에 흘려보내면 윤회로부터 해방된다고 믿는다. 기구치는 이 광경을 보며 미얀마의 죽음의 거리를 떠올린다. 한편 이소베는 일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자주 아내를 떠올렸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생활이나 보잘것없는 광경이었다. 흔해 빠진 무미건조한 대화였지만 이소베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시크교도와 힌두교도가 다투다가 격화되어 수상이 살해당하고 복잡한 국면으로 치닫지만 관심이 없다. 오직 아내에 대한 추억이 가치 있게 생각되었고 무관심했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사무쳤다.

 



네 명의 인물 중 가장 의아하게 생각된 사람은 미쓰코였다. 가난도 겪지 않았고 당당한 자신감 그 자체로 보였던 미쓰코는 삶에는 좀 회의적인 태도가 보였다. 공감 능력도 별로 없어 보였다. 기구치가 전우 쓰카다가 동료의 인육을 먹고 평생 고통스러워했다는 이야기나 임종 때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미쓰코는 별로 동요되지 않는다. 미쓰코는 오쓰가 카톨릭 신자가 되어 종교에 귀의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도만이 아니라 이란 이라크의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신이 살아있다 한들 이런 증오의 세계를 해결하지 못하니 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카톨릭 신자인 오쓰가 갠지스강의 화장터로 시신을 나르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렴풋이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엔도 슈사쿠의 이 작품은 일흔의 나이에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써낸 작품이라고 한다. 그때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전기적 사실들을 이소베, 미쓰코, 누마다, 기구치, 오쓰라는 등장 인물에게 자신의 분신처럼 그려놓았다. 만주 다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 투병 생활을 하던 당시 구관조의 죽음, 테레즈 데케이루에 대한 심취와 랑드 지방 여행은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경험이다. 종교적 색채가 많이 묻어나는 작품이지만 그의 열린 종교관이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오쓰가 좋아했다는 이 말에서 엔도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P290)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엔도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제각기 고통의 시절을 보냈던 등장인물들은 치유의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선과 악이 혼재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인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데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미쓰코의 닫혔던 마음이 바뀌는 걸 보면서 신이란 권위적인 절대복종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미처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주제를 인도의 갠지스강을 모성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그 속에 녹여낸 작가의 탁월함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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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8-14 0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 종교가 있지만 끝은 거의 같을 텐데,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기도 하는군요 종교도 사람이 만들어 낸 거기도 한데... 신이 있다 믿는 사람한테는 있는 거고 없다고 여기는 사람한테는 없는 거겠지요 종교가 없다 해도 무언가 자신이 믿는 게 있기도 하겠습니다 그것 또한 끝은 같을지도... 사람 마음엔 하나만 있지 않겠지요 선과 악이 다 있고 악보다 선하게 살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순간 잘못된 생각으로 악에 물들 때도 있겠지만...


희선

모나리자 2025-08-15 17:54   좋아요 1 | URL
종교가 있는 이유는 서로 싸우라고 있는 건 아닐 텐데 지구상에서는 끊임없이 종교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군요. 내 종교는 옳고 상대방의 종교는 옳지 않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똘똘 뭉쳐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정치도 다르지 않군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때
인 것 같아요.

무더위가 아직 한참 남았나 봅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님.^^

페크pek0501 2025-08-14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나셨군요. 좋은 일이죠. 애정하는 책이 생긴다는 것에 기쁨을 느껴요. 가끔 완독한 뒤 실망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모나리자 2025-08-15 17:57   좋아요 0 | URL
네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인데 인간의 내면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네요.
이 작가의 책 <사무라이>도 사 두었는데 아직 읽지 못했어요. 꽤 두꺼운 책이라 더위가
좀 가시면 시작할 것 같네요.
건강하게 여름 나시길 바랍니다. 페크님.^^
 
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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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의 워턴은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왠지 제목에 대한 끌림으로 지난 2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어서 내려놓았다. 마치 프루스트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듯한 지루한 느낌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가문격식문제에 대한 전문가라는 등장인물이 나오고 전반적인 묘사가 그랬다. 그러다가 최근 읽다 만 책 마무리는 해야지 싶어서 다시 잡았다. 예상과 달리 초반의 지루함을 보상하듯 은근히 재미있어서 몰입하며 읽었다.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삼각관계를 그린 소설이지만 주인공 뉴런드 아처의 시선과 그의 심리묘사를 따라 읽어가는 묘미가 있다. 워턴은 이 작품으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남자 주인공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당시 뉴욕 상류층 사교계 남성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대한 역자 해설도 작품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등장인물의 이름에 대한 해석도 흥밋거리를 안겨준다. 이 작품은 연애소설도 되지만 비극적 요소도 가미되었다고 했다. 흔히 비극이라 하면 슬픈 이야기나 주인공의 고통을 떠올리기 쉬운데, ‘정보의 부족이나 무지로 인한 오판때문에 주인공이 가혹한 결말을 맞는 것도 비극의 범주라 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1870년대 초 뉴욕 오페라 극장의 공연장 분위기를 묘사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를 통해서 당시 뉴욕 상류층의 생활습관이나 문화, 관습을 엿볼 수 있었다.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뉴런드 아처는 약혼자 메이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메이의 사촌 올렌스카 백작부인이 음악당에 나타난다.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옷차림,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시원하게 내뱉는 성격의 그녀를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어쩐 일인지 점점 마음을 뺏기고,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지만 평행선을 달리게 되는 이야기다.

 



아처는 왜 그런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실질적으로 단독 주인공인 뉴런드 아처는 자신이 뉴욕 상류층 보통 남자들보다 지식이나 예술 면에 훨씬 더 뛰어난 안목을 지녔으며, 누구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고 깊이 생각했으며 세상 구경도 많이 한 뉴욕을 대표하는 존재라는 우월감이 있었다. 또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상기할 때 좀 열린 사고방식의 소유자였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떤 연민을 느꼈다. 그런데 확고한 실행력이나 배짱은 좀 부족해 보인다. 올렌스카 백작부인(엘런)을 향한 마음이 열렬했음에도 엮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단둘이 있는 시간이 있었고 둘이 함께 도망가려고 결심까지 했는데 그럴 때마다 방해자가 나타난다. 그 방해자는 어쩌면 당대의 통념이나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엘런을 친척들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온갖 수단 방법을 찾아서 개입하고 남편에게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그것은 강압적이지도 않고 원만하게, 그리고 우아하고 성대하게 송별식을 치르며 그런 분위기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마치 상류층의 행동방식은 이래야 한다는 것처럼.

 



여기에 약혼자 메이는 어떤 인물일까. 뉴욕 사교계에서 누구나 신붓감으로 탐을 내는 미모와 재력을 소유한 집안의 딸이다. 약간 순종적이고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규칙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성격이다. 되바라진 성격도 아니어서 아처와 사이가 좋아 보인다. 그런데 아처는 은근히 메이를 무시한다. 나이 차가 많아서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모든 방면에 뛰어난 자신과는 좀 안 어울리는 건 아닌가, 손해 본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든 엘런과 함께하는 멋진 인생을 꿈꾸었건만 마음만 바빴지 아무 소득도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다고 회고하는 장면에 이른다. 온순하게 생각했던 메이가 사실은 아처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메이도 이미 세상을 떠났고 누구도 엘런과 함께 하는 삶을 말리는 사람도 없게 되었는데 아처는 지척에 있었음에도 엘런을 만나지 않고 발걸음을 돌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 듬직한 가장으로 명망 있는 시민으로 살아왔지만 아처 자신에게는 허탈한 인생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인생을 살게 된 오류는 아처 자신에게 있었다. 엘런을 향한 열정과 욕망만 있었지 연인의 참모습이나 그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메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다해 교육하고 헌신적으로 가정을 꾸려가는 것에 대해 감사하거나 행복해하지도 않았다. 현실을 살면서도 엘런에 대한 환상만을 진정한 현실로 여겼다. 한마디로 허깨비를 쫓는 인생이었다. 어쩌면 아처는 열정과 자신감으로 당당했지만, 당시 상류층의 통념이나 도덕 윤리에서 벗어나는 것에 용기가 없어서 그랬을까.

 



주인공 아처의 인생을 볼 때는 허탈한 감도 있지만, 메이의 인생은 모든 걸 획득한 인생이었다. 한 가정을 이룬 부부지만 한쪽은 승자였고 한쪽은 패자였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이디스 워턴은 유복한 미국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 살았던 만큼 풍요롭게 살았지만, 결별과 이혼의 고통으로 얼룩졌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의 고통을 메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깨끗이 치유하려는 씻김굿의 요소도 다분히 짐작할 수 있다. 메이는 겉보기와 달리 거짓 임신으로 엘런을 떠나게 하고 아처의 바람기를 막고 끝까지 가정을 지키도록 야무지게 처리했다. 엘런과 아처는 여러 번의 만남이 있었음에도 자꾸만 어긋났다. 정신적으로 메이와 엘런 어느 쪽에도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아처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착하기만 한 것 같았던 메이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아처에게 미안하지만 좀 웃기고도 살짝 안쓰러웠다. 삼각관계 삼부작이라는 나머지 두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후회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의미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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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29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워튼은 알라딘에서 인기 작가인 것 같습니다. 많이들 애정과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대단하십니다. 직장을 다니시면서 책 읽고 리뷰까지 쓰시다니... 저는 리뷰 한 편 쓰기가 힘들어서
백자평으로 대신하기도 하고 백자평도 쓰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좀 성실히 기록해 놓으려고 합니다.^^

모나리자 2023-11-29 23:07   좋아요 1 | URL
네, 여러 블로그에서 자주 보았던 만큼 인기 있는 작가 같아요.
대단하긴요. 많이 못 읽고 있는 걸요. 페크님은 칼럼 쓰시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시는 것 같아요. 연재 끝나시면 나아지시겠지요.
맞아요. 책을 읽다가 줄거리나 감상을 조금이라도 메모해 두어야 리뷰 쓰기도
편하더라구요. 전 읽다 만 책이 몇 권 있는데 처음부터 새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ㅜ
그러니 한번 잡았을 때 끝까지 읽어야 하는데.ㅎ
편안한 밤 되세요. 페크님.^^

새파랑 2023-11-30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 이 작품의 제목이 좀 평범? 무난?한 느낌이 있는거 같군요. 내용은 전혀 그러지 않는데 ㅋ 이디스 워튼 작품은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더라구요.

이 작품은 마지막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역시 뭐든지 초반을 넘기는게 힘들더라구요 ㅡㅡ

모나리자 2023-11-30 20:19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제목이 순정만화 같은 느낌인 것 같아요.ㅎ
그쵸. 저도 항상 생각하는 게 특히 소설은 100페이지는 넘어가야
속도감이 나더라구요.
네, 마지막 회고 장면이 짠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어요.
다른 작품도 관심이 생겼어요.ㅎ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12월에도 건강하시고 화이팅 하세요.^^

서니데이 2023-12-01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는 번역본을 보기 전에 영화가 먼저 소개되었는데,
90년대 영화라서 지금 다시 보면 느낌이 또 다를 것 같아요.
모나리자님, 오늘부터 12월입니다. 좋은 일들 가득한 한 달 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3-12-05 21:24   좋아요 2 | URL
네, 이 작품 영화로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처음엔 지루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선 좀 애잔할 것 같기도 해요.
주인공 아처의 회고 장면에서 유머스럽기도 할 것 같고요.
댓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12월이 되자마자 날짜가 슝슝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건강하고 행복한 12월 보내세요. 서니데이님.^^

서니데이 2023-12-05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3-12-05 21:2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올해는 서재의 달인을 빨리 발표했나 봐요.
엠블럼이 먼저 달려 있어서 놀랍고 기뻣지요.
편안한 밤 되세요.^^
 

상쾌한 햇살이 쏟아지는 10월 오후, 어젯밤에 늦게까지일을 해, 오후 1시가 지나도록 잠자던 나는 초인종 소리에확인도 하지 않고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신문 구독권유나 택배. 요 몇 해 동안 찾아오는 사람은 그런 이들뿐이라 청년 아니, 아들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까・・・・・・ 자네가 그 뭐냐."
"그 뭐냐?"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바람에 무심코 시선을 피하자 ‘아니, 이런 아들이 찾아왔는데 왜 그렇게 허둥대?‘ 하며 청년이 웃었다. - P8

"프리터라고도 하지. 8월부터 이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 얼마 뒤면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 새 점포가 생길 텐데 그렇게 되면 그리 옮길 거야.
그때까지만 여기서 다니겠다는 거지."
청년은 그렇게 말하더니 ‘다이후쿠 마르기 전에 어서 드셔‘라며 웃었다.
양쪽 입가가 살짝 올라갔고 눈에서도 웃음이 넘쳤다. 아무런 꿍꿍이도 없는 듯한 맑은 웃음. 그 여자와 똑 닮았다. - P14

"아저씨, 아니야. 난 원래 붙임성 좋고 요령 있게 태어난성격이야 엄마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고 아저씨가 보내준 양육비도 있어서 꽤 넉넉하게 지냈어."
너무 정확한 표현이라 내 마음의 목소리라고 착각할 뻔해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 알았어. 그렇지만 네 멋대로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말하지 말아줘."
- P23

"그래, 역시 이상하겠지. 남자가 쉰 살이나 나이를 먹고도 혼자 살고 평일 대낮에도 집에 있으니. 무얼 하는 사람인지 수상하게 여길게 틀림없어. 남들 시선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난나다. 생각은 이렇게 해. 그렇지만 이웃의호기심 어린 시선을 생각하면 숨죽이고 사는 편이………."
"아니, 너. 마치 내가 하는 이야기처럼 멋대로 혼잣말하지마."
- P37

어쨌든 나는 25년이나 아버지였다. 내가 참 무심하다는생각이 들어 놀랍기는 하지만, 아무리 같은 핏줄이어도 만나지 않고 살면 자기가 부모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지난주 수요일에 처음 실제로 아들을 만났다. 그렇지만 모르는 고양이가 집을 잘못 찾아 들어온 느낌이라 아들에 대한정 같은 게 솟아나지는 않았다. - P41

"그럼. 아저씨, 방에만 틀어박혀 길거리를 헤매는 젊은이 이야기만 쓰는 사이에 이런 당연한 것도 모르게 되었구나 큰일이네."
청년은 키득키득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의 말처럼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 청년의 저런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는데 고생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걸까?
이 청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비로소 아들에게 조금 흥미가 생겼다. - P57

66
"그런가………? 그런데 너 생각보다 내 소설 많이 읽었구나."
"그야 당연하지. 난 매달 사진을 보냈는데 아저씨는 돈만 보냈잖아? 그러니 책을 읽는 수밖에 없지."
- P88

도모는 계속해서 단호하게 어린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 녀석일 처리를 잘하는구나. 정말 나하고는 정반대다. 유전자만으로는 공통점이 이어지지 않는 걸까? - P105

"아, 그래. 그렇겠구나………. 어라? 그런데 넌 어떻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한 듯한 말을 듣고 깜짝 놀라자도모는 키득키득 웃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정도는 대부분 알아차려."
"그래?" - P130

사람을 대하는 내 안테나가 둔하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둔감한 내가 소설을 쓴다니, 우습다. 잘난 척하며 인생이 어떻다느니 하는 소리를 잘도 썼다. 나는・・・・・・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다. 도모가 아프다. 그것도 아르바이트를 빠질 만큼 아프다니 상태가 꽤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 P151

나는 어쩜 이리 한심할까. 눈앞에 나타난 도모는, 나를한 번도 본 적 없이 자란 도모는 엄청나게 건강하다. 그게답이다.
기가 센 미쓰키의 딱 부러지는 성격은 도모를, 그리고틀림없이 나까지도 지켜 주었으리라.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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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177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허승진 옮김 / 더스토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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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대 시성 중의 한 사람이고 독일 문학의 거장인 괴테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 작품은 그가 스물다섯 살에 단 14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발표한 직후 전 세계에 자신의 명성을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베르테르 신드롬이 생길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베르테르가 입었던 파란 연미복에 노란 조끼를 젊은이들이 따라 입었으며 2천 건에 가까운 모방자살이 발생하기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청년 괴테의 질풍노도와 같은 사랑의 열병을 앓던 그의 육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지만 모든 점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괴테의 친구인 예루잘렘이 친구의 부인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얘기와 법무실습을 함께 했던 동료의 약혼녀 샤를 로테에게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체험을 조합하여 작품으로 형상화 시킨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있다. 가장 친한 친구 빌헬름에게 쓴 편지로 177154일자 이야기로 시작한다. 멀리 떠나와서 잘 지내고 있다. 어머니께서 맡긴 일을 잘 처리하고 있고 곧 소식을 전해드리겠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이 있는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탄하며 묘사를 하고 있어서 눈앞에 선하게 이미지가 떠오른다. 편지들은 짤막짤막하다. 행복한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으며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낙원처럼 느껴진단다. 친구가 책을 보내준다고 했던 것에 대해 제발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장가라고. 끓어오르는 혈기를 잠재우려면 자장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천재 작가도 책이 물릴 때가 있다니.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왜 집을 떠났는지 밝히고 있지는 않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가족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며, 본 풍경들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청년시절 괴테는 감정이 풍부하고 열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권위적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귀족과 평민 계급이 뚜렷했을 텐데 평민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도와주거나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있는 청년이었으며, 다정다감한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공직자 S의 초대를 받아 무도회에 갔다가 베르테르의 인생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춤 파트너 일행과 마차를 타고 무도회장으로 가는 길에 샤를 로테라는 여인을 태우고 가게 되었는데, 베르테르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포로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춤 파트너의 고모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면서 이미 약혼을 했다고 알려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건만 아니나 다를까, 첫 만남에서 그녀의 자태,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행동에 온통 사로잡히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는 기본이고, 언변이 뛰어나고 책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임을 주도하거나 춤추는 것, 어린 동생들을 다정다감하게 돌보는 세세한 마음까지 어느 것 하나 흠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든다.

 



늘 로테와 로테의 동생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고 대놓고 구애를 하는 건 아니다. 어느 날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고이고 눈길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마치 어린아이 같이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친구에게 털어놓는 부분은 그 천진함에 또 웃음 짓게 한다. 우연히 그녀와 손가락이 스치고 서로의 발이 닿기만 하면 온몸의 혈관이 요동을 쳤고 이야기에 열중하다가 입김을 닿을 듯 할 때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쓰러질 것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격정적인 사랑의 열병은 점입가경으로 커져만 간다.

로테를 만나지 못했던 어느 날은 하인을 시켜 로테에게 다녀오라고 시킨다. 햇빛을 받은 야광석이 그 빛을 흡수해서 밤에도 빛을 발하듯이, 로테의 시선이 머물렀던 하인의 얼굴과 뺨, 윗옷의 단추, 외투의 깃에 닿았던 그 모든 것을 성스럽고 소중하게 여기며 행복해 한다. 이런 사랑을 어떤 여인인들 받고 싶지 않을까. 이 얘기를 전하며 만약에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는다.

 


 

그토록 로테를 사랑하면서도 다시는 찾아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로테에게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처음엔 로테는 베르테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베르테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깊지 않은 것 같았다. 약혼자가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우정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아니면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베르테르는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자석산 이야기처럼 로테에게 빨려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알베르트가 돌아왔다. 누구에게든 평판이 좋은 그를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알베르트에게 로테를 빼앗긴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그들과 우정을 나누어 간다. 겉으로는 우정이었지만 상당히 마음으로는 힘들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당당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심정이라니. 이들은 베르테르에게 알리지 않고 결혼식을 했는데 서운한 마음에도 자주 왕래하며 어울린다. 자살에 대해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자살을 나약함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하는 알베르트에게 강하게 반박한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서 기쁨, 슬픔, 고통 등 어느 정도까지는 견딜 수 있겠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파멸해버릴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느 선까지 견딜 수 있느냐하는 문제라고 말이다. 아마도 로테를 향해 치닫는 격정적인 사랑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피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대략의 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은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면서 권총을 빌려달라고 했고, 로테가 건네주었다는 그 총으로 자살하게 되는 비극의 최후다. 처음엔 무덤덤한 듯 보이는 로테에게 빠져드는 베르테르가 좀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나 태도에 민감하지 않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으로 알베르트와 결혼하게 되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이였지만 문학적인 공감대에서는 오히려 베르테르와 더욱 찰떡궁합이었다. 베르테르가 낭송해주는 오시안을 듣다가 로테는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하고 두 사람의 마음은 동시에 통한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에서 자신들의 슬픈 운명을 간파하게 된다.

 



아마도 어머니가 정해준 운명이라서 거스르지 못하고 알베르트를 선택한 건 아닐까. 알베르트도 충분히 훌륭한 남자였지만 베르테르에게 향하는 마음을 뿌리치려고 노력했던 듯하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죽음을 택하는 게 낫다는 중세 시대의 사랑, 너무나 고전적인 사랑이 지금 이 시대에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작품이 나온지 25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사랑에 대한 의미와 관념은 많이 달라졌다,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청년 세대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기성세대들에게는 지난날 사랑의 의미와 추억을 되새기며 읽어본다면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줄 것이다.

 



계속 편지형식의 글이 이어지다가 후반부에 뜬금없이 편집자가 독자에게라는 페이지가 온다. 처음엔 이 작품 편집자의 목소리를 넣은 건가 했다. 그런데, 답장이 없는 편지글 형식의 소설 내용상 전달할 수 없는 사건들을 보고한다는 의미로 문학 표현 기법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한다. 너무 참신하지 않은가. 로테에게 쓴 편지를 알려주는데 베르테르의 죽음이 임박했고 죽음에 대한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그만큼 더욱 긴장감을 자아내고 몰입감을 높여준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다니. 괴테의 천재성을 새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괴테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작품부터 권하고 싶다. 청년 괴테의 순수한 마음과 생각을 마주한 듯 친숙한 느낌이 들 것이다. 더구나 177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이라는 점도 소장 각이다. 질풍노도와 같은 베르테르의 사랑 고백을 들었으니, 다음엔 60년이나 걸려서 나왔다는 파우스트를 도전해봐야겠다.

 





126

 

어디를 가든 그녀의 모습이 나를 따라다닌다네.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그녀의 모습은 내 영혼을 온통 사로잡는다네! 두 눈을 감으면 여기, 마음의 눈이 눈을 뜨는 머릿속에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어른거린다네. 바로 여기에!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눈을 감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나타난다네. 마치 바다처럼, 심연과도 같은 그녀의 눈동자는 내 앞에,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린다네.(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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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8-05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만큼이나 답답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순수한 열정만큼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을것 같아요^^*

모나리자 2022-08-06 14:23   좋아요 1 | URL
네, 그래서 고전문학은 오늘날에도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더위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미미님.^^

새파랑 2022-08-05 1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괴테는 베르테르의 슬픔 아닌가요? 그런데 전 괴테 작품윽 베르테르밖에 안읽어봤네요 ㅋ 파우스트 어려워 보이더라구요😅

모나리자 2022-08-06 14:24   좋아요 2 | URL
네, 저도 파우스트 아주 오래 전에 조금 본적 있어요.ㅎ
역시 만만치 않을 거예요. 문학동네 2권짜리 갖고 있는데 한번 들춰봐야겠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님.^^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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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낸 이 작품이 두 번째 공쿠르 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 파문을 던졌다는 이 유명한 작품을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묵직한 느낌의 제목과 달리 열네 살 소년 모모의 시선으로 담담하고 거침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술술 읽혔고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는 사람들이다. 유태인으로 열다섯 살 때부터 창녀 일을 하다가 오십 세부터는 창녀들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 로자 아줌마, 권투선수를 하다가 엄마가 되고 싶은 롤라 아줌마, 평생 양탄자 행상을 하며 살아가는 하밀 할아버지, 이웃들의 의사 카츠 선생이 주된 등장 인물이다. 이들은 모모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관심으로 멀어질 때 크나큰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는 걸 살면서 종종 목격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모모는 어쩌면 축복받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자 아줌마를 세 살 때 알게 되었고 예닐곱 살이 되었을 때, 모모는 자기를 우편환 때문에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엄마의 존재가 궁금해서 물어보면, 로자 아줌마는 배은망덕하다며 욕을 하고 울부짖었다. 바나니아 라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송금되는 돈이 1년이나 끊겼어도 빈민 구제소로 보내지는 않았다. 로자 아줌마가 그렇게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아직 어리지만 모세는 눈치가 빨랐고 로자 아줌마의 표정을 읽을 줄 아는 명석한 아이였다. 또래 아이보다 키가 컸으며 아주 잘 생긴 소년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유달리 관심을 기울였을까.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 층 아파트에는 창녀들이 맡긴 아이들 일곱 명이 북적거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로자 아줌마는 이미 육십 오 세가 되었고, 95kg나 되는 육중한 몸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다고 푸념하는데 그 모습은 모모를 불안하게 만든다. 엄마 얘기를 했다가 혼이 난 모모는 개를 키우게 해달라고 졸라서 훔쳐 온 푸들을 키우다가 마음대로 팔아버리고 받은 500달러를 하수구에 버리는 기행을 하기도 한다. 병색이 완연한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보고 창녀들이 아이들을 맡기지 않자, 생활고에 빠졌다가 다시 아이들이 오자 아이들의 밑을 닦아주면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에 짠하고도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도 우산 아르튀르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입혀서 어릿광대 놀이를 하는 천진난만한 모모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로자 아줌마는 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어졌다. 답답한 마음에 밖에 나갔다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면 모모는 무서웠다. 아침에 로자 아줌마가 눈을 뜨면 행복했고, 로자 아줌마 없이 혼자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겁이 났다. 나딘의 집에서 본 영화처럼 거꾸로 돌려서 로자 아줌마를 열다섯 살 적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려놓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은 모모에게 가혹하기만 하다. 정신이 나갔다가 제정신이 되자, 로자 아줌마는 사랑하는 모모에게 엉덩이로 벌어먹고 사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암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온몸의 장기가 병들었다고 했다. 특히 뇌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죽기 전에 아들을 한번 안아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낯선 남자와 실랑이를 하다가 다른 아이를 가리키며 그의 아들이라고 속인다. 그 말에 이 아이는 내 아들이 아니라고 외치자마자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아들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감옥에서 11년을 살다가 막 나왔는데 눈앞에 아이를 두고도 안아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정말 안타까웠다. 자신조차 죽음을 앞두었으면서도 로자 아줌마는 그를 배려하지 않았다. 모모의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만큼 로자 아줌마에게 모모는 특별한 존재였다.

 



어쩌면 그들의 사랑도 끈끈한 동정과 연민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그녀가 창녀로 살다가 오십 세에는 다른 삶을 살자고 결심하고 창녀들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살짜리 모모를 만나고 키웠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가운데 모모는 인생을 배워 갔던 것이 아닐까. 세상에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로자 아줌마를 불쌍히 여겼다. 젊고 예쁜 나딘의 친절에 잠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로자 아줌마를 끝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

 


7층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지자 모모는 슬프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로자 아줌마는 늘 말했듯이 억지로 목숨을 부지하며 병원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카츠 선생은 안락사는 죄악이라며 반대하는데... 수용소의 트라우마로 무섭고 힘들 때마다 쉬곤 했던 그녀만의 별장이었던 지하실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다. 모모는 자꾸만 변해가는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감추려고 화장을 해주고 향수를 뿌려주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가 없었다. 돈이 없었고 이미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린 로자 아줌마... 결국, 악취를 맡은 이웃 사람들이 문을 뜯고 들어왔다. 죽은 로자 아줌마 옆에 모모는 누워 있었고. 어쩌면 모모에게 전부였을지도 모르는 로자 아줌마.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아야 할 자격이 있었던 로자 아줌마의 생은 그렇게 끝났다. 그래도 떠나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 모모는 자기 앞의 생을 잘 살아갈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 로자 아줌마, 롤라 아줌마, 카츠 선생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채워 두었으니까.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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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21 2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모모 축복 받은 아이

에밀 아자르 한 편의 영화처럼 살다 갔죠 ^^

모나리자 2022-06-22 14:5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스콧님~^^

그레이스 2022-06-22 0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못만나고 있네요^^

모나리자 2022-06-22 14:51   좋아요 1 | URL
언젠가 곧 만나시겠죠~
더워졌어요. 건강 조심하세요~그레이스님.^^

새파랑 2022-06-22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도 <자기앞의 생>은 별 다섯이군요~!! 저도 에밀 아자르의 최고작은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나리자 2022-06-22 14:56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좋았어요.
공쿠르상을 두번이나 받을 만하죠!!
더운 날씨네요. 오늘도 화이팅 하세요. 새파랑님.^^

바람돌이 2022-06-22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낸 책은 저도 이 책만 봤어요. 그런데 뭐 이 책 하나만으로도 대가의 면모가 바로 드러나던걸요.

모나리자 2022-06-2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그런 생각.^^ 한권씩 읽어나가야겠어요. 굿밤 되세요. 바람돌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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