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몇 년 전부터 이 저택에 쥐피앵이 없는 시간에 만찾아오다가 빌파리지 부인의 불편함 같은 아주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조끼 재봉사와 만났고, 그리하여 재봉사와 함께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들에게 마련된 행운,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쥐피앵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사람 중의 하나인 이 지상에서 함께 관능적인 쾌락의 몫을 누릴 수 있도록 운명 지어진 남자, 즉 나이 든 신사만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행운을갖게 되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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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되고 싶어 - 읽고 옮기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윤정 지음 / 동글디자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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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 제목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왜 아니겠는가. 외국어 공부가 좋아서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나 또한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번역가에 관심이 생겼고, 내 생의 마지막 직업은 번역가로 마무리 하고 싶다(될지는 모르겠지만), 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라 이 책이 눈에 쏙 들어왔다. 파란색 상큼한 표지디자인에서 3년 차 번역가의 풋풋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옮긴 책으로 스타트업 브랜딩의 기술,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등 여러 권 있다. 이 중 데뷔작이었던 스타트업 브랜딩의 기술은 독자들의 평가도 좋았고 스스로도 자랑스러운 역서로 꼽고 있다 한다.

 



10개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저자가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시간 관리, 번역료 수입, 앞으로 번역가의 전망까지 자세하고 리얼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샘플 번역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번역가가 되는가 싶어 신기했다. 번역가에 대한 관심으로 맨 처음 읽은 책은 김고명 번역가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였고, 그후로 김남희 번역가의 귀찮지만 행복해볼까, 이상원 번역가의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를 차례로 읽었다. 번역으로 10년 이상 30년까지 커리어를 쌓은 번역가들의 책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한 것처럼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안정적이라는 봉급생활자에 비해 약간 불안한 수입, 일에 밀려 여행을 마음껏 가지 못하는 고충도 있었고, 힘들게 번역하고 번역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이상원 번역가는 번역이란 골 빠지는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어서, 혼자 공부하며 낯선 단어와 부딪힐 때마다 위축되었던 나를 웃게 했고 위로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두의 공통점은 번역이라는 일을 정말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리뷰는 내가 평소에 가장 궁금했던 내용을 언급하며 쓰려고 한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번역공부를 하고 있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답답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원문을 어떻게 옮겨야 하느냐 하는 의역과 직역의 문제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샘플 번역을 하면서 여러 번 탈락했던 사례를 들면서 깨달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어의 경우에는 한 문장 안에서도 단어를 열거하거나 도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문장 순서 그대로 번역을 하면 왠지 정돈되지 않은 문장을 읽는 것처럼 숨이 찰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옮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된 글만 읽었을 때도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지를 중점으로 본다는 사실’(P77)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번역된 글이 깔끔하고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가를 따져보라고 했다. 번역자의 눈이 아닌 편집자의 눈, 혹은 독자의 눈이 되어 글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로 AI로 인해 사라질 직업을 언급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거기에 번역가라는 직업은 빠지지 않는 단골이었다. 인터넷상에서도 각종 언어의 번역기를 돌리면 어렵지 않게 위키피디아 정보를 알 수 있을 정도이고, 그밖에도 AI 기술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번역계에서도 20172월 국제통역번역협회와 세종대가 인간 대 AI의 번역 대결을 주최했는데, 결과는 24.510으로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고 한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번역 공부를 하면서 해석이 난해한 문장을 번역기를 확인한 적이 있었는데 엉뚱한 내용으로 해석된 것을 보고 AI가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구나, 안도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번역가의 전망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고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후반부 이야기는 번역가의 일상과 고충과 수입을 있는 그대로 알려준다. 육아와 병행하면서 번역일을 한다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한참 손이 가는 어린 두 아이를 떼어놓고 직장 일을 시작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번역가들의 일상이 잘 알려졌듯이 번역일이란 혼자서 외로이 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도 종종 정체감을 느낄 것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위안을 받았을까. 번역가들의 책을 사서 읽고 인터뷰를 찾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한다. 나 또한 공부를 하면서 이런 방법으로 힘을 얻고 있기에 반가웠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에 가장 먼저 눈과 귀가 쏠리기 마련일 것이다. 외화 번역으로 유명하다는 황석희 번역가의 일화에 빵 터졌다. 지하철에서 이 번 역 은이라고 써있는 전광판만 봐도 움찔한다는. 이것도 직업병(?)의 일종이라고 해야 할까.

 



맨 마지막 장의 질문과 답변에서는 번역가에 대해 궁금할 법한 질문과 답변을 싣고 있다이 글을 읽고 얻은 소득 중 한 가지는 적어도 번역가가 AI에게 밀리지 않고 당당한 직업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또 한가지는 번역가라는 직업이 역시 내 체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다. 끈기와 집념, 늘 새로운 내용을 읽고 이해하려면 일단 공부하는 걸 좋아해야 하는데, 내가 딱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번역가들의 화려한 스펙에 비하면 나는 거의 독학으로 공부한 실력으로 번역가를 꿈꾸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작가가 인용한 김남주 번역가와 김희정 번역가의 얘기를 되새기며 계속 꿈꾸기로 했다.

 



그럼 번역료, 인세 얘기가 나올 것이고 이 돈을 받고 행복하겠다 싶으면 번역을 하세요. 나를 행복하게 한 번역으로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후략)”(P158)

 


번역에 손을 놓지만 않으면 된다. 번역이 번역가를 놓는 일은 없다’(P180)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까? 우선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고 번역가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 오랜 경력을 쌓은 베테랑 번역가의 이야기도 좋지만, 새내기 번역가의 따끈따끈한 이야기도 유용한 정보가 되리라 생각한다. 번역하고 싶은 책을 찾아 검토/기획서를 쓰는 팁은 물론 다른 책에서 두루뭉술하게 알려주는 돈 얘기도 속시원하게 풀어 놓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얘기하는 부분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번역은 살아보는 거라고 했던 말도 여운이 남는다. 번역이란 사고방식 자체를 변환하여 저자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온전히 지닌 채로 옮겨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오고, 번역이 끝나면 저자의 세계에서 살다 나온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나도 부지런히 읽으며 원저자의 세계에서 오래 살아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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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0-18 2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벤져스 엔드게임 오역때문에 번역자가 엄청 욕을 먹었던 일 생각나네요.ㅎㅎ덕분에 황석희님의 빛나는 번역이 다시금 재조명받고 더 인정받았고요. 표지그림 너무 귀여워요!😉

모나리자 2021-10-19 13:17   좋아요 2 | URL
번역일을 하는 사람에게 번역 오류는 흔히 있는 일 같아요.
네, 표지가 그렇죠? ㅎㅎ^^

새파랑 2021-10-18 00: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의 번역책이 읽고 싶습니다~!!

모나리자 2021-10-19 13:1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말씀만으로도 큰 응원입니다~새파랑님.
ㅎㅎ 그런데 그게 언제가 될지...ㅋㅋ
힘내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scott 2021-10-18 0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책 기다립니다 🖐~~

모나리자 2021-10-19 13:1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스콧님~
역시 커다란 응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10-19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9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9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19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10-18 23: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번역 기대됩니다~🐱

그레이스 2021-10-18 23:23   좋아요 4 | URL
저두요

모나리자 2021-10-19 13:3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툐툐님~
아직 공부 중이라서요..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1-10-19 13:3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그레이스님~^^
남은 10월도 화이팅하세요~^^
 

늘 이런 식이다. 돈 얘기를 먼저 할까 말까, 돈을 밝히는 사람처럼 보이긴 싫은데. 그래도 앞서 인용했던 김남주 번역가의 인터뷰에서 내게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하며 마무리하겠다. "그럼번역료, 인세 얘기가 나올 것이고 이 돈을 받고도 행복하겠다 싶으면 번역을 하세요. 나를 행복하게 한 번역으로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돈 얘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경력을 쌓아야 하니까 번역료를 따지지 않는 이들도 있는데, 경제 관념을 염두에 둬야 번역가의 지위도 높아져요. 내가 하는 행동이 나비효과처럼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움직였으면 해요."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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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다 보면 번역이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할 때가 많은데(가끔 힘들 때는 그런 의미 부여가 위안이 된다), 책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모두 번역하노라면 한 문장 한 문장 옮기는 것이 나무심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번역가의 목표는 나무만 다옮겨 심는 게 아니고, 전체 숲을 옮기는 것일 테다. 원저자의 토양에서 국내 독자의 토양으로 한 그루 한 그루 옮겨 심은 나무들이 모여숲이 탄생하니까 말이다.  - P105

나 역시 많은 역서를 낸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번역하면 할수록, AI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더욱 강한 확신이 생긴다. 그래서 앞의 번역 대결‘ 주최자들처럼 번역하다말고 자진해서 번역기에 대결을 신청해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특히 미술과 수영의 역사를 다룬 인문학 서적을 번역하면서, 그리고 문장마다 저자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에세이를 번역하면서, 언젠가는 AI한테 밥그릇을 뺏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이건 AI가 절대 못 해. 너희가 해선 안 돼‘라는 자신감 비슷한 것이 자리잡았다.  - P113

특히 책을 번역하는 번역가라면 맥락과 상황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읽고 이해한 다음 우리 글로, 그것도 맛깔스러운 표현을 써 가며 옮겨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AI를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아직은) 주장하는 바다!
- P122

번역은 번역가의 글쓰기 스타일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직역이든 의역이든 일부러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는 쪽이 있고,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게 좋다는쪽도 있다. 나는 원문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이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한국어일 때도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 P124

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가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 에서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꼭 필요할까요?"라는 질문에 아주 신선한 대답을 내놓았다. "귀. 음감이 나쁘면번역을 못 합니다"라고,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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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번역 시험을 보듯 원문의 한 문장에 해당하는 우리글한 문장을 옮겨내는 데 집중해서 정확하고 꼼꼼하게 번역했는데, 합격한 번역가들의 결과물은 마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쓴 것처럼 원문과는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여기서 원문과 달랐다는 말은 어떻게들으면 굉장히 심각한 상황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 P76

한 단어, 한 구문을 모두 꼼꼼하게 옮겨내야만 출판사에서 점수를 매기듯 비교하고 채점해서 역자를 선택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출판사에서 샘플을 볼 때는 원문과 일대일로 비교하며 채점을 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된 글만 읽었을 때도 글이 아주자연스럽게 읽히면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지를 중점으로 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 P77

하루에 여섯 페이지를 번역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실컷 하고 나니까 겨우 한 장이 끝났을 때의 기분이란… 아마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막함에다 계약이라는 약속이 주는 책임감의 무게가 더해졌던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포기할까?‘, ‘여기서 관둔다고 연락할까?‘ 고백하건대, 처음 2주동안 날마다 이런 고민에 빠져서 이도 저도 아닌 시간만 낭비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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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16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여섯 페이지!
보통 전문 번역가들은 하루에 🖐🖐 채우 신다고 ㅎㅎㅎ

모나리자님의 이 책 발 췌문 읽기 넘 ㅎ넘 ㅎ 좋습니다!!

모나리자 2021-10-19 13: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책에도 그렇게 나와요.
규칙적인 일처리가 결과를 내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