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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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베르트를 향한 안타까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녀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그라들었을 때 화자는 할머니와 함께 발베크로 떠나는 장면에서 4권이 시작된다. 하지만 발베크로 와서도 그녀를 깨끗이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은 똑같은 아픔으로 화자를 괴롭혔다. 어쨌든 낯선 장소로 여행을 왔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옅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겠지. 화자는 질베르트에 대한 고통과 사랑의 부활이 오래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 감정을 오래 지속시켜 줄 만한 옛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 그래서 기분전환이 필요하거나 삶의 전환점이 되기 위해서는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구나. 항상 있던 자리에서 일상의 루틴이나 감정의 습관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배어 있을 것이다. 화자는 그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습관의 변화, 습관의 일시적 중단이 내가 발베크로 떠날 무렵에 습관의 작품을 완성했다. 습관은 사물을 약하게 하지만 안정시켜 주고, 사물의 붕괴를 초래하지만 그 붕괴를 무한히 유보한다. 몇 해 전부터 나는 날마다 이럭저럭 정신 상태에 따라 다음 날 정신 상태를 가늠해 왔다. 그런데 발베크에서는 새로운 침대가 - 그 침대 옆으로 파리의 아침 식사와는 다른 식사를 가져오는 - 질베르트에 대한 내 사랑을 길러왔던 상념을 더 이상 받쳐 줄 수 없었다. 칩거 생활은 세월의 흐름을 정지시키므로 시간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소를 바꾸는 일일 때가 있다.(물론 드문 일이긴 하지만) 발베크로의 내 여행은 그저 자신의 치유된 모습을 보고자 나서는 회복기 환자의 첫 외출과도 같았다.’(12P)

 




 그런데 아픈 몸 아주 건강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에 예민한 성격은 낯선 장소에 머무르는 일이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떠나올 때부터 어머니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난 어머니가 나 없이도 살 수 있으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고 느꼈’(19P)다는 부분에서는 웃음도 났다. 이미 청소년 나이인데도 분리 불안을 느끼다니. 어쩌면 부모를 향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일 수도 있겠지. 호텔 꼭대기의 전망 좋은 방도 파리의 내 방처럼 편하지 않았다. 잠을 못 이루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특히 할머니와 손자의 애틋한 사랑과 할머니를 향한 존경심, 친밀함을 묘사한 부분은 따뜻한 감동과 함께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하긴 그랬기에 할머니와의 여행이 가능했겠지.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장면을 얼마나 자주 볼 수 있을까.

 



 호텔 창문으로 바라본 풍경 등 당시 부자들과 국제적인 저명인사들이 묵었던 호텔 분위기 등 묘사를 통해서 당시 귀족층의 여행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화자와 할머니가 묵었던 이 발베크 그랜드 호텔은 노르망디의 유명한 해변 도시 카부르 해변의 그랜드 호텔이 모델이며 프루스트는 1907년부터 1914년까지 휴가철을 보냈다고 한다. 여행지에 모인 여러 군상들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삶, 여배우를 기다리는 연미복 차림 남자들의 설렘, 음식 이야기 등으로 계속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다. 그런데 화자는 전혀 평온하지 않다. 하지만 낯선 고장의 사람들 모습에서 르그랑댕과 스완네 문지기와 스완 부인을 만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스완이 <모세의 생애>벽화에 나오는 이드로 딸의 모습에서 오데트를 떠올렸듯이 말이다. 우리가 아는 인간 유형을 책 속 인물에서 발견하곤 하지 않는가.

 



 할머니의 옛 친구 빌파리지 후작 부인을 같은 호텔에서 만났는데도 할머니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나의 눈에도 그 할머니는 귀족 계급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고 자기 할머니와 담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다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결국 아는 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17세기 극작가 몰리에르의 아내의 학교의 장면을 소환해 낸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1689년 세비녜 부인이 쓴 글이나 편지가 자주 인용되고 있는데 당시 문화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해변에서 열리는 교향곡 연주회를 언급하는 장면은 오래전 가족 여행 때 해인사 경내에서 교향악단의 연주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의 멋진 감동을 떠오르게 했다. 정말 흔치 않았던 여행에서의 경험이었다.

 

 

 만연체 문장에 좀 적응이 된 것일까. 술술은 아니지만 흥미롭게 읽힌다. 당시 귀족들의 문화생활이나 정치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처음에 화자의 할머니가 옛 친구인 빌파리지 부인을 아는 척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둘도 없는 대화 상대가 된다. 샤토브리앙, 발자크, 빅토르 위고 등 위대한 작가들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일하지 않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귀족들의 삶을 비판하기도 한다.

 



 화자 또한 낯선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랐는데 차츰 적응해간다. 마차를 타고 여행하는 중에 보이는 꽃들, 사람들, 풍경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이나 삶을 관대하게 생각하게 되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있었다. 할머니를 비롯하여 어른들에 세계에 어울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병약해서 혼자 외출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그랬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청소년기에 꿈꿀 수 있는 이성에 대한 동경, 아직은 아니지만 상상력을 동원하여 꿈꾸며 행복해한다.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또 얼마나 애틋한지. 할머니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고 말하는데,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순수함이 느껴졌다.

 



 빌파리지 후작 부인의 조카인 생루와 화자의 친구 블로크, 샤를 뤼스 씨 등의 대화에 관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야기의 맥을 자꾸만 놓쳤다.ㅎ 그래서 앞으로 다시 가서 또 읽고...를 반복하고. 그러다가 발베크를 떠나기 전에 생루가 할머니께 사진을 찍어 드려도 좋은지 물어봤다며 들떠서 치장하는 할머니를 보고 화가 났고 그동안 할머니를 잘못 보아 온 게 아닐까, 하는 화자의 복잡한 감정이 엿보여서 웃음이 났다. 역시나 독점하고 싶은데, 할머니를 빼앗긴 기분이 들어서 질투를 하고 있었다. 단둘이 있고 싶고 할머니 얼굴에 키스하고 싶은데 아무리 기다려도 무관심한 할머니를 원망하며 울다가 잠이 들었다. 이런 손자가 있다면 요즘 할머니들 정말 행복하겠지. ㅋㅋㅋ 너무 귀엽다.^^

 



 마차 여행을 하면서 거리에서 보게 되는 소녀들을 향한 그리움?을 갖고 있었다. 한창 이성에 관심 있을 나이였으니까. 그 무리들은 노인을 뛰어넘는 등 장난이 지나친 걸 보고 노인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무례한 아이들로 비친다. 시모네 댁 딸이라는 아름다운 소녀와 사귀고 싶어하다가도 변덕스럽게 마음이 바뀌기도 한다. 아무튼 발베크에서 아름다운 소녀들의 얼굴을 보고 사귀어보고 싶은 마음, 그들을 관찰하고 몇 장에 걸쳐 묘사해 놓은 부분을 보면 소녀들을 보는 즐거움을 낙으로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날마다 다른 옷을 입었으며 새 모자와 새 넥타이를 보내 달라고 파리에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특정한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소녀들의 모습을 보고 관찰하는 것만으로 행복으로 여겼다. 소녀들을 향한 마음은 아래의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그녀들 모두를 사랑하면서 그중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을 만날 가능성이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감미로운 요소였기에, 다니지 이 만남의 가능성만으로도 내 삶의 온갖 장애물을 허물 수 있을 듯한 희망이 생겼고, 동시에 이 희망은 내가 그녀들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주 분노로 이어졌다.(319P)’




감성이 넘치는 청년의 이성을 향한 애끓는 마음이 엿보여 웃게 만들었다.

 



 이후 이야기는 거의 소녀들 틈에서 어울리며 보낸 이야기다. 스완이 말했던 화가 엘스티로를 리브벨의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되고 교류가 시작되면서 끝없이 그림 이야기가 펼쳐지고, 화실에 드나드는 소녀들과 교제하면서 그 중 알베르틴을 사랑하게 된다. 어느 정도 서로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화자는 알베르틴의 요청으로 그녀의 방에 놀러 갔는데, 뜻밖에 거부당하게 된다. 그 충격인지 화자의 마음은 소녀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라는 제목이 참 시적으로 다가왔는데, 어떤 향수를 느끼게 했다. 바로 소녀 시절의 추억 말이다. 여기서 는 마음껏 소녀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인간의 목소리가 새의 목소리보다 더 다양하고 음량이 풍부한 악기보다 더 많은 음이 담겨 있다고. 그리고 목소리가 변하듯이 얼굴도 계속해서 변해 가리라는 시간의 흐름 그 덧없음을 연상시켜주었다. 이 작품에는 사랑이 없다고 한다. 뒤에 나오는 제목을 보면 알베르틴도 지나가는 사랑을 예고하는 것 같다. ‘대상 없는 탐색이나 내면에서 나오는 감정인 질투가 프루스트적인 사랑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완전한 소유는 그 자체로 사랑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부분도 신선한 해석으로 다가왔다. 그러한 고통의 과정을 거쳐 글쓰기에 천착하며 이런 대작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원래 되찾은 시간의 일부분으로 계획되었던 것을 알베르틴에 관한 부분을 추가 집필하여 191912월에 공쿠르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완독!^^

 




<기억에 남는 문장>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근면한 습관이 한 권의 작품을 탄생시키듯이, 현재의 기쁨이 아닌 과거에 대한 현명한 성찰이 우리에게서 미래를 보호해 준다.’(291P)

 




 이번 이야기는 작가의 꿈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1909년부터 1912년까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작품 전체적인 구상과 집필을 마친 다음 출판사를 찾았다고 한다. 아마도 위의 저 문장을 되새기며 근면한 습관으로 그 많은 분량의 원고를 썼나 보다. 몇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고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출판을 조건으로 출간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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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9-04 21: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4권 완독 축하드려요~♡ 이젠 표지만 봐도 설레는 이작품! 할머니밖에 모르더니ㅋㅋ 사랑은 역시 움직이는거 맞죠😆

모나리자 2021-09-05 20:1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미미님.^^
할머니에 대한 극진한 사랑 짠하고도 정말 웃기더라구요. ㅋㅋ
역시 움직인다는 말이 맞았어요.^^

새파랑 2021-09-04 21: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르셀은 사랑꾼입니다 ㅋ 4권 완독 축하드려요~! 그런 그가 앞으로 사랑에 더 집착(?)하게 되는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모나리자 2021-09-05 20:22   좋아요 3 | URL
네, 앞으로 나올 얘기도 기대되는데요.
뒷부분은 그림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좀 빨리 읽지 못했네요. 잘 모르는 게 많아서... 한번 읽어서는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ㅎㅎ

붕붕툐툐 2021-09-04 2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4권 완독 축하드려요!! 4권쯤 되면 술술 읽히는군요!ㅎㅎ 저는 실제로는 읽히는데 심리적 저항감은 여전한 작품이라 자꾸 뒤로 미루고 있어욤~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앞으로 읽을 책은 리뷰에서도 줄거리 실눈으로 읽는데 이 리뷰는 다 읽었어용~ 헤헷!

모나리자 2021-09-05 20:24   좋아요 3 | URL
네, 감사합니다~ 술술까지는 아니고 조금 적응되는 수준? 이었어요.ㅋㅋ
분량도 갈수록 두꺼워져서 걱정이에요. 5권도 500쪽이 넘어요.ㅋㅋㅋ
감사합니다. 툐툐님.^^

막시무스 2021-09-05 10: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습관에 관한 작가의 고찰이 맘에 팍 꽂히네요!ㅎ 즐건 휴일되십시요!

모나리자 2021-09-05 20:25   좋아요 2 | URL
네, 인용한 문장 좋지요? 그런 시간들이 모여서 이런 대작을 완성했나 봅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막시무스님.^^
감사합니다.^^

scott 2021-09-05 1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르셀의 잃시찾은 사실상 개별적인 스토리로도 완성도가 높은 단편이 될정도로 뛰어난 작품, 읽을 수록 문장마다 스며있는 인생의 통찰력이 담겨 있죠 이제 4권을 넘어섰으니 완독의 길은 더욱 가까워졌네요 모나리자님 응원합니다 ^ㅅ^

모나리자 2021-09-05 20:26   좋아요 3 | URL
맞아요. 만연체 문장으로 읽기는 힘들지만, 속속들이 숨어있는 보물 같은 문장들이 보이더라구요. 이렇게 한권 한권 읽으면서 나아가면 되겠죠?
응웒 감사합니다~스콧님~~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_^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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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을 오래 붙잡고 있다가 겨우 완독했다. 주된 내용은 스완 부부의 살롱 이야기와 화자와 질베르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전직 대사였던 노르푸아 씨가 화자의 아버지의 초대받은 손님으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아버지는 항상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는데, 화자는 처음부터 문학에 뜻이 있었다. 그에게 보여 주었던 짧은 글에 대한 노르푸아 씨의 말에 낙담하고, 평소 존경하던 작가 베르고트 이야기도 듣게 된다.


 스완 부인의 집에 초대된 손님들이 화가 제롬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한다. 오늘날 파리지앵들의 토론 문화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데, 당시 이러한 살롱 문화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스완 부부는 초대에 참석하지 못하는 지인들의 전보를 모두에게 공유하는 바람에 온천지 호텔과도 같았다. 예전의 삶과 다른 오데트의 변화된 삶이 자긍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스완 부부 이야기가 길게 언급되고 있었다. 그렇게 반대하는 결혼을 했지만, 서로 잘 어울리는 듯했다. 이전의 스완은 ‘게르망트 사단’의 교제에 있어서 따분하고 천박한 느낌이 들면 제명선고를 내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리 신중하지 않았고 까다롭게 굴지 않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변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스완이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하지만 그 이야기는 더이상 언급이 없다) 스완은 결혼하기 전에 오데트에게 받은 고통을 복수하고 싶던 열망도 벌써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는 오데트가 눈치 챌까봐 조바심을 내고 있다.


 한편 ‘나’의 질베르트의 사랑은 어디까지 진전되었을까. 스완은 둘의 교제를 그다지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함께 어울리다가 헤어질 때면 슬프고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외출할 때는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니 슬프다. 언젠가는 질베르트를 만나러 갔는데 그녀는 없고 스완 씨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온 적도 있다. 스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마음이 찜찜했는데 질베르트에게 이런저런 영향력을 행사해 주기를 바라는 스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 얘기를 듣고는 “내가 뭘 하는지 더이상 알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스완의 이런 바람에도, 그녀를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질베르트가 ‘나’를 거부하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지는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안타깝고도 웃음이 났다. 짝사랑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오데트가 연주하는(스완이 그토록 좋아했다는 뱅퇴유 소나타 일부를) 소나타를 듣고 베토벤의 사중주곡 이야기로 이어진다. 바그너와 슈만, 베토벤을 마르셀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였다고 한다. 여기서 예술가의 지향점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왔다. 자신의 작품이 제 갈 길을 가기 원한다면, 작품을 아주 깊은 곳으로, 아주 먼 미래의 한복판을 향해 내던져야 한다고 ‘나’는 소나타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완 부인의 연주를 들으며 황홀해한다. 그게 질베르트를 향한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겠지.

​ 


그러던 어느 날 스완 부인의 ‘작은 회식’에 초대되었는데 거기서 베르고트를 만날 줄이야! 그렇게 존경하던 인물을 만났는데.. 상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해 전당처럼 축조해 놓았던 그 몸’을 뜻밖에 보게 되었는데 땅딸막한 키의 그를 보자 어이없이 무너진다.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기가 그토록 좋아한 책을 쓴 사람, 그 작가에 대한 당혹감을 길게 표현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노르푸아 씨가 말했던 이야기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목소리도 괴상하고 발음도 글쓰기 방식도... 모든 것에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작품에 대한 비판이 길게 이어지는데.. 베르고트의 모델로 그려진 작가는 아나톨 프랑스라고 한다.


취향에 대한 엄격함이나 단지 ‘부드럽다’고 할 수 있는 것만을 쓰겠다는 의지, 그리고 그를 수년간 무익하고도 멋부리는 하찮은 것들의 세공사로 통하게 했던 그러한 것들이 반대로 그의 힘을 만들어 내는 비결이었는데, 왜냐하면 습관이란 인간의 성격뿐 아니라 작가의 문체를 만들어 내며, 또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데 있어 여러 번 기쁨을 느끼며 만족하는 작가는 그렇게 하면서 자기 재능에 영구히 한계를 긋기 때문이다.(231P)


 주석에 의하면, 아나톨 프랑스는 19세기 작가들을 ‘부드러움’을 가진 작가들과 ‘힘’을 가진 작가들로 구별했다고 하는데 위에서는 그의 글쓰기에 대한 취향을 비판하는 부분이었다.


 위대한 음악가와 철학자들이 말하는 음악에 관한 견해를 언급하는 장면도 나왔다. 도대체 프루스트는 얼마만큼의 독서와 다양한 문화, 예술을 섭렵하고 있었던 것일까,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래서 20세기 문학적 사건이 되는 작품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최근 미술 관련 책을 읽는데 이 작품이 많이 언급되고 있었다. 거기서 인용된 내용을 만나서 반가웠다. 짝사랑인 듯 위태로움이 느껴졌는데 결국 후반부는 만날 수 없는 질베르트의 집에 가서 스완 부인을 만나 이야기하거나, 실연의 아픔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많은 나날 눈물을 흘려야 했고, 사랑하던 여자 질베르트를 마음속에서 잔인하게 죽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길고 긴 이야기였지만 참 안타까웠다. 그 과정에서 조금 성숙한 화자가 보였다. 2권에 비해 좀 지루했지만, 한 권씩 이렇게 나아가는 기쁨을 우선으로 여겨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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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01 21: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3권 완독 축하드려요~!! 저는 당시 문학 예술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다 이해는 못하겠더라구요. 그냥 읽는데 집중했던 것 같은 ^^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ㅋ

모나리자 2021-08-03 10:11   좋아요 2 | URL
네.. 정말 한가지 화제를 붙들면 2,30장은 그냥 넘어가요.ㅎ 2권에 비해 좀 지루했어요.나중에 두번때 읽을 때는 훨씬 낫겠죠. 뭐 이렇게 어려우니 읽어낸 것만으로 뿌듯하네요.^^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미미 2021-08-01 23: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완독 응원할께요~♡♡ ✊

모나리자 2021-08-03 10:1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미미님~~
다 읽으셔서 스스로가 대견하실 것 같아요.ㅎ
새로 나올 책 기다리는 일도 설레실 것 같아요. 책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기다리는 것이니.ㅋㅋ
8월도 화이팅입니다~^^

붕붕툐툐 2021-08-02 00: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3권 완독 축하드려용!!^^
저도 2권 오래오래 읽는 중이라, 기쁨을 조금은 알 거 같네용!ㅎㅎ

모나리자 2021-08-03 10:13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툐툐님~~
어려운 책은 좀 속도를 내서 읽는 게 낫다는 말을 다른 책에서 보았어요.
그래서 좀 자주 읽으려고 노력중이에요.^^

바람돌이 2021-08-02 00: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소설인가 철학인가? ㅎㅎ 화이팅하십시오.

모나리자 2021-08-03 10:16   좋아요 2 | URL
맞아요. 음악, 미술, 건축, 문학 등이 어우러져서 소설같지 않은... 철학적인 것이 상당하게 녹아들어 있어서...
더구나 장 구분이 없어서 읽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어디까지 읽어야 이 얘기가 끝나나.. 짐작할 수 있으면 좀 수월할 텐데.
감사합니다~바람돌이니~ 8월도 화이팅 하세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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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을 통과해서 그런지 2권은 읽을 만했다. 스완의 사랑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불행한 사랑 이야기가 아주 길게 이어진다. 벼락부자가 된 베르뒤랭 씨의 저녁 파티에 오데트의 꼬임에 빠진 스완이 초대된다. 이 모임은 작은 동아리’, ‘작은 그룹’, ‘작은 패거리로 불리며 가입하기 위한 소정의 조건이 있었는데 어떤 신조를 말없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조항 중의 하나가 베르뒤랭 부인이 후원을 하며 칭찬하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프랑테와 루빈슈타인을 능가하며’, 코타르 의사가 임상학에서는 포탱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모임의 조건에 어울리게 화가, 의사 코타르 부부 등 당시 명망 있는 귀족들이 모여서 음악과 미술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한마디로 당시 파리의 살롱 문화를 제대로 엿볼 수 있다.

 



스완과 만나기를 원했던 오데트와 극장에서 대면하게 되는데, 스완의 눈에 비친 오데트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자신의 취향이 아니어서 묘한 감정이 복잡하게 일어난다. 그는 거장들의 그림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얼굴 특징을 찾아내는 특이한 취향이 있었는데,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오데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시스티나 성당 벽화 속 이드로의 딸 제포라의 얼굴에서 오데트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사랑과 질투로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스완과 오데트의 사랑이 진전되는 과정은 안타까우면서도 정말 재미있다. 처음엔 오데트가 스완에게 거의 구걸(?) 하듯이 스완을 만나고 싶어했다. 스완이 오데트의 집에 갔다가 담배 케이스를 두고 왔는데 오데트는 왜 당신 마음도 두고 가지 않으셨나요. 마음이라면 돌려드리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을 써서 편지를 보내온다. 오데트의 표현이 참 시적인 것 같아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런 오데트의 마음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뺏기고... 스완은 질투와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스완의 사랑 이야기는 330쪽이 끝나도록 길게 이어진다. 그러니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다 할 수는 없다. 인용 문장 몇 개만 읽어도 스완의 애타는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내가 둘 중 하나인 당사자라면 재미없고 슬픈 일일 것이다. 남의 사랑 이야기라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모든 남자가 오데트의 애인이 될 수 있는데 어떻게 염세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그의 질투는 처음에 오데트에게서 맛보았던 그 관능과 즐거움보다 더욱 스완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고, 또 그 성격이 나타나는 겉모습까지 남의 눈에 완전히 달라 보이게 했다.(P170)

 


야식이 끝나면 그녀가 어쩌면 지금까지 한 번도    없는 어떤 충동적인 생각으로 포르슈빌의 품에 안길지도 모르니어쨌든  가증스러운 여행의 비용을 그가스완이 부담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녀를 막을 수만 있다면그녀가 출발하기 전에 발이라도 삐어 준다면! (P199)

 


그리고 스완의 사랑이라는  병은 너무도 확산되어 그의 모든 습관이나 모든 행동그의 생각이며 건강이며 수년이며 생명이며 심지어는 그의 죽음 뒤에 그가 소망하는 것에까지도 밀접하게 섞여 그와 하나를 이루었기 때문에스완 자신을 거의 전부 파괴하지 않고는 그로부터 제거할  없었다외과 의사 말대로 그의 사랑은  이상수술할  없는 병이었다.(P210)

 


인간적인 상념이무언가 휴식과 명상의 순간에 전념할 때 모든 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런 착한 감정이노란 광선처럼 그녀 눈에서 분출되었다 그녀 얼굴 전체가 구름에 덮인 잿빛 들판이 석양빛으로 비쳐 구름이 걷히면 갑자기 변모하듯 환하게 밝아졌다그런 순간이면 스완은 오데트 마음속 삶이나 그녀가 꿈꾸듯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조차도 그녀와 공유할  있을  같은 생각이 들었다. (P219)

 


 삶이란  놀랍다이렇게 엄청난 뜻밖의 일들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요컨대 악덕이란 것만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퍼진 모양이다. (P305)

 


 

 마음에 들지도 않고  스타일도 아닌 여자 때문에 내 인생의 여러 해를 망치고 죽을 생각까지 하고 가장 커다란 사랑을 하다니!"(P330)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부르짖던 스완, 그렇게 그의 사랑이 끝난 줄 알았다. 그 이전에 오데트의 과거를 알게 되고 가엾은 연민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자신을 향한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데트는 꽤 스완의 애를 태우더니, 그래도 사랑의 결실을 맺어서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3부 고장의 이름에서는 스완과 오데트가 결혼하여 딸 질베르트를 낳았는데 화자는 또 질베르트를 좋아해서 쩔쩔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질베르트는 엄마 오데트를 닮았는지 꽤 화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접한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P407)

 



 3부 고장의 이름에 나오는 위의 문장(끝부분)을 읽으면서는 오랜 유년의 기억 속에 골목, 친구들의 웃음소리, 한낮의 비둘기 울음소리 등이 떠올랐다. 화자의 말처럼 추억이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모두 변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데 우리 기억 속에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 덧없음이여.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귀족들의 살롱에서 살다시피했던 딜레탕트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파리의 가장 번화한 오스만 거리 102번지에서 낮에는 자고 밤에는 글을 쓰는 긴 칩거 생활 끝에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한다. ’20세기 최대의 문학적 사건으로 기록된다는 이 작품 말이다. 칩거한다고 해서 누구나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닌데. 그 위대한 칩거 덕분에 우리는 19세기 말 벨 에포크시대 사회상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이렇게 2권을 완독했구나.3권도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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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7 23: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면서 구경만 하는 책~ 2권 완독 축하 및 3권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모나리자 2021-04-28 11:20   좋아요 3 | URL
2권만 같아도 술술 읽을 것 같은데 3권은 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 지..
저도 기대되는데요?ㅎㅎ
감사합니다`새파랑님.^^

미미 2021-04-27 2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2권 완독 수고하셨어요ㅋㅋ👍

모나리자 2021-04-28 11:21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미미님~^^
거꾸로 잘 읽고 계시죠??ㅋㅋ

oren 2021-05-10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2권을 완독하셨으니, <꽃핀 처녀들의 그늘에서>(3,4권)도 아주 재미있게 읽으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아직 4권까지밖에 못 읽었지만, 아무쪼록 끝까지 쭈욱 완독하시길 학수고대합니다.^^

모나리자 2021-05-10 20:0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oren님~~
이렇게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나네요.ㅎ
열심히 읽겠습니다. 한달 1권 계획이라서 연말까지 가야 끝나게 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오래전에 읽다 내려놓았던 이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타임스, 르 몽드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프루스트 이후 모든 현대 소설의 출발점’, “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는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의식 흐름이라는 독특한 서술 방식의 대표 격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프루스트의 이런 작품을 읽으면 개안수술을 받은 듯 사물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토록 극찬하는 작품이라니, 의기양양하게 일독을 시도하지만 오래지 않아 굴복하는 보통의 독자들은 어찌하라고 그런 말로 놀라게 하는지.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열 권짜리 시리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태백산맥처럼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에 한 달 한 권씩 읽으며 완독해보자는 도전을 시작했다. 처음엔 몰입이 안 되어 옛날에 중단했던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날까 두려웠지만 차츰 적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1권을 읽었다. 이렇게 한 권씩 도장 깨기를 하다 보면 완독의 기쁨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그래야 연말.)

 



 우선 광범위한 가계도에 놀라게 된다. 세속적인 야심이 많고 사회적 지위도 높으며 기상학에 관심이 있는 아버지와,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는 헌신적인 여인인 어머니를 비롯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등 삼대가 한집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손님이나 이웃 사람들까지 하면 등장인물은 더욱 늘어난다. 신경이 예민하고 마마보이(?) 기질까지 있는 화자인 는 책읽기를 좋아해서 작가가 되기를 열망한다. 잠자기 전 어머니의 키스를 받아야 잠들 수 있는 아이다. 그런데 손님이 와서 그 시간을 빼앗기게 되면 불안해지고 슬픈 마음이 되어 끙끙 앓는데, 어린아이의 마음이 엿보여 웃음이 난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려고 단호하게 대하지만 아들과 함께 자라는 남편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고 함께 있어 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장면은 화자인 내가 마들렌과 홍차를 마시는 장면이 아닐까. 콩브레를 떠났다가 집에 돌아온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니의 권유로 홍차를 마시게 된다.

 



침울했던 하루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울적해진 화자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 예전에는 결코 공감할 수 없었던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P86)

 



 차 한 잔, 홍차 한잔으로 우리는 화자처럼 이렇게 놀라운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그렇게 홍차를 마시면서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고 콩브레의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와 마들렌 조각, 정원, 별채, 온갖 날씨와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마을 모습, 오솔길들을. 그리고 유년시절 첫사랑이었던 질베르트도.

 



물에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P91)

 



 처음의 지루함과 달리 눈앞에 펼쳐지는 이 장면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화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게 된다. 그렇다고 계속 술술 읽히는 건 아니다. 읽다가 맥락을 놓치기도 한다. 풍경, 사물 묘사, 인물의 세심한 내면을 표현하는데도 문학 작품이나 음악, 미술에 관련된 묘사가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프루스트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이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주석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읽는데 지장은 없다) 만연체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감성이 듬뿍 느껴지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 유년시절의 풍경이 떠올라 아련한 그리움에 젖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콩브레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기차에서 멀리 바라보는 콩브레 마을을 묘사로 시작한 이야기는 각종 냄새 이야기로 이어진다. 방에서 맡았던 온갖 냄새의 묘사는 거리, ‘가족 같은 성당의 종탑이 자아내는 풍경 등으로 옮겨가며 한없이 이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유년시절의 냄새를 떠올렸다. 아궁이에 가득 남아있던 재 냄새, 타닥타닥 타오르던 아궁이에서 빨간 불꽃이 튀기며 나던 냄새, 마른 땅에 떨어진 비와 흙이 섞인 냄새 등 기억 속에 숨어있던 냄새들이 되살아났다.

 



화자가 부모님과 함께 달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속적인 명예나 야심을 중요시하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오랜 산책을 시켰단다. 끝 모를 산책길에 나는 다리를 질질 끌며 졸음으로 쓰러질 것 같은상황이 되었는데 집 뒤편 정원에 다다랐음을 알고 갑자기 힘이 솟는다.

 



오래전부터 내 행동에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정원에서는 땅이 대신 걸어 주었기 때문이다. ‘습관이 날 품에 안고는 아기처럼 침대까지 옮겨다 주었다.‘(P205~206)

 



 ’땅이 대신 걸어주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정원을 그만큼 좋아했다는 말이구나. 온갖 보이는 사물에 애정을 갖고 있는 화자가 정원을 뛰어다니는 일은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뻤을 것이다. 개 짖는 소리, 보리수나무 달빛이 비치던 역 앞 큰길 등을 떠올리는 장면은 한마디로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런 달밤의 정경을 언제 느껴보았던가.

 



 화자의 눈길은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길도 빠뜨리지 않고 담아낸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는 식탁 위에서 부엌 하녀가 이제 막 껍질을 벗겨 놓은 완두콩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무슨 장난감 초록빛 구슬의 수를 셀 때처럼 가지런히 크기별로 놓여 있었다. 그러나 내가 황홀감에 사로잡힐 때는 특히 아스파라거스를 마주할 때였다. 아스파라거스는 짙은 군청색과 분홍빛이 감돌아, 꼭지 부분이 벼이삭처럼 보랏빛과 하늘빛으로 어우러져 아래로 내려갈수록- 밭의 흙이 아직 묻어 있는- 땅 색이 아닌 무지갯빛으로 아롱거리며 그 빛깔이 조금씩 연해져 간다. 이러한 천상의 빛깔은 어떤 감미로운 존재들이 즐겨 채소로 변신해서는,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살로 변장해, 해 뜰 무렵 여명의 색깔이나 짧은 무지갯빛 출현, 푸른빛 저녁이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그 귀중한 정수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 저녁 식사 때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자는 날이면 나는 밤새 그 정수를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셰익스피어 요정극장에서처럼 시적이면서도 외설적인 소극을 연출하여 내 방의 요강을 향수병으로 바꾸어 놓았다.‘(P215)



 이렇게 화자는 그냥 지나칠 것 같은 아스파라거스를 보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소극을 환기한다. 아스파라거스 묘사는 이 작품에 자주 등장하며 화가 마네가 즐겨 그렸던 그림 소재이기도 하단다. 우리는 이렇게 이 작품으로 문학, 그림, 음악 등 다양하게 심취했던, 그리고 한번 시선이 꽂히면 집요하게 관찰하고 글로 풀어내는 프루스트를 만나게 된다.

 



 또 인상적인 장면은 식사 준비를 위해 프랑수아즈가 닭을 잡는 것을 화자가 보고 있는 부분이다. 몸부림치는 닭과 대적하는 프랑수아즈를 보면서 는 부들부들 떨며 도망치면서 누군가 프랑수아즈를 쫓아내기를 바라지만, 누가 뜨거운 물주머니와 향기로운 커피, 닭고기 요리를 해줄 것인가 계산하면서 곧 뉘우친다. 성당의 아름다운 채색 유리에 그려진 왕과 왕비의 뒷면에 피로 얼룩진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프랑수아즈보다 닭을 불쌍히 여겼던 마음을 거둔다.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악역을 누군가 해주어야 맛있는 밥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린 화자도 알고 있었다.

 



스완네 집 쪽으로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콩브레 주변에서 산책을 하려면 길이 두 개인데 그 중 하나는 메제글리즈라비뇌즈이고 이 길로 가려면 스완 씨네 땅을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스완네 집 쪽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또 하나의 길은 게르망트 쪽이다. 이렇게 1권의 내용은 스완네 집 쪽으로 걸어 산책길에 보았던 콩브레에 대한 기억과 추억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이 작품 읽기를 도전해보고 싶은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제 막 한 권을 읽었지만, 이 작품은 보통의 소설처럼 읽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추억을 되새기며 화자의 마음을 따라 읽기를 권한다. 보통의 소설처럼 어떤 사건의 발생이나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이야기의 구성이 아니라 화자의 생각을 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자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하지 않겠다. 첫술에 배부르랴. 한번 완독을 하고 거듭 읽기를 통해서 이 작품에 매료될지 누가 알겠는가. 일단 1권 일독을 자축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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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24 18: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독축! 읽어보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주석이 정말 잘 쓰여져 있더라구요.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잘 읽히는 글이란것도 공감해요! 저는(거꾸로 읽기고) 아직 10권 절반정도 나갔는데 서둘러야겠네요.😁

모나리자 2021-03-24 23:35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미미님~
네, 주석이 자세하게 잘 나와 있죠. 거꾸로 읽는 느낌은 어떠신가요?ㅎ
완독 때 거꾸로 1권과 10권에서 만나게 될까요?
아니 미미님이 빠르실 수도 있겠네요.ㅎ
편안한 밤 보내세요.^_^

미미 2021-03-24 23:43   좋아요 2 | URL
두 번정도 1권에서 포기해서 거꾸로 해봤는데 저에겐 이게 맞는거 같아요ㅋㅋ 욕심땜 동시에 읽는책이 많아져서 느리긴 한데 읽을때마다 너무나 좋아요♡ 꼭 함께 완독가요! 모나리자님두 굿밤요!😍👍

모나리자 2021-03-24 23:57   좋아요 1 | URL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ㅎ
느리게 읽더라도 끝까지 가자구요.
꼭 함께 완독해요~^^

새파랑 2021-03-24 19: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권 일독 축하드려요^^ 화자의 생각을 쫓으면서 읽는다는게 쉽지가 않던데 대단하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1권은 사놓고 책꽂이에서 나온적이 없어요ㅜㅜ 이렇게 권수가 많은 책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계속 봐야할거 같아서 시작하기 주저하게 된다는 ㅜㅜ
책을 완독해야 생각하는 저같은 사람은 아직 독서 초보인가봅니다 ㅋ

모나리자 2021-03-24 23:3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새파랑님~
처음엔 정말 힘드네.. 했는데 점차 나아지더라구요.ㅎ 느리게 읽기를 권하고 밤에 잠 안올 때 시도해 보세요. 읽다 보면 금세 졸려서 꿀잠에 특효.^^ ㅎㅋ
새벽에 읽어도 좋구요. 이렇게 잘 안 읽히는 책을 연달아 읽으면 다른 책을 읽을 수 없으니 한 달 한 권으로 정한 거지요.ㅎ
새파랑님의 도전도 응원하겠습니다..^^

scott 2021-03-25 1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권 완독 축하합니다!!
모나리자님 리뷰를 읽으니
주말 브런치는 아스파라거스 들어간걸로 무죠건 ㅋㅋㅋ
분명 읽었는데 마르셀의 책은 읽고나면 잃어버린 시간속으로~ ㅎㅎ

역사 문화 음악사적인 해박한 지식을 함께 습득하며 읽어나가야 할것 같아요.
문학을 넘어 문화사적인 작품인것 같습니다.
^^

모나리자 2021-03-25 14:49   좋아요 1 | URL
네~감사해요!! 뿌듯뿌듯^^

베이컨과 토마토를 곁들여서 만들어 먹으면 식욕도 업! 시키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아요.ㅎ
잊어버리니까 또 읽는 거죠.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해요. 화자의 시선이 홍길동처럼 순간 이동을 하니 정신 없어요.ㅎㅎ

고전과 명작은 거듭 읽기를 통해서 묘미를 알 수 있겠지요.
왠지 오늘이 불금 같은 느낌은 뭐죠?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스콧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