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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惱む力 (集英社新書) (新書)
姜 尙中 / 集英社 / 2012년 6월
평점 :
몇 년전 일본여행때 사온 책이다. 점원에게 강상중 저자의 이 책을 찾아달라고 물었더니 대만 작가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렇게 유명한 저자를 모르는 사람도 있구나, 의아했었다. 이 책을 8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저런 일에 치여 이제야 마쳤다. 소세키의 광팬답게 소세키의 여러 작품이나 유학시절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베버를 예로 드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행복론은 끝났다
현대인들은 행복의 합격기준을 정하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행복은 개인마다 다르고 패전 이후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과 가치관이 달라졌다. 행복은 딱이래야 한다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하고 등등 행복의 기준을 나름대로 정해놓는다. 게다가 일본사회는 1억 인구 모두가 자신은 [중류]라고 느끼며 ’도토리 키재기‘의 미묘한 차이를 서로 겨루며 살아가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 기준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더욱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세상의 사람 수 만큼 행복을 느끼는 사고방식이 있을 텐데 그것이 없어졌다. 그래서 세상에는 불행이 있는 것이다. 또한 그 ’합격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돈, 애정 등 원하는 기준이 과연 만인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인지 묻는다.
그렇게 사회적 잣대로 ’발명한‘ ’행복방정식‘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자가 넘치는 현실을 꼬집는다. 우리 사회도 이런 사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동일본 지진이 일어났고 이러한 행복방정식은 공허한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1장 나쓰메 소세키와 베버에게 무엇을 배울까
지금까지와 다른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동과 서의 거인인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누구보다도 [행복 방정식]의 한계에 대해서 꿰뚫고 있었다.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고체적 근대]를 살았다고 해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유동화하는] 근대의 불안이나 갈등, 그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근대 그 자체의 임계점을 내다보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가 행복방정식의 [끝의 끝]을 경험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 두명의 거인은 [끝의 시작]을 꿰뚫어보며 문학이나 사회학이라는 표현방법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그들의 일언일구는 그들의 실존을 걸고 근대라는 시대와의 격투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세키의 [그 후]에 나오는 주인공 다스케가 고등유민으로서 부친을 경멸하면서도 신세를 지며 살아가는 내면의 심리를 말한다. 또 하나의 인물은 [명암]의 오노부다. 부족한 생활비가 부족함에도 줄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스케처럼 부모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이상할 정도로 지금의 우리들과 닮았다고 말한다. 또 한가지 소세키의 작품에는 주된 등장인물이 중류 이상만 나온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상류층의 특수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에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은 이 두 거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주머니에 넉넉한 돈이 있다면 누구라도 회사의 부품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마음과 똑같다.
또 소세키와 베버는 먼 이국의 하늘 아래 떨어져 있었지만 다스케의 독일어판과 같은 모습이 있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이른바 신흥 부르주아지 정치가로 시민주의적 영웅의 가면을 쓰고 있던 사람이었다. 소세키가 [일등국] 영국에서 유학을 했고, 베버도 신대륙 미국에 근대 자본주의의 장래, 그 [끝]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리를 추구하고,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아메리카합중국이 영리활동은 종교적 윤리적인 의미를 제거하고 지금은 순수한 경쟁의 감정으로 결부된 경향이 있고 스포츠 성격까지 띄고 있다고 말이다. 과연 지적대로 모럴이나 윤리는 어디가고 [카지노화]된 오늘날의 금융자본주의의 상황을 보면 놀랄 정도로 서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한다.
2장
나쓰메 소세키가 가장 집착하며 고민했던 것은 [자의식]이었음을 언급하며 『도련님』『산시로』『그후』『문』등 많은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들을 상기시킨다. 어쩌면 그렇게 모두 즐거워보이지 않는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이라니. 이렇게 소세키는 근대라는 시대가 선택하게 되는 불행한 정신을 집요하게 그려나갔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근대라는 시대에 자의식이 돌출한 것일까. 그것은 [자유]라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원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의식에 대한 물음을 계속한 소세키가 참고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 심리학자로 프라그마티즘을 세상에 알린 윌리엄 제임스다. 소세키가 유학 직후에 강의를 기초로 한『문학론』에는 제임스의 영향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한다. 왜 제임스에게 주목하느냐 하면 소세키보다 먼저 세계와 개인의 단절감에서 기인하는 정신불안 문제에 몰두하여 개인주의의 시대에 있어 종교적 경험의 의미를 깊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적 경험의 여러 모습』 ‘종교란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자기중심주의의 역사에 있어 기념해야 할 일장이다.’(p53)라고 했다. 또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을 언급하며[고민]의 현상학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 현상학적 설명은 소세키와 베버에게도 공통점이 있다면서 소세키의 작품을 분석하며 언급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왜 그러한 행동을 취하고 그러한 발언을 하는지 정신분석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이 네명은 문학, 사회학, 심리학, 정신의학과 같은 다른 영역임에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테마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장 소세키가 그린 다섯 가지 [고민의 원인]이란
[돈]-고민의 원인
[행복의 합격기준]과 관계가 있고 [한눈 팔기]나 [마음]에서 돈 문제로 고민하는 중인공 이야기를 분석하고 있다. 심지어 [산시로]나 [행인]에서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은데도 일부러 끼운 것은 소세키가 돈 문제를 의식주에 가까운 일상의 다반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을 유학한 소세키와 경험하면서 돈을 둘러싼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 무렵 베버도 독일에서 시민적 영웅시대가 끝나고 자본주의가 변모되어가는 것을 보게 되며 이 둘의 주목하는 점이 많이 닮았다고 피력한다.
2. [사랑]-고민의 원인
예를 들면 [그후]가 대표적이다. 다스케와 미치요의 불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돈 문제가 얽혀있는 이야기다. 결국[돈이 없으면 사랑도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그후』나 『명암』도 돈과 사랑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가족]- 고민의 원인
소세키의 주인공들은 대개 독신이거나 아이가 없는 부부, 있는 경우에도 아이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행인]의 이치로와 오나오, [마음]의 선생과 부인, [명암]의 쓰다와 오노부처럼 긴장하고 팽팽한 류와 같은 불신극이 두 사람 사이에 전개된다. 핵가족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에 [사회에서 최소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을 [사회에서 최소단위의 수라장]으로 포착한 소세키는 상당히 선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4. [자아의 돌출]- 고민의 원인
자신을 어필하고 싶다고 강한 자기현시욕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그 결과 신경과민에 빠지게 된다.
5. [세계에의 절망]- 고민의 원인
파스칼은 [이 무한의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나를 전율케한다]는 명언을 언급한다. 이것은 우주 속에 자신 혼자 홀연히 남겨졌을 때의 마음의 초조함을 나타낸 말이지만 [실존적인 공허감]에 빠져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세계에서 그 정신적인 윤곽을 잃고 무(無)로 떨어지는 듯한 공포감으로 괴로움을 의미한다.
4장. 소세키의 예언은 맞았는가
돈이 중시되면서 머니 경제학, 카지노 자본주의의 양상을 보이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리먼쇼크 이후 금융불안은 악마적 악순환이 완전히 부정적인 측면으로 전환한 것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이라는 책을 언급하며 근대에 익명의 군중이 대두하게 된 배경을 알려준다. 여기서 말하는 군중은 공동체의 성원이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없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익명의 개인의 무리를 말한다. 베버는 사회학자였으니 당연히 주목했고 소세키도 이런 현상에 관심있게 관찰했다. 『도련님』에서 러일전쟁 승리를 축하는 장면에도 나온다. 난투극이 일어나 도련님이 휘말리고 시코쿠를 떠나는 원인이 되는데 이것은 그 전년도 도쿄에서 일어나 [히비야 화공사건]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직접 접근형 사회]를 도래하게 하였고 포퓰리즘을 낳게 한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익명의 불특정 다수의 개인의 의사란 [시장]과 동의어라고 했으며,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시장이 사회를 핥는다]는 말도 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부드러운 전체주의‘를 언급하며 전원이 그렇다고 하면 정답이 되어버리고 이견을 말해도 묵살되는 사회가 되는 깊어지는 고민을 말하고 있다.
5장 진짜는 어디에 있는가
이 장에서는 ’진짜 나 찾기‘, ’자기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의 나보다 나은 나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희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현재 일본은 우울증이 늘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참 나를 찾는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는 사건을 일으킨 안타까운 사례도 말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현실은 100만명이나 되는 우울증 환자와 연간 3만 명의 자살자가 있고 열에 하나는 일이 없는 상황에서 곧 닥칠 기초연금에만 의지해서 부들부들 떨면서 어떻게 살아갈까 궁지에 몰려 ’자아 탐구‘를 하는 것이다.
6장 우리는 다시 고칠 수 있을까
패전 때보다도 우울하다.
동일본 지진을 예로 들면서 믿었던 과학의 신뢰가 깨졌으며 그것이 가장 큰 상실감이었다고 한다. 패전때 보다 더 우울한 사람이 많은 현실을 이야기한다. 과학은 만능이 아니고, 세계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도 아니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닮았으며, 당시 최고로 여겼던 서양 학문에 대한 생각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거의 같은 시기에, 과학이라는 것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따른 지구상의 인류가 매우 심각한 사태에 휘말리기 시작했다고 걱정했다. 과학과 기술이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실현하고 세상이 경악할 만큼 풍요로움을 가져왔지만, 과학을 맹신한 결과 그 믿음은 흔들리고 결국 보복을 당했다는 것이다. 원자력 연구를 통해 원폭이 만들어지고 유전자 연구를 통해 크론이 말들어졌기 때문이며 동일본 지진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만성적으로 안고 있던 보다 빨리, 보다 강하게, 보다 크게, 보다 높게와 같은 이른바 자본주의의 행복 변신론을 칭송하는 힘에의 신앙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에 성공하면 다음에는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 뇌뢰에 강하게 남는다.
7장 신은 망상일까
인생은 무의미한가?
덴마크 아동문학 작가 얀네 테라의 [인생이란 무의미다]라는 작품을 예로 들며 시작한다. 중학교 1학년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엇을 한다 해도 무익하다]며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두나무 위에 올라가 진을 치고 학급 친구들을 실컷 도발한다.
아직 어린 중학생이 이런 생각을 하다니 놀랍다. 그런데 이 아이의 친구들이 이에 공감하여 합세하고 [의미 있는 것]을 모으려고 하지만 결국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소년에게 린치를 가해 살해하고 [의미의 산]과 함께 태워버린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인간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종교는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기도 하지만 동일본 지진의 커다란 충격은 어떻게 의미지을 수 있는지 종교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각 종파에서 앞다투어 봉사활동 참여하며 복구작업을 힘을 쏟았지만 종교적 의미를 짓는 일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너무 심대한 경제적, 인명피해를 낳았으니 무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허탈 상태에 빠진 수만 수백 만의 사람들을 보고, 과학에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유명한 무신론자 과학자 리처드 도킨슨과 이글턴이 펼쳤던 열띤 주장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신은 망상이다]라고 했던 주장에 대해서 말이다. 반면, 신의 자리를 대신하여 과학은 무엇을 실현시켰는지 묻는다. 물질적 풍요는 과거 어느때보다 나아졌지만 불행감은 예전보다 늘었다는 것이 보편적이다. 참으로 끝나지 않는 문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제라도 개인들은 공명(共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서 선생이 아무런 연고없이 단 하나 있던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아내와 마음을 나누어 가질 수 없었던 상황을 보면 우주로 튀겨진 이름없는 공 같은 존재라고 했다.
8장 살아갈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장에서는 3가지 이상한 상품이 [인간] [자연] [화폐]라는 얘기로 시작한다. 이것은 현실의 시장경제가 성립되는 요소이며 이런 시스템이 현재의 자본주의사회인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노동력을 말한다. 원래 [인간]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이상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경을 넘어 자유자재로 조달할 수 있기에 [상품]으로 보는 것이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석탄, 석유를 채굴하다가 결국엔 원자력으로 눈을 돌리게 된 내력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화폐]에서는 리먼 쇼크 이야기를 언급한다. 이렇게 3가지 요소는 원래는 상품화 할 수 없었던 것인데 의제적인 상품화가 극한까지 나아갔고, 아슬아슬한 극한의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만들어지고 급기야는 원발사고로 이어져 참사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3가지 이상한 상품은 경제학자 E.F 슈마허가 한 말이며 원자력발전의 폐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가장 큰 폐기물이라는 사용기간을 넘긴 원자로의 위험성에 대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언급하며 인용하고 있다. (20년, 25년 내지는 30년이 사용기간인가) 수백년 수천년 방치되면 토양으로 방사능이 새어 들어가 온갖 생물에게 위협을 준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사활을 거는 일인데 아무도 논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100년, 1000년 해체할 수 없는 [추악한 기념비]라고 하는데, 미약한 개인으로써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종장에서는 인간의 가치 3가지를 말하며 맺는다. 인간의 진가는 [창조] [경험] [태도]이며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태도]를 묘사하고 있는 톨스토이의 작품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에 나오는 주인공의 태도를 언급한다. 인생은 최후의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으로 바뀔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그 사람만의 여벌이 없는 인생]이라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인간의 삶이란 고민이 끊이지 않는 삶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선택이 눈앞에 놓여있고 비교와 경쟁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이 버거움으로 다가올 때도 있을 것이다. 2차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박해를 받고 포로수용소의 삶을 살아야 했던 유대인은 [그래도 인생에 예스라고 말하다]라는 노래를 만들어 견뎌냈다고 한다. 이 문장만 보아도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알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