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워크 - 강렬한 몰입, 최고의 성과
칼 뉴포트 지음, 김태훈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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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력이 떨어져서 고민이다. 그것을 나는 특히 책을 읽을 때 느낀다. 읽다보면 어느 순간 잡념이 끼어들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읽은 부분을 멍하니 읽고 또 읽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물며 소설을 읽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고 등장 인물마저 헛갈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처음엔 기억력이 떨어져서 그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최근들어 부쩍 산만해진 탓이었다. 이런 내 모습이 갈수록 실망스러워 뭔가 집중력을 높일만한  묘책 같은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책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능력을 만들어준다는 이 책, '딥 워크'를.


 저자는 칼 뉴포트. 현재 조지타운 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조교수라고 한다. 따로 검색을 해 보니 미국에서 공부 잘 하는 사람으로 알아주는 존재였다. 그것도 고도의 집중력에 기반한 학습 방법의 카운셀러로 이름이 높아서 더욱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집중력을 증진시켜 줄 뿐만 아니라 왜 우리가 집중력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그것을 배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바로 그것을 앞으로 찾아올 시대 변화와 연계하여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자기계발서인 줄로만 알았는데 뭔가 인문학적 성찰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기대했던 것 이상을 수확하게 된 풍성한 독서였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 '딥 워크(DEEP WORK)'란 인지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 붙인 완전한 집중 상태에서 직업적 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저자에 의하면 카를 융, 미셸 드 몽테뉴, 마크 트웨인, 우디 알렌, 피터 힉스, 조앤 K 롤링, 빌 게이츠, 닐 스티븐슨 등의 과거와 현재의 많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두루 이런 '딥 워크'에 헌신했고 그로 인해 높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딥 워크'의 전통은 지금의 지식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메일이나 SNS, 인터넷을 비롯한 네트워크 도구들 때문이다. 무엇보다 맥킨지가 2012년 행한 조사에 따르자면 현재 미국 지식 노동자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업무 시간의 60% 이상을 전자 통신과 인터넷 검색에 쓰고 있는데 그 중 이메일을 읽고 쓰는 시간만 해도 거의 3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되돌아 보니, 나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어떤 때는 업무 시간의 절반을 이메일 읽고 쓰는데만 보내고 있을 때도 있다. 바로 이런 네트워크 도구들이 지식 노동자의 몰입을 방해하고 산만하게 만들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피상적 작업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피상적 작업이란 딥 워크와 정확히 반대되는 말로써 '지적 노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서 다른 것에 정신을 팔아도 얼마든지 수행 가능한 작업'을 일컫는다.


 지금 우리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이고 이러한 정보 경제 양상은 줄기차게 가속화 되고 있다. 따라서 딥 워크의 중요성도 앞으로 계속 커질 전망이다. 왜냐하면 정보 경제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계속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복잡한 것을 빠르게 익히는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용한 가치를 하나 창조하면 거대한 소비자 집단에 쉽게 연결되는 환경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결과물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면 소비자가 온라인을 통해 다른 것으로 손쉽게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여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최선의 성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눈에 봐도 이 모든 게 쉽지 않아 보인다이만한 일을 해내려면 설령 짧은 시간이라 해도 고도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바로 '딥 워크'의 능력이다. 그래서 칼 뉴포트는 이렇게 '딥 워크'가 앞으로는 성공을 위해 필수적으로 가져야만 하는 초능력으로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몰입은 의미 없는 낡은 능력이 아니라 밥값을 못하는 사람들을 몰아내려 하는 정보 경제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진정한 보상은 페이스북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혁신적으로 분산된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딥 워크는 너무나 중요해서 비즈니스 저술가인 에릭 바커의 표현을 빌리면 '21세기의 초능력'으로 간주해야 한다.(p. 19)


 하지만 날로 발달하는 이런 저런 네트워크 도구들 때문에 앞서도 말했듯 지식 노동자의 업무 환경은 갈수록 피상적 작업만 쌓여가는 곳이 되어버린다. '딥 워크'를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점점 희박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딥 워크 가설'이라는 걸 내놓는다. 이런 식으로 딥 워크의 희소가치가 점점 상승하여, 그 능력을 키우고 자기 삶의 중핵으로 만든 소수만이 앞으로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바로 이 책의 토대를 이루는 개념이기도 하다. 거기에 맞춰 책은 크게 2부로 나눠진다. 1부에서는 이 딥 워크 가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2부에서는 어떻게 딥 워크를 하고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들을 공개한다.


 요즘 '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대선 때문에 한층 더 유행하게 된 이 말엔 알파고와 같은 인공 지능의 발달로 가까운 미래에 많은 일자리들이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내재되어 있다. 아니, 조립이나 피자를 굽는 것 같은 단순 노동들은 이미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운동화를 만드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회사의 공장들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고작 10명의 관리인이 생산할 정도로 무인 생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10명이라는 수조차 더욱 줄어들 예정이다. 올해 초엔 트럭에 피자 굽는 로봇을 태워 지역을 돌아다니며 판매하는 'ZUME'라는 기업까지 생겨났다.


 'ZUME'의 피자 굽는 로봇


 2016년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는 이런 식으로 2020년까지 무려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번역가, 회계사나 변호인 같은 전문직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법률 을 전문으로 하는 ROSS라는 인공 지능이 개발되어 미국 대형 로펌에 취업한 바가 있다. 유엔 미래 보고서는 적어도 2030년엔 이 세 직업이 모두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 내다 보았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는 거대한 IBM 컴퓨터가 삽시간에 많은 흑인 여성 계산원들을 실직의 위기로 내모는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변화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미리 거기에 맞춰 능력을 향상시킨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발빠른 대처의 대가로 오랫동안 그토록 원하던 관리자로 승진까지 하게 되었다.


영화에서 신기술에 대한 지식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하여 자신에게 숙원과 같았던 관리자 지위까지 오르게 된 도로시 본.


 바로 이런 일이 앞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급격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잃겠지만 거꾸로 누군가는 더 높은 곳으로 상승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우등생 클럽인 파이 베타 카파의 맴버이자, 공부 관련 블로그인 '스터디 핵스'로 공부에 있어 미국 최고의 전문가 중 하나로 인정 받고 있는 저자 칼 뉴포트는 선언한다. 바로 그 후자를 딥 워크가 우리에게 줄 것이라고.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직장만 둘러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피상적 작업만 양산하는 온갖 네트워크 도구들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말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지금 우리 업무 환경은 '상시접속 문화'와 '최소저항의 원칙' 아래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상시접속 문화'는 수신한 물음에 언제든 빨리 답신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낳았다. 기업 환경에서 어떤 행동들이 과연 실적으로 연결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워(이것을 저자는 '계량의 블랙홀' 현상이라 부른다.) 현재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을 중시하게 만드는 '최소저항의 원칙'은 네트워크 도구들을 사용하여 빨리 답신하는 것을 일하는 자신에게 있어서나 기업에게 있어서나 생산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장기적 계획과 집중 보다는 그저 단기적인 불편만 피하면 된다는 풍조를 이루었다. 그러다 보니 바쁘다는 것이 높은 생산성과 직결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분주함이 생산성과 동의어가 되었고 지식 노동자들은 그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더 나은 방법이 없기에 갈수록 분주한 모습만 보이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자신도 공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이고 이런 문화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아무래도 '딥 워크'는 실현되기가 어렵다. 한다고 해도 분명 일을 안 한다거나 나태하다는 오명만 잔뜩 뒤집어 쓸 게 뻔하다. 뉴욕대 교수이자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기도 한 닐 포스트먼은 컴퓨터 혁명이 시작되었던 90년대 초에 이미 이런 상황을 경고한 바 있었다. 신기술이 가져다 줄 효율성에만 혈안이 되어 그것이 야기할 문제들은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좀 더 발전된 기술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 예언을 들어 맞았고 새로운 기술만 무분별하게 편식한 결과가 바로 우리의 현재인 것이다. 날마다 산적된 피상적 작업만 분주하게 잘 처리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납득하며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인 '오대수'라는 이름처럼 그저 오늘만 대충 수습하는 것으로 자족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말이다.


 딥 워크는 오늘날의 사업 환경에서 우선시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 딥 워크는 어려운 반면 피상적 작업은 쉽고, 직무에 따른 명확한 목표가 없는 상황에서는 피상적 작업을 통해 분주하게 보이는 일이 자리 보존에 도움이 되며, 우리의 문화가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는 능력에 미치는 영향과 무관하게 '인터넷'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게 보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모든 추세가 형성된 이유는 몰입하는 데서 나오는 가치나 몰입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대가를 직접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p. 70 ~ 71)


 하지만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이제 우리가 그런 식으로 살 수 없는 방향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 계속 그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다간 끝내 도태되거나 쉽게 대체되는 운명으로 말이다. '히든 피겨스'의 도로시 본처럼 노력과 훈련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상승시킬 필요가 있다. 거기에 딥 워크, 즉 몰입은 아주 에너지 넘치는 동력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말해도 선뜻 시도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인정한다. 사람은 아무래도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말이다. 때문에 저자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도록 두 가지를 독자에게 제안한다.


위니프리드 갤러거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책


 하나는 위니프리드 갤러거의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이론이다. 둘 다 '몰입'의 긍정적 가치를 한껏 강조하는 이론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환경에 관해서라면 특히 갤러거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우리 앞에 놓인 환경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실은 특정한 대상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인 결과로 나타난 주관적인 것이라 전제한다. 다시 말해 오랜 시간 몰입하여 나름의 정신 세계를 구축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거기에 맞춰 달라진다는 의미다. 몰입, 즉 딥 워크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내재되어 있기에 몰입한 상태로 시간을 충분히 보내면 우리 마음 또한 세계를 의미와 중요성이 넘치는 곳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즉 환경을 자신이 주도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든지 의미와 가치가 부유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갤러거에 따르면 우리가 세상에 대해 쉽게 권태를 느끼고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산만하고 너절한 피상적 작업만 하고 있는 탓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도 여기에 거들고 나선다. 그에게 '몰입(flow)'이란 자발적으로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육체나 정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일 때 찾아오는 최고의 순간을 의미한다. 갤러거는 그냥 몰입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대상에 몰입을 해야 삶 역시 중요하고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말하지만 칙센트미하이는 대상과 상관없이 몰입만 하면 최고의 순간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비록 이런 차이는 있더라도 '딥 워크'가 자신의 삶을 참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 최고의 방법이라는 데는 둘 다 찬동하고 있다.


 이만하면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삶의 무의미와 권태에 지쳤다면 당장 '딥 워크'부터 시도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딥 워크'를 할 것인가? 그 의문에 답하는 것이 바로 2부이다. 2부는 '딥 워크'를 실행하는 네 가지 규칙을 제시하고 각 규칙마다 한 챕터씩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네 가지 규칙이란 이러하다.


  1. 몰두하라.

  2. 무료함을 받아들여라.

  3. 소셜 미디어를 끊어라. 

  4. 피상적 작업을 차단하라.

 

  '몰두하라'에서는 일상 생활 속에서 '딥 워크' 습관을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무료함을 받아들여라'에서는 딥 워크 최대의 적인 산만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들을 제시한다. 특히 여기서 '데드라인 공략법'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는데, 미국 대통령으로 유명한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하버드 재학 시절 주로 사용한 방법으로써 그 양태가 우리가 시험칠 때 자주 하는 '벼락치기'와 흡사해 눈길을 끌었다. 빠듯한 시간이 '딥 워크'를 가능하게 만들고 향상까지 시킨다니, '벼락치기'도 영 쓸모 없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험생이라면 여기에 나오는 '집중력을 높이는 암기 훈련'이 이목을 끌 것 같다. 전미 기억력 챔피언이자 카드 암기 부문 기록 보유자이기도 한 론 화이트의 카드 암기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카드 한 장을 따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다섯 개의 방이 있는 집을 그리고 그 방에 친숙한 가구들로 채운 다음 카드를 한 장씩 볼 때마다 가구와 특정 인물의 상황을 연결시켜 집에 하나하나 배치하는 기억법으로 누구든 훈련을 거치면 카드 한 벌을 쉽게 외울 수 있다고 한다. 칼 뉴포트가 쉽게 된다고 장담하고 있어서 나도 한 번 시도해 볼 생각이다.


 바로 이런 그림처럼 암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딥 워크 습관 형성을 위해 더욱 힘써 주장하는 것은 소셜 미디어와 피상적 작업의 차단이다.

 하나는 개인적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조직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단절로, '소셜 미디어 차단'에선 라이언 니커디머스가 취한 '짐싸기 파티'와 같은 '30일 간의 근절 방식'이 그리고 '피상적 작업 차단'에선 '37 시그널스'라는 기업이 실제로 실시했던 제도가 관심을 집중시킨다.


  저자가 많은 네트워크 도구들 중에서 하필이면 소셜 미디어만 딱 꼬집어 말하는 것은 그것이 딥 워크를 가장 심하게 저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는 예측할 수 없는 간격으로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하여 엄청난 중독성을 지닌다고 말이다(p. 193)'.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디언 오브 갤럭시 VOL.2' 시사회 장에 갔었다. 공식 개봉 전의 상영이라 주최측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영화 도촬을 막기 위해 관객들이 입장하기 전에 핸드폰을 모두 수거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마치 반사신경처럼 핸드폰을 찾는 동작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곧잘 보였다. 무심코 손이 갔다가 '아, 참 맡겨놨지' 하면서 '핸드폰도 없는데 영화 상영까지 뭘 하면서 보내나?' 하는 말도 들려왔다. 사정이 이러하니 엄청난 중독성이라는 말도 그리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토록 중독되어 있을까? 저자는 그것이 사람들의 주의를 빼앗아 돈을 버는 회사들이 능숙한 마케팅으로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칠 것이라는 생각을 깊이 심어준 탓이라고 대답한다. 또한 소셜 미디어가 이렇게 급격하게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생산된 콘텐츠가 트윗이든 페이스북이든 실제 가치와는 아무 상관없이 얼마나 교환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도록 만든데 있다고 한다. 즉 '나의 업데이트 상태에 '좋아요'를 눌러주면 나도 '좋아요'를 눌러주는 식으로 가치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되면 모두에게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중요한 콘텐츠를 올린 듯한 허구적인 느낌(p. 195)을 주어 소셜 미디어가 지금처럼 창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셜 미디어가 주는 '잠시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허구적인 만족감이 사실은 전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저자는 30일 간 소셜 미디어와 단절할 것을 권유한다. 이 부분이 꽤나 설득력이 있었기에 나도 한동안 그간의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 활동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모두를 나름 주체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소상히 되짚어 보니 착각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셜 미디어에 대한 지은이의 제안을 보다 더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피상적 작업 차단'과 관련한 '37 시그널스' 기업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업무 환경을 주도하고 있는 '상시접속 문화'와 '최소저항의 원칙'이 그렇게 강력한 것이 아니며 제도적 차원에서 변화를 준다면 얼마든지 '딥 워크'가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37 시그널스' 회사가 주도하여 상시접속 문화를 차단하고 직원마다 한 달에 걸쳐 자신만의 프로젝트에 '딥 워크' 할 수 있는 시간까지 할애해 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매출이 줄기는 커녕 이익이 오히려 더 늘어났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이러한 '37 시그널스'의 모습은 저자가 제시한 '딥 워크 가설'이 옳다는 것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증거였다. 그러니 더욱 딥 워크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바라건대, 이런 '37 시그널스'의 사실이 널리 알려져 조직적 차원에서 이제는 피상적 작업의 양산과 분주함이 생산성과 동의어가 되는 흐름에서 벗어나 '딥 워크'가 보다 중시되는 분위기가 주류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내 생각에 이러한 변화는 조직 문화에 일대 파란을 가져올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회사와 사원의 관계란 주종이나 다를 바 없는 수직적 상하 관계였는데, '딥 워크' 문화가 자리잡게 되면 직원 모두가 회사의 이익과 문화 그리고 가치 구현에 있어 저마다 주체로서 참여하는, 그렇게 '파트너'라는 수평적 관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을 목전에 앞두고 대체 불가능한 개인적 가치의 확립과 더 높은 상승을 위해서도 '딥 워크'가 많은 의미를 가지지만 여기에 더하여 조직 문화마저 이제까지의 강제와 착취에서 벗어나 협력과 상생으로 인도해 줄 것이기에 그 의미가 가일층 높아지는 것 같다.


 이 책, '딥 워크'는 개인과 조직 모두에 대해 몰입이 가진 창조와 변화의 힘을 제대로 느끼고 습득하게 만드는 책이다. 앞으로의 내 삶에 구체적 설계를 위해 뭔가 길잡이가 될 만한 정보들이 필요한 분이나 그런 몰입의 시간이 한번쯤 내게도 주어졌으면 하고 많이 바랐던 분들은 물론 현재 조직 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 중인 분들 모두에게 감히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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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0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이오닉맨 - 인간을 공학하다
임창환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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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얼마 전 이런 기사가 있었다.

 미국 팜스프링스에서 아마존 기업 후원으로 마스 2017 콘퍼런스가 열렸다. 거기에 우리나라 한국미래기술이 직접 개발한 로봇인 '메소드-2'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아마존 CEO인 베조스가 직접 탑승해 보고 아주 만족한 뒤 '에일리언 영화에 나오는 시그니 위버가 된 것 같았다'라는 소감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것이었다. 길이 4미터에 2족 보행이 가능하며 사람이 탑승하여 팔과 다리를 조종할 수 있는 '메소드-2'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영화 '에일리언2'에 나와서 관객들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준 '파워로더'와 유사해 보였다. 어릴 때 극장에서 '에일리언 2'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메소드-2'의 모습에서 막연히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미 현실로 성큼 와 버렸음을 느꼈을 것이다.


 '메소드-2' 의 모습


영화 '에일리언 2'에 나왔던 '파워로더'


'꿈은 이뤄진다'더니, 예전엔 정말 공상 속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현실로 착착 이뤄져가고 있다. 현재 한양대 생체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임창환의 '바이오닉맨'은 바로 그런 실상을 물씬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바이오닉맨'이란 한 마디로 기계와 인체의 융합이라 할 만하다. 의족이나 의수처럼 신체적 결함을 기계로 보완하거나 인체가 가지는 능력의 한계를 기계를 통해 증강하는 것 모두를 통칭하여 '바이오닉맨'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 일을 주로 하는 것이 바로 '생체공학'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바이오닉맨'은 쉽게 말해 현재 생체공학이 다양한 분야에서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거칠게 나누어 처음 1장과 2장은 인체의 운동 기관과 감각 기관을 보완 혹은 대체하는 생체공학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다고 한다면, 3장과 4장은 수명이나 뇌의 능력 혹은 불사등 인간이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적인 한계를 생체공학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현재 생체 공학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해선 간간이 나오는 짧은 신문 기사로 밖에는 접해보지 못하여 그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이 책은 오늘날 생체 공학이 활동하는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어 특히 반가웠다. 비록 '에일리언 2'의 파워로더는 현실화 되었지만 현재 생체공학 기술로 옛날 TV 드라마에 나왔던 '6백만불 사나이'나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마블 슈퍼 히어로 '아이언 맨' 혹은 영화 '스파이더 맨 2'에서 숙적으로 나왔던 '닥터 옥토퍼스'의 기계 촉수 같은 것은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무거운 다리의 무게 때문이다. 그 다리를 들어올리고 또 드라마나 영화처럼 빠르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모터의 동력이 필요한데 그 정도 동력을 낼 수 있는 모터를 다리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드는 게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인체의 어떤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여 능력을 증강시키기 보다는 앞서 말한 '메소드-2'처럼 기계를 마치 사람에게 옷처럼 입혀 능력을 키우는 로봇이 활발히 개발 중이다. 그것을 전문 용어로는 '외골격 로봇'이라고 한다. 처음 이 외골격 로봇은 군사 분야에서 활발히 개발되었지만 최근엔 하지 마비 장애인이나 뇌졸중 환자 재활을 위해서도 이 외골격 로봇이 적극 응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하지 마비 장애인이나 뇌졸증 환자들은 자기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선 바이오닉 기술이 어떻게 응용되고 있을까? 그렇게 1장의 2부, '바이오닉 다리'와 3부 '바이오닉 팔'은 바이오닉 기술이 적용된 의족과 의수를 다루는데, 다리 보다 팔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바이오닉 다리는 무릎이나 발목처럼 비교적 적은 수의 관절만 적절히 조절해도 '잘 걷기'라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지만(p. 56) 29개의 뼈와 29개의 관절, 34개의 근육, 123개의 인대로 구성된 손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동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이오닉 팔은 196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하필 이 시기에 그랬던 것은 다름 아닌 독일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 때문이었다. 바로 인류 의학 역사상 최악의 재앙 중 하나라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1950년대 후반, 독일에서 만든 이 약은 임산부의 입덧을 방지한다고 해서 많은 임산부들이 복용했는데 그 임산부들이 약의 부작용으로 그만 사지가 없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아이들을 출산하고 만 것이다. 이 수가 전 세계 46개국에 무려 1만명에 달했다. '바이오닉 팔'은 바로 이 같은 아이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개발되었다. 이렇게 실제 의료용으로 개발되는 바이오닉 기술들은 큰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인과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기업들은 벌어들인 많은 돈을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아낌없이 재투자한다. 이런 점이 바로 반도체나 휴대전화를 개발하는 일반 전자회사와 생체공학 의료 기기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p. 67)


 이야기가 곁가지로 나가는 것 같지만 이 책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었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과학이 아주 차갑고 비인간적이라는 시선이 강했다. 무엇보다 현재 과학 기술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 생체 공학이 다름아닌 이런 아프고 약한 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시작되었다니, 내가 그동안 과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확실히 그 어떤 분야든 뭐라 단정을 짓기 전에 먼저 거기에 대해 제대로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내겐 '바이오닉 맨'을 읽은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한편, 바이오닉 팔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감각과 촉각이다. 인간의 손처럼 뜨겁거나 차가운 감각 혹은 거칠거나 부드러운 촉각을 바이오닉 팔로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한다. 사람의 피부라는 것이 제곱 1cm 안에 자리 잡은 감각 신경이 무려 수 천개에 이를만큼 아주 정교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로 이만큼 정밀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거기에 또 한 가지 난제가 더 남아 있다. 우리의 뇌가 어떤 식으로 감각을 다양하게 인식하는 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만 밝혀지면 바이오닉 기술은 혁신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되는데 이처럼 생체 공학 분야에 있어 하나의 기술은 그것만으로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다른 기술과 연동되었다. 어쩌면 우리 인체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대체하고 보완할 바이오닉 기술로써는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팔이나 다리, 혹은 심장이나 장기 등 인체의 조직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을 흔히 '사이보그'라 일컫는다. 2장은 바로 이런 사이보그에 대한 것으로 심장이나 눈 그리고 귀의 이식에 있어 생체 공학 기술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600만불 사나이'만큼이나 유명한 '소머즈' 역시 실제로는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소머즈는 한 쪽 귀만 '바이오닉 귀'로 대체되어 보통 인간의 수 백배나 되는 청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이렇게 한쪽 귀만 바꿔서는 그렇게 듣는 것이 불가능하단다. 인간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가 소리가 나는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도록 '음원 국지화'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두 귀를 다 사용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인간이 듣는 방식에 관한 것인데, 알고 보니 여기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보통의 경우처럼 음파 진동이 없어도 두개골의 진동을 통해 듣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그러한데, 그 때 우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성대의 떨림이 두개골로 직접 전달되어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평소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개골이 저음을 잘 전달하기에 골전도를 통해 들으면 자신의 목소리가 실제보다 좀 더 낮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책엔 생체 공학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의족과 의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친 16세기의 외과 의사 앙브루아즈 파레를 비롯 사람의 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또한 담겨 있다. 그래서 딱히 생체 공학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와 관련하여 혹시 수험생이라면 '지능 증폭'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 좋겠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경가소성'이고 다른 하나는 '서파 수면'이다. '신경 가소성'이란 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2006년, 영국에서 런던 택시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실제 증명된 것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런던 도로망과 지명을 모두 외워야만 하는 런던 택시 운전사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장기 기억과 공간 지각을 관장하는 해마 영역의 회백질이 훨씬 더 두꺼웠다고 한다. 이는 생활 습관의 개선이나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뇌를 후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즉 뇌는 쓰면 쓸수록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 탓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서파 수면'은 독일 튀빙겐 대의 얀 보른 교수가 발표한 것으로, 사람이 깊은 잠에 빠지면 느린 뇌파가 발생하는 서파 수면에 이르게 되는데 그 때 깨어 있을 동안의 기억들이 장기 기억으로 보존된다고 한다. 즉 외운 것을 되도록 오래 까먹지 않고 싶으면 깊은 수면을 취하라는 것이다. 바이오닉 기술은 뇌를 향상시키는 쪽에도 응용되는데 주로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기도 한다. 나아가 미래엔 '공각기동대'에서 두뇌에 직접 단말기를 연결했듯이 뇌의 특정 부위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여 두뇌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해지는데 분명 여기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타고난 사람의 신체적 능력이 이제 가지고 있는 자본에 따라 차등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처럼 저자는 생체 공학이 가져온 어두운 면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생체 공학 기술의 특성 상 이 기술의 발달이 또 다른 차별을 가져 올 위험 역시 큰 것이다. 이런 부작용이 생겨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또한 생체 공학 기술 발달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민이라고 하겠다. 제도는 그렇다치고 공학자나 사업가나 생체 공학이 어떤 동기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는지 생각한다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바로 생체 공학이 아프고 약한 자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생체 공학 중심엔 인간이 있었다. 막스 베버가 말했듯 과학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다. 그 기술이 인간에게 악마가 되었던 때는 언제나 기술의 중심에 인간이 부재했을 때였다. 일차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시작되었고 오로지 그것을 지향하며 발전해 온 생체 공학이 원래 자신의 고향만 잘 기억한다면 생체 공학의 미래에 대해 조금은 낙관적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끝이 이상해졌는데, 아무튼 여기서 총평 하자면, 현재 4차 산업 혁명이란 말이 유행 중이다. 생체 공학은 그 4차 산업 혁명에 있어 핵심 분야 중 하나라고 알고 있다. 혹시 그 때문에 관심이 생겨 바이오닉 기술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바이오닉 맨'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공학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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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4-1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뇌에 마이크로칩 넣는 방식은 앨런 머스크가 고려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처럼 군사용으로 시범적으로 써보려 한다는데...이 정도까지 말이 나왔다면 상용화할 기술이 나왔다고 봐야겠죠.

에일로이 2017-04-16 14:18   좋아요 0 | URL
‘스텐트로드‘라고 해서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그런 게 가능하도록 만드는 기술까지 개발되었더군요. 예전 닥터 후의 한 에피소드에서 그런 것들이 상용된 세상을 그린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이면에 세뇌 프로그램이 있어 사용자 모두를 노예로 만들어 지구를 지배하려는 외계인의 음모가 있었다는 게 기억나네요.^^
어떤 기술이든 어둔 그늘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 중시가 필요한 것 같아요^^

2017-04-17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8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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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을 받지도 하지도 않는 시대다. 지금은 구속이 된 박근혜 대통령만 봐도 집권 시절 기자 회견 장에 나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기자들의 질문은 일체 받지 않았으니 무슨 말이 또 필요할까? 비단 박근혜만이 아니라 내가 이제까지 만나 본 윗 사람들 대부분이 아래 사람의 질문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겼다. 동료들도 질문이 많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괜히 시간만 잡아먹고 일만 복잡하게 만든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다. 나는 원래 질문이 많은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해가 안 되면 손을 번쩍 들고 질문부터 하고 보는 게 버릇이었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고 나서 난 변해 버렸다. 질문을 해도 '쓸데 없이'란 말 외에는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과 질문을 할 때마다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받는 피로 때문에 점차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새 나처럼 질문을 곧잘 해대는 부하에게 짜증부터 부리는 내가 된 것을 보았다. 과거에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기에게 가장 실망할 때가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때부터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어쩌다 우리는 질문을, 특히나 받는 쪽에서 자신에 대한 불신이나 공격으로 먼저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정당한 질문조차도 질문 자체로 보지 않고 저의부터 의심하고 보는 버릇을 들이게 된 것일까? 질문을 받는 쪽이 그러하니 질문을 하는 쪽도 질문이 편할리 없다. 살면서 그림자처럼 뒤따르게 되는 질문이건만 반응이 그렇다 보니 손을 내리고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 게 약점으로 여겨지기 시작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아는 척을 하거나 조금 아는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침소봉대 하게 된다. 검색이 수월해지면서 질문의 필요는 점점 더 사라진다. 본래 진정한 의미의 질문은 계단처럼 보다 더 깊은 차원으로 내려가는 매개물로 질문은 수명이 길수록 빛을 발하는 법인데 검색에서 바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요즘에 있어 질문의 수명이란 그저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토록 질문의 가치와 수명이 한없이 추락 중인 이 시대에 오히려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가 한 사람 있다. 그가 바로 뇌과학자로도 유명한 김대식 교수다. 그는 이미 인류를 위대한 진보로 이끌었던 31개의 질문에 대해 한 권의 책을 쓴 바 있다. 그런 그가 조금은 더 대중적인 차원에서 다시금 질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책을 들고 나왔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거기에 대해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떤 식으로 질문을 찾고 그것을 통해 자아를 확장해 왔는지 독자의 눈 앞에서 직접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주로 책을 통해서 말이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 책을 통해 질문을 찾아 가는 것은 사람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책을 많이 읽게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렇게 그는 책을 통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그 해답을 만들어가는 지적 여정을 평생 계속해왔다. 바로 그 여정의 가장 최근 모습이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담겨 있다. 말하자면, 그의 내밀한 사유의 궤적이 녹화된 최신 테이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책은 모두 6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삶의 가치를 고민하라', '더 깊은 근원으로 들어가라',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라', '과거에서 미래를 구하라', '답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라' 마지막으로 '더 큰 질문을 던져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질문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질문이란 실은 초월의 몸짓이다. 오늘 내가 처한 현실이 모든 게 아니라는 자각이 결국은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현재 너머의 꿈을 꾸는 한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실제 그 너머로 도약하기 위한 발구르기와 같은 방법 찾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되면 질문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다. 아르튀르 랭보가 보다 풍성한 삶의 경험을 위해 시를 포기하고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를 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처한 현실에 대해 안주가 아니라 탈주를 취할 때 인간의 삶이란 보다 풍요로워질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에서 가장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첫 파트에 실린 책에 대한 이야기에서 절감할 수 있다. 질문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간수의 주머니에서 몰래 열쇠를 가지고 나와 안주의 철창에 갇힌 우리를 탈주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더 깊은 근원과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고 지금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모든 세상의 질서와 상식들은 이제 우리가 억지로 거부하지 않아도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더이상 구애받지 않게 된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처럼 꼭 기승전결일 필요가 없으며 더글러스 애덤스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답'이 '42'이여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수긍하게 된다. '42'라는 숫자는 종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다시 또 달려야 한다는 신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또한 어차피 삶의 의미란 어딘가에 숨어 있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추구를 위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위에서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을 질문의 여정 속에서 스스로 경험한 것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질문 뿐이다. 베르그송이 말했듯이 삶의 진짜 가치는 지속에 있고 그렇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 바로 질문이기 때문이다. 아닐 아난타스와미가 자신의 책에서 잘 보여주었듯이 '나'라는 미스터리 하나만 해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보다 심층으로 내려가고 더욱 본질적인 것을 찾아간다. 역사는 직선의 시간이 아니라 다발의 시간이 되고 다각적으로 오늘의 시간과 공간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기르게 된다. 김대식 저자의 말대로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의미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들은 언제나 폭력과 불행의 시작'이 되지만 질문의 신전에 존재를 의탁한 우리들에게 그런 것은 더이상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절대는 상대가 되고 영원은 잠정이 되기 때문이다. 토머스 쿤이 패러다임 이론을 통해 했던 것을 우리는 질문이라는 필터로 절대와 영원에 함유된 독소를 거른다. 모든 권위의 우상들은 회의(懷疑)의 밧줄로 쓰러질 것이며 타인을 무분별하게 모방하다 자기도 모르게 주입된 욕망은 좀 더 근본을 응시하고 헤아리는 마음 속에서 저절로 용해되어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질문은 바로 그것을 가져다 준다. 남이 만든 정답과 경계 안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잔뜩 안고서 웅크리고 있는 우리가 아니라 설령 아무 것도 없는 헐벗은 대지에 서 있다 하더라도 그 황무지 위에서 내가 만들어 갈 세상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당당하고 강해질 수 있는 우리가 되게 만든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루이지 세라피니가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코덱스 세라피니아누스'라는 한 권의 백과사전을 만들었던 것처럼. 


 책에 삽입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백과사전 '코덱스 세라피니아누스'의 모습.


 먼 옛날, 질문 자체를 몰랐던 원시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모른다고 해서 더이상 불안해 하거나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 설령 고향에서 추방된다고 해도 그것을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계기로 받아들일 뿐이다. 진정한 고향은 어떤 외부의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든 어디나 다 고향이다'라는 말처럼 실은 내면에 정초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중심이 강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 아닌 타자들에 대한 두려움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다. 더이상 타인 때문에 내쳐질 타향이나 변방이 존재하지 않고, 현재라는 과정 역시 어디에 닿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매 순간마다 미래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용과 공존 그리고 조화와 융합은 질문의 여정이 데려가는 진화의 장소이자 질문을 주관하는 여신의 발에 입을 맞추고 헌신을 맹세한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나는 유발 하라리가 일컫는 '호모 데우스(신 같은 인간)'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감히 생각한다. 온갖 것과 융합되고 시간마저 초월하며 더이상 하나의 육체에 고정된 자아가 아닌 '호모 데우스'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포용과 공존 그리고 조화와 융합은 필수일 테니까. 그리고 길고도 무수한 질문의 여정 속에 다다르게 된 존재인만큼 김대식 교수의 말처럼 설령 많은 의문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가 우려하듯 위험한 존재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질문을 이어가고 천착하는 한, 지배 보다는 공존을, 배제 보다는 포용을 택할 테니까. '너무 낙천적인 게 아니냐고?', '한낱 질문 하나에 그만한 진화의 동력이 있다니, 너무 과장이 아니냐고?'. 그렇게 내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말없이 다만 이 책,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슬쩍 들이밀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나처럼 믿게 될 테니까. 최소한 비슷하게라도 생각은 할 테니까. 어쨌든 나는 힘을 얻었다. 질문에 깃든 엄청난 가능성을 알았으니 다시금 질문을 즐기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 볼 작정이다. 다시 사람들에게 치인다면 김대식 교수처럼 책을 통해서라도 질문의 여정을 이어가련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게 찾아오는 모든 질문에 최대한 귀기울이고 함께 답을 찾아보려 노력하련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이어 '어떻게 답할 것인가'도 나의 주된 과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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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나와서
촛불로 시대의 어둠과 맞서 싸웠던
여러분!!
오늘의 이 승리는
전부 여러분 덕분 입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변화의
진정한 밑거름이 되신 여러분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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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 -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
마고 리 셰털리 지음, 고정아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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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은 트럼프 정책에 대한 분명한 반대의 의사 표시 같았다. 인종 차별에 대한 영화들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작과 출연진 전원 흑인으로 이뤄진 영화가 작품상을 받았다. 이건 아카데미 영화상 역사에서 최초이기도 하다.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식 자본주의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 때부터 시작된 위기의 징후는 점차 현실화 되고 있으며 그럴수록 사람들의 불안 역시 차츰 커지고 있다. 경제가 어렵게 되면 가장 고통 받는 것은 역시 최하층의 사람들이다. 빈곤에 시달리고 제대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해 이들은 자신들에게 닥쳐온 상황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에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일단 차분히 생각할만한 삶의 여유가 없고, 합리적 성찰을 위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몸과 마음으로 다가오는 불편과 불안을 자기 보다 못한 존재에 대한 책임 전가와 분노로 푸는 일이 잦다. 그게 손쉽기 때문이다. 또 그런 일이 수월한 것은 분노가 향하는 이들이 가진 것과 사람들의 숫자에 있어 모두 사회적으로 한없이 열악한 계층이라 자기가 그런 짓을 해도 비난과 해코지를 받을 염려가 덜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저 화풀이 대상이었겠지만 그런 것이 차츰 누적되어 가면서 이젠 정말로 그들 때문에 자기가 못살고 힘들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뇌는 확증 편향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증오는 가중되고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박근혜,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다 이토록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하고 혀를 자꾸만 차게 되는 일들 모두 가만히 따져 보면 근본적으로 편견과 차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게을리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차별과 적대는 자신의 안정과 생존을 위해 날려 보내는 칼날이지만 역사가 분명히 보여주는 교훈은 곧 부머랭으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더 큰 위험과 불안으로 내몰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미국의 모습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타자에 대한 존중과 관용은 약자의 비겁이나 이상주의적 허세가 아니다. 오늘의 불안을 잠재우고 파멸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방법이다.



 현재 알프레드 P 슬론 재단 연구원으로 있는 마고 리 셰털리의 '히든 피겨스' 역시 바로 이것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해 준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 후보로 올랐던 영화 '히든 피겨스'의 원작이기도 하다. '히든 피겨스'는 과학에서 쓰는 용어로 주로 아직은 파악하지 못한, 그래서 숨겨진 수치를 뜻한다. 그런데 이 '피겨'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숨겨진 사람이라는 의미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책이 담고 있는 존재들이 정말 그렇다. 이 책은 40년대부터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을 했던 69년까지 NASA와 그 전신이 되는 NACA에서 일한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삶을 담고 있는데 그들 모두 미국의 항공 산업과 우주 개발에 있어 혁혁한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영화처럼 세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도로시 본, 메리 잭슨 그리고 캐서린 존슨이 바로 그들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이들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은 어둠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과학자로 일했던 4,50년대는 이중의 차별이 그들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으니까. 하나는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이요, 다른 하나는 흑인으로 받는 차별이었다. 당시만 해도 과학은 여성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었다. 근대 초기 여성들에게 글을 쓰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처럼, 이 때에는 여성들이 과학을 한다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남성만의 영역이었다, 여성들은 단 한 번도 그 사회에서 과학자로 인정되지도, 대접받지도 못했다. 여성 과학자들은 그저 남성 과학자들의 보조에 불과했다. 이런 부당한 차별은 인종의 경우 더욱 심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사실 흑인에 대한 차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도로시 본이 랭글리의 웨스트 컴퓨팅팀이 되어 처음 출근했을 때, 그녀가 식당에서 마주한 것은 '유색인 컴퓨터'라는 푯말이었다.


 딱 그 대부분의 집단은 습관에 따라 앉았지만, 웨스트 컴퓨터들은 지시에 따라 앉았다. 식당 뒤쪽의 한 테이블에 흰색 종이 표시판이 있었다. 거기 깨끗하게 새겨진 검은 글자 '유색인 컴퓨터'는 식당의 위계를 분명히 알려 주었다. 그것은 웨스트 에이리어 식당의 유일한 표시판이었다. 다른 집단은 이런 좌석 지정을 받지 않았다. 청소부, 인부, 식당 일꾼은 그 식당에서 식사하지 않았다. 웨스트 컴퓨팅의 여자들은 연구소의 유일한 흑인 전문가 집단이었다. 딱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통합되지도 않았다.(p. 73)


 그녀들은 화장실도 따로 써야 했다. 메리 잭슨은 처음 랭글리에 갔을 때, 자기 같은 흑인들은 따로 유색인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경악한다. 화장실을 애타게 찾고 있는 그녀에게 백인 여성들은 경멸과 조소만 보내왔다. 인종은 같은 여성끼리도 서로 갈라 놓았다. 인종 차별은 당시 다른 차별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다른 것들은 용납될 수 있어도 인종에 대한 것은 용납되기 어려웠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파 프롬 헤븐'이다. 



 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그 영화에서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백인 여성은 정원사로 오게 된 흑인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그렇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것은 남편 때문이었는데, 남편이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흑인과 사랑을 나눴다는 게 알려지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면서 떠났던 남편이 찾아와서 그녀를 비난한다. 어떻게 흑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느냐고? 직접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의 표정엔 '그러고도 당신이 사람이야?'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당시 동성애자도 사회에서 허용받지 못한 존재였지만, 그런 동성애자들마저 흑인을 허용하지 않았다. 백인에게 있어 흑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동물과 사랑을 나누는 수간(獸姦)이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회로부터 소외 당하고 있다고 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포용과 배려의 마음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소외를 당하면 당할수록 낮아지는 자존감과 가중되는 불안감으로 인해 어떻게든 그 불안을 억누르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오히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을 배척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보하려 들기 때문이다. '히든 피겨스'에서도 그랬다. 여기서 흑인들을 가장 많이 괴롭힌 이들은 비교적 사회적 상층부에 있는 과학자, 지식인들이 아니라 블루 칼라의 하층민 백인이었다. 결국은 별로 다를 것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유독 인종을 가지고 차별하고 적대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손쉽기 때문일 것이다. 인종의 차이는 눈에 바로 보이는 대상이니까 말이다. 결국 차별은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의 부족한 인내와 그만큼 더 달아오르는 해결에 대한 조급함이 만들어내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의 미국은 그 때와 다르다. 50년대 이후 과학을 비롯하여 흑인의 사회 진출도 많이 늘었다.(도로시 본이 처음 웨스트 컴퓨팅팀으로 갈 때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 흑인 여성 중 오직 2%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계산만 하는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계기는 결코 미국 내부의 자성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외부의 압력 때문이었다. 바로 냉전 시대, 미국 최대의 적국이었던 소련. 그 소련이 스프투닉 위성을 하늘로 쏘아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흑인들에게 다양한 방면의 사회 진출을 허용할 것을 압박하였던 것이다. 소련의 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에게 정말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때는 아직 2차 대전 당시 나카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에 대한 공포가 상당할 때였다. 그런데 적국 소련의 위성이 미국의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성에서 언제든 수소 폭탄이 떨어질 수 있었다. 미국의 대중은 엄청난 공포를 느꼈고 미국 행정부는 그 공포를 달래기 위해 뭔가 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과학의 발전이었다. 당장 소련처럼 아이 때부터 과학 교육에 전념하도록 만드는 정책이 집행되었다. 하지만 커다란 난관이 있었다. 바로 인종 차별이었다. 이 때는 백인이 갈 수 있는 학교와 흑인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나뉘어 있었다. 마을도, 교통편도, 식당도 모두 서로에게 격리되어 있었다. 때문에 쓰지 않아도 좋을 불필요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한 개 지을 운동장을 두 개 지어야 했고, 한 대 운영할 학교 버스를 두 대 운영해야 했으며 교실,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정작 교육에 쓸 재정이 없었다. 그래서 설령 유명한 백인 학교라 할지라도 돈이 없어 보수 하지 못하는 바람에 학교와 교구들은 계속 낡아지고 형편없어졌다. 이런 상황인데도 당시 교육계를 지배하고 있던 백인들은 오로지 흑인들을 자신의 학교에서 몰아내는 것에만 신경쓸 뿐, 교육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소련에서 쏘아올린 스푸트닉이 이 모든 것을 삽시간에 바꿔버린 것이다. 쓰나미처럼 몰려온 공포로 인해 미국 사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둘로 흑인들에게 학교를 개방하고 널리 사회 진출을 허용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흑인 여성 과학자 캐서린 존슨 역시 이것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다인종 국가 미국, 모두들 지금 미국이 가진 저력은 미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쇄국이 아니라 개방이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실상은 통합이 아니라 분리가 더 많이 자행되었다. 그들은 내부에 온갖 격리 영역들을 만들고 위계와 차별을 통해 존속했다. 스푸트닉처럼 외부의 압력으로 거기에 가시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땅 속을 흐르는 물처럼 드러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랬기에 다시 한 번 트럼프 대통령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민중들은 이미 스푸트닉 때 인종 차별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여실히 경험했다. 소련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미국이었지만 인종 차별 때문에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고 그래서 끝내 머리에 파멸을 가져올 수소 폭탄을 이고 사는 공포를 맛보았다. 그 때, 그들은 얼마나 후회했는가? 그래서 흑인들에게 학교를 개방해도, 사회 진출이 허락되어도 별 말 없이 내버려 두었다. 그랬던 그들이, 예전 그들의 후회를 깡그리 잊고 다시 인종 차별을 획책하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외부의 압력으로 인한 변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변화는 언제나 자신에게 닥쳐온 문제와 상황들을 그 누구의 판단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사유하고 성찰하며 실천하는 것에서 가능하다. 내부로 부터의 자발적 변화만이 남도 살리고 나도 살리는 진정한 구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흑인 제임스 톰슨이 '왜 우리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미국을 위해 2차 대전에 나가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 '피츠버거 커리어'에 보낸 투고문에서 강조했던 '이중의 승리'도 바로 그것이었다.


 "유색 미국인들은 더블 V- 이중의 승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첫 번째 V-는 외부의 적에 대한 승리이고, 두 번째 V-는 내부의 적에 대한 승리이다. 이 나라에서 추악한 편견을 자행하는 자들은 추축국 군대만큼이나 확실하게 우리의 민주적 정부를 해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p. 64)


 그런 사유와 성찰에 있어,'히든 피겨스'는 꽤 의미 있는 여정을 선사한다. 항공과 로켓 과학이 나오고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전혀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영화만큼 흥미로우며 페이지 또한 거침없이 넘어간다. 저자 마고 리 셰털리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하는 데만 5년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 5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책 자체가 온전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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