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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감각, 초연결지능 - 네트워크 시대의 권력, 부 , 생존
조슈아 쿠퍼 라모 지음, 정주연 옮김 / 미래의창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시대가 달라지면 감각도 다르게 된다고 보았다. 니체가 주로 활동했던 때는 흔히 말하는 근대였다. 근대는 확실히 이전의 중세와 달랐다. 존 버거는 르네상스 이후로 우리의 오감 중 특히 시각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근대는 한 마디로 시각 패권주의의 시대였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 한편 시간이라는 게 생겨나 모든 일상이 정확한 시간에 따라 나뉘어졌다. 그리고 증기 기관의 발달로 속도도 생겨났다. 기관차와 자동차의 속도는 말과 자기 다리에만 익숙해져 있던 이들에게 이전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빠르기였다. 이 미친 빠르기와 초 단위로 관리되는 일상이 니체에겐 거의 광기에 가까운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니체는 이런 시대를 견디려면 현재의 오감만으로는 부족하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감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바로 그 감각을 니체는 '제 6의 감각'이라 불렀다. 니체에 따르면 여섯 번째 감각은 역사의 리듬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인류의 삶에는 언제나 일정한 속도와 경향이 있어서 자기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마라톤 선수처럼 코스 전체에 대한 감각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보았다. 종으로 역사와 횡으로 시대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감각인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증명하듯이 그런 감각을 가진 자들이 대체로 성공을 일궈냈다. 그런데 니체의 말대로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감각이 요청되는 것은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경험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현재는 또 근대와 다르다. 흔히들 지금을 네트워크의 시대라 말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연결된다. 잠깐 페이스북만 이용해도 무수한 사람과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게 바로 우리다. 근대의 사람이 보고 다룰 수 있었던 정보의 양과 지금 우리가 보고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일례로 근대와 더불어 시작된 언론은 당시엔 정보를 생산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데 있어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힘을 못 쓴다. 미국 대선에서도, 우리나라 대선에서도 언론의 영향은 미미했다. 이제 정보는 누군가에게 독점되지 않는다. 생산도, 유통도 모두가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시대가 또 달라졌으니 또 하나의 감각이 요청될 수밖에 없다. 여섯 번째의 감각을 넘어선 '일곱 번째의 감각'이다. 그것이 바로 미국 '타임'지 디지털 부문 편집장 출신인 조슈아 쿠퍼 라모의 생각이다. 바로 그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밀도 있게 풀어낸 것이 바로 '제 7의 감각, 초연결지능'이다.
제7의 감각은 간단히 말해 어떤 사물이 연결에 의해 바뀌는 방식을 알아내는 능력이다. 왜 이 능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모든 것을 연결하는 행위가 세상에 진정으로 새로운 역할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힘이 초고밀도로 집중되고 복잡하고 즉각적인 혼란의 위험이 발생한다. 폴 비릴리오는 배를 발명하면 난파도 동시에 발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똑같이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연결은 긍정적 결과 못지않게 부정적 결과 또한 야기할 것이다. 광범위한 SNS의 연결이 IS 테러집단에 악용되고 우리의 일상 생활을 방해하며 사생활 침해를 가져오는 것처럼 말이다.
네트워크는 기존의 갈등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도 않지만 그 갈등에서 우리를 구해주지도 않는다. 네트워크는 오래된 증오에 새로운 충성심을 채운다. 그리고 과거의 원한을 더 사무치게 만들고 분노를 느낄 때 세상을 공격하기 더 쉽게 만든다. 인류가 비행기와 탱크 같은 '차가운 무기'의 세상에서 디지털 광신호와 생물학적 감염이 퍼져나가는 '뜨거운 무기'의 세상으로 이동했다고 단언하면 명쾌하겠지만, 사실 더 흥미진진하고 위험한 것은 차가운 시스템과 뜨거운 시스템의 생소한 결합이다. 우리의 미래에는 GPS와 TNT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비유도폭탄이 훨씬 더 정확하게 제 역할을 할 것이다. DNA 같은 구성물로 이루어진 병원균들이 네트워크가 알아낸 감염이 가장 용이한 장소에 배달될 것이다.(p. 113)
'제 7의 감각'은 초연결사회가 가진 바로 이러한 동전의 양면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부제가 '초연결지능'인 것은 바로 그런 연유다. '십계'로 유명한 폴란드의 영화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는 동유럽의 개방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유와 더불어 이전에 없었던 죄악도 들어왔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혼돈을 주었다. 내 영화는 바로 그 혼돈에 대한 것이다.' 네트워크 시대도 이와 같다. 개인의 역량이 확장된만큼 위험 역시 커진 것이다. 저자가 '제 7의 감각'을 생존 본능으로 보는 것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사실 네트워크란 것 자체도 생존과 안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터넷'이란 개념이 최초로 세상에 출현한 것은 1959년으로 냉전시대 때였다. 그것을 발표한 사람은 바로 하워드 휴즈 항공사 출신의 전기 엔지니어인 폴 배런. 그 때는 아직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의 기억이 생생하여 특히나 미국의 경우 누구나 언제든 버튼 하나로 지구 모두가 끝장날 수 있다는 공포를 등에 짊어지고 다녔다. 최근에 나온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 바로 그런 시대의 분위기를 잘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미국 외교와 국방부의 주된 관심사는 적인 소련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위험을 잘 피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스프투닉 위성과 잇다른 로켓 발사 성공으로 언제든 자기 머리 위로 수소 폭탄이 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런 위험 회피 원망에 더욱 불을 지폈다. 거기다 더욱 실제적인 문제가 있었다. 당시 미국엔 수많은 폭탄과 미사일 그리고 100만의 병력이 있었지만 실상 미사일 공격을 한 번 받으면 그걸로 응전이 영영 불가능해져 버리는 현실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미국 전역에 걸쳐 있는 미군 기지 간 연락망이 오직 구리선을 이용하는 전화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구리선은 미사일 공격에 쉽게 끊어졌고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미국은 즉각 대응이 어려웠다. 이 난점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폴 배런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폴 배런은 미군 통신이 가진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 점에서 수십만 개의 점으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이동하는 연결망 시스템을 착안한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것이 바로 '인터넷'이었다. 폴 배런은 말한다.
'어떻게 연결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것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p. 164)
하지만 이런 생각은 미군 수뇌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터넷은 수직적 명령 체계가 아닌 대등한 참여로 이뤄지는 수평적 체계였고 이것은 당시 상명하달식의 통제와 복종에 익숙해진 군 수뇌부에 아주 낯선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은 폴 배런과 같이 일하고 있던 동료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군 수뇌부와 동료 전문가들 모두 '제 7의 감각'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모처럼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곧 사장되고 말았다. 이런 결과를 낳은 그들의 낯설음을 결코 책망할 수 없는 것은 네트워크 시대가 그들의 그러한 반응이 당연했을 정도로 아주 혁신적은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카오스 이론'을 창설한 것으로 유명한 존 홀랜드는 그것을 '복합에서 복잡의 변화'라 부른다. 복합과 복잡은 다르다. 복합은 상호작용을 하는 다양한 부분으로 구성되더라도 예측에 따라 설계할 수 있으며 반복적으로 제작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잡은 정확한 설계대로 제작할 수 없고 구성 요소를 통제하는 것도 어렵다. 바로 이런 설계와 통제 면에서 복합과 복잡은 차이가 많이 나는데 네트워크는 이러한 '복잡계'에 속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네트워크란 새로운 상호작용이 마구 일어나는 저수지와 같아서 늘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과도적 상태에 있다. 존 홀랜드는 이를 두고 '창발'이라 칭한다. 상향식 상호작용이 전에 존재한 적이 없는 형태의 질서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완전히 달라져 버린 세계 안에서는 아무래도 새로운 감각을 갈고 닦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전과 다르게 네트워크 시대는 마이크로 소프트나 애플 또는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그리고 유투브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선점 효과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제조업 중심의 2차 산업에서는 아무리 후발 주자라 하더라도 선발 주자가 올라간 사다리를 그들 역시 올라갈 수 있었는데(우리나라가 대표적이다.) 네트워크 시대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제 2의 아마존, 페이스북, 유투브가 잘 생겨나지 않는 이유다. 이것을 두고 저자는 '게이트 키핑'이라 부른다. 권력은 이제 얼마나 많은 연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소를 얼마나 빨리 찾아낼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제 7의 감각'은 그러한 새로운 토폴로지, 즉 지형을 만드는 게이트를 찾아내고 만드는 능력이기도 하다.
책은 모두 415페이지로 다소 두툼한 편이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왜 지금 제 7의 감각이 요구되는 것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2부에서는 '제 7의 감각'이 무엇인지 말하며 마지막 3부에서는 그 감각의 응용 같은 것으로 제 7의 감각의 저변 확대로 만들어 갈 사회의 변화를 그린다. '제 7의 감각' 뿐 아니라 갈수록 피부에 와 닿는 '네트워크'라든가 '정보화 시대'를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한 번쯤 호기심이 있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