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 4인의 도발적 젠더 논쟁
해나 로진 외 지음, 노지양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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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한 권의 책이 논쟁의 중심에 섰다.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해나 로진이 쓴 '남자의 종말'이란 책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번역되었는데, 그 책에서 해나 로진은 지금 사회가 가부장제에서 가모장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남자의 시대가 곧 종언할 것이라 내다 보았다. 아무 근거 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가지 통계들을 인용하여 구체적으로 증명했기에 첨예한 논쟁이 뒤따랐다. 이것을 캐나다의 유명한 토론 프로그램인 멍크 디베이트가 놓칠 리 없다. 즉각 해나 로진의 책을 가지고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들을 초빙하여 토론을 벌였다. 때는 2013년 11월 15일. 장소는 토론토.


 3,000개의 유료 객석이 전부 매진된 가운데 그 많은 방청객들을 앞에 두고 네 명의 논객이 남성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 내다보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서로 편을 갈라 젠더를 주제로 한 멍크 디베이트가 진행되었다. 내다 보는 쪽엔 '남성의 종말'을 쓴 장본인인 해나 로진과 모린 다우드(클린턴 섹스 스캔들과 관련해 쓴 칼럼으로 퓰리처 상을 탔고, '남자가 꼭 필요한가?'란 책을 쓴 바 있다.)가 편을 먹었고, 반대하는 쪽엔 커밀 팔리아(예술 종합 교육 대학 교수에다 사회평론가,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을 스탈린주의자라고 부르는 그녀는 현대 주류 페미니즘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자신을 '안티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라 칭한다. 이미 그녀의 첫 저서, '섹슈얼 페르소나'로 페미니즘 진영에서 뜨거운 찬반 양론을 일으킨 바가 있기도 하다.)와 케이틀린 모란(패널 중 유일하게 영국의 페미니스트로 그 곳에선 '괴짜 페미니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의 '진짜 여자가 되는 법(이 책 개인적으로 추천!)'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바 있는데 여성성을 말하는 데 있어 꽤 대담하고 별명처럼 페미니즘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그녀 스스로는 자신을 맑시스트라 부른다.)이 편을 먹었다.



 '멍크 디베이트'의 책들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는 모던 아카이브에서 나왔다. '사피엔스의 미래'와 '감시 국가'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구성은 먼저 왜 이런 토론을 벌이게 되었는지 이유를 소개하고 그 뒤에 실제 토론한 내용들이 나오며 그 후엔 패널들이 토론 전 인터뷰한 것과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즘 비평가 중의 한 사람이자 남성 차별도 여성 차별만큼 중시해야 한다는 에쿼티 페미니스트(케이틀란 모란이 바로 이 입장이기도 하다.)인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와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진화하는 결혼(이 책도 개인적으로 추천!)'의 저자 스테파니 쿤츠가 토론에 대해 논평한 것을 마지막에 싣는 것으로 되어 있다.


 토론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다소 부질없는 일로 보인다. 토론은 직접 들을 때라야 비로소 그 의미의 파악도, 평가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분위기만이라도 짐작할 수 있도록 무모하지만 소개라는 것을 시도해 본다면,


 일단 토론의 포문은 토론의 대상이 '남자의 종말'이기 때문에 그것을 쓴 해나 로진이 먼저 연다. 그녀는 미국과 캐나다의 실상을 통하여 현재 역사적으로 정의해온 전형적인 남성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첫째, 남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실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둘째, 교육에 있어서도 한 개 대륙을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대학 졸업장을 받는 이들의 60%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남성이 실패하고 있으며 셋째로, 남성이 주요 소득자인 전통적인 가정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고(이것은 특히 노동자 계층에서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었던 폭력성과 공격성을 잃고 있다는 것을 든다.


 서민층 남성들은 직업을 잃고 자신의 역할을 잃고 가족을 잃고 있어요. 여성들이 혼자 다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과거 마초들의 본거지였던 곳, 전통적 가치가 중시되던 이 나라의 일부에서 이렇게 가모장제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제가 여성들에게 묻습니다. "왜 아이들 아버지하고 살지 않으세요?" 그러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해요. "집에 입 하나를 더 늘리고 싶지 않아서요."(p. 36)


 한 마디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남성성이 급격하게 퇴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그녀는 이제 남자들도 체모에 엄청 집착하고 있으며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든다.


 이에 반론을 펼치는 커밀 팔리아는 이러한 남성성의 퇴조를 심각하게 우려한다. 그는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며 제조업이 쇠퇴하고 금융과 서비스업이 중심이 된 지식 사회가 되면서 육체 노동을 경시한 결과로 해석한다. 


 지식인 사회가 남성성과 남성다움을 일상적으로 모욕하면 앞으로 여성들은 성숙한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지도 않고 헌신과 희생을 존중하지도 않는 남자들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포용할 만한, 또는 반체제적인 레즈비언이 거부할 만한, 강한 남성성이 없다면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중심이 잡히고 깊이가 있는 감각을 깨닫기 어려울 것입니다.(p. 41)


  그녀는 페미니즘의 적절한 임무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광범위한 차별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경직된 사회 관습을 공격하고 재건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남성을 편견에 가두고, 하찮게 취급하며, 악의 근원이라고 비난하지 않고도 진보적인 개혁 운동을 펼치는 것은 과거에도 가능했고 지금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의 책과 글에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좌파의 위치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연중에 부르조아의 가치와 문화의 특권을 감싼다는 점입니다.(내가 정희진의 글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콕 꼬집고 있어 이 부분을 읽으면서 놀라웠다.) 중산류층 엘리트들의 사무 능력이나 경영 능력만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자 인류의 궁극적인 혁명으로 다루고 있습니다.(p. 43)


 특히 커밀 필리아는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 그런지 현재 교육 체제를 많이 공격한다. 이런 교육 체제가 육체 노동 경시 경향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면서 독일처럼 다양한 직업 훈련을 실습할 수 있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음 토론자로 나선 모린 다우드는 남자다움의 기준이 이미 변해버렸으며 이제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남자나 여자나 양성적인 특성이 존중되는 중성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데 여자와 달리 남자는 그 앞에서 여전히 머뭇거리고만 있어요. 왜냐하면 남자다움이라는 기준이 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면서도 집에서 살림하고 애 보는 남자는 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죠.(p. 50)


 그러면서 이미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밝힌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앞으로 10만 년에서 천만 년 사이에 지구에서 남자들이 사라질 것이라 예측한 바 있는데 그 이유가 남성 염색체인 Y 염색체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한 마디로 과거에 연연해하지 말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정규 교육은 하나도 받지 않고 오직 집에서 홈 스쿨링을 한 덕분에 생각에 있어서 더욱 자유분방한 케이틀린 모란은 자신의 페미니즘을 이렇게 설명하면서,


 첫째, 꽥꽥거린다. 둘째, 칵테일을 연료로 한다. 셋째, 맑시스트다.(책에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이 실은 일본식 표현이므로 원래 표현에 맞게 '맑스'로 고친다.)(p. 56)


 자신은 친여성도, 친남성도 아님을 밝힌 다음, 남성과 여성 모두 공존, 공영(共榮)해야 할 존재라고 하면서 이 문제를 남자나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역설한다.


 고통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평등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실패했다고 느낄 때 자신에게 선물하는 근사한 사치품이 아닙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고급 캐시미어 수면 양말이 아닙니다. 평등이란 인류에게는 공기나 물과 같은 필수 요소입니다.(...) 페미니즘이 남녀는 평등하다는 간결하고도 진실한 명제라면, 우리는 미래에 그 명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남성들이 여성을 도와 평등을 쟁취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고, 여성들이 남성이 평등을 쟁취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겠지요.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남자 문제' 혹은 '여자 문제'로 분리하는 것을 그만두고 모든 문제를 본질적으로, 다시 말해 '인류 공통의 문제'로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p. 58)


 이제 겨우 책의 3분의 1만 소개했는데도 글이 이렇게나 길어졌다. 어쨌든 이것으로 대략 책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해나 로진은 서민 계층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가모장 가정의 증가를 '남자의 종말'에 대한 중요한 징후 중 하나로 해석했는데 거기에 대해 커밀 필리아는 엘리트 계층과 하위 노동자 계층 사이의 불평등한 임금 구조와 사회 양극화에서 기인한 것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문제는 남자들만의 문제로 볼 수 없고 그러한 것을 낳는 경제 구조를 바꾸는 사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대해 해나 로진도 동의하며 육체 노동이 주가 되는 분야의 임금도 지식 노동만큼이나 제대로 평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다. 커밀 필리아는 더 나아가 교육 제도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남성성이 결코 스스로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여성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논의도 있었는데, 나는 미국이 아직도 무급 출산 휴가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놀랍게도 전 세계적으로 무급 출산을 유지하는 나라가 세 나라인데 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스웨덴 역시 1년 동안 유급 출산 휴가를 여성에게 주긴 하지만, 특정한 행동만 하도록 압박하고 있어 문제라고 한다. 해나 로진에 따르면 스웨덴이 미국보다 여성들의 일터 환경이 더 불평등하다고 말한다.(헉! 스웨덴이 그럴수가! 조금 충격인 걸.) 마일리 사이러스에 대한 찬반 논쟁(아, 물론 여기서 토론의 대상이 된 마일리 사이러스는 정확히 2013년 8월 이후의 것이다(책에는 안 나와 있기에 굳이 밝힘.))을 통한 여성성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 혹은 나는 어느 편에 서는가 하는 것을 밝힐 시점인데, 나는 그것을 전문가 논평에 나온 스테파니 쿤츠의 말로 대신하려 한다. 


 남자는 퇴물이 아니다. 남자가 퇴물이라고 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 다른 욕구와 능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고, 여성의 부상이 남성에게 위협이 된다는 주장일 뿐이다. 케이틀린 모란이 지적한 대로 우리는 지금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여성이 평등한 사회를 살아갈 때 여성의 파트너와 그 아들들, 형제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p. 191)


 같은 전문가 논평을 한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는 이 토론을 논평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으며 재기발랄하기 이를 데 없는 네 명의 여성들이, 음울하고 매사 발끈하며 '강간 문화(강간이 만연하고 사회에서 용인되는 환경)'에만 집착하는 현대 페미니즘 프레임에서 벗어나 젠더 정치를 논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시길 바란다. 이번 멍크 디베이트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고 남자와 여자 모두 한발 더 나아갔다.(p. 185)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가 언급한 '강간 문화'는 우리나라 페미니즘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현대 페미니즘 프레임이란 말마따나 때로는 그 사안이 모든 페미니즘의 생산적 논의를 다 잡아먹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젠더 정치를 보다 폭 넓은 시야로 봐라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들 하나같이 말빨도 좋고 내용도 쉬워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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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7-2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산 문제는 남성의 비협조 문제만이 아닌 정부측의 국가적 압제가 많다고 생각해서 남성의 인식이 향상되어 개선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임금 격차부터 줄여 나가야 겠지요. 그게 출산과 육아 이후의 여성들에게도 도움이 될 테고요.

ICE-9 2017-07-25 03:52   좋아요 1 | URL
저도 전체적으로 동의합니다. 국가가 먼저 유급 출산 휴가를 장려하여 업무 환경을 적극 바꿔나가야죠. 어떤 책에서 봤는지 얼른 기억 나지 않는데, 사람은 많이 보고 낯익은 것에 대해선 관대해져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때문에 동성애의 경우에도 커밍 아웃을 보다 많이 하여 사람들의 시선에 많이 노출되는 게 낫다고 하더군요. 출산 휴가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쪽으로 국가의 선도적인 제도 마련이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