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소년기를 보낼 때만 해도
한풀이 수단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대대로 물려온 가난에서 벗어나자든지 이 외모로 공부까지 못하면 안되겠다든지
날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난 하위 5%에 속하는 외모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내게 있어서 한풀이 수단은 당연히 공부였다.
그 시절엔 의대 커트라인이 다른 과보다 낮았던 덕분에
난 의대에 갔다.
그리고 난 학생들 중 평균 정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 말은 곧 나처럼 외모를 비관해 공부를 했던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걸 의미한다.
시대가 변했고
이제는 있는 집 애들이 의대를 들어온단다.
원래 있는 집 자식이었던 터라 그런 기사를 봐도 별 감흥이 없지만
해마다 들어오는 신입생들을 관찰한 결과
외모의 결함을 극복하고자 의대에 들어오는 사람이 드물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내가 몰랐을 뿐, 그런 조짐은 예전부터 있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등을 한 김석배 선생을 보라.
트레이드마크인 갈기머리와 부리부리한 두 눈은 여학생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나보다 불과 6년 늦게 의대에 온 윤세영 선생은
레지던트 혹은 학생처럼 보이는 동안과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살인미소로 인기를 모은다.
그로부터 진찰을 받았던 한 여성의 증언이다.
“선생님이 제 배를 만지는데요,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배에다 힘을 꽉 줘버렸어요.”
이 말을 들으면 의사는 역시 나처럼 외모가 떨어지는,
그래서 여자 환자들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하는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시대가 변했는데.
앞으로 십년만 있으면 흰 가운을 입고 웃음짓는 꽃미남들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김석배 선생과 윤세영 선생은 꽃미남 의사의 선두주자며
우리 병원 소화기 내과에 환자가 유독 많은 것도 이 두분과 무관치 않을 듯싶다.
* 사진은 허락 안받고 올렸지만, 어차피 병원 홈페이지에 있는 거라 초상권 침해 같은 일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