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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인지 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
조지 레이코프 &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 2018년 3월
평점 :
나처럼 진보 진영을 응원하는 입장에선
돈이 많지 않은 유권자들이 보수에게 투표하는 게 못내 야속했다.
그 보수 후보는 당선된 뒤 사회복지를 축소함으로써 자신들을 힘들게 할텐데 말이다.
홍세화 선생님은 이를 두고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라고 일갈하셨는데,
많은 지식인들은 이런 현상을 ‘그들이 무식해서 그렇다’라고 해석했다.
나 역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이하 끌리는가)를 읽어보니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책의 설명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정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어서,
아버지가 절대 권위를 가지고 선악의 기준을 정하는 ‘엄격한 가정’이 있고,
아버지가 자녀들과 합의해서 가치의 기준을 정하는 ‘자애로운 가정’이 있다.
엄격한 가정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말한다.
“세상은 정글이야. 너는 힘을 길러야 해. 그래서 저 바깥의 악당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어.”
자애로운 가정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다 사회 탓이란다.”
그런데 국가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가정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조국’이라든지 ‘모국’ 같은 말을 쓰고, 또 ‘건국의 아버지’ 같은 말도 쓴다.
따라서 정치에 있어서 사람들이 어떤 모델을 적용하는지는
“자신의 문화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경험” (170쪽) 그리고 “공적 담화를 지배하는 언어” (152쪽)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아버지들은 대부분 절대적인 선악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훈육한다.
어린이들의 세계도 크게 다를 바 없어,
힘이 센 아이가 힘이 약한 아이에게 양보하는 것보다,
힘이 센 아이가 힘을 이용해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경우가 더 잦다.
즉 진보보다는 보수의 가치가 훨씬 더 쉽게 몸에 체득된다는 뜻,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사익에 관계없이 보수 쪽을 지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해석을 맞게 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드는 의문은 이 책의 저자들이 사는 미국이야 그럴 수 있다쳐도,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참담한 수준의 보수에게 표를 던지는 건 좀 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만일 저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설치는 우리나라 보수를 봤다면,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난 좋은 책을 ‘재미있든지, 아니면 유익하든지 최소한 둘 중 하나는 갖고 있는 책’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끌리는가>는 유익하면서 재미까지 있는, 내 기준 완벽한 책이다.
물론 처음 몇십 장은 은유 어쩌고 하면서 약간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포기하지 말고 계속 책장을 넘기다보면 깨달음의 순간이 오고,
그 깨달음은 커다란 쾌감을 선사한다.
하기야, 수십년 된 의문을 풀어주는데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