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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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백을 해야 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떠올랐다.
아니 리뷰를 쓰는 내내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라면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써낼까 싶었다.

난 간혹 시선이 시니컬한 편이다.
항상 그녀의 시선은 따뜻했었다.
내가 보기엔 그저 그랬어도,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녀가 리뷰로 써내면 따뜻하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어 있곤 했었다.

이 책이 내겐 그저 그랬다.
책 날개 안쪽을 보니 ‘로버트 F.영’은 ‘공상과학소설가’로 분류된다.
그의 작품들이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문제가 없는 데, 어디선가 한번쯤 등장했던 내용들이다 보니 신선함이 반감된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너무 많이 읽은거야’ 하고 퉁쳐 버리기엔 뭔가 개운치 않다.
1950년대,60년대에 쓰여진 작품들이 이제야 번역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흥미만 가지고 읽고 덮어버린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의 답보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붙일 수 있을만한 내용이다.
어느 걸 봐도 황당무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럴듯한 개연성을 갖고 있고, 적당히 재밌다.
‘공상과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거부감이나 이물감은 없다.
표제작이기도 한 <민들레 소녀>는 일본 에니메이션 ‘클라나드’에도 소개되어 좀 유명한가 보다.

난 <별들이 부른다>도 좋았다.

소녀는 계속해서 말했다.“왜 별다른 운명을 가진 사람만 훌륭하다고들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그건 그들만이 외로움을 견딜 줄 알기 때문이지. 그들은 그저 묵묵히 외로움을 견뎌 낼 줄 알거든. 하버드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켰다.(85쪽)

“인정하죠. 당신이 나에게 방과 식사를 줬어요. 하지만 난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하지도, 당신이 편하게 일을 하게도 못했죠. 하지만 그렇게 아낌없이 준 것들을 빌미로, 당신은 내가 인간의 존엄성을 가져보려고 할 때마다 내 영혼의 한조각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죠.”
앨리스는 단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누구도 영혼의 한 조각 같은 걸 신경 쓰지는 않아!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걘 우주인이잖아.” 잭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주에서는 그렇게 얘기하거든. 우주인들끼리 말이야. 그건 그들을 미치게 하거나 아니면 벌써 미쳤다는 걸 모르게 해 주지!”(92쪽)

문제는 나이를 먹을수록 나의 우주는 줄어들고, 외로움은 점점 자라나는 데 있다. 외로움은 지식의 회랑과 말로 이루어진 대성당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단어와 말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힘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내가 광인이 되는 순간까지 또는 심해 바닥에 가라앉은 널빤지에 들어앉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수송선의 진로를 정하는 게 내 시간을 소모할 만큼 복잡한 과정이라고 해도, 조타실에서 혼자 배를 조종하는 시간들이 긴 밤이라고 해도, 외로움이 자라나는 상황과는 다를 것이다.(94쪽)


이 책은 별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외로움 같은 단어들이 이 시대에도 통용되는 언어들로 정의 되어 있다.  
특히 이 책 전편을 흐르는 시에 대한 통찰력은 돋보인다.

책을 읽으며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슬펐던 건,
미쳐야 할 순간에 멀쩡하고, 상처받아야 할 순간에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순간 깨달아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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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1 09:02   좋아요 0 | URL
아, 저 인용구 넘 좋다....
'그건 그들만이 외로움을 견딜 줄 알기 때문이지'.. 나 이런 사람 되고 싶거든요.
별다른 운명을 가지고 싶은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 되고 싶어요.
과연 가능할까나.. 워낙 외로움도 잘 타니까.

묘사가 참 좋은 책이네요.

양철나무꾼 2010-12-22 01:08   좋아요 0 | URL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찬 책이예요.
사람들에 따라선 '참 좋다.'고 할 수도 있을텐데...내가 그간 장르소설을 너무 읽어주신게죠~^^

느린산책 2010-12-21 09:46   좋아요 0 | URL
양꾼님의 마지막 고백..뇌리에 박히네요.

양철나무꾼 2010-12-22 01:10   좋아요 0 | URL
이 책, 좀 사랑스럽고 멜랑꼬리하여 이런 고백 가능해요.
어찌보면, 사랑 고백하기 참 좋겠다~^^

반딧불이 2010-12-21 14:31   좋아요 0 | URL
저의 문제는 나이를 먹을수록 우주는 티끌만큼 늘어나는데, 외로움은 순간적이지만 사무치는데 있는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0-12-22 01:12   좋아요 0 | URL
순간적이고 사무치는 거,이거 상처를 만들수도 있는데...
순간을 길게 잡아서 간격을 넓히고,사무치는 고저의 차를 줄여서 좁히고...
둥글려야죠~^^

그게 나이 먹는 힘이죠~!!!

저절로 2010-12-21 15:38   좋아요 0 | URL
미쳐야 할 순간에 멀쩡하고, 상처받아야 할 순간에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한 채..!

요즘 제가 똑 저래요.


양철나무꾼 2010-12-22 01:13   좋아요 0 | URL
우리 머리 맞대고 대책을 강구해 보자구요~!

마녀고양이 2010-12-22 08:30   좋아요 0 | URL
무신 대책을 강구해염!
둘 다...... 햇살 보고 사세요!
(잔소리를 해야 해, 투덜투덜~~~)

양철나무꾼 2010-12-24 09:00   좋아요 0 | URL
투덜이 스머프 같애,ㅋ~.

마고님도 끼워 줄게~!!!

꿈꾸는섬 2010-12-21 16:44   좋아요 0 | URL
인용구가 정말 좋네요.^^
나이들수록 우주는 줄어들고, 외로움은 점점 자라난다.
서글프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잖아요.^^

양철나무꾼 2010-12-22 01:18   좋아요 0 | URL
언젠가 더 나이가 들어...
서로의 외로움을 꺼내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꿈섬님은 한참 영거하시잖아요~^^

꿈꾸는섬 2010-12-22 01:30   좋아요 0 | URL
ㅎㅎㅎ그쵸. 전 아직 조금 더 젊지요.ㅎㅎㅎ

양철나무꾼 2010-12-24 09:01   좋아요 0 | URL
젊다는 거 보다 더 좋은 말이 없는 것 같애요~^^

같은하늘 2010-12-23 18:11   좋아요 0 | URL
대책을 강구해야 할 사람이 여기도 하나 추가요~~~ -.-;;;

양철나무꾼 2010-12-24 09:01   좋아요 0 | URL
네, 님도 같이 머리를 맞대 보자구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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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알라딘의 글쓰기 기능이  심히 불안정하다. 
지난번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때도 그랬는데, 어제 새벽에도 한참 공들인 리뷰 하나가 홀라당 날라갔다. 아무리 되뇌려 해도 어제 그 필이 살지 않는다. 이 속성 날림의 리뷰가, 어제 '덕분'이 될지 '때문'이 될지 나도 모르겠다.

요즘 내 삶의 화두는 ‘심신의 안녕과 건강’ 이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모르는 '마음 관리법'에 관해서였다.누군가는 마음을 관리하려고 애쓰는 것도 집을 짓는 것과 같으니, 집을 짓지도 말고 탈출하지도 말고 그저 하루 세 번 웃으라고 점잖게 충고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이 책은 내게 심신 관리술로도 읽혔다.

솔직히 이 책이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하긴 지능지수 170이 넘는 아저씨의 ‘심신 관리술’이 재밌다면,
나도 이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녔거나 똘끼 충만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어렵기까지 하다.
때문에 중간중간에 던져지는 방향을 제시하는 암시들을 놓치면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드로스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선이 아닌지,
이를 말해달라고 누군가에게 굳이 간청해야 하겠는가.

And what is good,Phaedrus,
And what is not good -
Need we ask anyone to tell us these things?
라는 구절을 기억할 필요가 있고,
(나는 여기서 선이 禪인지 善인지 궁금하여, 원서를 찾아 보았다.)

또 한 부분,
원래 의도했던 바에 따르면, 사악한 파이드로스에게 승리를 거두는 이는 이 이야기의 서술자가 아니다. 오히려 승리를 거두는 이는 파이드로스를 항상 헐뜯고 비방했던 서술자에게 승리를 거두는 고결한 파이드로스다.
이 부분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자전적 소설이니,저자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저자가, 전기충격치료까지 받아가며 회복되었으나 기억력을 잃는다.
잃어버린 기억력을 되찾고자 열한 살 먹은 아들과 친구 내외와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정신적 삶과 기술공학적 삶 사이의 분열에 관한 책을 쓰고자 마음 먹었다고 얘기하는데,
결국 이 여행이 이 책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기본이 된단다.
내가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이때 나이가 얼추 마흔 하나 였었다.
지금 내 나이 마흔 하나이다.
자연 나와 비교가 되는데, 궁금한 점도 있고 부럽기도 했다.

20대의 거의 전부를 학문과 군 생활과 여행으로 탕진하였고,
30대의 거의 전부를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보냈던 그에게,
여행을 같이 할 정도의 친구가 있다는 게 하나였고,
모터사이클을 장만하고 풍족한 여행을 할 여력이 있었다는 게 또 하나였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었으리라.

어찌되었건...그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고, 그걸 책으로도 쓰게 된다.
그가 소설에서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선, 가치, 질, 소피스트, 수사학에 대한 탐구작업이었다고 한다.

“만일 그와 같은 중력의 법칙이 존재했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솔직히 말해 난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온갖 테스트란 테스트는 모두 통과한 것이 중력의 법칙 같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지니는 속성 가운데 단 하나라도 바로 그 중력의 법칙이라는 것이 소유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생각해낼 수 없으니깐 말이야. 그리고 존재하는 것들이 지니는 과학적 속성 가운데 단 하나라도 중력의 법칙이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낼 수 없으니까 말일세. 그런데도 그와 같은 중력의 법칙이 존재했다고 믿는 게 여전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75쪽)

이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있음을 부각시키는 그런 논리이다.
초원을 텅비어 있다고 표현하는 게 의아했는데, 바로 ‘텅비어’ 와 대구를 이루는 ‘소유하는 것도’ 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물의 의미’ 와 ‘존재 자체’, 이쯤되면 머리가 뽀글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앞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서술자는 사악한 파이드로스에게 승리를 거둘 줄 알았는데,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보니, 고결한 파이드로스 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결한 파이드로스가 승리를 거뒀다고 함으로, 자신의 잃었던 기억의 정당성을 찾지만...
(그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독자인 우리에겐 털어놓지만, )
같이 여행을 하는 존과 실비아 내외에게도 아들 크리스에게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다.
그는 또 다시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거나 전기충격요법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모터사이클 관리술에 대해선 그토록 집요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던 그가, 아이를 그렇게 방치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암튼, 이 책은 내게 선문답 같다.

그는 충돌했고...해체 되었으며...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실체를 모르는 그런 마음이라고 하여,
내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볼 마음 한켠,또는 내가 아끼는 그 누군가를 보듬어 안을 마음 한뼘,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프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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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2010-12-18 12:4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글은 항상 좋아서, 이 리뷰도 좋지만, 날라가 버린 리뷰님도 읽고 싶지 말입니다. ㅠㅠ

양철나무꾼 2010-12-21 02:16   좋아요 0 | URL
이렇게 항상 칭찬해 주시니 말이죠~^^

그런 거 있죠, 날라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이제 웬만해선 알라딘 글쓰기에 바로 글을 쓰는 일은 삼갈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글이 날 것의 느낌이 덜하고 뜸하게 되네요.^^

마녀고양이 2010-12-18 14:06   좋아요 0 | URL
글 참 좋다.... ^^
그런데 책 참 어렵다... 아하하.

그러게요, 내내 나도 자신을 반성하고 돌이켜보고 이모저모 생각해 보지만,
누군가 한번 편안하게 껴안아줄 마음 한뼘 없으니, 서글프네요.
같은 병을 앓고 있는건가, 우리~ ^^

양철나무꾼 2010-12-21 02:21   좋아요 0 | URL
빨간 불이 미친 듯 깜박이는?^^

이 책 참 어려워요.
난 이 책 옛날에 한번 보다가 팽개쳤었어요, 넘 난해해서.
난해함은 어느 정도 해소 되었는데...
그래도 이 아저씨, 별로예요.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죠~

아,근데...마고님은 심리학 공부하니까, 한번 훑어 보긴 해야 되겠죠?^^

루체오페르 2010-12-18 15:07   좋아요 0 | URL
옷 이 책 몇일전에 어떤 분의 추천으로 도서에 담아놨었는데 바로 양철님의 리뷰로 볼줄이야.^^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시는데 도움이 될듯하네요.ㅎㅎ

양철나무꾼 2010-12-21 02:25   좋아요 0 | URL
옷~반가워라,루체오페르님!!!

이 책 읽으면 잃어버린 마음 위치 정도는 파악할지 모르는데, 다소 시니컬해져요~^^


순오기 2010-12-18 15:36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은 절대 손이 안 갈 거 같아요~ 그래서 님의 리뷰가 고맙지요.^^
연말이라고 밀린 일 처리한다고 마음만 분주하지 별로 진전이 없어요.ㅜㅜ
좋아서 하는 게 아니고 의무감으로 하는 거라서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를 보듬어 줄 마음 한뼘이 저에게도 필요해요~

양철나무꾼 2010-12-21 02:29   좋아요 0 | URL
그러시다면 리뷰를 좀 폼나게 써야할텐데,
너무 제 느낌 위주로 훑고 지나간게 아닌가 싶어요~ㅠ.ㅠ

연말이예요.
진짜 하기 싫어서 미뤄 둔 일만 골라서 처리해줄 몸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낭만인생 2010-12-18 22:57   좋아요 0 | URL
마음..
정말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인데도 가장 어렵네요.

양철나무꾼 2010-12-21 02:3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낭만인생님~

네,그게 가장 어렵더라구요~^^

cyrus 2010-12-20 11:05   좋아요 0 | URL
아,, 생각보다 어려운 책인거 같아요. 분량만도 상당하던데..^^;;
파이드로스라면 플라톤의 동명 저작에 등장하는 사람 이름이기도 하는데,,
이 책에 대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네요.
글쓰기 저장에 대한 나무꾼님의 심정,, 저도 이해가 갑니다.
나름 길게 써나가다가 갑작스런 오류에 걸리게 되면 뚜껑 열리게 되죠^^:;

양철나무꾼 2010-12-21 02:35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배워 볼까 합니다~^^
(뚜껑 열릴 때마다 잠깐씩)
도대체가 컴맹이라서, 이게 내가 잘못해서 생긴 오류인가(?) 한참을 고민합니다.
꼭 그 오류는 글을 길게,장시간 썼을때만 걸리는 것일까요?

헐~플라톤을 기억해 내셨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2-27 17:40   좋아요 0 | URL
제겐 공감할 부분이 많은 소설이었어요. 물론 제가 그와 같은 수재는 아니지만요^^;
소설 속 아들이 피살되었더라구요. 이 소설을 써낸 후 그 일을 겪은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까 마음이 아프네요.
다른 판본으로도 읽어 보셨군요? 이번 판본은 역자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 그런지 잘 읽히더군요.
서평 잘 읽고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0-12-27 21: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파고세운닥나무님~^^
님의 멋진 리뷰를 보고 추천과 한방 꽝 눌렀었죠.

저도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내용들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읽혔어요.
그런데, 제가 한 아이의 엄마여서 그런가...
아들을 아이의 눈높이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눈높이에서 보려 하는게 맘 아팠어요.

아들이 피살되고, 아들의 오토바이를 싣고 또 한번 여행을 떠났었다고 되어있더군요.
저는 아들이 죽은 뒤에 태어나는 딸을 아들의 재림 쯤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하긴, 이해하려 한다고 이해가 될만한 상황은 아니지만서도~^^

후속편 '라일라'를 읽게 될지는 좀 고민해 봐야 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2-28 13:59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부분이 있겠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미혼의 남성에겐 그저 주인공과의 동일시만이 주된 독해의 방법이 되었네요^^;
한국을 신비로운 나라라고만 묘사하는 게 걸리긴 했어요. 그들이 늘 갖는 생각인데, 작가 역시 다르지 않더군요.
<라일라>가 아직 번역이 안 되었지요? 읽어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양철나무꾼 2010-12-29 22:33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제가 겸연쩍은걸요, 또 한 수 배웁니다.

저도 한국을 신비로운 나라로만 묘사한 것과 '성벽'에 대한 연구 등도 유감스러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인 탐구와 역자 분의 열정 등은 높이 살만 하죠~^^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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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마당이나 마당에 나무를 가진 집을 만나기 어렵다.
엊그제는 헐벗은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은 주황색 감 몇 알을 보았었는데, 오늘 지나다 보니 그 옆 목련 나무에 봉오리가 맺혔다.
"꽃은 어차피 지려고 피는 거잖아."
하고 웅얼거리지만 서도 채 피기도 전에 얼어버릴 봉오리에 마음이 아프다.

4월 초에,벌어진 겨울눈 사이로 터져 나오는 목련의 밞음을 그려서 안실장에게 제출했다. 그 밝음은 이 세상에 근거를 두지 않는 밝음인 것이어서 색깔의 기조를 잡기 어려웠다. 연필로는 밝음의 밑그림을 그리기가 불가능했다. 밑그림 없이 수채물감을 포개서 칠했고, 마른 다음에 덧칠했다. 물감이 아니라, 종이에서 밝음이 배어나오기를 나는 기다렸다.(122쪽)

흰종이 위에 흰 꽃을 그리려면 검은 물감을 쓸 수밖에 없다. 작약의 흰 꽃잎을 들여다보면 깊은 곳에서 검은색이 배어나온다.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색이었다. 물감을 풀어서 그 먼 색을 드러내려면 여러 번 덧칠할 수밖에 없다. 붓이 스치고 지나가는 결들이 겹쳐지면서, 그 안쪽에서 검은색이 흰색을 끌어낼 것이다.(132쪽)

ㆍㆍㆍ작약꽃은 피면서 동시에 졌고, 지면서 또 피었다. 검은색만이 흰색을 표현할 수 있었는데, 검은 수채물감을 풀어서 검은색이 사위는 자리에 흰색을 드러내는 것은 흰색 물감을 풀어서 새카만 꽃잎을 그리는 일과 같았다.(142쪽)

이 책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내겐 흰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려내는 검은색이었다.
내 아버지의 지난한 일생을 얘기하기 위해 빗대어지는 '내 젊은날' 이었고,
숲 바깥에서의 삶을 대조하기 위한 '숲' 이었다.

주인공을 그려 넣어 배경을 흐리게 하는 것이 하나의 표현기법이듯이,
배경만을 그려 넣어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것도 하나의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물아홉의 조연주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것이,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신 이 땅의 남자들, 우리 아버지들 인듯하여 처연하고 눈물이 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아버지가 떠올라서 힘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풍요인 동시에 결핍이었다.
조연주의 아버지가 조연주를 키우신 그 방법으로 아버지가 나를 키우셨다.

ㆍㆍㆍㆍㆍㆍ혹시 남자 생기면 내 얘기 하지 마라.하더라도 나중에 해.
ㆍㆍㆍㆍㆍㆍ미안하다는 게 뭔지 아니?나는 이제 알 것 같다.미안하다,미안해.정말 미안해.미안해.(8쪽)  

아버지의 범죄사건에 함께 엮여들어갔던 전직 공무원 동료들과 아버지의 상관들, 그리고 아버지에게 뇌물을 바치고 잡혀들어갔던 특수유흥업소 주인, 무도장 주인,매춘업소 포주들도 일신상조회 회원 자격으로 문상을 왔다.(328쪽)

살아 남은 사람은 불쌍하고, 죽은 사람은 쓸쓸하다.
그것이 사는 일이며, 그리고 죽는 일이다.

이 책이 힘들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조연주의 삶이 이해가 되지 않아,감정이입을 하기 힘들었다.
부모를 거부하고 숲으로 들어가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걸 그녀는 난생을 꿈꾸는 것으로 정당화하려 하지만 설득력은 약하다.
스물아홉된 여자의 일상에 로맨스가(작가가 말하는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아버지를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두세달에 한번씩 감옥으로 찾아가는 것은,일종의 자기위안이었지 아버지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그것은 아니었다.

하지만,그녀를 이해하고 못하고는 내 몫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아버지를 향한 적절한 마음가짐을 깨달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다행이 아버지는 살아계시고 난 내 아버지를 향하여 그녀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안실장과 그의 아들만이 자폐가 아니라,
숲으로 들어간 누구나 자폐가 되는 것 같다.
자기를 닫아걸고 안으로 움추러 들기 쉬운 곳이 그 숲이까 말이다.

이제 그녀가 숲에서 걸어나와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다.
살아간다는 것은,어쩜 한걸음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리라.
부재에서 존재를 보고,빈자리에서 그를 느끼다.
이 책에는 그런 논리들로 가득하다.

- 이 큰 나무가 새파란 잎을 달고 있으니, 이 나무는 젊은 나무요, 늙은 나무요?
- 나무는 늙은 나무들도 젊은 잎을 틔우니까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지요.(212쪽)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에 배웠던 소설의 3요소를 떠올려 봤다.
주제,구성,문체...이 셋을 소설의 3요소라고 했던 것 같은데,
주제도 있고,김훈만의 수사라고 할 수 있는 문체도 있는데,
이야기를 개연성 있게 끌어나가는 힘,서사라고 해야하는 것들이 한참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어쩜 이것이 작가 나름대로의 길들여진 것을 낯설게 하여,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친 건 소설을 다읽은 후 작가의 말을 읽고나서이다.

그녀가 숲에 머물던 기간이 10개월이다.
열달이라는 기간동안 그녀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열달이란 기간은 다시 얘기하면 잉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 젊은 날의 숲은 그래서 상실의 숲이 아니라,새로움을 잉태하는 숲이 아닐까?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얘기는 차치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땅의 남자들, 우리 아버지들 뿐만 아니라...
늙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외롭고 서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늙어도 서럽지 않으려면 제 스스로 도를 닦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보니,내게는 외로움의 도를 닦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아직은 바느질을 할 시력은 되는 데,눈이 나빠지면 손의 감각으로도 할 수 있는 뜨개질을 해야 겠다.
화초를 키우고 동물을 키우기는 힘들겠다.
마음은 있지만,난 이들과 다른 음역대, 다른 파장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큰 글자 성경을 돋보기를 끼고 필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불경을 읽고 또 읽어 또랑또랑하게 암송을 해내는 방법도 있겠다. 

저물어 가는 석양 아래 무엇을 하게 되든, '
서럽고 외롭게 늙어가는 누군가 있을 것이고, '외롭게 따로' 지만 그러면서 '함께' 일 것이다.  


이 책은 내용도 한참 들여다 봤지만, 책 자체를 한참 들여다 봤다.
겉표지를 벗기자, 김훈님의 원고지 글씨가 인쇄된 회색 하드커버가 나타났다.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었다. 

책의 여주인공 이름이 '조연주'였는데, 이 책의 책임 편집자 이름도 '조연주'라고 단정하게 박혀 있었다.

45쪽에 보면,
"...도살장 사람들이 와서 각을 떼갔어."
라고 나오는데, '각을 뜨다'가 기본형이니까 '각을 떠갔어.'가 돼야 하지 않을까?

김훈처럼 문장을 벼리는 재주를 가진 사람의 일이다 보니, 뭐 대수인양 수선을 떨게 된다,ㅋ~.


각을 뜨다
              - 윤문자 -

마음에도 결이 있다
서툴러서 자칫 뼈를 다치게 할 때도 있지만
결 따라 잘만 다루면
치욕의 뼈들로부터
살을 잘 발라낼 수도 있다
너무 날이 선 것도,
이가 빠진 날도 안 된다
잘 벼려진 칼날로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
조그마한 흔들림도 용납하지 말 것!
생각의 삐죽한 각을 떠내면
그대로 꿀떡 삼킬 것!
     - '현대시학' 2010년 10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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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12-07 18:18   좋아요 0 | URL
오히려 내 아버지를 향한 적절한 마음가짐을 깨달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오늘 글, 무척 아린데요.

양철나무꾼 2010-12-08 00:37   좋아요 0 | URL
이 땅의 모든 남자들,우리 아버지에서...내 남편으로까지 이어졌어요.

매운 건 우유를 먹으면 좀 낫던데, 아린 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듬어 안고 다독여 드릴까요?^^

프레이야 2010-12-07 20:40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이 리뷰 읽으며 왜 전 눈물이 나죠.
지금 반쯤 녹음하고 했는데 뭐라 말하기 어려운 김훈식의 감동이 밀려오고 있거든요,
제 가슴에요. 세상의 밑바닥을 긁어서 가족을 먹이는 아버지를 저도 생각했어요.
위에 가져오신 시 '각을 뜨다'도 너무 좋아요.
치욕의 뼈들로부터 살을 잘 발라낼 수 있을까요? 우린.

양철나무꾼 2010-12-08 00:42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프레이야님 목소리로 꼭 들어보고 싶어요.
언젠가 듣게 될 날이 있겠죠.
그냥 제 생각인데,님 목소리 김세원을 닮았을 것 같아요.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경쾌한 목소리.

저도 왜 우는 줄 모르고 울었는데,이제야 알겠어요.
'세상의 밑바닥을 긁어서 가족을 먹이는 아버지'때문이었나 봐요.

시,참 좋죠~?^^

blanca 2010-12-07 21:2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저도 김훈에게 서사가 너무 희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문체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 표지 저 지금 알았어요! 우아. <각을 뜨다>는 시의 인용 참 절묘해요. 시도 너무 와닿네요..

양철나무꾼 2010-12-08 00:46   좋아요 0 | URL
님도 읽으셨군요?
제게 김훈은 '남한산성'이 절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분이 번역하신 책 중에 <패디 클라크 하하하>같은 건,
원작자의 서사가 살아있는데다가,수사가 덧입혀져서 완전 죽음인데 말이죠~

시는 저도 참 좋아요~^^

세실 2010-12-08 00:51   좋아요 0 | URL
마음에도 결이 있다.....조그마한 흔들림도 용납하지 말 것! 참 와닿는 문장이네요.
김훈 소설과 잘 어울리는 시예요.
이 책 갑자기 궁금해 집니다.

양철나무꾼 2010-12-09 14:45   좋아요 0 | URL
실은...마음에 결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좀 복잡해졌어요.
결대로 가야할지,비껴가야할지,교차되어 가야할지...
마음이 벼리고 다스려야할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살아있는 걸 넘 소홀히 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말이죠~ㅠ.ㅠ

2010-12-08 02:29   좋아요 0 | URL
아직 못 읽어보았지만, 맨 첫줄로 쓰신 마당... 비평가 정효구의 {마당이야기}가 생각나고, 마당 넓은 집을 꿈꾸었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아마, 어쩌면, 마당은 이제 꿈으로만 남을 것 같아요... {장자} '양생주'의 포정해우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시이군요. 책읽기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아니 오래 읽다보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아예 하지 않고, 그냥 페이지를 넘기며 낮과 밤을 이어가면서, 틈을 채우며 삶을 지속시키는 것, 저로서는 그것으로 족하다는... (쓰고보니 너무 허무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듯한데, 그건 아닙니다.^^ 저 스스로 너무 자의식을 갖지 말고 살고, 책을 읽자는 생각이 들어서랍니다.)

양철나무꾼 2010-12-09 14:48   좋아요 0 | URL
허무주의,냉소주의처럼 읽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말끄러미 들여다보는 금붕어(?)마냥 객관적으로 읽혔어요~^^

네,저도 장자를 읽으면서 '소각뜬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됐어요.

꿈꾸는섬 2010-12-08 10:49   좋아요 0 | URL
어제도 들어와 이 글을 읽었는데 오늘도 들어와 이 글을 다시 읽어요.
내 젊은 날의 숲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는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가보군요.
전 아버지하면 아릿하게 저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둘 있어요. 그래서 눈시울이 붉어졌던가봐요.
'각을 뜨다'라는 시가 잘 어울리네요.
저도 시를 좀 더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0-12-09 14:50   좋아요 0 | URL
'내 젊은 날의 숲'맞는데...스물아홉 조연주의 삶이 맞는데...제가 감정이입을 그렇게 해서...그렇게 읽힌거죠.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릿저릿한게,저만이 아니었군요~^^

반딧불이 2010-12-08 14:17   좋아요 0 | URL
평생동안 칼을 갈지 않고 쓰는 백정에게 문혜왕이 그 방법을 물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마음의 살을 발라내는 시로도 접하게 되네요. 신경숙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울린다더니 이번에 김훈에 아버지로 사람들을 울리는 건가요?

양철나무꾼 2010-12-09 14:53   좋아요 0 | URL
전 달인이 될려면 적어도 장자의 소각뜨는 신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쿨럭~
이 시 참 좋죠?^^

신경숙이랑 김훈이 세트는 아닐진데,
그리고 김훈이 꼭 아버지로만 읽히지는 않을수도 있는데,
제 개인사랑 엮어 너무 몰입하였던 거죠~^^

마녀고양이 2010-12-08 16:29   좋아요 0 | URL
굉장히 좋은 리뷰네요.
말 더 붙일 것도 없는 아련함을 느낍니다.

양철나무꾼 2010-12-09 14:53   좋아요 0 | URL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__)

잘잘라 2010-12-08 18:0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을지, 좀 더 기다려볼래요.
나는 저렇게까지 끈질기게 글로 뭘 그려보려고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냥 쭐래쭐래 그를 따라 생각하는 맛을 들일까봐,,,

양철나무꾼 2010-12-09 14:55   좋아요 0 | URL
적어도 이야기가 그려지지는 않으실겁니다.

목련이나 찔레꽃이나 작약이나 뭐 그런것들이실 거예요~^^

같은하늘 2010-12-09 02:42   좋아요 0 | URL
찜해놓고 보지 못하고 있는 책인데, 멋진 글이예요.^^
그리고 표지를 벗긴 책도 멋져요~~

양철나무꾼 2010-12-09 14:56   좋아요 0 | URL
책 겉표지 속에 저렇게 멋진 보물이 감춰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따라쟁이 2010-12-18 12:43   좋아요 0 | URL
도저히. 그러니까 추천을 누르지 않고는 미쳐버릴것 같은 기분을.. 같이 근무하는 옆에 선생님 아이디 불러 보라고.. 막.. 추천을 눌러야 한다고... 막...

양철나무꾼 2010-12-21 02:10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막.. 칭찬을 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는걸요~
잘 지내시죠?^^

전호인 2011-01-11 08:54   좋아요 0 | URL
이 달의 리뷰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내 젊은 날의 숲이 무엇일까를 곰곰히 회상하고 있는 데 무겁기만 하네요.ㅜㅜ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 데 언제 끝낼 지도 미지수지만 님의 리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여 읽는내내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겠어요.
우왕 리뷰를 읽고 헷갈리는 것은 내 젊은 날의 숲과 아버지. 대체 무슨 관계이길래 라는 거였습니다. 소설자체가 아버지의 존재로 시작하고 있긴 합니다만. ㅠㅠ

양철나무꾼 2011-01-13 01:52   좋아요 0 | URL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젊은 날의 숲은 '공부와의 싸움'이었습니다여~^^

다 읽으시면 이해가 되실걸요.
내 젊은 날의 숲과 아버지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남자가 읽어내는 김훈은 어떨지, 님의 멋진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모름지기 2011-01-11 13:49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리뷰가..왜 당선작이어야만하는지 알겠군요. ^^
"열 달"의 시간적 의미와 공간적 숲에 대한 적절한 이입이 무척 흥미롭네요. 본 책에서 몰랐던 새로운..부록을 받은 느낌?..이랄까. 멋진 글이예요.

양철나무꾼 2011-01-13 01:54   좋아요 0 | URL
그냥 제 느낌일 뿐인데...그런 제 글에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샘 2011-01-13 10:5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멋진 리뷰를 쓰셨군요. ^^
이달의 리뷰 축하 드립니다.
그나저나... 김훈은 왜 자꾸 소설을 쓰는지, 마뜩잖아서 좀 읽기가 그렇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1-14 02:57   좋아요 0 | URL
샘께 멋지다는 소리를 들으니 쑥스러운 걸요.
그렇다고 간과할 수도 없는 게 김훈 이잖아요~^^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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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때만 그래요?" 

이책을 읽으면서 왜 <레옹>의 마틸다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네 덕에 삶이 뭔지도 알게 됐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거야."
이 구절 때문이었던 듯도 싶다. 

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을 겹쳐 읽었다.
그래선지 이 책의 들꽃 얘기들이 내 젊은 날의 숲으로 오버랩 됐다.
들꽃은 영어로 'wild flower' 정도 될 것 같고,
wild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자연 그대로의' 라는 뜻도 있다. 

참 이상하게도 나는 들꽃을 야생의 그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 그대로'는 순리의 다른 이름 쯤이라고 생각했다.
순리는 다른 이름으로 혜안이 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름으로 나이듦이라고 생각했었다.
야생을 젊은 날의 치기쯤으로 생각한 논리였다. 
그래서였을까?
들꽃의 '들'을 'wild'랑 연관시키는 것이,
' wild'에 '야생의'라는 뜻 외에 '자연 그래로'의 뜻이 있다는 게 생소했다.
그 생소함은 <내 젊은 날의 숲>한 구절로 익숙해 졌다.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죽어 있는데,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주고 나이테의 바깥층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난다. 나무의 삶과 나무의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내용이 다르고 진행방향이 다르고 작용이 다르다.
                                                                                -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215쪽 -

내게 이 책의 저자 '강우근'은 좀 특별나다.
난 '강우근'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이 분의 <호랑이 뱃 속 여행>같은 그림을 우리 아들 어렸을 때 많이 봤었다.
'태몽을 호랑이 꿈을 꿔서'라고 억지로 개연성을 부여해 본다. 

그 후 7년동안 연재되었다는 이 글 중 몇 개만을 어디서 주워 읽었었다.
읽으면서 실은 들풀들과 그림으론 실제를 연상할 수 없어서, 사진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미련스럽게 투덜거렸다. 사진이 실제를 고스란히 담아 낼 수 없다는 걸,<내 젊은 날의 숲>에 나오는 세밀화가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러고 나서야 이 책의 그림들이 오히려 진짜라는 걸 알게 됐다.그림으로 알게 됐지만,그의 글들도 좋았다.
가득 찼지만 넘치지는 않았다.

새벽시장에서 야채 파는 할머니를 안고 흘리는 대통령 눈물은 가짜다.나물 파는 할머니가 등을 기댈 수 있고 또 찬바람을 막아주는 양버즘나무는 진짜 가로수다.(26쪽) 
 

"외래종을 뽑아낸다는 것은 다시 교란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또 다른 외래종의 침입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므로 외래종이 침입한 환경에서 고유의 자연을 보강하여 안전성을 도모하는 생태적 복원이 바람직한 외래종 퇴치 방법이다."(한국생태학회,<서울의 허파 남산>,<서울의 생태>생태적복원이란 병든 부분을 도려내기보다는 몸 전체를 튼튼하게 해서 질병을 물리치는 방법이다. (34쪽)


이렇게 사람이 가꾸는 곳에서는 천이가 멈춰 버린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귀화식물이 오히려 서울 토종에 걸맞지 않을까?(35쪽)

장맛비를 맞고 수부구북 자라나는 저 흔한 잡초들도 한 포기,한 포기가 수만 개 씨앗 가운데 살아남은 하나다. 쉽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수만 가지 시행착오를 피하고 살아남은 하나다. 쉽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수만 가지 시행착오를 피하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
그런 쥐꼬리망초 삶에 요행이란 없어 보인다.쥐꼬리망초가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하지만 쥐꼬리망초에게는 그게 최선의 방식이지 않을까.(49쪽)


명아주에서 이 얘기로 넘어가다니, 가득 찼지만 넘치지 않는 것은 그의 내공이 점점 깊어지기 때문인가 보다.

명아주는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들풀이다.
초록의 풀만을 본 사람들은 명아주가 '청려장'이라는 지팡이로 태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한다. 명아주는 풀이기 때문에 가벼워서 어르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팡이로 태어난다. 중풍에 좋다고 하는 데 근력이 떨어져 무거운 지팡이를 들 수 없기 때문인것도 같다. 무협지를 보면 도인들이 자기 몸체보다 큰 휘휘 꼬인 지팡이를 들고 나타나는데, 다 청려장이니까 가능한 얘기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절실하게 느끼는 게 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못난 구석이 있으면 잘난 데가 있게 마련이고,게다가 잘나고 못나고도 보기 나름이라 못났다는 게 다르게 보면 잘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잘나고 못난 게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이다.엘리트주의에 찌든 교육 행정 관료들은 자기네들이 만든 잣대 하나로 이 다양한 것들을 재서는 일등에서 꼴찌까지 줄 세우려 한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건 소수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논리일 뿐이다.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양한 것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게 얼마나 재미난 삶인 줄 알지 못한다.(157쪽) 

처음 내가 'wild'에 품었던 생각을 짐작이나 했던 듯 깔끔하게 정리해 놓기도 한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고 스스로 살아간다.그래서 자연이다. 잡초가 많다는 것은 자연이 망가졌다는 것이고, 망가진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는 표시다. 몸에 상처가 나면 생기는 상처딱지 같은 게 잡초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되면 상처딱지가 떨어지듯 잡초는 더 이상 그곳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무작정 잡초만 뽑는 것은 아물지도 않은 상처딱지를 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꾸 이벤트를 벌이고 돈을 들여 그럴 듯하게 뭔가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건 상처를 덧나게 할 분이다.(185쪽) 
 
들꽃은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키를 낮추어 틈새에서 자라든 넓게 무리를 이뤄 자라든, 짧은 시간에 자라서 꽃 피고 열매를 맺든 긴 시간 끊임없이 꽃을 피워 많은 씨앗을 만들든, 들꽃은 홀로 살아남기 위해 여러가지 생존방식을 터득해 냈다. 또 한편으로 들꽃은 홀로 살아가지 않는다. 한 가지 식물만 자라는 곳은 사람이 가꾸는 밭뿐이다. 밭작물은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들꽃이 자라는 곳에는 여러 풀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주름잎 둘레에는 질경이가 꽃을 피우고, 새포아풀이나 개미자리가 섞여 자라고, 개망초, 괭이밥, 다닥냉이 따위도 함께 어울려 자란다.(210쪽)

글의 처음 레옹으로 돌아가,
죽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게 좀 서글프지만,
레옹이 죽고 그의 화초가 들판에 심기는 걸 보고, 잘 뿌리 내리길 바라는 건 나만이 아닐게다.
우리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들꽃이다.
너란 이름 나란 이름을 갖고 어울리고 흐드러지고 등돌리고,
또 다른 누군가와 어울리고 그러면서 '우리'라는 또 '동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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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03 20:42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소개하신 스텔라님의 글도 잘 읽었는데, 나무꾼님도 소개하시니
읽어보고 싶네요. 저자가 그림을 그린 분이셨다니 책 속의 저자의 그림들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2-04 11:14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나오길 학수고대했었어요.^^
그림도 있고 판화도 있는데, 참 좋았어요.
글도 죽음이었구요.

책이 넘 좋아서 몇권 더 구입하려구요.
연말인사 하기 좋겠어요~^^

stella.K 2010-12-04 12:15   좋아요 0 | URL
저는 좀 분개하면서 읽었는데...
뭐 이를테면 정치하는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이렇게 꽃 하나 지켜주지 못하면서 인간을 위한다는 게 같지 안 잖아요.
전 그림도 나쁘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
아쉽더군요.
양철님 리뷰에 비하면 한없이 저질이라 부끄럽군요.ㅜ

2010-12-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4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12-03 23:27   좋아요 0 | URL
김훈의 신작을 우선으로 낭독녹음하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어 먼저 신청하고 시작했어요.ㅎㅎ 반쯤 했는데요,
세밀화와 나무와 꽃과 풀과 숲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김훈만의 필치로 괜찮더군요.
강우근의 저 책도 관심이 갑니다.
야생초편지도 왠지 떠오르네요.

양철나무꾼 2010-12-04 11:20   좋아요 0 | URL
왠지 프레이야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아침인걸요~

김훈 책, 소리내어 읽기도 괜찮죠?^^
저 며칠전 13개월 짜리 조카를 잠깐 봐줄 일이 있었는데,
제 책을 갖고 와서 읽어 달라고 졸라서 좀 읽어줬는데...
호흡 고르기가 쉽고 편하더라구요~

야생초편지 떠올리기 쉬운데,
야생초편지와는 많이 틀려요~^^

gimssim 2010-12-04 07:56   좋아요 0 | URL
김훈의 소설을 글로 찍는 사진이지요.
저도 얼른 읽어봐댜겠어요.

양철나무꾼 2010-12-04 11:22   좋아요 0 | URL
김훈은 어떤 분껜 소리내어 읽는 책이 될 수도,
어떤 분껜 글로 찍는 사진이 될 수도 있군요~^^

2010-12-0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7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12-09 02:52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여기저기 보여요.
또 다시 찜 목록이 늘어나고 있네요.^^

양철나무꾼 2010-12-09 14:33   좋아요 0 | URL
'찜 목록'이란 표현 예쁜걸요.
전 요즘 책장도 비워내고,장바구니도 비워내고 있어요~^^
장바구니가 가난해지니까 책장이 헐렁해진다는 게 적절하겠네요.

감은빛 2010-12-09 03:28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이 기막힌 리뷰를 읽고 뭔가 댓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오늘 다시 들어와 읽었는데, 또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이 멋진 글에 어울리는 멋진 말을 남겨야 할텐데,
도저히 생각이 안나서, 그냥 다녀간 흔적만 남깁니다.

양철나무꾼 2010-12-09 14:35   좋아요 0 | URL
흠~
이 책 감은빛님의 리뷰 죽음이었는데 말이죠.
때론 말줄임표 하나로도 느낌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고맙습니다,기막힌 리뷰라고 칭찬해 주셔서...꾸벅(__)
 
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는 시에서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난, 남자는 그가 만들어 내는 그늘의 크기로 평가해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륜가 보다. 
그늘이라는 건 삶의 반영이고 때문에 내게 어쩜 연륜이랑 동의어 쯤으로 여겨지나 보다.
그 그늘은 뭔가 말하지 못한 사연일 수도 있고,어눌한 엇박자의 '말하지 못한 내사랑은'같은 노래일 수도 있다.
암튼 내겐 생각은 넓고 깊게 하되, 말을 많이 아끼는 사람 쯤으로 여겨진다.

때로...거침없이 너무,막,말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두려워진다.
반면 글은 몇번의 수정을 통하여 극도로 응축시킬 수 있는 고로,단단한 글을 쓰는 사람이 두렵다. 
내 마음을 훔쳐보기라도 한듯...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손가락질을 할 필요는 없소.우린 모두 누가 누군 줄 알고 있으니까.또한 어떤 말에도 선동적인 악센트를 붙일 필요가 없소.말이란 하기에 따라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한 겁니다..."(48쪽)

이런 의미에서 봤을 때 마이클 코넬리가 만들어낸 해리보슈는 '그늘'을 가진 멋진 사람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마이클 코넬리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보슈 시리즈는 <시인의 계곡>이 처음이었다.
해리보슈가 묘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건 인정하지만,
우리나라에서였더라면 그는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의 그림자 속으로 사그러들었을 것이다.
일례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도망자,플랜B>를 보더라도 사람을 죽였다는 것만 얘기되지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그딴 얘기는 쏙 들어가고 회자되지 않는다.
여기서 꼬리를 물고 드는 생각이 '해리보슈'시리즈가 꾸준히 나올 정도로 재밌나 하는 거다.
'놀라울 정도의 리얼리티,교활할 정도의 완벽한 구성'이라는 찬사에는 고개를 주억이게 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잔인한 살인사건,상세한 묘사에는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시인의 계곡>이 먼저이고,나머지 것들은 시험하듯 하나씩 순차적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한 답이 될 듯 하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당신이 지옥을 들여다 보면 지옥도 당신을 들여다 본다.'(52~53쪽)

이 책의 전반에 걸친 주제이다.
살짝,아주 살짝이지만,<검은선>이 연상된다.
혹 둘 중 하나,서로에게서 모티베이션하지 않았나 싶다. 

오후의 햇볕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머물렀다.(56쪽)

작가의 복선을 만들어내는 재주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위 문장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블론드라는 걸 시적으로 얘기하고 있고,이건 바꾸어 얘기하면 챈들러도 블론드 라는 얘기가 된다. 
 
암튼,아무리 글을 멋지게 써서 해리보슈를 멋지게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번역되는 과정에서 무미건조해져 버리면 도리가 없는데,밑의 비교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해리보슈의 캐릭터를 그대로 묘사하는데 손색이 없다.

'as quietly as he could'를 '조용히'따위가 아닌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라고 번역하는 순간 '비명을 질러댔다'와 대구를 이루는 훌륭한,보슈의 캐릭터를 잘 살린 문장이 된다.

Bosch pulled his gun as he hurried down the drive-way.The stairs up the side of the garage were old and warped.He took them three at a time,as quietly as he could.But still it felt as if he were shouting his arrival to the world.
보슈는 총을 뽑아 들고 진입로로 달려갔다.차고 옆에 설치된 목조계단은 낡고 뒤틀려 있었다.한 걸음에 세 계단씩 올라가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그것은 보슈가 온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은 듯 비명을 질러댔다.(11쪽)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고,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해리보슈로 하여금,너나 할것 없이 다 의심하게 만드는 개연성 따위는...
그를 '사명을 아는 형사에겐 예술'따위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여자들을 '상처입은 물고기'로 표현하는 건 가슴 한켠이 짠해지지만,
그가 체온을 가진 사람으로 느껴져 좋았던 부분이다.

그들은 파트너였고,실제로 보슈는 일 년 가량 그를 강력반 형사로 훈련시켰다.그렇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항상 의문이었다.에드거는 노상 부동산을 보러 다녔고,점심을 먹는 데도 두 시간씩 걸렸다.강력반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란 사실을 그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어떤 인간에겐 살인이 예술이듯이,살인사건 수사도 그것을 사명으로 아는 형사에겐 예술이다.그리고 사람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이 사람을 선택한다.(62쪽) 

패턴이 없었다.인형사는 그 점에선 차별을 두지 않았다.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패턴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어 낯선 남자를 쉽사리 따라갈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 있는 여자들만 찾았다는 사실이었다.정신분석의는 그 여자들이 모두 상처 입은 물고기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상어의 주의를 끌었던 것이라고 말했다(63쪽) 

해리의 여자로 나오는 실비아를,단지 해리의 여자로만 고착시키는 것 같아 아쉬웠던 부분이다.
해리는 그녀를 편안하게 느끼면서도 그의 마음 안에 들여 놓지는 못한다.
그래서 마음은 언제나 텅 비고,비어서 나는 마른 휘파람소리가 나는...악순환을 되풀이 한다.

"두고 보잔 소리 너무 자주 하네요,해리.언젠가도 이런 얘기한 것 같은데..."
"알아."
"당신은 혼자 있고 싶은가 봐요.언덕 위의 그 작은 집에 틀어박혀 나를 포함한 모든 세상과 단절하고 말예요."
"당신은 빼야지.잘 알면서 그래."
"가끔은 잘 모르겠어요.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당신은 나를 가까이 할 필요가 있을 때 오히려 밀어낸다고요."(112쪽)
보슈는 그녀가 편안하게 느껴졌다.그게 가장 좋았다.편안한 느낌.이전에 누구한테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지만 그녀에게서 떠나 있을 땐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하지만 그녀 곁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금방 그런 감정에 사로잡혔다. (128쪽)
보슈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하긴 기억이 닿는 한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보긴 그게 처음인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한번도 안 했을지 모른다.그런데 기분이 참 좋았다.새빨간 꽃이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느낌,손으로 만져질 듯한 따스한 느낌이었다.그러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단순히 그 말 한마디를 함으로써 커다란 책임감을 떠안은 기분이었다.약간 두렵기는 하지만 흥분되기도 했다.그는 거울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아주 훌륭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딴지를 건다면 말이다.그랜트 하이 뒤에 '스쿨'정도가 생략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름한 청바지에 그랜트하이 티셔츠 차림으로 식당 테이블에 앉아 학생들이 제출한 독후감을 읽고 있었다.그녀는 밸리의 그랜트 고교에서 가르치는 11학년 영어시간을 로스엔젤레스의 문학이라고 불렀다.

어찌되었건,마이클 코넬리든,해리보슈든,역자 이창식님이든,그의 전작을 두루 섭렵하였든...최소한 어느 하나에 홀릭하지 않고서는 쉬이 읽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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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0-11-30 14:08   좋아요 0 | URL
글의 제목만 보고선 얼핏 쇼펜하우어의 말이 떠올라 얼른 읽어봐야지 했는데, 글의 초반부는 대략 공감을 느끼며 술술 읽다가 결국 뒤로 갈수록 내용이 어려워서 만만치 않은 '물결의 세기'만 느껴보고 가는군요. ㅎㅎ
* * * * *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길로 들어선다.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만이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
- 쇼펜하우어

양철나무꾼 2010-12-02 01:42   좋아요 0 | URL
제가 장르소설을 좀 애정해요.
실상'물결의 세기'만 느끼실 정도로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아요.

암튼 '해리보슈'를 가지고 시리즈를 만들어 울궈먹을려면,저 정도는 돼야겠죠~^^
근데,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에는,'글쎄요~'예요.

님이 남겨주신 쇼펜하우어가 더 멋진걸요.

저절로 2010-11-30 15:35   좋아요 0 | URL
저는 이상하게도 먼 거리 나라들의 소설에는 오감이 작동하지가 않아요.
억지로 왼손을 쓰는 느낌이랄까.
'살인'도 기계적이라 회반죽이나 쇳물냄새가 나서
여러날 묵혀서 읽어요.

사진 속 그림자..당신인가요?

양철나무꾼 2010-12-02 01:45   좋아요 0 | URL
예전엔 유럽 장르소설이 좀 그랬는데,'아날두르 인드리다손'정도면 타협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헤닝만켈은 죽음이구요.

저는 오히려 일본 장르소설이 좀 그래요.
우리의 정서로 생각하면,뭔가 어긋나고 비껴가는 느낌~

'당신'이라는 낱말 묘하게 설레이는 걸요~^^

순오기 2010-11-30 19:47   좋아요 0 | URL
해리 보슈도 마이클 코렐리도 모르니 공감을 표할 수가 없네요.ㅜㅜ
나무꾼님은 관심 영역이라 번역에는 예리한 촉수가 작동하나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0-12-02 01:50   좋아요 0 | URL
해리 보슈나 마이클 코넬리,심지어 이창식 님 만으로도 일년365일 페이퍼를 써댈 자신이 있어요,ㅋ~.
재밌게 읽어줄 사람이 없어서...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렇게 호언장담하고 생각해보니,순오기님의 영역에서의 두루두루 찬란함에는 명함을 못 내밀겠는걸요~ㅍ.ㅍ

2010-11-30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2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2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4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30 21:29   좋아요 0 | URL
스릴러 소설도 읽어보면 괜찮을거 같은데,, 사람들이 잘 안 읽는
고전을 읽고 있으니 요즘에 나오는 스릴러나 추리소설도 읽어보고 싶네요.
마이클 코넬리라는 작가를 눈여겨 보고 있었거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사진 속 그림자가 궁금하네요.
나무꾼님이신가요? ^^

양철나무꾼 2010-12-02 01:58   좋아요 0 | URL
장르소설의 고전들을 읽으심...절충안이 되지 않을까요?^^
저도 고전도 좀 읽어줘야 할텐데 말이죠.

마이클 코넬리,그냥 인기작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름 입지와 깊이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존 카첸바크'와 '데니스 루헤인'을 더 애정하지만서도요~^^

글샘 2010-11-30 23:35   좋아요 0 | URL
일본에서 제일 재수 없는 탐정, 김전일과 코난...(얘들이 나타나면 살인 사건이 일어나니까요. ㅋ)
김전일이 좋은 이유가... 그 이야기의 그림자 때문이죠. 그늘...
살인자가 살인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의 그림자... 그 어둔 곳을 바라보면 왠지 눈물이 나려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김전일처럼,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하고 손가락질 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아는데... 그러니깐 김전일은 '소년' 탐정일 뿐이겠지요.
어른인 셜록 홈즈라면, 알면서도 슬쩍 넘어간 다음 나중에 후일담으로 들려줄 법한 이야기들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

양철님의 홀릭을 읽는 것도 재밌군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0-12-02 02:05   좋아요 0 | URL
마이클 코넬리는 그 그늘을 '어릴적의 트라우마'로 돌리려고 하는 경향이 짙죠.
그가 '김전일'을 만난다면 소설 속 주인공의 어린 시절로 어떤 트라우마를 엮어낼까 궁금해 집니다.

제 생각에는 어릴적에는 트라우마 따위는 갖지 않도록,삶의 그늘 따위는 갖지 않도록 잘 자라주고...탐정놀이는 좀 커서 해도 되지 않을까요?^^

제가 좀 두루두루 홀릭하는 경향이 있죠~^^

감은빛 2010-12-01 02:33   좋아요 0 | URL
그늘이 있는 사람,
책에 대한 얘긴 모르겠지만,
남자는 그늘의 크기로 평가해야 한다는 나무꾼님의 말씀을 한참 곱씹어봅니다.
대개 그늘이 있는 사람을 별로 안좋아하던데요.
저는 스스로 그늘이 좀 크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나무꾼님의 기준에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양철나무꾼 2010-12-02 02:13   좋아요 0 | URL
저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늘이나 그림자는 늘상 실제보다는 크고 과장돼죠.
하지만 그늘이나 그림자가 실제보다 커야,
쏙 들어가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감은빛님은 제게 산그림자 같으신 분입니다여,헤헤~

꿈꾸는섬 2010-12-01 07:40   좋아요 0 | URL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당신이 지옥을 들여다 보면 지옥도 당신을 들여다 본다

요즘 제 상태가 그래서 그런가 이 글이 꼭 와서 박히네요.

양철나무꾼 2010-12-02 02:16   좋아요 0 | URL
이 소설,아무래도 어릴 때의 트라우마가 범행의 계기가 되는 그런 류여서...
꿈섬님 읽으시면 마음 아파 하실거예요.

Grace 2010-12-01 09:46   좋아요 0 | URL
Bosch pulled his gun as he hurried down the drive-way.The stairs up the side of the garage were old and warped.He took them three at a time,as quietly as he could.But still it felt as if he were shouting his arrival to the world.
이 문장을 읽고 아래 번역을 보니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서 피실피실 웃음이 납니다.ㅋㅋ

'때로...거침없이 너무,막,말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두려워진다.'-이런 두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며,

'암튼 내겐 생각은 넓고 깊게 하되, 말을 많이 아끼는 사람 쯤으로 여겨진다.'-이런 그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양철나무꾼 2010-12-02 02:19   좋아요 0 | URL
그쵸~
저런 문장이 저런 멋진 번역으로 나와줄 수 있다니 말이죠~

근데,말을 많이 아끼면 '쫌'답답하기도 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