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는 시에서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난, 남자는 그가 만들어 내는 그늘의 크기로 평가해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륜가 보다.
그늘이라는 건 삶의 반영이고 때문에 내게 어쩜 연륜이랑 동의어 쯤으로 여겨지나 보다.
그 그늘은 뭔가 말하지 못한 사연일 수도 있고,어눌한 엇박자의 '말하지 못한 내사랑은'같은 노래일 수도 있다.
암튼 내겐 생각은 넓고 깊게 하되, 말을 많이 아끼는 사람 쯤으로 여겨진다.
때로...거침없이 너무,막,말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두려워진다.
반면 글은 몇번의 수정을 통하여 극도로 응축시킬 수 있는 고로,단단한 글을 쓰는 사람이 두렵다.
내 마음을 훔쳐보기라도 한듯...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손가락질을 할 필요는 없소.우린 모두 누가 누군 줄 알고 있으니까.또한 어떤 말에도 선동적인 악센트를 붙일 필요가 없소.말이란 하기에 따라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한 겁니다..."(48쪽)
이런 의미에서 봤을 때 마이클 코넬리가 만들어낸 해리보슈는 '그늘'을 가진 멋진 사람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마이클 코넬리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보슈 시리즈는 <시인의 계곡>이 처음이었다.
해리보슈가 묘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건 인정하지만,
우리나라에서였더라면 그는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의 그림자 속으로 사그러들었을 것이다.
일례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도망자,플랜B>를 보더라도 사람을 죽였다는 것만 얘기되지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그딴 얘기는 쏙 들어가고 회자되지 않는다.
여기서 꼬리를 물고 드는 생각이 '해리보슈'시리즈가 꾸준히 나올 정도로 재밌나 하는 거다.
'놀라울 정도의 리얼리티,교활할 정도의 완벽한 구성'이라는 찬사에는 고개를 주억이게 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잔인한 살인사건,상세한 묘사에는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시인의 계곡>이 먼저이고,나머지 것들은 시험하듯 하나씩 순차적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한 답이 될 듯 하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당신이 지옥을 들여다 보면 지옥도 당신을 들여다 본다.'(52~53쪽)
이 책의 전반에 걸친 주제이다.
살짝,아주 살짝이지만,<검은선>이 연상된다.
혹 둘 중 하나,서로에게서 모티베이션하지 않았나 싶다.
오후의 햇볕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머물렀다.(56쪽)
작가의 복선을 만들어내는 재주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위 문장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블론드라는 걸 시적으로 얘기하고 있고,이건 바꾸어 얘기하면 챈들러도 블론드 라는 얘기가 된다.
암튼,아무리 글을 멋지게 써서 해리보슈를 멋지게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번역되는 과정에서 무미건조해져 버리면 도리가 없는데,밑의 비교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해리보슈의 캐릭터를 그대로 묘사하는데 손색이 없다.
'as quietly as he could'를 '조용히'따위가 아닌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라고 번역하는 순간 '비명을 질러댔다'와 대구를 이루는 훌륭한,보슈의 캐릭터를 잘 살린 문장이 된다.
Bosch pulled his gun as he hurried down the drive-way.The stairs up the side of the garage were old and warped.He took them three at a time,as quietly as he could.But still it felt as if he were shouting his arrival to the world.
보슈는 총을 뽑아 들고 진입로로 달려갔다.차고 옆에 설치된 목조계단은 낡고 뒤틀려 있었다.한 걸음에 세 계단씩 올라가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그것은 보슈가 온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은 듯 비명을 질러댔다.(11쪽)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고,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해리보슈로 하여금,너나 할것 없이 다 의심하게 만드는 개연성 따위는...
그를 '사명을 아는 형사에겐 예술'따위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여자들을 '상처입은 물고기'로 표현하는 건 가슴 한켠이 짠해지지만,
그가 체온을 가진 사람으로 느껴져 좋았던 부분이다.
그들은 파트너였고,실제로 보슈는 일 년 가량 그를 강력반 형사로 훈련시켰다.그렇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항상 의문이었다.에드거는 노상 부동산을 보러 다녔고,점심을 먹는 데도 두 시간씩 걸렸다.강력반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란 사실을 그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어떤 인간에겐 살인이 예술이듯이,살인사건 수사도 그것을 사명으로 아는 형사에겐 예술이다.그리고 사람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이 사람을 선택한다.(62쪽)
패턴이 없었다.인형사는 그 점에선 차별을 두지 않았다.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패턴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어 낯선 남자를 쉽사리 따라갈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 있는 여자들만 찾았다는 사실이었다.정신분석의는 그 여자들이 모두 상처 입은 물고기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상어의 주의를 끌었던 것이라고 말했다(63쪽)
해리의 여자로 나오는 실비아를,단지 해리의 여자로만 고착시키는 것 같아 아쉬웠던 부분이다.
해리는 그녀를 편안하게 느끼면서도 그의 마음 안에 들여 놓지는 못한다.
그래서 마음은 언제나 텅 비고,비어서 나는 마른 휘파람소리가 나는...악순환을 되풀이 한다.
"두고 보잔 소리 너무 자주 하네요,해리.언젠가도 이런 얘기한 것 같은데..."
"알아."
"당신은 혼자 있고 싶은가 봐요.언덕 위의 그 작은 집에 틀어박혀 나를 포함한 모든 세상과 단절하고 말예요."
"당신은 빼야지.잘 알면서 그래."
"가끔은 잘 모르겠어요.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당신은 나를 가까이 할 필요가 있을 때 오히려 밀어낸다고요."(112쪽)
보슈는 그녀가 편안하게 느껴졌다.그게 가장 좋았다.편안한 느낌.이전에 누구한테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지만 그녀에게서 떠나 있을 땐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하지만 그녀 곁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금방 그런 감정에 사로잡혔다. (128쪽)
보슈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하긴 기억이 닿는 한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보긴 그게 처음인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한번도 안 했을지 모른다.그런데 기분이 참 좋았다.새빨간 꽃이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느낌,손으로 만져질 듯한 따스한 느낌이었다.그러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단순히 그 말 한마디를 함으로써 커다란 책임감을 떠안은 기분이었다.약간 두렵기는 하지만 흥분되기도 했다.그는 거울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아주 훌륭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딴지를 건다면 말이다.그랜트 하이 뒤에 '스쿨'정도가 생략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름한 청바지에 그랜트하이 티셔츠 차림으로 식당 테이블에 앉아 학생들이 제출한 독후감을 읽고 있었다.그녀는 밸리의 그랜트 고교에서 가르치는 11학년 영어시간을 로스엔젤레스의 문학이라고 불렀다.
어찌되었건,마이클 코넬리든,해리보슈든,역자 이창식님이든,그의 전작을 두루 섭렵하였든...최소한 어느 하나에 홀릭하지 않고서는 쉬이 읽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