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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평점 :
요즘 알라딘의 글쓰기 기능이 심히 불안정하다.
지난번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때도 그랬는데, 어제 새벽에도 한참 공들인 리뷰 하나가 홀라당 날라갔다. 아무리 되뇌려 해도 어제 그 필이 살지 않는다. 이 속성 날림의 리뷰가, 어제 '덕분'이 될지 '때문'이 될지 나도 모르겠다.
요즘 내 삶의 화두는 ‘심신의 안녕과 건강’ 이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모르는 '마음 관리법'에 관해서였다.누군가는 마음을 관리하려고 애쓰는 것도 집을 짓는 것과 같으니, 집을 짓지도 말고 탈출하지도 말고 그저 하루 세 번 웃으라고 점잖게 충고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이 책은 내게 심신 관리술로도 읽혔다.
솔직히 이 책이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하긴 지능지수 170이 넘는 아저씨의 ‘심신 관리술’이 재밌다면,
나도 이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녔거나 똘끼 충만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어렵기까지 하다.
때문에 중간중간에 던져지는 방향을 제시하는 암시들을 놓치면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드로스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선이 아닌지,
이를 말해달라고 누군가에게 굳이 간청해야 하겠는가.
And what is good,Phaedrus,
And what is not good -
Need we ask anyone to tell us these things?
라는 구절을 기억할 필요가 있고,
(나는 여기서 선이 禪인지 善인지 궁금하여, 원서를 찾아 보았다.)
또 한 부분,
원래 의도했던 바에 따르면, 사악한 파이드로스에게 승리를 거두는 이는 이 이야기의 서술자가 아니다. 오히려 승리를 거두는 이는 파이드로스를 항상 헐뜯고 비방했던 서술자에게 승리를 거두는 고결한 파이드로스다.
이 부분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자전적 소설이니,저자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저자가, 전기충격치료까지 받아가며 회복되었으나 기억력을 잃는다.
잃어버린 기억력을 되찾고자 열한 살 먹은 아들과 친구 내외와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정신적 삶과 기술공학적 삶 사이의 분열에 관한 책을 쓰고자 마음 먹었다고 얘기하는데,
결국 이 여행이 이 책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기본이 된단다.
내가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이때 나이가 얼추 마흔 하나 였었다.
지금 내 나이 마흔 하나이다.
자연 나와 비교가 되는데, 궁금한 점도 있고 부럽기도 했다.
20대의 거의 전부를 학문과 군 생활과 여행으로 탕진하였고,
30대의 거의 전부를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보냈던 그에게,
여행을 같이 할 정도의 친구가 있다는 게 하나였고,
모터사이클을 장만하고 풍족한 여행을 할 여력이 있었다는 게 또 하나였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었으리라.
어찌되었건...그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고, 그걸 책으로도 쓰게 된다.
그가 소설에서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선, 가치, 질, 소피스트, 수사학에 대한 탐구작업이었다고 한다.
“만일 그와 같은 중력의 법칙이 존재했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솔직히 말해 난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온갖 테스트란 테스트는 모두 통과한 것이 중력의 법칙 같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지니는 속성 가운데 단 하나라도 바로 그 중력의 법칙이라는 것이 소유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생각해낼 수 없으니깐 말이야. 그리고 존재하는 것들이 지니는 과학적 속성 가운데 단 하나라도 중력의 법칙이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낼 수 없으니까 말일세. 그런데도 그와 같은 중력의 법칙이 존재했다고 믿는 게 여전히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75쪽)
이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있음을 부각시키는 그런 논리이다.
초원을 텅비어 있다고 표현하는 게 의아했는데, 바로 ‘텅비어’ 와 대구를 이루는 ‘소유하는 것도’ 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물의 의미’ 와 ‘존재 자체’, 이쯤되면 머리가 뽀글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앞에서 언급했던 부분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서술자는 사악한 파이드로스에게 승리를 거둘 줄 알았는데,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보니, 고결한 파이드로스 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결한 파이드로스가 승리를 거뒀다고 함으로, 자신의 잃었던 기억의 정당성을 찾지만...
(그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독자인 우리에겐 털어놓지만, )
같이 여행을 하는 존과 실비아 내외에게도 아들 크리스에게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다.
그는 또 다시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거나 전기충격요법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모터사이클 관리술에 대해선 그토록 집요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던 그가, 아이를 그렇게 방치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암튼, 이 책은 내게 선문답 같다.
그는 충돌했고...해체 되었으며...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실체를 모르는 그런 마음이라고 하여,
내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볼 마음 한켠,또는 내가 아끼는 그 누군가를 보듬어 안을 마음 한뼘,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프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