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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들을 둔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어느 날 아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전화를 받는다.
요는 아들이 공부 못하고 장난꾸러기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고 공부를 소홀히 하니,
그 친구들을 멀리하도록 아들을 단속하시라는 일종의 충고같은 것이었다.
그때 여자는 이렇게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전,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행복도요,공부를 잘 해야 행복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니,학원은 자상하게도 엄마가 전혀 신경 못 쓰는 아들의 스펙까지 관리해 주고 있었던 듯 하다.
난 한 작가에게 필이 꽂히면,그 작가에 대한 관심이 쭉 이어지는 지라,
이 책 <우행록>은 어찌어찌하여 읽게된 <통곡>이 너무 좋아서 집어들게 되었다.
책 표지에 '압도적인 반전,정교한 구성'이라고 적혀있는데...
정교한 구성이라는 덴 공감하지만,
압도적인 반전이라고 하기엔 '통곡'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책의 첫장 '3세 여아 영양실조 사망 모친 체포,유아 방기혐의'라는 기사 속의 '다나카 미쓰코'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 뒀던 나는,이 책을 따라 읽어가면서 누가 범인인지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가족 살인사건이 일어난지 1년이 지난 어느날,르포라이터처럼 보이는 이가 일가족 주변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첫 시작부터 인터뷰라기보단 이웃집 아줌마의 이런 저런 수다라고 생각되는 얘기들을 읽다가,
이 아줌마가 너무 미워졌었다.
어떻게 이사온지 석달 밖에 안된 사람들에 대해,
'아마~','~카더라'식의 수다를 늘어놓을 수가 있는것인지,원.
이건 친절을 가장한 독선이다 싶어...세상이,사람들이 무서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인터뷰 내용 중에 '다나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이 르포라이터가 범인이라고 짐작했었다.
이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들로부터 이끌어내는 대답이 '범인이 누구'에 촛점이 맞춰졌다기보다는,
인터뷰이들을 적당히 부추기고 질문에서 대답을 유도하는 품으로 미루어 '왜 살인되었나?'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말해,이웃들,대학동창,회사동료 등 인터뷰이를 통해서,'죽을 만하다'는 대답을 유도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기가 죽이고 주변의 용인을 통하여 일종의 면죄부를 얻으려 한 것인 줄 알았다.
책을 읽어 갈수록,'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생각나는데,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이웃을,대학동창을,회사동료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바다 건너 일본에서 씌여진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부분들이 우리와 흡사해 섬뜩하였다.
'인간이란 말이죠,항상 자신과 주위를 비교하면서 누가 위인지 아래인지를 졸렬하리만치 의식하고 판단하는 생물이니까요.자기보다 위에 선 인간이 있으면 재수없어하고,자기보다 밑에 있는 인간은 무시하는 것,그게 인간이죠. (91쪽)'
'연애라는 게 참 어려워요.마음의 추가 서로 평행을 이루면 좋겠는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으니까요.서로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어느 한쪽으로 추가 기울기 마련이죠.감정의 무게가 덜한 쪽은 결국엔 상대방에 질리기 시작할 수 밖에 없어요.함께 대화를 나누고 거리를 걷는 게 귀찮게 느껴지는 거죠.그런 온도차를 서로의 노력으로 메워나가면서 연애를 이어나가는 건데,젊을 때는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어요.그러다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죠.(161쪽)'
'섬세하다고 할까,사소한 영역에서 마음이 안 맞으면 결국 피로를 느끼게 되기 마련입니다.(277쪽)'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얘기를 들어요.말하는 사람이 창피하지 않을 만큼 절묘하게 말이예요.이렇게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죠.전 남의 얘기에 그렇게 진지하게 귀기울여주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278쪽)'
책을 다 읽고,나는 이 인터뷰어가 나중에서야 안됐다고 생각됐는데,
아기를 키우느라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한 그 여인네를 보면서...
자신을 충분히 돌이켜볼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인간은 결국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그것을 보게 된다.그리고 자신이라는 편견을 씌운 평가 밖에 못한다.그 속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평가하는 이의 성격과 사고방식이다.타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326쪽)'
책 뒤 서평의 한구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친구와 이웃과 동료는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거울을 보듯...이웃,친구,동료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다잡아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사실,이 책의 겉표지랑 관련하여 이 책의 제목을 愚行錄이 아니라,淚行錄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리석은 얘기라기 보다는 눈물나게 슬픈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