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이 통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봄이라고,
봄이니까 싱숭생숭한건 당연지사라고,
아지랑이가 발바닥을 간지르고, 꽃바람이 맘을 흔들어 놓는 통에,
당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노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내가 사는 이 곳은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을 뿐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 온국민의 정신이 쏠려 있는 동안, 조훈현이 새누리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신청을 했다.
취미가 바둑이고 IT가 전공 분야라는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 대표가 뭔가 눈에 띄는 행보를 해주길 기대했건만,
그렇게 조용히 묻혀 넘어가더라~--;
어제 애인과 작은 식당에서 느즈막히 저녁을 먹는데,
건너편 탁자에 어르신 세분이 언쟁 탓인지 곁들인 반주 탓인지 불콰하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치 얘기는 가볍게 농담으로 시작해도 고조되다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기 때문에 한편으론 불안했지만, 근래 처음 듣는 정치 얘기라서 반갑기도 했나 보다.
그 분들의 목소리는 적당한 크기였고 적당히 경쾌해서 말없는 애인과의 저녁 식사에 배경음악 삼아 듣고 있었는데,
애인이 '빨리빨리'하는 입모양을 한다.
"넌 투표 안해? 처음 투표하는건데...들어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잖아."
"배울게 있어야 들어두지.
의견이라는게 대립되는 가운데 발전이라는게 있는건데...저 할아버지들 얘기하는거 가만 들어보라구~!
A도 안되고, B도 안되고, C도 안 되고, D도 안되고...다 안된다고들 하시는데,
전부다 예스라고 해도 문제지만, 전부다 안된다는데 누굴 뽑으라는거야?
엄마가 보기엔 저분들이 지금 정치적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여?
내 보기엔 딱 할일 없어서 시간 죽이시는 분들이구만.
저 할아버지들 말대로라면 투표장 들어가도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나와야 하는구만.
그럴바엔 아예 투표 할 생각조차 안하는게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안하고 나은거 아냐?
선거자금으로 들어가는 돈이 얼마고, 선거하러 가느라 들이는 수고로움이 얼만데,
그냥 선거 안하는게 현명한 거라구~!"
느즈막히 시작한 애인과의 데이트는 그리하여 싸움으로 끝났을 뿐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대신할 것처럼 얘기되어 지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과 대별되는 인간의 그것으로 감성과 정서를 꼽는다.
증권사를 예로 들게 되면,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수익률 분석을 정확하게 하더라도,
인간의 감성과 정서가 그 분석에 개입해 오히려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는데,
인공지능이 분석한 예측이나 전망에 인간의 감성과 정서 외엔 다른 변수가 없는 것일까?
인공지능이 분석을 한다고 하더라도,
증권시장이란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이 반영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라는 것은 항상 부정적인 변수로만 작용하는걸까?
설혹 수익률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삶을 어느방향으로든 움직인다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소통하게 한다면 그만큼의 온기와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라는 것은 인공지능은 가질 수 없는 장점이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놓고 비교를 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나를 대입시켜보자면,
난 고도의 두뇌와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는 명함을 못내미는,
몸만을 혹사시키는 육체 노동자이면서 감정 노동자라는 생각을 한다.
매일 저녁 퇴근하면서 감사하는건
나의 두뇌나 지식도 아니고 필 충만한 감성과 정서도 아니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나를 지탱해주는 사지와 몸뚱이인것을 보면,
인간의 친구이자 경쟁자이며 적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본일지도 모르겠다~ㅠ.ㅠ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ㆍㆍㆍㆍㆍㆍ
철조망을 끊고 굴뚝 아래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고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물질이
뺀찌라고 너스레를 떤다 올라와서도
자신을 살게 해준 건 구체적인 물질과 현상들
비닐 휘장을 찢어놓거나
굴뚝 재를 흩뿌리거나 먼지를 몰아와
언제 '노동'을 선사해준
바람에게 특히 고맙다고 한다
가장 가파른 곳에 서본 사람들은 안다
관념보다 귀한 게 물질임을
노동이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게 하는 것인지를
- '뻰치예찬' 부분 -
직접 몸을 움직여 본 사람들은 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꼴난 두뇌나 지식도 아니고 필 충만한 감성과 정서도 아니며,
하늘을 향해 뻗고 땅을 내리누르는 사지와 몸뚱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몸으로 무슨 운동이냐고
언제부터 운동이 머리로 하는 게 됐느냐고
나도 '열심히' 몸이나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철창 속 푸른 생각
- '몸철학' 부분 -
요즘은 두뇌계발운동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 걸로 미루어,
인공지능이 하는 그것에도 운동이라는 말을 붙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런 생각은 아주 잠시 였을뿐이고,
몸으로 하는 건 운동이고, 머리로 하는건 철학이라는 생각 또한 인간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낸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창만이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편견도 얼마든지 우리를 얽어맬 수 있다.
가두거나 얽애매거나 고착시키지 말자.
사적유물론
한 선생이 말했다
당신은 공적인 삶에 과도하게 치우쳐
사적인 삶이 너무 없다고
그러면 죽는다고
자주 만나는 선배도 말했다
운동 이야기를 줄이고 사적 대화 비율을
최소한 칠십 퍼센트로 늘리라고
그러지 않으면 모든 관계가 말라 죽는다고
조근조근 사주를 봐주던 이는
당신은 나무로 태어났는데
사주에 물이 너무 없어
늘 목마른 생을 살아야 할 거라고 했다
사적 삶이라니, 관계론이나
역사적 정치적 생명을 들어
대들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어느 쓸쓸한 저녁
이기고 지는 것만이
무엇을 이루고 못 이루고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삶의 시간들
롤랑 바르트를 들먹이지 않아도 나는 송경동이 아프다.
그는 김수영처럼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의 그것은 어떤 서정성이나 기교보다 힘이 세다.
시집의 표지에 송경동인듯한 사람이 등돌리고 앉아 있다.
등은 침묵한 채로 많은 걸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은 등이 아닐까 싶다.
들고남(入出)은 이미 정체가 아니라 흐름이고 소통이다.
그게 아픔이 되었든 기쁨이 되었든 간에,
통증 또는 따사로움이 되었든 간에,
인간의 삶을 어느방향으로든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싶다면 사람의 가슴보다는 등을 공략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러한 안생의 간난신고를 누구보다도 많이 겪었을 그가 변혁의 비빔밥을 하나 만들어 보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그부터 조금은 더 허기지고 간절해져야겠다고 하고 있다.
이 착하고 순한 사람을 어쩔 것인가 말이다~ㅠ.ㅠ
요즘 책이 안 읽혔던 건 그러고보면, 책이 우리네 삶을, 즉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전문영역인 감성과 정서는, 오직 인간만이 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고 즐거움이어도 그렇고, 미움이고 화남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