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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시를 얘기할때 어려운 말로 언어유희라고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난 그런 어려운 말로 꾸미기보다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말 장난 같다.

지나친 말 장난 같은 시집 한권을 만났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그동안 김민정 시인을 좋아했었다.

문학동네에서 낸 시집들을 보다보면, 여기저기 따뜻하고 기지 넘치는 그녀의 코멘트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그녀의 코멘트를 보고 넘어가지 않았던 적이 없을 정도로,

그녀를 향하여 팔랑귀였던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시집은 언젠가 내게 돌멩이를 보내줬던 친구가 보내준 것인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어쩐 것인지,

표제시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보다가 내 돌멩이가 불쌍해졌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사과 쪼개듯 시간을 반토막 낼 줄 아는

유일한 칼날이 실은 돌이었다

필요할 땐 주먹처럼 쥐라던 돌이었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내 돌멩이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하는 시의 소재로조차 등장하지 못하니 말이다~--;

 

시집의 뒷표지를 보면 김민정 시인의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다.
시는 내가 안 쓸 때 비로소 시 같았다.

그랬다.
그랬는데,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

탐은 벽(癖)인데
그 벽이 이 벽(壁)이 아니더라도
문(文)은 문(門)이라서
한 번은 더 열어보고 싶었다.

세번째이고
서른세 편의 시.
삼은 삼삼하니까.

 

나도 같이 말장난을 해보자면,

시도 없이 시집을 탐내면 탐욕이 되는데,

詩集이 아니라 여자가 결혼하여 남의 아내가 되는 그 시집을 일컫는 모양이다.

그런데 시집 간 여자의 탐욕은 예로부터 칠거지악이라는데 말이다.

암튼 본인도 민망했는지,

'현대시 5월호'에서 신형철과 대담한 내용의 한 꼭지를 '출판사 책 소개' 란에 실었는데,

'이게 시가 아니면 뭐 어때?'라고 말하듯이 쓰인 시가, '그런데 이게 인생이 아니면 뭐냐'라고 말하듯 삶의 깊은 데를 툭툭 건드린다.'

고 하는데, 뭐~(,.)

그런데 말이다.

'삶의 깊은데'를 툭툭 건드린다고 하여, 시도 덩달아 깊어지는 건 아니다.

시는 깊은 데를 건드리는 매개일 뿐이다.

지인과의 카카오톡 내용 따위가 시가 될 수 있는 시대라지만,

굳이 그 시의 저작권을 따지자면,

그런 카카오 톡 내용을 보낸 시인의 지인에게 일정 부분 있고,

시인은 찬조출연 쯤 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시인에게서 윤동주 같은 시심을 바래선 안 되겠지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고백하던 윤동주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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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려운 돌, 어려운 시
    from 공음미문 2016-10-25 14:29 
    조약돌  조약돌은 잘 정의하기에 쉬운 사물이 아니다.단순한 묘사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우선 조약돌이 바위와 자갈 사이의 돌의 형태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이 말은 이미 돌에 대해서 증명되어야 하는 하나의 개념을 의미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나를 비판하지 말 것이다. * 모든 바위덩이들은 엄청나게 큰 하나의 선조로부터 분열되어 나왔다. 전설적인 이 몸체에 대해 한가지밖에 말할 수 없다. 저 세상을 벗어나면
 
 
yureka01 2016-10-25 13:46   좋아요 2 | URL
시집 제목이랑 돌맹이 하나가....마음의 연못에 툭 뎐저질 때의 파장은 그래서 더 물이 결로 일어나는 것인지도^^..잘봤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5 14:01   좋아요 1 | URL
우와~~~~^^
댓글이 더 시 같이 멋집니다여.
근데 시집은 그니의 명성만큼은 아니어서 씁쓸했답니다~--;

AgalmA 2016-10-25 14:3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이 글에 먼댓글 썼는데요. 혼내기 없기요-,-;;

양철나무꾼 2016-10-25 14:38   좋아요 2 | URL
먼댓글 잘 읽었고 `좋아요`도 눌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님의 먼댓글을 혼낼 깜냥이 안 되는지라, 쭈뼛쭈뼛~--``(땀나라~)

어려운 돌, 아니 어려운 댓글 말고...쉬운 댓글만 던져 주시길~^^
이곳은 비가 내리다가 그쳤습니다.
님 계시는 그곳은 어떤가요?^^

AgalmA 2016-10-25 15:22   좋아요 2 | URL
좋아요는 프랑시스 퐁주에게 주시는 것이지 제 것은 아니니까 감사 안할래요ㅎㅎ;;
저도 말 공기놀이 좋아하는데, 양철나무꾼님 이 글이 퐁주 시를 부르는 걸 어떡해요; 작가가 작품이 원하는 대로 따라 글을 쓴다 하듯이 저도 양철나무꾼님 글이 부르는 글을 찾아 데려 왔다고 핑계댈래요ㅎ;;;
여기도 비는 그쳤는데, 덕분에 시 읽다보니 일이 너무 하기 싫어졌어요. 으앙ㅜ.ㅜ

양철나무꾼 2016-10-25 17:56   좋아요 2 | URL
어떡하죠?
전 이런 님의 투정같은 글을 사랑한답니다.
온몸으로 흠뻑 받아들였다나, 어쨌다나~(,.)

우리 비도 그쳤는데, 일은 이쯤에서 작파하고,
술한잔 합시다~!
그대는 거기서 난 여기서,
잔을 채우고,
건배~!^^

2016-10-25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5 18:01   좋아요 1 | URL
아핫~, 관심을 가져주시고 감사합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 지으실 님은 아직 모르겠지만,
이런 가을 저녁이 되면,
그냥, 불현듯,
있지도 않은 옛사랑 생각도 나는 것이 괜히 멜랑꼴리해진답니다~^^

이 시간에 커피 먹으면 밤을 꼴딱 지새우지만,
오늘은 님말씀 듣고 퇴근길 편의점에서 따끈한 캔커피 하나 사봐야겠어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10-25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책이 통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봄이라고,

봄이니까 싱숭생숭한건 당연지사라고,

아지랑이가 발바닥을 간지르고, 꽃바람이 맘을 흔들어 놓는 통에, 

당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노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내가 사는 이 곳은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을 뿐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 온국민의 정신이 쏠려 있는 동안, 조훈현이 새누리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신청을 했다.

취미가 바둑이고 IT가 전공 분야라는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 대표가 뭔가 눈에 띄는 행보를 해주길 기대했건만,

그렇게 조용히 묻혀 넘어가더라~--; 

 

어제 애인과 작은 식당에서 느즈막히 저녁을 먹는데,

건너편 탁자에 어르신 세분이 언쟁 탓인지 곁들인 반주 탓인지 불콰하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치 얘기는 가볍게 농담으로 시작해도 고조되다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기 때문에 한편으론 불안했지만, 근래 처음 듣는 정치 얘기라서 반갑기도 했나 보다.

그 분들의 목소리는 적당한 크기였고 적당히 경쾌해서 말없는 애인과의 저녁 식사에 배경음악 삼아 듣고 있었는데,

애인이 '빨리빨리'하는 입모양을 한다.

"넌 투표 안해? 처음 투표하는건데...들어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잖아."

"배울게 있어야 들어두지.

 의견이라는게 대립되는 가운데 발전이라는게 있는건데...저 할아버지들 얘기하는거 가만 들어보라구~!

 A도 안되고, B도 안되고, C도 안 되고, D도 안되고...다 안된다고들 하시는데,

 전부다 예스라고 해도 문제지만, 전부다 안된다는데 누굴 뽑으라는거야?

 엄마가 보기엔 저분들이 지금 정치적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여?

 내 보기엔 딱 할일 없어서 시간 죽이시는 분들이구만.

 저 할아버지들 말대로라면 투표장 들어가도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나와야 하는구만.

 그럴바엔 아예 투표 할 생각조차 안하는게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안하고 나은거 아냐?

 선거자금으로 들어가는 돈이 얼마고, 선거하러 가느라 들이는 수고로움이 얼만데,

 그냥 선거 안하는게 현명한 거라구~!"

느즈막히 시작한 애인과의 데이트는 그리하여 싸움으로 끝났을 뿐이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대신할 것처럼 얘기되어 지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과 대별되는 인간의 그것으로 감성과 정서를 꼽는다.

증권사를 예로 들게 되면,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수익률 분석을 정확하게 하더라도,

인간의 감성과 정서가 그 분석에 개입해 오히려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는데,

인공지능이 분석한 예측이나 전망에 인간의 감성과 정서 외엔 다른 변수가 없는 것일까?

인공지능이 분석을 한다고 하더라도,

증권시장이란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이 반영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라는 것은 항상 부정적인 변수로만 작용하는걸까?

설혹 수익률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삶을 어느방향으로든 움직인다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소통하게 한다면 그만큼의 온기와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라는 것은 인공지능은 가질 수 없는 장점이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놓고 비교를 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나를 대입시켜보자면,

난 고도의 두뇌와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는 명함을 못내미는,

몸만을 혹사시키는 육체 노동자이면서 감정 노동자라는 생각을 한다. 

매일 저녁 퇴근하면서 감사하는건

나의 두뇌나 지식도 아니고 필 충만한 감성과 정서도 아니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나를 지탱해주는 사지와 몸뚱이인것을 보면,

인간의 친구이자 경쟁자이며 적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본일지도 모르겠다~ㅠ.ㅠ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ㆍㆍㆍㆍㆍㆍ

철조망을 끊고 굴뚝 아래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고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물질이

뺀찌라고 너스레를 떤다 올라와서도

자신을 살게 해준 건 구체적인 물질과 현상들

비닐 휘장을 찢어놓거나

굴뚝 재를 흩뿌리거나 먼지를 몰아와

언제 '노동'을 선사해준

바람에게 특히 고맙다고 한다

 

가장 가파른 곳에 서본 사람들은 안다

관념보다 귀한 게 물질임을

노동이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게 하는 것인지를

 

                                                        - '뻰치예찬' 부분 -

직접 몸을 움직여 본 사람들은 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꼴난 두뇌나 지식도 아니고 필 충만한 감성과 정서도 아니며,

하늘을 향해 뻗고 땅을 내리누르는 사지와 몸뚱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몸으로 무슨 운동이냐고

언제부터 운동이 머리로 하는 게 됐느냐고

나도 '열심히' 몸이나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철창 속 푸른 생각

                                                      - '몸철학' 부분 -

요즘은 두뇌계발운동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 걸로 미루어,

인공지능이 하는 그것에도 운동이라는 말을 붙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런 생각은 아주 잠시 였을뿐이고,

몸으로 하는 건 운동이고, 머리로 하는건 철학이라는 생각 또한 인간중심의 사고가 만들어낸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창만이 우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편견도 얼마든지 우리를 얽어맬 수 있다.

가두거나 얽애매거나 고착시키지 말자.

 

       사적유물론

 

한 선생이 말했다

당신은 공적인 삶에 과도하게 치우쳐

사적인 삶이 너무 없다고

그러면 죽는다고

 

자주 만나는 선배도 말했다

운동 이야기를 줄이고 사적 대화 비율을

최소한 칠십 퍼센트로 늘리라고

그러지 않으면 모든 관계가 말라 죽는다고

 

조근조근 사주를 봐주던 이는

당신은 나무로 태어났는데

사주에 물이 너무 없어

늘 목마른 생을 살아야 할 거라고 했다

 

사적 삶이라니, 관계론이나

역사적 정치적 생명을 들어

대들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어느 쓸쓸한 저녁

 

이기고 지는 것만이

무엇을 이루고 못 이루고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삶의 시간들

 

롤랑 바르트를 들먹이지 않아도 나는 송경동이 아프다.

그는 김수영처럼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의 그것은 어떤 서정성이나 기교보다 힘이 세다.

 

시집의 표지에 송경동인듯한 사람이 등돌리고 앉아 있다.

등은 침묵한 채로 많은 걸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은 등이 아닐까 싶다.

들고남(入出)은 이미 정체가 아니라 흐름이고 소통이다.

 

그게 아픔이 되었든 기쁨이 되었든 간에,

통증 또는 따사로움이 되었든 간에,

인간의 삶을 어느방향으로든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싶다면 사람의 가슴보다는 등을 공략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러한 안생의 간난신고를 누구보다도 많이 겪었을 그가 변혁의 비빔밥을 하나 만들어 보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그부터 조금은 더 허기지고 간절해져야겠다고 하고 있다.

이 착하고 순한 사람을 어쩔 것인가 말이다~ㅠ.ㅠ 

 

요즘 책이 안 읽혔던 건 그러고보면, 책이 우리네 삶을, 즉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전문영역인 감성과 정서는, 오직 인간만이 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고 즐거움이어도 그렇고, 미움이고 화남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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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7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8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3-17 14:37   좋아요 1 | URL
저도 지금 이 시집 읽고 있어요. 송경동 시인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죠. 김수영의 시처럼 살고 있는 송경동 시인에게 미안하고 고맙죠.... TT

양철나무꾼 2016-03-18 14:02   좋아요 1 | URL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서 부끄럽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야지 하는데, 쉽지 않아서 더더욱 그렇구요.
 

며칠 전이었다.

방학이 없이 학교에 나가는 울 아들이,

공부가 힘들다는 얘기를 못하고...

"엄마는 왜 날 이 학교에 보냈어?"

하고 하소연을 하길래,

"왜, 학교가 어때서?

 너, 몰라서 그렇지...나름 명문이었다...!"라고 붇돋워주려하였더니,

"엄마, 옛날에나 배산임수(背山臨水)라서...풍수지리학적으로 좀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앞에 물이 없어서 전혀 아니거든~"

 

암튼, 난 '박준' 그의 시가 친근하다.

그가 시 속에서 얘기하고 있는 동네들이 하나 같이 내가 아는 동네여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지명들은 하나 같이 '물(水)'을 품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시가 하나같이 아련하고 눈물겹다.

그래서, 내맘대로 '물'은 치유라고 읽는다.

 

사실 이 시집의 제목으로도 쓰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어쩌면 시인은 '자서전을 써서(지어서) 며칠을 먹고 살았다'라는 의미로 썼을 수도 있을테지만,

난 내 맘대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처방받아 며칠을 먹었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며칠 전부터 친구가 아프다고 골골거린다.

난 추운데 옷을 여며입지도 않고 '불.금.'을 즐긴 탓이라고 이래저래 타박을 했지만,

실은 약 한알, 주사 한방 처방해 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웠나 보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서로의 이름만으로 처방이 되는,

서로의 마음만으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한 걸까?

지는 해를 따라서 돌아가던 중에는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용산 가는 길 - 청파동1' 부분)

이 시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흡~'하고 울었다.

이 사내의 마음 씀씀이 때문에 울었다.

이 사내의 시가 '물(水)'을 품고 있어서 눈물이 난것이지 결코 내가 눈물이 헤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가'와 '도'라는 조사가 주는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였다.

'그대가 나를 떠난 것'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일때는 떠난 책임의 주체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 될때는,

그대를 떠나게 만든 그 이유로, 다른 이들도 떠나 보냈을 수 있는 것이 되니까...

일말의 책임을 나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그렇게 그대를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던 내 자신을 생각하면 아프지만,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은 것이다.

아니, 덜 아플 수 있다면...기꺼이~!

 

광장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절에 만났다 네가 피우다 만 담배는 달고 방에 불 들어오기 시작하면 긴 다리를 베고 누워 국 멸치처럼 끓다가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정도의 글귀를 생각해 너의 무릎에 밀어넣어두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불은 개지도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지난 꿈 애기를 하던 어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어 노랗게 말랐다

이런 시를 읽으면 '같이 살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는' 시절에 만나지 못한 걸 서글퍼 해야 하나 싶지만,

그러다가도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내가, 또는 그대가 새가 아닌 것에 '무한 땡큐'를 날리게 된다.

울음에는

숨이 들어 있었다

 

사람의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였다

 

 

 

 

바람은

바람이어서

조금 애매한

 

바람이

바람이 될 때까지

불어서 추운

 

새들이

아무 나무에나

집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

 

나는 오늘

('오늘의 식단 - 영(暎)에게', 부분)

그런 생각을 한다.

아파 본 사람만이 건강의 고마움을 알 수 있고,

상처에 아파해본 사람만이 사랑의 행복함에 감사할 수 있으리라.

슬픔을, 아픔을, 또는 그리움을 내 것으로 견디고 감당해 본 사람만이...그 뒤에 오는 모든 소박한 것들에 감사할 수 있으리라.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나는 아파해 보지 않은 사람 마냥 툴툴거리며, 꾀병의 마지막 연을 읊조린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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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호흡 사이를 참지 못해 후회하게 되지
    from 그냥 헛짓! 2013-01-30 11:42 
    내 하루는 언제나 다짐으로 시작해 결국 후회로 끝나지. 오늘 당신이 없는 사이, 누군가에게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았어. 그러고 싶지 않았어. 한 호흡만 참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온당한 말은 세상이 먼저 알고 수용하게 되어 있거든. 역시나 당신이 모르게 나는 당신을 아프게 했어. 당신을 아프게 해서 치욕스런 나의 하루가 지났어. 젊은 시인 박준은 이렇게 말하지.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한 죄로 나는 내
 
 
다크아이즈 2013-01-29 10:42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순간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을 대상이 제게 과연 몇 명일까 되내어 봤다는.
손 안에 꼽히는 걸 보면서 제가 너무 좁게 살았나 싶다가도, 이렇게 생겨 먹은 게 나란 존재구나, 하는
체념을 하게 되지 뭡니까.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을 대상... 하루 종일 박준의 이 구절을 되낼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페이퍼^^*

하늘바람 2013-01-29 13:46   좋아요 0 | URL
저도 따라서 흡하고 울었네요 그대도 나를~
그 '도'라는 조사에 언젠가 외로운건 내 천명이다라고 한 점쟁이 말에 대성통곡했던 생각도 나고
덕분에 오랫만에 좋은 시 많이 감상해요
아파본 사람만이
그래선가요
어디나 다쳐 속상할때 이상하게도 알라딘 들어오게 되고 꼭 님이 있어요

2013-01-30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01 0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02-01 20:53   좋아요 0 | URL
이 시집. 한번 훑었는데.. 천천히 다시 읽어내려가고 있습니다. ^^
 

난 그동안 세 종류의 나무들을 모두 보리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혼동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빨갛고 조그만 열매가 열리는 보리수,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에 나오는 보리수,

그리고 부처님이 그 나무 아래에서 해탈하였다는 보리수,

어떤 때는 보리차를 끓이는 그 보리까지 이 보리로 혼동할 때가 있을 만큼...

백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도 타성에 젖어있을 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예가 없었다.

 

먼저 슈베르트의 가곡에 나오는 나무는 원어로 Lindenbaum이고 해석이 보리수로 되어있지만 오역으로 보인다.

Lindenbaum은 피나무류이지만, 보리수나무가 됐을때는 밑에서 단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Lindenbaum정도 되어야 그래도, 가지마다 많은 추억이 걸려 있는 우물가 나무 곁을 지나 마을을 떠나는 한 실연한 젊은이의 심정이 될 수 있다.

샘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스쳐가는 나뭇잎들의 수런거림 등이 묘사된 이 노래를 수없이 부르고 들었지만,

결국 절실하게 부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부처님이 해탈하였다는 나무는 보리수가 아니라, 인도 보리수라고도 불리우는 '반얀나무'이다.

멀리서보면 수천그루가 모여 숲을 이룬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숲은 단 한 그루의 반얀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얀나무 가지들은 위로 올라가다 구부러지는데, 그 구부러진 가지가 땅에 닿으면 다시 뿌리가 되어 번져 나간다고 한다.

단 한그루로 숲을 이루는 나무.

그런 나무 밑에서 부처님은 해탈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곽재구의 이 시집 '와온바다'를 만났다. 

 

 

 

 

 와온 바다
 곽재구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2년 4월

 

 

 

 

와온바다가 먼저였는지, 선암사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아님, 그 둘다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 둘 모두 였을 수도 있다.

 

나무

 

인간인 내가

인간이 아닌 나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모르는 이들은

만행 중인 바람이

나무의 심연을 헤적인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나무는 제 앞에 선 인간에게

더덕꽃 향기 짙은 제 몸의 음악을

고요히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무는 춤을 출때

잎사귀 하나하나

다른 춤의 스텝을 밟는다

인간인 당신이 나뭇잎 속으로 들어와 춤을 출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러다가 홀연 당신 또한

온몸에 푸른 실핏줄이 퍼져나간 은빛 이파리가 된다

 

인간이 아닌 나무가

인간인 내게

시를 읽어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땅에 누우면

당신도 나란히 나무 곁에 누워

눈보라가 되거나

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된다

먹기와집 마당을 뒤덮는 채송화 꽃밭이 된다

 

 

이 시를 읽다가 선암사 와송이 보고싶다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어 어쩌지 못할 무렵,

시인은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간 듯

'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이란 시를 '짜잔~'들고 나타난다.

 

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

 

내 마음이 가는 그곳은

당신에게도 절대 비밀이에요

아름다움을 찾아 먼 여행 떠나겠다는

첫 고백만을 생각하고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때 나는 조용히 웃을 거예요

알지 못해요 당신은 아직

내가 첫여름의 개울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 물방울과 함께 웃고 있을 때에도

감물 먹인 가을옷 한벌뿐으로

눈 쌓인 산언덕 넘어갈 때도

당신은 내 마음의 갈 곳을 알지 못해요

그래요 당신에게

내 마음은 끝내 비밀이에요

흘러가버린 물살만큼이나

금세 눈 속에 묻힌

발자국만큼이나

흔적 없이 지나가는 내 마음은

그냥 당신은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난 '와송'하면 꼬리를 물고 생각나는 나무가 있는데, 그게 이 페이퍼를 시작하며 장황하게 늘어놓은 '반얀나무'이다.

 

나는 일찍이 사람이 나무뿌리 같은 걸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나무뿌리 또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한심한 생각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이날 밤 나는 사람이 나무를

사람이 밤 열차의 쓸쓸한 뿌리를

사람이 먼 밤하늘의 별과 별들의 노래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노인의 빛나는 뿌리를

누운 채 바라보며 생각했다

                                   '반얀나무' 중 일부


참, 이상하게도 난 시인이 '와온바다'를 노래하는 그 순간에도 선암사와 그 곳을 버티고 섰을 (이름을 아는 와송과 이름을 모르는 그 밖의...) 나무들이 생각났다.

 

근데 또 참 이상하게도 시인은 어떤 이유에선지, '반얀나무'를 '벵골보리수'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러가며 시를 쓴다.

ㆍㆍㆍㆍㆍㆍ

나무의 긴 팔 하나가 나를 붙든다

나무 이파리들이 한숨처럼 가벼이 흔들린다

작은 벌레들이 나무 이파리의 가장자리를 고요히 갉고 있다

우리는 떠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한몸으로 바람 앞에 뒹구는 것도 아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인연의 눈이 있다

ㆍㆍㆍㆍㆍㆍ

서로 연결된 끈은 지니지 못해도

시체를 하루 세 끼 먹을 열정은 지니지 못해도

너는 가난한 내 시를 기억하고

너는 나와 함께 떠나지 못하는

세상의 어느 곳이든 함께 있는 마음 안에 머물 것이다

                    '구근이 가게 앞 벵골보리수에게' 중 일부

 

시인에게 나무는 엄마 대신의 위안일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시도 있다.

ㆍㆍㆍㆍㆍㆍ

어릴 적엔 햇살이 나무들의 밥인 줄 알았다.

수저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맞이하는 나무들의 식사시간이 부러웠다

 ㆍㆍㆍㆍㆍㆍ

                                         '무화과' 중 일부

이렇듯 바다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바다는 또한 바람이기도 하다.

이 얘기는 바꾸어 말하면, 나무는 바람이기도 하다는 거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바다와 나무와 바람을 하나인듯 넘나든다는 거다.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바로 전에 읽은 안도현의 시집과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곽재구 시인의 그것은, 사평역에서 때도 치열하다기 보다는 따뜻했지만...

요번 시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따뜻하다고 해서 치열한 것보다 덜 묵혀둔 것도 아니고 덜 우러나온 것도 아니라는 걸 이 시집은 보여준다.

오히려 삶의 구비구비에서 만날 수 있는 체험과 연결되어 시쓰기의 밑거름이 되는 동시에

체험이 없는 자기복제야 말로 경계하여야 할 것임을 오랫만의 시집으로 보여준다.

이 부분이 안도현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너무 잘 쓰려 욕심부리지 않아서라고 해야 하려나?

 

밀어

 

달천에서 상봉 오는 길에 돌개바람이 불었다

주꾸미구이집 플라스틱 의자가 바람에 날아갔다

나무들에서 푸른색 열매가 우수수 떨어졌다

나무와 바람은 억센 포옹을 하는 듯도 보인다

저런 식의 밀어도 우두커니 사랑스럽다

어린 열매를 다 떨군 뒤에도 바람은 나무 곁에 머물며 해와 달의 비늘을 반짝일 것이다

 

참 소박하고 작지만, 그래서 예쁜 시도 있었다.

 

여뀌꽃밭에 사는 바람은

 

키가 작고

얼굴도 작고

손도 작아서

 

내가 그이의

작은 손을

가벼이 잡을라치면

 

마른 풀밭 위

무릎을 접어야 하는데

 

그때쯤엔

그이 또한 환히 웃으며

내 눈썹 위

어린 초승달 하나를 띄우기도 하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시는 '칠카하르'라는 시였다.

'칠카하르'는 네팔과 가까운 인도의 국경도시란다.

 

칠카하르

 

 당신이 나를 이곳에 오라 불렀나요? 칠카하르, 어두운 불

빛들이 이제 막 도착한 새벽 열차를 향해 뽀얀 입김을 불어

넣어주고 송장처럼 나란히 누운 산 사람들의 막막한 꿈을

바라보고 있네 길, 시간, 운명, 세월......사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삶의 눈망울들은 파란 밤하늘 곳곳에 땀띠처

럼 솟구치고 어디선가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거적을 끌며

오네 너무 많은 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었고 그보다 많은 것

을 당신에게 받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병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지요 천천히 새벽 열차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어둠속에 송장처럼 누워 바람이 기

차의 레일을 쓰다듬는 소리를 듣습니다 칠카하르, 당신에

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삶

이라면 난 차라리 당신에게 어둠이 레일 위에 튀기는 고요

한 불꽃들을 보여드리지요

이 시를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신들의 봉우리>라는 소설이 생각났고,

그 소설의 주인공 산 같았던 사나이 '하부'가 남겼던 마지막 말도 생각났다.

 

그렇다.

이미 온 힘을 다하고 있을때는 힘내라는 말은 할 필요도 없고 들을 필요도 없다.

말이 필요없을 때 진정 필요한 것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말이 필요없을 때 진정 필요한 것은 레일 위를 튀기는 고요한 (하지만 미욱한) 불꽃들을 '보여'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정 위로가 되는 건 말이 아니라, 소박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 말이 필요없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이 한마디의 위력은 믿는다.

"꿈꾸어 봐~"

내가 '꿈꾸어봐'라고 했더니, 어떤 이는 '상상해'라며 '하부'의 원전을 들이대는데 말이다.

상상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그 막막한 순간에도 꿈꾸는 건 가능하다는 이 시'칠카하르'를 읊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꿈길 밖에 길이 없다는 황진이의 '상사몽' 버젼이기도 하고 말이다.

 

암튼, 인도 기행 후 쓰여진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일초들>이 생각나게 하는 시 '우리 곁을 흘러가는 따뜻한 일초들'도 좋았다.

하루 24시간을 초로 환산하면 86,400초란다.

 

우리 곁을 흘러가는 따뜻한 일초들

 

미스티 가게 앞

자전거를 멈춘 연인들은

 

세월이 잠시 그들 곁에

멈춘 것을 알지 못하지

 

페달 위에 올려진

푸른 밤의 발 하나

 

죽은 시인의 언어들이

페달 위에서 가벼운 탄식을 올리는 동안

 

남은 한 발이

지상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와 입맞춤하네

 

한초

한초

우리에게 남은 시간들은 흘러가지

 

당신이 내게

내가 당신에게

 

보낸

한초 한초를 싣고

 

우리는 또

반딧불이 날아오르는 산티니케탄 대로를 달려가지

 

때문에 당신이 내게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의 한초 한초가,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한초 한초가...

가장 따뜻한 시간이고,

오로지 우리를 위해 멈춘 시간이란 걸...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알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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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6-18 20:08   좋아요 0 | URL
웅산도 음반이 여러개군요. 딱 하나 같은 거 보여요.ㅎㅎ
곽재구의 '사평역에서'가 좋아 두고두고 읽었던 옛날옛적(ㅋㅋ)을 떠올립니다.
님이 가장 좋다시는 시도 좋으네요. 그의 산문집, 패스했었는데 읽어보고 싶어져요.
읽을 건 많고 눈도 아프고 힘은 딸리고,,, ㅋ 조용한 저녁에요, 양철나무꾼님^^

책읽는나무 2012-06-18 20:23   좋아요 1 | URL
비가 내려 멈춘 조용한 저녁에 참 잘 어울리는 페이퍼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시들도 좋지만,마지막 문구들이 순간 가슴 설레었어요.^^
웅산 음반 맨 첫 번째 것만 가지고 있는데 음반을 참 많이 냈네요?
노래 참 잘 부르는 가수에요.
편안하게 시도 읽고,노래도 듣고 가네요.
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글샘 2012-06-18 22:44   좋아요 1 | URL
너무 많은 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었고 그보다 많은 것
을 당신에게 받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병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지요(칠카하르)

페이퍼를 읽다 보니 내일 결근하고 확 선암사로 가고 싶은 생각이 몰려 옵니다...... ㅠㅜ

비로그인 2012-06-18 23:41   좋아요 1 | URL
때문에 당신이 내게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의 한초 한초가,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한초 한초가...

가장 따뜻한 시간이고,

오로지 우리를 위해 멈춘 시간이란 걸...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알지 못할 뿐이다.



저는 바다로 갈까봐요.. 확~~

하늘바람 2012-06-19 10:10   좋아요 1 | URL
아웅 마음을 흔드는 페이퍼네요 어떻게해요 책임지셔요^^

차트랑 2012-06-19 19:56   좋아요 1 | URL
시를 잘 읽지 않는 제게(이건 좀 별로인걸요)
시를 접할 기회를 이곳에서 접하게 됩니다.

저도 시를 읽지 않으면서
시를 읽지 않는 사회를 뭐라하곤 하지요..
시와 함께하는 삶은
결코 때묻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말입니다...


2012-06-20 23:37   좋아요 1 | URL
푸른 밤의 발이 얹힌 한 페달과 다른 페달의 대비가 눈에 들어옵니다. -시인이 탄식하는 일 초와 연인이 사랑하는 일 초가 번갈아 한 땀 한 땀 세월을 수놓고 있는 것.

오로지 우리를 위해 멈춘 따뜻한 일 초 일 초들.. 이 일 초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이렇게 헤매고 살지는 않겠지요.

오랜만에 왔어요. 양철님. 여전히 잘 계시는 듯 합니다. 페이퍼를 읽으니..^^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넋 놓고 앉아서 듣다가,
(역쉬~깔때기 정봉주답게 얘기가 귀에 착착 달라붙는다.)
다른 날보다 한 10분쯤 늦게 출발했는데 한 시간가량 늦어버렸다. 

친구에게 툴툴거리며 문자를 보냈더니,
위로랍시고 이런 난해한 시를 보내왔다~ㅠ.ㅠ  

         차가 막힌다고 함은 
                               -  김 연 신 -

차가 막힌다고 함은, 도로에 차가 많아서, 아니다.
도로의 수용능력보다 차의 대수가 많아서, 아니다
도로의 표면적보다 차의 표면적이 많아서, 이제는 분명하다.
일정한 구간에서 차들의 표면적의 합이 도로의 표면적의 합에 가까이 도달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차들의 표면적의 합과 차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필수 여유 공간의 합이 도로의 표면적의 합을 초과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김장을 하러 다녀왔다.
말이 좋아 '김장을 하러'이고,
내가 한 일은 일종의 '기쁨조~!'
읍내에서 돼지고기 수육감으로 넉넉히 사고,
쌍화탕 달여 레토르트파우치에 담고,
OO댁 큰며느리를 강조해가며 함박웃음을 웃어주고,
밭에서 배추 뽑고 절이고 하느라 고생하신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해수찜 가는 게 '하이라이트'
이 분 저 분, 마른 등을 밀다가...병 중에 여위셨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도 찔끔~ㅠ.ㅠ
동네로 돌아가는 길,
까만 밤하늘에 반달이 걸렸더라.
 

             반  달
                    - 함 민 복 -

그대도 달을 보고 있는가

반쪽을 그대가 보고 있는 달로 채워본다
어이 웃는가, 내 혹 그대 마음 베꼈는가?

가을벌레 울음 여울에
몸이 다 젖었을

그대도 나도
반달 

하늘에 뜬 반달 
바다에 뜬 반달

합하면 만월滿月이라고 말하지 말게
그냥 어깨에 슬며시 손을 얹어주시게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꽃봇대
  함민복 지음, 황중환 그림 /
  대상미디어 / 2011년 11월 

 
 

 

  아키버드 (Aquibird) - 오소소
  아키버드 (Aquibird) 노래 /
  Beatball(비트볼뮤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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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05 15:58   좋아요 0 | URL
좋은 시 보고 가요. 오랜만에 ^^ 책도 보관함에 넣고..보관함에 책이 삼천만원이 넘었네요. 헉.

양철나무꾼 2011-12-09 12:38   좋아요 0 | URL
어머~반가워요!
즐찾해 놓고 몰래 엿보기만 했었는데...
섬세하고 결 고운 시를 쓰시던 시인 `OO`님이시군요.

자주 뵈요~^^

전호인 2011-12-05 16:01   좋아요 0 | URL
반달을 여러번 낭송해봅니다.
시가 상념에 들게 하는군요.^^

양철나무꾼 2011-12-09 12:36   좋아요 0 | URL
함민복 님, 이 시도 좋죠~^^
요번 시집, 시화집인데 그림도 이쁘더군요!

하늘바람 2011-12-05 18:37   좋아요 0 | URL
저도 님 덕분에 좋은 시 읽고 가요,
김장 담그고 오셨는데 안 힘드세요? 그런데 툴툴대는 모습은 없으시니
참 본받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1-12-09 12:34   좋아요 0 | URL
저라고 왜 안 툴툴거리겠어요?
저 하도 툴툴거려서 `대나무 숲` 제대로 키우는 거 모르셨구나~^^
전 하늘바람님이 본 받고싶어요~!

2011-12-06 00:13   좋아요 0 | URL
수육 맛있겠다. 김장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양철님의 발랄한 모습이 그려지네요.
노래도 잘 들었어요.^^

양철나무꾼 2011-12-09 12:32   좋아요 0 | URL
수육 직접 안 삶고, 맞춰버렸다고 혼났어요~ㅠ.ㅠ
하지만,내가 삶았으면 아무도 못 먹었을거라는~^^

제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발랄하다고 표현해 주시고...보신듯~^^
그쵸, 한마리의 아기곰이 뒤뚱거리는 것 같았죠, ㅋ~^^

잉크냄새 2011-12-06 15:26   좋아요 0 | URL
저 <쨍한 사랑 노래>는 문학과 지성 300번째 기념 시집이군요.
시를 읽지 않은지 오래되어 다 가물가물...

양철나무꾼 2011-12-09 12:28   좋아요 0 | URL
아, 잉크냄새님...오랫만이시네요.
왠지 님의 닉은 시를 읽는것보다는 노트에 곱게 베껴쓰는거랑 더 잘 어울릴것 같다는~^^
참, 여행기랑 여행 사진 업글하셨어요?
마실가야겠당~!

2011-12-08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12-09 12:58   좋아요 0 | URL
맞아, 저번에 이 페이퍼를 읽을 때
그때도 생각한건데, 이 구절 딱 좋아.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의심없이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연습 중이랍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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