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속도, 그 너머의 삶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풀과 나무가 드리워진 절벽 아래, 바위 위에 엎드린 채 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한가롭다거나 여유롭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듯 싶은, 차라리 눈을 뜨고 꿈을 꾸는 듯한 모습. 그는 어디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한바탕 집중호우가 지나가고 난 오후, 다리를 꼬고 누워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저토록 ‘무심하게’ 무엇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고, 나무 그늘에 누워 하늘을 본 적이 있기나 했던가. 그렇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 또는 무엇이 그 한없는 게으름을 방해라도 했단 말인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그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자본의 충직한 노예가 되기를 자발적으로 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얘기한 것은 맑스의 사위 폴 라파르그였다. 그런데 그 아픈 충고를 들을 때조차도 우리는 가슴에 품은 휴대폰이 더욱 강렬하게 구속해 주기를 초조하게 바라지는 않았던가. 지독한 매저키스트! 그런 마당에 「고사관수도」라니.

한치의 에누리 없이 분절된 시간과 세밀하게 구획된 공간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 삶의 모세혈관은 싱싱한 피로 숨쉬기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폐로 정확하게 환산되는 시간의 채찍에 쫓겨 헐떡거리며 살아왔고 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여유롭게 그리고 느릿느릿 사는 것이야말로 육체적 생명뿐만 아니라 정신적 생명을 다시금 약동하게 하는 원천이다. 그런데 게으름과 느림은 이 현란한 자본의 제국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격언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피에를 쌍소는 힘주어 말한다. 게으름과 느림은 이 황금의 성전에 발을 디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파기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대담한 도발이다.

하기야 러셀이 게으름을 드높이 찬양한 적이 있고, 밀란 쿤데라가 『느림』의 복권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이들에 비해 느림에 대한 쌍소의 견해는 훨씬 구체적이다.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기, ‘고급스러운’ 권태에 빠져보기, 꿈꾸기, 진득하니 기다리기, 낡은 시간 떠올리기, 술 한 잔의 지혜…. 일견 가벼워 보이지만 우리의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빈 칸을 채우면서 본다면 그다지 가벼운 것만도 아니다.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사람은 생명의 왕국을 피폐하게 만드는 폭군이자 독재자이다. 또는 삶의 또 다른 일부인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바보거나 천치다. 최고의 스피드야말로 최상의 미덕이라는 음험한 자본의 논리, 그 가증할 수사 전략을 간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이보그와 인간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말초적인 감각을 충족시키는 물질적 풍요가 우리 삶이 원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전략의 이면을 투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무뎌진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때 필요한 무기가 느림이다. 물론 느림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느림과 빠름의 역동적 교직, 그리하여 드러나는 삶의 무늬, 이를 두고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상투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자. “느림의 미학 또는 느림의 철학을 내면화함으로써 삶의 견인력을 확보할 것, ‘빨리빨리’라는 자본의 주문을 끊어버릴 것, 그리하여 황폐해진 나의 삶을 복원할 것!”

느림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삶의 조건이자 우리의 삶을 노예화하는 자본의 논리에 저항할 수 있는 거점이다. 곧 거부를 통해 해방을 꿈꾸는 사람은 느리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왜?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쌍소의 말이다. 나른한 몽상과 한가로운 산책은 상상력을 뿜어내는 셈이다. 그 샘물을 길어올려 들이킬 때 속도에 지친 우리의 생명은 다시금 약동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다시금 「고사관수도」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나란히 놓고 그 사이에서 출렁이는 생명의 ‘힘’을 호흡할 일이다.


목차

001. 머리말...9
제1장..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19
1.. 한가로이 거닐기...41
2.. 듣기...53
3.. 고급스러운 권태...65
4.. 꿈꾸기...77
5.. 기다리기...85
6.. 내 마음의 시골 고향...97
7.. 글쓰기...107
8.. 포도주 한 잔의 지혜...117
9.. 모데라토 칸타빌레...129
제2장.. 리듬의 교체(막간의 시간)...139
제3장.. 과정. 유토피아와 충고...139
1.. 문화적 흥분...163
2.. 뒤늦은 도시 계획을 위해...179
3.. 분주하지 말기...201
4.. 소박한 사람들의 휴식...211
5.. 하루의 탄생...225

정선태, 「시간과 속도, 그 너머의 삶」, 『BOOK+ING 책과 만나다』, 그린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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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마르코스,『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1992년 10월 12일, 인디언 500년의 저항을 기념하는 시위대 속에서 갑자기 4천여 명의 젊은 남녀가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나타난다. 개척자가 원주민에게 세금과 노역을 부과하기 시작한 역사의 상징물 마사리에고스 조각상을 향해 그들은 화살을 날린다. 멕시코 원주민의 저항사에서, 이 조각상이 무너진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보다 더 큰 상징적 울림이 된다. 그들은 ‘우리의 나이는 500살’이라며, 인디언 투쟁의 역사가 곧 자신들의 삶 자체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갈색 피부를 가진 수천의 전사들 사이에서 푸른 눈과 하얀 피부를 가진 청년이 나타난다. “나를 통해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말한다.” 당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라 대답하며.

마르코스가 직접 펜으로 쓴 반란군 성명서가 잇따라 신문지상을 뒤덮고, 신문이 그의 발언을 봉쇄하자 그의 말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들불처럼 퍼진다. 사파티스타 전사들이 쓰는 검은 스키마스크는 그들에게 자신의 특수한 신분을 떨쳐버리고 혁명의 집합적 주체로 거듭나는 힘을 부여한다. 그들은 보이려고 얼굴을 감추는 것이다! 사파티스타의 시작은 오직 6명의 신참 게릴라들이었다. 아무도 전세계 수천만 인류가 ‘나는 사파티스타!’라 선언하게 될 것을 예상치 못했다. 사파티스타를 관념적 이데올로기에서 구해준 것은 기존의 모든 이념적 전제들을 과감히 내려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무지렁이 원주민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용기였다.

사파티스타 사람들은 바로 옆에서 함께 총을 들고 싸우던 친구들이 귀와 혀가 잘린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어떻게 그 죽음을 극복하는가? 그들은 친구를 죽인 자들을 용서하지도 않으며, 고문과 처형으로 죽어간 친구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친구들의 죽음을 자신의 온몸으로 껴안고 매일매일 친구들의 죽음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택한다. 그들의 잘린 혀로 하여금 살아 남은 나의 혀를 통해 말하게 하라. 살아남은 나의 귀를 통하여 죽은 이들이 듣지 못한 세상의 맥박을 듣게 하라. 그들은 친구들의 죽음을 산다. 그들에게 ‘삶을 산다’는 ‘죽음을 산다’와 동의어다.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너’가 됨으로써 그들의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강렬도로 비화한다.

“권력은, 죄수가 감옥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이 사람들의 힘이 현대 무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역사에서, 그들의 뿌리에서, 그들의 죽은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갖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갖기 위해 아무 것도 갖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코뮨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은 한 사람의 목소리로 나올지라도 곧 집합적인 울림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곧 타자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말. 하나이면서도 많은, 집합적 목소리가 권력에 맞서는 혁명의 네트워크로 변하는 메아리. 꿈이 사파티스타에서 편히 쉴 수 있게, 꿈이 진흙탕 속을 뒹굴게! 진흙탕 속을 뒹구는 꿈들의 코뮨, 말처럼 쉽지 않다. 꿈과 이상은 세상 무엇보다 넓고 높되, 몸은 매순간 진흙탕을 굴러야 하는 것이므로. 그들은 가난조차 무기로 삼음으로써, 가난을 핑계 삼고, 부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에서 한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우리의 잠든 의식을 강타한다.

“우리가 가난한 것은 가난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항복했다면, 만일 우리 자신을 팔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가난을 무기로, 저항의 무기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혁명을 위해 타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그 투쟁에는 우리ㅡ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잊고 있어.” 사파티스타인들은 코뮨 내부 여성들의 명령으로 금주 명령을 내리고, 여성들이 스스로 무기를 들고 함께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포한다. 원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매춘과 실업과 구걸이 사라진다.

일상과 혁명, 지금-여기와 행복의 함수관계를 사파티스타는 어떻게 이야기했던가. “투쟁해봐, 그럼 행복해질 거야.” 사파티스타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학살과 처절한 고통을 당했으면서도 자신들의 불행을 신자유주의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강력한 것은 우리가 허약한 탓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대안이 없는 탓에, 저들이 악몽의 연속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슬퍼하거나 한탄하지만 말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세상에는 항상 협객이 있었고, 지금도 협객이 있다. 검은 스키마스크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한 명의 목소리를 통해 수천만의 목소리로 아우성치는. 그들의 온몸이 절실한 무기이기에, 그들의 말조차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는.

정여울, 「칼과 창이 되는 언어」, 『book+ing 책과 만나다』, 해냄(2002)에서


* 덧붙이는 글

마르코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해냄사(2002)

마르코스(MARCOS)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부사령관. 검은 스키마스크와 별 세개가 박힌 낡은 군모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운다. 나이도, 얼굴도 알리지 않고 있는 그는 신 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으로, 지적인 반란가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그는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 그리고 마르케스의 작품을 통하여 세상에 눈을 떴으며, 12살에 선물 받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다음엔 『햄릿』과 『맥베스』로 정치를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1984년 치아파스의 라칸도나 정글에 도착하여 게릴라가 된 후, 초칠 족과 첼탈 족 원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로 성명서, 연설문, 편지, 에세이, 이야기책을 발표하거나 썼으며, 다채로운 스페인어 문체와 기지가 넘치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무장 봉기 이후에는 언어를 무기로,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라칸도나 정글을 사회적 연대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www.yes24.com 의 '책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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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를 돌아보며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명절은 고향가는 길이 아니라 서울에서 제사지내는 날로 바뀌어버렸다. 아버님 제사를 형님이 모시게 되면서 명절을 맞는 정겨움은 아련한 추억이 된 것이다. 이번 설연휴 역시 남들은 '고향 앞으로' 힘겨운 여행길을 나설 시간에 우린 여수에서 호남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변산반도에서부터 서해안을 훓으며 수원으로 올라갈 계획으로 길을 나섰다.

3년전 쯤인가, 일제 수탈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쇠락한 항구의 흔적만 남아 있는 줄포와 동학혁명의 성지였던 고부를 답사한 적이 있었는데, 정읍, 줄포, 곰소라는 이정표들이 반복될 수록 비교적 때묻지 않았던 곳이라는 추억이 남아서인 듯 까닭 모를 반가움이 앞선다. 기실 다른 곳보다 멀지 않은 곰소 염전에 들리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내소사 주차장에 이르렀는데, 의외로 차가 많다.
 
10여년 전 봄에 다녀온 내 기억 속의 '부안'은 내소사, 격포항과 더불어 다시 찾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었는데, 요즈음의 부안은 일단락 된 새만금 종합개발 사업과 핵폐기장 부지 선정 문제로 각종 매체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감자답게 주차장에서 부터 '핵폐기장 결사 반대' '새만금을 살려내라'는 등 관련 플랭카드가 걸려 있어서 내가 정말 그 부안에 왔구나,란 생각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자 '새로운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모 이동통신사 CF의 배경이 되었던 그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산책길로 꼽히는 곳이지만 몇 일 전에 내린 눈이 쌓인데다, 제법 사람들이 딛고 다닌 듯 반질반질하게 얼어 있어 여차 하면 엉덩방아를 찧을 그런 상태다. 군데군데 부모 손을 잡은 아이들이 눈밭의 멍멍이 마냥 신나라 하고, 울창한 전나무 숲은 하늘을 찌를 듯이  쏟구쳐 있다.


 
디카를 꺼내 수백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뚝 선 당산목을 버팀목으로 삼아 내소사 전경을 한방 찍고, 조금 걸어 들어와 단청을 칠하지 않은 자연 무늬로 을시년스러운 겨울과 어울려 보이는 대웅보전을 막 누르고 나니, 이런~ 밧데리 맛이 간다. 무엇보다 꽃창살을 여러 컷 찍고 싶었는데, 여분의 밧데리를 가지러 다시 주차장 까지 갔다 오기엔 무리라 아쉬움이 크지만 하는 수 없이 절간을 휘~ 둘러본 후 걸어나와야 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로 꽤 붐볐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만원짜리 기원 기와장을 열심히 권하는 보살님이 괜스레 추워보인다.
 
다시 일주문을 나서며 생각하니 주차비, 입장료 등 지불 비용에 비해 내가 취한 것이 너무 빈약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중에 간 격포항에서도 그랬지만 그것은 단순히 다시 찾아와 보니 변했다,란 말로도 설명이 안 되고, 무엇에 대한 아쉬움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무엇을 보고자 내가 이곳에 왔을까,란 생각만은 떨칠 수가 없었다. 다소 시간이 지난 사진을 디카에서 꺼내며 흔적을 남기는 글을 애써 적고 있는 지금도 그 기분은 계속 이어진다.

 
쫓기듯 후다닥 달려온 격포항이다. 부안 곳곳에 걸린 플랭카드와 별다르지 않은 문구의 글자들이 페인트로 갈겨진 선착장에 저절로 눈이 간다. 오랜 세월 동안 켜켜로 쌓인 채석강은 물이 차 멀찌기서 바라본 후, 등대로 향하는 길에 쭉 늘어선 포장마차들은 예전에 없던 풍경이지만, 걸음을 붙드는 그 분들의 생업이라 생각하면 거절의 손사래가 웬지 미안스러워진다. 마침 식때라 적당해 보이는 횟집 문을 밀고 들어섰다.

전날부터 계속 배탈로 화장실을 드나들며 고생중이던 나는 백합죽을, 아내는 회덮밥을 시키고 메뉴판을 들다보며 무료함을 달랬는데 우리가 시킨 끼니 한그릇부터 활어회 가격에 눈이 휘둥거려진다. 원래부터 이곳이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는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 생기고 교통이 좋아지면서 서울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보니 오히려 서울보다 더 비싼 곳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산지에서의 신선한 생선회를 싼 가격에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에 딱 좋을 것 같다. 한 가족이 들어왔다가 메뉴판을 보고 다시 일어서는 사이 먹거리가 나왔는데 한 숟 갈 덜어 먹어본 죽이야 그렇다쳐도 부실한 회덮밥의 내용물에서 다시 본전 생각을 했다. 참으로 맛없는 점심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길이나 바닷가를 따라가다 보면 '전망 좋은 곳'이란 표지판들을 자주 만나는데 , 무심히 지나치며 닿은 곳이 최근 법원에서 전면 공사 중단을 권고 받은 그 말 많은 새만금 방조제다. 우선 부안과 군산을 잇는 거대한 스케일에 맞게 바다를 둘로 쩍 갈라 한참을 달려야 할 만큼 쭉쭉 뻗은 방조제의 방대함에 입이 벌어졌고, 단순히 이것이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투입된 우리의 혈세라 생각하니 만만히 보이지 않았다. 시범으로 심었다는 가로수는 꼬챙이처럼 빈약하여 이내 시범으로 고사할 것 같이 애처롭기 그지 없다.
 
반나절. 변산에서 별다른 소통거리를 찾지 못한 나는 짧은 시간 방조제를 걸으며, 새만금 개발에 따른 경제적 이익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연을 함께 살아가는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개발 이데올로기'의 잔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 없다. 공사를 계속 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나 클 수밖에 없고 이제 와서 그만두기에도 그동안 쏟아부은 비용이 너무나 엄청난 새만금 개발. 이제 어쩔 것인가!

 

2005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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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8(토) : 볼 게 많아 걱정인 교토 (3)

 
☞ 동선 : 교토고쇼 - 킨카쿠지 - 료안지 - 고류지 - 덴류지 - 토롯코 열차(편도) - 교토 시내 관광(한큐 가와라마치역 부근)


6. 토롯코 열차

위의 동선 표시에서 보듯 오늘 하루 돌아다닌 곳들은 하루에 돌아보기에 엄청 무리가 따르는 코스이다. 아마도 교토에 머무르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유적지 하나라도 더 볼려는 욕심이 빚어낸 결과라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일정이 빡빡한 탓에 생기는 신체적 고통에서 나오는 후일담만은 아니다.

▲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주무대였던 아라시야마의 모습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찍은 주무대 가운데 하나가 아라시야마라는 사실과 일본의 국민작가로 일컬어지는 나쯔메 소세키가 즐겨 머물면서 소설을 썼다는 온천이 바로 이 아라시야마 온천이라는 사실을 일본에 와서 안내 책자를 보고서야 알았다. 나쯔메 소세키는 일본인들에게는 근대문학의 시조로 추앙받는 작가인데, 얼마 전에 읽었던 정선태의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이라는 책을 통해 소세키가 자주 머물렀다는 아라시야마라는 지명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이 이곳인줄은 정작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것.

▲ 아라시야마역을 출발하자마자 왼편 강기슭에 있는 아라시야마 온천
내 생각에 오늘 우리가 돌아본 일정은 고토고쇼에서 고류지까지를 하루 코스로 하고, 아라시야마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덴류지와 토롯코 관광열차를 포함시키는 것을 별도의 하루 코스로 추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혹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아라시야마를 하나의 테마로 정해서 천천히 돌아보고 그 속에서 보여지는 덴류지의 위상이나 의미 같은 것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덴류지 북쪽의 대숲길을 벗어난 호젓한 곳에 자그마한 토롯코 아라시야마역이 있다. 토롯코 사가역에서 토롯코 카메오카역까지의 7.3km 정도를 운행하는 토롯코 관광 열차가 정차하는 역 가운데 하나다. 토롯코는 광산이나 토목 공사용 차를 의미하는데, 폐광된 곳이 많은 지금은 호즈강의 비경을 끼고,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인기를 누리고 있다.

"H"가 5호차 짝수열 표를 끊으라고 누누히 강조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전부 끊을 수는 없었고, 4장은 짝수열, 3장은 홀수열로 오후 4시53분 막차를 끊을 수 있었다. 조그만 종이 차표에 시간과 좌석이 수기로 표기되어 있는 점이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가 표를 끊고 조금 지나자 관광객들이 왕창 몰려들어, 조금만 늦었어도 입석으로 갈 뻔 했으니 이나마 다행이다.


▲ 토롯코 관광열차를 표현해놓은 모형도.

▲ 승차까지 시간이 남아서 아이스크림 빨며 주변을 산책 중에 만난 두루미(?). 이 주변은 다닥다닥 붙은 일본 전통 가옥과는 달리 부촌인지 정원 딸린 고급 전원 주택형이 많다. (사진협찬 "H")

하루 종일 절간만 찾아 다닌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줄만한 비경을 기대하며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역무원의 멘트가 역내에 울려퍼진다. 그런데 소리의 진원지는 방송실이 아니라, 제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역무원이 마이크를 들고 역사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하는 즉석 방송멘트이다. 마치 가라오케 분위기를 연출하는 의외의 그 모습이 코믹하고 멋있어서 한바탕 웃는 사이, 토롯코 사가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들어왔다.


▲<左> 한무리의 중국 관광객들, 역시 시끄럽다. <右>알록달록한 땟깔로 치장한 토롯코 열차.
 

▲ <左>멘트의 주공인인 역무원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 <右>지붕과 좌우가 훤한 5호차 내부

"H"가 5호차를 고집한 이유를 열차를 타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사방이 오픈형이라 풍경 감상에 좋을 거 같았다. 지정석이 만석이라 입석으로 가는 사람도 꽤 있어서,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홀수열 셋은 남자들이 앉고 짝수열 네자리는 여자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여 터널을 지나자 첫풍경은 짝수열을 고집한 보람도 없이 홀수열에서 시작되자, 모두들 이거 정보가 잘못 된 거 아니냐,며 실망의 눈길을 쏘았다. 물론 그것도 아주 잠깐일 뿐, 호즈강의 본격적인 비경은 역시 짝수열 방향이었지만..

사실, 우리의 강원도만 가도 널린 게 이런 경치인지라 무턱대고 칭찬만 할 정도로 감탄스러운 건 아니지만 하루종일 걷는데 지쳐있던 일행들에게 피로회복제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된 것 같다.

이런 류의 관광열차가 그렇듯, 방송으로 연신 안내 멘트를 하지만 시끄러운 열차 소리에 묻혀 알아듣기 힘들어서 무용지물에 가깝다. 호즈강을 끼고 컴컴한 터널을 자주 통과하는데, 경치본다고 창문을 모두 열어둔데다 속도를 빨리하니, 소음이 엄청나서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다.


▲ 중간 지점인 호즈쿄역에서 오니, 가면을 쓴 사내의 깜짝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 호즈쿄역의 명물은 역시 이 너구리들. 중앙에 발라당 누워 있는 두 녀석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그렇게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들뜬 관광객을 싣고 한참을 올라간 토롯코 열차가 산속 한가운데 정차하는 곳이 바로 토롯코 호즈쿄역. 우리가 탄 열차에서는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호즈강의 뱃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차해 보트를 타고 다시 아라시야마로 돌아간다고 한다. 원래 벌목운반용 배가 이곳에서 오사카까지 나무를 실어날랐던 것인데, 이것을 관광용으로 개발한 것이라 한다.




이런 풍경을 끼고 20여 분 달리니, 일본여행 오기 직전에 갔었던 강원도 정선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우라지 근처에 레일바이크를 타는 관광상품이 개발되어 성황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일본과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은 폐광이나 벌목용 산림철도를 관광상품화 해서 운행하고 있는 게 전국적으로 24개나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관광상품화가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훼손,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없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몇몇 건축업자나 가진 놈들 배불려주는 지역개발 사업이나 동계올림픽 유치 같은 것에 목메지 말고, 그 돈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러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데 좀더 많은 고민을 하면 안 되나, 하는 짧은 생각도 스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열차는 이내 종착역인 토롯코 카메오카역에 도착했다.


▲<左>종착지인 토롯코 카메오카역 <右>호즈쿄역에서 가면을 썼던 주인공이, 종착역에서 관광객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 교토역으로 가기 위해 누구는 '쎄빠지게' JR 우마호리역을 찾아 헤매는 동안, 누구는 이 아가씨들과 사진박기를 하고 있었다. 유카타를 입은 그녀들도 우리와 같은 관광객인 듯 싶은데,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었다. 덕분에 우리 모두 돌아가면서 한장씩.

토롯코 카메오카 역에서 JR우마호리역까지 걸어가는 짧은 길 옆은 전형적인 시골풍경이다. 모르고 걷는다면 여기가 일본인지 우리나라인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7. 한큐 가와라마치에서



교토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한큐 가와라마치역 인근에서 내렸는데, 현대적 건물과 상점들이 즐비하고 있어서 번쩍거리고 북적이는 폼새가 한눈에도 시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대형 건물마다 보도 위에 지붕을 내고 있어서, 비오는 날 우산없이 다녀도 좋을 것 같다. 아.. 구경은 잠시 뒤로 미루고, 맛있고 근사한 저녁 먹을 곳을 찾는게 우선 과제다.
 
▲ <左> 쭉~~~ 늘어선 택시의 행렬 <右>한큐 백화점 옆 골목에서 식당 찾아 헤매고 또 헤메고...
▲ 돈까스 전문점 "카쯔쿠라"

모름지기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을 뺀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본다한들 무슨 기쁨이 있으리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여행에서의 먹거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특히나 그 지방을 방문하면 지역 특산물은 될 수 있는대로 먹어보자는 주의다.

하지만 이틀 코스 분량을 하루에 움직인 이날, 일행들의 몸은 맛있는 걸 찾아 헤메기에는 너무 지쳐 있다고 해야 하나? 교토에는 300년이 넘는 가게들도 즐비하고 맛집을 소개한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었지만 피곤하고 배고픈 '동물들'에 불과한 그 순간의 우리들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다. 겨우 가까운 골목에서 꽤 유명하다는 튀김집을 찾아냈지만 자리가 없어서 퇴짜 맞고, 본토초 입구에서 눈에 보이는대로 찾아 들어간 곳이 돈까스 전문집.

이번 일본여행에서 느낀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웬만한 식당은 나름대로 일정 수준의 질은 담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첫날 쿄토타워에서의 라멘집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먹을만 했던 것을 보면. 돈까스 정식에 산토리 맥주를 곁들여 맛있게들 비워냈다.


▲ 입구에서 샘플보고 주문한 돈까스 정식. 밥도 있고, 미소국도 있다. 소스는 본인이 갈아서 제조하는 이런 집이 한국에도 많아서 그리 색다른 곳은 아닌데, 탱탱한 새우튀김의 맛은 확연히 다르다.
 

▲ 가모가와 강변 본토초 거리에 형성된,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술집들.

원래 계획은 가모가와 강을 따라 형성된 본토초를 지나 기온가까지 걸어가는 것. 하지만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이 기온(祗園)까지 걸어가 교토의 밤문화를 즐기기에는 역부족. 몇 발자욱 걷지 않아 모두들 호텔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한 살이라도 덜 먹은 티를 내는지, 인테리어 일을 하는 "J"만이 아이디어도 얻을 겸, 교토 밤거리를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며 한큐 가와라마치 쪽으로 가고, 우리는 편의점에서 갖가지 맥주를 사가지고 먼저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나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보여지는 일행들의 모습은 이게 진정 한 시간 전의 인간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생생하기 그지 없다. 아사히 생, 기린 골드, 산토리 프리미엄, 아사히 드래프트, 기린 드래프트로 이어지는 맥주의 향연 속에 둘쨋날 밤이 깊어간다.

▲ 편의점 진열대에서 발견한 우리 '신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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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0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사진요. 두루미 아니고 백로래요. 어젯밤에 어떻게 맨날 가르쳐줘도 모르냐며 어찌나 구박을 하던지.... 언니 요즘 많이 바쁘다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어떻게.... 대단하셔요. 탱자 탱자 노는 형은 옮기는거나 하고 말야.
저도 솔직히 아라시야마를 산책하면서 좀 찬찬히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언제 가을에 아라시야마 다시 가봤으면 좋겠다. .... ㅎㅎ

내오랜꿈 2007-09-05 15:06   좋아요 0 | URL
저 새를 보고 백로라고 그때 사진 찍으면서도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두루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학 종류 아닌가? 또 백로보다는 몸집도 좀 크지 않나?

넌 글을 읽어보고도 옮기기만 한다고 하냐? 네가 쓴 여행기도 손좀 봐야겠다. 어째 맞춤법이랑 문맥이랑 너 닮았냐?
 



초여름 주말 한때를 보내기 위해 부산에서 광양까지 온 지인들을 이끌고 순천만 갈대밭을 찾았다. 오랫만에 찾은 갈대밭은 새순이 허리 만큼이나 부쩍 자라나 있었고, 복수초도 옅으나마 붉은 제 빛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무진교에서 용산전망대까지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바람에 서걱거리는 잎새의 부딪힘 소리가 귓속말 만큼이나 간지러웠다.

사람들은 흔히 순천만 하면 가을의 갈대밭 정경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순천만 가까이에서 몇 년을 보내며 계절마다 찾아가본 경험으로는 여름의 순천만 갈대밭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한겨울 눈 속에 파뭍인 갈대밭도 괜찮았다.

오히려 가을의 갈대밭은 내게 여러 가지로 불쾌한 기억들이 오버랲되어 있다. 교통체증, 피서철 해운대를 연상하게 만드는 인파, 쓰레기... 이런 모습들 속에서 갈대밭의 정경을 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의 감성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혹여라도 순천만 갈대밭을 찾고 싶다면, 여름에 가거나, 한겨울에 가라고 권하고 싶다.


















200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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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0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해아는 왜 가린거야? 응? ㅎㅎ

내오랜꿈 2007-09-03 01:38   좋아요 0 | URL
역쉬!
엄마의 눈이 예리하네. 서현이 머리가 가린 게 해아였구나. 난, 당연히 해아는 거기 없다고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