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죽 - 아와비




서울에서는 구경도 못하다가 여수에 와서 흔하게 접하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전복이다. 전복 한 개당 만원 이만원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해산물 요리집에서 기본 안주에 나올 정도이니 새삼 무얼 더 말하랴. 더우기 회사 직원 가운데 처갓집에서 전복 양식을 하는 친구도 있으니 명절 때면 2KG 정도 구해서 전복파티를 하기도 한다. 가격은 시세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는데, 2KG이면 대략 12만원선. 중간 크기로 하면 1KG에 8마리 정도 되니 마리당 7천원 정도 하는 셈이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던 휴일 한낮. 드라이브 한답시고 여수 돌산도를 돌아다니다 점심 무렵 작금항 인근에 있는 전복요리 전문집 아와비(あわび)로 들어섰다. 외관이나 실내 인테리어가 모르고 지나치면 그저그런 카페의 하나쯤으로 여기기 쉽상인 분위기다.





바다가 보이는 2층 창가에 앉아 기본 메뉴인 전복죽을 시켰다. 전복죽은 1인분에 1만5천원, 해산물 모듬은 2~3만원 선. 아와비에서 전복죽을 시키면, 즉석에서 주문받은 뒤에 끓이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사이 시간에 소주나 한 잔 곁들이라고 나오는 해산물 모듬이 기본으로 차려지게 된다.

전복, 참소라, 성게, 문어, 소라, 군수, 고동 등이 오르게 되는데, 사진에서 보듯 너무나 먹음직스럽게 나온다. 특히나 노오란 성게알은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4사람이 가면 각자 소주 한병씩은 거뜬히 비울 수 있을 정도이다.



해산물에 곁들여 소주를 한잔 하고 있다 보면, 전복죽이 나오는데, 전복내장을 그대로 넣어 끓인 전복죽은 우동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온다. 그 죽을 다 먹고 나면 그야말로 행복한 포만감이 밀려온다. 아무리 해산물 모듬을 먹은 직후라  해도 이 집의 전복죽을 남길 수는 없으니 당근 과식하기 마련이다.

가끔 새벽경매가 이루어지는 돌산도의 군내리 어판장에 들리는데, 자연산은 비싸서 엄두를 못내고 양식 전복의 시세가 값싸면 몇 kg씩 사와서 '회'로도 먹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선물'을 하곤 한다. 살아 있는 전복을 씻어서 그대로 냉동 보관 했다가 전복죽도 해먹고, 삼계탕 끓일 때 넣기도 한다. 양식은 자연산 보다 향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양식장 고기처럼 사료를 먹이는 게 아니라 미역이나 다시마를 먹여서 키우니까 자연산 타령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해산물이다.


200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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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순이 2007-09-12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전에 미역국을 한 그릇 먹었음에도 이 사진들은 군침을 돌게 만드네요~ 거금도에서..너무 기가 막였던 그 맛이 입 안에 확~ 돕니다~ 다음에 꼭 한번만 더.. 기회를..^^; 진짜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드리겠습니다!!^^
아~ 글고~ 점순이는 김유정 소설에 단골로 나오는 캐릭터인데, 애들이 나보고 닮았다고 붙여준 별명이지요~ 싫지 않아서 쓰고 있는 이름이랍니다~^^

내오랜꿈 2007-09-12 16:53   좋아요 0 | URL
언제든 가능하지. 돈만 준비해라!
 



풍천장어


지난 2월초, 서울 형님 댁에 머무르고 계신 어머니와 하루를 보내고 곧장 대산 사무실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어차피 갈 일이 있는데, 여수에 내려갔다 가기는 여러 모로 피곤해서 작심하고 차를 가지고 올라갔던 것. 별 일 없이 놀고 있는 와이프를 데리고 나선 길. 좀 일찍 출발해서 충남 당진 '왜목마을' 일출을 볼 예정이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잔뜩 흐린 날씨가 영 도와주질 않는다.

사무실에서 간단한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하산길을 잡았다. 이왕 먹을 점심을 좀 맛있게 먹자는 심산으로 선운사 입구의 풍천장어구이를 먹으러 가기로 한 것.

예불소리가 머찮은 초입에 살 타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 좀 아이러니한 일이기는 하지만 고창 선운사 입구의 풍천 삼거리에는 민물장어와 복분자술이 명실공히 지방 먹거리로 유명한 만큼 장어집 간판들로 어지럽다.



그 가운데 미식가들 사이에 최고의 맛집으로 알려진 '신덕식당'을 찾았다. 2005년인가, 출장길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도 있고 해서 수많은 집들 중에 별 망설임 없이 선택한 집이다.







장어구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복분자주 한 병을 시켰다. 복분자 한 잔이면 그 오줌발에 요강이 뒤집어진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혀끝에 착 감기는 달작지근함은 프랑스산 고급 와인 못지 않다.



10여 가지 양념으로 화덕 위에 초벌구이 하고, 다시 양념장을 발라 미리 구워낸 장어는 보는 순간 군침이 돌 만큼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우선 쌈채소나 다른 양념 없이 생강채를 올려서 먹어보니 장어 특유의 기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하고 연하며 쫀득쫀득한 맛이다. 1인분에 375g(15,000)으로 양이 좀 많은 편이라서 2인분 시켜서 3명 정도 먹으면 좋을 듯하다. 구이를 다 먹느라 밥을 먹기가 힘들 지경이었으니까. 와이프는 함께 시킨 복분자주가 연신 맛있다고 하는데, 난 단맛이 약간 강한 것 같아 소주 한 병을 시켜서 반반 칵테일을 해봤다. 나름대로 상큼하다.







와이프가 식당에서 먹었던 복분자주가 너무 좋다고 하길래 선운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농협판매장에서 브랜드가 각기 다른 3종을 구입했다. 브랜드가 십여 가지 있길래 다음을 봐서 먹어보고 그 중에 가장 나은 걸 골라보자는 심산으로. 그날 여수에 도착해서 저녁먹으며 다른 병을 선택했는데, 첫 맛의 각인 때문인지 점심때 먹었던 것 보다 맛이 덜하다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모두들, 기회가 되면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

2007년 2월 3일 여수에서



'Pastoral india' - Atahualpa Yupanq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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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나듦의 경계를 보다



경기도 박물관의 홈페이지를 한번씩 검색 하는데, 특별 전시장에서 "해탈의 문 사찰 꽃살문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전시기한을 넘겨버려 미처 보지 못한 게 몹시 안타까웠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연장전시를 하는 틈을 타 막바지에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일요일 점심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민속촌 앞에서 남편 친구 부부를 만나 늦은 점심으로 냉면을 먹고, 산책하듯 그곳을 찾았다. 굳이 전시회가 아니더라도 넓은 야외의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뽑아 들고 설렁설렁 시간을 보내기에 그리 인색하지 않는 곳이 집 가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곳은 정보와 역사, 학술 등 박물관 고유의 기능은 물론 매달 바꿔가며 어린이 영화상영, 답사, 체험, 강좌 등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유물 몇 점 가져다 놓고 보기만을 가용하는, 마냥 정체된 공간이 아니라 활기 있어 보이는, 마치 이웃의 사랑방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운이 좋으면 때때로 박물관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사생대회 출품작들을 2층의 상시전시장 올라가는 복도에 걸어두어 그 재미를 보태기도 한다.




『 해탈의 문 사찰 꽃살문 전시회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기획·전시된 후 경기도박물관(관장 이종선)으로 옮겨 새롭게 열리는 순회전이다. 이번 전시회는 범어사의 관조스님이 촬영한 22곳 사찰의 꽃살문 사진이 선보인다.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형태의 날살문과 띠살문부터 가장 화려한 솟을꽃살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70여점의 사진이다. 지금껏 꽃살문은 화사한 모양새에 비하여 사찰과 신앙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의 불교미술 가운데 꽃살문은 경건한 신앙심이 민중의 마음과 결합되면서 귀족적인 긴장감이 사라지고 소박하며 단순하고 따스한 정감이 어린 아름다움으로 표현되어 왔다. 즉, 독특한 한국성을 지닌 우리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또한 꽃살문은 부처와 중생을 이어주는 엄숙한 경계를 치장하면서도 그 안에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삶과 같은 순수함과 담담함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그간 무심히 지나쳤던 꽃살문의 순박하고 정겨운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 안내책자에서 -

나의 경우,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사찰이 대부분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절을 찾는 횟수가 잦았다. 처음 얼마간은 다른 무엇보다 부도밭과 석등에 관심이 갔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창살의 경우 특별히 시선을 끄는 곳 외엔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는 편이라 무심하게 스쳐지나간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그리 낯설지 않은 소재인 여러 가지 사찰 꽃살문에 대한 전시개요를 보고 호기심이 동했었다. 아마도 그것은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울긋불긋하게 채색된 단청의 화려함도 있었을 테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빛이 바래 나뭇결 그대로 드러난 다양한 문양은 유년시절, 설 명절을 앞두고 일년에 한번씩 가로, 세로살이 네모 반듯하게 교차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소박한 창살에 풀냄새 폴폴 풍기며 창호지를 바르던 엄마 생각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꽃살문을 해탈이라고 명한 것은 상징적으로 넘나듦의 경계, 그 마지노선 때문이 아닐까. 전시실은 사진과 모형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관조스님이 적을 두신 범어사를 비롯하여 내소사, 성혈사,동화사, 용문사 등등 사찰을 이야기 할 때 꼭 창살의 빼어난 아름다움까지 함께 회자되는 곳들은 거의 전시되어 있었다. 이미 보았던 것들도 렌즈를 통해 다시 보니 모두 처음인 듯 생소하다. 전시실에서 당연히 사진 찍는 행위 자체를 삼가해야겠지만, 전시 내용이 플래쉬를 터뜨려 작품에 손상이 갈 만큼의 영향이 없다는 판단과 옆방에서 우리 춤에 대한 공연에 사람이 몰려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물어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 줄만한 일이 없는 틈을 타 몇 컷만 찍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선암사의 '달 속의 방아 찧는 토끼' 와 '달 속의 계수나무와 새'의 문양인데 동화같은 이것을 아쉽게도 몰라서 보지 못했다. 어느 건물에 위치 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다음에 그곳을 찾는다해도 특별한 관심이 아니면 몇 번을 간들 또 스칠지도...



3년전 겨울, 용문사를 찾았을 때 보수공사로 인해 자세히 볼 수 없었던 윤장대를 비록 모형이나마 이곳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보물로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라 한다.

그외 몇 가지 내가 찍은 건 빛 때문에 원하는 그림이 아니라서, 경기도 박물관에서 훔친 몇 개의 사진을 올리며 아울러 '꽃살문'에 대한 간단한 이해도 함께.....



『 한국의 전통 문은 대부분 문틀 안에 얇은 살대를 짠 다음 안쪽에 창호지를 발라 만들었다. 이것을 살문이라 하는데 바깥에서 보면 문의 살대가 그대로 드러난 채 여러 가지 모양(亞자, 井자 등)으로 배열되어 특이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살대를 어떻게 꾸몄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여졌는데 특히 절에서는 다양하고 화려한 꽃무늬로 살대를 장식한 꽃살문으로 법당문을 만들기도 했다. 꽃살문은 살대에 연꽃 모란 국화 해바라기 백일홍 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관념적인 형태의 꽃들을 새긴 문살을 사방 연속으로 짜맞춘 구조로,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의 문살이 단순·소박·검소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부처님을 공양하고 불전을 높이 경사스럽게 꾸미고자 한 옛 사람들의 마음들이 모아져 이런 아름답고 화려하고 다양한 꽃살문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 - 안내책자에서 -


200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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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퀴레의 기행


Ride of Valkyries

프랜시드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있다(웃기는 건 이 영화가 탈영병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에는 10여 년간 수입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최근엔 코폴라 감독의 편집본이 너무 길다는 제작사의 요구로 잘리워졌던 30분 가량의 분량이 재삽입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판이 나와 있다).

미군 특수부대의 윌라드 대위가 캄보디아 밀림에 은거하는 커츠 대령을 제거하라는 특수임무를 받고 밀림을 향해가는 도중, 서핑에 미쳐있는 길고어 대령 일행을 만나게 된다. 서핑을 위해 전투를 벌일 정도로 광적인 서핑매니아인 길고어 대령. 이 길고어 대령이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니벨룽의 반지』 중)이라는 음악을 확성기로 틀어 놓고 네이팜탄을 비롯한 폭탄을 적에게 퍼붓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어젯밤,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본부의 습격 장면을 YTN 뉴스 속보로 보면서 문득 떠오른 장면이 바로 『지옥의 묵시록』의 이 장면이었다.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슬며시 베어나오는 희열감도 있었던 거 같다.

수천 명이, 수만 명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이 전대미문의 '테러'를 보면서 무슨 희열이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나도 아무런 죄없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아프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은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현상 그 자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지고 들자면 그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알면서도 습격을 가한 집단의 논리 역시 나름대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언급되는 '빈 라덴'이든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전선이든 또다른 누구이든...

앞서 언급한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길고어대령 부대의 폭격 장면은 단순히 한 인간의 광기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명분없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수많은 베트남 민중을 죽이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광기'를 묘사한 것이리라.

어디 베트남 뿐이었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1948년의 제주도에서도 그랬고, 한국전쟁에서도 그랬다. 수많은 민중들은 빨갱이 토벌이라는, 전쟁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정당성이라는 이름으로 학살되어 졌었다.

잘 알고 있듯이 한 위대한 사상가는 어떤 책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어제의, 미국심장부를 강타한 저 습격은 어쩌면 미국 자신이 지난 세기 세계 곳곳에서 행한 행동의 댓가는 아닐까? 아마도 어제의 습격이 약자가 강자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에게 행한 것이었다면 누가 알겠는가? 길고어 대령이 그랬던 것처럼 맨하탄의 마천루 사이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틀어놓았을지도...


2001/09/12


1년전 오늘(미국시간), 있었던 일이고 그 느낌을 적은 글이다. 그 뒤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은 테러범 검거란 이름으로 자행된 '합법적(?)' 테러로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된 채 UN 구호품이 아니면 생존을 이어갈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 반드시 잡겠다던 빈 라덴은 그림자도 못 밟아보고 이제 아메리카는 또다른 '악의 축'을 징벌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라크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 그나마 프랑스나 독일, 중국이 안티를 거는 통에 자기 맘대로 못해서 잔뜩 약이 올라 있는 형국이다.

또한 테러방비라는 명목으로 미국행 비행기나 입국 외국인들에 대한 검색 강화는 지문 검사는 기본이고 홍채 검사에 발바닥까지 내보여야 한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미국내에서조차 인권유린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검문 검색을 강화한들, 제2의 빈라덴이라는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한들 자국의 이해를 위해 힘의 논리를 내세우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해를 등에 업은 '초국적 자본'의 이윤추구가 계속되는 한 '9.11테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2/09/10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애꿎게도 그 사이 우리나라도 이 어이없는 싸움판에 주역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 할말은 하겠다고 생**을 떨던 인간이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이젠 전쟁을 지속시킬 힘도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한 부시에게 며칠 전 오사마 빈 라덴은 점잖게 충고 한 마디 했다. 이 불합리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선 미국이 이슬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무릇 모든 혐오감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함에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혐오감에 기초한 테러를 종식시키는 가장 현명한 해답 아니겠는가.

200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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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개인사를 시대의 전장(戰場)으로 끌고가는 슬픈 한국현대사




Main Title I :『박하사탕』 O.S.T.
과거로 가는 기차 I :『박하사탕』 O.S.T.


비오는 연휴, 할일없이 책 보다, 음악 듣다 무심코 TV를 켜니 『박하사탕』을 하고 있다. 몇 번이나 보았음에도 나를 소파에 주저앉게 만드는 이 마력이라니... 영화야 안 본 사람이 드물 것이므로 영화 리뷰보다는 이창동 감독의 생각과 O.S.T. 음반에 관해서 간략하게 소개할까 한다.

이창동 감독.

『초록물고기』라는 데뷔작의 그 짙은 여운으로 인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되어버린 사람. 영화 한편 보고 이렇게 반한 감독은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그가 『박하사탕』으로 나에게 다가온 날, 그는 진정 이 시대의 리얼리스트였다.

『초록물고기』는 공간에 관한 영화였다. 일산이라는 변두리 공간이 서울이라는 위압적 현대도시에 밀려 차츰 탈색되고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대도시가 잔혹하고 비열한 게임의 법칙으로 건설된 위선의 왕국임을 암시했다. 그의 두 번째 작품 『박하사탕』은 시간에 관한 영화다. 골치 아픈 예술영화일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찡그릴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이, 그의 관계가, 그리고 그를 둘러싼 주변과 시대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첫사랑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낯익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건 너무 단순하고 밋밋할 거 같다고 단정하면 오해다. 『박하사탕』은 시간이 거꾸로 진행되는 기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맨 처음 장면이 가장 최근의 일이고, 점차 과거의 사건으로 가다가 마지막 장면은 가장 먼 과거의 일로 끝맺는다. 이 감독은 이를 "사진첩을 맨 뒷장에서부터 보는 것과 마찬가지"에 비유한다.

왜 거꾸로인가?

"출발점으로 다시 가고 싶어서다. 많은 게 변했는데, 이 변화로 우리는 편할지는 모르지만 행복하지 못하다. 무엇이 언제 어떻게 변했는지 하나씩 살펴 보면 차츰 우리의 처음이 드러 날 것이다."

이감독이 말하는 현재는 1998년이며 처음은 20년 전인 1970년대말. 20년전 이감독은 대학생이었고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그뒤 20년은 시대적으로나 개인에게나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살,열정,저항,분신,변절,쾌락,축제,권태가 별다른 해명없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20년 전에 사람들은 '공동선'이란 걸 믿었고, 이상을 향해 가는 길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쨌든 그런 믿음이 일정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가 이상해졌다. 옳은 소리 하면 썰렁해지는 시대가 돼버렸다. 시대의 변화와 나의 변화가 일치한다. 20대에 쉽게 꿈꾸고 쉽게 절망했지만 옳은 것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이제 뭐가 먼지 나는 모른다. 이기적 욕구만 항상 있다. 그러다 보니 세기말이다. 아무런 전망도 없다. 영화 속에서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이 감독의 또다른 생각 하나는 영화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결국 시간이다. 현실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만들어 100분 여의 시간 속에 압축하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압축이 아닌,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시간 말이다."

여기서 시간은 추상적 시간도 아니고 개인적 일상에 한정된 시간도 아니다. 개인의 시간은 현대사의 시간과 끊임없이 만나고 충돌한다. 한국의 현대사는 개인사를 개인의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교란시켜 시대의 전장으로 끌고 들어온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평범한 중년이 첫사랑의 경험을 향해 조금씩 과거로 여행한다. 공장 노동자였던 20대에 사탕공장에서 포장일을 하는 20대여인과 첫사랑에 빠진 기억이 있다. 시대와 시간이 무엇을 바꾸어 놓았고 무엇을 가져다 주었으며 무엇을 잃게 했는지가 차츰 드러난다. 마침내 출발점에 이르면 박하사탕 같은 첫사랑과 만난다.

"박하사탕은 그렇게 깨끗하거나 멋진 이미지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모양도 그렇게 깨끗하고 멋진 것만은 아니듯이. 그렇지만 박하사탕의 하얀 색, 입 안에 퍼지는 환한 느낌은 내 기억에 뿌리깊다. 별거 아니지만 그걸 꿈꾸고 찾아가는 일. 그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감독은 30대 이상의 향수를 겨냥했다거나 어둡고 무겁기만 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권유한다.

"회고 취향이 결코 아니다. 마지막 장면의 20대 주인공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현재성으로 다가갈 것이다. 과거가 현재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면 왜 과거를 이야기 할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환한 기분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박하사탕의 맛처럼…."

200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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