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초, 서울 형님 댁에 머무르고 계신 어머니와 하루를 보내고 곧장 대산 사무실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어차피 갈 일이 있는데, 여수에 내려갔다 가기는 여러 모로 피곤해서 작심하고 차를 가지고 올라갔던 것. 별 일 없이 놀고 있는 와이프를 데리고 나선 길. 좀 일찍 출발해서 충남 당진 '왜목마을' 일출을 볼 예정이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잔뜩 흐린 날씨가 영 도와주질 않는다.
사무실에서 간단한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하산길을 잡았다. 이왕 먹을 점심을 좀 맛있게 먹자는 심산으로 선운사 입구의 풍천장어구이를 먹으러 가기로 한 것.
예불소리가 머찮은 초입에 살 타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 좀 아이러니한 일이기는 하지만 고창 선운사 입구의 풍천 삼거리에는 민물장어와 복분자술이 명실공히 지방 먹거리로 유명한 만큼 장어집 간판들로 어지럽다.
그 가운데 미식가들 사이에 최고의 맛집으로 알려진 '신덕식당'을 찾았다. 2005년인가, 출장길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도 있고 해서 수많은 집들 중에 별 망설임 없이 선택한 집이다.
장어구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복분자주 한 병을 시켰다. 복분자 한 잔이면 그 오줌발에 요강이 뒤집어진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혀끝에 착 감기는 달작지근함은 프랑스산 고급 와인 못지 않다.
10여 가지 양념으로 화덕 위에 초벌구이 하고, 다시 양념장을 발라 미리 구워낸 장어는 보는 순간 군침이 돌 만큼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우선 쌈채소나 다른 양념 없이 생강채를 올려서 먹어보니 장어 특유의 기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하고 연하며 쫀득쫀득한 맛이다. 1인분에 375g(15,000)으로 양이 좀 많은 편이라서 2인분 시켜서 3명 정도 먹으면 좋을 듯하다. 구이를 다 먹느라 밥을 먹기가 힘들 지경이었으니까. 와이프는 함께 시킨 복분자주가 연신 맛있다고 하는데, 난 단맛이 약간 강한 것 같아 소주 한 병을 시켜서 반반 칵테일을 해봤다. 나름대로 상큼하다.
와이프가 식당에서 먹었던 복분자주가 너무 좋다고 하길래 선운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농협판매장에서 브랜드가 각기 다른 3종을 구입했다. 브랜드가 십여 가지 있길래 다음을 봐서 먹어보고 그 중에 가장 나은 걸 골라보자는 심산으로. 그날 여수에 도착해서 저녁먹으며 다른 병을 선택했는데, 첫 맛의 각인 때문인지 점심때 먹었던 것 보다 맛이 덜하다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모두들, 기회가 되면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
2007년 2월 3일 여수에서
'Pastoral india' - Atahualpa Yupanq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