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인적으로 '사랑'이라는 말이 갖는 복잡미묘함을 문학 작품 속에서 끄집어내 정리하고자 했던 시절이 있었다. 천리안 시절로 기억하고 있으니 꽤나 오래된 셈이다. 우리 시대는 소설에서든, 영화에서든, 시에서든 어떤 형태로든지 사랑이라는 감정의 아우라는 넘쳐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아우라'는 결국 시간과 세월과 기억과 함께 가는 생명체라는 사실이다.

굳이 사랑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세월은 망각과의 싸움이자 기억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잊고싶을수록 오래 남는 나쁜 기억은 정신을 야위게 만들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은 덧없이 망각에 잠겨 버린다. 안진우 감독의 데뷔작 『오버 더 레인보우』는 기억과 망각을 날실과 씨실 삼아 짜들어간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다.

송국 기상 캐스터인 진수(이정재)는 비 뿌리는 저녁 누군가에게 선사할 프리지아 한 다발을 사들고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한쪽 다리만 깁스를 한 정도라 별 무리없이 업무에 복귀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사고로 인해 자신의 대학 시절 기억 중 일부분이 사라졌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자신이 졸업한 뒤에도 남몰래 혼자 연모했던 이가 누구였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 잃어버린 기억의 복원을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하게 된다. 전화 속에 남겨진 음성 메시지가 시발점이 되어 대학시절 같은 사진동아리에 있었던 연희(장진영)에게 도움을 구한다.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서 근무하는 연희는 처음엔 진수의 단짝 상인(정찬)과 연인이었다 헤어진 연유로 진수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이내 과거를 재생하려는 진수를 돕게 되고, 그런 연희에게서 진수는 호감 이상의 끌림을 경험한다. 그러던 중 진수와 사귀었다는 후배 혜영이 등장하고, 진수를 향한 혜영의 적극적인 표현에 진수와 연희의 관계는 어색해진다. 하지만 진수는 혜영이 프리지어를 좋아했던 기억속 여인이 아님을 직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따라가면서도 『오버 더 레인보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찾아간다. 두 주인공 진수와 연희는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니다. 남자의 사랑을 찾아주기 위해, 그와 그녀는 만난다. 두 주인공은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간다. 사랑의 끝에서 시작으로 향하는 특별한 길, 켜켜이 쌓여진 사랑의 과정들을 관객 모두가 목격하는 설레임 속에 두 남녀의 사랑들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다.

멜로드라마이면서도 그 흔한 키스나 포옹장면 하나 안 나오는,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을 피해 새로운 이야기로 사랑의 '원형'을 확인시켜주는 영화인 셈. 어쩌면 『8월의 크리스마스』 나 『미술관 옆 동물원』 류와 일맥상통하는, 우리나라 멜로 영화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특별한 울림의 사랑이 그려지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멜로드라마와 짝을 이루어 진행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 축은 추억 혹은 '기억의 재구성'에 관한 문제다. 아마도 어떤 의미에서 한 인간의 정체성은 기억으로 환원된다 할 수 있을 게다. 정체성이란 삶의 궤적이고 그 흔적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사람들의 내면에 저장되는 것이니까. 관계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게 술과 친구라는데, 오래된 친구는 지금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추억은 사람을 미소짓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추억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닐 게다. 추억 혹은 기억으로부터 미소를 머금을 수 있으려면 인생의 전환기, 그러니까 관계의 추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할 수 있는 정도의 연륜(?)을 경험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버 더 레인보우』는 이런 인생의 전환기를 통과해본 사람들에게는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볼 수 있는, 호소력있게 다가오는 영화다.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배우 장진영이라는 캐릭터다. 『소름』에서의 그 강하고 어두운 캐릭터에 이어, 한눈에 쏙 들어오지는 않지만 '어떤' 순수와 여백을 가지고 서서히 사람을 사로잡아가는, 못다 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릴 정도로 상큼한 이미지다. 심은하가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자신의 연기와 이미지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했다면 장진영은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어떤 하나의 캐릭터만이 아니라 모든 주어지는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장진영의 이런 모습은 차기출연작으로 예정된 『국화꽃 향기』에서 다시 확인해볼 수 있으리라.

일직선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기관차처럼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광분하는 이때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을 되찾고 싶은 사람들은 조용히 극장 문을 두드려 보시기 바란다. 어쩌면 잃어버린 옛사랑이, 추억이 그대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수의 무지개를 찾는 여정과 함께 하는 음악 「Over the Rainbow」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Judy Garland가 불렀던 바로 그 곡이다.

200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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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07-09-1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 개인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 너머 어느 곳처럼 첫사랑의 추억을 더듬어 가는 내용이 이쁘게 그려진 영화였죠.

내오랜꿈 2007-09-13 15:28   좋아요 0 | URL
며칠 전 OCN인가 CGV에서 방영하는 걸 다시 보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전 이런 류의 영화들, <국화꽃향기>나 <광식이 동생 광태> 같은 영화들을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Knocking on Heaven's Door





Selig - Knocking on Heaven's Door





































Bob Dylon - Knocking on Heaven's Door
Selig - Knocking on Heaven's Door



두 사람이 길을 간다, 바다로 가기 위해.
바다 그 자체가 목적인지,
그 바다와 같은 모습일 것이라 생각하는 천국을 미리 보기 위함인지...

어쩌면,
살아가면서 누구나가 한 가지씩 간직하고 있을 그 어떤 '꿈'인지도...

전혀 다른 두 사람.
정상적인 삶이었다면 분명 '잘못된 만남'일 수도 있는,
그러나 이미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에겐 '만남' 그 자체가 소중할 수도 있는 것.

왜냐하면 잘잘못을 따지기엔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영화는 정형화된 '로드무비', '버디무비'의 틀을
한 순간도 벗어나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그 틀을 따라가면서
황당한 볼거리나 웃음거리를 삽입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그 진한 여운은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을 저민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바닷가의,
무엇인가 그들이 지나왔던 것과는 다른 세상의 모습인 듯한,
어쩌면 그게 진짜 천국의 모습인 듯한,
끝이 아니라 계속 될 것만 같은 마지막 장면.
그 위로 오버래핑되는 엔딩 크레딧과 노래 한 곡.

밥 딜런의 저항정신과 이상이 담긴 "Knocking on Heaven's Door".
우리에겐 레드제플린이나 건즈 앤 로지스의 리바이벌 곡으로 더 익숙한 노래인데,
영화에 삽입된 곡은 보다 강렬한 비트로 편곡된 독일의 락밴드 'Selig' 의 곡이다.

영화 끝났다고 비디오 꺼버리는 분들은
그 진한 감동을 절반도 느끼지 못하시는 겁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천국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십시오.

만약 이 영화를 보시고도 영화가 재미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그야말로 '킬링타임용' 영화나 즐기셔야 합니다.



*****

Bob Dylan의 원곡을 여러 락밴드들(대표적으로 Led Zepplin, Pink Flyod, U2, Gun's N' Roses)이 리바이벌 했는데, 'Bob Dylon' 과 'Selig' 의 곡을 올린다(개인적으론 'Gun's & Roses' 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언급하겠지만, 백인 남성 우월주의에 빠진 액슬 로즈의 그 '마초이즘(machoism)적' 근육질 과시는 꼴불견이다. 이런 그들이 밥 딜런의 곡들을 리바이벌 했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할 정도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Knocking on heaven's door] 관련 홈페이지에는 영화에서 'Gun's & Roses' 의 곡이 나온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위의 'Selig' 의 곡은 영화에서 부른 곡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편곡된 곡이다).

2002 0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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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포구기행


벌교 현부자집에서 빠져나와 순천방향 2번 국도에 접어드니 아직 해가 중천이다. 해가 제법 많이 길어졌나 보다. 곧장 여수집으로 귀가하기엔 좀 섭섭한 시각. 그래서 순천만 일대 이름모를 포구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아마도 곽재구의 <포구기행>에 소개된 '거차'와 '화포'라는 곳이 이곳에서 멀지 않다는 생각이 작용했으리라.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 불빛은 화포의 불빛이고, 저 불빛은 거차의 불빛이며, 저 불빛은 와온 마을의 불빛이다. 하늘의 별과 순천만 갯마을들의 불빛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나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싱거운 생각에도 잠겨본다. 당신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

- 곽재구,  <포구기행> 중에서 -

마른 논에 물들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그닥 춥다고 할 수 없었던 지난 겨울이 한꺼풀 더 엷어져 바람조차 상냥한 휴일 오후. 빠른 길을 택하느라 피하게 되는 협소한 지방도로를 달리는 재미는, 달려본 사람만이 알지 않을까. 제한 속도 60km는 주변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기에는 다소 빠른 감도다.






살기가 하도 팍팍하고 거칠거칠해서 붙여졌다는 이름. 바로 여기가 그 '거차'인가 보다. 물 빠진 넓은 갯벌에 사람의 흔적은 없다. 적어도 갯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일이 없으니, 막연한 정취에 취한 외지인에게 참 다행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길다랗게 뻗은 거차의 방파제(?)는 그 꼬리가 무척이나 길다.

길이 3미터, 폭이 30센티미터쯤. 나무썰매의 맨 끝은 눈썰매의 그것처럼 앞부분이 들려져 있었다. 개펄을 나아갈 때 부딪는 마찰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 나무썰매를 '널'이라 불렀다. 널을 타고 그들은 갯펄을 씽씽 달렸다. 왼 무릎을 널 위에 올리고 오른발을 이용해 엎더린 채 개펄 위를 달려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설원 위의 스키어 못지않았다.

- 곽재구 <포구기행> 중에서.






그 널배가 만든 물길을 따라 바다는 저만치 밀려나 있다. 무작정 들어가 밟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해안길을 따라 텅빈 갯벌을 끼고 돌아 나오는 길에 마추친 화포. '꽃피는 포구'라는 지명이 무색하게 꽃도 포구도 없지만, 花浦에 왔다. 그저, 이름이 예뻐서였을까? 남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인데, 내 기억 속에는 왜 그리 유난히 강하게 자리하고 있을까?



생긴대로 구불구불 곡선을 그린 바닷길을 따라 화포를 넘어서니 낯익은 단골집 간판이 보인다. 한여름이면 짱둥어를 먹기 위해 늘 여기까지만 왔었다. 순천만을 배경 삼아 땀구멍 활짝 열어가며, 짱뚱어 한그릇 후루룩 먹고 난 뒤의 행복감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대대포구로 들어가는 길옆 미나리깡을 지키는 허수아비.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갯벌 만큼이나 반듯반듯하게 보이는 그 간척지다. 아직 해넘이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기에 순천만 길대밭에 들렀다. 사람들이 붐비는 선착장쪽을 지나 뚝방길로 왔다.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갈대숲 너머로 오늘 해넘이 목적지인 와온해변의 솔섬이 고개를 내밀고 앉아 있다.




어차피 여수 들어가는 나들목이므로 꼭 해넘이가 아니더라도 자주 들리게 되는 곳이 바로 이 와온해변이다. 갈 때마다 한적했는데, '오늘이 무슨 날인가' 싶게 해수탕 앞에는 일몰을 담기 위해 삼각대를 세운 사람들로 북적인다. 정말 무슨 날인가?

우리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잡고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는 서녘 하늘을 본다. 늘상 마주치게 되는 일몰, 이곳에서의 일몰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몰과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 솔섬이 어둠에 묻히기 직전! 마지막 숨을 토하듯 날은 저물고, 번잡한 일상의 무거움을 덜어낸 반나절의 나들이도 이제 그만 접을 시간이다.


소래포구 -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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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기행


이게 무슨 겨울 날씨인가 싶을 정도로 포근한 어느 일요일. 특별한 일정없이 게으름을 피우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아내를 재촉해 길을 나섰다. 며칠 전 큰 맘 먹고 구입한 DSLR 카메라도 시험할 겸 나선 길이다. 작년까지 백만원대를 호가하는 가격이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인터넷 홈쇼핑 특판 가격으로 40만원(게다가 무이자 10개월 할부:도대체 이렇게 파는 물건이 정품인지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다)을 주고 구입한 것.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고 나선 길이 아니기에 가까운 고흥에 들러 유자나 구입하여 술이나 담을까 하여 들린 고흥 유자공원.

여행객의 준비 부족을 탓하는 듯, 유자공원 내의 유자나무는 시퍼런 이파리만 무성하고 노란색 열매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생각해보니 아무리 따뜻한 남도땅이라지만 한겨울에 열매를 맺는 과실이 어디 있을까? 유자공원 한켠에 마련된 특산물 판매장 문을 들어서자 실내에 유자향이 가득하다. 친절한 여직원이 건네는 차를 마시며 매장을 둘러보다가,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진 그 맛에 반해 유자차 한 병을 구입했다. 어디서 연유한 착각인 줄은 모르지만 이미 수확을 끝낸 유자는 고흥 특산물이라는 특명을 띄고 팔려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고흥읍 풍양리에 있는 풍양양조장


TV에선가 고흥 어느 식당에서 유자막걸리에 관한 내용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직접 담그는 집은 모르겠고 가까운 곳에 양조장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풍양 주조장'에서 막걸리 3통(천원/1통), 유자와 5종의 한약제를 첨가하여 3주간 숙성시켰다는 맑은 '향주'(2천원/1통) 1통을 구입했다. 5일이라는 짧은 유통기한을 생각하여 맛 볼 정도로만 가볍게 구입한 것이다.

옛날 어릴 적 고향 동네의 양조장은 그야말로 읍내에서 손가락 꼽히는 부잣집이었다. 하지만 이곳 풍양의 양조장은 옛날의 부잣집 양조장 흔적은 커녕 언제 문을 닫을까 걱정이 앞설 정도로 쇠락해가는 모습이어서 여행객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트렁크에 막걸리를 넣기 전에 마개를 따서 한모금 마셔 보니 단맛이 좀 강하다. 아마도 유자를 넣는 과정에서 단맛이 많이 가미된 듯 하다. 아내에게 한모금 마셔 보라고 하니 입안 가득 은은하게 유자향이 퍼지는 것 같다며 의외로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등산 갈 때 얼려서 가지고 가면 좋겠다나 어쨌다나...


고흥읍내 하천둑을 따라 솟아오른 가로수(?)


어느 여름, 고흥읍내에서 홍교를 보고 나오다가 만난 가로수. 살다 보면 이 나무처럼 일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돌아갈 때가 있는 것이 세상사라는 걸 다시금 각인시켜주는 듯 하다. 작년 여름의 어느 휴일에도 그랬지만 고흥읍내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가 만만찮다. 고흥 군청 앞에서 맛집으로 꽤 알려진 '평화 한정식'을 찾았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퇴짜맞았다. 처음엔 주인이 교회 다니는 집일까 생각되었으나, 읍 자체가 비교적 관광객들의 시선에서 조금 밀려나 있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싶은데, 이 역시 짐작일 따름이다.

배도 고프고 해서 고흥을 둘러보는 것은 포기하고 곧장 벌교를 향해 내달렸다. 우리에게 벌교는 늘상 여타 남도땅을 밟기 위해 거쳐가는 길목이기에 눈으로만 스치는 곳이었고, 어쩌다 오늘처럼 밥을 먹을 때만 한번씩 들리게 되는 '소박맞은' 동네인 것 같다. 역앞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역전식당'에서 꼬막을 안주 삼아 마신 유자 막걸리의 여운을 삭힐 겸 시장 주변을 배회했다. 사방팔방 둘러봐도 개발 바람이 미치지 못한 읍내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없이 초라하지만 정겨운 모습 그대로다.



한때는 '벌교에서 돈자랑,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생겼을 정도로 큰 상권을 이뤘던 재래시장. 해산물 투성이라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외곽에 번듯한 우회로가 뚫리면서 사실상 교통 요충지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때를 잘못 맞춰 들어오기라도 하면 사람과 차들이 한데 엉켜 난장판을 이루기도 하는 곳이다.


설을 일주일 앞 둔 대목같지 않게 한산했지만 가게 마다 꼬막 자루 만큼은 가득 쌓였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매생이, 피꼬막, 키조개, 낙지


시장 곳곳을 돌아보며 몇 장의 사진을 건졌다. 전라도 지방에서 예비 사위 성격 테스트용으로 대접한다는 매생이가 눈에 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 남도에서조차 구경하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은 제법 많이 나는 모양이다. 자루를 통째로 쌓아 두고 연신 새조개를 까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피꼬막, 키조개도 보인다. 같이 보던 아내는 새조개를 보고 정말이지 무식한(?) 티를 낸다.

"저 '대합' 넣고 미역국 끓이면 엄청 진하고 맛있겠다."

할말이 없다. 하긴 도회지 아낙들이 저걸 보고 어찌 새조개인지 알 수 있으랴?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다 사진 찍는다고 하니 다소곳이 않은 아낙네


대놓고 사진을 찍기는 뭐해서 조심조심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 하니까 호객할 손님이 없는 무료함을 달래려는지 사진 좀 박아 달라는 젊은 시장 아주머니의 요청이다. 정면으로 그니의 자태를 두어 개 찍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밝은 그녀의 웃음이 무척 건강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억척스런 우리네 어머님들의 모습이면서도 찌든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해맑은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돈 마니 버시길...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사진들을 현상하여 지니고 다니다가 벌교를 지나는 길에 전달할 생각이다.



대충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갈려고 하니 아내가 화장실이 급하단다. 그래서 잠시 눈길이 머문 곳이 벌교 역사. 그 옛날 전남 남동부 지역 상권의 중심지였을 때는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을텐데, 이젠 하루 4편의 기차만 오가는 쇠락한 시골역이다.




때마침, 플랫폼에 기차가 들어왔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합해봤자 몇 안 되는 손님으로 아무런 술렁임 없는 느슨한 풍경. 물끄러미 다음 정차역으로 떠난 기차의 뒤꽁무니를 지켜보았다. 멀어진 기차의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면 <태백산맥>에서 염상구가 주먹대결을 벌이던, 강 위 그 철다리에 이를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참인데, 그만 나오라는 역무원의 제재를 받았다. 문을 걸어야 할 시간이다.




돌아나오는 길에 열차시각표를 확인하니 방금 그 기차는 15:00시발 목포행이었나 보다. 벌교역앞을 빠져나와 소화다리를 건너 순천 방향으로 나오다 보면 왼쪽으로 현부자집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태백산맥>의 주무대라고는 하지만, 일부러 남아 있는 흔적들을 애써 찾아본 적은 없다. <태백산맥>이 말하는 주제는 그 시대 인민들의 삶과 그 삶을 바꿔가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유적들을 무슨 거창한 '답사'입네 하며 찾아다니는 것에 이유 모를 거부감이 강한 탓이다.

현부자집 앞 연못 오른편으로는 현대식 조립건물로 레스토랑 비슷한 것이 들어서 있다. 하긴 뭐 사람 발길 가는 곳에 잠시의 휴식 공간이 들어서는 것에 그렇게 큰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뭐 있나 싶어 그냥 고개 돌리고 말았다.


연못에서 바라본 현부자네집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현부자집 안내판, 현부자집 진입로, 현부자집 솟을대문 입구


2007.02.11




빅토르 하라의 공연 실황. 중간에 나오는 장면은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의 쿠데타군이 아옌데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장면과 이후 쿠데타 정권이 칠레 민중을 탄압하는 장면이다. 모두 두 곡이 나오는데 첫번째 곡은 Te Recuerdo Amanda(아만다, 너를 기억해)이고 두번째 곡은 Canto Libre(자유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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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1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부르는 빅토로 하라의 모습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워서 놀랐음. 인상도 좀 더 강렬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그래도 덕분에 좋은 영상 좋은 노래 들었어요.

내오랜꿈 2007-09-1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아마도 빅토르 하라의 삶이 네 머릿 속에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아만다 너를 기억해"가 좀 부드럽긴 하지만, 빅토르 하라의 노래는 대부분 이런 톤이지. 1974년에 발매된 빅토르 하라 추모 앨범을 갖고 있는데, 그 추모 앨범에서 가장 조용한 목소리가 하라더만. 하라의 "벤세레모스, 벤세로모스"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저 그런 '러브송'으로 들릴 걸?

다음에 만날 때 이 추모 앨범 카피해서 하나씩 돌리든지 하지.
 



Another Brick in the Wall, II (클릭하시오)


'로져 워터스' 내한공연과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좀더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앨범 『The Wall』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더더욱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영화화한 알란 파커 감독의 『The Wall』(비디오 출시 제목은 『핑크플로이드의 더 월』)을 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80년대 내내 복사판을 본 사람들에 의해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Another Brick in the Wall,Ⅱ」의 그 등골이 서늘한 장면은 10년 만에 우리들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었다(영화의 제작은 1982년이었지만, 국내 수입은 금지되었다가 1991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1999년에야 정식 개봉되었다).

"우리들에겐 교육도, 사상통제도 필요 없어."
"Hey, Teacher, 우릴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이 장중하게 울리는 음악에 맞춰 화면은 선생의 지시에 따라 벽 사이의 컨베이어 벨트 비슷한 선을 학생들이 줄지어 걷는 모습이 나온다. 그 선을 따라 오는 동안 아이들은 점차 똑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가며, 컨베이어 벨트의 끝에 이르러서는 하나씩 떨어져 통 속에 처박힌다. 그리고 그 다음 화면에는 기계의 구멍에서 (아이들이 재료가 된)소시지가 뽑혀 나온다. 이 소름끼치는, 그러나 너무나 명료하고 상징적인 반사회적/교육적(보는 이에 따라서는 너무나 통쾌한) 장면으로 인해 이 영화의 국내 개봉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었다.

『The Wall』은 어떻게 보면 알란 파커의 영화라기보다는 로져 워터스의 영화이다. 핑크 플로이드가 1979년에 만든 이 앨범은 거의 전곡을 로져 워터스가 작사/작곡 했으며, 수록곡 27곡은 독립된 각각의 곡이라기보다는 전체가 하나의 일관성을 갖춘, 각각의 곡이 앨범 전체의 하나의 요소들로 기능하게끔 구성(당연히 이게 '앨범'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것이지만)되어 있다. 이 앨범을 영화화 할 때 시나리오 역시 로져 워터스가 만들었으며, 앨범 수록곡의 가사가 영화의 대사를 대신하게끔 구성되어 있다(영화화 하면서 앨범 수록곡에서 2곡이 빠지고 전쟁의 기억과 연관된 2곡이 추가되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독립된 영화라기보다는 앨범 『The Wall』의 '뮤직비디오 버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원래의 앨범 자체가 로져 워터스의 음악적 성향과 그의 철학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영화화하면서 앨범에서 다룬 각각의 테마들이 좀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가정과 사랑, 전쟁과 기억, 교육과 통제, 공연과 파시즘적 질서 등에 대한 각 테마를 '벽'이라는, 우리의 삶과 사고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근대적 이성/근대적 삶을 벽이라는, 철학적 문제로 형상화해내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핑크'(밥 겔도프)는 자신의 눈썹을 밀기도 하고 자해하기도 하고, 그러다 집안의 온갖 것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과 마주친다.

"벽 밖에 누구 없소?"

그러나 들려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와 악마적인 웃음 뿐이다. 허무는 벽, 그러나 끝없이 나타나는 벽, 절망하는 핑크...

그 벽에 저항하던 핑크는 마침내 기소되었다. 재판장 구더기 각하는 그에게 심판을 내린다.

"이 자의 죄상은 너무도 명백하니, .... 최고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이런 죄인(에게).......선고하노니, 벽을 부숴라"(Tear Down the Wall!)

최고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선고하는 형벌이 "벽을 부숴라"라니... 벽을 부수려던 피고에게 벽을 부수란 선고가 최고의 형벌이라는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이것은 '벽'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이중의 냉소 또는 조롱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토록 부수고자 하지만 과연 네가 저 견고한 벽을 부술 수 있겠느냐는 조롱, 또는 설사 저 벽을 부순다 해도 그 뒤에 또 다른 벽과 부딪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조롱. 다시 말해서 네가 벽을 부수면서 새로이 만들어낸 가치나 삶이 또다시 너를 가로막는 벽이 될 것이라는 싸늘한 냉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끊임없이 반복되기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지푸스의 노동처럼, 핑크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의 형벌일 수 있을 게다. 곧 벽을 부수려는 자에게 최대의 형벌이 벽을 부수라는 것이라면, 갇힌 벽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주어져 있는 형벌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벽 앞에서 무력감에 절망하며, 그 절망을 내면화하고 허무주의로 빠져들게 하리란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부숴도 부숴도 무한히 반복되는 벽, 내면으로까지 침투하여 금욕과 허무, 절망을 심어놓는 그 억압, 그 억압이 지배하는 세계.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억압에 눌리지 않고, 그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돌파하려는 끝없는 의지가 아닐까? 이것이, 벽을 넘어 새로운 가치나 삶을 창조해도 그것 또한 곧 그를 가로막는 벽이 될 지언정, 자신이 벽에 갇힌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의 벽에 머물러 지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벽을 깨기 위해, 또는 벽을 깰 때마다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치와 삶의 방식은 곧 또다시 깨부숴야 할 벽에 불과할지라도 우리의 사고와 삶이 나아갈 수 있는 경계를 확장할 것이기에 그러한 노력과 시도 자체가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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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2일, 로져 워터스(Roger Waters)가 잠실운동장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 같이 연주의 완전성을 최고의 무기로 삼는 아트락이나 프로그래시브 락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공연무대 하나 만들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들이고 전세비행기로 악기와 소모품을 실어나르는 이 '공룡밴드'를 보고 있노라면 '락은 태생적으로 혁명적인가?', 라는 '락의 진정성' 논쟁이 새삼 생각날 수밖에 없다.

2002/03/25

이 영화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이진경,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관한 7편의 영화>, 새길 참조



얼마 전 어떤 사이트에 들렀다 참 인간이 여러 종자들이라는 걸 느꼈다. 사이트에 이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를 틀어 놓고,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와 비교하고 있었다. 락의 혁명성이니, 진정성이니 하며 우리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볼 때 아직 우리 나라는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은 그 생명력이 남아 있다는 요지로 매듭 짓고 있었다.

맞다. 그런데 내가 확 '깨는' 이유는?

이 인간의 사이트 왼쪽 이미지에는 황우석 교수의 사진을 걸어 놓고, 카테고리 가운데에는 황우석 지지모임에 관한 글을 퍼다 놓고 있었다. 그리고 즐겨찾기에도 황우석 지지단체모임을 등록해두고 있었다.

정말이지, 인간은 여러 종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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