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1] 그윽한 소리, 강렬한 울림


낮고 느리고 간결한 목소리로 비주류 포크 일궈… 록에 음악적 뿌리 두고 기타 반주자로도 활약


새해를 맞이했으니 ‘운수풀이’식으로 글을 시작할까 한다. 물론 심심풀이 이상은 아닌데, 한국의 음악인들 가운데 거물급들이 몰려서 태어난 해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1947년 돼지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이해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1970년대 싱어송라이터(자작곡 가수)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해방정국의 소용돌이에서 태어나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경험이 오히려 예술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한 것일까. 아무튼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오세은, 그리고 조동진이 ‘1947년생’이다.



△ 1971년 1월 솔로 데뷔 무렵 한 주간지에 나온 조동진.

47년생 싱어송라이터 대열에 합류

조동진을 ‘포크 가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그를 포크의 영향을 받은 싱어송라이터라고 묘사하는 것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흔한 ‘통기타 가수’와는 무언가 다른 비범함을 가지고 있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이 미사리 등지의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고 있는 반면, 그는 몇년 만에 한번씩 음반을 발표하고 공연을 한다. 무거운 침묵 뒤에 나직이, 그렇지만 강렬하게 말 한마디를 던지는 고수 같은 모습이다.

그러니 조동진을 ‘악사열전’에서 다루는 것은 조금은 번지수가 틀린 일이다. 나중에 ‘작가열전’이나 ‘가수열전’을 하게 된다면 그때 더 어울릴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세히 모르는 일이 있다. 그것은 그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 중반부터 ‘보컬 그룹’ 혹은 ‘그룹사운드’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대광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친구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전기기타를 연주하면서 교내 행사 때마다 무대에 섰다. 1972년 한 주간지가 그를 “1인의 그룹사운드”라고 묘사한 것이나, 시나위의 신대철이 “조동진 형의 곡을 밴드가 연주하면 곧바로 록 음악이 된다”고 말한 것은 조동진의 음악적 뿌리를 잘 묘사해준다.



△ “차나 한잔 하지….” 경기도 일산의 자택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할 때 모습.

조동진의 부친은 영화감독 조긍하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것이나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도 부친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그는 그룹에 가담하여 미8군 클럽과 종로의 우미회관 등의 무대에 섰다. 이 시절 황규현, 이태원, 전언수 등과 결성한 5인조 그룹 ‘더 셰그린’(The Shagreen)에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도 불렀다는 일은 전설 같기만 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들 가운데 황규현은 1969년 솔로 가수로 ‘전향’해 <애원> 등을 히트시킨 솔 가수가 되었고, 이태원과 전언수는 ‘쉐그린’이라는 이름으로 포크 듀엣을 결성했다.

셰그린을 마지막으로 그룹에서 연주하는 생활을 그만두면서 그는 학교도 그만뒀다. 팝송을 모방하는 일보다는 “무언가 나의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음악”이었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신촌 로터리에 있는 카페 ‘비잔티움’에서 아르바이트로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한때 물 좋고 잘나갔다는 나이트클럽 ‘우산속’이 있던 빌딩에 함께 있던 커피숍이다. 그때 그곳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비틀스의 , 롤링 스톤스의 , 비지스의 같은 노래를 부르는 키가 큰 장발의 청년을 보았을 것이다.

5인조 그룹 활동… ‘우리 것’을 찾아서

때는 마침 ‘통기타 포크송’의 전성시대였다. 조동진 역시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민기, 양희은 등과 어울렸지만, 그는 ‘쎄시봉’에서 ‘오비스 캐빈’으로 맥을 이어가던 포크송의 주류와도 거리가 있었다. 그 대신 그는 나현구가 경영하던 뚝섬(성수동)의 오리엔트 스튜디오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작곡을 하면서 ‘기타 반주자’로 활동한다. 1972년경부터 그가 작곡하고 기타를 연주한 곡들이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로 녹음되기 시작했다. 1968년에 만든 <마지막 노래>는 서유석, 김세환, 현경과 영애, 이수만(!)이 불렀고, 1969년에 만든 <작은 배>(작사는 시인 고은)는 양희은이 불렀다. 서유석은 <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를 불렀고, 김세환은 <그림자 따라>를 불렀고, 윤형주는 <작은 불 밝히고>를 불렀고, 송창식은 <바람 부는 길>을 불렀고, 최헌과 투 코리언스(김도향·손장철)는 <들리지 않네>를 불렀다. 조동진은 자신의 목소리로 <작은 배>를 녹음했다. 이 당시 그의 목소리가 녹음된 것으로는 유일한 이 음원은 라는 ‘옴니버스 음반’에 실려 있다.


송창식·조동진 외 〈Golden Folk Album vol.5〉(오리엔트/대도, 1974. 조동진 〈행복한 사람/불꽃(1집)〉(대도, DSAP-79001, 1979). 조동진 〈어느날 갑자기/그(2집)〉(한국음반 HC-200089, 1980. 조동진 〈조동진 1(재녹음)〉(문화레코드, MHKL-0002, 1986). 조동진 〈조동진 2(재녹음)〉(서라벌, VIP-20026, 1986).

한편 그는 강근식(기타), 조원익(베이스), 이호준(키보드), 유영수(드럼), 이영림(퍼커션) 등과 함께 오리엔트 스튜디오의 전속 밴드인 ‘동방의 빛’에서 리듬기타를 맡았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킹 크림슨(King Crimson) 등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했다는 이때의 실험은 <어둠 속에서>(1980) 같은 조동진의 숨겨진 명곡에서 다시 한번 발휘된다(이 당시 동방의 빛의 ‘증거물’로는 송창식의 공연에서 <딩동댕 지난 여름>을 연주한 불완전한 음원이 남아 있다. 물론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수고를 해야 한다). 군대 문제로 인해 조동진이 동방의 빛에서 활동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이때 맺은 인맥은 뒤에 그가 솔로로 활동할 때 든든한 힘이 된다.

1975년 말 대마초 파동으로 오리엔트 프로덕션(‘나현구 사단’)이 풍비박산이 난 뒤 조동진은 더욱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본인의 표현대로 “조국 근대화와 독재타도의 틈바구니에서 슬쩍 비껴나온 나 같은 장발족”이 설 땅은 협소했다. 그처럼 실내에 칩거하면서 내면의 세계를 가꾸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견디기 힘든 시간이 흘러갔다. 후배 이정선의 음반에서 세션으로 기타를 연주해주거나, 강근식이 설립한 CM송 프로덕션 ‘강 프로’에서 CM송을 만들거나 엔지니어를 맡았지만 가장으로서 생계를 해결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라디오 강타한 ‘자연뽕’을 아시나요

결국 “가족 전체가 거리에 나앉을 판이 되었을 때” 그의 정규 데뷔 음반이 발표되었다.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사원이었던 구자영(뒤에 ‘진양 오디오’의 대표)이 제작을 맡고, 강근식과 조원익 등 동방의 빛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녹음한 음반은 1979년 <행복한 사람>을 타이틀곡으로 삼아 소리 소문 없이 발표되었다. 홍보도 없었고 공연도 없었지만 <행복한 사람>은 라디오에서 줄기차게 흘러나오는 히트곡이 되었다. 업계 용어로 ‘자연뽕’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 곡은 김세환의 목소리로 녹음한 적이 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표하지 못했다. 다른 가수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므로 정작 조동진은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우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10년의 내공이 담긴 10개의 곡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정갈하고 완벽한 작품이었다. <나뭇잎 사이로>를 수록한 2집 음반(1980)과 더불어 그의 음반은 1970년의 종언과 1980년대의 시작을 알려주는 듯했다. 실제로 그랬다.

추신- 1월30일부터 2월1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2004 조동진 음악회’라는 소박한 이름의 공연이 열린다. 이 글이 그의 공연을 ‘홍보’하는 내용이 되는 것은 나로서는 그다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신현준 | 대중음악평론가
출처:<한겨레21> 494호 2004/01/29 (h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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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뭉크와 함께


무정유

출처:www.jinbonuri.com



노르웨이 출신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의 대표적인 명화 <절규>와 <마돈나>가 도난 당했다. 지난 22일(8월) 이들 작품이 전시돼 있던 오슬로 뭉크박물관에서다.

당시 상황의 목격자는 절도범들이 작품의 테두리를 떼어내기 위해 작품을 손으로 치고 발로 차는 것을 봤다고 말해서, 이 작품들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우려를 낳고 있다.

어서 빨리 뭉크의 그림들이 박물관으로 돌아와서, 다시 모든 이들의 시선 속으로 그 그로테스크한 신체를 들이밀기를 바란다.

뭉크의 그림들, 특히 누구나 한번쯤은 어디선가 봤을 법한 <절규>는 시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는데, 그 중 이승하 시인의 <화가 뭉크와 함께>라는 시를 소개한다.



畵家 뭉크와 함께

-이승하-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다 달아나고 싶어
도 同化와 도 童話의 세계야
저놈의 소리 저 우 울음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미 미처 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우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1.

이 시는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사랑의 탐구>에 실려 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한다. 반면 뭉크의 <절규>는 1893년 베를린에서 처음 전시됐다. 이승하의 시가 발표된 1984년은 세기말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른 해였으며, 뭉크의 <절규>가 처음 전시된 1993년은 오히려 '벨 에포크(la belle epoque)'의 시기였다. 말하자면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간 대규모 전쟁이 없었고, 파리나 비엔나를 비롯한 유럽 문명은 난숙해져갔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벨 에포크의 화려함과 들뜸 속에서 전쟁과 혁명은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었다. 또한 무르익은 유럽 문명의 어두운 이면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억압된 것으로서의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대륙을 발견함으로써 데카르트 이후의 주체철학, 의식철학을 부셔버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뭉크의 그림 세계를 관통하는 모티브는 '불안'이다. 그것은 또한 까닭 모를 공포이기도 한데, 아무리 외쳐도 그 절규의 소리가 목구멍에 달라붙어 나오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공포다. 즉 뭉크의 <절규>에서 우리는 목소리 없는 절규(혹은 해골의 절규), 목소리를 내보내면서도 다시 안으로 잡아당기는 입 속의 공허, 그 텅 빈 목구멍을 보게 되는 것이다.


2.

뭉크의 목소리 없는 절규는 시공간을 넘어서 머나먼 한반도 남쪽 시인 이승하를 통해 말더듬이의 목소리를 얻었다. 그것은 세기말의 광경에 할 말을 잊어서 더듬거리는 나약한 지식인의 자기 초상이다.

시인에 따르면 세기말의 세계는 동화(同化)와 동화(童話)의 세계다. 서로 동화(同化)되어서 창백하고 비현실적인 동화(童話)처럼 돼버린 도시와 세계.. 그에 대한 시인의 더듬거리는 절규는 이 시가 발표됐던 1980년대보다는 90년대와 2천년대 벽두에 더 어울린다. 이승하는 일종의 예언을 한 셈이고, 그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세기말과 세기초 그 밀레니엄의 전환기에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체제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제공하는 상상과 판타지의 보트를 탄 보트피플이 되어 표류하거나 현실을 떠나고 있다. 이미지와 시뮬라크르의 버추얼 리얼리티 세계가 넘쳐날수록 리얼 리얼리티의 세계는 갈수록 비게 된다.

가령 '나는 나'라며 너도나도 똑같은 부위를 찢어서 입는 청바지.. 동화(同化)의 세계다. 그리고 개성이라며 너도나도 머리에 노랑 빨강 물을 들이는 동화(同化)들, 명품 사재기, 똑같은 신체를 만들어내려는 몸짱 열풍...... 그것은 세기말의 배후에서 자본주의와 체제와 매체의 공모에 의해 벌어지는 '무수한 학살극'이다. 개성이 학살당한 소비자들. 그러한 동화(同化)는 일테면 신데렐라 동화(童話)로 이어지는데, 거기서 어른들은 '애기'가 된다.

"애기야 가자!" 어디로? 이 현실을 떠나 동화 속으로! 티비는 대표적인 상상의 보트이고, 허수아비처럼('양팔을 벌리고') 일방향 주파수의 과녁에 서있는 시청자들은 현실을 떠나 판타지의 세계를 향해 표류하는 보트피플이다.


3.

뭉크의 그림은 벨 에포크의 난숙하고 화려한 장막에 가려진 목소리 없는 절규를 들려준다. 그것은 비슷한 시기에 프로이트가 발견한 '억압돼서 보이지 않는 무의식'과 통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심리적인 것이다.

절규하는 자가 해골 모양이듯, 뭉크의 시선은 또한 그로테스크한 것이다. 그것은 문학비평가 김현이 기형도에 대해서 말한 '그로테스크 리얼리즘'과 통한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은 죽음의 시선으로 리얼리티를 바라보는 것이다. 가령 <절규>와 함께 도난 당한 그림 <마돈나>에 대해서 뭉크는 말한다.

"이 작품에서 죽음의 손길이 삶에 미치고 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서구 문명은 전 세계를 석권했다. '세기말'이라는 게 그저 기독교적인 시간표에 따른 기독교적 표상일 뿐인데도 이승하의 저 시에서 중요한 기호로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또한 대규모 전쟁과 태러는 기본적으로 서구 문명이 그 전 세계적 확산과 제패 과정에서 지구 곳곳에 씨를 뿌려놓은 것이다. 이제 정말 죽음은 도처에 있다. 죽음은, 인간을 넘어 자연의 뿌리까지 건드리고 있다.

이승하는 자문한다.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내가 무얼 어쨌기에......? 그렇다. 우리는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다. 이승하는 이렇게 시를 끝맺는다.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동화(同化)의 나라 그 판타지로 도피하는 보트피플을 부인하면, 정신적 만족감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 보트에 타지 않았다는, 동화하지 않았다는, 그런. 그러나 몽상에 빠진 정신은 때론 고고하게, 고독하게 홀로 존재할 수 있지만, 신체는 결코 홀로 존재하는 법이 없다. 나의 신체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신체와 이어져 있다. '우리'라는 그러한 신체들이 일차적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우리는 사회적 차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의 유물론이다.

동화(同化)하는 사람들을, 그 이미지와 시뮬라크르만이 가득 찬 텅 빈 세계를 부인한다고 그 세계가 달라지는가. 맘에 안 드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부인하고 돌아누울 것이 아니라, 세계가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 양태를 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러한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나 자신을 부정하고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얽히고 설킨 이런 세계에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체계와 한올만큼이라도 이어지지 않은 신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비록 공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두메산골에 은거하지 않는 이상, 아니 두메산골에 은거하더라도.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게 될 때, 결국 나의 신체는 우리의 신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저 시에서, 최소한 저 시에서의 이승하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유물론이다.


내오랜꿈 ----------------------------------------------

뭉크의 <절규>. 워낙에 많이 알려진 작품이기에 위의 설명이 새롭지 않을 만큼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나에겐 이 <절규>보다 더 처절하게 다가온 화가가 있다.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 뭐, 특별하게 그림에 대해 조예가 깊다든가 해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란 책 때문이다. 처음 <감각의 논리>를 접할 땐 워낙에 아는 게 부족했던 때인지라 중간중간 삽입된 베이컨의 그림만 눈에 들어왔었다. 그러면서 애꿎은 번역자 욕만 숱하게 했다. 짜식이 번역을 개판으로 해놓은 게 아니고서야 뭔 말인지 못알아먹을 리가 없지, 하면서. 그후 이런저런 관련서적을 접하면서 <감각의 논리>의 번역은 크게 문제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고, 들뢰즈에 관해 이것저것 읽은 게 쌓이고 난 다음 두번째 읽을 때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책이다.

위 글에 소개된 뭉크의 <절규>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뭉크의 <절규>보다 더 고통스럽고 음산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영화 <배트맨>(아마도 1편일 것이다)에 보면 '조우커'(영화속 이름이 '잭'이었던 거 같은데, 잭 니콜슨이 연기한다) 일당이 박물관인가, 미술관인가를 부수는 장면이 있다. '조우커'의 부하들이 온갖 전시된 그림들을 깨부수고 있는데, 잭이 어떤 그림을 보고선 '그건 놔둬', 뭐 이런 식으로 부하들을 말린다. 그러고선 그 그림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정말 멋있는 그림이야. 그림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뭐 이런 식으로 되뇌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잭'이 찢지 말라는 그림이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다. 내가 <배트맨>을 나름대로 철학을 갖춘 영화라 평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에피소드 때문이다. 아마도 팀버튼이란 '작가'가 가진 철학의 반영일 것이다.

2004/08/31


내오랜꿈 ----------------------------------------------


Venceremos (칠레 인민연합 찬가) - Inti Illimani 노래.


위 음악은 1970년,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선거운동 시기 인민연합의 선거 운동가였던 "Venceremos" (벤세레모스,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나라엔 "노농동맹가"로 번안되어 불려졌다)다. 이 곡은 칠레의 유명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Sergio Ortega 가 작곡했다.

"Venceremos"는 칠레의 민중가수인 빅토르 하라가 피노체트의 쿠데타 군에게 처형되기 전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영화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란 영화를 보면 빅토르 하라의 최후를 묘사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는 KBS <명화극장>인가에서 방영되기도 했는데, 공식적으로는 한국에서 구해볼 수 없는 영화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KBS에서 무슨 생각에 이 영화를 틀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추측컨대,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무식한 국장급' 하나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추론해볼 뿐이다.

어쨌거나 칠레 하면 "Venceremos"가 떠오르고 "Venceremos" 하면 빅토르 하라가 떠오르는데, 지금 나오는 노래는 Inti Illimani 가 부른 노래다. 인띠 이이마니는 께추아어로 "이이마니 산의 태양"이란 뜻이라고 한다. 1966년, 칠레의 대학개혁 운동으로 큰 소요를 겪었던 국립기술대 대학생들이 결성하여 1967년에 공식적으로 출범한 밴드라고 한다.

이들은 안데스 전통악기를 사용하여 현란한 기악연주를 하는 등 "Nueva Cancion(누에바 깐시온)"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칠레 인민연합의 승리 이후 선거운동에 관여한 계기로 많은 정치음악을 녹음하기도 했는데, 빅토르 하라보다는 확실히 민중가요 다운 투쟁적이고 강렬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내가 듣기에 빅토르 하라는 Vladmir Vysotsky 류와 같은, 음유시인에 가까운 계열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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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은 지 16년, 우린 서로의 ‘코끼리’
연극 ‘코끼리와 나’ 주연 오달수·연출가 이해제씨
 
 

  2007/09/13
정상영 기자      김명진 기자
 


» 배우 오달수(39·극단 신기루만화경 대표·사진 오른쪽)씨와 연출가 이해제(36·극단 신기루만화경 상임연출가·사진 왼쪽)씨

사람들이 짧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느낌이 맞는 짝을 찾기란 쉽지 않다. 부부들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남이야. 배우 오달수(39·극단 신기루만화경 대표·사진 오른쪽)씨와 연출가 이해제(36·극단 신기루만화경 상임연출가·사진 왼쪽)씨는 볼 때마다 ‘참 잘 어울리는 한쌍 같다’는 느낌이 든다. 16년 전부터 서로 온전히 열어놓는 믿음이 두 사람을 묶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런 강한 믿음이 멀티미디어 시대에 두 사람이 연극이란 아날로그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일 성싶다.

함께 극단 만들어 7년째 한솥밥
이번엔 조선시대 코끼리 소재로
인간미 회복·상처 치유의 메시지


오-이 콤비가 21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무대에 연극 <코끼리와 나>를 올린다. 이전에도 두 사람은 배우와 작가로 함께 작업했지만 배우와 연출가로 짝을 이룬 것은 <해일> <나체질주자 수사본부> <몽타주 엘리베이터> <바다의 가면>에 이어 5번째다. 지난 4월 서울 동숭아트센터에서 이해제 연출이 올린 연극 <다리퐁 모단걸>에서는 오달수씨가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코끼리와 나>는 <태종실록>에 기록된 조선시대 최초의 코끼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코끼리 사이의 감동적인 휴머니즘을 해학적으로 그린 연극. 태종실록에는 ‘1411년 일본이 조선에 코끼리 한 마리를 바쳐 궁중의 가마, 마필 등을 관장한 관청인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였으나 이듬해에 이우 공조전서(판서)가 추하게 생겼다고 비웃으며 침을 뱉자 성난 이 코끼리가 코로 말아 땅에 쳐 죽이는 사건으로 재판이 열려 코끼리를 섬으로 유배를 보내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해제씨가 연극판 5년 선배 오달수씨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 따라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코끼리 ‘흑산’을 지켜야 하는 주인공 소도둑 ‘쌍달’ 역은 오달수씨의 몫이다.

“이리저리 자료를 뒤지다가 태종실록에 나타난 코끼리 이야기를 보고 이야기가 참 재미있겠다, 재미있는 연극이 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누가 제일 코끼리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 ‘작전’을 짜다가 바로 달수 형이 생각나더라구요. ‘아, 이 인물은 달수 형인데’ 하고요. 그때는 달수 형에게 말씀 드리지 않고 시놉부터 먼저 짜서 제일 먼저 드렸죠.”

연극배우보다는 <음란서생> <친절한 금자씨> <주먹이 운다> <달콤한 인생> <올드보이> <뚝방전설> 등으로 충무로에서 ‘조연 스타’로 입지를 다진 오달수. 대학로에서 연극 <해일> <육분의 륙> <다리퐁 모단걸>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 겸 극작가인 이해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두 사람은 “일단은 작품을 떠나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옆에 있어야 하는 친구” “안 그러면 혼자서 살아가는데 굉장히 곤란할 것 같은 힘이 많이 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배우나 연출가로서 관계는?

오달수씨는 “해제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대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배우들이) 지문들에서 정서를 많이 얻는다는 점이다”고 운을 뗀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 슬픈 일을 겪거나 아름다운 풍경 같은 것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문 안에 배우가 가져야만 될 풍부한 감수성이랄까 이런 것들을 많이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배우로서는 그게 굉장히 좋죠, 따뜻하고.” 그는 “어쨌든 해제 작품에는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해요. <다리퐁 모던걸>에서 목소리로 출연한 것도 그 때문이고”라며 웃는다.

그러자 이해제씨는 “달수 형이 영화에서 코믹한 부분들만 부각되었지만 굉장히 많은 얼굴들을 가지고 있으며 제가 달수 형의 가면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받았다. “배우로서 달수 형은 무대에서 있는 그대로 반응을 합니다. 그때 그때 생생하게 서로 배우들과 주고받는 기가 굉장히 큰 사람이거든요. 상대 배우에게 기를 나눠줘요. 그래서 대부분 배우들이 ‘달수하고 하면 이상하게 편하더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배우는 수많은 가면들이 있어야 되는데, 그 가면들 속에 이번 작품에는 희극적이지만 슬픔을 계속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쌍달이라는 가면이 달수 형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캐스팅 이유도 설명한다. 그래서 대본을 쓰기가 쉬웠다고 덧붙인다. “이번 작품은 제가 달수 형과 너무 많이 붙어있다 보니까 달수 형의 호흡이 은연중에 배여져 있어서 그런지 어렵지 않았어요. 그 호흡을 같이 가고 있으니까 대본을 만들면서도 달수형의 어떤 모습들이 고스란히 그려지니까 쓰기가 쉬웠습니다.”

“배우와 연출가는 어느 정도 팽팽한 긴장관계가 필요하지 않나”고 묻자 오달수씨는 “맞아, 맞아, 그런 것도 있기는 하지”라고 수긍하는데 견주어 이해제씨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고 말한다. “원래부터 성격이 둘 다 야망이 있거나 이렇다 하게 거창하게 살아온 게 아니어서. 항상 연극 이야기하고 예술 이야기하고, 시와 문학 이야기하고 그게 다였지 뭐. 뭐가 되겠다 이런 거는 한번도 달수 형 입에서 들어본 적도 없고 제 입에서 그런 이야기도 나온 적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아요.”

두 사람의 인연은 1991년 이윤택(서울예술단 책임감독)씨의 연희단거리패와 부산 가마골 소극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희단거리패가 가마골 소극장에서 벌인 연극 워크샵에 연극 지망생 이해제씨가 들렀다가 두 사람이 ‘운명처럼 눈이 맞았다’.

이해제씨는 그 워크샵에서 연희단거리패 배우 오달수씨가 배우들의 몸쓰는 기술을 보여주려고 추었던 ‘범부춤’에 눈이 끌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러 저리 방황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 당시 시극이 좀 궁금해서 연극에서 찾을 길이 없을까 워크샵을 보러 갔어요. 그때 달수 형이 범부춤이라고 일반 평민들이 추는 춤을 보여주더라고요. 우연찮게 제가 처음 매력적으로 봤던 게 그 워크샵인데 그 춤이 제일 눈에 띄더라고요.”

» 한 극단을 7년째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오-이 짝이 이번엔 ‘코끼리와 나’로 다섯편째 호흡을 맞췄다. 사진은 이번 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오달수씨의 연습장면.  

그는 “워크샵만 듣고 나오려고 했는데 달수 형이 ‘술 한잔 하러 가자’고 부르더라”며 “첫번째 술자리부터 둘이 죽이 맞아서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붙어다녔다”고 털어놓는다. 오달수씨도 “사람이란 게 딱 보면 필이 꽂히는 사람이 있다”면서 “또 마침 집이 같은 방향이라서 동네 슈퍼에서 정구지찌지미(부추전)에다 소주 한잔 하면서 연극판으로 꼬드겼다”고 밝게 웃는다. 그러자 이해제씨는 “그 날 기억은 잘 안나지만 계단에 앉아서 밤 늦게 달수 형과 연극과 예술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고 겸연쩍어한다. 그 길로 이해제씨는 연희단거리패 7기인 오달수씨의 손에 끌려 12기로 극단에 입문했다.

그후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울로 진출해 연극배우와 극작가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은 2000년 극단 ‘신기루 만화경’을 만들었다. 이해제씨가 불쑥 제안하자 오달수씨도 두말 않고 승낙했다.

“그때 해제가 옥탑방에서 살다가 이사준비를 하면서 갑자기 뜬금없이 ‘형, 이 보증금 가지고 지하에 놀이터 한번 만들어볼까’ 이러더라구요. 오히려 제가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였어요.”(오달수) “그냥 형하고 하면 뭐 될 것 같아서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럴려면 그런 공간이 필요했고, 또 이름(극단) 아닌 이름이 필요했고요. 맨날 술이나 마시면서 작품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작품하면서 작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동기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이해제)

그러면서 두 사람은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었다”며 “지금까지 오다보니까 식구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늘었고 또 아무도 나가지 않고 해서 다 말아먹었다”고 킥킥거렸다.

오달수씨에게 “영화에서 번 돈을 극단에 다 쏟아붙는 게 아니냐”고 묻자 이해제씨는 “거의 극단 친구들한테 술값으로 많이 나간다”고 말한다. 그러자 오달수씨는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영화라는 걸 하기 전에는 똑같이 지출해야 하는 것이 공평한 거지만 지금은 제가 밥값을 계산한다든지 술값을 계산한다든지 그게 가장 공평한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쑥스러워한다.

이해제씨는 “달수 형은 원래 자체가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 같은 게 전혀 없는 사람”이라며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준다. “달수 형이 옥탑방에 살다가 1년 전에 겨우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저녁에 찾아갔더니 저더러 ‘해제야 이런 집에 살아도 되나?’ 하는 거여요. 자기가 나름대로 노동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약간 좋은 환경으로 바꿨다고 그 걸 적응하지 못하더라구요. ‘너무 나한테 분에 넘친다’고요. 그래서 제가 “되었다고” 했는데도 안절부절하지 못했어요.” 오달수씨가 쑥스러운지 허허허 웃는다.

오달수씨에게 연극을 하는 까닭을 묻자 머리를 긁더니 “연극계가 고향이고 집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힘들게 내뱉는다. 그는 “무대 위에 선다는 게 힘든 일이고 완전 오리지널 노동”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신기루 만화경이라는 식구가 있고, 가장 아닌 가장이기 때문에 애비는 항상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가능하면 1년에 한편 이상은 연극무대에 서려고 한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이해제씨도 “형의 말씀대로 극단의 가장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며 “하지만 1년에 한편만 하고 더 하지 말라고 자제를 시키는 편이다”고 귀띔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기분 때문에 연극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배우로서는 제일 중요한 게 관객이죠. 제가 관객를 제대로 설득했을 때라든지, 아니면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관객과 통했을 때라든지, 또 내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제대로 먹혔을 때 제대로 받아들였을 때 그 때가 배우로서는 제일 행복한 거죠.”(오달수)

“저도 객석에 앉아 관객으로서 감동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죠. 관객과 같은 자리에 있으면 같은 느낌이 생겨요. 무대가 흐르고 있고 이야기가 떠가고 있으면 저도 배우의 기분을 같이 느껴요. 또 연출가로서 제가 생각했던 부분들 이상으로 나올 때도 많구요. 그럴 때 ‘와, 저런 것도 있구나, 저런 표현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이해제)

이해제씨는 “생생한 배우들의 힘들을 느낄 때 연출가로서 기쁘다”고 덧붙인다. “결국은 무대가 허구의 공간이지만 배우의 어떤 숨이 살아움직일 때 정말 대단한 감동을 받습니다. ‘연극을 보고 있구나’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이죠. 그냥 ‘어떤 한 세상을 보고 있구나’하는. 마치 그림책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 그것이 연극의 매력입니다.”

작품 고민을 “치통처럼 안고 사는” 두 사람이 <코끼리와 나>라는 독특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던지려는 메시지는 뭘까? 두 사람은 ‘회복’ ‘치유’라는 엇비슷한 개념을 들면서 “코끼리는 아내나 자식, 친구 등 우리와 늘 관계하는 수많은 존재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회복이라는 것, 인간성이라면 인간성, 인간미라면 인간미에 대한 것들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비한 세계로 신비한 동물을 보려고 노력하자’ ‘그런 어떤 따뜻한 마음을 회복하자’ ‘인간미를 회복하자’라는 게 제가 생각한 메시지인 셈이죠.”(오달수)

“치유에 대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어떤 힘들, 그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인공 쌍달은 코끼리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인생에 어떤 무한 동반자로서 같이 살아가야 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교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치유의 어떤 방법을 배웁니다. 또 관객들은 두 주인공의 그런 관계들을 보며 치유되고.”(이해제)

한편 연극 <코끼리와 나>는 몸길이 6미터, 몸무게 6톤 이상 되는 거대한 코끼리가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조소, 퍼핏(Puppet,인형), 바디페인팅 및 여러 가지 무대장치와 소품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숙련된 움직임으로 코끼리를 의인화시키는 연극적인 표현이 흥미롭다.1544-5955.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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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노래
 
..

류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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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희망의 술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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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류금신1집


시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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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지자

그래 가는거야

통일의 강

꽃다지

내 인생의 어느날

황혼

희망의 노래

또 다시 앞으로

지금 나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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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1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힘도 없더만 포기하지 말라는 노래를 듣네요. 아침에 듣기에는 좀 부담스럽지만 뭐 그래도 잘 듣고 있습니다. ^^

내오랜꿈 2007-09-14 13:56   좋아요 0 | URL
지금 아침 시간인데, 학교에서 어떻게 음악을 들을 수 있지? 너만의 독립된 공간이 있나?

바람돌이 2007-09-14 14:32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1교시 수업이 없는데 일하기는 무지하게 싫고 그래서요. 그리고 컴퓨터에 이어폰 꽂으면 되는데요. 난 일할때 교무실 시끄러워서 집중 안될땐 음악 틀어놓고 해요. 뭐 음악이 귀마개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ㅎㅎ

아사히 2007-09-14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진짜 글 많이 쓰시네요. 시간이 많아도 이렇게 다작을...
덕분에 흐린날이지만 점심먹고 커피 마시면서 음악에 잔잔한 글(오버 더 레인보우 편)을 읽는 여유로움을 누립니다.
갑자기 행복합니다. 그려...

내오랜꿈 2007-09-14 14:57   좋아요 0 | URL
쩝,,, 부주의한 독자시군요..-.-

설마, 이걸 하루 이틀에 다 쓸 수 있겠어? 각 글들 말미나 처음에 텍스트를 쓰거나 인용한 날짜가 대부분 적혀 있을텐데... 라니 말대로 이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비트겐슈타인, 한국 분석철학계의 새 화두
강진호 교수(철학과) 『논리-철학 논고』 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제시
 
출처:대학신문 2007년 03월 04일 (일) 02:54:39 윤수진 기자 youn23@snu.ac.kr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1889~1951)은 논리적 엄밀성을 강조하는 20세기 분석철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단 두 권의 철학서로 언어분석철학에 큰 획을 그었다.

최근 십여년간 미국 분석철학계에서는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논고』)를 두고 ‘전통적 해석(Traditional Reading)’과 ‘단호한 해석(Resolute Reading)’ 사이에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의 마지막 부분에서 ‘『논고』의 명제들이 결국은 무의미(unsinning)하다’는 선언을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를 두고 입장이 갈렸다. ‘전통적 해석’은 그 선언을 아예 무시해야 한다고 제안하거나 또는 『논고』의 명제들이 무의미하긴 하지만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 세계, 언어, 논리 등에 대한 그의 이론을 전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미국 철학자 코라 다이아몬드(Cora Diamond)는 이러한 해석을 강하게 비판하며 “『논고』의 명제들은 글자 그대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우리가 이 점을 단호하게 받아들일 때만 ‘철학이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며 ‘철학의 결과는 철학적 명제들이 아니라 명제들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반(反)이론적 철학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논고』의 명제들이 정말 무의미하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왜 이 책을 썼을까? 그녀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의 궁극적 목적은 독자들이 그 명제들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데 있다. 또 이를 통해 그들은 세계와 인간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열망이 실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절대적 지식을 찾으려고 하는, 고귀하지만 충족될 수 없는 열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단호한 해석’이라 부른다. 이 해석의 문제점은 비트겐슈타인이 후기 저작 『철학적 탐구』에서 『논고』가 ‘중대한 오류들’을 범했다고 인정한 데 있다. 단호한 해석이 주장하듯 『논고』의 명제들이 진정 무의미하다면 무엇이 ‘중대한 오류들’이 될 수 있을까.


지난달 22일(목) 한국분석철학회 학술대회에서 강진호 교수(철학과)는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이는 강 교수가 하버드대에서 쓴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로 학술대회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이승종 교수(연세대ㆍ철학과)는 “강 교수의 발표는 비트겐슈타인 철학 해석 논쟁에 불을 당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학신문』은 강진호 교수의 논문 요약본과 이에 대한 박정일 교수의 논평을 함께 싣는 자리를 마련했다.


『논고』에 대한 기존 해석의 오류들
강진호 교수(철학과) 논문 요약
 
출처:대학신문 2007년 03월 04일 (일) 02:56:16 대학신문 snupress@snu.ac.kr
 

나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논고』) 이전 초고들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박사학위 논문의 결론 부분을 발전시킨 본 논문 「『논리-철학 논고』의 ‘중대한 오류들’」은 이 연구를 통해 밝혀낸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독특한 논리 개념을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논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본 논문에서, 전기 비트겐슈타인이 발전시킨 논리 개념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프레게(Frege)나 러셀(Russell)의 논리 개념과 매우 다를 뿐 아니라 오늘날의 이른바 모형-이론적(model-theoretic) 논리 개념과도 매우 다르다고 논변한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논리는 문장과 사태의 논리적 형식들을 다루며, 논리적 형식들은 언어와 세계의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구조를 이룬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논리적 형식들이 언어와 세계의 필연적이고 본질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형식들은 언어를 통해 묘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논리적 형식들로부터 파생된 이른바 ‘논리상항(logical constant)’들은 언어로 표시될 수 없다. 우리 일상 언어에서 논리상항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표현들은 모두 사이비 표현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비 표현들로 ‘그리고’나 ‘또는’과 같은 진리함수적 문장 연결사들, ‘모든’과 ‘어떤’과 같은 양화사들, ‘대상’이나 ‘사태’와 같은 존재론적 범주들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이 표현들이 『논고』에서 자신이 제시한 논리적 표기법에서 모두 제거될 수 있음을 보인다.


논리상항 표현들이 사이비 표현들이므로, 이들 표현들을 사용한 명제들 또한 모두 사이비 명제들이다. 아울러 지면 제약상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개념에 따르면 철학적 용어들 또한 논리상항 표현들과 마찬가지로 사이비 표현들이다. 이제 『논고』의 명제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들이 논리상항 표현들과 철학적 용어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논고』의 명제들은 모두 무의미한 사이비 명제들이다.

『논고』의 궁극적인 핵심은 이 사이비 명제들이 아니라, 이 명제들에 나타난 논리상항 표현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논고』의 논리적 표기법이다. 철학적 용어들과 관련해서는 비록 이 표기법이 이들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이들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점은 보여준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은 이론을 제시하는 학문이 아니라 『논고』식의 논리적 표기법을 사용하여 철학적 명제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이 명제들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활동이다.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논고』가 이런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이제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탐구』에서 말하고 있는 『논고』의 “중대한 오류들”이란 무엇인가? 나는 본 논문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논고』의 “중대한 오류들”의 핵심이, 『논고』 명제들이 무의미하다는 바로 그 아이디어라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논고』 명제들을 무의미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논고』 명제들이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정적인 답변은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논고』의 진술들이 구체적인 맥락 하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달려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이제 의미에 대한 총체적 맥락주의(global contextualism)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학적 용어들과 명제들을 포함한 어떠한 언어적 표현들도 어떤 맥락 하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맥락에서 무의미한 그런 언어적 표현은 없다.

(이렇듯-인용자) 의미에 대한 총체적 맥락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상항 표현들이 절대적으로 무의미한 사이비 표현이며 따라서 이 표현들을 논리적 표기법에서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철학적 문제들이 언어의 오용에 의한 환상임을 보여주려고 했던 전기 시절의 견해를 버리게 된다.


이러한 나의 해석이 옳다면, 『논고』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단호한 해석’은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전통적 해석은 『논고』의 명제들이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으로 무의미한 명제들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단호한 해석’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의미의 맥락 의존성에 대한 성찰로 인해 전기 시절의 자신의 무의미 개념을 수정했다는 점을, 따라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논고』의 명제들이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 논문에서 나의 이러한 『논고』 해석이 전통적 해석과 ‘단호한 해석’의 단점들을 모두 제거하고 장점들을 모두 살리고 있음을 논변하고 있다. 아울러 나의 『논고』 해석이 또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논변하고 있다.



논평-박정일 교수(숙명여대 의사소통센터)
엉성한 그물로는 대작 잡을 수 없어
 
출처:대학신문 2007년 03월 04일 (일) 02:58:01 대학신문 snupress@snu.ac.kr
 

강진호 교수는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조명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려고 한다. 그는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한 표기법에서는 논리상항, 논리 법칙, 대상, 참과 거짓, 함수, 철학적 용어 등이 모두 제거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사이비 표현’이고 그리하여 『논리-철학 논고』(『논고』)에서 논리나 철학의 본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진술들은 ‘진정으로 무의미한 진술들’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강 교수는 단호한 해석을 따르고 있다.

반면에 그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논고』의 명제들이 무의미한가 하는 물음은 잘못 제기된 것이고, 맥락 또는 언어놀이에 따라 달리 대답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전통적 해석을 수용한다. 그렇게 해서 양자의 진정한 종합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논고』 마지막 부분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의미’ 개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뜻이 있는(sinnvoll)’, ‘뜻을 결여하는(sinnlos)’, ‘무의미한(unsinnig)’을 구분하였다. 뜻이 있는 명제는 자연과학의 명제이고, 뜻을 결여하는 명제는 동어반복과 모순이며, 무의미한 명제에는 예컨대 윤리학과 미학의 명제가 있다. 따라서 마지막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의미’와 관련하여 『논고』라는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의미(Bedeutung), 뜻(Sinn), 기호, 상징, 함수, 조작(연산), 명제, 요소명제, 사실, 사태, 그림이론, 진리함수이론 등에 대한 치밀하고 분명한 논의가 제기되고, 그 다음에 ‘뜻이 없는’과 ‘무의미한’에 대한 논의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는 정작 필요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고 다른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요컨대 그는 ‘무의미한’을 두 가지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한 표기법에서 제거 가능한’것이 무의미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논고』에서 필연적으로 참인 것으로 의도된 것’이 무의미한 것이라는 명시적인 (하지만 괴상한) 제안이다.


논평자가 보기에 강 교수의 이러한 두 가지 파악방식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떤 충분한 근거도 없고 오히려 중대한 오류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한 표기법에서 ‘참’과 ‘거짓’이 제거될 수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오류이고, ‘논리의 적용’을 언급할 때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왜곡하고 있다. 또한 강 교수는 자신의 해석이 전통적 해석과 단호한 해석 양자를 진정으로 종합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전통적 해석을 다룰 때면 명백하게 논점을 일탈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논평자는 강 교수의 주장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논평자가 보기에는 이 논문에서 새롭게 주장된 것들은 대부분 근거가 취약하거나 ‘중대한 오류들’을 범하는 것이며, 오류를 범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대부분 한국분석철학계에서 이미 논의가 된 것으로서 새로울 것이 거의 없다.

『논고』의 ‘무의미’를 ‘논리적으로 일목요연한 표기법에서의 제거가능성’으로서 규정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고, ‘무의미’를 ‘필연적으로 참인 것’으로 파악하자는 제안은 억측에 불과하다. 『논고』의 ‘중대한 오류’가 ‘논고의 명제들이 결국은 무의미(unsinning)하다’는 언명이라는 지적은 『논고』라는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무의미’의 개념이 규정되지 않는 한, 피상적이고 지엽적이다.



『논고』 해석의 근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박정일 교수의 논평에 답한다
1699호 『대학신문』에 실린 『논리-철학 논고』 해석 논란에 이어
출처:2007년 03월 10일 (토) 23:12:12 대학신문 snupress@snu.ac.kr

나의 분석철학회 학술대회 발표 논문 「『논리-철학 논고』의 ‘중대한 오류들’」에 대해 『대학신문』에 실린 박정일 교수의 논평을 읽어보았다. 박 교수가 자신의 짧은 논평에서  아무런 이유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엉성한’, ‘괴상한’, ‘왜곡’, ‘억측’, ‘명백한 오류’, ‘피상적’ 등과 같은 단어들을 남발하고 있어 유감이다. 이 글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겠다.

『논고』 명제들이 무의미하다고 선언하는『논고』 6.54의 당혹스러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논고』 해석의 근본 문제다. 첫째,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논고』의 모든 명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둘째,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논리의 본성과 철학의 본성에 대한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견해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셋째,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차이점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내 논문에서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상항’ 개념과 ‘논리적 표기법’ 개념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이를 근거로 『논고』 해석의 근본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말대로 『논고』는 진정으로 무의미한 명제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총체적 맥락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논고』 명제들의 무의미성에 대한 질문은 그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논고』 해석의 근본 문제에 대해 박 교수는 과연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대학신문』에 실린 박 교수의 논평만 보아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저 『논고』라는 텍스트를 ‘치밀하고’ ‘정확하게’ 해석해야만 올바른 답이 나올 것이라는 하나 마나 한 주장만 하고 있을 뿐이다. 박 교수는 『논고』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공감하고 있는데, 『논고』 해석의 근본 문제에 대해 ‘전통적 해석’에서는 지금까지 크게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1) 『논고』 명제가 무의미하다는 6.54의 비트겐슈타인의 선언이 명백한 모순을 야기하므로, 이 선언은 무시되어야 한다.
(2) 『논고』 명제들은 6.54의 선언대로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한다.

그러나 (1)과 (2) 어느 쪽도 『논고』 해석의 근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먼저 (1)을 주장한다는 것은, 6.54를 무시하지 않으면 『논고』 텍스트에 명백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누구나 뻔히 알 수 있는 이런 초보적인 모순이 『논고』에 존재하다는 제안은 학술적으로 가치가 없다. 다음으로 (2)를 주장한다는 것은, 『논고』의 무의미한 명제들이 그 무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도대체 무의미한 명제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며, 설령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다면 도대체 무의미한 명제들과 일반 명제들 간에는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더구나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무의미한 명제들이 또한 ‘말해질 수 없는’ 명제들이라고 하고 있으며, 『논고』 7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는 또 하나의 유명한 선언을 하는데, (2)의 제안이 함축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명제들이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구체적으로 어떤 식이 될지 나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해질 수’ 있다면 이것이 도대체 『논고』 7의 선언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대학신문』에 게재된 논평에는 빠졌지만 학술대회에서 읽은 논평에서 “『논고』 명제들이 『논고』 고유의 의미에서 무의미하긴 하지만 일상적 의미에서 무의미한 명제들은 아니다”라는 요지의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박 교수의 제안대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무의미’가 단지 ‘『논고』 고유의 의미에서 무의미’인 것에 불과하다면,  “『논고』 명제들이 무의미하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선언은 철학적으로 놀랍고 중요한 선언이기는커녕 일종의 사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용어의 의미를 바꿔 써버리면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령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지구는 수많은 위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겉보기에 놀랍고 중요한 천문학적 주장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사람은 사실 ‘위성’이라는 용어를 인공위성들까지 가리키는 ‘자기 고유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의 주장에서 놀랍거나 중요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놀랍고 중요하기는커녕, 그의 주장은 일종의 사기가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나의 『논고』 해석과 관련하여 『대학신문』에 실린 박 교수의 논평에서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냥 나열만 해놓은 이른바 ‘문제점’들, 가령 『논고』에서 필연적 참으로 의도된 명제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나의 제안이 억측이라거나, 나의 주장과 달리 ‘참’과 ‘거짓’은 『논고』의 논리적 표기법에서 결코 제거될 수 없다거나, 내가 ‘논리의 적용’을 언급할 때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왜곡하고 있다거나, 전통적 해석을 다룰 때 내가 논점을 일탈하고 있다거나 등등은, 이미 학술대회에서 배포한 나의 답변문을 통해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다. 만약 이 문제들에 대해 아직도 논의할 게 남았다고 믿는다면, 『대학신문』이나 더욱 바람직하게는 철학 관련 학술지들을 통해 왜 그러한지 제대로 이유를 들어 문제를 제기해주기 바란다.

강진호 교수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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