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오달수(39·극단 신기루만화경 대표·사진 오른쪽)씨와 연출가 이해제(36·극단 신기루만화경 상임연출가·사진 왼쪽)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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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짧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느낌이 맞는 짝을 찾기란 쉽지 않다. 부부들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남이야. 배우 오달수(39·극단 신기루만화경 대표·사진 오른쪽)씨와 연출가 이해제(36·극단 신기루만화경 상임연출가·사진 왼쪽)씨는 볼 때마다 ‘참 잘 어울리는 한쌍 같다’는 느낌이 든다. 16년 전부터 서로 온전히 열어놓는 믿음이 두 사람을 묶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런 강한 믿음이 멀티미디어 시대에 두 사람이 연극이란 아날로그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일 성싶다.
함께 극단 만들어 7년째 한솥밥
이번엔 조선시대 코끼리 소재로
인간미 회복·상처 치유의 메시지
오-이 콤비가 21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무대에 연극 <코끼리와 나>를 올린다. 이전에도 두 사람은 배우와 작가로 함께 작업했지만 배우와 연출가로 짝을 이룬 것은 <해일> <나체질주자 수사본부> <몽타주 엘리베이터> <바다의 가면>에 이어 5번째다. 지난 4월 서울 동숭아트센터에서 이해제 연출이 올린 연극 <다리퐁 모단걸>에서는 오달수씨가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코끼리와 나>는 <태종실록>에 기록된 조선시대 최초의 코끼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코끼리 사이의 감동적인 휴머니즘을 해학적으로 그린 연극. 태종실록에는 ‘1411년 일본이 조선에 코끼리 한 마리를 바쳐 궁중의 가마, 마필 등을 관장한 관청인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였으나 이듬해에 이우 공조전서(판서)가 추하게 생겼다고 비웃으며 침을 뱉자 성난 이 코끼리가 코로 말아 땅에 쳐 죽이는 사건으로 재판이 열려 코끼리를 섬으로 유배를 보내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해제씨가 연극판 5년 선배 오달수씨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 따라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코끼리 ‘흑산’을 지켜야 하는 주인공 소도둑 ‘쌍달’ 역은 오달수씨의 몫이다.
“이리저리 자료를 뒤지다가 태종실록에 나타난 코끼리 이야기를 보고 이야기가 참 재미있겠다, 재미있는 연극이 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누가 제일 코끼리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 ‘작전’을 짜다가 바로 달수 형이 생각나더라구요. ‘아, 이 인물은 달수 형인데’ 하고요. 그때는 달수 형에게 말씀 드리지 않고 시놉부터 먼저 짜서 제일 먼저 드렸죠.”
연극배우보다는 <음란서생> <친절한 금자씨> <주먹이 운다> <달콤한 인생> <올드보이> <뚝방전설> 등으로 충무로에서 ‘조연 스타’로 입지를 다진 오달수. 대학로에서 연극 <해일> <육분의 륙> <다리퐁 모단걸>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 겸 극작가인 이해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두 사람은 “일단은 작품을 떠나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옆에 있어야 하는 친구” “안 그러면 혼자서 살아가는데 굉장히 곤란할 것 같은 힘이 많이 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배우나 연출가로서 관계는?
오달수씨는 “해제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대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배우들이) 지문들에서 정서를 많이 얻는다는 점이다”고 운을 뗀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 슬픈 일을 겪거나 아름다운 풍경 같은 것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문 안에 배우가 가져야만 될 풍부한 감수성이랄까 이런 것들을 많이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배우로서는 그게 굉장히 좋죠, 따뜻하고.” 그는 “어쨌든 해제 작품에는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해요. <다리퐁 모던걸>에서 목소리로 출연한 것도 그 때문이고”라며 웃는다.
그러자 이해제씨는 “달수 형이 영화에서 코믹한 부분들만 부각되었지만 굉장히 많은 얼굴들을 가지고 있으며 제가 달수 형의 가면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받았다. “배우로서 달수 형은 무대에서 있는 그대로 반응을 합니다. 그때 그때 생생하게 서로 배우들과 주고받는 기가 굉장히 큰 사람이거든요. 상대 배우에게 기를 나눠줘요. 그래서 대부분 배우들이 ‘달수하고 하면 이상하게 편하더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배우는 수많은 가면들이 있어야 되는데, 그 가면들 속에 이번 작품에는 희극적이지만 슬픔을 계속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쌍달이라는 가면이 달수 형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캐스팅 이유도 설명한다. 그래서 대본을 쓰기가 쉬웠다고 덧붙인다. “이번 작품은 제가 달수 형과 너무 많이 붙어있다 보니까 달수 형의 호흡이 은연중에 배여져 있어서 그런지 어렵지 않았어요. 그 호흡을 같이 가고 있으니까 대본을 만들면서도 달수형의 어떤 모습들이 고스란히 그려지니까 쓰기가 쉬웠습니다.”
“배우와 연출가는 어느 정도 팽팽한 긴장관계가 필요하지 않나”고 묻자 오달수씨는 “맞아, 맞아, 그런 것도 있기는 하지”라고 수긍하는데 견주어 이해제씨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고 말한다. “원래부터 성격이 둘 다 야망이 있거나 이렇다 하게 거창하게 살아온 게 아니어서. 항상 연극 이야기하고 예술 이야기하고, 시와 문학 이야기하고 그게 다였지 뭐. 뭐가 되겠다 이런 거는 한번도 달수 형 입에서 들어본 적도 없고 제 입에서 그런 이야기도 나온 적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아요.”
두 사람의 인연은 1991년 이윤택(서울예술단 책임감독)씨의 연희단거리패와 부산 가마골 소극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희단거리패가 가마골 소극장에서 벌인 연극 워크샵에 연극 지망생 이해제씨가 들렀다가 두 사람이 ‘운명처럼 눈이 맞았다’.
이해제씨는 그 워크샵에서 연희단거리패 배우 오달수씨가 배우들의 몸쓰는 기술을 보여주려고 추었던 ‘범부춤’에 눈이 끌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러 저리 방황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 당시 시극이 좀 궁금해서 연극에서 찾을 길이 없을까 워크샵을 보러 갔어요. 그때 달수 형이 범부춤이라고 일반 평민들이 추는 춤을 보여주더라고요. 우연찮게 제가 처음 매력적으로 봤던 게 그 워크샵인데 그 춤이 제일 눈에 띄더라고요.”
» 한 극단을 7년째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오-이 짝이 이번엔 ‘코끼리와 나’로 다섯편째 호흡을 맞췄다. 사진은 이번 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오달수씨의 연습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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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워크샵만 듣고 나오려고 했는데 달수 형이 ‘술 한잔 하러 가자’고 부르더라”며 “첫번째 술자리부터 둘이 죽이 맞아서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붙어다녔다”고 털어놓는다. 오달수씨도 “사람이란 게 딱 보면 필이 꽂히는 사람이 있다”면서 “또 마침 집이 같은 방향이라서 동네 슈퍼에서 정구지찌지미(부추전)에다 소주 한잔 하면서 연극판으로 꼬드겼다”고 밝게 웃는다. 그러자 이해제씨는 “그 날 기억은 잘 안나지만 계단에 앉아서 밤 늦게 달수 형과 연극과 예술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고 겸연쩍어한다. 그 길로 이해제씨는 연희단거리패 7기인 오달수씨의 손에 끌려 12기로 극단에 입문했다.
그후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울로 진출해 연극배우와 극작가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은 2000년 극단 ‘신기루 만화경’을 만들었다. 이해제씨가 불쑥 제안하자 오달수씨도 두말 않고 승낙했다.
“그때 해제가 옥탑방에서 살다가 이사준비를 하면서 갑자기 뜬금없이 ‘형, 이 보증금 가지고 지하에 놀이터 한번 만들어볼까’ 이러더라구요. 오히려 제가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였어요.”(오달수) “그냥 형하고 하면 뭐 될 것 같아서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럴려면 그런 공간이 필요했고, 또 이름(극단) 아닌 이름이 필요했고요. 맨날 술이나 마시면서 작품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작품하면서 작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동기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이해제)
그러면서 두 사람은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었다”며 “지금까지 오다보니까 식구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늘었고 또 아무도 나가지 않고 해서 다 말아먹었다”고 킥킥거렸다.
오달수씨에게 “영화에서 번 돈을 극단에 다 쏟아붙는 게 아니냐”고 묻자 이해제씨는 “거의 극단 친구들한테 술값으로 많이 나간다”고 말한다. 그러자 오달수씨는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영화라는 걸 하기 전에는 똑같이 지출해야 하는 것이 공평한 거지만 지금은 제가 밥값을 계산한다든지 술값을 계산한다든지 그게 가장 공평한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쑥스러워한다.
이해제씨는 “달수 형은 원래 자체가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 같은 게 전혀 없는 사람”이라며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준다. “달수 형이 옥탑방에 살다가 1년 전에 겨우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저녁에 찾아갔더니 저더러 ‘해제야 이런 집에 살아도 되나?’ 하는 거여요. 자기가 나름대로 노동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약간 좋은 환경으로 바꿨다고 그 걸 적응하지 못하더라구요. ‘너무 나한테 분에 넘친다’고요. 그래서 제가 “되었다고” 했는데도 안절부절하지 못했어요.” 오달수씨가 쑥스러운지 허허허 웃는다.
오달수씨에게 연극을 하는 까닭을 묻자 머리를 긁더니 “연극계가 고향이고 집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힘들게 내뱉는다. 그는 “무대 위에 선다는 게 힘든 일이고 완전 오리지널 노동”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신기루 만화경이라는 식구가 있고, 가장 아닌 가장이기 때문에 애비는 항상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가능하면 1년에 한편 이상은 연극무대에 서려고 한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이해제씨도 “형의 말씀대로 극단의 가장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며 “하지만 1년에 한편만 하고 더 하지 말라고 자제를 시키는 편이다”고 귀띔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기분 때문에 연극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배우로서는 제일 중요한 게 관객이죠. 제가 관객를 제대로 설득했을 때라든지, 아니면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관객과 통했을 때라든지, 또 내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제대로 먹혔을 때 제대로 받아들였을 때 그 때가 배우로서는 제일 행복한 거죠.”(오달수)
“저도 객석에 앉아 관객으로서 감동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죠. 관객과 같은 자리에 있으면 같은 느낌이 생겨요. 무대가 흐르고 있고 이야기가 떠가고 있으면 저도 배우의 기분을 같이 느껴요. 또 연출가로서 제가 생각했던 부분들 이상으로 나올 때도 많구요. 그럴 때 ‘와, 저런 것도 있구나, 저런 표현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이해제)
이해제씨는 “생생한 배우들의 힘들을 느낄 때 연출가로서 기쁘다”고 덧붙인다. “결국은 무대가 허구의 공간이지만 배우의 어떤 숨이 살아움직일 때 정말 대단한 감동을 받습니다. ‘연극을 보고 있구나’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이죠. 그냥 ‘어떤 한 세상을 보고 있구나’하는. 마치 그림책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 그것이 연극의 매력입니다.”
작품 고민을 “치통처럼 안고 사는” 두 사람이 <코끼리와 나>라는 독특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던지려는 메시지는 뭘까? 두 사람은 ‘회복’ ‘치유’라는 엇비슷한 개념을 들면서 “코끼리는 아내나 자식, 친구 등 우리와 늘 관계하는 수많은 존재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회복이라는 것, 인간성이라면 인간성, 인간미라면 인간미에 대한 것들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비한 세계로 신비한 동물을 보려고 노력하자’ ‘그런 어떤 따뜻한 마음을 회복하자’ ‘인간미를 회복하자’라는 게 제가 생각한 메시지인 셈이죠.”(오달수)
“치유에 대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어떤 힘들, 그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인공 쌍달은 코끼리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인생에 어떤 무한 동반자로서 같이 살아가야 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교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치유의 어떤 방법을 배웁니다. 또 관객들은 두 주인공의 그런 관계들을 보며 치유되고.”(이해제)
한편 연극 <코끼리와 나>는 몸길이 6미터, 몸무게 6톤 이상 되는 거대한 코끼리가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조소, 퍼핏(Puppet,인형), 바디페인팅 및 여러 가지 무대장치와 소품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숙련된 움직임으로 코끼리를 의인화시키는 연극적인 표현이 흥미롭다.1544-5955.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