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떠난 자리, 영화가 ‘와글’
4가지 열쇳말로 미리 보는 ‘부산국제영화제’
 
 
   2007/09/18

김소민 기자

 

 

» 여름 떠난 자리, 영화가 ‘와글’

 

274편-상영작 30편 늘려 내달 4~12일

10월4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의 개봉작 편수다. 지난해보다 30편 늘었다.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것만 66편이다.

이 화려한 행렬의 선봉에는 개막작 <집결호>(감독 펑샤오강)가 섰다. 중국의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다. 1948년 겨울, 중국 인민해방군 9연대 구이찌디 중대장과 46명은 퇴각 호령이 떨어질 때까지 진지를 지키라는 임무를 받는다. 대장정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서>(감독 안노 히데아키·마사유키)가 마무리한다. 1997년 모호한 결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췄던 인기 애니메이션이 10년 만에 다시 극장에 돌아온 것이다. 국제연합군과 사도의 전투에 휩쓸린 14살 소년 신지가 인형병기 에반게리온의 조정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리젠테이션’, 무서운 신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플래시 포워드’ 섹션이 새로 들어섰다. 지난해 6월 숨진 대만의 거장 에드워드 특별전은 그의 전작 8편을 모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 개막작<집결호> 발리우드 수작<치니쿰> 이영재 감독의<여름이 준 선물>

 

2분46초-까딱하단 매진…포털로 예매 확대

지난해 개막작 <가을로>가 매진되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러니 18일 오후 6시(개·폐막작), 20일 오전 9시30분(일반 상영작), 예매 개시 시각을 기억해야 한다.

그나마 올해는 예매가 좀 더 간편해 질 듯하다. 지난해까지 영화제 홈페이지(www.piff.org)에서 사이버머니를 사고 예매해야 했지만 올해는 영화제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도 신용카드, 휴대폰 등으로 바로 결제할 수 있다. 좌석도 직접 고른다. 부산은행 모든 지점과 편의점 지에스25 매장에 있는 현금자동인출기에서도 24시간 예매가 가능하게 됐다. 50살 이상(생일이 58년 1월1일 이전)용으로 개·폐막작 표 각각 300매씩을 18일 오후 6시 부산시청 대강당 앞 로비에서 따로 판다. 예매에 실패해도 좌절은 금지다. 지난해에 현장 판매 표는 전체의 10%였지만 올해는 30%로 늘었다. 그래도 긴 줄은 감내해야 할듯하다.

3곳 - 영화만큼 푸짐한 놀거리·먹거리

고르고 고른 3곳 부산까지 와서 영화만 보고 갈 수 있나. 강정룡 홍보팀장은 “해운대 맛집 가보고 요트가 둥실 떠있는 야외 상영장에서 영화 보는 재미, 남포동 자갈치 시장에서 회 떠먹고 소주 한잔 걸친 뒤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태종대에 일출 보러 가는 재미도 빼놓을 수없다”고 말했다. 6일 밤 10시에 해운대 요트경기장 안에서는 윤상, 클래지콰이 등이 나오는 ‘시네마틱 러브’ 콘서트도 벌어진다. 놀다 지치면 5~14일까지 영화 리뷰 3편을 영화제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다. 그 가운데 뽑아 내년 영화제에 정식으로 초청한다. 잠도 못자는 홍보팀을 닦달해 얻은 맛집 3곳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할매복국: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추천하는 곳. 시원한 복국과 아귀찜이 특기. 달맞이 고개 입구(051-742-2790) △하얀집: 오징어를 실처럼 가늘게 채 썰어 내는 횟집. 달맞이 고개 가는 길 미포육거리 지에스칼텍스 주유소 앞(051-742-7590) △소문난 암소갈비: 고풍스런 한옥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갈빗집. 해운대구 중1동 1225-1(051-746-0003)

 

» 폐막작 <에반게리온의 신극장판:서>

 

프로그래머의 선택 6편

볼 게 너무 많아 되레 골칫거리다. 요즘 밤·낮 없이 격무에 시달리는 프로그래머들을 닦달해 추천작을 받았다.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의 선택 <주머니 속의 꽃>(감독 셍 탓 리우)은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와 두 아들 사이 교감이 커져가는 과정을 그렸다. 최근 말레이시아 독립영화 쪽에는 새로운 기운이 피어나고 있다. 그 힘을 모은 대표적인 영화다. 부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 사회의 갈등과 소통을 엮어 넣었다. <치니 쿰>(감독 발키)은 발리우드 영화의 특징인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탄탄하다. 특히 슈퍼스타라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되는 인도의 메가슈퍼스타 아미타브 바흐찬이 주연을 맡았다. 60살이 넘은 남자가 36살 여자를 만나 결혼하려는데 자신보다 4살 어린 장인이 반대하고 나선다. 장인을 설득하는 과정이 웃기고 재미있다.

이상용 프로그래머의 선택 <여름이 준 선물>은 <내 마음의 풍금>을 만든 이영재 감독의 두번째 장편이다.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 3명이 오늘 내일 저세상으로 갈 거라는 소문이 파다한 할아버지와 묘한 우정을 쌓아간다. 전작과 비슷하게 순수한 동심이 또렷하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엠(M)>은 이명세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 <형사> 이상의 시각적 쾌감을 준다. 빛과 어둠이 선명하게 교차한다. 배우 강동원이 소설가 한민우로 나온다. 첫 사랑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인데 영화 전체가 한민우의 꿈인 것도 같고 소설 쓰기 작업 과정인 거 같기도 하다. 여러 결로 읽을 수 있는, 상업성과 실험정신을 동시에 거머쥐는 영화다.

 

» 이명세 감독의 <엠>

전양준 프로그래머의 선택 <4개월 3주…그리고 2일>은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감독 크리스티안 문주는 루마니아 영화의 새 기수다. 공산주의 정권이 쇠퇴하던 시기 낙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낙태가 금지돼 불법 시술을 받아야 하는 한 여자와 그를 돕는 친구의 이야기다.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노란 집>(아모르 하카르)은 알제리 감독이 만든 영화다. 군대에서 숨진 아들의 주검을 수습하려고 산 넘고 물 건너 험한 길 나선 남자가 주인공인데 감독 자신이 연기했다. 아프리카 영화에는 독특한 진솔함과 간결함이 있는데 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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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부터 3회까지는 주말을 이용해 최소한 2,3일씩은 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에서 살았던 거 같다. 당시엔 인터넷 예매가 없었던 시절이라 부산은행 창구가 유일한 예매 창구였다. 그런데 서울에서 어인 부산은행?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서울 시내에 부산은행이 3군데 있었다. 그나마 내가 있던 여의도와 가까운 영등포에 하나가 있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

그렇게 예매하고 내려가서는 하루에 4편씩 보고 저녁에는 술 마시고, 다음날 또 그렇게 강행군 하고. 그리고 일요일 밤 1시차로 서울로 올라오는 일정. 지금 그렇게 하라면 할 수 있을까? 어쨌던 올해는 10월 첫째주에 부산을 갈 작정을 하고 있다.

오늘 <씨네21>이 도착했다. 기다리던 부산국제영화제 팸플릿이 들어 있다. 자, 이제 고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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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가보나...
저의 오랜 로망입니다만

같이 갈 사람이 생겨야 간다는 저의 주의땜시... ㅎㅎㅎ

내오랜꿈 2007-09-18 22:51   좋아요 0 | URL
'핑계'가 차~ㅁ '거시기' 하시네요...^^
 


국내의 한 미술품 경매장에서 앤디 워홀의 '자화상'이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27억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다. 다른 이도 아닌 앤디 워홀이기에 눈이 가는 기사였다.

현대 미술에 있어 앤디 워홀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스타니스제프스키는 그의 책
(국역:<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현실문화연구)에서 앤디 워홀을 일컬어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앨비스의 부츠, 먼로의 입술 등.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이른바 '팝아트' 라는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것.

알다시피 워홀은 매릴린 먼로라든가 앨비스 프레슬리, 앨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슈퍼스타의 이미지를 미술의 소재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코카콜라병, 통조림통 같은 현대 사회의 대량생산품을 미술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실크스크린 기법을 미술에 본격적으로 활용해 작품생산을 '공장화'하려 시도했고, '작가'의 개성을 배제하고 동시대의 삶과 이미지를 아무런 논평 없이 묘사했다. 어떻게 보면, '고상하고 우아한 예술의 영역'에 위치하던 미술을 복제와 모방이 가능한 공장의 일개 생산품으로 전락시키는 '불경한' 행위이기도 했다. 이른바 고급문화, 귀족문화의 대중문화화!

그러나 시대가 변한 걸까? 앤디 워홀을 재해석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던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재해석은 온 데 간 데 없고 돈벌이로 전락하는 그의 작품들만 남은 것 같아 보인다. 현대사회를 반추하는 거울로 비춰졌던 그의 작품들이 이제는 그가 미술작업의 수단으로 이용했던 자본의 보복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대정신인 '팝아트'는 실종되고 '키치'만 남았다.

그래서 다음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돈다발 채운 매트리스에서 잠자며 미술혁명을 꿈꿨던 워홀의 속내를 음미하기란 쉽지 않다."


‘돈다발’을 보려는가, ‘미술혁명’을 보려는가

앤디 워홀 열풍 왜?

 

 

» 앤디 워홀의 66~67년작 <자화상>(오른쪽 도판)과 대표작 중 하나인 81년작 <달러 사인>. 리움에 전시중인 이 작품들은 아크릴 물감으로 붓질한 화폭과 실크스크린 판화가 결합되어 원본적 가치(오리지널리티)가 도드라져 보인다. 워홀 팝아트의 전형적 특징인 대량 복제성과 기묘한 모순을 보여준다.


20년 전 숨진 미국 거장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난데없이 국내 전시장을 바람처럼 휘감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로 흉흉하던 지난 31일 오후. 협상장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 아래의 삼성미술관 리움 직원들은 다른 이유로 내내 비상 근무를 했다. 구내 기획전시실(아동교육문화센터)에 차려진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의 회고전 ‘앤디 워홀 팩토리’(6월10일까지·(02)2014-6901)에 2004년 개관 이래 최대 관객이 몰렸기 때문이다. 워홀의 고향인 미국 피츠버그 앤디 워홀 미술관의 소장품 200여점이 나온 전시를 보러 이 날 입장객만 4000명을 넘겼다. 그의 대작 자화상과 유명한 마오쩌뚱, 마릴린 먼로 실크스크린 판화, 수소가스 넣은 은색 풍선 방 등 곳곳이 작품보고 사진찍는 이들로 바글바글하다. 3월부터 예약제를 폐지한 탓도 있지만, 평일도 1000명 이상 찾는다. 주관객도 20대 중심의 일반인들이 훨씬 많다. 현장 관리자는 “그 전엔 많아도 주말 1000명 미만이었다”며 “10만명 이상 돌파는 무난할 것 같다”고 전했다.

7곳이나 이례적 잇단전시·리움 개관 이래 최대 관객
시류맞는 다시읽기 평가 속 ‘블루칩’ 돈벌이 인식 우려


워홀의 전시는 지난해 9월 서울 크리스티 한국사무소에서 대표작 판화 ‘오렌지 마릴린’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10~1월 서울 인사동 쌈지길의 ‘깨어나라 워홀’전, 12~1월 서울대 미술관의 ‘앤디워홀 그래픽’전, 지난달 3~18일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갤러리 H의 워홀전이 잇따랐다. 지금도 가장 큰 리움의 기획전 외에 서울 신사동 에스파스솔의 워홀 판화전(15일까지)과 대구 리안 갤러리의 워홀전(5월6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무려 7개 전시장이 한 작가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부터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과는 별 인연이 없었던 워홀(숨질 당시 병원 담당 간호사가 한국계였다고 한다)을 국내 전시장들이 이토록 뜨겁게 기억하려 애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술판에서는 첫째 이유로 소비문화를 본질 삼았던 워홀 팝아트가 지금 시류에 다시 읽기에 딱 맞는다는 점을 꼽는다. 리움의 이준 부관장은 “전시가 겹치는 건 정말 우연의 일치”라면서 “최근 일상 대중문화를 전면적인 소재로 쓰는 네오팝 포스트팝이 유행한다는 측면에서 20주기를 맞은 워홀 팝아트가 기획자들의 취향과 공통적으로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작품 자체가 20년 전의 것인데도 요즘 뜨는 미술시장의 유사 팝 트렌드에 딱 맞다는 역설이다. 살아서도 철저히 돈을 밝히고 가식적인 기행에 탐닉했던 그의 사업가적인 태도는 새로운 아방가르드의 신화로 바뀌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지금 미술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우량주다. 전세계 경매사 가격동향을 조사 분석하는 아트프라이스 닷컴의 공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워홀은 세계 경매시장에서 피카소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1억9천여만 달러의 거래 총액을 기록했고, 지난해 선보인 대표작 <오렌지 마릴린>은 11월 뉴욕경매에서 1630만달러, 다른 대표작 <마오>는 50년대 이후 현대미술품으로는 가장 비싼 1740만달러에 낙찰되었다. 리움 전시를 전후해 상업화랑들의 약삭빠른 판매전이 끼어든 것은 이런 맥락으로 비친다.

아쉬운 것은 보기드문 앤디워홀 열기가 팝아트의 본질을 비껴간 채 돈벌이용 키치로만 해석하는 태도를 대개 보인다는 점이다. 미술을 개념으로 인식한 뒤샹에 이어 소비문화를 미술적 맥락에서 전폭 수용한 그의 업적은 갈수록 미술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 미술관과 리움을 제외한 다른 국내 전시들은 패션, 아트상품이나 고가 컬렉션 판매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벗지 못한다. 리움 기획전의 경우 판화 위에 작가본인의 붓질이나 필적 등이 들어간 수공적 작업이 많아 전시의 격은 월등하지만, 2000년대 워홀 팝아트 세계를 재해석하는 식견이 묻어나오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돈다발 채운 매트리스에서 잠자며 미술혁명을 꿈꿨던 워홀의 속내를 음미하기란 쉽지 않다.

노형석기자 nuge@hani.co.kr



앤디 워홀 ‘자화상’ 27억원 해외작품 최고가
〈경향닷컴www.khan.co.kr〉/ 입력: 2007년 09월 17일 13:57:57

극내 미술품 경매에서 미국 팝아트작가 앤디 워홀의 1986년작 실크스크린화 ‘자화상’이 27억원에 팔려, 해외작가 작품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15~16일 서울 코엑스 3층 컨벤션홀에서 열린 ‘아트 옥션 쇼 인 서울’의 경매에서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또 다른 리히터의 추상작품이 18억6000만원, 앤디 워홀의 마오는 18억원에 각각 낙찰됐다.

국내 작가 가운데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생존 국내 작가 가운데 최고 가격인 16억원에 낙찰됐으며, 지난 7월 107회 경매 때 13억5000만원이었던 작가 최고가격을 다시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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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9-19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홀은 정말 재능있는 사업가인 것 같아요. 부럽기도 하죠. ^^
 

나윤선 “늘 노래 불렀지만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해”
팝앨범 ‘메모리 레인’ 낸 재즈 보컬 나윤선
 
 
2007 04 15 김일주 기자 김경호 기자
 

 
» 재즈 보컬 나윤선.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13년 전 처음으로 섰던 무대에서부터 나윤선(38)은 그랬다. “〈지하철 1호선〉 주인공이었는데, 전 거의 아무것도 안 하고 노래만 불렀어요. 설경구씨나 방은진씨는 일인다역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죠.”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연기도 못하고 춤도 못추는” 모습으로, 더군다나 “남 앞에 나서는 걸 정말 싫어하는” 모습 그대로 뮤지컬 주인공이 됐다. 첫 무대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최근 음반 〈메모리 레인〉으로 다시 팬들 곁으로 다가온 그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 중간중간 그는 몇차례나 조곤조곤한 말투로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되뇌었다. 이런 그가 무대 위에서 신들린 듯 ‘스캣’(아무 뜻 없는 말로 노래부르는 것)으로 프랑스와 한국의 재즈 팬들을 휘어잡는 가수란 게 놀라울 정도다. “학창시절 반에서 ‘누구 노래할래’ 하면 항상 ‘노래 시킴을 당하는’ 아이였어요. 노래 부르면서 많이 적극적인 편이 됐지만 늘 자신없고 떨리고 절망하고 그래요. 유명한 뮤지션 공연을 본 날은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음악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죠.”

 

» 재즈 보컬 나윤선.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남 앞에 나서는 것 싫어해
27살에야 스스로 음악의 길 찾아
늘 자신없고 떨리고 절망하고…
재즈가 ‘사람들과 만남’ 주선해줘


나윤선에게 음악은 운명이다. 그는 성악가인 나영수 한양대 음대 교수, 그리고 뮤지컬 1세대인 성악가 김미정씨의 딸로 부모에게서 아름다운 목소리와 음악적 ‘끼’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직업으로 음악을 하는 것의 어려움을 보았던 탓에 음악을 업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주변에선 집요하게 노래를 시켰다. 심지어 입사 면접 때에도 면접관들이 노래를 시켰고, 합격해 회사를 다닐 때도 노래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적성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자 이번엔 주변에서 “지하철 1호선의 오디션을 보라”고 ‘압박’해왔다. 대학교 1학년 때 장난스럽게 만들었던 데모 테이프를 보냈는데, 바로 합격해 〈지하철1호선〉 무대에 섰다. 얼떨결에 그해에만 뮤지컬을 세 편을 하고 난 뒤, “이제는 노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스물일곱살에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떠밀리지 않고 음악을 찾아 스스로 프랑스 재즈학교에 입학했다. 공부하면서 할 수 있는 음악이 재즈였고, 샹송에 대한 관심을 채울 수 있는 곳이 프랑스였다. 동시에 학교 네 곳을 다니며 공부에 빠졌다. “너무너무 못해서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무작정 배웠어요.” 스탠더드 재즈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고민이었다. “죽었다 깨도 흑인들의 스윙감이 안 생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저처럼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하는 유럽쪽 재즈 보컬을 들려주셨어요.” 마침내 그는 자기 음색에 맞는 옷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정식 가수로 나섰지만 사람들 앞에 서기 싫어하는 성격은 여전했다. 그러나 재즈가 그 문제를 해결해줬다. 재즈는 ‘만남’이었고, 만남이 답을 준 것이다. 여러 재즈 콩쿠르에서 상을 탄 그에게 유명 뮤지션들은 함께 연주하자며 먼저 다가왔다. 그 덕분에 다섯장의 음반을 낼 수 있었고, 그 음반들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윤선이란 뮤지션은 자기 자리를 얻었다.

이번 음반에서 선보이는 ‘팝 음악’은 어떤 것일까? 조동익, 김광민, 하림 등의 국내 뮤지션과 덴마크 출신 피아니스트 닐스 란 도키, 일본 피아니스트 사토 마사히코 등의 곡이 담겨 있다. 정형에서 벗어나 독특한 느낌을 주는 나윤선식 팝이다. “재즈는 늘 뭔가에서 벗어나있는 음악이죠. 내 느낌을 갖고 하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그런 그의 ‘느낌’을 사람들이 따라가게 만드는 나윤선의 힘, 그 힘을 이번 팝음반에서도 느낄 수 있다.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언제부터인가 나윤선을 자주 접하게 된다. TV,라디오,신문 등지에서. 그녀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윤선 열풍'이라고 한다면 좀 그렇지만, 어쨌던 그녀는 이제 '한국 재즈의 대중화'라는 아이콘을 선점한 것 같아보인다. 뭐 나쁠 것 없는 현상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재즈는 뭔가 고상하고 우아하고 '교양있는 넘들'의 전유물 비슷하게 인식되어져 온 느낌이 없지 않으니까.

물론 반대편의 평가도 가능할 것 같다. 이걸 재즈 음악이라고 할 수 있냐, 너무 눈높이를 낮춘 거 아냐, 얘 요즘 밥벌어 먹고 살기 힘들어졌냐, 등등. 사실 작년부터인가 TV오락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가수들, 특히나 락가수들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도 "저 자식 요즘 먹고 살기 힘드나, 왜 저런 생쇼를 다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으니까(그런데 그게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 락가수가 살아남는 방법이란다..-.-..).

어쨌거나 그녀의 목소리는 쇳소리 같은 차가움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나른하고 아련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음란서생>에서의 오달수의 표현을 빌자면, 어딘가 모르게 '진맛'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하나?

정통 재즈마니아들에게 나윤선의 이러한 변화 아닌 변화는 그렇게 호의적일 수만은 없겠지만 나 같은 얼치기들에게야 낮은 곳으로 포복하는 그녀의 시도가 좋기만 하다. 천상에서 아무리 유아독존한들 알아주는 세상이 아니질 않는가. EBS 채널 <스페이스 공감>에서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난 왜 <지하철 1호선>에 그녀가 나왔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까? 흐르는 곡은 <오래된 정원> O.S.T. 음반에 나온 '사노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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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나윤선의 <사의찬미> 가 아주 전율이던데...^^ 좋은 가수죠.

내오랜꿈 2007-09-18 16: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좋고 '실력있는' 아티스트죠.
전 운전하면서 이 앨범 듣다가 9번 트랙이 나오면 뒤로 돌립니다. 운전하면서 듣기에는 "사의 찬미"는 너무 심장을 후벼파는 목소리 같아서요. 목소리에 몰입하다 운전에 방해 받을 것 같아서요..^.^..

바람돌이 2007-09-1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사노라면도 괜찮네요. 저야 재즈든 뭐든 음악이라곤 잼병이지만.... ㅎㅎ <지하철 1호선>은 봤지만 기대보다 별로였다는 기억밖에 누가 나왔는지도 하나도 기억안나요. 아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

내오랜꿈 2007-09-18 16:58   좋아요 0 | URL
너무 처량한가? <오래된 정원>과는 꽤 어울리는 것 같은데...

<지하철 1호선>이 워낙에 리바이벌 많이 되어서 주연 배우들이 그때마다 달라서 그런 것도 있을 걸... 94년, 95년에 할 때 방은진이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에는 모르겠네요.
 


사랑이라는 혹은 우정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감싸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우리까지 덩달아 빨라야할 이유는 전혀 없음에도 사람들은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면 마치 세상의 낙오자라도 된 듯한 기분인지 그저 그 스피드에 자신을 내맡기기 바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영화도 우리의 시력을 시험하기라도 하는 양 '너희가 스피드를 믿느뇨'란 식의 영화가 주류를 이룬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대개 한 편의 버라이어티쇼를 보는 듯한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한다.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한 볼거리의 향연을 관객은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한다. 관객은 그 볼거리 밖의 공간, 이를테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거나 그것과 관계하는 사물이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영화들, 예컨대 『터미네이터』, 『트루라이즈』, 『다이하드』 같은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스모크』는 참 '지리멸렬한' 영화일 수 있다. 이른바 영화적 '볼거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일 수도 있는 것.

대신 『스모크』는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길거리를 거닐며 쇼윈도나 여타 거리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앞으로 걸어가다가도 조금 전에 본 것이 뒷머리를 잡아당기면 발걸음을 되돌려 다시보아도, 혹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가져도 되는 것처럼...

『스모크』는 이렇게 다중적인 시점을 택하면서 관객에게 프레임, 곧 영화적 공간의 앞과 뒤 그리고 위아래를, 직선적 과정이 아니라 원형적 과정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하는, 그리하여 끊임없이 사유하게끔 자극하는 그런 영화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스모크』는 우리들에게 영화는 소비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산'이라는 이미지로 다가오게끔 유도한다. 이제 우리는 이 속에서 무엇을 생산해낼 수 있을까? 생산하기 위해선 먼저 재료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일 것 같다.

프롤로그


1990년, 뉴욕 브룩클린의 여름. 3번가의 모퉁이에 위치한 담배 가게. 14년간 이곳에서 담배를 팔아온 '오기'(하비 케이틀)와 소설가인 그의 단골 손님 '폴'(윌리엄 허트)을 축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진 허풍쟁이 소년 '라시드'(해롤드 페리누), 음주 운전으로 아내를 죽인후 평생 그 죄책감에 쫓겨다니는 라시드의 생부 '사일러스'(포레스트 휘태커), 옛 애인을 찾아와 애원을 하는 외눈여인 '루비'(스톡커드 캐닝), 세상의 밑바닥까지 타락한 루비의 딸 '펠리시티'(애슐리 쥬드)…. 이들은 폴과 오기를 둘러싸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뒤엉켜 각자의 혹은 서로의 삶을 엮어나간다. 퍼즐의 한 부분을 조각조각 맞춰가듯이 이들의 이야기는 전개되며, 이렇듯 각각의 귀퉁이를 맞춰나가다 보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것은 '인생'이다.

폴과 오기


한때는 잘 나가는 작가였지만 임신한 아내의 죽음이 준 충격으로 손에서 펜을 놓은 폴. 자신의 담배가게에서 한심한 동네 한량들이랑 수다나 떨며 살고 있는 오기. 그 두 사람은 가게 주인과 손님의 관계이지만 어느 날 그들은 친구가 된다. 14년 동안 한결같이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3번가 풍경을 찍어왔던 오기는 폴에게 그 앨범을 보여 준다.

“모두 같은 사진이군.”
“같아 보이지만 천천히 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네. 밝고 어두운 아침… 여름과 가을 햇살… 아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낯선 이도 있어. 낯선 이가 어느덧 이웃이 되기도 하지.

폴과 라시드


마치 꿈 속에서 사는 양 허풍을 떠는 흑인 청년 라시드는 폴을 사고의 위험에서 구해준 인연으로 폴의 집에서 며칠 묶었다가 길을 떠난다…. 얼마후 라시드의 이모가 찾아온다.

“맨하탄의 부촌에 사는 부모한테 간다던데요.”
“완전히 혼자 소설을 썼군! 그애 이름은 토마스 제퍼슨 콜이고, 우린 빈민가에 살고 있죠. 그애 엄마는 죽었고, 생부란 작자는 지난 12년간 소식조차 없어요. 얼마전 누가 그 애비를 교외 주유소에서 봤다길래…”

라시드와 사일러스


생부를 찾아간 라시드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생부의 허름한 주유소에서 일하며 그와 얘기를 나눈다. 한쪽 팔을 잃은 사일러스는 12년전 무모했던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며 살고 있다.

“팔은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12년전 받은 벌이야. 신이 말씀하셨지. '네 여인은 데려가겠다. 하지만 네 놈은 살려주지. 때론 사는 게 더 큰 고통이니까.' 난 이 팔을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못된 놈이었는가를 생각하지.”

루비와 오기


어느 날 오기의 담배 가게에 외눈의 여인이 찾아온다. 언뜻 보기에도 살아온 인생이 그리 평탄치 않은 모습이다. 그녀는 18년전 오기를 배신하고 떠난 루비였다.

“당신 도움이 필요해요.”
“설마 돈 얘긴 아니겠지.”
“우리 딸을 위한 거예요.”
“당신 딸이지 우리 딸은 아닐 걸.”

느닷없이 나타나 딸이 있었다는 루비의 말을 오기는 믿을 수 없었다. 그 애가 임신 4개월에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도…

에필로그


과거에 얽혀진 혹은 현재에 맺어진 그들의 관계는 이제 한데 어울어져 멋진 인생의 단편을 만든다. 앞으로 그들의 인생 퍼즐은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한 완전한 해답은 뒤로 미룬 채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그리고 결코 잊혀지지 않는 선율의 음악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가 단순한 소비행위가 아니어야 한다면(?), 이제 우리는 『스모크』의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담배가게 주인 오기 렌, 작가인 폴 벤자민, 벤자민을 구해주는 흑인소년 라시드, 애꾸눈 루비, 루비의 딸이자 밑바닥 인생으로 살아가는 펠리시티. 이들을 한데 묶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웨인 왕의 전작들, 곧 『딤섬』이나 『조이 럭 클럽』을 상기한다면 아무래도 그것은 '가족'(가족주의가 아닌!)의 형상이 아닐까?

영화의 겉면은 분명 거대도시에서 익명으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배여 있는 쓸쓸함과 그 쓸쓸함의 동명이인인 인간주의적 따스함에의 그리움 등으로 부드럽게 감싸여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두고 거대화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고독, 소외 등을 화두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 같다. 분명 영화는 우리네 삶의 구석구석에 일상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소외에 관한 텍스트로 읽힐 여지를 주고 있긴하다. 하지만 『스모크』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스테레오타입화된 상투적 텍스트 읽기가 아닐까?

등장 인물 모두가 한두 개씩 안고 있는 상처나 결핍은 대개 가족의 불안정성이나 부재에 기인한다. 또 그 상처나 결핍의 해결책은 라시드와 그의 생부 사일러스의 화해, 영화 마지막 부분의 흑백 시퀀스 등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가족의 복구이다. 그렇다면 작가 웨인 왕이 생각하는 현대의 가족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웨인 왕의 전작인 『조이 럭 클럽』에서 어느 정도 그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이 럭 클럽』의 가족은 너무나 '복고적'이다. 예컨대 『조이 럭 클럽』에서는 가족의 존재 및 정체성의 기원을 핏줄 이데올로기에 두고, 그 핏줄이데올로기를 가족공동체의 근경으로 삼고 있다. 반면에 『스모크』에서는 그러한 핏줄 이데올로기를 덜 부각시킨다.

사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족관계를 생각한다면, 핏줄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이란 게 도대체 존재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스모크』에서는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다. 담배가게 주인인 오기 렌과 펠리시티의 관계를 모호하게 처리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루비와의 관계 회복에 있어 '펠리시티가 그의 딸이냐 아니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를 확대해석한다면 현대인의 새로운 유대나 결연의 방식과 붕괴된 전통적 가족공동체와의 비교대목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웨인 왕이 현대의 가족관계에 대한 새로운 '모랄'을 제시했다고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그가 일상의 편린들로 직조하듯 짜낸 따듯한 질감의 해피엔딩은 지나치게 인정적이고 위안적인 것 같다. 좀 심하게 표현한다면, 영화는 분명 관객들에게 가족의 문제를 새로이 되씹어 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기는 하되 작가의 시선은 결국 '가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마지막 흑백 시퀀스인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적이고 따듯한 시선으로 덧칠되어 있지만 왠지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스모크』의 감동적인 장면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부분에는 그야말로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노래가 흐른다. 끈끈하면서도 경쾌한 리듬의 "You are innocent when you dream" 이라는 노래가 그것인데, 이 노래를 부른 이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탐 웨이츠'다. 70년대 초반부터 포크송으로 시작하여 전위적인 팝과 락을 구사하며 극작가, 영화배우로서도 활동한 그는 영화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영화 음악도 작곡하고 영화에도 직접 출연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멋진 모습을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숏컷』, 짐 자무쉬 감독의 단편인 『커피와 시가렛』 등에서 볼 수 있다.



1987. Frank's wild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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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에 오래전에 본 영화라서 기억도 안나는구만요. 기억나는 거라고는 하비 케이틀의 그 시니컬한 표정밖에.... 근데 그때는 저 영화를 이해하기에 내가 너무 어렸던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지금 보면 좀 달라보일까요?

내오랜꿈 2007-09-18 16:53   좋아요 0 | URL
나도 이걸 쓴 게 94년인지 95년지 헷갈린다. 당시 종로의 <코아아트홀>에서 혼자서 2회 연속 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글쎄, 무엇을 얼마 만큼 어떻게 달리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생의 연륜이 쌓여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맞는 거 같아...
 


들뢰즈의 꿈 혹은 비표상적 사유를 향한 모험

서동욱, 『차이와 타자』


『차이와 타자』의 표지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별 어려움 없이’ 얘기하는 사상가에 속한다. 예컨대 『니체와 철학』『프루스트와 기호들』『스피노자의 철학』『앙띠 오이디푸스』『칸트의 비판철학』『베르그송주의』『의미의 논리』『매저키즘』『철학이란 무엇인가』『감각의 논리』『영화I』『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카프카론』『푸코』『대담』『천개의 고원』 등 들뢰즈/가타리 저작이 상당 부분 번역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 관심도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내가 아는 한, 최근 들어 이렇게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사상가를 찾아보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다면 ‘21세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푸코의 말이 적어도 21세기 문턱에 들어선 한국에서는 현실화된 것으로 보아 큰 잘못이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왜 들뢰즈인가, 왜 들뢰즈가 이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른 것인가? ‘들뢰즈 현상’ 또한 말 그대로 한바탕 신드롬 또는 붐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아니면 한국 인문학의 사유를 더욱 풍성하게 할 자양분으로 자리잡을 것인가?

한 사상가의 전모를 그려볼 수 있으려면 그가 구사하는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연구자가 아니라면, 그 사상가의 저술과 입문서를 나란히 놓고 읽어가는 게 상례이다. 들뢰즈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가 아무리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그가 구사하는 용어나 개념들에 대한 검토 없이 그의 생각을 되새기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러했다).

‘현대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이라는 부제가 붙은 서동욱의 『차이와 타자』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절실해진다. 물론 서동욱 이전에도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의 철학 사상』이나 로널드 보그의 『들뢰즈와 가타리』와 같은 ‘괜찮은’ 입문서가 있었다. 그리고 이정우의 일련의 강의 노트, 즉 『시뮬라크르의 시대』『삶·죽음·운명』『접힘과 펼쳐짐』 등도 들뢰즈 사상의 뿌리와 맹아 그리고 줄기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이정우의 책들은 들뢰즈를 매개항으로 하여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관해 적지 않은 힌트를 제공한다.

그런데 『차이와 타자』가 지닌 강점은 무엇보다 들뢰즈의 사상을 구성하는 개념을 면밀하게 그리고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는 데 있다. ‘어렵지 않다’는 데 주목하기 바란다! 많은 소개서나 입문서들이 ‘원저보다 더 어려운’ 예를 심심찮게 보아온 터인지라 이 책을 잡고서도 반신반의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의심은 참으로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개념들에 대한 꼼꼼한 해설과 각주(각주가 저자의 성실성을 드러내는 소중한 글쓰기 공간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들뢰즈 사유의 방법론에 대한 탐색과 그의 전후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다른 사상가 – 플라톤, 칸트, 니체, 라이프니츠, 프루스트, 프로이트, 사르트르, 레비나스, 바르트 – 들과의 관련성 파악 등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그 내적 연관성을 따져가면서 읽노라면 『차이와 타자』는 어느새 한 편의 드라마 또는 조각맞추기 퍼즐처럼 여겨진다. 하기야 사상사란 시공간을 넘나들며 물고 물리는, 쫓고 쫓기는, 내부로 파고들어 전복을 꿈꾸는, 그리하여 기존의 사유 패턴에 상처를 입히고 자신마저도 상처를 입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다시, 앞에서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 보자. 왜 들뢰즈인가? 들뢰즈 철학의 핵심은 주체성에 대한 비판, 고쳐 말해 데카르트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주체성의 확립에 근거를 둔 표상적 사유에 대한 비판이다. 근대철학의 존재론과 인식론에 있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체성의 원리를 내파함으로써 역사적 체제로서의 근대가 초래한 비인간화 논리를 공략하기 위한 기획, 이것이 들뢰즈 사상을 가로지르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주체성이 부재하는 카오스’를 꿈꾸는 것, 주체를 일의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또는 ‘미리 전제된 자아’를 설정함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무차별적으로 억압해 온 사유의 근거를 폭파하는 것, 그리하여 차이를 인정하고 타자를 통해 또 다른 ‘수많은 나’를 발견하는 일, 이를 두고 나는 들뢰즈의 꿈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서동욱은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사유하는 것은 삶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는 것, 발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유란 ‘창조’이다. 인식은 창조이다”라고.

따라서 미리 주어진 무엇 또는 독단적이고 임의적인 공리(억압)들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법칙과 가치는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지속적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와 들뢰즈가 사용하는 문화란 언제나 ‘생성’ 가운데 있는 동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들뢰즈를 읽어야 한다. 『차이와 타자』는 그런 들뢰즈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 친절하고도 진지한 안내자 역할을 할 것이다.


정선태 「들뢰즈의 꿈 혹은 비표상적 사유를 향한 모험」, 『BOOK+ING 책과 만나다』, 그린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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