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전기 같은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최근에 많이 접하게 된다. 대충 생각나는 것들만 해도 <이탁오 평전>,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빌헬름 라이히>, <밥 말리>, <존리드 평전>, <노신 평전> 등이다.

괴델의 전기니까 아마도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그간의 괴델에 관한 경험으로 봐서는 쉽게 읽힐 것 같지는 않다. 글쎄, 전기니까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목차를 봐서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괴델 에셔 바흐>의 그 끔찍했던 번역 같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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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불완전성 증명한 천재의 불완전했던 삶
〈불완전성-쿠르트 괴델의 증명과 역설〉

고명섭 기자
출처 : <한겨레> 2007년 12월 21일


» 〈불완전성〉
 
레베카 골드스타인 지음·고중숙 옮김/승산·1만5000원

20대에 20세기 지성사 흔든 증명 했으나
‘수학 부정한다’는 오해에 스스로를 유폐한
괴델의 이론과 우울했던 삶으로 안내


“이 논리학자는 자신의 생전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내재적 가치가 아인슈타인의 업적과 맞먹을 정도로 혁명적이며, 우리의 뿌리 깊은 선입관에까지 침투해오는 지난 세기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엄밀한 소수의 성과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문장의 주인공이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수리논리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이다. 괴델의 이름이 아인슈타인과 나란히 놓인 것이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최소한 수리논리학계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이다. 괴델이라는 이름에 거의 항상 동반되는 ‘불완전성 정리’라는 놀라운 수학적 업적 때문이다. ‘불완전성 정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함께 인간 지성의 토대를 흔든 20세기의 발견으로 꼽힌다. ‘불완전성 정리’로 하여 괴델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불완전성 정리’만큼이나 난해하고 기이했다. 끝없는 침묵 속에 스스로 유폐당했던 그는 논리적 명제로 이루어진 짧은 증명으로 자신의 생각을 겨우 알렸다. 그 증명조차도 너무 상식 밖이어서 무수한 오해를 낳았고, 참뜻이 이해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레베카 골드스타인이 쓴 〈불완전성-쿠르트 괴델의 증명과 역설〉은 ‘불완전성 정리’라는 기괴한 증명과 이 증명을 낳은 기괴한 인간에 관한 전기적 해설서다. 지은이는 소설가의 재능을 발휘해 괴델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학자의 꼼꼼함으로 ‘불완전성 정리’의 논리적 구조를 설명한다. 괴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와도 같은 ‘불완전성의 세계’ 안으로 깊숙이 들어서게 된다.

» 나치를 피해 미국 프린스턴대학 고등과학원에 정착한 괴델(왼쪽)과 아인슈타인. 극도록 소심했던 괴델은 27살 연상의 아인슈타인과 유일하게 우정을 나눴다.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한 것은 24살 때인 1930년 10월이었다. 수학자·철학자·논리학자들의 모임인 쾨니히스베르크 학회가 발표 장소였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이 분야의 신출내기 괴델은 학회의 마지막날에 자신의 연구 결론을 아주 짧게 이야기했다. 이 책의 지은이는 그 순간을 두고 ‘가장 조용한 폭발’이라고 묘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폭발은 너무나 조용해서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폭발인지 아무도 즉각 눈치채지 못했다.

20쪽 남짓한 분량에 극히 압축적인 논리로 이루어진 ‘불완전성 정리’는 ‘제1정리’와 여기서 딸려 나오는 ‘제2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정리의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모순 없는 수학적 형식체계가 있다고 할 때, 그 체계 안에는 참이면서 동시에 증명이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 이 결론에서 따라 나오는 제2정리는 이렇다. ‘체계의 무모순성은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

이 정리가 폭탄이 된 것은 먼저 수학계 안의 사정과 관련이 있다. 당시 수학계 안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다비트 힐베르트가 주창한 ‘형식주의 수학’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수학의 영역에서 ‘논리적으로 모순 없는 형식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힐베르트의 가정이었다. 괴델의 제2정리는 바로 그 가정을 직접 타격하는 것이었다. ‘어떤 체계가 무모순인지를 증명할 수 없다’는 그 결론이 오직 순수형식으로만 이루어진 수학체계를 만들어보려던 열망을 날려 버린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괴델의 정리가 다만 수학의 영역을 넘어 논리적 체계 일반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이 수많은 오해의 단서가 됐다. 언뜻 보면 괴델의 정리는 수학이라는 가장 이성적인 논리체계의 붕괴를 입증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속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반이성주의적 운동에 이 ‘오해된 괴델’이 이용되었다. “괴델은 수학에 대한 악마다. 괴델 이후에는 수학이 신의 언어일 뿐 아니라 우리가 우주와 만물을 이해하기 위해 해독해야 할 언어라는 생각은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식의 주장이야말로 전형적인 오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괴델이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인간의 머리로 짜낸 어떤 수리체계도 ‘불완전한’ 지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었을 뿐, 수학이 근원적으로 쓸모없다는 주장은 아니었다. 그는 증명 불가능하다 해도 ‘참’인 명제가 있음을 밝혔고, 우리의 이성적 직관으로 그 참(진리)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괴델의 정리는 오해에 오해를 낳았고, 그것은 불안신경증을 앓고 있던 이 고립된 수학자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1940년 미국으로 망명해 프린스턴대학의 고등과학원에 정착한 괴델은 한동안 같은 처지의 아인슈타인과 유일한 우정을 나눴지만, 1955년 아인슈타인이 죽고난 뒤 철저한 자폐 상태에 빠졌다. 말년의 괴델은 세상이 자신을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고, 누군가 음식에 독을 탄다는 의심 때문에 식사를 거부하다 굶주림으로 죽었다. 사진 승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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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교수의 논지는 큰 틀에서 동의하지만 신문기고글 답게(?) 조금 정치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먼저,'국민들이 이명박 한 사람이 아니라 이명박을 둘러싸고 있는 후방세력이 현 집권세력보다 믿음직하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식의 논리는 이번 선거의 의미를 너무 과도하게 일반화시킨 것 아닐까? 과연 국민들이 그것까지 생각하고 투표했을까? 이 연장선상에서 "문국현이 이명박의 경제성장률 7%보다 1%포인트 더 높은 8%를 제시하고도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은 문국현과 그를 뒷받침하는 정책 집단이 추진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조금 '오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노무현이 너무 싫어서 원숭이를 내세워도 당선되었을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오히려 이번 선거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것 같다. 우석훈 교수가 맨처음 언급한대로 '노무현 정부가 지긋지긋하게 싫었다'는 것에서 그쳐야지 더 나아가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보여진다.

노무현이 싫다는 '즉자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야지 성장률이 높은 문국현보다 이명박의 후방부대가 믿음직스럽다는 것까지 생각할 정도면, 역으로 이명박의 도덕적 흠결을 먼저 생각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우석훈 교수의 주장까지 나아갈려면 다른 논거들을 제시하여 자기 주장의 근거를 입증한 다음에 주장해야 할 것이다.

다른 주장들은 대부분 동의할 수 있는데, 이명박 정부도 마음대로 하기는 조금 곤란하리라 본다. 대한민국의 예산이나 경제규모가 박정희 시대의 것이 아니듯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 역시 박정희 시대와 다르기에 한 사람의 '괴물'이 마음대로 주무르기에는 역시 많은 난관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우석훈 교수가 언급하는 환경부의 건설교통부로의 통합이라든가 산업자원부 폐지 같은 것들이 과연 쉽게 될까? 너무 세분화된 정부부처를 기능별로 통합시켜 효율성을 제고시키자는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자기 밥그릇 지키는 데는 귀신 같은 관료들 아닌가.

결국 우석훈 교수의 주장대로 시민단체나 야당이 된 자유주의 정당, 비틀거리고 있는 진보정당 등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을 최소한 노무현 정부에서 했던 것 정도로는 충분히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경제정책적 측면에서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이상 나빠질 만한 것들이 남아있는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이란 거의 대부분 재경부 모피아들 손에 놀아난 것 아닌가. 경부운하 판다고 헛지랄 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더 나빠질 만한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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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시대' 접고 '괴물의 시대'로?
[밥&돈·22] 이명박 정부의 경제기조 전망

우석훈/성공회대
출처 : <프레시안> 2007-12-21


  이번 주 <밥&돈> 칼럼의 주제는 '대선'이다. 우석훈 박사(경제학)는 이번 칼럼에서 17대 대선 결과의 경제적 의미를 '양아치의 시대가 저물고 괴물의 시대가 왔다'는, 번뜩이지만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우 박사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건설자본으로의 집중'과 이를 축으로 한 '친(親)재벌적 규제 완화' 그리고 '금융 중심 민영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후, 이번 대선 결과는 바로 이 같은 "건설자본 중심의 자유화(liberalization)"를 '그대로 밀고 나가라'고 국민들 대다수가 부여해준 포괄적인 동의권과 다름없다고 해석한다.
  
  우 박사는 이대로라면 새 정부는 "국민 성공시대"는 커녕 괴물의 시대를 열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과 함께, 이를 막기 위해 이명박 당선자 스스로 '국민경제 총책'이라는 자신의 새 위치에 걸맞게 성장률뿐 아니라 성장 패턴까지 헤아리는 혜안을 발휘해 줄 것을 당부한다.
  
  그는 또 새 대통령 곁에서 국민들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좋든 싫든, 이번 '선택'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자 주>
  

  국민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투표를 했다. 이 당선자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몇 가지 이야기들과 대선 막판까지 따라붙었던 BBK 사건을 보면서, 이 당선자가 깨끗하고 고결하다고 믿었을 국민들이 그렇게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투표 결과로 나온 국민의 뜻은 자명했다. 그만큼 '지긋지긋하게 노무현 정부가 싫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성격은 사회적 논쟁과는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황우석 사태, '디 워' 사태, '붉은 악마' 현상에 대해 논쟁을 하는 것과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번 대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 '양아치'의 시대를 접고...
  
  우리가 지나온 지난 5년은 분명히 '양아치'의 시대였다. 노무현 정권은 자기들끼리만 밀실에 모여 중대사를 결정했고, "동지들의 등에 칼을 꼽지 말라!"면서 황우석을 띄웠고, 한미 FTA 체결을 향해 질주했고, 농업을 포기했고, 20대들에게 '비정규직의 일반화'를 안겨주었다.
  
  그 과정에는 '참여'는 고사하고 변변한 '논쟁'도 없었다. "지역감정은 없애야 하는 것 아니냐"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우리보다 나았겠느냐" 라는 두 가지 말만 고장 난 축음기처럼 반복하는 것을 집권세력은 '논쟁'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점잖게 이야기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5년은 -김대중 대통령의 '완화된 신자유주의'에 대비해- '강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대한 총체적인 역사적 평가는 '김영삼 정권보다도 해놓은 게 없는 정권'이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본인들은 "설마 IMF 경제위기를 맞았던 김영삼 정권보다도 우리가 못했을라고?" 라면서 억울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사람들이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김영삼 시대부터 지난 15년은 한국이 '개혁'을 목표로 움직였던 기간이었다. 스스로를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김영삼 정부는 정부를 꾸리자마자 하나회를 청산할 준비를 하고, 금융실명제의 도입을 추진했다.)
  
  물론 우리는 아직 궁극적인 답을 모른다. 다만 국민들은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집단을 '양아치' 집단으로 보는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 중 약 65%가 이명박 당선자와 이회창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은 '이런 양아치들로 구성된 정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것과 같다. 바꿔 말해, 이번 대선 결과는 '국민들이 양아치를 버리고 경제 집단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선거에서 보는 것은 대통령 한 명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후방세력들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자식 위장취업'을 비롯한 도덕적 흠결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선자를 둘러싸고 있는 후방세력이 더 믿음직해 보인다는 것이, 이번 투표 결과의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투표를 '선택'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그 선택이 '거룩한' 것이고 '신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택이 '준엄한'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이 선택에 따라 이제 역사는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바로 이 선택에 따라 앞으로 5년간 국가가 운영될 것이고, 바로 이 선택 안에서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면서 최선 또는 차선이 모색될 것이다.
  
  2. '괴물'의 시대가 열리는가?
  
  아직 출범하지도 않은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민 중 절반 이상이 '경제성장'과 함께 '강력한 추진력'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 문국현이 이명박의 경제성장률 7%보다 1%포인트 더 높은 8%를 제시하고도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은 문국현과 그를 뒷받침하는 정책 집단이 추진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개인이 이 시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한국에서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는 이명박 자신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집권 세력, 그리고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경제적 효율성'을 열망하는 대중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이 꺼내든 미래의 청사진은 '시장 제일주의'와 '강력한 추진력'이라는 두 가지 표현으로 모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반대편에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 공약에도 복지 공약이 들어가 있고, 보육을 포함한 여성 공약이 들어가 있다. 다른 후보자들과의 차이점은 이런 공약들이 시장 장치에 의해 움직이도록 디자인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디자인 여부에 따라 이런 장치들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국민들은 이런 장치들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체제는 토론과 반대의견을 용납하기 어려운 체제이다. 대통령과 중앙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세워 종합적인 디자인을 하고,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은 단기적인 부작용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지지를 보내는 상황, 바로 이것이 이명박 체제의 작동원리가 될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박정희 시대의 복원'이다.
  
▲ 지난해 10월 이명박 당선자가 독일의 뉘른베르크 RMD 운하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 왜 필요한지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박정희 시대는 독재자로서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명박 시대에도 이런 종합성이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문제의 초점이 놓여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종합성 없이 국민경제 전체를 끌고 간다면, 이 시스템은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에게 굳건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준 경부운하 사업은, 그 사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변환을 상징하는 것이라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던 시절의 한국은 GDP 중 건설자본의 비중이 10%가 채 넘지 않았으며, 그래서 건설 부문이 커져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노무현 정부가 지난 5년 간 '한국형 뉴딜'을 통해 건설자본의 비중을 20% 가깝게 높여놓은 결과 건설업의 연착륙이 어려워진 때이며, 따라서 이 시점에서 지나치게 건설 중심으로 국민경제의 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괴물 탄생'을 예고하는 음울한 전주곡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3. 정책 기조는 변하고, 한국도 질적으로 변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남아있던 많은 규제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린벨트가 그렇고, 수도권 규제에 관한 대체적인 틀도 국토종합계획을 처음 입안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토지공개념'의 기본 틀은 노태우 시절과 김영삼 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는데, 노 대통령이 한 일은 임기 거의 마지막 순간에 보유세 개념을 더한 정도이다.
  
  이런 규제들이 생겨난 이유는 시장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분배를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한 좌파 정책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런 규제들은 이전의 정부들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다. 특히, 많은 규제들은 국민경제의 여러 자본 중 건설자본, 특히 수도권의 건설자본에 너무 많은 힘이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번 대선 결과는 이런 규제를 없애고 건설자본에 힘을 집중시키자는데 국민들이 포괄적으로 동의해 준 것과 다름없다. 국민들 대다수가 동의해 준 이런 상황을 막아낼 힘을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다시 찾기 힘들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자신의 앞가림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민주노동당은 붕괴되다시피 했다. 한나라당의 '건설자본 중심의 포괄적 자유화'는 그야말로 대세다.
  
  이 같은 건설자본 중심으로의 경제 개편에서 '금산분리의 폐지'는 삼성그룹에게 주는 보너스에 해당한다. 쓰는 김에 조금 더 써서, 이명박 정부는 '국책은행 민영화'로 지금껏 지연됐던 민영화 절차를 재가동할 것이다. (이걸 중소기업 지원방안이라는 이 당선자의 주장이 엉뚱하기는 하다. 민영화된 은행들이 고사 위기에 있는 중소기업에게 왜 자금을 지원하겠는가?)
  
  이명박 정권의 주요 경제기조를 전체적으로 전망해 보면, 새 정권은 건설자본을 전면에 내세워 '경제 살리기'에 힘쓰고, '지금껏 숨통이 막혀 있었다'고 주장하는 재벌들의 숙원을 몇 개 들어주고, 금융(은행) 중심의 민영화를 훨씬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4. 새로운 시대, 최선을 다합시다!
  
▲ 한국은 이미 주택 가운데 70% 이상이 아파트 형태인 '아파트 공화국'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여기서 얼마나 더 나아간 '건설자본의 천국'을 구현하려는 것일까? ⓒ프레시안

  이렇게 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청년들의 고용과 실업 문제가 해결되고, '양아치 정부' 시절의 경제적 폐해가 사라져 모두 즐겁게 춤출 수 있는 선진경제가 달성될까?
  
  시장은 효율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시장이 가지고 있는 폐해는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 잘 운용하지 않으면, 거시경제는 '시장 실패'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건설자본 중심의 경기부양책이 당장 의도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노동자의 건설업 진출이다. 이미 건설 현장에서는 60% 이상의 노동력이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져 있는 상황에서, 건설자본 중심으로 경기를 부양해봐야 정작 우리 국민들에게는 안정적인 정규직은 고사하고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출된 자금 중 50% 이상이, 국내 경제에 투입돼 내수를 진작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 송금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수없이 많은 토목공사를 일으켜 임기 5년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하면 향후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이명박 당선자에게는 현대건설 근무 시절과 서울 시장 재임 시절에 하고 싶었지만 정부 규제로 못해본 아쉬운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숙원을 풀겠다고 시스템을 전부 건설자본 위주로 바꾸어버리면, 지금으로부터 5년 후에는 65% 이상의 국민들이 지금 이 순간을 '괴물'이 탄생했던 때로 회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항간에는 이명박 정부가 '경부운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환경부를 건설교통부에 통폐합시킬 것'이라거나 '규제철폐라는 이름으로 산업자원부를 없앨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이런 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정부 개혁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 같은 일대 사건이다. 환경영향평가나 건설사업 타당성평가와 같은 제도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다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건설사업 하는데 귀찮다고 이런 제도를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담당 부처까지 없애거나 통폐합하겠다는 것은 과도하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이미 국민경제 내 건설 부문의 비중은 노무현 정부 시절을 거치며 충분히 높아진 상태다.
  
  분명한 것은 이명박 당선자는 지금 건설교통부 장관에 '임명'된 것이 아니라, 국민 5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받고 국민경제의 총 지휘권을 가진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된 이상, 경제를 너무 이데올로기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건설자본 위주로 사유할 필요도 없다. '좋은 경제'를 위한 정부의 역할은 간섭을 최소화하고, 다만 제도에 장애가 있을 때 이를 개선해 주는 것이라고 교과서에 나와 있다.
  
  이 당선자가, 건교부 장관이 아니라 국민경제 지휘관으로서, 건설자본에 2개의 혜택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을 과감히 접고 그 중 1개는 기타 자본이나 국민들의 복지로 돌리는 '작은 지혜'를 발휘해 줬으면 좋겠다. 이 당선자가, 경기순환을 거스른 인위적인 경기부양과 그 부작용에 대한 뒷수습을 하느라 경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성장에는 '성장률'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성장 패턴'도 중요하다는 게 현대 경제학이 주는 가르침이다. 일자리에 목마른 국민들, '안정적인 삶'을 갈망하는 국민들, 그들을 위해서 좋은 경제성장 패턴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대선은 끝났다. 이 새로운 정부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집권세력은 물론이고, 야당과 시민단체들, 나아가 국민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본의 90년대 거품공황을 우리가 반복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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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대통령 당선, 국민의 삶은 나아질까?
    from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2007-12-24 12:21 
    [새사연 이슈해설] 경제대통령 당선, 국민의 삶은 나아질까? 2007-12-24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던 2007년도 저물어간다. 역대 가장 재미없는 선거라고 했던 대통령 선거도 끝나고 한나라당 이명박 당선...
 
 
 

한국-베트남 어제와 내일 ‘담담한 공감’
‘트랜스팝: 한국 베트남 리믹스’ 전

임종업 선임기자
출처 : <한겨레> 2007년 12월 20일


» 리호앙라이 <자화상 이야기>
 
한국계·베트남계 미국인 공동 기획
작가 16명 역사상처·문화결합 표현
“과거 매듭짓기보다 미래 여는 시도”


에스비에스의 주말드라마 <황금신부>가 인기다. 라이따이한, 곧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난 소녀가 생부를 찾으려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다. 종전 34년 만에 비로소 공중파를 타는 베트남 관련 텔레비전 드라마지만 참혹한 전쟁은 ‘그림자의 그림자’로만 비칠 뿐이다.

그동안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이 애정드라마로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은 한국의 참전으로 인한 두 나라 사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 송상회<푸른 회담>
 
아르코미술관(02-7604-598)에서 열리는 ‘트랜스팝:한국 베트남 리믹스’ 전시회는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상처와 대중문화의 결합이 보여주는 초국적 현상을 미술의 관점에서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민영순, 비에트 레 등 두 큐레이터가 함께 기획해 한국, 베트남, 미국 출신 작가 16명(팀)의 작품을 내걸고 내년 2월말까지 전시한다. 양국 간의 미묘한 주제로써 열리는 본격적인 대형 전시회로는 처음이다.

기획자 민영순, 비에트 레는 미 캘리포니아 소재의 유니버시티 오프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사이. 민씨는 7살 때 이민으로, 레는 4살 때 보트피플로 미국에 건너가 살게 되었다. 태생적으로 민족 이산(디아스포라)에 관심을 두던 터. 몇해 전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 점심을 함께 들면서 ‘트랜스팝’ 전시를 기획하기로 뜻을 모았다. 뿌리는 다른 나라지만 일찍 자기 나라를 떠난 탓에 민감한 주제를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처지다.

두 나라의 애증관계는 전시장 입구에 ‘연대기’로 요약돼 있다. 외세에 의한 전쟁과 분단 등 약소국의 아픔을 공유하던 두 나라는 1962년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면서 공감이 깨졌다. 1973년 종전까지 한국군 32만여명이 참전해 5000여명이 죽었다. 한국은 피값으로 경제발전의 토대를 굳혔고, 초토화한 통일 베트남은 1986년에야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과 더불어 개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양국은 악연 30년 만인 1992년 수교했다. 1997년 텔레비전 드라마가 수출되기 시작하고 1998년 인기배우 장동건이 하노이를, 2004년 베트남의 팝스타 마이 탬이 서울을 방문한다. 양국 간 혼인도 늘어 2006년에만 1만 명이 넘는 베트남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

» 농부와 헬리콥터
 
기획자들이 고민 끝에 선별한 작품들은 대부분 에둘러 말하는 방식. 가장 직접적인 유순미의 <씻김굿>조차 양국의 다큐영상과, 한국군이 휩쓸고 간 중부 베트남 주민한테서 딴 인터뷰를 병치하는 정도. “꿈속에서 귀신을 본다”는 울먹임이 가장 충격적이다. 딘 큐 레는 <농부와 헬리콥터>에서 손수 만든 농업용 헬기를 국가에 강탈당한 농부의 하소연과 과거 전투헬기의 영상과 굉음을 병치한다. 이용백의 꽃으로 위장한 <앤젤 솔저>(비디오)에서는 전쟁을 상기하기가 쉽지 않다.

기획자 민씨는 “베트남 전쟁 자체나 역사적 의혹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30여년이 흘렀거니와 예술은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양국의 폭력적인 역사, 민족의 이산 등 상처가 대중문화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다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한다.

되레 담담한 이야기에 깊은 울림이 있다. 깨진 소주병 조각으로 만든 팝송악보, 소화제 알약으로 만든 시와 유행가 가사(배영환), 해체를 앞둔 재개발아파트 앞의 10대들(박진영), 전투기가 끄는 수레, 판잣집을 이어낸 고층아파트(응엔 만 흥), 아무리 씻어도 거무튀튀한 탄광부(트렌정). 이들 작품은 전쟁 또는 군사정권 뒤꼍에서 두 나라 민중이 박탈감을 공유했음을 증언한다.

세대를 건넌 상흔은 ‘기억놀이’로 침잠하기도 한다.

1960년대 선전영화에서 1초간에 지나간 24컷을 뽑아내고(린+람), 침침한 술집에서 찍힌 자기사진에서 토굴 속의 여인을 연상하고(리호앙라이), 벌거벗은 네이팜탄 소년소녀 사진을 조각내거나(최민화), 육영수 피격사건을 재연해 반복한다거나(송상희), 여러 경치와 광경을 몽타주한다거나(오용석) 등이다.

전시는 아시아 문화가 국경을 넘어 뒤섞이면서 아시아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표나는 것은 티파니정의 작품들. 한국무대에 선 베트남 가수, 베트남 의상을 입은 일본인, 도쿄와 서울지하철이 겹쳐진 호찌민 도시계획도 등이 그것이다.

“멀리서 보면 독자적인 덩치를 형성해가는 아시아권의 움직임이 뚜렷이 보인다. 이번 전시는 과거에 대한 매듭이라기보다 새로운 미래를 여는 시도라고 봐 달라.” 기획자의 당부다. 하여튼 이번 전시는 참전군인들의 공격을 당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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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체포·강제추방·법개악까지…냉담한 사회 ‘슬픈 자화상’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처우 악화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홍세화 기획위원
출처 : <한겨레> 2007년 12월 20일


» 이주노조 중부지부장 나렌드라(가운데)씨 등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5일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에서 이주노조 집행부 표적단속을 규탄하고 이주노동자 운동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지난 주말인 12월15~16일, 소말리아 사람 400여 명을 실은 두 척의 배가 예멘 땅에 도착하기 전에 침몰했다. 자본 축적기인 16~19세기 그들의 선조들이 노예로 잡혀 울부짖으며 떠나야했던 땅을 오늘 그 후예들은 죽고 살기로 떠나려고 한다. 억지로 끌려갔던 과거에 비해 자발적으로 떠나게 되었으니 그만큼 역사는 진보한 셈인가. 오랜 착취로 발전의 토대를 잃고 미국식 소비문화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면서 나타난 모습인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 이하의 조건으로 자본의 착취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배에 탔던 사람 중 200명에 가까운 이들이 익사하거나 실종됐다고 ‘난민을 위한 유엔고등판무관’은 밝혔다. 그 중에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이 뉴스는 단신으로도 취급되지 않는다. 사람의 가치는 대략 에너지 소비량에 비례하고, 소말리아 사람 200명의 가치는 미국 사람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연대 ‘촛불집회’ 21일부터 매주 금요일 열려

‘세계인권선언일’(12월10일)과 ‘세계이주민의 날’(12월18일)을 사이에 둔 12월13일 새벽, 한국 정부는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던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의 까지만 위원장, 라쥬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을 강제 추방했다.

정부는 11월27일에 세 사람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표적 체포’한 바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낳고 최근 ‘다문화’를 강조하는 한국 정부가 바란 대로 이 소식은 대통령 선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국내외 인권노동단체의 항의를 간단히 일축했고, 진정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 강제추방을 하지 말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요청도 무시했다. 그리고 강제추방 집행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피하려고 보호소 철창을 절단해 세 사람을 빼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이라크 파병 반대 등 국내 시위활동에도 가담했다”고 추방 이유를 들었다. 미등록(불법체류)인 주제에 감히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그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해 그 사회 인권 상황의 정확한 증언자가 된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해 그 사회 노동조건을 정확히 알게 해주는 증인이 된다.

경제동물에게서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기대하기 어렵듯이, 인권의식이나 연대의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른바 ‘경제’ 대통령을 찍는다는 투표일인 12월19일 오후, 서울 종로5가의 기독교회관 7층에 있는 ‘단속추방 중단, 출입국관리법 개악 저지, 이주노조 표적 탄압 분쇄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농성장에는 이주노동자와 연대활동가 20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8월부터 집중된 단속으로 이주노조는 생존 위기에 처했다. 투쟁을 통해 조직을 재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냉담하다. 게다가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마구 ‘사냥’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을 개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농민운동가가 말했듯이 “이 땅은 우리가 우리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다. 이 땅은 우리 자손에게서 잠시 빌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이 땅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하는가. 21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6시30분에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강제추방을 규탄하고 출입국관리법 개악 저지와 단속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그 자리에 함께 하려는 것은 나 또한 한 때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인간이며 노동자로서 잠시나마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함이다.

내오랜꿈 ---------------------------------------------------------------------------

내가 DJ나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민주니 개혁이니 진보니 하는 말만 끌어들였지 실제로 그런 가치에 걸맞는 정책을 제대로 이루어낸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진보라는 게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에 기초해서 정책들을 입안하는 것이다. 예컨대 하루 십만 명이 이용하는 건물에 단 한 사람의 장애인을 위해서라도 장애자 이동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인류 문명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결론내린 '진보'적 가치인 것이다. 여기에 기회비용이니 효율성이니 하는 가치는 장애인이라는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서는 부차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것.

도대체 그렇게 요란했던 '민주개혁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진보적 가치에 걸맞는 정책들이 몇 개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노동유연성을 빌미로 도입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나 이주노동자 문제는 DJ/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최악의 상태로 치달아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드는 사회문제로 발전했다. 다수당이 아니라서 힘이 없어 폐지 못한다던 국가보안법은 다수당이 된 뒤에도 걸레가 된 채 표류하고 있다. 석유자원을 위한 침략전쟁에 용병으로 참가해도 민주투사들은 '국익'이라며 지지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며 생지랄을 하다 온 나라의 아파트와 땅값을 사상 최고로 올려놓았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인텔리 출신의 '민주투사'(?)들은 DJ/노무현 정부를 진보개혁세력이라 외치며 자기위안을 일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 울분을 토하는 많은 정동영 지지자들, 통합신당 지지자들을 보면 안쓰럽다 못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당하고도 애정이 남았다니 존경스럽다. 하긴 그렇게 당하고 난 뒤 문국현으로 옮겨간 '민주투사'들도 많지만...

이랜드 노조간부 해고 소식이나 이주노동자 관련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진보라는 가치를 자신들의 존재가치와 비슷한 걸레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에게 하릴없는 분노가 쏟아진다. 부질없는 짓인 걸 알면서도 말이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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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2-2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간 해놓은게 하나는 있어요. 국가인권위원회!
별로 힘을 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 않나? 이것마저 이제 해체될까봐 겁나요.

내오랜꿈 2007-12-21 19:19   좋아요 0 | URL
그렇군...
그러고보니 <월간 인권>을 창간호부터 받아보고 있네.

이런 것 학교에서 받아 보나? 애들한테 보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인권위 홈페이지에서 "웹진 인권" 찾아 들어가서 구독 신청하면 무료로 보내 주고 있슴.

바람돌이 2007-12-23 23:59   좋아요 0 | URL
아 몰랐어요. 내일 가서 바로 신청해야지...
좋은 정보 감사!!!
 

이랜드, '대선 틈타' 노조 지도부 33명 집단 해고
뉴코아 18명·이랜드 15명…'교섭 중' 해고

여정민/기자
출처 : <프레시안> 2007년 12월 20일


  비정규직법 시행과 함께 불거져 나온 이랜드 그룹 비정규직 사태가 6개월 째 공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랜드 측이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의 위원장 등 지도부 33명을 집단 해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번 해고는 '연내 해결 의지를 갖고 노사가 다시 한 번 집중 교섭을 벌여보자'는 논의가 오가던 중에 이뤄진 것으로 박양수 뉴코아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에 대한 대대적인 해고라는 점에서 "이랜드 그룹 측의 사태 해결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랜드 "매장 불법 점거에 따라 절차를 거쳐 진행된 것"

▲ 비정규직법 시행과 함께 불거져 나온 이랜드 그룹 비정규직 사태가 6개월 째 공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랜드 측이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의 위원장 등 지도부 33명을 집단 해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프레시안
  뉴코아노조 간부들이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은 17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인 지난 18일. 박양수 위원장을 포함해 김호진 부위원장 등 18명의 간부들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동일 서울지부장 등 3명은 정직 6개월을, 유은란 동수원지부장을 비롯한 6명은 정직 3개월의 징계가 떨어졌다. 뉴코아노조는 지부장 이상 간부 전원이 징계를 받은 것이다.
  
  이랜드일반노조의 경우 20일 현재까지 2명만이 정식 해고 통보를 받았으나 노동부 및 이랜드 측에 따르면 김경욱 위원장 등 총 15명의 지도부에 대해 해고 통보가 이날 중으로 전달됐다. 특히 이랜드일반노조의 해고자 명단에는 일반 조합원도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대량 해고에 대해 이랜드 측은 "파업 기간 중 매장 불법 점거과 영업방해, PDA 무단 절취 등을 이유로 징계를 내렸다"며 "징계는 경영권 행사의 일환으로 교섭과는 별개"라고 밝혔다. 파업 과정에서 있었던 노조 측의 매장 점거로 벌금 등 형사 처벌을 받은 것이 사유가 된 것으로 "사내 규칙에 따라 절차를 거쳐 진행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비정규직 대량해고 해결하쟀더니 또 다시 대량 징계해고냐"
  
  하지만 노조는 "파업 자체는 적절한 절차를 거친 합법 파업이었으며 유통업체에서 파업 행위로서의 매장 점거의 불법성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악의적인 해고"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비정규직 대량해고 문제를 해결하자고 시작한 파업인데 또 다시 대량 징계해고라니 사 측의 사태 해결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더욱이 양 노조는 민주노총(위원장 이석행)을 통해 20일과 21일 '타결을 목적으로 한 집중 교섭'을 할 것을 노동부 및 이랜드 측과 협의 중이었다.
  
  홍윤경 이랜드노조 사무국장은 20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사측은 교섭에서 연내 타결을 위해 노력하자고 말하고는 있지만 교섭위원까지 모두 잘라 놓고 교섭을 통해 이 사태를 풀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치사하고 졸렬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뉴코아 노사의 경우 18명 집단 해고가 통보된 바로 그날 실무교섭을 벌이기도 했었다. 최호섭 뉴코아노조 사무국장은 "지난 18일 실무교섭에서는 해고 관련된 언급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징계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사측이 밝혔다"며 "사측이 입으로는 성실교섭을 얘기하고 있지만 또 한 번 뒤통수를 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집단 해고로 당장 두 노조의 교섭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홍윤경 사무국장은 "이런 상황에서 교섭이 큰 의미가 있겠냐"고 되물었다. 두 노조는 오는 성탄절을 전후해 수도권 및 전국 각지에서 다시 한 번 집중적인 매장 봉쇄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 이 같은 집단 해고로 당장 두 노조의 교섭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이 큰 의미가 있겠냐"고 보고 있는 두 노조는 오는 성탄절을 전후해 수도권 및 전국 각지에서 다시 한 번 집중적인 매장 봉쇄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프레시안
  "매장 점거 초래한 이랜드의 불법·탈법을 일방적으로 전가한 징계"

  
  법률적으로도 이번 징계는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비록 이랜드 측은 매장 점거라는 '불법'이 해고 사유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행위의 원인이 된 이랜드의 불법 및 탈법에 대한 책임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책임을 노조에게만 전가한 징계"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비록 현행법상 매장 점거에 소위 불법성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해고를 남발하고 회사가 각종 탈법 행위를 했던 만큼 회사도 상당한 가해자로서의 위치에 있다"며 "두 노조의 매장 점거 사건에 대한 형사판결문을 보면 이런 점이 이미 충분히 인정된 상황에서 노조 간부에게 그 책임을 일방적으로 떠넘길 수는 없는 요소가 상당히 있다"고 말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형사 처벌로 인한 해고에는 그 사건의 경과와 쌍방의 불법성 정도, 초래 원인 등을 충분히 상호 비교해 고려해야하는 것인데 이번 해고는 오히려 사용자가 비정규직법이라는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편법적으로 자신의 인사권을 남용한 측면이 강한만큼 그 책임도 고려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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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에 관한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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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2-2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겨레 21에 명동성당에서 여전히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랜드 노조간부들의 이야기가 올라왔더군요. 그놈의 대선 분위기에 묻혀버린 아픔들은 또 얼마나 많을런지.... 앞으로 더 힘들어질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참 이 겨울이 춥네요.

내오랜꿈 2007-12-21 00:14   좋아요 0 | URL
노무현이 청와대 들어가기 전에 제일 강조한 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었다. 그런데 그 5년 동안 제일 큰 사회문제로 발전되어 버렸다. 이러니 노무현을 진보개혁세력이라고 이야기하는 인간들 뺨을 '쌔려주고' 싶을 수밖에...

마늘빵 2007-12-21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이런 써글놈의 쉐이들. 죄송합니다. 이거 내오랜꿈님 서재서 -_- 쌍소리나 하고 있고. 아휴 저런거 볼 때마다 아주 화가 아니라 분노가 솟네요. 이번주 시사인엔 해고된 학습지 교사들 이야기가 실렸던데 그런 것들(부당해고하는 녀석들)은 확 그냥 헬리콥터에 실어다가 바다에 풍덩 빠뜨려서 죽기 전에 건져주면 안되나...

내오랜꿈 2007-12-21 19:21   좋아요 0 | URL
그건 '파시즘'입니다...-.-.
뭐, 저도 하도 욕을 잘하니 다 수용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