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8) 프랑스 오드의 몽톨리외
출처 : <인터넷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10월 19일
-누구나 중세 순례자가 된다-

왕립나사공방을 개조한 서점에서 아기가 자건거를 타고 놀고 있다.

새벽 5시. 이 마을 뒤쪽 나들목 다리 위에 걸터앉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중세의 순례자가 된 기분이다. 회반죽에 돌로 쌓은 인기척 없는 집의 담벼락을 어루만지고 이따금 불쑥 튀어나오는 고양이에 놀라기도 하면서…. 샤를마뉴 대왕 시절부터 터를 닦아온 마을이니 그 역사가 1000년도 더 되었지만, 새벽 산책을 나온 노부부와 인사를 나누다보면 다시 우리 시대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마을의 남쪽으로 한걸음에 지중해까지 내달을 수 있을 것처럼 굽이치는 구릉들의 풍경이 밀려든다. 오크어 방언을 사용하던 옛날에 ‘몽톨리우’는 원래 올리브 산이라는 뜻이었지만 올리브 나무를 쉽게 찾아보려면 뒷산까지 올라가야 한다.

마을로 이주를 결심하고 찾아온 네덜란드인 남편 롭 보겔과 그의 아일랜드인 부인이 탁자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 인물은 이탈리아 출신이다.
제일 먼저 문을 여는 빵집부터 공방 대여섯 곳과 서점 열일곱 집을 모두 둘러보는 동안 점심때가 되었다. 이 작은 마을에 호텔과 민박집은 모두 열 곳이나 된다. 카르카손이라는 유명한 요새도시 곁에 자리 잡은 입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로마네스크’한 중세의 낭만을 기대하며 촬영장처럼 고즈넉한 이 고장을 찾는 일본 할머니들도 쉽게 마주친다.

1990년에 ‘책과 그래픽 아트의 마을’로 출범한 몽톨리외는 다른 책마을에 비해 여러모로 차별화가 돋보인다. 일급관광지의 지원을 받는 셈이지만 마을 자체는 왕립 나사(羅絲)공방이 대혁명 때 몰락한 뒤로 쇠퇴일로였다. 한때는 4000명이 동시에 미사를 드릴 만큼 대단했던 생 탕드레 성당과 라 뒤르 강변의 산록, 카르카손 시를 이어주는 목이 좋은 위치만 제외하면 이렇다 할 유적도 없다.

박물관에 전시된 구식 식자기.
이 지역에는 멀리서 이주해온 외국인들이 다수 정착했다. 특히 영국인이 많이 찾아온다. 유럽연합의 실질적 효과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수세기 전 이 지역에 진출했던 영국인들은 향수에 떼밀려 자주 찾는 곳이지만 유럽이 통합하면서 아예 노후를 이곳에서 보내려는 북유럽인들도 늘고 있다. 호텔이나 기타 관광업소에서 영어를 하는 사람도 늘었다. 물론 파리와 그 이북 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많다.

‘모음(母音)’ 서점 주인 다니엘 자크 오드베르도 파리에서 내려왔다. 브레방 박물관 학예관도 파리에서 전공을 마치고 이곳에 취업했다. 서점 ‘수집가의 창고’의 주인은 북해 연안의 되커르크 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새 삶을 시험 중이다. 이제 3년째. 아직 대단한 벌이는 못되고 기름값에, 세금에, 누구나 하는 걱정을 안고 근근이 생활하고 있지만 북쪽의 고향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술취한 배’라든가, ‘모음’처럼 대시인들의 시에서 따온 서점 이름이 어떻든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우크라이나, 알제리 사람까지 이 마을에 속속 서점을 열고 있다. 네덜란드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은 세 곳이나 된다. 이들이 몽톨리외로 이주해오는 으뜸가는 이유는 물론 타지역에 비해 지대와 임대료가 현저하게 저렴하기 때문이다.

마을 벽에다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재미있다.
아일랜드 부인과 함께 집을 구하러 더블린에서 날아온 네덜란드인 웹디자이너 롭 보겔은 이곳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또 책마을이 갖고 있는 잠재력에도 끌렸다. 동포도 적지 않아 객지에서 예상되는 외로움 같은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구나 부인은 영어를 하니까 은퇴 후이지만 언제라도 일감을 찾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런 보겔의 사업 감각은 과연 사업수완이 뛰어난 자기 조상의 평판에 먹칠하지는 않을 모양이다. 아무튼 그는 골목에 상을 펴고 밤늦도록 계속된 흥겨운 술자리에서 이곳을 택한 가장 큰 이유로 날씨를 꼽았다.

‘모음’ 서점주인, 오드베르는 ‘파타 모르가나’ 총서를 차곡차곡 수집해 두었다. 문학애호가나 유난스러운 애장가가 아니더라도 군침을 삼킬 만큼 기막힌 컬렉션이다. ‘파타 모르가나’는 소위 조제 코르티 출판사처럼 제한된 필자와 공들인 한정판을 고집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또 오리지널 프린트로 사진과 글을 한데 묶은 책으로 화제를 뿌렸다. 단 25권만 제작하는 이 시리즈의 권당 평균 정가는 약 300만원이다. 앙드레 브르통처럼 공인된 거장의 것은 800만원이 넘는다. 저렴한 산문집이나 시집도 있다. 하지만 절판된 중고본이 신간보다 고가로 유통되는 일이 허다하다. 좋은 책은 분명 갈수록 가치가 오른다. 이 출판사는 ‘단번에 팔아치우고 마는’ 책에 승부를 거는 풍토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책값은 얼마던가? 아니, 수박 한통은 얼마더라? 등심 1인분이 얼마인가? 운동화 한짝에도 칠팔만원은 된다. 아직도 끄떡 없는 염천교에서 인두로 지지던 식의 중고 구두라도 몇만원은 한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에서 책은 헌신발짝 값만도 못한 것이다. 중고서적은 대체로 무게로 저울에 달아 유통된다. 출판인이나 저자 편에서는 국민 수준이 낮다고 하고, 국민은 책이 제값을 못한다고 의심한다. 아무튼 도서의 하향평준화는 분명하다. 수많은 시간과 지성을 쏟은 저자나 역자의 책이든, 시정잡배가 대필시켜 쓴 책이든 종이값이나 쪽수로서 정가를 맞춘다. 지성과 정신노동의 가치를 이렇게 경시하고 저평가하는 사회에서 사상의 향기는커녕 타인의 생각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도야하며, 바람직한 인내심 같은 것을 키울 여지란 기대하기 어렵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니, 시적인 표현을 제외하면 아예 상스러운 고함조차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읽어야 하는 소리 없는 대화로서의 독서의 미덕을 누가 옹호할 것인가.

책방 주인이 반드시 독서광은 아니지만 오드베르는 분명 독서광이다. 그는 글을 써볼까 하는 욕심이 없지도 않다. 파리 생활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욕심이다. 하지만 이곳은 자연을 좋아해서 산보를 즐기지 않는 한 무료하리만치 생활 리듬이 느린 것도 사실이다. 그의 꿈처럼 서점 주인이 아마추어 작가인 경우는 적지 않다. 정말 책을 사랑하다 보면 글에 연정을 품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날아가는 새처럼 책들을 묘사한 장식으로 창을 꾸몄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에르 로잔스키는 ‘한 가운데 불’ 서점을 개장하고 최근에 정착했다. 한권 한권을 반투명지로 포장해둔 꼼꼼한 이 사장님은 비교적 고가의 초현실주의 문학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1930년대 8절판(또는 국배판이라고 부르는 판형)에 앉힌, 1920~30년대의 판형으로 한 연대기를 기록한 화가들의 작품집 겸 전기물 가운데 로마와 스폴레토 등 이탈리아에서 인쇄하고 제작해온 불어책 중 하나를 골랐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제작해온 책에는 매권마다 고유번호를 붙이는 관행이 있다. 이런 책들은 대형판과 동시에, 또는 나중에 소형 보급판으로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 쿠르베 마네 등 대가들의 원작을 이런 복제판형으로 보는 재미는 각별하다. 잘 알려진 앙드레 브르통의 약간 과장된 가격의 작품집들은 대처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책장정 최고의 걸작인 피에르 포세르 장정의 변형판으로,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마르셀 장의 ‘초현실주의 회화사’ 1967년 쇠유 판도 보였다.

‘딜레당트’ 서점은 파리에 지사를 두고 일찌감치 이곳에 자리잡았다. 딜레당트는 절판된 걸작을 소량으로(500부 이내) 되살려내거나 신예를 발굴하는 데 주력해왔다. 특히 중단편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데 한몫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 출판계의 뒷이야기를 그린 ‘저자’의 작가 뱅상 라발레크는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딜레당트사 사주 도미니크 고티에는 파리에 올라가 있는 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 친구들의 책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없어 대단히 아쉬웠다.

몽톨리외 책마을의 출범은 철저하게 한 개인의 노력과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 주역은 미셸 브레방이다. 그는 몇해 전 작고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을 남겼다. 원래 고급 인쇄와 제본에 종사하던 이 사람은 굉장한 애서가였다. 마침 박물관에서는 과거 그가 인쇄하고 장정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미셀 뷔토르의 시화집(詩畵集)을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책과 인쇄술의 역사를 증언하는 패널과 석판. 컴퓨터에 곧바로 밀려난 사식기(寫植機)와 수백년 묵은 활판인쇄기도 진열돼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고활자 인쇄에 대한 소개는 누락되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세계사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구 중심적 근시안을 못 벗어났다. 그러니 ‘직지심경’을 알 리 없다.

브레방의 열의 덕에 공예공방들은 수십 쪽에 불과하지만 활판에 원작 판화나 사진을 곁들인 소책자를 활발히 펴내고 있다. 몽톨리외의 활기는 물론 주변 관광자원에 큰 힘을 얻고 있고, 이방인이 많은 것도 영국인을 필두도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동인이다. 하지만 서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동산 복덕방의 활약을 중요한 요인이라며 흐뭇해했다. 그들의 고국에서 부동산 시세와 세금을 못이긴 많은 북유럽인을 유치하면서 마을의 활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이 트는 새벽에 바라본 몽톨리외 전경.
이 서점들을 윗동네라고 한다면 200여m 떨어진 아랫마을에도 한 덩어리 책방이 모여 있다. 뒤뜰의 거대한 너도밤나무에 꿀릴 것 없는 커다란 건물이 몇동 서 있다. 깨진 유리창이나 떨어져 나간 벽체가 유적의 운치를 자아낸다. 하지만 마당에 주차해 있는 노란색 맹꽁이차가 일순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1740년대부터 중국에까지 수출했던 왕립나사공방 건물이다. 지금은 유리공방과 호텔과 서점으로 각 동을 나누어 사용한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아래층에서 꼬마가 세발자건거를 타고 까불어대는 재롱을 받아주다보면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흥분도, 고역도 가벼워진다.

이 집에서도 귀중한 한권을 찾았다. 잊혀진 미켈란젤로의 초상을 찾아 방랑했지만 그 자신 또한 후속편을 미완으로 남긴 채 종적을 감추고 실종된 미술사학자 폴 가르노가 지은 ‘미켈란젤로의 초상’이다. 1913년판. 폴 가르노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부인’에게 헌정하기 위해 이탈리아 전역의 고문서보관소와 도서관, 박물관, 서적상, 벼룩시장을 뒤지면서 미켈란젤로에 대한 열정과 부인에 대한 사랑을 하나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그 야심적인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수수께끼처럼 사라졌다. 이런 미술사의 혜성이 남긴 운석조각처럼 누렇게 바랜 그의 책을 바로 이곳에서 만났다. 인터넷에서 수배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아마 1차대전이 가르노를 집어삼킨 듯하다. 하지만 이런 발견보다 즐거운 것은 책갈피에 끼어있던 독자의 메모나 신문기사 등이 꼬깃꼬깃 접혀 있다가 손 안으로 굴러 떨어질 때이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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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은 무죄다
[Homo designans·2] '간판'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지상현/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심리학 박사
출처:<프레시안> 2007-05-17


서울의 거리풍경에 대해 말이 많다. "혼잡하고 세련되지 못하다", "녹지가 너무 적다", "전통과 단절되어 있고 한국적 특징이 적다", "마치 촌스런 뉴욕 같다"는 것 등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대체로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세련되게 정돈된 거리풍경과 한국적 거리풍경은 경우에 따라 상치될 수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첨언하고 싶다.
  
  예컨대 88 서울올림픽 때 거리를 세련되게 꾸민답시고 포장마차를 철거한 적이 있다. 유형의 문화유산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서울에서 한국적 맛을 느끼게 해줄 몇 안 되는 거리문화를 없애버린 꼴이었다. 당시 포장마차를 문화적 자산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물론 관에서는 시민의 통행권과 도시미관을 이유로 철거를 강행했다. 그러나 포장마차를 우리의 특색으로 인정하고 좀 더 세련된 거리문화로 다듬는 것이 더 문화중심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다.

'규제'인가, '자연발생적 조화'인가

  혼잡함의 주범인 간판에 관한 논의에서도 동일한 구도가 되풀이될 수 있다. 규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연발생적으로 놔둬야 하는가 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규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1943년부터 간판규제법을 제정해 크기와 간판의 개수, 색채를 규제하고 간판세까지 징수하는 파리나 비슷한 규제를 통해 도시미관을 정비한 일본의 사례를 거론한다. 그러나 파리의 규제는 문화유산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며 파리의 상업지구나 외곽지역에서는 규제가 느슨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손상시킬 역사적 유물이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 도시에서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간판들을 규제하는 것이 업주들의 불만만 자아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올 초부터 간판규제를 엄격히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에는 업주들의 민원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래서는 그 규제가 효과를 보기 어렵다.
  
  올림픽 때의 포장마차처럼 난립하는 간판들을 도리어 한국적 특색으로 보자면 그대로 두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홍콩의 도심에는 우리 못지않게 크고 붉은 간판들이 난립해 있다. 그렇다고 홍콩의 시민들이나 그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눈살을 찌푸리지는 않는다. 도리어 홍콩다움으로 인식할 뿐이다.

▲ 홍콩 구시가지의 모습ⓒ 홍콩 관광진홍청

'홍콩의 지혜'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러나 이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단순하게 볼 것이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붉은 색 등 원색을 많이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중단 없이 이어져 와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쌓여 있다. 예컨대 대만이나 홍콩의 고건축물을 보면 붉은 색의 채도가 생각보다 낮고 검정색과 함께 쓰는 경우가 많아 색채 간 충돌이 심하지 않다. 붉은 색과 청색 또는 초록색이 만나는 경계부위에 조각을 깊게 해 음영을 만들어 충돌을 피해가기도 한다.
  
  이런 노하우가 생활에 녹아 현재의 거리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더러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홍콩의 간판들에는 색채들 간의 채도에 강약을 주는 전통적 배색기법이 살아 있다. 간판 글자를 봐도 크기나 서체, 글자 간격 면에서 우리보다 낫다. 또한 간판과 상품 포장, 버스, 택시, 상점 인테리어 등 여러 환경요소들이 서로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왼쪽)중국의 고건축물에서는 붉은 색의 채도가 낮아 초록색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기둥의 검정색과 금색도 충돌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오른쪽)고채도의 보색들이 만나는 경우는 음각과 양각이 만들어 내는 음영이 두 색의 충돌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때다.

▲ 홍콩 웨스턴 마켓의 인테리어 배색이나 버스의 외장 색에 중국의 전통적 배색기법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 우리의 거리모습에서는 어떠한 전통도 찾을 수 없다. 또한 다른 환경요소들과 연계되어 있지도 않다

  우리도 중국인 못지않게 붉은 색을 포함한 화려한 원색대비를 좋아했다. 사찰의 단청, 색동저고리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전통 배색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성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성정이 라틴의 그것과 닮았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의 유니폼 색이나 붉은 악마는 그런 성정이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매우 다른 성정을 지녀 전통적으로 파스텔 톤의 색채와 중간색을 좋아한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일률적 기준으로 색채 사용을 규제하면 한국적 특색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우리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아지면 주변 환경은 색채중심에서 질감중심으로 바뀌고 색채도 우리의 성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저절로 부드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 안타깝게도 이런 아름다운 배색기법의 현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작은 뉴욕' '작은 도쿄' 만들어서야…

  문제는 급격한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성정에 맞는 전통 배색기법이 생활 속에 자리 잡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콩처럼 오랜 세월 숙성된 배색을 간판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한글도 투박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른 환경요소들과 조화를 이루지도 못한다. 식당 간판이 내부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고 서점간판, 생맥주집, 화장품점 간판들이 모두 비슷하게 소리만 지르고 있을 뿐이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너무 단선적이어서 간혹 아름답다고 몇몇 단체에서 선정한 간판들을 보면 서구풍 일색이다.
  
  우리가 할 일은 전통적인 것을 포함해서 다양한 미적 기준의 모델들을 개발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참고할 수 있도록 간판을 포함한 다양한 환경디자인 샘플을 누가 나서서 개발하고 업주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인들의 디자인 소양이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 관에서는 규제보다 디자인 소양을 높이는 일 등 간접적인 지원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나머지는 홍콩의 사례에서처럼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도쿄나 홍콩과 다른 서울이 될 수 있다. 도시환경정비가 절대로 '작은 뉴욕', '작은 도쿄'를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살림살이를 닮은 간판 혹은 '한국적 조치'의 원점
  
  규제 중심의 도시 환경 개선작업이 효과를 보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살림살이 때문이다. 우리의 거리모습은 우리의 살림살이가 만든 것이고 그 살림살이가 변하지 않는 이상 거리의 모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예컨대 경쟁이 치열하니 업주들은 행인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색채와 문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후발 업소일수록 이런 생각은 더 강하게 마련이다. 업소의 부침이 심하다 보니 업종이 바뀔 때마다 옛 간판 자국을 가리기 위해 먼저 간판보다 더 큰 간판을 붙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처음 건물을 지을 때 간판부착 위치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서로 밀집해 있어 여간해서는 간판들이 주는 혼잡함을 피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나름대로 미관을 생각하고 싶어도 참고할 만한 샘플이 없는 경우도 꽤 될 것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방법은 도와주는 방식이어야지 규제위주의 접근이 아니다. 규정 자체를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

▲ 업소가 바뀔 때마다 간판 자국을 가리기 위해 이전 보다 더 큰 간판을 달아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 도쿄 메구로역 주변의 건물. 설계 때부터 간판 부착위치가 고려돼 있다. 도쿄 대부분의 건물에서 이런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어떻게 색채, 형태, 서체, 질감, 크기 등 수많은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디자인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규정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예컨대 현재와 같이 "글자의 면적이 전체 면적의 8할 이하여야 하고 빨강이나 흑색 계열이 전체 면적의 절반을 넘으면 안 된다"는 식의 규정은 적용하기도 어렵고 디자인적 창의성을 죽이기만 할 뿐이다.
  
  빨간색으로 건물 전체를 뒤덮고 글자 크기가 건물 크기만 해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규정과 규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다. 파리의 간판이 아름다운 것은 규제 때문이 아니라 환경과 디자인에 대한 그들의 소양과 규제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문화적 자긍심이 몫을 하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규제는 단지 역사적 유물의 시각적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는 경고시스템일 뿐이다.

▲ 일본 신주쿠의 광고 간판(왼쪽)과 서울 신촌의 한 식당(가운데). 빨간색이 많다고 무조건 혼잡하고 자극적인 것은 아니다. 일본 녹본기 힐스의 루이비통 매장 간판(오른쪽). 글자가 커도 얼마든지 차분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가능하다.

'규제'로는 안 된다. 스스로 하게 하라!

▲ 동경 메구로 역 주변의 건물. 한 건물 내 여러 업체들의 간판위치와 크기가 통일되어 있다. 건물주의 관심이 있어야 이런 일들이 가능할 것이다.
  반복해서 이야기 하지만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업주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하고 관은 곁에서 지원만 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건물주들이 아름다운 간판이 건물의 내재가치를 높일 수 있고 상권 유입인구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 업주들과 간판 문제를 알아서 협의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고급 상점가는 그대로 두고 그렇지 않은 업소들을 작은 상권 단위로 묶어 요청이 있을 경우 전체적인 디자인을 코디네이션 해주고 개별업체의 디자인 상담을 해줄 필요도 있다. 상권 내 에서의 간판 경쟁이 필요 없도록 공동간판 등의 방안을 마련해 제시하고 더불어 간판제작자들의 안목을 높일 수 있는 디자인 교육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주들은 이들의 안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담당할 디자이너가 각 구청별로 몇 명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구청에도 디자이너가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 구청의 디자이너는 관련 교육프로그램 운영이나 코디네이터 혹은 상담자의 역할만 해야 한다.
  
  지역에 맞는 디자인 샘플이나 디자인 소스 개발을 지원해줄 지역의 디자이너 그룹을 육성할 필요도 있다. 중앙의 유명 디자인 회사에 지원에 의존할 경우 요즘 각 지자체의 심벌마크에서 보듯 하나씩 보면 그럴 듯하지만 모두 비슷비슷한 획일적인 디자인으로 거리 모습이 바뀔 수 있다. 이런 일들을 촉진할 수 있는 여러 지원책들이 지역 특성에 맞게 나와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한국 산업디자인진흥원(KIDP)과 같은 중앙의 기관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간판 디자인샘플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업주들이 참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관과 민이 협력하되 관은 규정을 최소화하고 간접적인 지원을 책임지며 민이 자발적으로 간판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해야 다소 더딜지라도 우리 살림살이에 들어맞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살림살이 수준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의 최적의 간판을 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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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7) 벨기에 뤽상부르의 르뒤
출처 : <인터넷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10월 12일
-익살·노래… 밤새 잔치는 계속됐다-

마을 사람들과 방문객들이 합주단의 연주가 막 시작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숲속으로 뚫린 르뒤의 진입로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뒤덮고, 그 뒤에서는 짐승들이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경고판 속의 노루와 멧돼지 일가족이 총총히 걸어가는 그림으로 실물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울창한 숲속에 숨은 마을의 수호신은 사냥의 신, 성(聖) 위베르. 그래서 르뒤를 성 위베르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숲은 벨기에 사람과 인연이 각별하다. 역사상 최초로 숲을 독립적인 풍경화로 격상시킨 사람도 벨기에 화가였다.

마을은 축제를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댔다. 오색찬란한 현대판 야바위 놀이기구도 괴물처럼 서서히 움직이며 노래와 불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군중 가운데 단 한 사람의 동양인이나 흑인, 아랍인을 보기 어려웠다. 이 산골이 퍽이나 깊은 벽지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몰려들어 식당 앞마당에서 맥주잔을 들고 축제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달콤하고 바삭한 와플을 굽고, 꼬마들은 회전책꽂이를 돌리며 만화책을 고르고 있었다. 검은 조끼로 복장을 통일한 지역의 아마추어 악대도 등장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혼성팀이다. 너나 없이 행진곡을 준비하면서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었다.

‘아트. 31’ 서점은 한쪽 서가를 바깥 풍경을 들여다보는 카메라 옵스쿠라의 가장장치로 꾸몄다.
그동안 공터에서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구경꾼 가운데 만화 ‘아스테릭스’ 속의 역사(力士)로 분장한 인물이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되레 코믹해 보였다. 퍼포먼스는 동네 아저씨가 통나무를 요리하는 것이었다. 행위예술의 조상격인 나무꾼 아저씨는 톱으로 통나무를 잘라 귀여운 토끼 한 마리를 순식간에 깎아냈다. 1960년대에 독일의 전위미술가 요제프 보이스가 이런 몸짓에서 민중의 미학정신을 드러냈던 장면이다. 보이스는 통나무 대신, 왕관을 녹여 황금토끼를 빚는 즉흥적 행위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프랑스의 68세대 대중가수 갱스부르는 생방송 중에 지폐에 연초를 말아 피우기도 했다. 무정부주의적 시위였다. 두 사람 모두 온몸으로 패권주의에 젖은 제도권 문화에 저항하는 예술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톱과 해머를 휘둘러 인간해방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행위의 기록이 과천현대미술관 같은 곳에서 값 비싸고 난해한 전위작품으로 탈바꿈해 전시됐을 때는 코웃음을 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나무꾼의 자발적 창작정신은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명품이 되어 순진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8월 첫째 토요일마다 모든 책방이 밤새 문을 열고 모든 주민과 방문객이 어우러져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이런 축제가 지금은 유럽 대륙 최초의 책마을로서 입지와 명성을 완전히 굳힌 이 심심산골 마을을 다시 솟아난 숲속의 옹달샘처럼 부활시킨 신호탄이었다. 이런 부활의 기적은 한 전직 언론인의 열정에서 비롯했다. 기자 출신 노엘 앙슬로는 1984년 부활절 축일을 책의 축제로 바꾸어놓자면서 전국 각지의 서점으로 수백 통의 편지를 부쳐 책마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금은 에세이풍의 맛깔스러운 소설도 쓰는, 당시 일간 ‘르 몽드’지 사진 칼럼니스트, 파트리크 뢰지에도 적극 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해 부활제의 사흘간 400여명의 주민을 설레게 하면서 1500명이 찾아와 책을 위한 축포를 쏘아 올렸다. 종교적 축제가 세속적 축제로 면모를 일신한 극적인 순간이다. 이렇게 대륙에서 책마을의 종가(宗家)로서 터를 닦은 르뒤 사람들은 특히 웨일스의 리처드 부스(자칭 책의 나라의 국왕폐하)의 우산에서 벗어나 차츰 대륙의 다른 책마을과 연대를 주도하고 있다.

‘달팽이’ 서점은 책장 사이로 마네킹을 세워 두었다.

이 마을 최대의 강점은 사시사철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동면기에 들어가는 다른 책마을과 다르게 마을 앞 숲에 훌륭한 스키장이 있다. 한 계절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이점인가. 책마을마다 겨울나기는 보릿고개 비슷하다. 그래서 달갑지 않은 겨울잠에서 잠시나마 깨어나 기지개를 켜려고, 알프스 스키장 근처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산촌에서는 한겨울에 책의 축제를 조직하곤 한다.

이곳의 또다른 장점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맥주양조장을 들 수 있다. 수도원에 들러 딸기코 수도사와 더불어 곡차거품으로 목을 축인 사람들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책마을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지척에 있는 ‘유로스페이스 센터’에서 첨단우주과학을 견학할 수 있다. 단 이 센터는 여름 한 철에만 일반에게 공개된다.

민중예술가가 통나무 토끼를 톱으로 조각하는 퍼포먼스 장면.

마을 뒤편 경사지는 서점을 경영하는 마을 사람의 주거단지이다. 은퇴한 노인 몇 가구는 예전처럼 마을에서 생활한다. 성당 앞에서 꽃을 가꾸며 살고 있는 할아버지 댁의 뜰 앞에서 전쟁 때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치열했던 아르덴 숲의 공방전과 마을에 진주했던 독일군 이야기. 숲에는 토끼와 산돼지, 꿩과 산비둘기, 노루 등 입맛을 다시게 하는 사냥감이 풍성했던 덕분에 그들이 아주 몹쓸 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은 이곳 맥주에 반해 눌러 살고 싶어 했다고도 했다.

마을에 서점은 서른세 곳이 있다. 하지만 실제 운영자는 스물두 명이다. 방문객은 지난 한 해만도 20만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대성공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이런 호황이 방문객에게 반드시 반갑지만도 않다. 이미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책값이 부쩍 비싸졌다고 느낀다. 중요한 고객인 독일인의 잦은 방문도 이런 물가상승을 부채질하는 데에 일조했다.

규모가 가장 큰 서점 ‘책시장’은 주로 신간 재고를 ‘떨이’로 처분하는 출판사들과 직거래를 한다. 아동물과 참고서가 주종목이다. ‘아트. 31’ ‘보물 따먹기 기둥’ ‘해양서점’ ‘그녀 곁의 서점’ 등의 주인들은 여성이다. 실내를 작은 범선의 박물관으로 꾸민 ‘해양서점’은 동인도회사의 범선들로부터 러·일전쟁 때 위용을 부린 철갑증기선, ‘모비 딕’의 고래잡이배와 ‘노인과 바다’의 쪽배에 이르기까지 바다와 기록과 문학 서적을 한 데 버무려놓았다. 19세기 후반에 우리 황해를 답사했던 열강의 군함도 동판화와 사진으로 확인된다. 자신들의 항구에 출항을 앞두고 정박한 모습이다.

브뤼헬의 ‘돌아온 탕아’ 판화. 주제와 상관없이 당대 플랑드르 촌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아트. 31’은 프랑스·네덜란드·독일 3개국의 책을 취급한다. 아주 작은 활자에 깐깐하게 편집한 독일 문고본 옆에서 프랑스 책은 다소 사치스럽게 보이는 반면 네덜란드 책은 검소하다 못해 약간 투박해 보인다. ‘아쉬비스트’ 서점은 고고학과 지리, 역사서 전문인데 브뤼셀의 큰 서점과 협조관계에 있다. 브뤼셀 중앙역 코앞에 있는 전설적인 ‘포사다’ 서점을 비롯해 시청 광장 뒤편의 미디 가(街)에 줄지은 서점들과 연계하고 있다. 먼 동업관계이다. 브뤼셀 벼룩시장 또한 중요한 거래처이다. 브뤼셀의 벼룩시장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진짜 벼룩시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을 유혹하는 카멜레온으로 변신 중이다. 그래도 브뤼셀의 벼룩시장과 주네브의 벼룩시장은 대륙의 남과 북을 대표하는 가장 거대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큰 벼룩이다.

‘달팽이 서점’은 천천히 찾지 않으면 안될 만큼 분류에 무심한 채 책들을 뒤죽박죽으로 쌓아두었다. 그래서 손님은 달팽이처럼 천천히 이 책장에서 저 책장으로 먼지구덩이를 타고 넘어야 한다. 끈기만 있다면 잡초 속에서 찔레꽃처럼 함초롬한 물건을 찾아내리라…. 손바닥 크기의 책자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걸작 ‘천년왕국’ 한 폭으로 한 권을 엮은 책이다. 그의 그림이 그토록 폭넓은 인기를 끄는 까닭은 의혹과 궁금증을 부채질하는 마술적인 이미지 덕분이다. 보스의 풍자는 교회 자체의 권위와 이단의 비밀을 동시에 겨냥한다. 그런데 이런 수수께끼는 신비주의나 형이상학적 관심과는 거리가 있다. 관객에게 의롭지 않은 권력의 실체를 생각해보라고 초대하는 손짓이다.

마을에서 서점 외에 농사짓고 사는 가구들은 서점이 터를 잡은 교회당 맞은편에 수십 가구 남아있다. 마을은 원래 목축을 주로 했지만 이곳도 대도시로 떠나는 청춘들을 붙잡을 묘책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연인들이 주말 데이트 코스로 찾아든다. 그러니 ‘화덕’이라는 이름의 호텔은 책을 핑계 삼지만 사실은 주말을 뜨겁게 지지려는 더 고매한 이상에 부풀어 달려오는 젊은이들의 속내를 잘 간파했던 셈이다. 일단 이 집 지배인인 아주머니가 친절을 발휘하면, 이는 재앙이다. 애교의 몸짓조차 그 큰 덩치 때문에 감당하기 어렵다.

‘달팽이 서점’ 맞은편에서 카페만 하던 집은 문을 닫았다. 일곱군데나 되는 식당들이 모두 성업 중이고 오늘 같은 날은 앉을 자리도 없다. 그러니 음료수나 커피만 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성질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먹성 좋은 사람들이다. 세숫대야 냉면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접시에 그득한 감자튀김과 노루와 양고기 허벅지 덩어리를 앞에 놓은 모양을 상상해보자.

삼종기도를 올릴 무렵, 교회의 종소리가 축제의 서곡처럼 울려 퍼진다. 이렇게 행복한 종소리로도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일단 성당 앞에서 스윙 리듬의 몇 곡을 연주해서 예의를 차린 다음 악대는 마을의 전통 가문(家紋)을 수놓은 깃발을 내세우고 순례에 나선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따라나서 이들을 응원한다. 이렇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축제는 이튿날 새벽까지 시 낭송과 고성방가와 수다와 행복한 포옹으로 이어진다. 조용한 시골마을의 밤을 배경으로 반딧불 무리처럼 천상을 밝히는 별빛 아래에서 잔치는 계속된다.

성당 앞 ‘화덕’과 마을 남쪽 끝자락 ‘감미옥(甘味屋)’, 두 집 모두 식당과 호텔을 겸하는 전통적 숙소이다. 그 두 집에 각각 짐을 푼 패거리들은 밤새 경쟁하듯 노래하고 춤춘다. 완전히 농민화가 브뤼헬의 그림 속에서 뛰어나온 익살스러운 사람들 같다. 이렇게 우리 눈앞에서는 익살이지만, 이런 기질은 책과 미술작품 속에서 위대한 냉소주의와 풍자정신으로 되살아난다. 그러니 벨기에 사람들 자신도 자기 동포의 속내를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이 그럴 듯하다. 평소에는 뚱하게 점잔을 빼더라도 일단 발동이 걸리면 못 말릴 정도로 웃기는 사람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에스파냐 식민치하의 반동적인 가톨릭 반종교개혁기라는 엄혹하던 시대에 종교재판의 고문대에 오르게 될까봐 몸을 사리던 몹쓸 불신의 자취로 보는 역사가도 있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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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와 '반(反)기능'이 디자인이라고?
[지상현의 Homo designans·3] 소통을 위한 디자인

지상현/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심리학 박사
출처:<프레시안> 2007-05-31


길고 뾰죽한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펑크족 청년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경관이 비아냥거렸다.
  "자네 발가락은 그렇게 길고 뾰죽한가?"
  멈춰선 청년이 경관의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하는 말.
  "아저씨 머리는 그 모자 안에 꽉 차 있는 모양이죠?"
  
  언젠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유머 한 토막이다. 경관은 이유 없고 쓸모도 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의 행동들을 나무라고 싶었겠지만 이 경우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듯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주변에서 늘상 보아넘기는 물건 중에는 펑크족의 구두 이상으로 기능과는 거리가 먼 형태들이 많다. '샐러리맨의 목줄'이라는 넥타이도 그렇고 셔츠의 칼라나 양복 소매 깃의 단추도 사실 별 쓸모없는 것들이다. 기능과 거리가 먼 이런 요소들이 왜 살아남아 있는 걸까. 필자는 여기서 우리가 '호모 데지그난스(Homo designans)', 즉 디자인적 존재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Homo designans의 어제와 오늘
  
  호모 데지그난스는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한다. '심미성', '독창성', '합목적성'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아름다우면서 새로워야 하고 용도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심미성)도 자주 보면 질리니 새로운 것(독창성)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기능적(합목적성)이어야 한다. 예컨대 휴대전화라면 쥐고 여닫기 편하며 번호를 누르거나 보기 쉽게 디자인해야 한다.
  
  휴대전화 같은 제품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면 기능이 합목적성에 해당되겠지만 기업의 심볼마크, 편집, 광고디자인 같은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분야에서라면 전하려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합목적적인 디자인이다. 가령 간판을 예로 들자면, 고급 중국식당이라면 고급스럽게, 퓨젼 중국식당이라면 그 특징이 드러나게 디자인 되어야 한다.
  
▲ 무겁고 투박해 착용감과 사용성은 떨어지지만 스포츠 매니아 층에게 크게 어필하는 시계들. 의기능(疑機能)적 장식까지 사용되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분야를 불문하고 디자인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시계라면 고급스럽고 예쁘면서 얇고 가벼워 착용감이 좋아야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투박하고 두꺼우며 시간을 읽기도 어려운 복잡한 디자인도 많이 팔리고 있다. 이런 디자인들은 과거의 시계 디자인에서 중시했건 기능성이나 착용감보다 사용자 취향의 표현, 즉 커뮤니케이션을 더 강조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펑크족 젊은이와 경찰은 각기 그들의 구두와 모자를 통해 펑크 문화와 경찰의 아이덴티티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패션,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등 디자인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디자인 분야가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를 보면 업무나 주거공간보다는 상업공간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1~2년에 한번 꼴로 바뀌는 매장 디자인에는 마치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처럼 극단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밀워키 WI 스토어의 골디 슈즈-샵의 매장은 오페라 '아이다'의 무대처럼 꾸며져 있다. 인체와 관련된 과학교재를 파는 '배어본즈' 사의 디스플레이는 해골이 도처에 널려 있어 무척이나 엽기적이다.
  
▲ 해골을 이용한 엽기적인 매장 디자인(왼쪽)과 오페라 무대를 연상시키는 슈즈-샵(오른쪽).

▲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장난감 시계 같지만 이런 패턴을 선호하는 성인들이 존재한다.

▲ 이런 건물장식은 장시간 머물거나 쳐다보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특정 문화의 소비자들을 흡인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 한국에 비해 다양한 휴대전화가 팔리는 일본에서는 이처럼 특정 계층만을 겨냥한 디자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전화기는 스쿠버 다이버들의 용구 같은 모양을 갖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와 '펑크족 차림'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가장 큰 이유로 문화의 다원화를 꼽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과거에 비해 여러 작은 문화로 세분화돼 있고 이런 경향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강해진다. 기업은 이런 하위문화를 포착할 수 있는 세련된 시장세분화 도구를 사용해 마케팅을 전개한다. 인구학적 변인들만을 이용하던 과거와 달리 심리학적 변인, 감성과학적 변인들은 물론 심지어 정신분석학적 방법이나 인류학적 방법까지 동원해 시장을 잘게 나누고 각 시장의 문화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생산한다.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처럼 제품의 기능이 우선시되고 사용법이 어려운 품목이나 주방용품처럼 안전이 중요한 품목에서는 사용성이라는 가치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시계, 가방, 구두처럼 패션화된 상품군에서는 브랜드 간(間), 브랜드 내(內) 스타일의 차이가 심하고 독특함이 강조된다. 주 고객층의 특수한 문화를 표현할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디자인에서는 찢어진 청바지처럼 반기능적 형태가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의기능적(疑機能的) 장식이 있는 경우도 많다. 앞서 본 시계에서 시계창을 누르고 있는 듯한 두개의 ㄷ字형태나 방수용 조임장치를 연상시키는 휴대폰 네 귀퉁이의 커다란 나사구멍, 프로야구단 기아타이거즈의 모자챙에 이중으로 달려 있는 것 같은 작은 챙 모양이 그런 것이다. 지금은 그저 관습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셔츠나 남자 양복의 칼라, 소매깃의 단추 등도 다분히 의기능적 디자인 요소다.
  
▲ 새로 바뀐 기아 타이거즈 야구단의 모자. 챙 위에 작은 천을 덧대어 특별한 기능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같은 시장의 변화에 작은 카페나 상품 매장의 상인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한 덕에 과학적 리서치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양한 커뮤니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흡인하기 위한 독특한 디자인을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도 디자인의 추세 변화에 톡톡히 한 몫을 하는 셈이다.
  
▲ 왼쪽의 티셔츠에서는 귀여운 만화주인공 '아톰'을 그로데스크한 형태로 변형했다. 성인이 된 아톰 매니아들의 데카당트한 문화를 겨냥한 디자인이다. 팀 버튼 감독의 엽기적인 캐릭터들도 비슷한 문화적 취향을 보여준다.

  이처럼 디자인 추세가 변화하는 배경으로 기능성에 대한 만족도가 포화상태에 이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예컨대 어딜가나 냉난방이 잘되고 차량을 많이 이용하는 현대 생활에서는 옷이나 신발은 어느 정도의 기능만 갖춰도 된다. 그래서 안전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좀 불편하더라도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거나 발보다 커다란 운동화를 신는 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된 디자인을 사용한다는 것은 메시지의 발신자가 된다는 뜻이다. 심벌마크를 통해 기업은 자사의 이념과 이미지를 발신하고 대중은 이를 수신한다. 소비자끼리 발신자가 되고 수신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T셔츠의 가슴에 새겨진 그래픽 심벌과 찢어진 청바지를 통해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구분해낸다.
  
  디자인의 가치 중심이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이 단절의 시대에 인터넷을 통한 각종 소모임과 동호회, 심지어 자살 사이트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펑크족이나 힙합족 등 젊은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복장과 행동은 누군가와의 대화를 위해 보내는 신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고, 그들이 밉살스럽지 않고 정답다 못해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이 시대에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시대에 디자이너가 할 일은 뭘까.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욕구와 깊게 만나야 한다. 과거의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기능적 욕구, 사회적 욕구와 만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에 보태어 소비자의 커뮤니케이션 욕구와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할 일이 늘어난 셈이다. 더 많이 읽고 경험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흔히 현대의 소비자가 구입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고 이미지라고 한다. 세상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 이미지들을 찾아 임자와 만나게 해주는 것, 바로 이 일이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디자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일들은 사람 간 소통의 도구를 만드는 일이고 때로 고립된 개인들을 밀실에서 광장으로 이끌어내는 치유의 수단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디자인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버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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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6) 프랑스 로렌의 퐁트누아 라 주트
출처 : <인터넷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10월 05일
-18세기 풍경 간직한 ‘사유의 들판’-

마을로 넘어가는 보주 주립공원 산마루의 저녁 풍경.

저수지가 거울처럼 빛나는 들판 사이로 들어섰다. 건초더미가 쌓여 있고, 수레바퀴가 나뒹군다. 길가의 높은 외양간에서 금방이라도 소 한 마리가 걸어 나올 듯하다. 몇 집 건너에서는 암소에게서 젖을 짜는 모습이 구경꾼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와이(Y)자를 거꾸로 돌려놓은 모양이라는 마을 로터리에는 전 세계의 책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 마을이 책마을의 중심지라도 된다는 표시였을까. 그 푯말에는 아직 준비 중인 머나먼 아이슬란드와 이탈리아 마을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어 이 지상에 갑자기 책마을 돌풍이라도 불어오는 기분이다. 트랙터와 벽에 기댄 농기구 사이의 창고 같은 둥근 아치의 이맛돌 아래로 들어서자 소 울음 소리 대신 첩첩이 쌓인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서점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의 문지방을 넘자마자 항상 수소문하던 책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웬일일까. 서점의 이름대로 10만권이 넘는 재고를 자랑하는 이 서점에서는 잃어버린 책이 기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잃어버린 문인, 저자를 찾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주인장은 작년이나 다름없이 사냥꾼 모자에 파이프를 물고 나타났다. 올해는 또 어떤지 마을의 안부를 물었다. 연간 방문객이 10만여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몇 해 전까지 6만명을 오락가락하던 데에 비해 대단히 흡족한 결과였다.

그런데 서점들은 인구 280명의 이 피폐했던 농촌을 일방적으로 점령하지 않았다. 로렌 지방의 이 마을사람들은 국적을 바꿔가며 이 점령군, 저 점령군에 치였던 기억 때문에 점령이라는 뉘앙스에 대한 반감이 여전하다. 대신 마을에서 농사짓는 사람과 책 파는 사람, 종이 만드는 사람이 어울려 살기로 했다. 농촌생활을 보존하면서 농부와 어울린 책마을이라는 참신한 발상은 누구보다 원로정치인 필립 세갱의 몫이다. 농림장관과 하원의장을 지낸 우파정객으로서 대중적 평판이 매우 좋은 세갱은 다른 문화 관료나 의원들이 화려한 공연단을 몰고 다니며 굿판을 벌이고 떡고물에 공을 들이는 동안, 진보적인 농촌 살리기 정책의 대안으로 책마을을 제안했다. 그것도 단순히 다른 책마을을 모방하지 않았다. 바로 농사와 책방이 공존하는 유례없는 방법을 실현하려 했다. 그는 주정부와 의회의 자금을 동원하는 등 유력한 정치활동으로 주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젖짜는 암소와 구경꾼.

그의 수완은 유럽공동체 기금이나 여러 경로의 돈줄을 끌어댄 일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자금을 마을의 외관 치장이나 홍보물 제작 등에 쏟아붓지 않았다. 그 대신 농촌생활의 전통을 유지하는 데에 쏟아 내실을 기한 사람이다. 농민이 경작 생활을 그대로 지속하면서 더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서점을 정착시키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 숙박업소 같은 구색맞추기식 투자도 자제했다. 겉으로 보기에 마을은 초라한 농가들이 어깨동무를 한 형국이다. 이렇게 해서 맑고 풋풋한 전통적 생활방식이 보존되었다. 주민을 우선시하고, 관광의 예상되는 부작용을 우선 차단한 것이다. 숙박은 지근거리에 있는 도시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민중판화에 수록된 신문팔이 이미지.
이는 일종의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농가는 18세기 농촌가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목재와 회반죽이 뒤얽힌 친근한 양식이다. 농가의 일부는 서점으로 팔렸고, 고용은 증가했다. 여기에 학자들이 가세했다. 국립과학원의 세르주 보네, 다니엘 멩고트 교수, 그리고 현재 성당 옆에 인쇄박물관을 차리고 은퇴생활을 즐기는 전(前) 메스 대학 총장 조제프 로스펠트가 주역이 되어 1994년에 정기적으로 시장을 열었다.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난 96년부터 본격적인 책마을을 띄웠다.

현재 서점은 스무 군데, 수제(手製) 종이직인과 인쇄공방 겸 박물관 두 곳, 식당은 한 곳이다. 시골풍의 회식을 위한 식당 ‘만인당(萬人堂)’의 이름도 넉넉하다. 그런데 마을의 모든 서점이 연중 개장하지는 않는다. 몇몇 서점은 5월에서 9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연다. 구멍가게도 덩달아 변신했다. 마을 초입에 자리잡은 ‘어제의 농장’은 주말에만 문을 열고, 지역특산물을 판매한다.

가장 빼어난 미술문고의 한 전형을 제시한 스키라판 문고 한 질.
이렇게 퐁트누아 라 주트에서는 지식인, 학자의 전폭적인 지원이 두드러진다. 알사스 로렌 학군은 대학입시를 비롯한 각종 지표에서 늘 선두권을 지켜왔고, 타 지역에 비해 공부벌레들이 많다는 평판을 누려왔다. 지난해 프랑스 국민의 도서구입은 두 사람당 한 권꼴이었다. 국민 전체의 도서구입과 독서량은 평균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10대의 경우는 현저하게 감소했다. 아무래도 인터넷 등 전자통신망의 영향이 큰 탓이다.

퐁트누아 라 주트 마을은 주변 환경도 뛰어나다. 생 디에 데 보주 시(市)처럼 학술대회를 자주 개최하는 중소도시가 바로 곁에 있다. 머리를 맑게 하는 푸른 보주 고원의 삼림과 모젤·뫼르트 강이 며칠 밤씩 계속되는 토론에 달아오른 머리를 식혀주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재작년에는 생 디에에서 북한의 식량과 기아 문제를 놓고 유럽 지리학자들이 공방을 벌였다.

‘장화 신은 고양이’ 서점에서는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판화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에피날 판화’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 민중판화의 이름을 보통명사 ‘이마주 데피날’이라고 부르게 했던 에피날시도 마을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다. 에피날 판화는 카드와 만화, 신문삽화 등에 폭넓게 이용되었다. 우리네 혁필이나 민화와 비슷하지만 그 보급은 행상이 맡았고 각 지역마다 소규모 공방들에서 제작한다. 또 각 공방은 자기 고장의 자존심을 걸고서 갖가지 해학과 풍자에 넘치는 재기를 발휘했다. 그렇게 해서 이 판화는 오늘날 민중미술의 모범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전통이 지난 세기 초 독일과 그 뒤를 이어 중국에서 그리고 멀리는 우리나라에까지, 민중판화의 혁명정신을 전파했다. 이런 민중판화도 대체로 성자들이나 나폴레옹 같은 위인을 풍자하게 마련인데 이 집에서는 신문팔이의 이미지가 나왔다.

마을 교차로에 서 있는 세계 책마을의 표지판.
알랭 드 피즈는 서점에 ‘소설쓰고 있네’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였다. 역사물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의 기개가 넘친다. 알사스 로렌이 배출한 역사가의 저작들이 수두룩했다. 쥘 미슐레의 프랑스혁명사는 그 이본이 셀 수 없이 많다. 그의 걸작 ‘마녀’에 민중판화로 삽화를 붙인 이본은 분명 양수겸장(兩手兼掌)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가 쓴 ‘바다’며 ‘새’ 같은 아름다운 글을 그냥 비켜갈 수 있을까. 문체의 꾸밈이 사실의 엄정성을 벗어나지 않고, 사실의 엄정성이 문체를 무디게 하지도 않는 역사가 이상으로 위대한 이 문필가의 글이 언제쯤 한글로 함께 읽어볼 수 있을까. 이 나라에서 그토록 음미할 만한 수많은 역사책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의 이런 훌륭한 모범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두 문화를 넘나들며 경계인으로서 살았기에 사회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남달랐고 또 이름의 표기에서 오해를 자주 낳았던 거물들의 원전도 수두룩하다. 마르크 블로흐는 물론이고 뒤르케임과 또 그 제자로 집단적 기억에 대한 역저를 남긴 모리스 알박스의 책들을 들춰보면서 그들 자신이 역사의 현장에서 고초를 겪고 희생된 사람들이니 더욱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불어 원전이 종종 영어판을 통해서야 우리에게 통용되니 유감이기는 하다. 영어판 정보로 유럽문화를 접하는 우리에게 소중한 원전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거대산업화한 영미와 독일 출판사들이 불어나 네덜란드 원전을 가로채고 있다. 이런 사업은 런던과 뉴욕에 정착한, 헝가리를 위시한 동유럽 이민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발품을 팔며 고생해서 공부한 선구자의 저작을 책상머리에 앉아 인용하고 재인용하면서 새로운 평가라도 내리겠다는 어투로 써낸 수많은 미술사와 예술가의 영어판 전기와 평전이 소개되는 실정이다.

층계참 사이의 선반에서 외젠 뮌츠의 저서들도 마주친다. 뮌츠는 사실상 화려한 도판을 수록한 미술사 책자의 원조 격인 미술사가다. 르네상스 전문가로서 프랑스 르네상스의 중요성을 탐구했던 이 사람은 각 개별 미술가의 평전을 쓰는 새시대를 열었다. 뮌츠는 라파엘로에 정통했지만, 로마의 옛 유적 발굴조사에 나섰던 이 화가의 고고학자로서의 면모를 밝혀주는 간략한 보고서를 손에 쥐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을의 방문객으로서는 엄청난 영광이다.

예술책 제본술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반데르 헤이덴.
뤽상부르 지방의 책마을에 근거를 둔 벨기에인 반데르 헤이덴은 격주 간격으로 두 마을을 오가며 일한다. 그의 공방의 애호가를 위한 실습연수 프로그램은 2주 기간인데 한 해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수강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일본인도 참여한다고 한다. 다른 공방보다 높은 인기는 그가 ‘약물’이라고 부르는 장식용 구리인장의 아름답고 방대한 컬렉션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한 권밖에 없는 책이나 책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자는 ‘예술책’ 바람도 도움이 되었다. 수강생들은 일기장이나 선물용 책자를 가죽 표지로 꾸미고, 과거의 활판 인쇄술로 문자를 새긴다.

외견상 가장 소박하고 규모가 작은 이 마을은 농촌공동체를 쇄신하는 문제에서 당분간 모범적 사례로 보인다. 제국주의 문화에 뿌리를 둔 관광문화를 최소한 수용하면서 위장된 민속촌 같은 마을이 아니라 서로의 생활방식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어울려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로 찾아오는 길도 파리와 스트라스부르를 왕복하는 초고속열차의 개통으로 한결 편리해졌다. 바로 10분 거리에 있는 화려한 크리스털의 본거지, 바카라를 거쳐 들어오는 길이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이 마을의 자연친화적 성격과 직결된 보주 주립공원의 산행을 즐기며 알사스로 넘어가는 산길이 더욱 매력적이다. 그 길이 알사스 포도밭 ‘루트’이다. 그 길을 따라 16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리크비르 마을을 들를 참이었다.

그 산길을 올라 알사스 평원과 마을을 양쪽으로 내려다보는 정상의 능선을 따라 소와 개를 끌고 나온 목동이 저물어가는 낙조와 짙은 구름 사이에서 실루엣을 그리고 있다. 이미 퐁트누아 라 주트는 물안개에 싸여 자취도 희미했다. 산마루에는 미국의 성조기가 나부끼고 있다. 2차대전 때 전몰용사를 기리는 비석과 함께…. 당시 이 산골의 청소년들도 미군이 주는 초콜릿과 껌을 즐겼고, 밤에는 클럽으로 몰려가 재즈를 즐겼다. 그들도 지금은 살아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됐지만….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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