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와 '반(反)기능'이 디자인이라고?
[지상현의 Homo designans·3] 소통을 위한 디자인

지상현/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심리학 박사
출처:<프레시안> 2007-05-31


길고 뾰죽한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펑크족 청년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경관이 비아냥거렸다.
  "자네 발가락은 그렇게 길고 뾰죽한가?"
  멈춰선 청년이 경관의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하는 말.
  "아저씨 머리는 그 모자 안에 꽉 차 있는 모양이죠?"
  
  언젠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유머 한 토막이다. 경관은 이유 없고 쓸모도 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의 행동들을 나무라고 싶었겠지만 이 경우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듯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주변에서 늘상 보아넘기는 물건 중에는 펑크족의 구두 이상으로 기능과는 거리가 먼 형태들이 많다. '샐러리맨의 목줄'이라는 넥타이도 그렇고 셔츠의 칼라나 양복 소매 깃의 단추도 사실 별 쓸모없는 것들이다. 기능과 거리가 먼 이런 요소들이 왜 살아남아 있는 걸까. 필자는 여기서 우리가 '호모 데지그난스(Homo designans)', 즉 디자인적 존재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Homo designans의 어제와 오늘
  
  호모 데지그난스는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한다. '심미성', '독창성', '합목적성'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아름다우면서 새로워야 하고 용도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심미성)도 자주 보면 질리니 새로운 것(독창성)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기능적(합목적성)이어야 한다. 예컨대 휴대전화라면 쥐고 여닫기 편하며 번호를 누르거나 보기 쉽게 디자인해야 한다.
  
  휴대전화 같은 제품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면 기능이 합목적성에 해당되겠지만 기업의 심볼마크, 편집, 광고디자인 같은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분야에서라면 전하려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합목적적인 디자인이다. 가령 간판을 예로 들자면, 고급 중국식당이라면 고급스럽게, 퓨젼 중국식당이라면 그 특징이 드러나게 디자인 되어야 한다.
  
▲ 무겁고 투박해 착용감과 사용성은 떨어지지만 스포츠 매니아 층에게 크게 어필하는 시계들. 의기능(疑機能)적 장식까지 사용되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분야를 불문하고 디자인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시계라면 고급스럽고 예쁘면서 얇고 가벼워 착용감이 좋아야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투박하고 두꺼우며 시간을 읽기도 어려운 복잡한 디자인도 많이 팔리고 있다. 이런 디자인들은 과거의 시계 디자인에서 중시했건 기능성이나 착용감보다 사용자 취향의 표현, 즉 커뮤니케이션을 더 강조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펑크족 젊은이와 경찰은 각기 그들의 구두와 모자를 통해 펑크 문화와 경찰의 아이덴티티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패션,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등 디자인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디자인 분야가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를 보면 업무나 주거공간보다는 상업공간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1~2년에 한번 꼴로 바뀌는 매장 디자인에는 마치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처럼 극단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밀워키 WI 스토어의 골디 슈즈-샵의 매장은 오페라 '아이다'의 무대처럼 꾸며져 있다. 인체와 관련된 과학교재를 파는 '배어본즈' 사의 디스플레이는 해골이 도처에 널려 있어 무척이나 엽기적이다.
  
▲ 해골을 이용한 엽기적인 매장 디자인(왼쪽)과 오페라 무대를 연상시키는 슈즈-샵(오른쪽).

▲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장난감 시계 같지만 이런 패턴을 선호하는 성인들이 존재한다.

▲ 이런 건물장식은 장시간 머물거나 쳐다보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특정 문화의 소비자들을 흡인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 한국에 비해 다양한 휴대전화가 팔리는 일본에서는 이처럼 특정 계층만을 겨냥한 디자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전화기는 스쿠버 다이버들의 용구 같은 모양을 갖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와 '펑크족 차림'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가장 큰 이유로 문화의 다원화를 꼽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과거에 비해 여러 작은 문화로 세분화돼 있고 이런 경향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강해진다. 기업은 이런 하위문화를 포착할 수 있는 세련된 시장세분화 도구를 사용해 마케팅을 전개한다. 인구학적 변인들만을 이용하던 과거와 달리 심리학적 변인, 감성과학적 변인들은 물론 심지어 정신분석학적 방법이나 인류학적 방법까지 동원해 시장을 잘게 나누고 각 시장의 문화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생산한다.
  
  휴대전화나 가전제품처럼 제품의 기능이 우선시되고 사용법이 어려운 품목이나 주방용품처럼 안전이 중요한 품목에서는 사용성이라는 가치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시계, 가방, 구두처럼 패션화된 상품군에서는 브랜드 간(間), 브랜드 내(內) 스타일의 차이가 심하고 독특함이 강조된다. 주 고객층의 특수한 문화를 표현할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디자인에서는 찢어진 청바지처럼 반기능적 형태가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의기능적(疑機能的) 장식이 있는 경우도 많다. 앞서 본 시계에서 시계창을 누르고 있는 듯한 두개의 ㄷ字형태나 방수용 조임장치를 연상시키는 휴대폰 네 귀퉁이의 커다란 나사구멍, 프로야구단 기아타이거즈의 모자챙에 이중으로 달려 있는 것 같은 작은 챙 모양이 그런 것이다. 지금은 그저 관습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셔츠나 남자 양복의 칼라, 소매깃의 단추 등도 다분히 의기능적 디자인 요소다.
  
▲ 새로 바뀐 기아 타이거즈 야구단의 모자. 챙 위에 작은 천을 덧대어 특별한 기능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같은 시장의 변화에 작은 카페나 상품 매장의 상인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한 덕에 과학적 리서치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양한 커뮤니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흡인하기 위한 독특한 디자인을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도 디자인의 추세 변화에 톡톡히 한 몫을 하는 셈이다.
  
▲ 왼쪽의 티셔츠에서는 귀여운 만화주인공 '아톰'을 그로데스크한 형태로 변형했다. 성인이 된 아톰 매니아들의 데카당트한 문화를 겨냥한 디자인이다. 팀 버튼 감독의 엽기적인 캐릭터들도 비슷한 문화적 취향을 보여준다.

  이처럼 디자인 추세가 변화하는 배경으로 기능성에 대한 만족도가 포화상태에 이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예컨대 어딜가나 냉난방이 잘되고 차량을 많이 이용하는 현대 생활에서는 옷이나 신발은 어느 정도의 기능만 갖춰도 된다. 그래서 안전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좀 불편하더라도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거나 발보다 커다란 운동화를 신는 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된 디자인을 사용한다는 것은 메시지의 발신자가 된다는 뜻이다. 심벌마크를 통해 기업은 자사의 이념과 이미지를 발신하고 대중은 이를 수신한다. 소비자끼리 발신자가 되고 수신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T셔츠의 가슴에 새겨진 그래픽 심벌과 찢어진 청바지를 통해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구분해낸다.
  
  디자인의 가치 중심이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이 단절의 시대에 인터넷을 통한 각종 소모임과 동호회, 심지어 자살 사이트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펑크족이나 힙합족 등 젊은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복장과 행동은 누군가와의 대화를 위해 보내는 신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고, 그들이 밉살스럽지 않고 정답다 못해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이 시대에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시대에 디자이너가 할 일은 뭘까.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욕구와 깊게 만나야 한다. 과거의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기능적 욕구, 사회적 욕구와 만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에 보태어 소비자의 커뮤니케이션 욕구와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할 일이 늘어난 셈이다. 더 많이 읽고 경험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흔히 현대의 소비자가 구입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고 이미지라고 한다. 세상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 이미지들을 찾아 임자와 만나게 해주는 것, 바로 이 일이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디자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일들은 사람 간 소통의 도구를 만드는 일이고 때로 고립된 개인들을 밀실에서 광장으로 이끌어내는 치유의 수단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디자인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버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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