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7) 벨기에 뤽상부르의 르뒤
출처 : <인터넷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10월 12일
-익살·노래… 밤새 잔치는 계속됐다-

마을 사람들과 방문객들이 합주단의 연주가 막 시작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숲속으로 뚫린 르뒤의 진입로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뒤덮고, 그 뒤에서는 짐승들이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경고판 속의 노루와 멧돼지 일가족이 총총히 걸어가는 그림으로 실물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울창한 숲속에 숨은 마을의 수호신은 사냥의 신, 성(聖) 위베르. 그래서 르뒤를 성 위베르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숲은 벨기에 사람과 인연이 각별하다. 역사상 최초로 숲을 독립적인 풍경화로 격상시킨 사람도 벨기에 화가였다.

마을은 축제를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댔다. 오색찬란한 현대판 야바위 놀이기구도 괴물처럼 서서히 움직이며 노래와 불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군중 가운데 단 한 사람의 동양인이나 흑인, 아랍인을 보기 어려웠다. 이 산골이 퍽이나 깊은 벽지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몰려들어 식당 앞마당에서 맥주잔을 들고 축제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달콤하고 바삭한 와플을 굽고, 꼬마들은 회전책꽂이를 돌리며 만화책을 고르고 있었다. 검은 조끼로 복장을 통일한 지역의 아마추어 악대도 등장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혼성팀이다. 너나 없이 행진곡을 준비하면서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었다.

‘아트. 31’ 서점은 한쪽 서가를 바깥 풍경을 들여다보는 카메라 옵스쿠라의 가장장치로 꾸몄다.
그동안 공터에서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구경꾼 가운데 만화 ‘아스테릭스’ 속의 역사(力士)로 분장한 인물이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되레 코믹해 보였다. 퍼포먼스는 동네 아저씨가 통나무를 요리하는 것이었다. 행위예술의 조상격인 나무꾼 아저씨는 톱으로 통나무를 잘라 귀여운 토끼 한 마리를 순식간에 깎아냈다. 1960년대에 독일의 전위미술가 요제프 보이스가 이런 몸짓에서 민중의 미학정신을 드러냈던 장면이다. 보이스는 통나무 대신, 왕관을 녹여 황금토끼를 빚는 즉흥적 행위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프랑스의 68세대 대중가수 갱스부르는 생방송 중에 지폐에 연초를 말아 피우기도 했다. 무정부주의적 시위였다. 두 사람 모두 온몸으로 패권주의에 젖은 제도권 문화에 저항하는 예술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톱과 해머를 휘둘러 인간해방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행위의 기록이 과천현대미술관 같은 곳에서 값 비싸고 난해한 전위작품으로 탈바꿈해 전시됐을 때는 코웃음을 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나무꾼의 자발적 창작정신은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명품이 되어 순진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8월 첫째 토요일마다 모든 책방이 밤새 문을 열고 모든 주민과 방문객이 어우러져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이런 축제가 지금은 유럽 대륙 최초의 책마을로서 입지와 명성을 완전히 굳힌 이 심심산골 마을을 다시 솟아난 숲속의 옹달샘처럼 부활시킨 신호탄이었다. 이런 부활의 기적은 한 전직 언론인의 열정에서 비롯했다. 기자 출신 노엘 앙슬로는 1984년 부활절 축일을 책의 축제로 바꾸어놓자면서 전국 각지의 서점으로 수백 통의 편지를 부쳐 책마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금은 에세이풍의 맛깔스러운 소설도 쓰는, 당시 일간 ‘르 몽드’지 사진 칼럼니스트, 파트리크 뢰지에도 적극 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해 부활제의 사흘간 400여명의 주민을 설레게 하면서 1500명이 찾아와 책을 위한 축포를 쏘아 올렸다. 종교적 축제가 세속적 축제로 면모를 일신한 극적인 순간이다. 이렇게 대륙에서 책마을의 종가(宗家)로서 터를 닦은 르뒤 사람들은 특히 웨일스의 리처드 부스(자칭 책의 나라의 국왕폐하)의 우산에서 벗어나 차츰 대륙의 다른 책마을과 연대를 주도하고 있다.

‘달팽이’ 서점은 책장 사이로 마네킹을 세워 두었다.

이 마을 최대의 강점은 사시사철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동면기에 들어가는 다른 책마을과 다르게 마을 앞 숲에 훌륭한 스키장이 있다. 한 계절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이점인가. 책마을마다 겨울나기는 보릿고개 비슷하다. 그래서 달갑지 않은 겨울잠에서 잠시나마 깨어나 기지개를 켜려고, 알프스 스키장 근처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산촌에서는 한겨울에 책의 축제를 조직하곤 한다.

이곳의 또다른 장점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맥주양조장을 들 수 있다. 수도원에 들러 딸기코 수도사와 더불어 곡차거품으로 목을 축인 사람들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책마을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지척에 있는 ‘유로스페이스 센터’에서 첨단우주과학을 견학할 수 있다. 단 이 센터는 여름 한 철에만 일반에게 공개된다.

민중예술가가 통나무 토끼를 톱으로 조각하는 퍼포먼스 장면.

마을 뒤편 경사지는 서점을 경영하는 마을 사람의 주거단지이다. 은퇴한 노인 몇 가구는 예전처럼 마을에서 생활한다. 성당 앞에서 꽃을 가꾸며 살고 있는 할아버지 댁의 뜰 앞에서 전쟁 때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치열했던 아르덴 숲의 공방전과 마을에 진주했던 독일군 이야기. 숲에는 토끼와 산돼지, 꿩과 산비둘기, 노루 등 입맛을 다시게 하는 사냥감이 풍성했던 덕분에 그들이 아주 몹쓸 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은 이곳 맥주에 반해 눌러 살고 싶어 했다고도 했다.

마을에 서점은 서른세 곳이 있다. 하지만 실제 운영자는 스물두 명이다. 방문객은 지난 한 해만도 20만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대성공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이런 호황이 방문객에게 반드시 반갑지만도 않다. 이미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책값이 부쩍 비싸졌다고 느낀다. 중요한 고객인 독일인의 잦은 방문도 이런 물가상승을 부채질하는 데에 일조했다.

규모가 가장 큰 서점 ‘책시장’은 주로 신간 재고를 ‘떨이’로 처분하는 출판사들과 직거래를 한다. 아동물과 참고서가 주종목이다. ‘아트. 31’ ‘보물 따먹기 기둥’ ‘해양서점’ ‘그녀 곁의 서점’ 등의 주인들은 여성이다. 실내를 작은 범선의 박물관으로 꾸민 ‘해양서점’은 동인도회사의 범선들로부터 러·일전쟁 때 위용을 부린 철갑증기선, ‘모비 딕’의 고래잡이배와 ‘노인과 바다’의 쪽배에 이르기까지 바다와 기록과 문학 서적을 한 데 버무려놓았다. 19세기 후반에 우리 황해를 답사했던 열강의 군함도 동판화와 사진으로 확인된다. 자신들의 항구에 출항을 앞두고 정박한 모습이다.

브뤼헬의 ‘돌아온 탕아’ 판화. 주제와 상관없이 당대 플랑드르 촌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아트. 31’은 프랑스·네덜란드·독일 3개국의 책을 취급한다. 아주 작은 활자에 깐깐하게 편집한 독일 문고본 옆에서 프랑스 책은 다소 사치스럽게 보이는 반면 네덜란드 책은 검소하다 못해 약간 투박해 보인다. ‘아쉬비스트’ 서점은 고고학과 지리, 역사서 전문인데 브뤼셀의 큰 서점과 협조관계에 있다. 브뤼셀 중앙역 코앞에 있는 전설적인 ‘포사다’ 서점을 비롯해 시청 광장 뒤편의 미디 가(街)에 줄지은 서점들과 연계하고 있다. 먼 동업관계이다. 브뤼셀 벼룩시장 또한 중요한 거래처이다. 브뤼셀의 벼룩시장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진짜 벼룩시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을 유혹하는 카멜레온으로 변신 중이다. 그래도 브뤼셀의 벼룩시장과 주네브의 벼룩시장은 대륙의 남과 북을 대표하는 가장 거대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큰 벼룩이다.

‘달팽이 서점’은 천천히 찾지 않으면 안될 만큼 분류에 무심한 채 책들을 뒤죽박죽으로 쌓아두었다. 그래서 손님은 달팽이처럼 천천히 이 책장에서 저 책장으로 먼지구덩이를 타고 넘어야 한다. 끈기만 있다면 잡초 속에서 찔레꽃처럼 함초롬한 물건을 찾아내리라…. 손바닥 크기의 책자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걸작 ‘천년왕국’ 한 폭으로 한 권을 엮은 책이다. 그의 그림이 그토록 폭넓은 인기를 끄는 까닭은 의혹과 궁금증을 부채질하는 마술적인 이미지 덕분이다. 보스의 풍자는 교회 자체의 권위와 이단의 비밀을 동시에 겨냥한다. 그런데 이런 수수께끼는 신비주의나 형이상학적 관심과는 거리가 있다. 관객에게 의롭지 않은 권력의 실체를 생각해보라고 초대하는 손짓이다.

마을에서 서점 외에 농사짓고 사는 가구들은 서점이 터를 잡은 교회당 맞은편에 수십 가구 남아있다. 마을은 원래 목축을 주로 했지만 이곳도 대도시로 떠나는 청춘들을 붙잡을 묘책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연인들이 주말 데이트 코스로 찾아든다. 그러니 ‘화덕’이라는 이름의 호텔은 책을 핑계 삼지만 사실은 주말을 뜨겁게 지지려는 더 고매한 이상에 부풀어 달려오는 젊은이들의 속내를 잘 간파했던 셈이다. 일단 이 집 지배인인 아주머니가 친절을 발휘하면, 이는 재앙이다. 애교의 몸짓조차 그 큰 덩치 때문에 감당하기 어렵다.

‘달팽이 서점’ 맞은편에서 카페만 하던 집은 문을 닫았다. 일곱군데나 되는 식당들이 모두 성업 중이고 오늘 같은 날은 앉을 자리도 없다. 그러니 음료수나 커피만 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성질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먹성 좋은 사람들이다. 세숫대야 냉면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접시에 그득한 감자튀김과 노루와 양고기 허벅지 덩어리를 앞에 놓은 모양을 상상해보자.

삼종기도를 올릴 무렵, 교회의 종소리가 축제의 서곡처럼 울려 퍼진다. 이렇게 행복한 종소리로도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일단 성당 앞에서 스윙 리듬의 몇 곡을 연주해서 예의를 차린 다음 악대는 마을의 전통 가문(家紋)을 수놓은 깃발을 내세우고 순례에 나선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따라나서 이들을 응원한다. 이렇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축제는 이튿날 새벽까지 시 낭송과 고성방가와 수다와 행복한 포옹으로 이어진다. 조용한 시골마을의 밤을 배경으로 반딧불 무리처럼 천상을 밝히는 별빛 아래에서 잔치는 계속된다.

성당 앞 ‘화덕’과 마을 남쪽 끝자락 ‘감미옥(甘味屋)’, 두 집 모두 식당과 호텔을 겸하는 전통적 숙소이다. 그 두 집에 각각 짐을 푼 패거리들은 밤새 경쟁하듯 노래하고 춤춘다. 완전히 농민화가 브뤼헬의 그림 속에서 뛰어나온 익살스러운 사람들 같다. 이렇게 우리 눈앞에서는 익살이지만, 이런 기질은 책과 미술작품 속에서 위대한 냉소주의와 풍자정신으로 되살아난다. 그러니 벨기에 사람들 자신도 자기 동포의 속내를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이 그럴 듯하다. 평소에는 뚱하게 점잔을 빼더라도 일단 발동이 걸리면 못 말릴 정도로 웃기는 사람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에스파냐 식민치하의 반동적인 가톨릭 반종교개혁기라는 엄혹하던 시대에 종교재판의 고문대에 오르게 될까봐 몸을 사리던 몹쓸 불신의 자취로 보는 역사가도 있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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