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 ‘약념’의 매혹

소문난 ‘요리의 달인’의 비결은 스파이스, 음식의 화룡점정이 몸에 좋은 약도 되네

<한겨레21> 제682호 2007년10월25일

▣ 채윤정 자유기고가 lizard25@naver.com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2주에 한 번씩 인도음식 전문점을 찾는 회사원 이찬우(33)씨는 매콤한 탄두리 치킨과 신선한 나프라탄 커리가 차려진 식탁 앞에 앉으면 호사가가 된 기분이 든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색과 향이 강렬한 음식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입 안에는 상사를 설득시켜야 할 논리정연한 말 대신 침이 고인다. 강렬하고 매콤한 향을 입 안 가득 씹고 있으면 일상에 활기가 돈다는 이씨는 요즘 들어 점심 시간이면 향신료를 활용하는 베트남이나 타이 음식전문점들도 찾는다.


△ 여러 가지 향신료들. 윗줄 왼쪽부터 육계피, 사프란, 겨자, 강황, 올스파이스, 회향, 아랫줄은 정향, 커민, 팔각, 육두구, 고추, 카더몬.(사진/ <향신료> 김영사 제공)

친구들에게 화려한 식탁을 제공해 ‘요리의 달인’으로 통하는 조혜란(47·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씨는 신선한 재료와 마지막에 첨가하는 향신료를 ‘비결’로 꼽는다. 평소에 잘 맛보지 못하는 요리를 선택하고 이에 맞는 향신료를 넣으면 전혀 새로운 맛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조씨는 향신료가 요리를 요리답게 하는 필수적인 ‘조연’이라고 했다. 조씨의 부엌에는 냄새를 풍기는 다양한 씨앗과 열매들, 가루와 꽃잎이 밀폐용기에 각각 담겨져 있다.

허브와 스파이스의 차이

카더몬, 사프란, 정향, 아니스, 육두구, 강황, 커민, 올스파이스…. 낯선 이름들이다. 참깨, 후추, 계피, 고추, 생강, 마늘…. 여기는 낯익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제한된 수의 향신료만 사용돼왔다. 국내 식품회사들이 강황, 정향, 월계수잎, 통백후추 등 향신료 제품을 내놓고, 웰빙 열풍이 불면서 천연 향신료를 이용한 에스닉푸드 전문점의 수가 대폭 증가한 것도 2000년대 이후다. 음식칼럼니스트 정한진씨는 “식물의 열매, 씨앗, 껍질, 꽃의 일부로 이름처럼 향이 나고 매운 맛이 나며 먹을 수 있다면 모두 향신료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향신료가 허브와 혼동될 때가 많다. 식물에서 얻되 박하, 파슬리, 바질처럼 잎과 줄기에서 얻었다면 허브로 분류된다. ‘중국 파슬리’로 불리는 코리앤더의 경우 향신료와 허브로 모두 활용되는데, 씨앗은 향신료이며 잎은 허브인 식이다.

향신료가 특별한 이유는 독특한 향과 빛깔 덕분이다. 특별한 향은 향신료에 들어 있는 휘발성 기름인 정유가 낸다. 마늘의 톡 쏘는 듯 강렬한 냄새는 알리신 때문이고, 고추의 알싸한 냄새는 캡사이신, 생강은 청량한 진저롤 덕분이다. 노란색을 내는 카레나 사프란이 들어간 금색 요리는 시각까지 자극해 눈으로 한 번, 코로 한 번, 입으로 또 한 번, 세 번 먹는 셈이다. 식욕을 돋우는 역할 외에도 향신료는 고기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처럼 좋지 못한 냄새를 가리는 구실을 한다. 가령 정향은 방향유 함량이 20%에 달해 원재료의 향을 없애버릴 정도로 향기가 강하다. 그래서 햄이나 고기에 직접 꽂아서 요리하기도 한다. 미나릿과의 회향은 냄새를 되돌린다는 이름처럼 질 나쁜 와인 향을 부드럽게 바꿀 때 이용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말로 ‘회향씨를 뿌리다’라는 관용구가 ‘속이다’라는 의미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당수의 향신료는 살균과 방부 효과가 있어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해주기도 한다. 열대 지방일수록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음식 보존을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최근 미국 애틀랜타 식품기술공학자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마늘(75%)과 계피(80%)는 식중독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현대의 향신료는 주로 요리에 쓰여 먹는 즐거움을 배가하는 데 사용되지만 고대의 향신료는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향신료는 영어로 스파이스인데 약품이라는 뜻의 라틴어 ‘스피시스’(species)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양념도 사실 한자어로는 ‘약념’으로 표기한다고 알려져 있다. 향신료의 대표적인 건강 효과로는 소화를 돕는 작용을 꼽을 수 있다. 향신료에 함유된 알칼로이드 성분은 타액이나 소화액 분비를 촉진한다. 고기를 먹을 때 마늘을 함께 먹는 것도 소화를 돕기 위해서다.

멀미 날 땐 생강, 딸꾹질엔 회향

각 향신료마다 특별한 건강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차멀미를 할 때는 생강차를 마시면 진정이 된다.

최근 영국의 의학전문지 <랜싯>은 생강이 멀미약보다 멀미억제 효과가 2배 이상 뛰어나다고 밝혔다. 딸꾹질을 할 때는 회향을 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졸리고 머리가 무거울 때는 사프란차를 끓여 마시면 좋고, 불면증에는 육두구 가루 약간을 뜨거운 물에 타 마시면 진정 효과를 낼 수 있다. 입안의 마늘 냄새는 코리앤더나 카더몬 씨를 씹으면 껌 이상으로 효과적이다.


△ 향신료 애호가인 조혜란씨는 신선한 재료와 음식 궁합이 잘 맞는 향신료를 고르는 것이 즐거운 식탁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향신료의 최음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지만 고대 로마인들과 중세 유럽에서는 암술 꽃대를 사용하는 사프란을 강력한 최음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프란은 향신료 중 가장 값이 비싼데, 꽃 100송이를 따야 겨우 1g 정도를 얻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원산지로 했던 중세의 향신료는 유럽에서 보석이나 화폐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사프란 500g은 말 한 마리 가격으로 거래됐고 생강 500g은 양 한 마리, 후추 한 줌은 황소 반 마리와 교환됐다. 이제 큰 부담 없이 누구라도 요리에 향신료를 사용한다.

향신료에는 단일 향신료와 혼합 향신료가 있다. 인도의 커리나 마살라, 오향장육에 사용하는 오향, 일본 요리에 뿌려먹는 칠미, 프랑스의 카트르 에피스는 모두 몇 가지 향신료를 섞어 만든 혼합 향신료이다. 가령 오향은 산초·팔각·회향·정향·계피 등 오행철학을 기본으로 해 다섯 가지 향신료를 섞은 것이다. 카레가 노란색을 내는 것은 강황 때문인데 후추·고추·생강·겨자가 들어 있어 매운맛을 담당하고, 커민·회향·정향·계피·육두구·코리앤더 등은 향미를 더한다. 이런 향신료들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순한맛과 매운맛, 아주 매운맛의 카레로 나뉜다.

매일 6쪽 이상 먹으면…

단일 향신료로 대표적인 것들로는 우리나라 음식에 빠지지 않는 마늘, 고추, 생강, 참깨와 외국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육두구, 육계피, 정향, 후추, 커민, 강황, 바닐라 등이 있다. 요리에 언제 넣을지, 어떤 음식과 먹는지에 따라 효과는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마늘은 프랑스 남부지방과 지중해 지역, 인도, 중국에서 많이 사용된다. 마늘에는 살균 효과 외에도 혈액순환을 촉진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 6쪽 이상 먹으면 30~50% 이상 위암 발생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요리에는 통마늘을 그때그때 빻아서 쓰는 것이 향을 유지하는 데 가장 좋다. 고추는 9천 년 전부터 멕시코에서 사용돼 18세기에 이르러 전세계로 퍼졌다. 피망이나 파프리카와 같이 열매가 크고 두툼하며 매운맛은 약하고 단맛이 강한 고추와, 크기가 작고 매운맛이 강한 멕시코의 칠리와 같은 고추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 고추는 피망 쪽에 속하고 매운맛은 중간 정도이다. 고추에는 특히 비타민A와 C가 풍부하다. 비타민C는 감귤류의 2배, 사과의 50배나 된다.

생강은 값비싼 후추 대신 사용됐던 향신료로 단단한 뿌리줄기를 쓴다. 유럽에서는 생강빵이나 생강잼 등 제과나 디저트에 주로 사용되고, 중국에서는 고기 요리에, 일본에서는 식초에 절여 많이 사용된다. 생강은 원기를 북돋우고 갈증을 해소하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모든 부엌의 필수품인 참기름의 원료 참깨는 씨앗 중 가장 오래된 향신료이다. 참깨는 레시틴이 풍부해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기억력을 높이며, 탈모 방지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육두구, 정향, 커민, 강황, 사프란, 올스파이스 등은 이국적인 향신료라 처음 요리에 사용한다면, 4인분을 기준으로 1/2 작은술 정도 넣는 것이 좋다.

향신료를 무턱대고 사용할 수는 없다. 재료와 궁합이 맞아야 한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에는 겨자, 고추, 마늘, 올스파이스, 정향, 참깨, 카레가 어울리고, 닭고기와 생선에는 겨자, 고추, 마늘, 사프란, 생강, 올스파이스가 어울린다. 추어탕에는 산초가, 샐러드 드레싱에는 겨자와 마늘, 올스파이스, 참깨, 후추 등을 사용한다. 향신료를 사용할 때는 통째로 구입해서 사용하기 직전에 직접 갈아 써야 가장 좋은 향을 낼 수 있다. 향신료는 오랫동안 보관하면 변질될 수 있으니 필요한 만큼 구입한다.대부분의 향신료는 6개월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밀폐용기에 넣어 습기가 없고 어두운 서랍에 넣어둔다.

음식이 거의 익었을 때 넣어라

가루로 빻은 향신료는 일반적으로 음식이 다 익어갈 무렵에 넣어야 향을 살릴 수 있다. 오랫동안 끓여야 하는 스튜류는 서서히 향을 우려내기 위해 향신료를 통째로 넣은 뒤 마지막에 건져주는 게 좋다.

향신료를 주의해야 할 사람도 있다. 가천의대 길병원 박동균 교수(소화기내과)는 “향신료는 식욕을 돋우지만 소화성궤양이나 만성위염이 있는 환자는 속쓰림이 악화될 수 있어 피하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고혈압 환자는 자극적인 향신료는 피하되, 소금 대신 참기름, 후추, 겨자, 고춧가루를 소량 사용하면 싱거움을 덜 수 있다.

장소협찬: 라퀴진 아카데미
도움말: 이성재 교수(고대안암병원 통합의학과), 김영순 교수(고려대 식품영양학과)
참고한 책: <향신료>(김영사), <향신료의 이야기>(살림), <식탁 위의 쾌락>(열대림), <먹거리의 역사>(까치)

 
향 그대로 음식에 얹는다

사프란은 우리고 올스파이스는 알갱이 갈아서… 주요 향신료 사용법



육두구:

그윽하고 좋은 향이 난다. 맛은 약간 쓰고 맵다. 크림소스, 생선스프, 그라탕에 사용된다. 육두구는 알갱이째 구입해서 쓰고, 사용하기 전에 갈아서 쓴다. 육두구의 알칼로이드는 독성이 있어 너무 많이 먹으면 마취 효과가 나타나 경련을 일으키거나 불면을 유발할 수 있으니 소량 사용한다. 임산부나 간이 나쁜 사람은 먹지 않는다.

정향:

맛이 달고 맵다. 식욕 증진에 좋다. 정향의 꽃봉오리를 건조시켜 만든 것으로 못처럼 뾰족하게 생겼다. 맛이 얼얼해 치과에서 마취제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혼합향신료에 많이 사용되며, 봉오리로 구입해서 직접 갈아쓰는 게 좋다.

커민:

케밥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향신료로 향이 강하며 톡 쏘는 쓴맛이 난다. 인도의 카레 요리나 탄두리 치킨에 사용된다.

겨자:

맵싸름한 맛으로 흑겨자, 갈색겨자, 백겨자로 나뉜다. 흑겨자는 짙은 갈색이나 검정색으로 겨자 중에서 가장 맵고, 백겨자는 향이 고급스럽고 덜 매워 요리에 가장 많이 쓰인다. 갈색겨자는 인도 카레 요리에 쓰인다. 겨자는 씨앗 그대로는 매운맛이 없으나 가루를 내어 물에 개어두면 효소의 작용으로 매운 맛이 난다. 머스터드 소스에 사용된다.

강황(튜메릭):

카레의 노란색과 머스터드의 노란색은 이 강황 덕분이다. 주황색의 고운 가루로 생강과 비슷한 맛이 난다. 요리 마지막에 넣어야 쓴맛이 나지 않는다. 강황의 커큐민이란 색소는 치매 예방과 항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사프란:

10만 배로 희석해도 금빛을 띠는 강력한 염료이다. 특유의 요오드향과 쓴맛이 난다. 지중해, 중동, 인도에서 쌀요리나 수프에 많이 사용한다. 사용하기 직전 미지근한 물이나 육수를 조금 부어 20분 정도 우려내서 소량 사용한다.

올스파이스:

후추알과 비슷하게 생겼고 정향, 육계피, 육두구의 향이 모두 난다고 해서 올스파이스란 이름이 붙었다. 피클을 만들 때 사용하고 제과에도 많이 쓰인다. 맛과 향을 쉽게 잃는 특징이 있으니 알갱이로 사서 빻아서 쓴다.

 


 

이것이 인도 맛 타이 맛!

이국 향 가득한 베스트 향신료 요리

인도 : 탄두리 치킨

재료: 닭다리 2개(1kg 되는 중닭의 다리를 잘라 손질), 레몬 반개, 플레인 요구르트 반컵, 강황 1스푼, 탄두리 파우더 2스푼, 가람 마살라 1스푼, 와인 조금
① 파우더를 모두 섞고 레몬즙을 짜서 섞는다.
② 손질한 닭을 위 양념을 묻혀 서너 시간 재워둔다. 큰 닭은 중간중간 칼집을 내어 간이 잘 스며들게 한다.
③ 그릴을 예열한 뒤 11분간 앞면을 굽고, 4분간 뒷면을 굽는다.

△ (사진/ 인터컨티넨탈 호텔 제공)

타이 : 톰양궁 수프

참새우 10마리, 양송이 200g, 레몬그라스, 라임잎 5장, 우유 1컵, 붉은 고추 7개, 고추장 3티스푼, 물 4컵, 타마린드 쥬스 2티스푼, 액젖과 라임쥬스 2~3스푼.

① 새우를 다듬어 길게 반으로 나눈다.
② 레몬잎을 잘게 썬다. 버섯은 먹기 좋게 자른다. 라임잎은 잘게 찢는다.
③ 끓는 물에 레몬잎과 라임잎을 넣고 3분 동안 끓인다. 새우와 버섯을 넣고 새우가 익을 때까지 끓인다.
④ 고추장과 타마린드 쥬스, 액젓, 라임쥬스, 우유를 넣는다. 수프는 매콤새콤하며 약간 짠 게 좋다.


△ (사진/ <향신료> 김영사 제공)

스페인 : 레드와인 칵테일, 상그릴라 와인칵테일

레드와인 2병, 사이다 1.5리터, 물 2/3컵, 설탕 2컵, 육계피 4쪽, 정향 5개, 바닐라 1줄기, 딸기 2컵, 레몬 2개, 오렌지 3개

① 냄비에 물과 설탕을 넣은 뒤 중간 불에서 끓여 설탕이 다 녹으면 육계피, 정향, 바닐라를 넣고 3분간 더 끓인 뒤 식혀둔다.
② 딸기는 반으로 자르고 레몬과 오렌지는 얇게 썬다.
③ 큰 병에 만들어둔 시럽을 체에 걸러 담고 딸기, 레몬, 오렌지, 파인애플을 넣은 뒤 와인을 부어 잘 섞는다.
④ 냉장고에 6시간 이상 넣어둔다. 마시기 전에 시원한 사이다를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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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칼럼] ‘더불어 숲’ 의 조건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0월 30일
 
선배 한 분이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던 것 같고, 그 대답을 듣고 선배는 “뭐? 그 간단한 게임을 3년도 넘게 공부하고 있어?”라고 되물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이 게임은 평생을 공부해도 모자랄 만큼 심오합니라”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이타적 인간의 출현’ 머리말)

-집단주의적 이타성 증명 노력-

그 ‘선배 한 분’은 바로 나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경북대학교 최정규 교수이다. 나는 무식하면 얼마나 용감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고 최교수는 ‘일로매진’이 얼마나 중요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실증했다. 최근 경제학과 교수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실었다 해서 언론의 관심을 끈 바로 그 사람이다.

다 알다시피 경제학은 이기적 인간을 가정한다.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슈퍼 컴퓨터보다 빠르게 답을 구해서 자신의 이기성을 충족시킨다. 개인은 오로지 이기심만 가지면 된다.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전체의 효율성을 확실히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개인의 이기적 행위가 바람직한 상태를 유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고. 또한 ‘최후통첩게임’이나 ‘공공재게임’을 실제로 실행해 보면(실험경제학) 많은 경우 사람은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꼭 이런 게임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타적 행위를 발견한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은 이기성의 관점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더불어 살기’는 이타성 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이타적 인간이 끝없이 살아남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친족선택이론이나 호혜성이론이 제시되어 왔는데 이번에 최교수는 집단주의(parochialism)라는 역사적 상황, 특히 앞으로도 절대로 없어질 것 같지 않은 전쟁 상황을 추가한 것이다. 순수하게 이타적인 인간은 살아남기 어렵지만(언제나 이기적 인간에게 당하기만 하는데 어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 남으랴?) 집단주의와 연결된 이타성이라는 형식으로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4년 주기로 월드컵에서 폭발하는 그 집단주의를 상상해 보라. 월드컵 전사에 대한 열광은 축구가 아닌 실제 전쟁(축구가 전쟁으로 이어진 적도 있다!)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자기 목숨을 내던져 부족이나 나라를 구하려는 것은 물론 이타적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이타성(parochial altruism)’이 투철한 나라(스파르타?)의 자손이 대대손손 번성하더라는 것이 최교수 실험의 결론이다.

-공동체적 협력을 고민하자-

글머리에서 드러났듯 천박한 나는 이 결론이 정책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에 관심을 가진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둘 다 바람직한 해를 선택할 조건은 무엇인지, 즉 사람들이 ‘공동체적 협력’을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최교수의 이론은 ‘금 모으기 운동’ 등 동원의 논리를 일부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식 국가 동원도 ‘집단주의적 이타성’이 일부 설명해 줄지 모른다. 그렇다면 민주적 결정에 의해 협력행위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외부에 대해 꼭 적대적이어야만 가능한 것일까?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북구 사민주의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했던 것은 극심한 추위라는 ‘외부의 적’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신영복 선생의 명구 ‘더불어 숲’은 도덕적 결단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그 조건을 찾아내서 실행하는 데 최교수의 논문은 또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내오랜꿈 ----------------------------------------------------------------

내가 생각할 때 노무현 정권의 비극은 이정우 선생이나 정태인 씨가 버티지 못하고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청와대의 역학구조 속에 잉태되어 있었다고 본다. 알맹이 없는 개혁, 그것을 실현할 의지도 없이 '주둥이'로만 개혁을 외치며 시간을 낭비하는 와중에 재경부 관료들이 청와대 정책라인을 장악해버린 데서 노무현 정권의 비극은 잉태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이정우 선생이나 정태인 씨는 민주노동당 같은 사민주의적 정권이 집권한다 해도 정책브레인으로 모셔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철학 외에 재경부 관료들, 실제로 한국을 좌지우지 하는, 이른바 '모피아'들을 상대해 본 몇 안 되는 경제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 라인이 지금 참여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변양균 정책실장 같은 정신나간 관료들로 채워지는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딴지일보>의 정태인 대담을 한번 찾아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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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사신 직접 디자인…남녀 역할 고민 힘들었다
영화 ‘색, 계’ 이안 감독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29  김소민 기자  

» 영화 ‘색, 계’ 이안 감독
 
 
‘적’과 사랑에 빠진 남과 여
끌림과 거부사이 갈등 다뤄
말보다 몸이 더 많은 메시지


대만의 이안(53) 감독은 동·서양의 언어로 두 문화권 모두에서 평단과 대중에게 사랑받는 독특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올해 <색, 계>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두 번째 탔고, 베를린 금곰상 2번,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영화들은 매번 새로운 장르로 나아가고 문화적 경계를 넘어선다. <음식남녀> <결혼피로연> 등 초기작에서 아시아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전통과 서구 문물 사이 갈등을 코믹하게 잡아내더니 할리우드로 진출해서는 <아이스 스톰> 등으로 서구사회를 탐구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헐크> 다음엔 전혀 다른 중국 무협영화 <와호장룡>이, 그뒤엔 미국 서부를 무대로 삼은 멜로물 <브로크백 마운틴>이 따라온다.

1940년대 친일파 정보부 고위직 이(량차오웨이)와 그를 죽이려는 스파이 왕치아즈(탕웨이)의 사랑을 다룬 <색,계>는 그가 이제까지 그린 적이 없는 수위의 정사 장면을 담은 격정적인 멜로물이다. 29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항전 시기 여성의 강인한 사랑, 여자 주인공이 자기와는 다른 인물로 가장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며 “색, 계는 원하는 대로 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물리치려는 마음을 뜻하는데 이 두 가지는 복합적으로 얽혀있다”고 설명했다.

<색, 계>에서는 말보다 몸이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정사 장면에 대해 설명하며) 내가 심각한 중년의 위기에 봉착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웃음) 옛날엔 굉장히 보수적이고 평범한 생활을 했다. 젊었을 때 표현하지 못햇던 것, 경험하지 못한 것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색, 계>에서 두 사람이 얼마나 억압됐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격정적인 정사 장면이 필요했다.” 주연여배우 탕웨이는 “모든 동작은 감독이 직접 디자인했고 각 동작은 왕치아즈와 이 선생 사이 감정의 발전 과정을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색, 계>는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과 닮은 점이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동성애 연인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서로를 향한 강렬한 끌림과 거부를 반복한다. <색, 계>는 시대적 상황과 처지가 사회적 편견을 대신한다. 그리고 두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깊은 상실감이다. 이 처연함을 표현하는 데 배우 량차오웨이의 저력이 큰 구실을 한다. “악역, 중년, 베이징어로 말하는 이 선생 캐릭터는 그가 처음 도전하는 것이었는데도 그는 보다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했다.”

여주인공 탕웨이는 <색, 계>가 데뷔작인데 량차오웨이에 비해서도 기울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공개모집 때 1만명 넘는 배우들이 오디션을 봤다. 탕웨이는 겉으로는 부드러웠지만 강인한 내면을 지녀 주인공과 비슷했다. 탕웨이는 강한 훈련 과정을 잘 따라와줬다.”

갖가지 장르를 넘나들지만 그의 영화에는 대부분 흔들리는 정체성 문제가 어렴풋이 스며있다. “정체성이 불확실한 왕치아즈는 (스파이라는) 배역을 맡아 자신을 찾으려 한다. 좋은 여자 왕치아즈는 배역을 통해 나쁜 여자도 되고 싶었던 거다. 왕치아즈는 영화에서 여러 장르를 빌어와 이야기를 하는 (감독으로서) 제 모습을 닮은 것이다. 실제 나는 왕치아즈에게 불씨만 던져준, 부끄러움을 타고 무능력한 꼭두각시 영웅 광위민(왕리홍)을 닮았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명령하며 연출할 때는 이 선생과 비슷하다. 나의 두 분신 사이 정사 장면을 찍을 때는 남자 역할 여자 역할 다 고민해야 해 너무 힘들었다. 량차오웨이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많은 분신을 가진 당신에게 굉장히 동정이 간다’며 위로해줬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내오랜꿈 -----------------------------------------------------------------

이안 감독. 도대체 그의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센스 앤 센스빌리티>에서 <음식남녀>로, <아이스 스톰>에서 <와호장룡>으로, 다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색, 계>까지...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래 글은 <씨네21>에 실린 <색,계>의 제작노트이다. 영화의 줄거리가 상세히 언급되고 있으므로 스포일러의 위험이 있으니 '클릭'은 심사숙고해서 하시도록...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note&id=2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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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0-3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색깔을 알 수 없는 감독. ㅎㅎ 그래도 저는 결혼피로연이 제일 좋던데요.
잘 올라갔어요. 저녁에 올줄 알았더니 끝내 안나타나더만....

내오랜꿈 2007-10-31 10:25   좋아요 0 | URL
갔으면 니네들이 얼마나 피곤했을까? ㅎㅎ

위의 기사에서 언급되지만 이안 감독은 동서양의 문화적 '경계'를 넘어선 감독 같애. 아마 주류 미국인 감독한테 <센스 앤 센스빌리티>를 연출하라 해도 제대로 만들기 힘들기 힘들텐데 말이야. 그래서 당시에는 <센스 앤 센스빌리티>를 이안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엠마 톰슨의 영화라는 뒷담화가 많았었지. 물론 엠마 톰슨이 영국의 인텔리 출신 배우니까 그런 소리가 나왔겠지만...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엠마 톰슨의 영화라는 말은 틀린 것 같아!
 

아시아를 누빈 “술탄 국가의 오만한 인간들”
문명과 바다 5. 디아스포라: 이란인의 사례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26

» 홍해와 인도 사이에서 몬순(계절풍)을 이용해 빠르게 항해했던 아랍선박(맨 위). 페르시아만의 국제적인 교역 중심지 호르무즈로 가는 상인들( 위 왼쪽)과 인도에서 아편을 피우는 영국 상인(위 오른쪽).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대 그리스 어 dia(너머)와 speiro(씨뿌리다)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며, 우리말로는 ‘이산(離散)’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리스에서는 원래 이주와 식민화를 뜻했지만, 유대인, 아프리카 흑인 노예, 팔레스타인인 등의 경우에는 외세에 의한 ‘강제 집단이주’를 나타낸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처럼 자국민의 해외 진출이라는 적극적 의미 혹은 강제이주의 정신적 상처(트라우마)와는 거리가 있는 중립적인 용어로서, 외국에 살면서도 집단적인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그리고 이 말을 발전시킨 ‘교역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해외팽창의 역사를 설명한다.

세계의 여러 문명권들은 아주 제한적인 교류에 그치거나 아예 단절되어 있다가 근대 이후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계 각 지역이 서로 조우했다고 하지만 사실 첫 만남은 문명 간 혹은 국가 간 대규모 교류나 전면적인 대결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기껏해야 몇몇 점과 같은 아주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상이한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낯선 사람들 사이의 교류와 교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방인은 예측하기 어렵고 위험하며 신용하기 힘든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문화(異文化) 간의 접촉과 교역은 양쪽이 상호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특별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방식은 양쪽을 중개하는 특수 집단에게 교역을 맡기는 방식이었다. 곧, 외국 사회 속에 뚫고 들어간 이방인들이 그들만의 거류지를 형성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자신의 출신 지역과 현재 거주지역(host society, 곧 그들을 받아들인 사회) 사이의 교역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류지들이 여러 곳에 만들어져서 네트워크를 이루면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인 교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소위 ‘교역 디아스포라(trading diaspora)’다. 근대 초에 있었던 세계 각 지역 간 접촉과 소통은 흔히 이런 작은 접점을 통해 이루어졌다.

디아스포라는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 가운데 특히 잘 알려진 사례로는 아시아 각지에 뿌리를 내린 중국인 화교 공동체, 에스파한 근처의 줄파를 중심지로 하여 서쪽으로는 암스테르담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중국에까지 이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상업망을 구축한 아르메니아 상인 네트워크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아메리카에 진입해 들어간 것 역시 교역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예를 들어 16세기에 에스파냐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했다고 할 때 우리는 통상 멕시코 전체 혹은 남아메리카 전체를 지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작 수천 명 정도의 인력으로 그 넓은 영토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상은 단지 중요한 거점 지역들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이다. 영국인들의 인도 지배 역시 초기에는 몇 개의 거점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몇 개의 ‘점’의 지배가 확대되어 광활한 영토 지배가 완수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근대 초의 해외 팽창을 설명하는 데에는 ‘제국의 팽창’보다는 ‘디아스포라의 확산’이 더 알맞은 개념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현상은 아시아 해상세계에서 널리 퍼져 있던 일이었다. 서아시아와 인도로부터 중국 복건(푸젠)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상업 민족들이 해외 지역에 상업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활기찬 교역 활동을 하였다. 그 가운데에서 아시아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띠지만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현상이 이란인들의 해외 팽창이다.

이란인들은 일찍이 12~13세기부터 인도 방향으로 이주해 가서 데칸 지방에 강대한 술탄 국가들을 여럿 건설하였다. 이와 함께 상인들이 인도 각 지역 내에 자리 잡고 활발한 교역 활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페르시아 만을 통해 중동 지역, 동아프리카와 인도를 연결하였고, 더 나아가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도 팽창해 갔다. 질라니(Khwaja Mahmud Gawan Gilani)라는 상인에 대한 연구 사례를 보면 그의 가족과 사촌형제들이 이집트, 메카, 인도 여러 지역에 주재원으로 자리 잡은 다음 그들 간에 말과 무기 거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문명권 사이 접촉과 교역은 외국 사회 속을 뚫고 들어간 이방인들의 거류지를 접점으로 이루어졌다. 근대 초 해외팽창은 이러한 접점, 즉 ‘교역 디아스포라’의 확산이라 할 수있다. 12~13세기 이란인들은 페르시아만에서 중동·동아프리카·인도·동남아까지 디아스포라를 확장했다. 상품 교역과 더불어 페르시아 문화·제도가 아시아에 전파됐다.

이란계 상인들은 아시아 각지로 퍼져갔다. 유럽인들이 아시아에 들어와서 교역 관계를 트려고 시도할 때 자주 부딪힌 인물들이 이란 상인들이었다. 유럽인들의 기록에는 “술탄 국가의 궁정을 꽉 잡고 있는 페르시아인”, “다른 어느 인도 사람들보다도 오만한 인간들”이라는 식으로 이란인들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이란 상인들은 인도의 유명한 다이아몬드 산지인 골콘다(Golconda)에서 궁정 세력의 비호를 받으며 다이아몬드 사업을 독점하였고, 미얀마와 아유타야(태국)에 거류지를 형성하고는 이란과 이 지역 사이의 교역을 확대시켰다. 타이에서는 이들이 주석 생산과 수출을 담당했는데, 이들의 영향력이 어찌나 큰지 불교 국가인 이 나라의 국왕이 이슬람 사원을 지어주면서까지 이란 상인들을 유치하려고 했다.

이란인들의 팽창은 단지 교역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이란계 행정가·군인·학자·문인들이 인도와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퍼져가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인도 북부를 장악한 무굴 제국에서는 페르시아어가 궁정과 지배층의 문화 언어가 되었고 페르시아 미술과 문학이 고급문화로서 자리 잡았다.

 
»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
 
따라서 15~18세기 동안 대규모로 지속되었던 이란인들의 이주는 아시아의 역사에서 실로 중요한 의미를 띠는 현상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시기가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형성기이자 동시에 해외 교역이 크게 팽창했던 시기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역사가들은 흔히 국가 건설은 무력에 의해 이루어졌고 내륙 지향적이며, 상업 활동과는 무관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이와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예컨대 무굴제국도 상업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자국 상인들이 해외로 많이 진출해 갔을 뿐 아니라 제국 정부도 재원 마련을 위해 국제 교역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전에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국가’와 ‘상업’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곧, 디아스포라는 정치와는 거리를 둔 영역으로서 경제 행위만 이루어지는 부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란인들의 사례를 보면 상업과 정치, 군사, 문화 등의 여러 부문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디아스포라는 아시아 각 지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변화가 촉발되는 중요한 창구였다.

후일 유럽인들이 아시아의 기존 교역망에 끼어 들어가서 거점을 확보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점차 정치·군사·문화적 지배력을 확대해 간 것은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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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마닐라서 시작된 피와 눈물의 ‘화교사’
문명과 바다 4. 화교 공동체의 발전과 핍박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19

» 필리핀에 최초로 도착한 유럽인 마젤란의 ‘빅토리아호’와 현지 주민들을 기독교도로 개종하려다 전투 끝에 죽은 마젤란(위부터).
 
1960년대만 해도 중국 사람이 살던 집을 사서 집수리를 하려고 담벼락을 부수는데 벽 사이에서 금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떠돌곤 했다. 사연인즉, 원래 집주인인 중국 사람이 열심히 모은 돈으로 금을 사서 가족도 모르게 벽 속에 감추어 두었는데, 늘그막에 병이 들어 자기 아들에게 미처 그 사실을 알려 주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워낙 핍박을 많이 받은 화교들로서는 믿을 건 금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질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화교들이 사회적으로 혹은 정책적으로 꽤 심한 압박을 받아서 기를 못 펴고 살았다고 알려져 있고,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는 최근까지도 종종 화교에 대한 약탈과 학살이 벌어지곤 했다. 화교 공동체들이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많이 발전하면서도 동시에 심한 핍박을 받게 된 역사적 계기는 무엇일까?

정화의 원정 뒤 중국은 해상교역을 금하고 해외 거주민들을 외면했다. 마닐라의 대규모 화교공동체는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는 에스파냐인들과 경쟁하면서 두 차례나 대학살을 겪었다. ‘국가’의 개입 여부와 정도가 근대 해외팽창의 관건이 되었다

명대 이전에 중국은 대단히 활기찬 해상 교류를 하고 있었다. 연안 지역 주민들이 아시아 각지로 퍼져갔다가 때로 자신들이 살던 곳에 눌러 앉아서 화교 사회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15세기 초반 정화(鄭和)의 남해 원정 이후 중국 정부는 해상 교류를 철저히 금지하고 국가 전체를 아예 바다와 절연시키는 강력한 해금(海禁) 정책을 폈다. 이렇게 해서 본국과 관계가 단절된 해외 화교 공동체들은 끈 떨어진 연처럼 외로운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해금 정책은 실로 가혹한 것이어서 허가 없이 바다로 나갔다가 발각되면 사형을 면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정말로 해상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연안 지역 주민들은 기회만 닿으면 해외로 눈을 돌렸고, 또 해외 거주 화교들과 비밀리에 교역을 계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중앙 정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새로운 소규모 화교 공동체가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억압된 상황에서 비밀리에 교역 활동을 수행했기 때문에 실체를 명확하게 보여줄 문서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 역사가들에게는 큰 문제이다.

16~17세기에 예외적으로 큰 화교 공동체가 형성된 곳으로는 마닐라를 들 수 있다. 이곳의 역사는 아시아의 바다에서 중국 세력과 유럽 세력 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예시하는 특이한 사례이다.

» 유럽에서 1605년에 제작된 지도로 중국(명), 필리핀, 한반도가 자세히 나와 있다.
 
필리핀(Philippines)이라는 이름 자체가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에스파냐 인들은 필리핀을 아시아 식민화의 전초 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1560~70년 대에 에스파냐 인들이 필리핀에 본격적으로 밀려왔을 때 이 지역에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집단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았고, 동남아시아의 다른 무슬림 공동체와도 비교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강한 저항을 하지도 못한 채 쉽게 정복당했다. 에스파냐는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중국과 교역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인 상인과 선박의 도움이 필요했으므로 적극적으로 중국인들을 마닐라로 불러들였다. 중앙 정부의 눈을 피해 해외 교역을 하려고 했던 연안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져서 30년 정도의 짧은 기간 안에 마닐라에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유입되어서, 이 당시 가장 큰 화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와 같은 자국민의 해외 거류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왜구에 대한 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1570년대에 들어서 왜구의 피해가 다시 극심해졌고, 일부 왜구들은 마닐라 정복을 시도할 정도였다(‘왜구’라고는 하지만 일본인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가장 유명한 수괴인 리마홍 또는 린펭(林風)이라 불리는 자는 중국인 해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관리들이 마닐라를 방문하여 에스파냐 관리들과 해적에 대한 대응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 이때 중국 쪽은 오직 해적 진압을 위한 공조만 논의할 뿐 화교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 거주 중국인들이 급증하고 있으므로 에스파냐 인들이 자신의 구역 내에서 중국인들을 잘 통제·관리할 것을 부탁하였고, 중국 상인들을 이용해서 중국과 필리핀 사이, 혹은 필리핀과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 사이의 교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더라도 간여치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렇게 자국 정부의 보호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국 거류민들은 자연히 본국과의 관계가 멀어졌고 그 결과 때로 큰 위험에 몰리기도 했다. 1580년대 이후 중국과의 견직물 교역이 크게 증가하면서 필리핀 거주 중국인 수도 크게 늘었다. 1600년 경에는 중국과 마닐라 사이를 오가는 선박 수가 30척이 넘게 되었으며,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에 거류하는 중국인 수가 2만5000명을 상회하였다. 중국인의 세가 과도하게 커지자 에스파냐 인들과 갈등이 일어났고 결국 1603년에 이 지역의 중국인 거의 대부분이 학살되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 화교 2만5000 명 중에 500명 정도가 살아남고 500명이 중국으로 돌아갔을 뿐 나머지 거의 전원이 살해당한 것이다!

놀라운 일은 이 사건 이후 복건성(푸젠성) 주민들이 다시 필리핀으로 향했다는 점이다. 중국 상선이 도착하고 현지에 정착하는 중국인들도 늘어서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화교 수는 다시 3만 명이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전히 본국 정부는 무관심했고, 화교들은 에스파냐 인들의 관리와 통제를 받아들여야 했다. 양쪽 간 갈등이 폭발하여 1639년에 필리핀에 거주하는 중국인 약 2만 명이 학살되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
 
중국 정부는 필리핀에서 중국인들이 두 번 연속 대학살을 당하게 될 정도로 해외 거주 화교들을 방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유럽 출신 상인·사제·군인 들과 경쟁하지 못했다. 왕권의 강력한 후원을 받는 에스파냐 인들, 국가와 자본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회사 앞에서 중국 상인들은 다만 위험을 피해가는 개인적인 조심성과 노하우로 버텨야 했다. 친척 간의 협력이라든지 화교 자치체의 보호망 정도로는 거대한 근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제기되는 위험에 대처할 수 없었으며, 하물며 광범위한 해역을 포괄하는 상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는 힘들었다. 중국 상인들 중 일부가 큰돈을 만지기는 했지만 그들이 주도적으로 근대적인 체제를 운용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만든 체제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근대 해외 팽창의 관건은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어느 만큼 개입하느냐에 달린 문제가 되었다. 해외 거류민을 방치한 중국이 아니라 국가 권력과 자본이 긴밀히 결탁한 유럽 각국이 세계의 바다를 연결하는 주체가 되었다. 역사의 교훈을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오늘날 중국 정부는 전세계의 거대한 화교 자본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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