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 ‘더불어 숲’ 의 조건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0월 30일
 
선배 한 분이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던 것 같고, 그 대답을 듣고 선배는 “뭐? 그 간단한 게임을 3년도 넘게 공부하고 있어?”라고 되물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이 게임은 평생을 공부해도 모자랄 만큼 심오합니라”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이타적 인간의 출현’ 머리말)

-집단주의적 이타성 증명 노력-

그 ‘선배 한 분’은 바로 나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경북대학교 최정규 교수이다. 나는 무식하면 얼마나 용감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고 최교수는 ‘일로매진’이 얼마나 중요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실증했다. 최근 경제학과 교수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실었다 해서 언론의 관심을 끈 바로 그 사람이다.

다 알다시피 경제학은 이기적 인간을 가정한다.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슈퍼 컴퓨터보다 빠르게 답을 구해서 자신의 이기성을 충족시킨다. 개인은 오로지 이기심만 가지면 된다.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전체의 효율성을 확실히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개인의 이기적 행위가 바람직한 상태를 유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고. 또한 ‘최후통첩게임’이나 ‘공공재게임’을 실제로 실행해 보면(실험경제학) 많은 경우 사람은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꼭 이런 게임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타적 행위를 발견한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은 이기성의 관점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더불어 살기’는 이타성 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이타적 인간이 끝없이 살아남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친족선택이론이나 호혜성이론이 제시되어 왔는데 이번에 최교수는 집단주의(parochialism)라는 역사적 상황, 특히 앞으로도 절대로 없어질 것 같지 않은 전쟁 상황을 추가한 것이다. 순수하게 이타적인 인간은 살아남기 어렵지만(언제나 이기적 인간에게 당하기만 하는데 어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 남으랴?) 집단주의와 연결된 이타성이라는 형식으로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4년 주기로 월드컵에서 폭발하는 그 집단주의를 상상해 보라. 월드컵 전사에 대한 열광은 축구가 아닌 실제 전쟁(축구가 전쟁으로 이어진 적도 있다!)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자기 목숨을 내던져 부족이나 나라를 구하려는 것은 물론 이타적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이타성(parochial altruism)’이 투철한 나라(스파르타?)의 자손이 대대손손 번성하더라는 것이 최교수 실험의 결론이다.

-공동체적 협력을 고민하자-

글머리에서 드러났듯 천박한 나는 이 결론이 정책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에 관심을 가진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둘 다 바람직한 해를 선택할 조건은 무엇인지, 즉 사람들이 ‘공동체적 협력’을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최교수의 이론은 ‘금 모으기 운동’ 등 동원의 논리를 일부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식 국가 동원도 ‘집단주의적 이타성’이 일부 설명해 줄지 모른다. 그렇다면 민주적 결정에 의해 협력행위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외부에 대해 꼭 적대적이어야만 가능한 것일까?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북구 사민주의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했던 것은 극심한 추위라는 ‘외부의 적’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신영복 선생의 명구 ‘더불어 숲’은 도덕적 결단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그 조건을 찾아내서 실행하는 데 최교수의 논문은 또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내오랜꿈 ----------------------------------------------------------------

내가 생각할 때 노무현 정권의 비극은 이정우 선생이나 정태인 씨가 버티지 못하고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청와대의 역학구조 속에 잉태되어 있었다고 본다. 알맹이 없는 개혁, 그것을 실현할 의지도 없이 '주둥이'로만 개혁을 외치며 시간을 낭비하는 와중에 재경부 관료들이 청와대 정책라인을 장악해버린 데서 노무현 정권의 비극은 잉태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이정우 선생이나 정태인 씨는 민주노동당 같은 사민주의적 정권이 집권한다 해도 정책브레인으로 모셔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철학 외에 재경부 관료들, 실제로 한국을 좌지우지 하는, 이른바 '모피아'들을 상대해 본 몇 안 되는 경제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 라인이 지금 참여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변양균 정책실장 같은 정신나간 관료들로 채워지는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딴지일보>의 정태인 대담을 한번 찾아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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