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양희은 그리고 이명박

<한겨레21> 제683호 2007년11월01일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영웅의 이미지를 조작해서 대중에게 팔아먹는 자들을 떠올리다

대선이 코앞이다. 웬만큼 굵직굵직한 진영의 후보들은 다 확정된 모양이다. 그 후보들 중 아무리 봐도 이상한 사람이 있다. 의혹도 많고 그 의혹이 해명된 것도 아닌데 지지율이 당최 움직이지 않는다. 부동의 1위다. 그 후보를 지지하는 어른들에게 이런저런 의혹이 있지 않느냐, 얘기해봐도 요지부동이다. “지금 정부보다는 낫지” 정도는 양반이다. 아마도 한 드라마를 통해 신화화된 그의 이미지가 지난해의 황우석처럼이나 단단히 박혀 있는 듯싶다. 성장과 발전의 화신이고, 따라서 그가 집권하면 ‘사소한’ 부도덕이나 비리를 무릅쓰고 당장 대한민국이 1970년대처럼 쭉쭉 고도성장의 길을 걸을 거라고, 그분들은 굳게 믿어 의심치 않나 보다.

“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니라 목동”

△ 밥 딜런은 저항적 포크가수의 이미지에서 탈출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가족과 음악이지, 시대의 선봉에 서는 게 아니었다.

1960년대의 밥 딜런은 이미 저항의 상징처럼 여겨져 있었다. 그의 가사들은 시위대의 피켓에 인용되기 일쑤였고, 그의 노래는 집회 현장에서 울려퍼지며 새로운 시대로 가는 송가처럼 불렸다. 지금도 밥 딜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항의 음유시인이다. 그러나 당시의 밥 딜런은 그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나 보다. 자서전인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서 밥 딜런은 당시를 분노에 찬 태도로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새로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강하게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대변하게 되어 있다는 세대와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고 잘 알지도 못했다. 불과 10년 전에 고향을 떠났고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내 의견을 외친 일이 없었다. 앞날의 내 운명은 삶이 인도하는 대로 가게 되어 있었고, 무슨 문명을 대표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었다. 나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보다는 목동에 가까웠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목동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아니,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게끔 강요하고 몰아갔다. 그래서 밥 딜런은 밤마다 집 주변으로 몰려들고, 심지어 집으로 ‘침입하는’ 히피들을 ‘퇴치하기’ 위해 라이플총을 집에 둬야 했다. 결국 그들이 집 주변을 둘러싸고 “시대의 양심으로서의 임무를 회피하지 말라”며 횃불 시위를 벌였을 때, 그는 도망치듯 이사가야 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통곡의 벽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자신을 시온주의자로 포장했고, 컨트리 음반을 내며 저항적 포크가수의 이미지에서 탈출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가족과 음악이었지, 시대의 선봉에 서는 게 아니었다.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양희은이 재학 중이었던 서강대에서 집회가 열릴 때마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들이 나타나 그녀를 어디엔가 격리시켰다고 한다. 학교에서 축제가 열리고 양희은이 무대에 오르면 역시 뒤편에서 ‘맨 인 블랙’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학생들 앞에서 <아침이슬>을 못 부르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양희은은 학교 무대에서 <아침이슬>을 부르지 않았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 자리에 드러누워 <아침이슬>을 부르라고 요구했다. 양희은은 70년대를 회상할 때마다, 자신이 <아침이슬>을 부른 건 그 노래가 좋아서였지 다른 뜻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 노래를 만든 김민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투사가 아닌, 뮤지션이라는 요지의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들을 그런 위치에 올려놓은 건 대중이었다. 대중이란 언제나 신화를 필요로 한다. 신화의 주인공인 영웅을 필요로 한다. 현대 사회에서 신화와 영웅을 만드는 건 매스미디어다. 왜 미디어는 이미지를 조작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영웅담을 그럴싸하게 잘 풀어놓는 사람이 저잣거리의 인기 이야기꾼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 조작으로 매스미디어가 이익을 취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밥 딜런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곳은 어디였을까. 그의 집까지 찾아가 횃불 시위를 벌였던 군중들? 아니면 그들에 의해 본의 아니게 영웅으로 추대된 밥 딜런? 그렇지 않다. 그의 음반을 찍어 팔았던 레코드사와 사소한 말 한마디를 무슨 경전처럼 취급했던 언론이다. 그에 비하면 김민기나 양희은의 시대야 이 땅의 음악 마케팅이 그리 영민하지 않았던 시기였으니 누구 하나 큰 이익을 본 사람은 없었겠지만. 아, 그들의 음반은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으니 이익을 보려 해도 볼 수가 없었으려나.

조작된 이미지는 승리를 부르는가

다시 한국 대선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이미지 조작이야 사실 이번 대선만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에게 ‘DJ와 함께 춤을’이란 노래가 없었다면 선거 판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노무현에게 ‘기타 치는 대통령’ 같은 감성 코드가 없었다면 ‘노풍’이 그리 거세게 불었을까. 이 경우에는 ‘조작’이라는 거센 단어 대신 ‘컨트롤’ 정도의 순한 단어가 무방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저 부동의 1위 후보의 경우는 단언컨대 조작이라는 말을 써도 거리낄 필요가 없어 보인다. 보수언론에서 거의 올인하다시피 허물은 덮고 장점이라기보다는 위험 요소마저도 모두 입에 침을 발라가며 미화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를 덮고 있는 조작된 이미지가 두려운 건 그 때문이다. 밥 딜런이 그의 지지자들을 향해 엽총까지 쏘고 이사를 다니는 동안 음반사는 앉아서 돈다발을 셌다. 이명박을 둘러싼 이미지 조작이 대선 승리로 실현되는 날 가장 큰 소리로 만세를 부르는 건 누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 한 편 개봉을 앞두고 모처럼 모든 언론이 입을 모아 영화소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바로 리안 감독의 <색,계>. 좀 과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인데, 그 소개 포인트도 언론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황색언론 계열은 노골적 정사신에 방점을 찍고 실제인가, 연기인가 같은 가십성 기사를 올리기도 한다. 아래는 리안 감독과 여배우 탕웨이의 연합뉴스 기자회견을 축약한 <한겨레신문>의 기사와 <한겨레21>의 리뷰를 함께 옮겨 놓는다(인터뷰 전문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시켜 둔 <연합뉴스>를 참조하시길)

<인터뷰> `색, 계` 주연배우 탕웨이    2007-10-29
<인터뷰> `색, 계` 주연배우 탕웨이˝다 찍고 나니 배역 캐릭터 이해되더군요˝ (서울=연합뉴스)
 
<인터뷰> `색, 계` 리안 감독    2007-10-29
<인터뷰> `색, 계` 리안 감독˝식민 경험 지닌 한국 관객은 잘 이해할 것˝ (서울-연합뉴스)
 
<영화 색.계 남녀 주인공은 실존인물>    2007-10-29
<영화 색.계 남녀 주인공은 실존인물> (타이베이=연합뉴스)



리안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는 자매 영화”
‘색, 계’ 주연배우 탕웨이와 기자회견
출처 : 인터넷한겨레 / 연합
2007 11 02
 

 
» 29일 오전 신라 호텔에서 열린 영화 ‘색,계(色戒)‘의 기자회견에서 연출을 맡은 리안(李安)감독(오른쪽)과 여주인공 탕웨이(湯唯)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
 

영화 '색, 계(色, 戒)'로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안(李安) 감독은 2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주연 배우 탕웨이(湯唯)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는 자매 같은 영화"라고 밝혔다.

리 감독은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의 동성애와 세계 각국에서 화제를 뿌린 '색, 계'의 파격적인 정사신에 대한 질문에 먼저 "아마도 내가 중년의 위기에 봉착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해 기자들로부터 웃음을 이끌어낸 뒤 "과거에는 사랑에 대해 보수적이고 평범한 관점을 지녀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젊었을 때 표현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브로크백 마운틴'의 정사신이 제약이 따르는 아픈 사랑이라 그 괴로운 마음을 표현해야 했다면, 이번 영화는 '색'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지만 주인공의 사랑을 보여주는 데 꼭 필요했다"며 "두 영화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어 자매 같은 영화"라고 강조했다.

탕웨이도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두 주인공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을 몸을 통해 표현하는 상황의 특수한 감정이라고 이해했다"며 "촬영 기간 초반에 11일 동안 촬영해 뒤에 찍은 다른 장면들에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리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 수상 직전 미국에서 17세 이하 관객은 영화를 볼 수 없는 'NC-17' 등급을 받아 마음이 무거웠다"며 "수상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미 아카데미) 감독상이 아닌 작품상을 받은 터라 스태프들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정말 기뻤다"고 밝혔다.

그는 탕웨이의 연기에 대해 "여배우가 영화를 지고 가는 인물이고 여류작가가 원작에서 여자의 강인함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며 "오디션에서 탕웨이를 처음 보는 순간 바로 그 여주인공이란 생각이 들었고 영화가 완성된 뒤에도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탕웨이도 "왕치아즈는 여배우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역인데 이런 기회를 잡은 것은 행운"이라며 "8개월의 촬영 기간에 마음 속에 숨겨진 것들을 뽑아내 깨뜨려 준 감독에게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그는 "리 감독은 배우들에게는 교장 선생님이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표현해 보자'는 내용의 수업을 함께 들었다"고 덧붙엿다.

탕웨이는 또 상대역으로 연기한 량차오웨이(梁朝偉)에 대해서는 "나를 한번도 신인으로 대한 적 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도록 이끌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해 준 배우"라며 "그로부터 진정한 배우의 자세를 배우게 됐고 그는 앞으로도 배우로서 나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색, 계'는 1930~1940년대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항일운동을 하는 여성 스파이와 첩보 대상인 친일파 고위인사 간의 사랑을 그린 에로틱 스릴러다.

(서울=연합뉴스)


색에 빠진 자, 계를 잃을지니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겨레21> 제683호 2007년11월01일


친일파 대장과 저항군 스파이의 사랑 그린 ‘리안표’ 영화 <색, 계>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의 진심은 과연 무엇인가. 사랑에 대한 오래된 혹은 해묵은 주제다. 이렇게 해묵은 주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데, 리안 감독만큼 적임자도 드물다. 고급스런 대중영화의 장인이자 사랑의 감정을 다루는 기술자인 리안 감독은 오래된 이야기 혹은 통속적 사랑을 사랑이 불가능한 상황에 던져둔다. 그리고 희열과 고통으로 얼룩진 인물의 표정을 날카롭게 잡아내 관객의 마음을 후벼판다. 불가능한 사랑만큼 사랑의 애절함을 절절하게 드러내는 사랑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는 처연했다. 리안이 이번엔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940년대 일본에 점령된 상하이, 친일파 정보부 대장과 그를 암살하려는 여성 사이에 불가능한 사랑이 시작된다. 리안의 <색, 계>(色, 戒)는 서로를 경계(戒)하지만, 서로의 색(色)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본의 침략을 피해서 홍콩으로 피난온 왕치아즈(탕웨이)는 외롭다. 그의 친구들은 항일운동에 뛰어들고 그도 자신의 운명을 저항운동에 맡긴다. 밀수업자의 아내인 막 부인으로 위장해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량차오웨이)의 부인(조안첸)에게 접근한다. 그들의 목표는 이의 암살. 어렵게 이 부부에게 접근하지만 갑작스레 부부는 상하이로 돌아가버린다. 사실 왕치아즈는 암살의 주모자인 광위민(왕리훙)을 연모해 암살에 가담했다. 하지만 그들은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왕치아즈는 상처만 받는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흐른다. 광위민이 다시 왕치아즈를 찾아온다. 그리고 왕치아즈는 또다시 막 부인이 돼 이에게 접근한다.

적을 유인하며 연인을 유혹하는 마음

이제 모든 행위는 하나의 의미가 아니다. 막 부인의 행위는 이에 대한 유인이자 유혹이다. 적을 유인하는 일이자 연인을 유혹하는 행위다. 막 부인은 어느새 자신이 죽여야 하는 자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색(色)은 계(戒)를 무장해제시켜버렸다. 이의 거친 숨결은 막 부인의 가슴을 파고들었을 뿐 아니라 마음까지 달구었다. 이제 상황은 바뀌고 진실마저 모호하다. 나의 편인 저항군은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적인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를 이용하는 자와 나를 사랑하는 자의 자리가 모호하다. 영화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영화관이 어두워서 영화를 보러가지 않는다는 이도 외롭다. 너무나 오랫동안 아무도 믿지 못했던 이는 의심에 지쳤다. 그래서 이는 막 부인을 “믿는다” 보다는 “믿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모든 행위는 역설이고, 모든 말은 모호하다. 막 부인은 저항군에게 당신들이 그를 죽여버리는 꿈을 꾼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인지 그조차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사랑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처음으로 이를 만나고 돌아온 왕치아즈에게 친구가 묻는다. “어떻게 생겼어?” 그는 “상상하곤 다르다”고 대답한다.

적나라한 섹스신엔 체념과 위로가

리안의 영화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색, 계>는 집요한 상반신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을 잡아낸다.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는 집요한 클로즈업을 끝까지 견뎌낸다. 20여 년을 연기한 량차오웨이도, 첫 번째 영화에 출연한 탕웨이도 완벽하게 리안의 인물로 변신한다. 미인대회 출신인 탕웨이는 미모보다는 연기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조연배우 누구나 자신의 연기를 해낸다. 이렇게 완벽한 연기에 담긴 무심한 행동이나 스쳐가는 말들은 영화의 공기를 서서히 물들인다. 어느새 쌓인 먼지처럼 어느덧 켜켜이 쌓인 감정에 빠져들게 만드는 <색, 계>는 ‘리안표’ 영화다. <색, 계>는 스캔들의 영화다. 적나라한 섹스신이 화제를 모았고, 성기와 음모 노출 논란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30분가량 삭제된 채로 상영됐고, 미국에서도 17살 이하 관람금지 등급(NC-17)을 받았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제한상영 판정을 받지 않고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심의를 통과했다. 세 번의 섹스신은 색에 굴복해 계를 포기한 자의 체념한 표정으로, 서로의 외로움을 쓰다듬는 위로로 남는다.

오늘날 리안만큼 종횡사해 동서고금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감독은 드물다. 서양과 동양, 시대극과 현대물, 이성애와 동성애, 리안은 무엇을 만들어도 대중성과 작품성의 접점을 찾아내는 능력을 보여왔다. 리안은 뉴욕에 사는 동양인 게이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던 <결혼 피로연>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아이스 스톰>에서 1970년대 미국 중산층의 해체를 그렸던 리안은 <와호장룡>으로 홀연히 옛날의 중국으로 돌아갔다. 한편으론 19세기 영국 배경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도 영화로 옮겼다. <색, 계>는 리안이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에 다시 중화권 감독으로 돌아와 만든 영화다. <색, 계>로 그는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2년만에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장을 받는 드문 사례를 남겼다. <색, 계>는 중국의 여성소설가 장아이링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다. 관진펑(관금붕)의 <화이트 로즈, 레드 로즈>, 허우샤오셴의 <해상화>도 장아이링의 소설이 원작이다. <색, 계>는 11월8일 개봉한다.


張學友 - 淹沒 (Lust Caution theme so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후배 결혼식에 갔다 왔다. 나이 마흔에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그녀, 늦은 만큼 행복하길 바란다.



이 후배 결혼식 덕분에 십 몇 년 만에 만난 후배도 있었다. 미스 최, 그녀도 아직 미혼이란다. '신부가 부럽지 않냐'고 하니 자기는 내년에 마흔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란다.^^ 아침에 신부집에서 대절한 관광버스 타고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다시 타고 내려가야 한다며 버스에 오른 그녀.

아마도 내가 그녀를 다시 보는 날은 다음 중 어느 게 더 빠를까? 그녀와 내가 아는 또다른 누군가가 결혼할 때, 그녀 본인이 결혼할 때.



그런데 휴대폰으로 급하게 찍어 온 사진을 피시에 저장시키고 훑어보던 중 "허걱~~." 사진 속에 내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난 분명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은 신부의 뒤편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나라고 착각하지 마시도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디아스포라의 눈] 한국, 급한 성격 좀 고치세요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1 03
 

 
지금부터 쓰는 글은 언젠가는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테마다. 그러나 그것을 쓰는 게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진국’ 시선에서 조국 사람들의 ‘후진성’을 비난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질까 저어했기 때문이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지만, 독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1969년 여름 나는 태어나서 두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서울 법대 1년생이었던 형을 따라 할아버지 성묘차 충청남도 청양군 고향에 가기로 했다. 버스로 공주까지 가서 합승으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한데 버스 터미널에 가 보니 너무 승객이 많아 도저히 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승객들은 문쪽으로 밀려들어 서로 밀치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내게 그 장면은 영화에서 본 일본 패전 직후의 혼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 무리 속에 돌진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찡그린 표정의 형이 창을 가리키며 “저기로 차 안에 기어들어가” 하고 명령했다. 머뭇거리고 있자니 “멍하니 서 있지 마! 여기는 일본이 아니야” 하고 형은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마지못해 창으로 머리를 들이밀자 뒤에서 형이 나를 억지로 밀어넣었다. 모르는 승객들이 서로 입김을 상대방 낯에 뿜어대며 땀에 흠뻑 젖을 만큼 밀착한 상태로 버스는 출발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얼마 뒤 나는 오줌이 마려웠다. 버스가 어디서 쉴지도 모르겠고, 설사 정차하더라도 그 꽉꽉 들어찬 승객들 틈새를 비집고 변소까지 가고, 또 돌아온다는 게 도저히 될 성싶지 않았다. 나는 형에게 오줌을 누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형은 점점 더 찡그리며 “참아!” 하고 명령할 뿐이었다. 지금이라면 서울에서 공주까지 2시간 정도 걸릴까. 당시는 그 두 배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머나먼 길은 지옥이었다. 창 밖에 보이는 국민학교(초등학교) 교문에 ‘체력은 국력’이란 표어가 크게 걸려 있었다.

그 무렵은 일본이 패전한 지 25년이 지난 때였다. 그 다음해의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줄을 서자’라든가 ‘거리를 깨끗하게’ 따위의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편 한국은 ‘조선전쟁’이 정전된 지 15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당시 한국인 1인당 국민소득은 글자 그대로 ‘제3세계 수준’이었다. 식민지지배, 전쟁, 권위주의 정권, 개발독재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건 당연했다. 그런 사정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조국 사람들을 깔봐서는 안 된다. 형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세계 9위 내지 10위의 경제력을 갖게 됐다고 하고 ‘선진국민의 자긍심’이라는 상투어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게 됐다. 밥을 먹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됐다면 그것은 트집잡을 것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서울에서 생활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살아보니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많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을 리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항상 앞을 다투며 살고 있다는 게 그런 것이다. 일찍이 혼란과 빈곤을 경험한 세대만이 아니다. 젊은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빨리 빨리” 하고 재촉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내 마음은 어두워진다. 나날의 생활에 쫓기는 서민들만 그런가 했더니 그런 것만도 아니다. 고급 백화점 계산대 등에서도 유복해뵈는 부인이 줄에 끼어들거나 뒤에서 밀거나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지하철에서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타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당연히 문쪽에서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게 되고 연약한 사람이나 노약자는 빈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서울의 버스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며 급정차와 급발진을 되풀이한다. 정류장 승객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차도에 나가서 버스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버스가 오면 아직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승객들이 사방팔방에서 달려든다. 당연히 줄은 흐트러지고 여기서도 연약자나 노약자는 희생자가 된다. 운전수가 문을 닫지도 않고 급발진할 때와 같은 경우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익숙하지 않을 뿐 한국 사람들은 모두 이런 상태에 익숙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통계상으로는 교통사고 사망자, 그것도 길 위의 보행자가 사망하는 비율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들었다. 곧 사람 목숨값이 싼 것이다.

» 서경식 교수 / 디아스포라의 눈
 
 
일본에 있을 때 한국의 젊은이는 전차나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스스로 자리를 양보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와 보니 현실은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다리와 허리가 굽은 할머니나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승차해도 모른 척하고 있는 젊은이가 많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도덕을 주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일찍이 한국에서는 위로부터의 권위주의적인 강제에 의해 경로나 봉사 도덕이 강요됐다. 위로부터의 강제가 약해질 때 젊은이들이 자기주장을 시작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만약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의 강제에 의해서만 그게 가능하다면 스스로 권위주의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인간이란 그토록 한심한 존재인가.

지금 일본에서는 ‘전후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보장했기 때문에 사람들한테서 배려가 실종됐다’는 유언비어가 떠돌면서 교육의 우경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와 같은 길을 향해 한국이라는 버스가 맹렬한 스피드로 질주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몇 달 뒤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약 오래 산다면 앞으로 어느 땐가 다시 조국에 돌아와 살고 싶다. 그러나 그때 한국 사회는 지금의 일본 이상으로 살벌하게 변해 있지 않을까. 살기 위해 미친듯이 죽인 과거의 습관이 언제까지나 온존되고, 게다가 거기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제거돼버린다면 그곳이 바로 무자비한 정글 아닌가. 한국이야말로 신자유주의시대에 가장 적합한 디스토피아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문화]청바지를 벗지 못하는 6가지 이유
2007 11/06   <뉴스메이커> 748호

젊음·자유·섹스 등 이미지 내포… 소비층 확산 고가 수입시장 급성장


강남이나 압구정 또는 대학가 등 젊은이들이 오가는 거리에 나서 보자. 아니, 기업체 빌딩이 밀집한 공간의 평일 풍경만 아니라면 오가는 사람 셋 중 하나는 청바지 차림이다. 남녀를 따질 것도 없다. 더 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요즘엔 40대 이후 중년 남성도 주말엔 청바지를 애용한다.

청바지에 대한 현대인의 사랑은 통계수치로도 나타난다. 글로벌 마켓은 물론이고 국내의 경우에도 최근 몇 년간 청바지 마켓의 행보는 눈부시다. 청바지(blue jeans)를 중심으로 한 진(jeans) 시장 규모는 2000년 수천억 원대 수준이던 것이 2006년 기준 1조8000억 원대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출처: 패션비즈).

‘청바지 아저씨’ 늘어 프리미어진 각광

어쩌면 ‘20세기 말 이후 청바지 시장에 불황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1970~1990년대에도 청바지는 국내외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보편적 의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만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청바지는 고급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이 더 빠르게 확대돼왔다. 청바지라고 다 똑같은 청바지가 아닌 것이다. 다양한 워싱과 후처리 효과, 디테일과 실루엣, 소재의 개발을 통해 청바지는 다채롭게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5만 원 안쪽의 저가 청바지가 있는가 하면 다이아몬드를 박은 1억5000만 원의 고가 수입 청바지도 있다. 실제 일명 ‘프리미엄진’으로 불리는 고가 수입 청바지 시장은 불과 3년 새 약 400억 원대 규모로 급성장했다. 관련업계에서는 고가의 프리미엄진의 매출 호조를 이끌어낸 데는 청바지의 새로운 소비자로 부상한 40대 이후 중년의 힘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도 50만~60만 원대의 프리미엄진은 의사, 변호사, 증권업계 종사자 등 고소득층이 주말에 정장 대신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의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청바지는 왜 이렇게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핵심은 바로 ‘이미지’다. 패션정보그룹 PFIN 유수진 이사는 “청바지를 입는 이들은 단순히 ‘청바지’라는 의복 아이템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바지가 가진 의미와 상징을 선호한다”고 단언했다. 청바지는 젊음과 자유, 저항 그리고 섹스의 이미지를 내포한다. 게다가 구겨지든, 찢어지든 어떻게 입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실용성의 장점도 있다.

애당초 청바지, 더 정확히 말해 진은 광부들을 위한 작업복으로 고안됐다. 1850년대 일확천금을 꿈꾸며 황금을 캐려고 골드 러시의 물결을 이루며 몰려든 떠돌이 노동자들의 옷이 고강도 노동에 쉽게 찢어지자 착안한 옷이다. 당시 독일 출신의 미국인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가 광부들에게 제공한 옷의 소재는 돛을 만들 때 쓰이는 질긴 천 캔버스였다. 옷감이 워낙 튼튼해 박음질도 튼튼하게 해야 했으며 구리로 된 대갈못을 이음쇠로 박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청바지의 기원으로 당시 청바지는 ‘땀’의 상징이었다.

하층민의 작업복 용도로만 활용하던 청바지가 남녀 모두 즐겨 입는 캐주얼웨어로 거듭난 것은 1900년대 이후 미국에서 산업화 물결이 일 때다. 이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보급됐다. 미국이 코카콜라와 팝송, 청바지를 앞세워 전 세계에 미국 문화를 심었다는 해석도 있다.

캘빈 클라인은 청바지에 섹스 이미지를 접목시킨 광고들(사진)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캘빈클라인진코리아 제공>
청바지가 ‘젊음’과 ‘저항’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크다. 1950년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 ‘워터 프론트’의 말론 브랜도의 영향으로 청바지가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됐기 때문이다. PFIN 유수진 이사는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청바지는 젊은이들의 반항과 히피 문화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패션코드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시인 이문재는 기자 시절 청바지와 관련한 글에서 “청바지는 1960년대 미국에서 ‘행동하는 의복’으로 떠올랐으며 반전, 반핵, 자유와 평등 그리고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위력을 발휘했다”고 기록했다. 이 글에서 이문재는 청바지로 상징되는 여성의 성 혁명을 주목했다. 그는 “치마에서 바지로 옮아간 복식사의 혁명은 엉덩이나 허리 옆에 있던 지퍼 혹은 단추가 ‘남자들과 똑같이’ 앞쪽으로, 성기 쪽으로, 더 정확하게는 상대방을 향해 정면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며 “이 이동은 청바지가 수행했다”고 기술했다. 종전에 등이나 허리 옆에 달렸던 지퍼나 단추는 타인의 손길을 전제한 것이지만 청바지를 통해 지퍼나 단추는 여성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해석이다. 국내에 청바지가 확산된 것은 1970년대로 당시 청바지는 생맥주, 장발과 함께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요즘 40대 이후 중년들이 청바지에 시선을 돌린 데는 저항보다 젊음의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실제로 뇌리에 입력된 이미지 덕분인지, 청바지는 입는 사람의 나이와 감각을 한결 젊어 보이게 한다.

비즈니스웨어 영역까지 폭 넓혀

스타일이 다양한 것은 물론 가격도 5만 원 안쪽의 저가상품부터 억대의 초고가 명품까지 천차만별이다. <경향신문>
청바지가 섹스의 이미지를 덧입은 데는 캘빈 클라인이 기여한 바가 크다. 1980년 이후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 광고는 남성들을 순식간에 매료시킬 만큼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는 ‘인물과사상’ 2000년 9월호에서 “진을 섹스와 결부시켜 팔아먹는 클라인의 천재적 감각이 본격적으로 선을 보인 것은 1980년, 당시 15세의 여배우 브룩 실즈를 모델로 내세운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서였다. 이름하여 ‘브룩 실즈의 노팬티 광고’다”(시사인물사전 9 : 쾌락의 독재)라고 기술했다. 미국의 패션 전문기자 리사 마시의 책 ‘캘빈 클라인’에 따르면 당시 브룩 실즈가 등장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광고의 카피는 “나와 캘빈 청바지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아세요? 아무것도 없어요”다. 이 책은 “일부 방송국은 광고를 중단하거나 심야시간에만 내보냈지만, 뉴욕 시 방송국들이 개입하면서 여론은 점차 비등해졌다. 그들은 광고가 섹스를 찬양하고 동성애에 대한 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자와 여성단체, 교육가들의 말을 인용하며 맹렬하게 공격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 광고가 나간 지 한 달 만에 무려 200만 장의 청바지가 시중에 팔렸다는 점이다. 이후에도 캘빈 클라인의 광고는 가슴이 반쯤 드러난 채 밑위가 짧은 청바지 차림의 모델이 야릇한 표정으로 비스듬히 서 있거나 상반신에 옷을 걸치지 않고 청바지만 입고 서로 끌어안고 있는 남녀의 모습 등 섹시함을 강조한 이미지 일색이다. 실제로 잘록한 허리를 지나 둥근 엉덩이를 거쳐 곧게 뻗은 긴 다리로 이어지면서 인체의 곡선을 강조하는 청바지의 맵씨는 다른 어떤 패션 아이템보다 섹시하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성에 대한 호감은 국내 가요에서도 드러난다.
1970년 록그룹 ‘사랑과 평화’는 “청바지의 어여뿐 아가씨가 날 보고 윙크하네 처음 보는 날 보고 윙크하네 이것 참 야단났네”(‘청바지 아가씨’ 중)라며 청바지를 입은 예쁜 아가씨를 보며 설레는 남자의 마음을 표현했다. 또 1989년 변진섭은 ‘그런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나열한 노래에서 제일 먼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희망사항’ 중)를 꼽았다. 이 노래의 가사를 만든 것은 여성 작곡가 노영심이지만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선망하는 여성상을 그린 것임에는 틀림없다. 까놓고 말해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멋진 여성은 몸매가 예쁜 여성이기 때문이다. 허리와 골반, 엉덩이, 허벅지, 긴 다리가 적절한 비율로 구성된 여성이 그에 해당한다.

영국 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은 “남자와 여자 대부분은 성교를 하기 위해 옷을 입는다”고 했고, 구찌 디자이너 탐 포드는 “진정한 패션의 환상은 섹스와 관련이 있다”고 피력했다. 패션이 성적 판타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청바지는 이 같은 의복의 기본 덕목에 매우 충실한 패션 아이템인 셈이다.

청바지는 이제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비즈니스웨어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유수진 이사는 “21세기 트렌드가 포스트모더니즘과 경계의 무의미함을 내세운 이후 정장과 캐주얼, 격식과 비격식, 주류와 비주류, 서양과 동양의 명확한 구분은 촌스러운 옛것으로 내몰렸다”며 “따라서 진정 멋스러운 사람이라면 청바지에 정장 재킷을 걸쳐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단,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청바지의 핵심은 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도록 연출해야 한다는 것. 다리가 짧은 사람이라면 다리가 길어 보이는 부츠컷(허리에서 무릎까지는 폭이 좁고 무릎 아래부터는 폭이 넓은 스타일)을, 허벅지가 굵은 사람이라면 장식적인 실루엣보다 무난한 일자형을, 허리가 굵은 사람이라면 제 허리선 바지보다 골반 바지를 선택한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