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눈] 한국, 급한 성격 좀 고치세요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1 03
 

 
지금부터 쓰는 글은 언젠가는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테마다. 그러나 그것을 쓰는 게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진국’ 시선에서 조국 사람들의 ‘후진성’을 비난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질까 저어했기 때문이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지만, 독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1969년 여름 나는 태어나서 두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서울 법대 1년생이었던 형을 따라 할아버지 성묘차 충청남도 청양군 고향에 가기로 했다. 버스로 공주까지 가서 합승으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한데 버스 터미널에 가 보니 너무 승객이 많아 도저히 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승객들은 문쪽으로 밀려들어 서로 밀치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내게 그 장면은 영화에서 본 일본 패전 직후의 혼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 무리 속에 돌진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찡그린 표정의 형이 창을 가리키며 “저기로 차 안에 기어들어가” 하고 명령했다. 머뭇거리고 있자니 “멍하니 서 있지 마! 여기는 일본이 아니야” 하고 형은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마지못해 창으로 머리를 들이밀자 뒤에서 형이 나를 억지로 밀어넣었다. 모르는 승객들이 서로 입김을 상대방 낯에 뿜어대며 땀에 흠뻑 젖을 만큼 밀착한 상태로 버스는 출발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얼마 뒤 나는 오줌이 마려웠다. 버스가 어디서 쉴지도 모르겠고, 설사 정차하더라도 그 꽉꽉 들어찬 승객들 틈새를 비집고 변소까지 가고, 또 돌아온다는 게 도저히 될 성싶지 않았다. 나는 형에게 오줌을 누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형은 점점 더 찡그리며 “참아!” 하고 명령할 뿐이었다. 지금이라면 서울에서 공주까지 2시간 정도 걸릴까. 당시는 그 두 배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머나먼 길은 지옥이었다. 창 밖에 보이는 국민학교(초등학교) 교문에 ‘체력은 국력’이란 표어가 크게 걸려 있었다.

그 무렵은 일본이 패전한 지 25년이 지난 때였다. 그 다음해의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줄을 서자’라든가 ‘거리를 깨끗하게’ 따위의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편 한국은 ‘조선전쟁’이 정전된 지 15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당시 한국인 1인당 국민소득은 글자 그대로 ‘제3세계 수준’이었다. 식민지지배, 전쟁, 권위주의 정권, 개발독재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건 당연했다. 그런 사정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조국 사람들을 깔봐서는 안 된다. 형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세계 9위 내지 10위의 경제력을 갖게 됐다고 하고 ‘선진국민의 자긍심’이라는 상투어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게 됐다. 밥을 먹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됐다면 그것은 트집잡을 것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서울에서 생활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살아보니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많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을 리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항상 앞을 다투며 살고 있다는 게 그런 것이다. 일찍이 혼란과 빈곤을 경험한 세대만이 아니다. 젊은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빨리 빨리” 하고 재촉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내 마음은 어두워진다. 나날의 생활에 쫓기는 서민들만 그런가 했더니 그런 것만도 아니다. 고급 백화점 계산대 등에서도 유복해뵈는 부인이 줄에 끼어들거나 뒤에서 밀거나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지하철에서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타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당연히 문쪽에서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게 되고 연약한 사람이나 노약자는 빈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 서울의 버스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며 급정차와 급발진을 되풀이한다. 정류장 승객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차도에 나가서 버스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버스가 오면 아직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승객들이 사방팔방에서 달려든다. 당연히 줄은 흐트러지고 여기서도 연약자나 노약자는 희생자가 된다. 운전수가 문을 닫지도 않고 급발진할 때와 같은 경우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익숙하지 않을 뿐 한국 사람들은 모두 이런 상태에 익숙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통계상으로는 교통사고 사망자, 그것도 길 위의 보행자가 사망하는 비율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들었다. 곧 사람 목숨값이 싼 것이다.

» 서경식 교수 / 디아스포라의 눈
 
 
일본에 있을 때 한국의 젊은이는 전차나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스스로 자리를 양보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와 보니 현실은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다리와 허리가 굽은 할머니나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승차해도 모른 척하고 있는 젊은이가 많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도덕을 주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일찍이 한국에서는 위로부터의 권위주의적인 강제에 의해 경로나 봉사 도덕이 강요됐다. 위로부터의 강제가 약해질 때 젊은이들이 자기주장을 시작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만약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의 강제에 의해서만 그게 가능하다면 스스로 권위주의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인간이란 그토록 한심한 존재인가.

지금 일본에서는 ‘전후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보장했기 때문에 사람들한테서 배려가 실종됐다’는 유언비어가 떠돌면서 교육의 우경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와 같은 길을 향해 한국이라는 버스가 맹렬한 스피드로 질주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몇 달 뒤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약 오래 산다면 앞으로 어느 땐가 다시 조국에 돌아와 살고 싶다. 그러나 그때 한국 사회는 지금의 일본 이상으로 살벌하게 변해 있지 않을까. 살기 위해 미친듯이 죽인 과거의 습관이 언제까지나 온존되고, 게다가 거기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제거돼버린다면 그곳이 바로 무자비한 정글 아닌가. 한국이야말로 신자유주의시대에 가장 적합한 디스토피아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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