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 개봉을 앞두고 모처럼 모든 언론이 입을 모아 영화소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바로 리안 감독의 <색,계>. 좀 과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인데, 그 소개 포인트도 언론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황색언론 계열은 노골적 정사신에 방점을 찍고 실제인가, 연기인가 같은 가십성 기사를 올리기도 한다. 아래는 리안 감독과 여배우 탕웨이의 연합뉴스 기자회견을 축약한 <한겨레신문>의 기사와 <한겨레21>의 리뷰를 함께 옮겨 놓는다(인터뷰 전문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시켜 둔 <연합뉴스>를 참조하시길)

<인터뷰> `색, 계` 주연배우 탕웨이    2007-10-29
<인터뷰> `색, 계` 주연배우 탕웨이˝다 찍고 나니 배역 캐릭터 이해되더군요˝ (서울=연합뉴스)
 
<인터뷰> `색, 계` 리안 감독    2007-10-29
<인터뷰> `색, 계` 리안 감독˝식민 경험 지닌 한국 관객은 잘 이해할 것˝ (서울-연합뉴스)
 
<영화 색.계 남녀 주인공은 실존인물>    2007-10-29
<영화 색.계 남녀 주인공은 실존인물> (타이베이=연합뉴스)



리안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는 자매 영화”
‘색, 계’ 주연배우 탕웨이와 기자회견
출처 : 인터넷한겨레 / 연합
2007 11 02
 

 
» 29일 오전 신라 호텔에서 열린 영화 ‘색,계(色戒)‘의 기자회견에서 연출을 맡은 리안(李安)감독(오른쪽)과 여주인공 탕웨이(湯唯)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
 

영화 '색, 계(色, 戒)'로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안(李安) 감독은 2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주연 배우 탕웨이(湯唯)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는 자매 같은 영화"라고 밝혔다.

리 감독은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의 동성애와 세계 각국에서 화제를 뿌린 '색, 계'의 파격적인 정사신에 대한 질문에 먼저 "아마도 내가 중년의 위기에 봉착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해 기자들로부터 웃음을 이끌어낸 뒤 "과거에는 사랑에 대해 보수적이고 평범한 관점을 지녀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젊었을 때 표현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브로크백 마운틴'의 정사신이 제약이 따르는 아픈 사랑이라 그 괴로운 마음을 표현해야 했다면, 이번 영화는 '색'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지만 주인공의 사랑을 보여주는 데 꼭 필요했다"며 "두 영화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어 자매 같은 영화"라고 강조했다.

탕웨이도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두 주인공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을 몸을 통해 표현하는 상황의 특수한 감정이라고 이해했다"며 "촬영 기간 초반에 11일 동안 촬영해 뒤에 찍은 다른 장면들에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리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 수상 직전 미국에서 17세 이하 관객은 영화를 볼 수 없는 'NC-17' 등급을 받아 마음이 무거웠다"며 "수상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미 아카데미) 감독상이 아닌 작품상을 받은 터라 스태프들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정말 기뻤다"고 밝혔다.

그는 탕웨이의 연기에 대해 "여배우가 영화를 지고 가는 인물이고 여류작가가 원작에서 여자의 강인함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며 "오디션에서 탕웨이를 처음 보는 순간 바로 그 여주인공이란 생각이 들었고 영화가 완성된 뒤에도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탕웨이도 "왕치아즈는 여배우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역인데 이런 기회를 잡은 것은 행운"이라며 "8개월의 촬영 기간에 마음 속에 숨겨진 것들을 뽑아내 깨뜨려 준 감독에게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그는 "리 감독은 배우들에게는 교장 선생님이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표현해 보자'는 내용의 수업을 함께 들었다"고 덧붙엿다.

탕웨이는 또 상대역으로 연기한 량차오웨이(梁朝偉)에 대해서는 "나를 한번도 신인으로 대한 적 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도록 이끌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해 준 배우"라며 "그로부터 진정한 배우의 자세를 배우게 됐고 그는 앞으로도 배우로서 나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색, 계'는 1930~1940년대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항일운동을 하는 여성 스파이와 첩보 대상인 친일파 고위인사 간의 사랑을 그린 에로틱 스릴러다.

(서울=연합뉴스)


색에 빠진 자, 계를 잃을지니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겨레21> 제683호 2007년11월01일


친일파 대장과 저항군 스파이의 사랑 그린 ‘리안표’ 영화 <색, 계>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의 진심은 과연 무엇인가. 사랑에 대한 오래된 혹은 해묵은 주제다. 이렇게 해묵은 주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데, 리안 감독만큼 적임자도 드물다. 고급스런 대중영화의 장인이자 사랑의 감정을 다루는 기술자인 리안 감독은 오래된 이야기 혹은 통속적 사랑을 사랑이 불가능한 상황에 던져둔다. 그리고 희열과 고통으로 얼룩진 인물의 표정을 날카롭게 잡아내 관객의 마음을 후벼판다. 불가능한 사랑만큼 사랑의 애절함을 절절하게 드러내는 사랑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는 처연했다. 리안이 이번엔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940년대 일본에 점령된 상하이, 친일파 정보부 대장과 그를 암살하려는 여성 사이에 불가능한 사랑이 시작된다. 리안의 <색, 계>(色, 戒)는 서로를 경계(戒)하지만, 서로의 색(色)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본의 침략을 피해서 홍콩으로 피난온 왕치아즈(탕웨이)는 외롭다. 그의 친구들은 항일운동에 뛰어들고 그도 자신의 운명을 저항운동에 맡긴다. 밀수업자의 아내인 막 부인으로 위장해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량차오웨이)의 부인(조안첸)에게 접근한다. 그들의 목표는 이의 암살. 어렵게 이 부부에게 접근하지만 갑작스레 부부는 상하이로 돌아가버린다. 사실 왕치아즈는 암살의 주모자인 광위민(왕리훙)을 연모해 암살에 가담했다. 하지만 그들은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왕치아즈는 상처만 받는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흐른다. 광위민이 다시 왕치아즈를 찾아온다. 그리고 왕치아즈는 또다시 막 부인이 돼 이에게 접근한다.

적을 유인하며 연인을 유혹하는 마음

이제 모든 행위는 하나의 의미가 아니다. 막 부인의 행위는 이에 대한 유인이자 유혹이다. 적을 유인하는 일이자 연인을 유혹하는 행위다. 막 부인은 어느새 자신이 죽여야 하는 자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색(色)은 계(戒)를 무장해제시켜버렸다. 이의 거친 숨결은 막 부인의 가슴을 파고들었을 뿐 아니라 마음까지 달구었다. 이제 상황은 바뀌고 진실마저 모호하다. 나의 편인 저항군은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적인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를 이용하는 자와 나를 사랑하는 자의 자리가 모호하다. 영화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영화관이 어두워서 영화를 보러가지 않는다는 이도 외롭다. 너무나 오랫동안 아무도 믿지 못했던 이는 의심에 지쳤다. 그래서 이는 막 부인을 “믿는다” 보다는 “믿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모든 행위는 역설이고, 모든 말은 모호하다. 막 부인은 저항군에게 당신들이 그를 죽여버리는 꿈을 꾼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인지 그조차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사랑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처음으로 이를 만나고 돌아온 왕치아즈에게 친구가 묻는다. “어떻게 생겼어?” 그는 “상상하곤 다르다”고 대답한다.

적나라한 섹스신엔 체념과 위로가

리안의 영화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색, 계>는 집요한 상반신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을 잡아낸다.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는 집요한 클로즈업을 끝까지 견뎌낸다. 20여 년을 연기한 량차오웨이도, 첫 번째 영화에 출연한 탕웨이도 완벽하게 리안의 인물로 변신한다. 미인대회 출신인 탕웨이는 미모보다는 연기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조연배우 누구나 자신의 연기를 해낸다. 이렇게 완벽한 연기에 담긴 무심한 행동이나 스쳐가는 말들은 영화의 공기를 서서히 물들인다. 어느새 쌓인 먼지처럼 어느덧 켜켜이 쌓인 감정에 빠져들게 만드는 <색, 계>는 ‘리안표’ 영화다. <색, 계>는 스캔들의 영화다. 적나라한 섹스신이 화제를 모았고, 성기와 음모 노출 논란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30분가량 삭제된 채로 상영됐고, 미국에서도 17살 이하 관람금지 등급(NC-17)을 받았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제한상영 판정을 받지 않고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심의를 통과했다. 세 번의 섹스신은 색에 굴복해 계를 포기한 자의 체념한 표정으로, 서로의 외로움을 쓰다듬는 위로로 남는다.

오늘날 리안만큼 종횡사해 동서고금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감독은 드물다. 서양과 동양, 시대극과 현대물, 이성애와 동성애, 리안은 무엇을 만들어도 대중성과 작품성의 접점을 찾아내는 능력을 보여왔다. 리안은 뉴욕에 사는 동양인 게이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던 <결혼 피로연>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아이스 스톰>에서 1970년대 미국 중산층의 해체를 그렸던 리안은 <와호장룡>으로 홀연히 옛날의 중국으로 돌아갔다. 한편으론 19세기 영국 배경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도 영화로 옮겼다. <색, 계>는 리안이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에 다시 중화권 감독으로 돌아와 만든 영화다. <색, 계>로 그는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2년만에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장을 받는 드문 사례를 남겼다. <색, 계>는 중국의 여성소설가 장아이링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다. 관진펑(관금붕)의 <화이트 로즈, 레드 로즈>, 허우샤오셴의 <해상화>도 장아이링의 소설이 원작이다. <색, 계>는 11월8일 개봉한다.


張學友 - 淹沒 (Lust Caution theme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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