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이 러시아 혁명의 순간을 함께하며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기록한 르포르타쥬의 결정판이라면,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는 생생한 혁명의 순간을 살았던 혁명가들의 사상의 역사이자 혁명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1990년대 중반에 실천문학사에서 <인물로 본 혁명의 역사>란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지만, 아마도 제대로 된 완역은 이번이 처음일 게다(내 기억으론 1980년대 말에도 <핀란드 역으로(~까지?)>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던 것 같다. 이때 나온 번역본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책장을 뒤져봐도 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래 인용하는 글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고명섭 기자의 서평이다.

젊은 날 품었던 혁명에의 열정이 식어버린 당신을 느끼신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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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새로 쓴 자와 새로 쓸 자 누구인가

고명섭 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년 11월 23일


» 역사를 새로 쓴 자와 새로 쓸 자 누구인가
 
〈핀란드 역으로〉
에드먼드 윌슨 지음·유강은 옮김/이매진·2만5000원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서른 살의 죄르지 루카치(1885~1971)가 <소설의 이론>(1915) 첫줄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시대의 영광을 떠올리며 이 영탄조의 문장을 내뱉었을 때, 거기에 회한만 깔려 있었던 건 아니다. 이 젊은 문예이론가의 가슴에는 희망도 살아 있었다. 역사에 대한 희망, 진보에 대한 희망이었다. 3년 뒤 루카치는 혁명 정당에 가입해 정열적인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는 믿음을 실천에 옮겼다. 루카치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산 미국 문필가 에드먼드 윌슨(1895~1972)도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윌슨은 인류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일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이라는 진보적 견해를 평생 고수했다.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고 러시아 10월혁명에 마음으로 동참했다. 그의 젊은 시절 관심과 열정을 응축한 책이 <핀란드 역으로>다. 1935년 쓰기 시작해 5년 만에 펴낸 이 책은 역사의 기관차가 인간해방의 세상을 향해 난 철로를 달려간다는 신념을 펼쳐놓은 저작이다. 문체의 유려함, 묘사의 생동감, 신념의 절실함으로 인해 이 책은 현실 사회주의 실험이 파산한 뒤에도 여전히 역사교양서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이 대학시절 탐독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유명해진 이 책이 완역돼 나왔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주역들 통해
인간이 역사를 창조한다는 신념 펼쳐
문체·묘사 뛰어난 ‘역사교양서의 고전’


제목이 보여주듯이 이 책은 역사의 기관차가 다다른 가장 중요한 지점이 ‘핀란드 역’ 곧 러시아혁명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어판 서문을 새로 쓴 루이스 메넌드(뉴욕시립대 교수)는 이 책의 가치가 ‘제목’이 아니라 ‘부제’에 들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를 쓴 사람들, 역사를 실천한 사람들에 관한 탐구’라는 부제는 역사를 창조하려고 분투했던 사람들의 감동어린 삶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주제임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사람들의 신념에 찬 투쟁을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지은이 윌슨은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부터 1917년 혁명까지 역사의 기관차에 올라탔던 혁명가·사상가들을 독자 앞으로 불러들인다.

<핀란드 역으로> 표지
이 책이 그려 보이는 역사의 철로는 한 방향으로 놓인 단선 철로가 아니다. 철로는 두 방향으로 나 있다. 책의 앞부분에서 지은이는 프랑스혁명에서 출발한 두 철로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철로다.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에서 시작해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로 끝나는 이 철로는 희망과 믿음의 점진적 쇠퇴를 보여준다. 미슐레는 프랑스혁명의 감격적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인간의 가슴이 그렇게 활짝 열리고 훤히 트인 적이 일찍이 없었다. 계급·당파·재산의 구별이 그렇게 완전히 사라진 적도 없었다.” 이 역사가에겐 “민중이야말로 주연배우였다.” 그러나 미슐레의 낙관은 세대를 거치면서 힘을 잃었다. 두 세대 뒤의 아나톨 프랑스는 1871년 파리코뮌을 세운 민중을 두고 “쓰레기 같은 놈들, 흉측한 놈들”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부르주아의 혁명적 열정은 쇠락했고 이들이 세운 철로는 끊어져 전망을 잃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지은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른 한 철로를 살핀다. 프랑스혁명의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표어의 차원에서 실제의 차원으로 끌어내려 현실에 구현하려 한 사람들이 만든 철로다. 29살 때 혁명에 참여한 그라쿠스 바뵈프가 첫 번째 주인공이다. 1794년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이른바 ‘테르미도르 반동’이 개시됐을 때 바뵈프는 ‘평등협회’를 만들어 민중봉기를 조직하고 ‘평등선언’을 썼다. “프랑스 인민이여! 우리와 함께 평등의 공화국을 선포하자!” 최초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시작이었던 셈인데, 그러나 바뵈프는 곧바로 체포되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뒤를 이어 생시몽·푸리에·오언과 같은 인도주의자들이 등장해 ‘사회주의 공동체’ 방안을 내놓고 그 방안을 실천했다. 이들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머지않아 ‘공상’에 가까운 실험이었음이 드러났다.



지은이는 이 즈음에서 혁명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카를 마르크스(18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2895)를 등장시킨다. 이 책에 서술된 혁명가 마르크스의 삶은 익히 알려진 대로 추방과 망명과 궁핍의 연속이다. 그러나 지은이의 펜은 마르크스의 반항적 정신을 묘사하는 데서 더 빛을 발한다. 스물세 살 마르크스가 쓴 시는 자기 내부의 들끓는 정열을 이렇게 묘사한다. “파도는 왜 으르렁거리는가? 우레와 같은 소리로 절벽에 부딪쳐 깨지기 위해서요.” 1845년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썼던 마르크스는 3년 뒤 역사적 문건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다. 이 팸플릿은 “시종일관 고성능 폭탄 같은 힘으로 가득 찬” ‘부르주아에 대한 선전포고문’이었다. 1850년 런던으로 망명한 마르크스는 무려 17년의 세월을 바쳐 <자본> 1권을 완성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진통에 진통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도구”, 역사를 바꾸고 창조하는 데 곧바로 쓰일 변혁의 도구였다. <자본>을 출간한 뒤 마르크스는 이 책을 쓰는 일이 “내 건강과 내 삶의 행복과 내 가족을 희생시킨 작업”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쓰는 동안 런던의 빈민굴에서 세 아이를 병으로 잃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전 저작을 통해 자본주의가 불러낸 지하의 힘, 곧 프롤레타리아가 서유럽을 뒤엎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그가 죽고도 한참 동안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졌다. 1917년 4월 망명지에서 돌아온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 역’에 내려 곧바로 단상 위에 올라가 “동지들!”로 시작하는 사자후를 토했다. 그날로부터 일곱 달 뒤인 11월 6일(옛 러시아력 10월 24일)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꼭 90년 전에 터진 그 혁명은 인간이 역사를 창조한다는 신념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는 그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어른거린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역사를 믿었던 트로츠키…인간을 믿었던 레닌
러시아 혁명 두 주역의 차이점

고명섭 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년 11월 23일


<핀란드 역으로>에서 지은이 에드먼드 윌슨은 러시아혁명의 두 주역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24)과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1879~1940)를 비교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레닌이나 트로츠키나 ‘역사를 자신과 동일시했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그 동일시의 방식은 달랐다고 윌슨은 말한다.

지은이의 트로츠키에 대한 평가는 다소 인색한 편이다. 그는 혁명 동지 루나차르스키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트로츠키는 자신의 역사적 역할을 소중히 여겼으며, 인류의 기억 속에 진정한 혁명 지도자라는 영광된 인물로 남기 위해 어떤 개인적 희생도 달갑게 받아들일 게 분명했다. 자기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관찰자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한다. “이 사람은 관중만 많으면 서슴지 않고 러시아를 위해 싸우다 죽을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트로츠키는 연극무대의 주인공처럼 역사의 무대에 섰던 것이다. 특히 트로츠키에게 역사란 곧 섭리와 같은 것이었고, 자신은 그 섭리를 알고 그 섭리를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강했다고 지은이는 평가한다. 볼셰비키의 승리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트로츠키는 경쟁상대 멘셰비키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당신들은 가련한 고립된 개인들이다. 당신들은 파산했으며, 이제 당신들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는 당신들의 자리로 돌아가라-역사의 쓰레기통 속으로!” 그러나 머잖아 그 자신도 스탈린에게 패배해 멘셰비키 신세가 됐다고 지은이는 씁쓸하게 말한다.

레닌은 트로츠키에 비하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었다고 이 책은 평가한다. “레닌은 트로츠키와 달리 이론 속에서 살지 않는다. 언제나 실제 상황을 살피며, 자기 이야기의 조리가 맞는지는 괘념치 않은 채 가능한 한 상황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또 트로츠키와 달리 레닌에게 역사는 수호천사 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역사는 미적거리다가 승리를 놓친 혁명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레닌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역사와 자신을 동일시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태도가 더 분명했던 것이다. 그런 레닌조차도 러시아에서 10월혁명의 전주곡인 2월혁명이 터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변화는 때때로 불현듯 찾아오고 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민중임을 이 책의 지은이는 넌지시 보여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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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형형한 실존에 대한 영화 <색, 계>
삶은 ‘지금 여기’와 ‘기타 등등’으로 나뉜다.

이동진
출처 : <한겨레> 2007년 11월 07일




그러니까 <색, 계>는 육체의 형형한 실존에 대한 영화다. 생(生)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치열한 길항작용에 대한 영화이고, 지루한 세월이 폭발하는 찰나에 맞서 힘겹게 싸움을 벌이는 영화다. 혹은 시간은 불균질하고 공간은 윤회한다. 그리고 삶은 ‘지금 여기’와 ‘기타 등등’으로 나뉜다.

1938년 홍콩. 대학 연극반에 가입한 왕치아즈(탕웨이)는 대륙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에 맞서 애국적 저항 활동을 벌이려는 광위민(왕리홍)에게 매료된다. 광위민이 친일파 핵심 인물인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이에 동조한 왕치아즈는 신분을 위장하고 미인계를 써서 이의 아내(조안 첸)에게 접근한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와 왕치아즈는 서로에게 강렬히 이끌리지만, 급작스레 이가 상하이로 발령이 나 옮기는 바람에 암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1941년 상하이. 강력한 항일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광위민이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 왕치아즈에게 3년 만에 찾아온다. 치밀하게 짜인 새로운 암살 계획을 듣고 왕치아즈는 다시금 이에게 접근한다.

리안은 몸이 일으키는 파장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쿵후 선생>에서 많은 일을 겪은 노인은 무술을 가르치며 마음을 다스리고, <라이드 위드 데블>에서 참혹한 전쟁을 치른 소년은 긴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한 시절과 이별한다. <헐크>에서는 몸의 급격한 변형을 통해 마음의 극심한 혼란을 그려냈고, <음식남녀>에서는 미각의 변화를 빌려 가족의 의미를 재정립했다. 그리고 <아이스 스톰>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거쳐 <색, 계>에 이르는 동안 리안의 어떤 영화세계는 점점 더 격정에 사로잡히고 있다.

<아이스 스톰>이나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탁월한 리안의 대표작과 비교할 때, 사실 <색, 계>가 마냥 찬사를 연발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아마도 리안의 가장 뜨거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색, 계>가 제대로 통제된 우아한 스타일과 인상적인 몇몇 장면들을 지닌 매력있는 대중영화라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모두가 이야기하는 <색, 계>의 베드신은 과연 강렬하다. 이 영화의 섹스신 연출은 파격적인 동작을 섬세하게 연결하는 일종의 ‘안무’라는 점에서 <와호장룡>의 무술장면 연출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영화의 에로스는 침대 위에만 존재하진 않는다. 왕치아즈가 커피를 마신 뒤 립스틱 자국을 잔에 남기거나 향수를 귀 밑에 슬쩍 뿌릴 때에도 리안은 카메라 뒤에서 큐피드의 화살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왕치아즈와 이가 온몸으로 만나는 세 차례의 장면은 폭력적이고 과시적이지만, 이야기 흐름이나 인물의 심리에 단단히 밀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훌륭하다. 파격적인 섹스신이 있는 양조위 주연의 또 다른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였다. 그 작품에서 왕가위는 강도 높은 롱테이크 베드신을 영화의 첫 장면으로 삼았다. 리안은 <색, 계>에서 러닝타임 90분을 흘려보낸 뒤에야 일련의 강력한 베드신들을 모자이크하듯 묘사한다. 베드신의 영화 내 위치나 촬영 및 편집 방식의 차이는 왕가위와 리안이 어떻게 다른 영화적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이글거리는 내면의 불을 차갑고 강인한 외양 속에 감춘 연기의 품질도 좋지만, 이 영화의 양조위에게 정말로 감탄스러운 것은 작품을 대하는 자세다. 탕웨이는 이 작품이 스크린 데뷔작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입체적이고 고혹적이다.

<색, 계>에서 폭발적인 베드신 못잖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살의와 욕망이 교대로 휘몰아치는 격정의 순간이 어찌어찌 흘러간 뒤 홀로 남은 왕치아즈가 거리로 나서는 장면이었다. 인력거 뒷자리에 탄 채 한적한 거리를 잠시 달릴 때의 기묘한 정적. 경찰에 의해 길이 잠깐 통제되자 옷깃에 숨겨놓은 독약 캡슐을 만지작거리던 그녀 입가의 작고 짧은 미소. 이 무기력한 나른함이 주는 안온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글) 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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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이라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 상식을 회복하는 10년이었다. 수구·기득권층은 10년째 잃어버린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 옛날의 특권을.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출처 : <시사 IN> 제 10호 2007년 11월 19일


이정우
이번 대선에서 좌파 정권을 종식시키자고 합창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 실정’ ‘국정 파탄’ ‘잃어버린 10년’이란다. 이 말은 원래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이 심심할 때 한 번씩 외치던 구호인데, 이제는 꽤 많은 동조자를 모으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 지지율의 합이 60%나 되는 것을 보니 이런 생각을 가진 국민이 많기는 많은가 보다.

좌파 정권? 혹시 외국인이 이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구상의 어떤 기준을 가져와도 좌파 정권이라 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구태여 분류하자면 중도 우파 정도다. 그럼 광복 후 50년간의 정부는 무엇이었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는 자유와 인권을 말살한 명백한 극우파 정부였고, 그때의 삶이란 겨우 숨만 쉬는 삶이었다. 그 뒤의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극우파는 아니었지만 역시 오른쪽으로 치우친 정부였다.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은 극우파임을 ‘자백’해야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과거의 성장 지상주의를 반성하고, 분배·복지에도 약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심한 우편향, 심한 불균형을 시정하려고 노력한 정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오른쪽 끝에 있다가 조금이라도 중간으로 움직이려 한 것이므로 ‘중도’라는 수식어를 처음으로 붙일 만하지만 좌파는 아니고 역시 우파다. 선진국은 경제 예산보다 복지 예산이 몇 배나 많다. 심지어 선진국 중 복지를 가장 등한히 하는 미국조차 복지 예산이 경제 예산의 다섯 배나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역대 정부에서 경제 예산이 복지 예산을 압도하다가 참여정부에 와서 처음으로 역전이 일어났다. 우리의 기형적 예산구조가 이제 겨우 바로잡히기 시작했을 뿐, 장차 갈 길은 멀고도 멀다. 복지가 부족하니 서민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지만 내일 밤 다시 잠자리에 든다는 기약이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은 지난 10년을 비난하며 늘 이렇게 합창한다. 복지에 치중해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고. 이런 말을 들으면 외국인은 역시 이해를 못할 것이다. 이 정도의 초보적 복지를 가지고 왜 시비를 거는지를. 양극화가 이렇게 심각한데, 복지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것을 오히려 반성해야 한다. 

이런 중도 우파 정권을 가리켜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은 스스로 오른쪽 끝에 있다고 실토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내가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실은 나는 극우파요’ 하는 게 솔직하지 않을까. 광복 후 집권 극우파 세력이 집요하게 좌파 사냥에 나서서 좌파를 전멸시키다시피 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좌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좌파란 무엇인가? 인간은 이타심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고, 스스로 이타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좌파다. 우파란 무엇인가?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믿고, 따라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우파다. 우파는 자신과 자기 가족의 이익과 안락에 주로 관심이 있고 남의 고통에 대해서는 눈을 감지만, 좌파는 이웃과 이 세상의 약자에 대한 연민과 정의감이 있다. 이 기준으로 대통령 후보들을 한번 평가해보라.

시인 안도현의 짤막한 시는 폐부를 찌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조금 바꾸면 이렇게 된다. ‘좌파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좌파가 아니다. 좌파 운운은 무지의 소치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나 북유럽 복지국가 정도가 돼야 좌파라 불린다.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 상식을 회복하는 10년이었다. 수구·기득권층은 10년째 잃어버린 걸 찾아 헤매고 있다. 옛날의 특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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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은 알다시피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이다. 처음 그 자리 맡을 때부터 사실 의아했다. 노무현의 (선거)정책 브레인이었으면 그걸로 끝내야지 왜 들어갈까, 선생 역시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알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청와대 정책라인에 이정우 선생이라도 없었으면 어디 쓸만한 인간이 하나라도 있었겠는가만(아, 정태인 씨도 있었군)...

결국 이정우 선생은 예상대로 재경부 관료들에게 밀려나왔다. 사실 노무현의 머리구조로는 이정우 선생의 철학을 담을 공간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은 진보니 뭐니 헛소리들 하지만, 노무현의 사고는 차라리 DJ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DJ는 나름대로의 '철학'이라도 있기나 하지... 그러니 어떻게 이정우 선생이 버틸 수 있겠는가.

지난 번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정우 선생이 재경부 관료들에게 밀려나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참여정부는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뒤부터는, 뭐 하나 꿀릴 게 없는데(아니네, 자기 입으로 부동산 정책은 잘못했다고 실토했었군) 언론과 한나라당이 자기를 깎아내리고 못살게 군다는 노무현의 아집과 독선만 판을 친 것이고...

이정우 선생의 윗글은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그런데 선생한테 하나 묻고 싶다. 선생께서는 왜 이런 중도우파 정권에 들어갔는지를... 큰 맘 먹고 들어갔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켜냈어야지 어정쩡하게 쫓겨나다시피 한 이유는 무엇인가. 연유야 어찌됐건 결국 참여정부 초기의 부동산정책이 일그러지는 것 하나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던 우파정권의 정책실장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냥 아쉬워서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여파로 지금 대한민국이 어떤 지경이 됐는가를 생각하면 단순하게 아쉬워서 하는 소리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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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칼럼] 민노당은 진보적인가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21일


최근 사법부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 사건 항소심에서 강교수가 국가존립과 안정을 위협했기 때문에 1심의 유죄판결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2001년 평양에서 북측의 통일방안 연설 때 박수를 치고,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라고 썼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그가 사려깊지 못한 언행으로 불필요한 논쟁을 유발했지만, 쿠데타나 국가전복을 기도한 것은 아니다. 자기 신념대로 쓰고 말했을 뿐이다. 그 때문에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붕괴에 직면했다는 증거는 없다. 아니, 국가라는 거대한 체계는 이 ‘왕따 학자’에 의해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판결문 어디에서도 그의 박수와 문장 하나가 어떻게 이 나라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었는지 그 인과관계를 서술하는 단 한줄의 문장도 찾을 수 없었다. 판결문이 이렇게 비논리적일 수 있는지 따지자는 게 아니다. 한국이 왜 이런 반이성적 사태에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조용한 사회로 변했는가 묻는 것이다. 요즘 한국사회가 보수화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분위기를 탄 결과일까.

-‘살림살이 개선’ 공약 어디에-

사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즘 낡은 사회, 구질서를 변혁하자는 87년의 열정이 20년 만에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지역대결과 보수 헤게모니에서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여론의 균형을 유지해왔던 서울의 오랜 전통도 깨졌다. ‘서울의 배반’은 이미 지난해 노무현 심판 선거였던 지방선거 때 분명하게 드러났다. 권위주의 시대 집권당을 잇는 보수당이 1967년 이래 처음으로 서울에서 압승함으로써 그 도도한 서울을 굴복시킨 것이다. 이후 신당은 보수화의 길로 들어서고, 보수후보 지지율은 60%에 이르며 유일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인기는 급락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진보적 전망의 결여와 개혁 실패가 초래한 실망임에도 진보적 대안 찾기대신 보수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배반일까. 여론 조사 결과는 그 반대임을 보여주고 있다. 수년 동안 스스로 진보라고 여기는 시민들이 보수보다 많거나 최소한 비등했다. 최근 경향신문·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조사도 진보가 보수보다 훨씬 많고, 차기 정부가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쪽보다 많은 것으로 나왔다. 진보는 아직도 자기 의사를 대표하고, 의견을 조직할 정당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정당을 찾지 못하고 진보가 보수당을 선택하는 왜곡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한마디로 ‘시민의 배반’이 아닌, ‘정당의 실패’가 문제였다. 정당은 시민들이 덜 진보적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다.

민노당은 노무현 정권·신당과 한묶음으로 보는 인식상의 오류로 인해 동반 하락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마침 신당의 지리멸렬로 호기를 맞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5년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행복하십니까” 하며 사람 속을 후련하게 했던 권영길은 그때처럼 신선하지도 않고, 생기도 유머도 잃었다. 경선 이후 한달은 진보세력이 서민들의 삶을 개선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개혁 구상과 실천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할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지쳐 돌아서고 나서야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란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십수년전 어디선가 많이 듣던 것 같은 이 구호는 ‘답답한 민노당’을 폭로하고 있을 뿐이다. 대신 그들이 한 일이란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서민들 앞에 코리아 연방공화국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공약을 내놓아 안팎의 비판을 불러온 것뿐이다. 이렇게 뒷걸음질하는 사이 당과 후보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문국현이 등장해 민노당의 브랜드인 비정규직·재벌개혁 문제를 들고 나와 잠재적 민노당표를 몰아갈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다가 뒤늦게 표를 도둑맞았다며 문국현에게 신경질을 내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 사회의 다수인 진보적 시민에게 응답을 할 줄 모르는 진보정당이 지지를 못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진보적 시민 실망시키는 행보-

요즘 민노당의 헤게모니 세력인 자주파는 자기 보스들과 대리인을 내세워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가치를 당에 요구하고, 정파 보스들은 차기 총선의 비례대표를 따내는 투쟁에 몰입하고 있다고 한다. 크든 작든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며, 세상물정 모른 채 고루한 것에 집착하고, 도전을 두려워하는 현상을 우리는 보수적이라고 한다. 그래도, 민노당은 진보적인가.


[고종석 칼럼] 민주노동당과 17대 대선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출처 : <한국일보> 2007년 11월 22일


역대 대선에서 보수세력을 대표한 이들 가운데 한나라당의 이명박씨가 가장 흠 많은 후보라면, 통합신당의 정동영씨는 중도우파세력을 대표했던 이들 가운데 가장 무기력한 후보다. 정동영씨의 무기력은 정 후보 자신의 정치행로에서 온 것이기도 하고, 소위 범여권의 지난 5년 행로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힘없는 사람들의 신임 위에 세워져 바로 그 지지자들의 신임을 저버려온 정권에서 누릴 만큼 누렸으니, 옛 지지자들이 그를 다시 신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 진보적 유권자들의 해방공간

통합신당 경선에서 정동영씨의 경쟁자들이 비난했듯 그가 '배신자'라면, 그 배신의 본질은 옛 민주당에 대한 배신도, 손수 만든 열린우리당에 대한 배신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배신도 아니었다.

본질은 지지자들에 대한 배신이었다. 정동영씨는 둘레의 정치세력이나 개인들과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한통속이 돼, 제게 권력을 위임한 지지자들을 배신했다. 그리고 그런 배신행위가, 우리 사회의 힘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패한 부자 정당 후보를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때그때의 상황논리에 따라 말과 행동을 자유자재로 바꿨던 그 날렵한 정치행로가 아니더라도, 정동영씨에게는 정치적 자질과 자산이 앞서 그의 자리에 섰던 선배 정치인들보다 크게 부족하다. 그에게는김대중씨가 지녔던 카리스마나 넓은 시야도 없고, 노무현씨가 지녔던 단심(丹心)의 이미지도 없다.

노무현씨의 '단심'은 그의 집권 이후 연기로 드러났지만, 그것은 노무현씨가 그만큼 뛰어난 대중정치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도 그의 진심을 의심할 수 없었을 만큼, 노무현씨의 표정은 진지했고 말투는 곡진했다. 이 연기력에서 정동영씨는 족탈불급이다.

깔끔한 외모와 매끄러운 언변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왠지 그 자신도 제 말을 믿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들이 꼭 허황해서만은 아니다.

소위 범여권과 정동영씨 개인의 이런 취약점은, 1987년 이후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시달렸던 진보 유권자들에게 이번 대선이 해방공간이라는 것을 뜻한다.

정동영씨 개인이든 그가 대표하는 정치세력이든, 복지와 사회연대라는 진보적 가치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하다. 또 정동영씨와 그의 친구들이 한나라당에 견주어서는 덜 부패했고 총자본에 덜 친화적이라 하더라도, 이 중도우파 세력의 재집권 가능성은 역대 어느 대선 때보다 낮다.

설령 BBK 스캔들로 이명박씨가 낙마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그러니, 소위 민주세력 분열이니 사표니 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 없이 진보세력에 표를 줄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정치세력을 대표한다는 민주노동당의 행태를 보면 그런 결정도 쉽지만은 않다.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얻으며 일궈낸 희망은 이제 아스라하다.

의원 개개인의 성실한 의정 활동에도 불구하고, 당내의 고질적 정파 싸움과 민주주의 문화의 부재는 이 정당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다.

게다가, 당내 경선에서 자주파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권영길 후보는 소위 '코리아연방공화국'론을 계속 치켜듦으로써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상식적 진보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 재벌-관료 동맹이 싫다면

그러나 선거가 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한 세력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라는 점을 진보 유권자들이 충분히 이해한다면, 권영길 후보와 민노당에도 희망은 있다.

권영길씨와 민노당은 민족지상주의만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민주의를 대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민노당은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삼성재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는 제도권 정치세력이다.

재벌-관료 동맹의 악취가 견디기 힘든 유권자라면, 이번 대선과 내년 총선에서 미흡하나마 민노당이라는 대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다. 그것은 염불보다 잿밥에만 마음을 쏟았던 중도우파 '개혁' 세력에게 교훈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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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이 어지간히 '삽질'을 해대긴 했는가 보다. 이렇게 리버럴주의자들에게까지 우려와 조롱과 격려를 받는 걸 보니 말이다. 탈당한 주제(지난 달 당비까지 냈으니 아직은 아니겠네)에 더 이상 언급하지 말자.

이대근 칼럼은 우리의 폐부를 찔러온다. "한국이 왜 이런 반이성적 사태에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조용한 사회로 변했는가 묻는 것이다." 좌파는 그대로 있는데, 진보세력은 그대로 있는데, 사이비좌파가 판치면서 덤터기로 진보가 몰락하고 있다.

그래서 난 노무현과 청와대에 입성한 운동권과 민노당내 주사파들을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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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2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의 글일 줄 알았어요. :)

좌파, 진보는 가만히 있는데, 누가 사칭하고 다니면서 싸잡아 몽둥이질 당하고 있는 셈이죠. -_- 왜 남의 이름 빌려다가 나까지 몽둥이질 맞게 해 이런거죠.

내오랜꿈 2007-11-23 14:51   좋아요 0 | URL
고종석의 글도 덧붙이긴 했죠..^^

댓글보고 아프님 서재에 갔더니 역시 고종석 칼럼은 다 옮겨져 있더군요...
그래도 다음의 이정우 선생 글까지는 저도 좀 인용해야겠습니다. 할말이 있어서요...
 

[칼럼] 이건희 회장과 워런 버핏

삼성 문제는 단지 사업상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이재용에게 ‘부와 경영권을 동시에 승계하려는 과욕’ 때문에 발생했다. 삼성에버랜드 불법 전환사채 발행도 승계를 염두에 둔 경영 실습의 실패를 치다꺼리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경제학과)
출처 : <시사 IN> 제10호 2007년 11월 19일


 
전성인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연일 도배하다시피 하는 삼성 관련 의혹을 지켜볼 때마다 억누를 수 없는 의문이다.  세계 일류 기업을 경영한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 대한민국의 법이란 법은 온통 다 어기는 행로를 선택한 것일까? 

물론 사건마다 일차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차명 계좌는 비자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었고, 비자금은 이 사람 저 사람을 관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람 관리는 우리나라에서 사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성 문제는 단지 사업상의 필요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재용에게 ‘부와 경영권을 동시에 승계하려는 과욕’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삼성에버랜드 불법 전환사채 발행 사건이 그래서 생긴 것이고, e-삼성의 부실을 계열사가 떠안게 된 것도 승계를 염두에 둔 경영 실습의 실패를 치다꺼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욕심은 잘못된 것이었다. 우선 경영권은 승계의 대상이 아니다. 경영권이라는 권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자는 주주가 선택하는 것이다. 지배주주에게 능력을 인정받으면 회사 경영을 맡는 것이고 잘못해 쫓겨나면 그뿐이다.
 
부의 세습은 경영권 승계와는 달리 말이 되는 개념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세금을 제대로 내야 한다. 문제는 세금을 제대로 내고 나면 재산 상당 부분이 날아가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배도 아프지만 또 다른 목표인 경영권 승계 쪽에서 문제가 생긴다. 간신히 얼기설기 계열사들을 엮어서 최소한의 돈으로 그룹 지배권을 유지해왔는데 그 돈의 일부가 없어지면 그룹 지배가 불가능해지고 따라서 경영권 승계가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1990년대 중반 삼성, 아니 이건희 회장이 직면했던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회장은 ‘어둡고 과감한 시도’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첫 단추를 한 번 잘못 꿰고 나니 그 다음에는 문제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워런 버핏 “부자 유산 좀더 빼앗아야 한다”

 
ⓒ뉴시스 ⓒReuters=Newsis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그렇다면 그때 이 회장은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하는가? 세금을 다 내는 것이었다. 세금 안 내는 방법은 선택 불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래서 재산 일부가 없어지고 지배권 승계가 안 되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미국에서 상속세 존폐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워런 버핏이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한 발언이 가슴을 때린다. “나 같은 부자의 유산을 조금 더 빼앗아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육상선수 출신이라고 아들을 출발선보다 한참 앞에서 출발을 시키면 옆의 사람들이 제대로 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간과했던 것은 바로 이 평범한 진리였다. 이 회장만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대선 후보는 이런 혜택이라도 주어야 기업인들이 기업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며 상속세율 인하를 국민에게 약속하고 있다. 워런 버핏이 이런 천박한 문제의식을 들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준다면 우리 국민은 또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얼굴이 자꾸 화끈거린다.


내오랜꿈 ---------------------------------------------------------------------------

먼저 아래 인용하는 기사(美연예스타들, '부시 떨어뜨리기'에 총출동)를 보자.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2004년에 <프레시안>에 실렸던 글이다. 그때 다른 매체에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달았던 적이 있다.

부시를 떨어뜨리든, 케리를 당선시키든 난 큰 관심두지 않는다. 내가 이 기사(아래 인용)를 인용하는 이유는 다음의 한 가지 때문이다.

벤 에플릭은 이 자리에서 "스타들은 민주.공화 양당 지지자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나서면 손해라는 것을 잘 안다" 면서 "케리를 지원하는 것은 부시의 감세 정책으로 내 소득세가 1백50만달러나 줄었는데 이게 합당한 일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과연, 우리나라 어떤 연예인이 공개석상에서 내 소득세를 적게 내게 만드는 대통령과 국가는 잘못됐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참 '엿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벤에플릭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배우가 있다는 게 부럽다.


위 컬럼에서 언급하듯 워렌 버핏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면서 부자들의 재산을 좀더 빼앗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상속세율 인하를 이야기하고 있다. 부의 세습을 위해 온갖 편법, 탈법을 동원하는 삼성에 대해 면죄부를 쥐어주려 온 나라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찌된 게 미국이라는 나라보다 더 천민자본주의 세상이 되어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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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예스타들, '부시 떨어뜨리기'에 총출동
[칼럼] 마돈나 "부시와 후세인은 붕어빵", 펠트로 "부시는 미국에게 골칫거리"

출처 : <프레시안> 2004-07-02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의 빅히트에 이어, 미국대중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뮤지션과 할리우드 스타 등이 대거 부시 낙선운동에 적극 나서, 부시 진영을 크게 당혹케 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뮤지션과 스타들의 '반(反)부시' 기류는 역대선거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세, 정확히 넉달뒤 치러질 미국대선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주목된다.
  
  마돈나 "부시와 후세인은 동일한 인물"
  
  뮤지션 가운데 반(反)부시운동의 선봉에 서 있는 인물은 단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히트곡 <피플>을 노골적으로 럼즈펠드 국방장관, 체니 부통령 등 부시행정부의 주요인사들을 비난하고 부시의 대항마인 민주당 케리후보를 지지하는 가사로 개사해 대선전에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개사곡의 가사에는 “백악관의 주인이 존 케리가 될 때까지 기다리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럼즈펠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럼즈펠드는 세상에서 가장 신경질적인 사람”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부시의 이라크정책을 비난한 바 있는 록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우리 뮤지션들은 모두 함께 이번 대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스트라이샌드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동료가수인 닐 다이아몬드, 코미디언인 빌리 크리스탈, 영화배우인 벤 에플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케리후보 후원회에 참석해 “부시의 행동은 설명이 안된다. 우리는 원래 선거에서 좌익(Left)이냐 우익(Right)이냐를 결정해야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옳고(right) 그름(wrong)을 선택해야 한다”고 부시를 맹비난했다. 이들은 이날 출연으로 하루 저녁에 케리후보에게 5백만달러를 모아 주었다.
  
  벤 에플릭은 이 자리에서 "스타들은 민주.공화 양당 지지자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나서면 손해라는 것을 잘 안다" 면서 "케리를 지원하는 것은 부시의 감세 정책으로 내 소득세가 1백50만달러나 줄었는데 이게 합당한 일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에 앞서 록스타 본 조비는 자신의 뉴저지에 위치한 저택에서 케리 후원회를 열어 1백만달러가 넘는 후원금을 케리 후보 선거캠프에 전달했다. 이 후원회에는 여배우 멕 라이언과 스티브 부쉐미 등도 참여했고 케리 후보도 헬리콥터를 타고 행사에 참석했다.
  
  <아메리칸 라이프> 뮤직비디오를 통해 강력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던 마돈나도 “나는 부시 대통령과 사담 후세인을 똑같이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시와 후세인 모두가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똑 같은 사람들이다. 미국의 최대위험요소는 지도력과 정직성의 상실에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밖에도 레니 크라비츠, 비스티 보이스 등 젊은 뮤지션들도 ‘록 어게인스트 부시’ 등 반부시 성향의 노래를 발표한 바 있다.
  
  전체 뮤지션계 상황을 보면, 컨트리 뮤지션들의 경우 부시-케리 지지가 백중세이나 젊은 세력이 주도하는 힙합이나 랩 부문은 부시 대통령 지지자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기네스 펠트로 "부시는 미국에게 큰 골칫거리"
  
 
   
  영화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나는 부시가 미국을 이렇게 당황스럽게 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부시가 주도한 미국의 일방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연합뉴스
   

  헐리우드의 반부시 정서도 음악계 못지 않다.
  
  마돈나의 전 남편이기도 한 숀 펜은 후세인 재판에 대해 “범죄는 부시가 저지른 것이지 불쌍한 후세인이 범한 것은 아니다”라고 이라크 전쟁의 부당함을 강조했다. 그는 "독재적인 미국 정부가 미국민에게 오히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이라크가 우리보다 더 나은 것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기네스 펠트로도 “부시가 미국을 이렇게 당황스럽게 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부시는 미국에게 큰 골칫거리"라고 부시의 일방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마틴 쉰 등과 함께 민주당지지자로 알려져 있는 알렉 볼드윈은 “뭐든지 부시가 손대는 공공정책은 인분이 돼 버린다”라고 부시의 정책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스타들은 케리를 좋아하기보다 부시를 싫어하고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프로모터 앤드루 라지에는 오는 9월1일 뉴욕 자이언츠 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인 '부시 떨어뜨리기' 초대형 올스타 콘서트에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을 참가시키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다. 라지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본 조비, REM, 셰릴 크로우 등과도 콘서트 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내 주요언론은 이 콘서트의 성공여부는 지금까지 가장 미국적인 록음악을 보여줬고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참가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평소 부시의 이라크 침공 등을 비난해왔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우리 뮤지션들은 모두 함께 이번 대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콘서트 참석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에 부시 진영은 오는 뮤지션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외면으로 8월30일~9월3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있을 공화당 전당대회를 축하할 행사를 아직 마련되지 못한 상태여서, 케리 진영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최근 CNBC 방송은 연예인들의 지지세에서 케리가 부시보다 2대1 정도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도했다. 헐리우드의 산 증인인 배우 에드 아스너는 이같은 흐름과 관련, "스타들이 케리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부시를 싫어하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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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23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아마도 스타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면 -_- 난리가 날거에요. 소속사부터, 팬들부터 한바탕 시끄러워지겠죠. 그러고보면 미국에선 스타들이 꽤나 자주 정치적 발언을 해왔군요. 부시 떨어뜨리기. 또 생각해보니 영향력이 크지 않은 몇몇 인물들이 노무현 대통령 지지발언을 하기도, 한나라당 지지발언을 하기도 했었군요. -_-

내오랜꿈 2007-11-23 11:10   좋아요 0 | URL
지지하는 거야 누가 뭐라겠습니까. 그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 문제죠.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박찬욱, 봉준호 감독, 문소리씨 등 민노당 지지한 연예인들도 꽤 있죠.

문제는 벤 에플릭 같은 철학을 베이스에 깔고 있느냐, 정치현안에 대해 그건 틀렸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