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이라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 상식을 회복하는 10년이었다. 수구·기득권층은 10년째 잃어버린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 옛날의 특권을.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출처 : <시사 IN> 제 10호 2007년 11월 19일


이정우
이번 대선에서 좌파 정권을 종식시키자고 합창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 실정’ ‘국정 파탄’ ‘잃어버린 10년’이란다. 이 말은 원래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이 심심할 때 한 번씩 외치던 구호인데, 이제는 꽤 많은 동조자를 모으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 지지율의 합이 60%나 되는 것을 보니 이런 생각을 가진 국민이 많기는 많은가 보다.

좌파 정권? 혹시 외국인이 이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구상의 어떤 기준을 가져와도 좌파 정권이라 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구태여 분류하자면 중도 우파 정도다. 그럼 광복 후 50년간의 정부는 무엇이었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는 자유와 인권을 말살한 명백한 극우파 정부였고, 그때의 삶이란 겨우 숨만 쉬는 삶이었다. 그 뒤의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극우파는 아니었지만 역시 오른쪽으로 치우친 정부였다.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은 극우파임을 ‘자백’해야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과거의 성장 지상주의를 반성하고, 분배·복지에도 약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심한 우편향, 심한 불균형을 시정하려고 노력한 정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오른쪽 끝에 있다가 조금이라도 중간으로 움직이려 한 것이므로 ‘중도’라는 수식어를 처음으로 붙일 만하지만 좌파는 아니고 역시 우파다. 선진국은 경제 예산보다 복지 예산이 몇 배나 많다. 심지어 선진국 중 복지를 가장 등한히 하는 미국조차 복지 예산이 경제 예산의 다섯 배나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역대 정부에서 경제 예산이 복지 예산을 압도하다가 참여정부에 와서 처음으로 역전이 일어났다. 우리의 기형적 예산구조가 이제 겨우 바로잡히기 시작했을 뿐, 장차 갈 길은 멀고도 멀다. 복지가 부족하니 서민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요, 오늘 밤 잠자리에 들지만 내일 밤 다시 잠자리에 든다는 기약이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은 지난 10년을 비난하며 늘 이렇게 합창한다. 복지에 치중해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고. 이런 말을 들으면 외국인은 역시 이해를 못할 것이다. 이 정도의 초보적 복지를 가지고 왜 시비를 거는지를. 양극화가 이렇게 심각한데, 복지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것을 오히려 반성해야 한다. 

이런 중도 우파 정권을 가리켜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은 스스로 오른쪽 끝에 있다고 실토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내가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실은 나는 극우파요’ 하는 게 솔직하지 않을까. 광복 후 집권 극우파 세력이 집요하게 좌파 사냥에 나서서 좌파를 전멸시키다시피 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좌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좌파란 무엇인가? 인간은 이타심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고, 스스로 이타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좌파다. 우파란 무엇인가?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믿고, 따라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우파다. 우파는 자신과 자기 가족의 이익과 안락에 주로 관심이 있고 남의 고통에 대해서는 눈을 감지만, 좌파는 이웃과 이 세상의 약자에 대한 연민과 정의감이 있다. 이 기준으로 대통령 후보들을 한번 평가해보라.

시인 안도현의 짤막한 시는 폐부를 찌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조금 바꾸면 이렇게 된다. ‘좌파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좌파가 아니다. 좌파 운운은 무지의 소치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나 북유럽 복지국가 정도가 돼야 좌파라 불린다.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 상식을 회복하는 10년이었다. 수구·기득권층은 10년째 잃어버린 걸 찾아 헤매고 있다. 옛날의 특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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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선생은 알다시피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이다. 처음 그 자리 맡을 때부터 사실 의아했다. 노무현의 (선거)정책 브레인이었으면 그걸로 끝내야지 왜 들어갈까, 선생 역시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알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청와대 정책라인에 이정우 선생이라도 없었으면 어디 쓸만한 인간이 하나라도 있었겠는가만(아, 정태인 씨도 있었군)...

결국 이정우 선생은 예상대로 재경부 관료들에게 밀려나왔다. 사실 노무현의 머리구조로는 이정우 선생의 철학을 담을 공간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은 진보니 뭐니 헛소리들 하지만, 노무현의 사고는 차라리 DJ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DJ는 나름대로의 '철학'이라도 있기나 하지... 그러니 어떻게 이정우 선생이 버틸 수 있겠는가.

지난 번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정우 선생이 재경부 관료들에게 밀려나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참여정부는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뒤부터는, 뭐 하나 꿀릴 게 없는데(아니네, 자기 입으로 부동산 정책은 잘못했다고 실토했었군) 언론과 한나라당이 자기를 깎아내리고 못살게 군다는 노무현의 아집과 독선만 판을 친 것이고...

이정우 선생의 윗글은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그런데 선생한테 하나 묻고 싶다. 선생께서는 왜 이런 중도우파 정권에 들어갔는지를... 큰 맘 먹고 들어갔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켜냈어야지 어정쩡하게 쫓겨나다시피 한 이유는 무엇인가. 연유야 어찌됐건 결국 참여정부 초기의 부동산정책이 일그러지는 것 하나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던 우파정권의 정책실장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냥 아쉬워서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여파로 지금 대한민국이 어떤 지경이 됐는가를 생각하면 단순하게 아쉬워서 하는 소리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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