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즈' 흥행과 '황진이' 참패의 요인은
'최근 한국영화 서사의 경향' 포럼 개최

김지연 기자
출처 : <연합뉴스> 2007년 11월 27일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무리하게 도덕적인 결말, 감정적 장면 확장, 지나치게 친절한 전개 등 한국영화의 이야기 구조의 '고질적 과잉'을 해소하려면 기존의 장르적 문법에 안일하게 머물지 말고 관습을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화평론가 박유희는 27일 서울 세종로 미디액트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영상예술학회 주최로 열린 포럼 '최근 한국영화 서사의 어떤 경향'에서 '청연'(감독 윤종찬)과 '황진이'(감독 장윤현)를 거액의 제작비와 훌륭한 만듦새에도 흥행에 실패한 사례로 꼽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두 영화의 흥행 실패 요인으로 "역사를 허구화하는 방식과 그 안의 멜로드라마 구조, 인물의 조형 면에서 이미 검증되고 진부한 장르 문법에 고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연'에서 박경원(장진영)은 연인 한지혁(김주혁)의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친일 비행을 한다고 설정되는 등 지고지순한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귀착되며, '황진이'에서 혁명적 동지애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황진이(송혜교)와 놈이(유지태)의 사랑도 결국 남녀간의 관습적 사랑으로 고착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결말의 지연, 주정(主情)적 장면 확장, 지나치게 친절한 스토리텔링, 무리한 도덕적 봉합, 이분법적 도식, 장르적 놀이구조와 심리적 동기에 대한 집착 사이에서의 분열 등은 한국영화의 고질적 과잉 또는 분열적 질환"이라며 "이를 단순한 대중의 문제로 말할 수 없으며 관습 안에서 관습을 넘어서는 노력이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이상용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공동체가 서사 내에서 자족하는가, 아니면 다른 집단과 관계를 맺으며 나아가는가를 살펴보면 실패한 상당수 영화의 공동체가 자족적"이라며 "흥행한 '싱글즈' '미녀는 괴로워'는 한정 집단에서 출발하지만 '이 시대에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사회의 주요 이데올로기를 자극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임권택의 '천년학', 이명세의 'M', 김기덕의 '숨' 등 중견 감독들이 자신이 이룩한 영토를 다시 확인하는 작품은 단순히 매너리즘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하기에는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이 에너지만으로는 소구할 수 없는 시대에 왔으므로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어떤 시스템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앞서 발제자로 나선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는 생활과 가족관계에 대한 취사선택, 인과성의 수용ㆍ파괴를 중심으로 한국 영화의 내러티브 경향을 분석, 소개했다.

   그는 한국영화 속 가족에 대해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처럼 과거의 그림자를 안고 어른거리거나 '싱글즈'(감독 권칠인)처럼 아예 존재를 지워버리고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로 나아가는 양쪽으로 흘러왔다"며 "어느 쪽에서도 새로운 가족의 상은 아직 정립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과성에 대해서는 "'밀양'(감독 이창동)은 고전적 완결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파괴하려는 열망을 갖고 있는 반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감독 박찬욱)는 의미의 사소화 또는 공백을 꾀하는데 평자나 관객은 그 무의미를 채울 또 다른 의미가 존재하리라고 기대했다가 그렇지 않자 불편해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판타지를 지향하는 척하면서 현실의 반영이 되는 결론에 도달한 사례로는 300만 이상 관객이 든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가 있다"며 "대중영화의 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색깔을 지키는 영화이자 판타지의 해방감과 리얼리즘의 성찰적 기능, 인과성의 매듭과 단절에 관한 쓸모 있는 사례"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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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경제학자 1명은 남겨야 하지 않나”
김수행 서울대교수 정년퇴임식 하던 날

강성만 기자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년 11월 26일


» 22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삼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김수행 교수 정년기념식에서 안병직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이 건배 제의를 하고 있다. 아래 왼쪽부터 김수행 교수 부인 김인자씨, 김 교수,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제공
 
 

“김교수 떠나는데 후임도 못정하다니”
변형윤 교수, 경제학부 향해 쓴소리


“내년 2월 말에 김 교수가 떠나는 데 아직 후임도 정하지 않은 상태다. 대단히 섭섭하다.”

22일 오후 5시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삼성컨벤션센터에는 김수행 교수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기 위해 200여명의 동료 교수와 학생·친지가 모였다. 저마다 그간 김 교수의 연구업적을 기리며 축하의 덕담을 나눴다. 김 교수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인사말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으면서 이런 정겨운 분위기가 서늘하게 식었다. 서울대 경제학부 유일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인 김 교수가 퇴임하기에 이르렀는데도 후임자 선정 원칙조차 결정되지 않은 것을 질타한 것이다.

김 교수는 내년 2월 퇴임 이전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후임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서울대 경제학부(학부장 이영훈)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년 3월께 선정 원칙을 정해 후임자를 뽑기로 했다. 이에 앞서 경제학부 인사기획위원회는 김 교수 후임자 전공을 특정하지 않고 ‘경제학 일반’으로 해서 내년 2월 이전까지 후임자를 뽑기로 결정했다. 김 교수 등 몇몇 경제학부 교수들이 이렇게 할 경우 주류경제학 전공자가 임용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반발해 최종 결정을 내년 3월께로 미루기로 미봉한 것이다.

» 변형윤 교수
 
김 교수 쪽은 이 대학 학부에서만 학생 200여명이 마르크스 경제학 3개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과, 주류와 비주류 경제학을 아우르는 학문적 균형을 위해서도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가 임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33명 가운데 32명은 주류 경제학 전공자다.

변 교수는 “60년대 초 서울대 상과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경제학부는 일반적인 미국식 경제학의 흐름에서 균형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김수행 교수 퇴임 뒤)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는 사람을 2명은 아니더라도 1명은 남겨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섭섭한 마음을 거듭 나타냈다.

현재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안병직 서울대 명예 교수도 건배제의를 하면서 김 교수 후임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부가 마르크스 경제학자 1명을 용인하지 못할 정도로 옹졸하지 않다”면서 김수행 교수가 “훌륭한 교수를 물색하면 채용하리라 본다”고 거들었다. 이어 그는 “마르크스 경제학도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조그만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뉴라이트 운동의 선봉인 안 이사장은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으로 자신과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김수행 교수 등과의 거리감을 나타냈다.

그는 김 교수가 유학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떠날 때 <자본론>을 20번 이상 읽지 않으면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자신이 김수행 교수를 공산주의자로 만들었으나 자신은 쏙 빠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뉴라이트 운동 이론가인 이영훈 학부장이 주관했다.

그는 후임자 임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김 교수가 서울대 학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큰 업적을 남겨 학부의 학문적 균형을 잡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한편 김수행 교수는 이날 고별연설에서 “빈곤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공부문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세계 서민들이 체제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오랜꿈 -----------------------------------------------------------------------------------------

지난 번에 퇴임하는 김수행 선생의 한겨레신문 대담을 서재에 옮겨뒀었는데, 지난 주에 정년퇴임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80년대말 90년대초, 사회과학 대학원생의 7~80%는 마르크스주의 관련 전공자였는데... 그 전공자들이 전부 변방으로 내몰려 교수로 남은 사람은 성공회대, 한신대 말고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돈지랄' 해서 미국 유학 갔다 온 인간들 말고는 서울대 교수 되기 힘든 세상이다.

교수사회.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인맥과 학연이 좌지우지 하는 곳이다. 이념적 성향? 학자적 양심? 웃기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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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11-28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병직, 이영훈 교수 등의 표현이 재밌군요. 옹졸이니 균형이니.. 안타깝네요

내오랜꿈 2007-11-28 14:38   좋아요 0 | URL
경제사 전공하면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공부 안 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안병직 선생이나 이영훈 교수도 마르크스주의의 우산 아래 공부한 사람들인데, 지금의 모습 보면 좀 어이가 없죠.

저도 이영훈 교수의 조선후기 토지경제사 논문은 감탄하면서 공부했었는데... 그게 전부 일제식민지 사회의 자본주의 맹아/발전론으로 둔갑하는 자료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뭐 이건 또 '학자적 소신'이라고 쳐도 '뉴라이트의 기수'라니...
 

[인터뷰] ‘철학자…’ 김상봉 교수 “삼성의 협박에 끌려다녀선 안돼”

글 손제민·사진 박재찬 기자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26일


지식인이 사라진 시대, 2007년이 저물어가는 한국사회에서 철학자들이 발언하기 시작했다. 참여연대 느티나무 카페에서 이용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삼성 뇌물 500만원 폭로가 있었던 그 날(11월19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는 전국의 철학자들이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의 이름으로 삼성 특검법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 참여한 철학자는 210명이다. 김남두 서울대 교수, 유초하 충북대 교수, 홍윤기 동국대 교수, 박상환 성균관대 교수, 강신익 인제대 교수, 신승환 가톨릭대 교수 등 참여자들의 면면은 한국 철학계를 이끄는 주축들이다. 이 전 비서관의 폭로와 맞물려 국회의 특검법 통과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성명 뒤에는 신속하게 철학자들의 뜻을 모은 김상봉 교수(47)가 있었다. 김교수를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만났다.

25일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만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박재찬기자>
김교수는 한사코 자신은 ‘잡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시작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음해성 시비 등으로 본질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던 2주일 쯤 전 홍윤기 동국대 교수와의 대화에서였다.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김교수의 말에 홍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홍교수가 ‘격문’을 쓰기로 하고 김교수는 ‘연락책’을 맡았다. “과연 시민과 성직자의 양심이 이렇게 무시되고 경시돼야 하는가”를 묻는 홍교수의 ‘명문’이 나왔다. 김교수는 전국 각지에 분포된 10여명의 철학 교수들에게 연락했다. 철학자들의 중지를 모아달라고. 이윽고 210여명의 교수의 이름이 모였다.

철학자들이 발언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민교협 같은 운동단체와는 좀 다른 느낌을 주죠. 같은 말이라도 ‘철학자들은 저렇게 말하는구나’ 하는 걸 보여줄 수 있어요. 똑같은 정치·사회 이슈를 철학의 눈으로 봤을 때 더 근본적으로 성찰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겁니다. 이번 경우 다들 비리가 어떻고 얘기들을 많이 하고,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철학자 입장에서는 한 인간이 양심선언이라고 해서 발언할 때 우리는 그 양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봤어요.”

철학자들이 모여 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여섯번째다. 2004년 탄핵 후 4·15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선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한 것을 시작으로(실제로 정위원장은 사퇴했고, 여권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라크 파병 반대 성명, 송두율 교수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에 보낸 무죄 석방과 국보법 폐지 성명, 보수단체의 전시작통권 환수 반대 서명에 전·현직 한국철학회 회장들이 악의적으로 활용될 때 학회장의 사퇴를 촉구한 성명 등 고비고비마다 이들은 발언하고 개입했다.

“PEN은 사실 실체가 없는 조직입니다. 회장도, 대표도, 사무실도 없어요. 일종의 유목 네트워크죠. 하지만 몇 차례 이런 경험을 공유하며 한국사회에 중요한 사안이 터지면 신속하게 중지를 모아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내는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문구 하나도 치열하게 토론한다. 이번에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은 ‘삼성제품 불매운동’ 문구이다.

“불매운동 안하겠다는 얘기는 그냥 한 번 짖고 말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네(삼성)들이 뭘 겁내겠느냐는 말이죠. ‘이 녀석들아, 또 떠들어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국가경제 어쩌고 하는 여론몰이 때문에 불매운동 못하겠다는 것은 저쪽이 바라는 바이자, 노리는 바입니다. ‘공포의 동원’이죠.”

그는 삼성 불매운동 때문에 국가경제가 위험에 빠진다는 논리는 박정희 독재 때 독재를 비판하면 북이 남침해 올 지 모른다는 논리와 똑같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국가권력이든 삼성이든, 황우석이든 자신을 국가(또는 국민)의 이익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가 위험에 처하면 국가가 위험에 처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동일화의 논법으로 전국민을 협박합니다. 삼성 족벌체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삼성이 망하겠습니까. 백번 양보해 삼성이 망한다고 해서 국가경제가 무너지겠습니까. 평소엔 세계 12위 경제대국을 자랑하다가도 매번 비리 척결 얘기만 나오면 유아기로 퇴행해버립니다. 언제까지 삼성의 협박에 끌려다닐 건가요. 인간을 억압하고 노예화시키는 것은 국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도 할 수 있고 기업도 자본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PEN에 동참한 철학자들은 조만간 대학 내에서 ‘쟁점 강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강의명은 ‘아직도 삼성 제품을 쓰십니까?’다.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을 쓰는 것은 부도덕을 방조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한 학기에 30분이라씩이라도 할 것입니다. 기왕의 삼성제품은 마크를 지우고 쓰고, 다 쓰면 다른 회사 제품을 사도록, 민교협과 함께 지속적으로 홍보할 것입니다. 언젠가 삼성 제품 들고 있으면 부도덕하고 교양없는 사람처럼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김교수는 지난 4월 전남대가 정몽준 의원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려 했던 계획을 철회토록 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죽고 사는 것은 돈이나 건물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정신이 죽으면 철학은 끝입니다. 정몽준씨가 대학에 어떤 건물을 지어주기로 되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주기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이 기업 찾아다니며 ‘앵벌이’ 한다는 것은 학문의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학자들이 양심의 가책 없이 인간을 위한 학문을 한다는 말을 한다는 게 너무 놀랍습니다. 400억~500억원 들여 삼성관, 엘지관을 지은 대학들은 언젠가 그 건물이 수치스러운 기념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에는 그들에게 분명히 물어야 합니다. 당신들 자랑스럽냐고. 그러고도 당신들이 국민 세금을 지원 받을 존재 이유가 있느냐고.”

정의원에 대한 명예철학박사 수여를 철회하라는 요구는 교수들이 먼저 내서, 대학원생, 학부생, 학생회까지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책임이 무거운 교수들이 청년학생들보다 먼저 알고, 먼저 얘기를 하는 게 마땅합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사회적인 발언, 비판의 몫이 계속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다보니 젊은 학생들이 그에 대한 비판까지 모두 떠안아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모든 걸 다 떠안게 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그러면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번 일은 일종의 교육적 효과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자기 선생들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 거죠. 저 사람들은 가르치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구나. 교수회의에서도 그 점이 크게 작용했어요.”

자본의 공세에 거의 모든 대학들이 무릎을 꿇은 지금 전남대 철학과 혼자만으로는 너무 미약하지 않을까.

“아직은 그런 걸 물리칠 줄 아는 대학은 전남대 그것도 철학과 뿐이죠. 그러나 처음이 어려워요. 이런 식의 사례가 생겨난다면 다른 데서도 이런 비슷한 일들에 직면할 때 생각 안할 것을 한 번 생각하고, 한 번 생각할 것을 두 번 생각하겠죠. 대학 사회가 자본의 매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는다는 사례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남대 철학과와 PEN에서 새로운 지식인 운동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 내에서는 신뢰를 못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기가 선 자리를 진보적으로 견인하지 못하면서 밖에 나가서 세상을 진보적으로 견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철학계는 한창 공부하는 사람들이 일관되게 진보적 목소리를 내니까 학문후속세대도 그런 쪽으로 견인되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보고 누가 ‘김상봉이 공부하기 싫어서 저 짓 하고 다닌다’고 하겠습니까.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어떤 새로운 공동체의 전망을 열어줍니다. 한국 학계 초유의 일입니다.”

그는 “1970~80년대 진보운동 진영을 문학계와 역사학계가 견인해 왔다면 앞으로는 철학계가 견인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 문학계 안팎에서는 이미 근대문학의 역할은 끝났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다. 지금까지 PEN의 활동은 새로운 지식인 운동을 위한 준비였고 어느 정도 검증도 됐다.

“정파를 만들지 않고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오직 이성을 신뢰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한국사회를 진보적 방향으로 견인해 나가려 합니다. 사실 지난 100년간 한국 철학은 외래철학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 덕에 지식이라면 많이 축적했어요. 이제는 현실과 만나며 현실을 철학적으로 해석해내고 현실을 끊임없이 참된 방향으로 견인해나갈 것입니다. 한 사회 내에서 왜 철학이 필요한가를 보여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날 새벽차를 타고 상경해 인터뷰를 하고 월요일 아침 강의가 있어 광주로 내려가야 한다며 총총걸음으로 돌아서는 김교수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지식인이 사라진 시대에 철학자가 발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김상봉 교수는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전공한 뒤 1995년 그리스도 장신대 종교철학과 교수로 부임다. 3년만에 ‘학내문제’로 교수직을 벗고, ‘거리의 철학자’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2001~05년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지내며, 학벌타파 운동을 처음으로 공론화한 ‘학벌없는 사회’를 홍세화 한겨레 편집위원 등과 함께 탄생시켰다. 2005년부터 서울 생활을 접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광주에 내려가 5·18과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매주 주말 서울에 올라와 가족들과 상봉한다. 지난 3월 ‘서로주체성의 이념’이라는 책을 통해 서양철학의 ‘홀로주체성’을 넘어서는 ‘이 땅에서 우리 말로 철학하기’를 펼쳐보인 바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교수협의회 상임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저서로 ‘자기의식과 존재사유: 칸트철학과 근대적 주체성의 존재론’ ‘호모에티쿠스: 윤리적 인간의 탄생’ ‘나르시스의 꿈: 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 ‘서로주체성의 이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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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PEN “양심선언을 지지하고 엄정한 특검 수사를 촉구한다”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 (PEN, Philosophical Engagement Network)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26일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 (PEN, Philosophical Engagement Network)

특수부 출신 전직 검사이자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그리고 현재 변호사인 대한민국 시민 김용철 님의 양심고백을 근거로 지난 10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그룹 비자금 전모에 대한 수사를 촉구한지 한달이 되어가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우리의 직업인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 윤리 개념인 ‘양심’의 입장에서, 과연 우리 국가와 사회가 바로 이 양심을 알아보고 지원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비상한 관심으로 주시해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삼성제국’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경제적 독재권력이 중심에 놓인 이 사건을 두고 국가 기관, 각종 사회권력들, 특히 청와대와 여야 정당, 그리고 언론의 반응을 보면서 크게 절망한 끝에 더 이상 사태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우선 첫째, 우리는 검찰이나 금융감독원이라는 국가권력 담당자들이 자기 인생을 걸고 삼성제국의 거대한 비리를 짚어낸 한 인간의 양심을 알아볼 그 어떤 의지도 없다는 데 실망한다.

― 그리고 둘째, 우리는 언론을 비롯한 이 사회의 각종 권력들이 침묵의 카르텔을 고수하면서, 김용철이라는 한 시민의 양심이 묻히고 그가 파렴치범으로 각인되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처신을 보이는 데에 절망한다.

10월 29일 기자회견에서 사제단은 김용철 전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 명의로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 개설된 차명계좌 세 개와 굿모닝신한증권 도곡동 지점의 증권 계좌 한 개의 번호, 그리고 그 계좌들에서 발생한 이자소득의 액수까지 제시했다.

과거 노태우 전대통령의 4천억원 비자금 사건은 당시 박계동 신한국당 의원이 제시한 예금잔고 조회표 한 장으로 그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까이는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의 경우 A4 서너 장에 불과한 내부 실무자의 회계자료 제보 하나로 정몽구 회장의 구속까지 이르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 사건들 모두 대검 중수부가 바로 수사에 착수했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한 고위공직자의 사소한 권력형 비리와 남녀 스캔들이 뒤얽힌 학력 관계 사문서위조사건을 갖고 유력한 사립대학의 행정을 마비시킬 정도로 털어내다 급기야 쌍용그룹 전 회장이 집안에 은닉한 막대한 비자금까지 찾아냈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만능의 수사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검찰과 경제계의 검찰격인 금융감독원은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이 생명과 인격을 걸고 제시한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수사 착수는커녕 마치 범인들로 하여금 증거를 인멸하고 입 맞출 시간을 갖게 할 요량인 양 계속 시간을 끌었었다.

어떤 경우에도 검찰과 금감원의 수사 능력이 아니라 수사 의지가 문제다. 과연 시민과 성직자의 양심이 국가기관에 의해 이렇게 무시되고 경시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삼성제국의 비리를 토설한 김용철 전 법무팀장을 파렴치범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파상적으로 행해져 그 사건을 보는 보통 시민들의 시각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한 학력 위조자에 대해서는 그 알몸 사진이나 사생활까지 샅샅이 캐던 족벌언론들은 이번 사건의 기사를 최대한 축소하고 김용철 변호사의 신상은 어두운 쪽으로 최대한 키워 드러냄으로써 ‘삼성 감싸기’에 급급했다.

변호사법 제1조 1항에 따르면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들의 모임인 대한변협은 명백히 공익을 저해하고 국가 전체를 오염시키는 은밀한 범법집단인 삼성제국의 행태를 토설한 김용철 변호사가 “의뢰인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나서 양심 모욕이라는 추태의 정점에 섰다.

국가권력과 사회권력의 이런 비호를 등에 업은 가운데 삼성제국 안에서 드디어 비장의 승부수가 연출되었다. 김용철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검찰의 고위 간부 출신으로 삼성의 현직 법무실장인 이종왕 변호사가 변호사직까지 내던지며 김 변호사의 언행을 “모두 거짓”으로 단정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실장의 사직으로 삼성은 김 변호사 개인을 ’파렴치범’으로 부각시키고 자신들의 ’결백’을 호소해 이번 ’진실 공방’에서 여론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려는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제 싸움은 ‘삼성제국의 비리 대(對) 한 내부고발자의 시민적 양심’이 아니라 ‘변호사 대(對) 변호사’의 격투기로 축소될 전망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와 국가는 한 시민의 양심을 알아볼 능력도 없단 말인가?

양심이란 자기 신념이나 사고 또는 행위가 옳다고 믿는 주관적 확신이다. 그래서 어떤 개인이 자기의 양심으로만 그 객관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양심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어떤 사회나 국가의 정의도 ‘실천적 실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한 개인이 양심을 걸고 나설 때 그 ‘진정성(眞情性)’을 알아채는 것은 그 사회나 국가가 올바르게 발전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능력 또는 국가능력이다.

그럼 시민 김용철은 지금 양심적 언행을 하고 있는가?

자기 양심을 걸고 삼성제국의 비리를 고백한 김용철 변호사는 지금까지 착하고 올바른 인생만 산 인물이 아니다. 5공 살인정권의 수괴 전두환의 비자금을 기어이 찾아낸 특수부 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실토했듯이, 삼성제국 안에서 제국의 범죄를 진두지휘한 그 범죄의 “공범자”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주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에 참여한 우리 철학자들은 지금 이 순간, 변호사이기 이전에 이 얼룩진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점에 서서 제국의 비리를 외부에 알린 이 ‘평범한 시민 김용철’의 뒤에 서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철학적 분별력에 따르면 바로 이 순간 시민 김용철이야말로 양심의 절실함을 갈구하는 ‘양심적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삼성정치자금 사건,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불법 상속 및 증여 시도 사건, 삼성 X파일 사건 등으로 점철되는 삼성제국의 비리 행진 안에 그것을 추동하는 내부 부패 구조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열어 보임으로써 우리 사회와 국가에 만연한 권력불신과 권력불안의 또 하나 근원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알려주었다. 그의 양심선언의 내용은 우리 사회에 아주 유의미한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 삶을 더 잘 알 수 있는 더 많은 진리를 획득할 수 있었다.(양심 진정성의 유의미성 조건 충족)

이제 삼성을 빼놓고는,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민주주의와 청렴함을 더 이상 논할 수 없다. 삼성은 더 이상 단순한 경제권력이 아니다. 국세청을 비롯한 관료, 검찰, 사법부 판사, 그리고 여야정치권 등의 국가권력, 금융, 재계, 언론 등의 사회권력, 나아가 학계는 물론이고 심지어 시민사회와 청와대까지도 장악하려는 전체주의적 독재권력이고자 하는 야망의 화신으로 분명히 부각되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국가 안에서 국가 위에 군림하는 제국(帝國)이다. 그런데 시민 김용철이 말했듯이 “삼성의 역기능은 임계점에 달했지만 자정능력이 없다.”

한 법무법인의 동료들부터도 배척을 받았다. 이런 그의 처지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이익에 초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그를 내몰았다. 그는 자기 행위가 이익에 초연함을 보임으로서 자기 양심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충족시켰다.(양심 진정성에 있어서 이익초연성 조건 충족)

그리고 그는 분명히 나약한 인간이다. 그는 생래적으로 의로운 인간이 아니고 그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이런 자신의 나약성에 저항하기 위해 수도원 안으로 자기를 가두었다. 그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는 곳에다 자신을 묶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돌아가면 자기파멸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곳에다 스스로를 결박했다. 언제든지 굽혀질 수 있는 자기 양심의 나약성에 대해 그는 스스로 저항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양심 진정성에 있어서 자기나약성에 대한 자기저항의 조건 충족)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양심의 진정성에 쏟아질 수 있는 모든 의혹과 비난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스스로 시험대 위에 올랐다. 우리는 그 앞에서 그에게 어떤 비난도 해도 되고 어떤 의혹을 제기해도 된다. 그는 비난과 비판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해명한다.(양심 진정성에 있어서 恒常的 自己試驗用意의 조건 충족)

이러고도 우리 철학하는 이들이 시민 김용철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인가?

이러고도 그를 믿을 능력과 용기가 우리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없다는 얘기인가?

양심은 오직 착하고 선량한 인간만이 가지는 선한 인성의 발동이 아니다.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그 어떤 계기를 통해, 그리고 스스로 올바르고 싶고 남들로부터 올바른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원천적 욕구를 갖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공표하고 그 진정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철학이 통찰한 이런 양심 진정성의 요건들에 비추어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거침없이 ‘시민 김용철’의 뒤에 서고자 한다.

한 나라가 ‘발전’하는 데 경제발전의 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한 나라가 ‘지속 적으로 발전’하려면 그 경제발전 속에서 양심을 발휘하고 그 양심을 알아보고 그 양심대로 정의로운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더 고차적인 능력이 필수적이다.

삼성의 저력은 그 경제 능력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과 긍지에 있다. 그러나 족벌체제로 굳어진 삼성제국은 국민의 이런 사랑과 긍지를 끊임없이 배신해 왔다. 족벌제국 삼성은 이제 국민기업 삼성 발전의 족쇄이고 그 질곡이 되려고 한다.

양심을 알아보는 능력, 우리에겐 이제 그것이 절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우리가 추구해 온 철학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三星帝國, 그 非理를 吐說하는 良心을 알아보자!’

삼성제국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잠식하는 국가 안의 제국이며, 이 나라 지배엘리트 전체를 오염시키려는 반국가 범법집단이다. 따라서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삼성제국의 해체와 삼성의 진정한 발전, 그 위에서 꽃필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번영을 위해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1.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는 이 삼성제국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주저하는 검찰과 금융감독원의 고위층을 직권정지하고 삼성제국 해체를 위한 특검제를 도입하라! 그리고 특검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삼성 관리 대상자로 지목된 임채진 차기 검찰총장 내정자의 임용을 철회하라!

2. 청와대는 부패척결의 부담을 차기정부에 전가하지 말고 임기 중에 삼성사태 진상 규명에 전력을 질주하라. 청와대는 참여정부 5년간 삼성권력이 급속하게 비대해지는 것을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해괴한 논리를 동원하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공언함으로써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삼성 감싸기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는 삼성 감싸기를 중단하고 특검법 통과에 적극 협조하라!

3.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은 변양균 사건과 현대?쌍용 비자금 수사에서 보여준 수사 강도를 능가하는 정도의 방식으로 삼성제국의 범죄기획처인 삼성 전략기획실의 운용과 그 비자금 전모를 낱낱이 밝혀내라!

4. 경제관련 정부 당국과 국회는 단 2%도 안 되는 주식으로 60개 대기업을 좌우하는 삼성가의 족벌경영체제를 이 기회에 종식시키고, 산업자본/금융자본 분리 원칙을 폐기하거나 약화시키려는 어떤 음험한 발상도 금지하며,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 기조를 공고하게 확립하라!

5. 국민의 진정한 알 권리를 외면하는 족벌언론들은 침묵의 카르텔을 해체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며 삼성제국의 진면모를 분명히 알리는 데 앞장서라!

6. 대통령 자리에만 눈멀어 삼성제국의 작태에 눈감으려는 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의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은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청취할 청문회를 조속히 개최하여 삼성제국의 반국가 음모를 전 국민 앞에 공개하고 공적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라!

7. 이런 모든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그 어떤 명목으로 지급되는 삼성의 사회적 기여금이나 기부금도 사회적 뇌물이나 매수로 간주할 것이다. 모든 언론, 학술단체 그리고 시민단체는 삼성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그 어떤 삼성의 기부금도 거부하여 경제권력 독재 음모의 분쇄에 동참하라!

8. 그리고 이 기회에 삼성제국의 반국가적 망동을 응징하고 진정한 삼성의 경쟁력을 확립시킬 채찍을 가한다는 취지에서 삼성의 족벌체제가 종식될 때까지 일체의 삼성 제품에 대해 범국민적 불매운동을 벌일 것을 시민사회에 제안한다.

2007년 11월 19일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


[유레카] 철학 앙가주망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출처 : <한겨레신문> 2007년 11월 26일



» 고명섭 책·지성팀장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은 철학을 두고 ‘개념으로 포착한 자기 시대’라고 했다. 여기서 ‘개념’은 도구이고 목표는 ‘시대’다. 적어도 젊은 시절의 헤겔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자기 시대’였다. 대학 1학년 때 프랑스대혁명을 경험한 그는 어떻게 하면 그 혁명을 독일로 끌어올 수 있을까 고심했다. 혁명을 지지하는 소규모 모임에 가담하기도 했고 선언문을 쓰기도 했다. 개념으로 시대를 포착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시대와 대결하는 것이고 대결을 통해 더 나은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뒷날 독일 관념철학의 완성자라는 칭호를 얻은 헤겔의 진정한 탐구대상은 관념(개념)이 아니라 현실(시대)이었던 것이다. ‘앙가주망’은 사르트르의 신념이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 헤겔의 마음이기도 했다.

최근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가 ‘삼성제국’의 해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나라 곳곳의 철학자 230여명이 이 성명에 함께했다. 하나의 사태를 두고 이렇게 많은 철학자들이 한목소리를 낸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성명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우리의 직업인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 윤리 개념인 ‘양심’의 입장에서, 과연 우리 국가와 사회가 바로 이 양심을 알아보고 지원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비상한 관심으로 주시해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철학하는 이들은 ‘삼성제국’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경제적 독재권력이 중심에 놓인 이 사건을 (…)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념 전문가라 할 철학자들이 시대와 대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앙가주망 없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다. 이들이 성명서에서 말한 ‘양심’을 시험하는 일들은 삼성사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끝없는 거짓말이 정상적 정치언어로 통용되는 이 시대야말로 삼성사태와 한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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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2007-11-2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서재에 이미 올라와 있는 글이지만, 이런 건 한 사람이라도 더 널리 퍼날라야 한다는 생각에 옮겨놓는다. 다음의 김상봉 교수의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김광석 - 다시 부르기 2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www.gaseum.co.kr)
출처 : <웹진 가슴> 2007년 11월 22일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1995/ 킹레코드)
★★★★★

Track List :
1.  바람과 나
2.  그녀가 처음 울던 날
3.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4.  잊혀지는 것
5.  불행아
6.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7.  내 사람이여
8.  변해가네
9.  새장속의 친구
10.  나의 노래
11.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25위
(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연재할 예정이고, 32명의 필자가 참여합니다.
*별점은 해당 필자의 의견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률적으로 매긴 평점입니다.)


음악사적으로 보면, 1968년 한대수 이래의 ‘모던포크’는 장르로서의 중요성보다는 ‘음악창작에 대한 인식’과 ‘메시지 표현 양식’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즉, 대중음악에서 아티스트의 탄생을 의미하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인텔리들이 대중음악 영역에 정식으로 들어옴으로써 대중음악을 단순한 ‘딴따라판’ 이상으로 자리매김 시켰으며, 70년대 초반 청년문화의 중심으로 대중음악을 편입시켰다. 60년대 영미권의 록과 포크를 들었던 당시 대학생들에게 모던포크는 낯설지 않은 음악형태였을 뿐만 아니라 자의식 강한 그들이 한국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날릴 수 있는 매개체로써도 적당했다. 왜냐하면 선동적인 록과 달리 포크는 기본적으로 ‘메시지’의 음악이었고, 그래서 음악창작은 필수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박정희정권의 청년문화 탄압에 따라 모던포크는 기운을 잃어갔고, 한대수, 김민기를 비롯한 중요한 창작자들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면서부터 더 이상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그 마지막은 한대수가 2집 [고무신]을 발표했던 1975년 무렵이다.

이후 모던포크의 계보는 오히려 대중음악씬이 아니라 70년대 말의 ‘메아리’와 같은 대학 내의 노래동아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메아리가 단순히 실연 중심의 노래패가 아니라 ‘창작자 집단’이란 정체성을 확고히 한데 비해서 이후로는 그런 정체성을 가진 곳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던포크가 대학 내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무신] 이후 모던포크의 계보는 민중음악 진영 내의 메아리-노래를 찾는 사람들/새벽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고, 예외적으로 활동한 인물이 정태춘, 조동진, 김두수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에 들어 ‘모던포크’의 적자임을 자부한 이가 김광석이고, 그 핵심적인 작품이 바로 김광석 4집(1994)과 함께 [다시 부르기 2]였다.

김광석은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1988년 동물원 1집을 정식 데뷔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동물원 2집까지 참여를 하고, 1989년 솔로 데뷔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찾은 것은 <나의 노래>가 담긴 1992년 3집부터이고, 베스트앨범 형식으로 발표한 [다시 부르기 1](1993)부터는 작품성과 상업성 둘 다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 부르기 1]을 동물원과 자신의 앨범에서 뽑아낸 노래들과 한 때 활동하던 민중음악진영에서 김현성, 한동헌, 문대현의 노래들로 구성하면서 ‘자전적인 베스트앨범’으로 만들었던 반면에 [다시 부르기 2]는 자신이 스스로 선정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곡 모음집’이다. 그리고 모던포크를 떠나서 그가 선정한 중요한 음악창작자들에 대한 트리뷰트앨범이었다.

그래서 이 음반에는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의철의 <불행아>와 같은 초기 모던포크 뮤지션들의 노래들이 담겼고, 백창우의 <내 사람이여>, 한동헌의 <나의 노래>와 같은 민중음악 선배들의 노래들이 있고, 김창기의 <잊혀지는 것><변해가네>, 유준열의 <새장속의 친구>와 같은 당대 주목할만한 창작자들의 노래들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앨범의 대미는 자신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로 끝맺는다.

대부분의 세션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동익밴드가 맡아서 90년대 국내 세션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편곡자 조동익은 원곡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노래들을 참신한 김광석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리메이크 앨범으로서는 드물게 대다수 수록곡이 원곡을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했고, 이는 자신의 노래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노래와 삶, 기쁨과 슬픔 그리고 자유와 외로움이 진득하게 녹아든 이 음반은 실질적으로 그의 유작이라서 더욱 애틋하다.


내오랜꿈 ------------------------------------------------------------------------

김광석.

나는 김광석을 그의 생전에 예닐곱 번은 본 거 같다. 이건 순전히 '어떤 여자'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여자, 완전히 김광석 '매니아'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전교조" 일한다는 핑계로 나하고의 약속은 툭하면 펑크내거나 한두 시간 기다리게 만드는 건 '기본'이었는데, 김광석 공연 보러가기로 한 날은 한번도 시간 약속 어긴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나보다 김광석이 훨씬 더 중요했었던 거 같다. 뭐, 그랬으니 난 지금 다른 여자와 살고 있겠지만.

주로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걸 관객으로 앉아서 지켜봤지만, 한번은 웃기지도 않게 내 뒤에 줄을 서 있는 어떤 여자에게 말을 거는 그를 코 앞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이거 무슨 줄이에요?"

아마 무슨 줄인지 알았으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만, 순간 주변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던 거 같다. 그 줄은 바로 그의 공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었던 것. 일찍 들어가 앞자리에 앉으려는 열성팬들의 줄....

그게 아마 그가 죽기 3개월전 쯤이었던 것 같다.

4집. 「서른 즈음에」가 들어있는 그 앨범이 발표된 게 94년이었다.

그해, 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다.

내 '거친' 20대를 마감하며, 숱한 고민과 번민을 하던 시기. 맑스, 레닌, 알뛰세를 잠시 접어두고 스피노자, 니체, 프로이트, 푸코, 들뢰즈를 섭렵하던 시기. 영화와 음악에 몰입하여 일주일에 수십 편의 영화를 섭렵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주변 상황과 맞물려 이전부터 즐겨 듣던 『다시부르기 1집』과 4집, 그리고 얼마 뒤에 나온 『다시부르기 2집』을 한동안 끼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한없이 나를 움츠려들게 만들었었다.

음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김광석의 노랫말 하나하나는 내 젊은 날에 대한 '은유'로 다가와 사람을 멍하게 만들곤 했던 것이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너무 아픈 사랑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왜 이러지?"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음반을 틀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애써 다른 음반을 찾곤 했었다. 아마도 내가 안치환 4집 『내가 만일』을 좋아하게 된 것도 김광석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잔잔하게 움츠려들게 만드는 김광석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안치환 4집이 약간 늦게 나왔을 것이다-안치환의 그 록커 같은 힘찬 보컬을 의식적으로라도 더 즐겨 들을려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하여튼 나에게 김광석은 멀리하려 해도 자꾸만 다가오는 그런 존재였던 거 같다. 그나마 최근에 들어와서야 그의 그늘에서 어느 정도 자신있게 벗어난 거 같아 다행스럽다면 다행이라고나 할까....

*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 *

그대, 무엇을 꿈꾸었기에 어느 하늘을 그리워했기에
아직 다 부르지 못한 노래 남겨 두고 홀로 먼길을 떠나는가.
다시 날이 밝고 모든 것들이 깨어나는데
그대는 지금 어느 구석진 자리에 쓸쓸히 서서 무얼 바라보고 있는가.
고운 희망의 별이었는데 아, 형편없이 망가진 인간의 세상에서
그대의 노래는 깜깜어둠 속에 길을 내는 그런 희망의 별이었는데
그댄 말없이 길을 나서고
우린 여기 추운 땅에 남아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도대체, 무얼 노래해야 하는 거냐!

알 것 같아....
그대 말하고 싶었던 게 무언지,
그대 온 몸으로 노래하던 그 까닭을,
쉬지 않고 달려온 그 청춘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들려, 들릴 거야.
그대의 기타소리,
대숲의 바람처럼 몸을 돌아나오던 그 하모니카 소리.
우리,
고단한 삶에 지쳐 비틀거릴 때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소용돌이칠 그대의 노래.

우리들 팍팍한 마음속에 뜨겁게 울려날 그대의 목소리.
....

그대는 그렇게 우리들 탁한 삶의 한켠에
해맑은 아침으로 따뜻한 햇볕으로 남아 있을 테지.
다시 겨울이 오고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


백창우 글 - 김광석 추모앨범 『가객』에서 -

2002 03 05


변해가네 -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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