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즈' 흥행과 '황진이' 참패의 요인은
'최근 한국영화 서사의 경향' 포럼 개최

김지연 기자
출처 : <연합뉴스> 2007년 11월 27일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무리하게 도덕적인 결말, 감정적 장면 확장, 지나치게 친절한 전개 등 한국영화의 이야기 구조의 '고질적 과잉'을 해소하려면 기존의 장르적 문법에 안일하게 머물지 말고 관습을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화평론가 박유희는 27일 서울 세종로 미디액트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영상예술학회 주최로 열린 포럼 '최근 한국영화 서사의 어떤 경향'에서 '청연'(감독 윤종찬)과 '황진이'(감독 장윤현)를 거액의 제작비와 훌륭한 만듦새에도 흥행에 실패한 사례로 꼽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두 영화의 흥행 실패 요인으로 "역사를 허구화하는 방식과 그 안의 멜로드라마 구조, 인물의 조형 면에서 이미 검증되고 진부한 장르 문법에 고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연'에서 박경원(장진영)은 연인 한지혁(김주혁)의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친일 비행을 한다고 설정되는 등 지고지순한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귀착되며, '황진이'에서 혁명적 동지애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황진이(송혜교)와 놈이(유지태)의 사랑도 결국 남녀간의 관습적 사랑으로 고착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결말의 지연, 주정(主情)적 장면 확장, 지나치게 친절한 스토리텔링, 무리한 도덕적 봉합, 이분법적 도식, 장르적 놀이구조와 심리적 동기에 대한 집착 사이에서의 분열 등은 한국영화의 고질적 과잉 또는 분열적 질환"이라며 "이를 단순한 대중의 문제로 말할 수 없으며 관습 안에서 관습을 넘어서는 노력이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이상용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공동체가 서사 내에서 자족하는가, 아니면 다른 집단과 관계를 맺으며 나아가는가를 살펴보면 실패한 상당수 영화의 공동체가 자족적"이라며 "흥행한 '싱글즈' '미녀는 괴로워'는 한정 집단에서 출발하지만 '이 시대에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사회의 주요 이데올로기를 자극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임권택의 '천년학', 이명세의 'M', 김기덕의 '숨' 등 중견 감독들이 자신이 이룩한 영토를 다시 확인하는 작품은 단순히 매너리즘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하기에는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이 에너지만으로는 소구할 수 없는 시대에 왔으므로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어떤 시스템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앞서 발제자로 나선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는 생활과 가족관계에 대한 취사선택, 인과성의 수용ㆍ파괴를 중심으로 한국 영화의 내러티브 경향을 분석, 소개했다.

   그는 한국영화 속 가족에 대해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처럼 과거의 그림자를 안고 어른거리거나 '싱글즈'(감독 권칠인)처럼 아예 존재를 지워버리고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로 나아가는 양쪽으로 흘러왔다"며 "어느 쪽에서도 새로운 가족의 상은 아직 정립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과성에 대해서는 "'밀양'(감독 이창동)은 고전적 완결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파괴하려는 열망을 갖고 있는 반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감독 박찬욱)는 의미의 사소화 또는 공백을 꾀하는데 평자나 관객은 그 무의미를 채울 또 다른 의미가 존재하리라고 기대했다가 그렇지 않자 불편해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판타지를 지향하는 척하면서 현실의 반영이 되는 결론에 도달한 사례로는 300만 이상 관객이 든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가 있다"며 "대중영화의 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색깔을 지키는 영화이자 판타지의 해방감과 리얼리즘의 성찰적 기능, 인과성의 매듭과 단절에 관한 쓸모 있는 사례"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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