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의 세 가지 매력
[문화+프리즘] <보름달이 뜨는 밤>, <가을 이야기>, < O 후작 부인>

출처 : <컬쳐뉴스> 2007-10-24
[정이창 _ 문화비평가]


에릭 로메르의 영화 세편. 위에서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 <가을 이야기>,  < O 후작부인>
▲ 에릭 로메르의 영화 세편. 위에서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 <가을 이야기>, < O 후작부인>
에펠탑, 바캉스, 포도밭, 철학적 수다.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에릭 로메르의 영화도. 올해로 여든일곱이 된, 이제는 노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이 노년의 감독은 이미 오래전에 경력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누벨바그 동료들과 달리 여전히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젊은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 아마도 작은 영화들(영화의 규모나 미학이나 태도에 있어서)을 꾸준히 만들면서 영화적 체력과 도전정신을 소모하지 않고 비축해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을 분위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보름달이 뜨는 밤> - 남녀관계의 어긋남에 대하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에릭 로메르의 회고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사항은 <보름달이 뜨는 밤>의 상영 여부였다. 오래전 프랑스문화원에서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던 시절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 내가 처음으로 만난 그의 영화로 내겐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대체로 비슷한 구성을 취한다. 주인공을 난감한 상황에 밀어 넣은 뒤 그 또는 그녀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 만든다. 난감한 상황이란 주로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고, 이는 정서적 흔들림과 도덕적 갈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감정에 개입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관찰한다. 그래서 나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선택과 결단과 기다림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보름달이 뜨는 밤>의 주인공 루이즈는 사랑의 달콤함은 누리면서도 사랑이 주는 구속에서는 벗어나고 싶어한다. 파리 외곽에서 레미와 같이 지내는 루이즈는 애인이 모든 일을 함께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자 파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두집 살림을 한다. 한편 옥타브는 그녀에게 친구 이상의 관계를 집요하게 원하고, 바에서 만난 바스티앙은 그녀를 침대로 유혹한다. 루이즈는 자신이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다고 생각한다. 레미는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애인으로, 옥타브는 가끔 만나는 친구로, 바스티앙은 스쳐 지나가는 관계로. 문제는 남녀 사이가 그렇게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요구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다.

결국 루이즈는 레미의 행동을 의심하게 되고, 그녀의 우려대로 레미는 루이즈의 친구의 친구와 눈이 맞아 그녀 곁을 떠난다. 그러면 이제 루이즈는 쿨하게 관계를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할까. 아니면 홀로 된 자의 자유를 만끽할까. 그녀는 독립적인 삶을 항상 중시했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표정을 보니 왠지 의구심이 든다. 사실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돌아가던 시절에도 그녀 표정은 항상 그늘져 있었다. 예쁜 용모 덕에 남자가 끊이지 않았지만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마치 자신의 확신을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보름달이 뜨는 밤>과 흥미로운 관계에 있는 영화는 <겨울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 펠리시아 역시 많은 남자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고민을 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하지만 주소를 잘못 건네는 바람에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샤를르를 우연히 시내에서 만나자 현재의 애인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샤를르의 품에 안긴다. 영화는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루이즈와 펠리시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루이즈는 겉으로는 씩씩한 척하지만 자신의 삶에 확신이 없고, 펠리시아는 자신의 선택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그럼 에릭 로메르는 이들 중 누구 편일까. 앞서 말했듯이,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선 인물을 보여주고 관찰할 뿐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가을 이야기> - 중년여성의 사랑 찾기

▲ 에릭 로메르, 이제는 노장이라는 말로도 부
족한 이 노년의 감독은 이미 오래전에 경력
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누벨바그 동료들과
달리 여전히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젊은 감각
을 잃지 않고 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취향을 크게 타는 편이라서 남들에게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으니 그 영화가 바로 <가을 이야기>다. 중년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다른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사변적인 대사가 있고 사건이 천천히 진행되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가을 이야기>는 현실감 넘치는 대사에 무엇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 등장인물도 여럿이고 사건들도 비교적 많이 일어나고 서로 풍부하게 얽힌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보통 주인공들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갈등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 마갈리는 (그리고 다른 인물들 역시)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카메라조차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적극 관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주제는 중년여성의 사랑 찾기다. 마갈리는 남편을 오래전에 잃고 포도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산다. 그런 그녀에게 짝을 맺어주려는 두 명의 후원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서점을 운영하는 그녀의 친구 이사벨로, 딸의 결혼을 앞두고 문득 시골에서 외롭게 지내는 친구가 생각나서 신문에 구인광고를 낸다. 또 한 명은 마갈리의 아들의 여자친구다. 그녀는 엉뚱하게도 자신이 틈틈이 만나고 다니던 옛 스승을 남자친구 어머니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두 명 모두 당사자 모르게 일을 진행시키다가 이사벨의 딸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모두들 만나게 된다.

주인공이 중년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이 영화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리저리 생각하고 재는 젊은이들과 달리 이들은 새로운 기회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렘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화가 중년의 로맨스를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마갈리의 얼굴은 가끔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운 묘한 표정을 지으며, 프랑스 남부의 시골 풍경은 적막하고 때로는 황량하기까지 하다. 아무런 감정도 없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사진 같은 분위기다. 이것이 로메르가 보여주는 중년의 모습이다. 이럴 때는 스쳐가는 한 자락 인연도 소중한 법. 소극적이고 다소 위축되어 보였던 마갈리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회에 몸을 맡긴다.

<가을 이야기>는 노년에 이른 에릭 로메르의 완숙한 경지를 내보인 작품으로 그가 평생 영화 작업에 매달리며 깨달은 인생의 교훈을 담담하게 펼쳐 보이는 영화다. 문득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말년에 만든, 딸을 시집보내고 홀로 남게 될 어머니에게 인연을 맺어주려는 영화 <가을 햇살>이 생각난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이렇듯 풍요로운 결실과 함께 겨울이라는 외로움을 예비하고, 우리는 외로움에 대비하기 위해 마음을 분주히 놀린다.

<O 후작 부인> - 한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

▲ 에릭 로메르 회고전 포스터
우리는 에릭 로메르를 문학적인 영화를 주로 만든 모럴리스트로 생각하지만 그도 평생 이런 양식의 영화만 만든 것은 아니며 가끔은 외도를 했다. 그는 시대극을 세 편 만들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1976년에 나온 <O 후작 부인>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스탠리 큐브릭은 <배리 린든>(1975)이라는 시대극을 만들었고, 리들리 스코트는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결투자들>(1977)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O 후작 부인>은 에릭 로메르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이례적인 작품이지만 세계 영화사에서도 독특함으로 유례가 없는 영화다. 독일 작가 클라이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독일어 대사를 사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오직 한 장면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대략적인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남편을 잃은 후작 부인은 전쟁이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대피하는 와중에 병사들에게 겁탈당할 위험에 처했는데, 러시아 백작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이후 백작은 집요하게 부인에게 청혼을 하지만, 엄격한 규율에 재혼하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한 부인은 결정을 계속 미룬다. 그런데 몇 달 후 갑자기 그녀의 배가 불러온다. 그녀는 분명 성관계를 가진 기억이 없는데 의사의 진단 결과 임신으로 밝혀진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문제의 장면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백작에 의해 위기에서 벗어난 부인은 지친 몸으로 임시 거처에 마련된 침대에 누워 달콤한 잠에 빠진다. 그런데 이 장면이 아주 수상하다. 헨리 퓨젤리의 그림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포즈로 누운 부인의 가운의 주름이 마치 꿈틀대는 벌레들처럼 너무도 생생하고 육감적이다. 카메라는 이 장면을 집중해서 잡은 다음 부인을 바라보는 백작의 표정을 줌인으로 잡아낸다. 이 장면이 안겨주는 인상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도 이 장면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O 후작 부인>은 강렬한 이미지 하나와 이를 설명하기 위한 평범한 (혹은 지루한) 나머지 장면들로 구성된 영화다. 물론 19세기의 성윤리와 경직된 귀족사회의 규율을 비판하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영화는 일차적으로 이미지를 통해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마치 연극 세트처럼 말끔히 정렬된 무대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을 따라가는 카메라다. 때로는 가만히 정지해서 인물들이 프레임을 벗어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인물의 감정이 움직이는 장면에 이르면 그의 동작을 천천히 따라간다. <O 후작 부인>은 로메르의 일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있는 영화이지만 새로움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꼭 한번 찾아서 볼 만하다.



* 정이창 문화비평가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10대를 보냈고, 팝 음악과 영화로 20대 청춘을 보냈다. 음악, 영화, 책 등을 벗삼아 자유기고가와 번역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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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로메르 회고전>이 끝나면 다음주에는 씨네큐브에서 <국제단편영화제>를 한다. 월터 살레스, 프루트 첸, 톰 튀그베어 감독 등이 만든 단편영화라... 다음주 주말에는 아내를 꼬드겨 광화문에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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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의 40년 음악인생

박준흠
출처:<가슴>(www.gaseum.co.kr) 2007/09/14



한대수 박스셋

지난 일요일(9월 9일) 신촌의 모 카페에서 한대수 씨의 첫 번째 딸인 ‘양호’의 백일잔치가 있었다. 그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간 음반, 공연, 사진, 책 작업을 통해서 친분을 쌓은 동료와 후배들 그리고 매체 관계자들이 참여한 ‘파티’였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몇몇 뮤지션들은 즉석에서 어쿠스틱 기타 몇 대만으로 공연을 가졌던 흥겨운 자리였다.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김도균과 김성민(선글라스)이 합주하는 <행복의 나라>가 들렸던 것 같고, 한대수 씨가 사람들 뒤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습을 얼핏 본 것 같다. 그는 17살 무렵인 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며 ‘사랑과 평화’의 기치 아래 록과 포크를 폭발시켰던 히피들과 어울렸고, 한편으론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안고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는데 그 때 만든 노래가 바로 <행복의 나라>라고 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본 첫 딸 백일잔치에서 그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한대수는 음악평론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대중음악 평론’을 가능케 한 무척 소중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음악평론가에게도 평론 ‘대상’이 있어야 평론이 가능한데 그게 바로 앨범(‘작품’으로서의 음반)이고, 한대수는 신중현과 함께 ‘앨범아티스트’로서 선구자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슴네트워크와 경향신문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했는데, 왜 여기에 유명한 트로트나 댄스 가수들의 음반이 선정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는 음악평론과 음악사연구, 앨범과 (단순)음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문에 가깝고 어찌 보면 이게 한국 대중음악이 처한 현실이다. 사실 ‘음악평론가’ 입장에서 보면 한대수 이전에서 평론의 대상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1집 [멀고 먼 길]

1968년 미국에서 귀국한 한대수는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당시 생소했던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파격적인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싱어송라이터’는 진정성을 갖는 음악창작을 하기 위한 ‘방법론’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반 한국에서 청년문화가 개화될 때 김민기, 양희은, 양병집, 서유석 등이 발표한 새로운 가치와 음악적 외관을 담은 앨범들은 한대수의 활동에 일정 부분 빚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대수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는 일은 ‘한국음악창작자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과 같다. 그는 단지 머리 길고 ‘빠다’ 발음 나는 히피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90년대 중반까지 몰상식할 정도의 평가도 적지 않았고,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90년대 말에 들어서다.

신중현이 2006년 12월에 은퇴공연을 하고 잠정적으로 활동 중단한 것을 생각한다면, 8집 [Eternal Sorrow](2000) 이후 항상 “이번이 마지막 앨범일 수 있다”라는 절망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꾸준하게 신보들을 발표하는 한대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음악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창작적으로도 뛰어난 그의 앨범들을 대한다면 단지 그를 ‘한국 모던포크의 시조’ 정도로 얘기하는 것이 너무 약소해 보인다. 왜냐하면 의심할 바 없이 한대수는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3집 [무한대]

한대수는 활동에 비해서 데뷔 음반은 매우 늦게 나왔다. 군대를 갔다 오느라고 1집 [멀고먼-길]은 1974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발표되었다. 이 앨범에는 지금까지도 불려지는 그의 대표곡 <물 좀 주소><바람과 나><행복의 나라> 등이 수록되었고, 김민기, 양희은 계열의 음악과는 작법이 달랐다. <물 좀 주소> 같은 노래를 보더라도 다분히 록적인 어법이 강했기 때문에, 나중에 크래쉬와 헤비메틀로 합주할 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집 [고무신]이 이듬해 나오고, 여기에는 <오늘 오후><나그네 길><고무신><여치의 죽음> 등이 수록되었는데 정부에서 마스터테입을 회수해 가는 바람에 더 이상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후 미국 뉴욕으로 음악적인 망명을 갔고, 하드록밴드 ‘징기스칸’ 활동을 했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더 이상 음악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부분적인 민주화 이후 1989년에 잠시 귀국해서 만든 앨범이 그의 최고작이라 할 수 있는 [무한대]이다. 이 음반은 장장 14년의 공백을 깨고 포크에서 록으로 방향 전환해서 만든 명작이다. 손무현(기타), 김영진(베이스), 김민기(드럼), 송태호(키보드)로 구성된 세션팀과 만든 <One Day><Widow's Theme><마지막 꿈>은 80년대 베스트 세션으로 기록될만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새로운 음악을 인정해주지 않음에 실망해서 다시 미국으로 갔는데, 이전과 달리 이 때부터는 음악창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음반들이 [기억상실](1990), [천사들의 담화](1991)이고 여기에는 잭리(이우진)와 이우창 형제가 참여한다.

6집 [1975 고무신 서울~1997 후쿠오카 라이브](1999)는 국내에서 한대수가 재평가 받으면서 나온 앨범이다. 그리고 이 라이브 음반에는 김도균(기타)과 이우창(키보드)이 참여하는데, 이는 현재 한대수 세션 밴드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해에는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가 뉴욕에서 존 롤로의 프로듀싱으로 발표되었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분기점이 되는 8집 [Eternal Sorrow](2000)가 손무현의 주도적인 참여로 만들어졌고, 이 음반은 후기 한대수의 대표작이 된다. 그리고 2002년에 김도균밴드, 이우창의 독집 앨범들과 함께 묶여져서 발매된 [삼총사]에는 [고민 Source Of Trouble]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는 <As Forever>와 같은 멜로딕한 노래부터 <호치민>과 같은 광폭한 노래들까지 함께 실렸다.

[다큐멘타리 한대수 - Music & Life](2003)가 DVD로 나온 뒤에 2004년에는 10집 [상처]가 자신의 레이블 ‘Hahndaesoo Corp’을 통해서 발표되었는데, 이는 제작자가 마땅히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2001년에 가졌던 ‘마지막 콘서트’를 담은 [2001 Live](2005)가 나왔음에도 12집 [욕망 Urge](2006)가 어김없이 나왔고, 같은 해에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과의 합동 콘서트를 담은 [한대수 도올 광주라이브]를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외에 미발표 곡까지 담은 고품질 박스세트 [The Box](2005), 최근 낳은 딸에게 바치는 신곡 <양호야! 양호야!>가 수록된 [Best Of Hahn Dae-Soo](2007)도 주목 할만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대수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주목하지 않을 음반은 하나도 없다.

한대수 베스트

이렇게 한대수를 그의 작품 중심으로만 ‘간결하게’ 정리해서 얘기해도 숨이 가쁠 정도이다. 그렇다면 그가 현재 받고 있는 대접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대중음악을 ‘통사’가 아니라 ‘창작자 중심의 역사’로 기술할 때 상당 부분의 페이지를 그에게 할애해야 할 정도의 위상을 가진 아티스트이건만 아직도 음반제작비 수급이 여의치 않아서 신보 발매를 주저하는 상황이 현실이다. 물론 음반을 낸다고 해서 인세를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하니, 그는 여태까지 ‘기념음반’들만 발매한 형국이다. 결국 그가 첫 딸 양호를 이렇게 늦게 본 이유에도 이런 현실적인 상황이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젊은 부부들의 ‘출산율 저하’ 현상의 이유가 어처구니없게도 대(大) 예술가 한대수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올해 2007년, 한대수의 음악인생이 40년(1968~2007)을 맞았다는 것을 기억들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작년 2006년은 ‘음반 사전심의 철폐 10주년’이었는데 정태춘을 기억하지 않고 지나친 것처럼 올해도 한대수를 기억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누군가 꼭 한대수 트리뷰트 앨범과 공연을 제작하기를 바란다.



행복의 나라로 - 한대수

영화 <행복>을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넘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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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엠(M)’의 이명세 감독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0 21
김소민 기자


 
» 영화 ‘엠(M)’의 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의 영화는 꿈과 많이 닮았다. 데뷔작 〈개그맨〉은 대놓고 개그맨 이종세가 꾸는 꿈 이야기였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첫사랑〉 속 공간은 사랑에 달뜬 주인공의 꿈결 같은 기억을 반영한다. 〈엠(M)〉은 이런 경향을 더 밀어붙인 작품인 듯하다. 이야기는 사실 단순하다. 인기 작가에다 부자 약혼자(공효진)가 곁에 있는 민우(강동원)는 글이 막혀 고통스럽다. 그는 잊고 있던 첫사랑(이연희)의 아픈 기억을 쫓아가며 글의 실마리를 찾는다. 하지만 이야기는 한 줄기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뫼비우스띠처럼 뒤틀려 있다. 많이 본 익숙한 공간은 기묘한 기운을 뿜어낸다. 관객은 민우의 꿈속을 헤집고 다니는 경험을 하게 된다. 24일 개봉.

‘7천원 내고 왜 이렇게 헤매야 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이 감독이 영화 언어의 경계를 밀어내며 넓히고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는 전작인 〈형사〉에서도 대사가 음악이 되고, 동작이 대사가 되는 경계 지우기를 실험했다. 이들을 모두 모은 느낌이 영화 언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언어로 일상의 표피에 살짝 금을 낸다.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 감탄 또는 그저 텅 빈 혼란 덩어리? 그 비틀린 틈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는 관객의 뜻대로다. 그는 메시지가 아니라 느낌을 만들며 느낌은 형체가 없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모두의 기억에 맞아떨어지도록 모양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만난 이 감독은 “다른 매체로 치환해도 그럴듯하다면 그건 영화가 아니다”라며 “굳이 영화가 닮은 것을 꼽으라면 시와 음악”이라고 말했다.

첫사랑 좇는 유명 작가의 ‘꿈결’ 속으로
익숙한 ‘공간’ 비틀어 기억과 일상 전복


※ 헛갈린다. 무슨 정신분석 같기도 하고 그냥 사랑 이야기 같기도 하고….

= 수월 스님은 일자무식으로 소문이 자자했지. 일본 승려들이 그걸 이용해서 절을 뺏으려고 내기를 걸었어. 수월 스님은 한 일(一)자를 썼지. 고승들이 그 의미가 뭘까 진땀을 흘리니까 수월 스님이 “이놈들아, 한 일 자야. 이건 나도 안다” 그랬대. 중학교 2학년짜리한테 (영화를) 보여줬더니 “그림이 예뻐요. 보다 보니 괜히 눈물이 나요” 그러던걸.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 하면 영화를 볼 때 침범당해.

※ 헛갈려 보이게 만들지 않았나?

= 고흐, 모딜리아니…. 그 사람들은 세계를 보는 방법을 바꿨지. 시각의 다양성을 만드는 거, 이게 예술가가 할 일이지. 나는 영화를 영화로 이야기한 것뿐이야. 할리우드 텍스트가 지배하면서 영화가 그림 이야기책으로 전환돼 버렸어.

※ 지키려는 영화가 뭔가?

= 음…. 예를 들어 내가 당신을 초대했어. 그런데 입구에 향수가 뿌려져 있고 꽃을 꽂았어. 당신은 아마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느낄 거야. (영화는) ‘당신을 사랑해서 꽃 꽂았어요’라고 설명하지 않는 거야. 물론 이야기도 중요해. 집주소를 알려줘야 찾아올 거 아니야. 하지만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주여.” 그럼 나는 눈물이 쏟아져. 이 모든 느낌을 단어로 모아야지 시지 설명하면 시가 아니야.

※ 〈엠〉은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 엠(M)은 몽(夢)이야. 꿈속에서 소설가 최인호씨랑 꿈에 대해 대담을 했어. 꿈은 산 자와 죽은 자의 통로라는 결론에 도달했지. 그게 출발이야.

※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는 꿈과 닮은 건가?

= 인도에서 잠의 여신은 배꼽에서 연꽃이 피거든. 그 여신이 꾸는 꿈이 예술이래. 꿈에서 본 게 똑같이 반복되는 순간이 있어. 무척 신기하지. 영화는 (꿈처럼) 느낌으로 전달하는 거야. 나는 메시지라는 낱말이 정말 싫어. 사람이 만날 때 메시지가 아니라 느낌이 중요한 거라고. 마티스는 색의 덩어리, 몬드리안은 프레임의 힘으로 보여주잖나. 꼭 실물과 똑같이 그려야 되나? 보이는 것만이 리얼리즘이라는 소극적인 리얼리즘이 우리를 오래 지배했어.

» 영화 ‘엠(M)’
 
※ 이번에 세트 디자인까지 겸했다. 〈형사〉에서 액션이 대사라면 〈엠〉은 공간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대사다. 민우의 집은 미로처럼 빛과 그림자, 거울로 이뤄져 있다. 자주 등장하는 횟집은 일상적인데 공간과 똑같은 그림이 벽에 걸려 있어 듀안 마이클스의 〈사물의 기괴함〉을 닮았다.

= 듀안 마이클스의 사진이 왜 재밌어? 굉장히 일상적인데 이상해 보이잖아. 바로 그거야. 또 거울은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해주지. 그러니까 (세트 넓게 짓는 비용을 줄여주니까) 싸잖아.

※ 왜 민우는 하필이면 첫사랑의 기억을 쫓나?

= 첫사랑은 시간의 비밀을 여는 열쇠야. (삶에서) 그 부분이 가장 빛나기 마련이지. 시구를 인용하면 “금인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알지~.”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 그냥 노가리(말장난)야.(웃음) 랭보는 보편 언어가 유행가, 낡은 잡지 표지, 만화책 같은 거라고 했지. 누구나 한번쯤 거쳐 가는 것들이지.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에 군가를 많이 넣었어. 군국주의자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노래가 청춘의 기억을 불러오기 때문이지. (첫사랑은) 모든 사람의 기억의 창고로 들어가는 열쇠, 보편언어지. 이 영화를 보고 내 친구는 울며 “내가 좀 사랑을 알아”라고 하더군.

※ 연기도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배우들이 당황했을 듯하다.

= 예전에는 내가 일일이 시연을 보였는데 이젠 힘들어서 못해. 민우는 작가이지만 동원씨한테 수사관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어. 범인을 쫓는 형사. 작가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게 있으니 헛갈리지. ‘믿음 메이크스 매직’이라고 말해줘. 그러고 보니 이것도 다 엠이네.(웃음)

※ 〈형사〉에 이어 또 강동원이 주인공이다.

= 잘생긴 얼굴이 장점이자 단점이지. 형사 때는 그걸 극단적으로 이용한 거고 이번엔 깎아냈지. 외모 밑에 있는 그의 재능을 보여주려고. 동원씨가 기꺼이 동참한 걸 보면 욕심이 많은 배우야.

※ 이 영화에 대해 ‘빛나는 어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두운 상태. 어둠이지만 그 속에 누군가 있는 것, 일상이 꿈속 같고 과거가 현실 같은…. 나는 눈을 뜨고 귀를 열라고 관객 문 앞에서 똑똑 두드리는 노크 소리야.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프로덕션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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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매혹적인 ‘여전사’들 할리우드 평정하다

할리우드 영화 속 ‘강한 여성’ 의 진화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0 19


 
»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레지던트 이블3>의 앨리스, <레지던트 이블3>의 클리어,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킬 빌>의 더 브라이드 등 영화 속 여전사들.
 

‘레지던트 이블3’의 여전사들, 강하고 정의로우며 성적 매력도 넘쳐
가부장적 권력에 도전하고 자립 존중하는 현대여성 욕망의 투영


좀비들의 창궐로 인류가 멸망 직전에 몰린 <레지던트 이블3>(18일 개봉)에는 두 명의 여전사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앨리스는 아무리 많은 좀비가 몰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탁월한 전투력을 가진 전사이고 클레어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지도자다. 남성들은 두 여전사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보조적인 존재이거나, 인류의 생존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악당들로 나온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보다 정의롭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능력까지도 압도적으로 우월한 여전사의 이미지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한 트렌드가 되었다.

여전사의 대두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부장제를 고수했던 남성의 권력은 흔들리고, 반대로 여성은 남성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 연하의 꽃미남이 인기인 반면 ‘능력 있고 씩씩하며 의지력이 강한 여자’가 각광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강인한 여성은 여성 자신의 욕망일 뿐만 아니라, 궁지에 몰린 남성들의 은밀한 요구이기도 하다. 약해진 남성을 보살피고 도와줄 여전사, 혹은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강한 여성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나 필름 누아르에 등장한 팜므 파탈은 남성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남자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기도 하는 강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이 강한 여성들은, 남성 우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무기를 갈고 닦아 남성 개인을 사로잡은 여성일 뿐이다. 이들은 남성을 이용하지만, 완벽하게 남성 사회를 전복하지는 못한다. 오하라는 남성에게 의존하고, 팜므 파탈은 남성의 어리석음을 비웃지만 그 체제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다소 상업적 취향이긴 하지만, 70년대의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에서 강인한 흑인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이미지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재키 브라운>에서 정갈하게 부활시킨 후, <데스 프루프>에서 신나게 폭주한다.

80년대는 남성적인 마초 영웅들이 할리우드를 장악한 시대였다. 그리고 아마조네스 타입의 여전사들도 마초 영웅 틈에서 탄생했다. <코난2>의 흑인 여전사 그레이스 존스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두려운 야수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반면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와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은 자타가 공인하는 여전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오로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생존하길 원하고 또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요즘의 여전사들에 비해, 이들은 여성적인 면이 부족하다. 단지 외모만이 아니라, 이들은 남성 못지않은 근육질로 무장한 채 괴물들과 싸운다. 그리고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모성애다.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을 구하려고 헌신한다. 여전사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원형인 것이다.

반면 21세기의 여전사들은, 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미녀 삼총사>의 세 미녀들,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 <언더월드>의 케이트 베킨세일, <킬 빌>의 우마 서먼 등이 대표적인 여전사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는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남성과의 관계 역시 자신이 주도적인 입장에서 끌어간다. 과거 남성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력을 선취한 것이다. 요즘의 여전사들에게는 남성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남성은 단지 선택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의지다.

그런데 묘하게도 21세기의 여전사들은 더욱 주체적이면서 강력해진 동시에 더욱 섹시하고 고혹적이기도 하다. 액션만이 아니라 얼굴과 몸매, 패션까지 여전사들의 모든 것이 남성의 호흡을 가쁘게 한다. 여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대전격투 게임 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나오는 비치 발리볼 게임까지 만들어졌다. 여전사일지라도, 그들을 하나의 성적 판타지로 바라보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여전사의 섹시함은, 여성다움을 버리고 남성적인 근육질의 전사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적인 면을 가지면서도 남성과 대등하게 싸운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남성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섹시함’을 키우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섹시함 자체가 여성의 무기이기도 하고.

할리우드의 여전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트렌드로 이미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조폭 마누라> <형사> 정도에 불과하다. 할리우드와는 다른 한국의 독창적인 여전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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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디슬픈 꽃망울로 툭 터진 ‘하얀 노래’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
① 욕심도 사랑도 죽음도 엮어 마흔세 살 카센타 더부살이 삶에 불어온 찔레꽃향기

» [화보] 장사익의 웃음.

 



왜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프다고 했을까?

그는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놓아, 그것도 모자라 밤새워 울었다고 노래했다. 아니 노래를 불렀다기보다 울부짖었다.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불리는 장사익(59). 가슴이 떨렸다. 보름전 인터뷰 약속을 하고, 막상 그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진한 흥분이 온 몸을 감쌌다. 지난 26일 그와의 인터뷰는 그의 노래가 너무 좋아서, 마치 광(狂)팬의 마음가짐으로 진행됐다. 자하문 너머 보이는 북한산 자락에 자라잡은 그의 자택 2층.

한쪽 벽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북한산 기슭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그의 응접실이자 작업실에서 그가 끓여주는 중국 보이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전날 예술의 전당에서 펼친 ‘노래판’의 피곤이 가시지 않은 얼굴. 그러나 깊은 주름과 적당히 자란 희끗희끗한 턱수염이 잘 어울린다.

» 장사익이 서툴게 잘라온 사과와 외출했다가 뒤늦게 귀가한 부인이 내놓은 딸기.

» 찻잔 테이블을 겸한 응접실 나무 탁자.

» 장사익이 손님 접대를 위해 다기에 손수 끓인 중국 보이차를 내놓았다.

» 2층 응접실 겸 작업실의 한쪽은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북한산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건 아니다’ 생각에 새납 딱 3년 배워 인생 바꾸기로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찔레꽃>의 가사에 대한 궁금함으로 실타래를 풀었다.

"왜 찔레꽃 향기가 슬프다고 했죠?"

(사실 이 노래를 늘 즐겨 들으며 궁금했다. 찔레꽃 향기에 대해 별다른 선입견은 없지만, 꽃 향기에 진한 슬픔을 이입시키는 것은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1992년 말께었죠. 내가 43살 때였을 것입니다. 그때 변변한 직업도 없이 친척이 하는 강남의 카센타에서 수리하러 온 차를 주차시키며 살아가던 때였죠. 바닥이었습니다. 생의 바닥이라고 느껴졌어요. ‘이건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새납(태평소)를 배우기로 했어요. 더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40대 초반 자신 인생의 역전을 꿈꿨단다. 그럼 인생 역전과 찔레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는 자신이 작사 작곡한 <찔레꽃>에서 찔레꽃을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럽다’고 표현했다.

“봄이면 배 고파 들판에서 따먹던 그 꽃에 내 모습이…”

찔레꽃이 그의 입을 통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어요. 그때는 잠실 고층 5단지에 살았어요. 5월 어느날 아파트 단지를 나오는데 어디선가 진한 꽃 향기가 느껴졌어요.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실려온 꽃 향기였어요. 주변을 보니까 붉은 장미만 눈에 띄었어요. 분명 장미냄새는 아니었어요. 장미덩쿨를 살피고 있는데 흰 꽃잎의 찔레꽃이 수줍게 피어 있는 것이 보였어요. 순간 어릴 때 기억이 났어요. 봄이면 들판에 핀 찔레꽃을 따 먹곤 했어요. 찔레꽃은 회충을 죽인다고 어른들이 말하곤 했어요. 장미덩쿨 뒷쪽에 나지막히 옹기종기 피어 있는 찔레꽃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 찔레꽃이 내 모습처럼 보였어요.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폼잡지 못하고, 쭈삣쭈삣 눈치나 보고 있는, 그런 모습과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슬퍼졌어요. 그냥 슬펐어요.”

장사익은 그 감정으로 <찔레꽃> 노래를 만들어냈다.

“막 울었어요. 그리고 막 토해냈어요. 슬픔을 쏟아내니 개운해졌어요. 슬픔이 씻겨나가고 마침내 기쁨으로 승화되는 느낌이었어요.”

피아노의 조용한 반주 속에 나지막하게 시작되는 그의 <찔레꽃>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나지막하게 읊조리듯 시작한 이 노래는 점차 톤이 올라간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이제 중창단과 함께 반복한다)

· · · 후 렴 · · ·

아! 노래하며 울었지/ 아! 춤추며 울었지/ 아! 당신은 찔레꽃”

비록 가사에서는 ‘당신은 찔레꽃’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가 꽃향기에 취해 울었다. 어느날 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를 취해 만든 <찔레꽃>.

이 노래는 장사익 본인뿐 아니라 이 노래를 듣는 많은 이들의 감정샘과 눈물 샘을 오늘도 진하게 자극한다.

» 응접실 한쪽에 있는 징


» 목포의 눈물 악보.


» 창밖을 바라보며 장사익이 노래를 연습하는 곳. 우리 가요 악보책과 기타가 놓여 있다. 악보책엔 ‘목포의 눈물’이 펴져 있다.


술집 벽지에 휘갈겨 쓴 시, 쓰레기통에서 찾아서 거침없이

이번엔 그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노래풍을 그대로 보여주는 <국밥집에서>의 가사를 물었다.

노래 중간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라는 익숙한 ‘희망가’가 삽입된 이 노래의 후반부에는 장사익이 비장한 톤으로 외친다.

“그렇다/ 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끝내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다”

노인의 죽음을 초월한, 인생을 달관한 경지를 한 줄로 표현한 이 노래를 들으면 속세의 부질없는 욕심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 노래의 가사는 누가 만든 것이죠?”

“최산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최산이 강남의 어떤 술집벽에 휘갈려 놓은 시죠. 항상 이 시가 좋다고 생각하며, 언제나 저 시로 노래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먹고 그 술집을 갔는데 벽지를 새로 한다고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거예요. 그래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그 시를 찾아 냈어요. 그리고 노래를 엮었죠.”

엮는다. 그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엮는다’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삶을, 노래를, 인생을, 고뇌를, 욕심을, 죽음을, 사랑을 줄줄이 엮는다. 그리고 그가 엮은 노랫 가락은 그의 입을 통해, 누에고치가 비단실을 풀어내듯 줄줄이 내 뿜는다.

그의 흥얼거림과 온 몸을 감싸는 끈끈함은 듣는 이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과연 어디서 그의 노래가 품고 있는 마력과 괴력이 생겨난 것일까? (계속)

» 소리꾼 장사익에게 풍경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 깊게 패인 입가의 주름, 희끗희끗한 턱수염, 손을 쓸어넘긴듯한 머리칼... 북한산 자락의 집에서 만난 소리꾼 장사익의 너털 웃음은 여전했다.



글·사진 <한겨레> 이길우 기자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01 30(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187385.html



찔레꽃 - 장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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