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평점 : 
종이약국/니나 게오르게/박하/책으로 처방전을 내린다면~~
상실의 아픔이나 이별의 고통은 약이나 주사로 치유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로는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야기나 자신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것 같아요. 서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엉뚱하면서도 기발해서 재미있네요. 시가 쓰인 반창고, 추리소설이 연재된 붕대, 귀여운 책이 든 갈색 약병, 유머 가득한 파스 등 마음이 아픈 이들을 책으로 처방한다니 기발한 발상이죠. 이런 종이약국이 실제로 있다면 문학 마니아들의 답사 코스로 인기를 얻을 것 같습니다.
종이약국은 프랑스 센 강 위에 뜬 화물선을 변형해 그 위에 차려진 서점입니다. 주인인 페르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손님들에게 책을 처방합니다. 손님이 원하는 책보다 손님에게 어울리는 책을 권하는 서점이지만 언제나 많은 손님들이 붐빕니다. 게다가 주변에 사는 외로운 이들을 모아 독서클럽도 운영하면서 상처로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합니다.
어리석음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책, 잘못된 남자로부터 보호해주는 책, 손님의 껍데기를 벗겨 내면의 삶을 찾아주는 책 등 책 처방전에 따라 페르뒤가 권한 책을 식전에 읽거나 천천히 읽다가 보면 누구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좋아하게 된다니, 신기한 이야기죠.
하지만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한다는 말이 유럽에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페르쉬는 정작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페르뒤는 20년 전 이유없이 자신을 떠난 마농으로인해 상처를 받았지만 치유가 안 된 상황입니다. 어느 날, 페르뒤는 의문의 편지를 받으면서 옛 사랑을 찾아 센강을 따라 항해를 시작합니다. 사랑의 진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 페르뒤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잃어버린 20년의 세월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더욱 애틋하네요.
상처와 고통에 시달린다면 어떤 소설로 처방전을 내려야 될까라는 고민을 하며 읽은 책입니다. 페르뒤의 처방전을 통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조지오웰의 《1984》,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등을 만나며 소설의 용도와 그 부작용을 생각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책 공포증이 있다면 어떤 책을 처방해 줄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책으로 처방하는 약국을 보니 약값이 무척 비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을 테니까요.
책 처방전은 숨 막히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치유법이기도 하지만 일상에 부딪혀보는 정공법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이런 처방전을 한 번쯤 받아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