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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순례하다 - 건축을 넘어 문화와 도시를 잇는 창문 이야기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 지음, 이정환 옮김, 이경훈 감수 / 푸른숲 / 2015년 6월
평점 :
[창을 순례하다/쓰카모토 요시하루/푸른숲]오, 세계의 모든 창을 순례하다니!~
만약 건물에서 창이 없다면 빛과 공기의 드나드는 자리가 없어 답답할 것이다. 빛과 공기는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하기에 말이다. 해서 창이 큰 집을 보면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창이 작은 집을 보면 음습하고 위축된 느낌이 든다.
어릴 적엔 창이 예쁜 집, 창이 큰 집, 창이 독특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동화책 속에 나오는 예쁜 창을 가진 궁전에서 사는 공주들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멋진 창가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런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지금도 아름다운 창을 보고 있으면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멋진 창은 좋은 곳으로 데려갈 거라는 착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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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을 순례하다니! 누가 이런 깜찍한 발상을 했을까?
쓰카모토 요시하루 등 3인이다. 쓰카모토 요시하루는 도쿄공업대 교수이자 건축가다. 그는 세계를 돌며 고르고 고른 28개국의 139개 장소의 창을 소개한다. 현지 답사를 통해 창을 실측 조사하고 창에 집중된 인간 행동을 관찰했다고 한다. 책 속에는 다양한 각도의 창 사진 295장과 이해를 돕는 창 도판 136장까지 담았기에 마치 그 도시의 창가에 선 느낌이다. 작가의 창 사랑, 독자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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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창이 정말 많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아치창은 좁은 개구부이기에 출입구와 쇼윈도가 하나의 아치를 공유하는 형태다.
6세기 아랍의 시장을 모델로 건설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엣 거리엔 쇼윈도의 내닫이창이 길게 뻗은 처마와 운치를 이룬다.
스위스의 과르다의 민가의 창은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실내 전체로 퍼지도록 되어 있다. 추위를 피하고자 낸 작은 창이지만 앙증맞고 운치 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핀란드 국민 화가인 갈렌 칼레라의 집엔 아치형 알코브(벽면을 우묵하게 들여 만든 공간)로 낸 창에 맞춘 수납을 겸한 벤치와 테이블이 멋지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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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문과 덧문이 연속으로 이어진 일본 가나자와에 있는 다테노 다다미 공방의 줄지어 선 창은 어디서나 물건을 내놓을 수 있도록 된 실속창이면서도 선이 깔끔하다. 격자 구멍을 조각한 석판 스크린인 잘리가 설치된 인도 가즈 빌라스 궁전의 침실 창은 알현을 위해 만들어졌다니, 19세기 중반에 건립되었다는데도 잘 보존되어 있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정의 창,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상 예배당의 빛을 산란시키는 스테인드글라스 창, 남산 한옥의 위로 올리는 들문창, 이중 장지문, 스리랑카 밀림에 인접한 루누강가 별장 게스트룸의 천장까지 닿아 통쾌한 창, 중국 4대 정원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슈저우의 류위안 개인 정원의 걸터 앉는 좌석이 딸린 창도 운치가 있다. 영국 런던 교외의 윌리엄 모리스의 레드 하우스 창은 사람의 얼굴이 연상되기도 하는 재미있는 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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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과 통풍의 창으로만 알았는데, 세계의 창을 순례하고 보니 창 역사와 문화, 지역적 특징, 창의 의미를 새롭게 깨치게 된다.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소통의 창 정도로만 알았는데, 창을 통한 치유, 힐링이 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기도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창가 서재가 되기도 하고, 마음의 창처럼 건물의 눈이 되기도 하는 함을 알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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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인 창이 전체 창과 만나 거리를 리듬감있게 살려낸 창 이야기다.
건축의 일부인 창에서 출발해 예술적 미를 추구하는 창,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 창, 자연과 외부인과 소통하는 창, 자연을 즐기기 위한 창의 이야기가 풍성한 사진과 도판으로 인해 눈을 즐겁게 한다. 나라마다 다른 창의 분위기, 거리마다 특색있는 창, 시대적인 분위기와 문화적 특징에 따라 달라지는 창을 소개하고 있기에 창의 문화와 역사를 조우하는 느낌이다.
세계의 창을 구경하다가 보니 이젠 창이 달라보인다. 이젠 여행을 가면 창에 먼저 시선을 빼앗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여행 에세이를 읽을 땐 창이 먼저 가슴으로 들어올 것 같다. 감동적인 세계의 모든 창 순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