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죽음
리사 오도넬 지음, 김지현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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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죽음/리사 오도넬]스코틀랜드의 잔혹 소설...

 

제목을 읽으며 섬뜩했다. 벌들의 죽음이라니. 생태계에서 벌이 사라진다면 지구의 종말이다. 꽃의 수분을 담당하던 벌들이 죽게 된다면 씨앗을 맺을 수 없기에 식물은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한다. 그러니 식물을 섭취하며 살아가는 1, 2차 소비자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벌의 멸종으로 식량 생산이 불가능해지면 최고 포식자인 인간 역시 멸종하게 된다. 벌은 생태계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이지만 그렇게 생태계에 기여를 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도 밑바닥 인생의 비극적인 결과가 사회 전체를 참혹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섬뜩할밖에.

 

 

소설의 앞부분이 없다. 9쪽에서 24쪽까지 사라졌다. 이 책만 그런가. 모든 책은 앞부분에 암시를 담고 있거나 결말을 숨기기도 하기에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 앞부분이 없다니. 내 책만 그런가. 중간에 종이들이 붙어 있기도 하고.

 

어쨌든 소설은 두 자매가 아버지를 죽이고 마당에 묻는 장면부터 나온다. 목을 매 자살한 엄마와 마약쟁이 아버지를 베개로 눌러 죽인 자매는 부모의 시신을 집 마당에 묻어 버린다. 그리고 마당에 라벤더를 심어 은닉한다. 하지만 라벤더는 벌이 꼬이는 식물인데다 이웃집 개가 냄새를 맡아 버린다. 이웃집 노인 레니는 눈치를 채지만 모른 척하며 두 자매를 돌보게 된다. 동성애자에 아동성추행범으로 몰렸던 노인은 이웃과의 교제가 없이 외롭게 지내던 중이었기에 기꺼이 두 소녀를 돌봐 준다. 먹을 것을 주고 재워주거나 별장에도 데려 간다.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사랑을 주면서 점차 마니와 넬리의 속사정도 알게 된다. 그리고 레니는 자신이 뇌종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자매의 부모를 찾으려는 경찰의 방문으로 마니와 넬리는 위기에 빠지게 되고......

마약쟁이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으려고 마약쟁이 유부남 밑에서 일하며 그와 연애하는 마니,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지만 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넬리, 동성 연인의 죽음과 아동성추행범이라는 낙인으로 외톨이로 지내는 레니 , 어머니를 방치한 외할아버지의 무책임함, 언어 폭력을 하는 할머니, 마약중독자 아버지에게 성폭행까지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얼키고 설켜 있다. 만약 십대가 썼다면 잔혹 동시 같은 잔혹 동화일 것이다. 어른이 썼기에 사회고발을 목적으로 쓴 사회소설이다.

 

그런 부모, 학교, 사회 밑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어른들, 어른들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폭력에 휘둘리는 아이들, 학교에서조차 괄호밖에 내몰린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듬고 위로해주는 이웃 노인과의 관계는 가족 그 이상이다.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전혀 받은 적이 없는 자매와 사회에서 눈총 받는 소외 노인이 만들어 낸 가족은 분명 새로운 가족 형태다.

 

 

참혹해서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지는 소설이다. 잔혹해서 혼란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어딘가엔 이런 가족이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충격에 충격을 더하는 이야기가 갈수록 이어지지만 두 자매의 가족애와 노인이 보여준 헌신에 뭉클해지기도 한다.

 

낯선 캐릭터, 낯선 이야기가 잔혹하지만 따뜻한 반전도 있는 성장소설이다. 저자인 리사 오도넬은 스코틀랜드 작가다. 이 작품으로 최고의 데뷔작에 수여하는 커먼웰스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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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5-06-1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격에 의한 상이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현실적인 참혹함을 묘사했기에 받은 상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봄덕 2015-06-16 20:41   좋아요 0 | URL
참혹한 현실을 리얼하게 반영했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작가의 문장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