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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 수업론 :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 ㅣ 아우름 5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4월
평점 :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샘터]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에 대한 수업론
수업은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이뤄지는 상황이다. 수업하는 사람이라면 학습 목표를 알고 학습자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줘야 할 것이다. 합기도를 가르치는 우치다 타츠루는 합기도를 통해 무도와 철학을 수업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합기도 수업 현장에서 깨친 수업에 대한 남다른 통찰의 결과물이다. 평범한 합기도인이 수업을 하면서 얻은 철학적 사유다.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에 대한 수업론이다.

저자는 노력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反수업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수업으로 습득하는 것은 수업 이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노력하면 돈을 주겠다거나 보상을 하겠다는 것은 노력하기 이전에 이미 ‘돈의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반수업적이라고 한다. 수업은 상업적인 거래와 다르므로, 노력의 대가를 상품처럼 건네받을 수 있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수업 이전에는 수업 후의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업 목표가 있으니 수업 결과의 예측은 가능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라는 의미일까. 인센티브가 만연한 수업에 대한 경계심을 촉구하는 말이다.
저자는 배움을 현장에서 진검승부를 펼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한다. 무도수업은 생업과 수련의 표리일체가 상식이다. 배운 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과 배운 대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수업의 이유라고 한다. 합기도 수업을 통해 집단을 하나로 응집시키는 힘이 생겨나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한다. 수업은 일상생활이 수련인 것처럼 살도록 돕는 것이다. 수업에서 적이란 있을 수 없다. 경쟁자든 감기든 하늘 아래 적은 없다. 입력과 출력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지는 최고의 경지다. 즉답할 수 있게 대비되어 있어야 최고의 경지다.
결과에 대한 보상을 제시하는 수업,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다그치는 수업,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폭언과 폭력이 수반되는 수업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하는 글이다. 좋은 수업을 위해, 무도와 명상, 신앙을 연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배움의 시작과 끝이 어디 있겠는가. 배움이란 무한대의 과정일 것이다. 삶 자체가 배움이고 수업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감지하거나 판별할 수 없었던 것의 변화에 예민해지는 것도 수업을 통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니, 보이지 않는 것들의 희미한 자극을 감지하는 것이 수업의 결과라니, 도를 닦는 수업 같다. 수업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알고 성숙해지라는 말에서 소크라테스가 생각나기도 하고, 영적 성숙을 이룬 살아있는 신체를 강조하는 말에선 영적 지도자들 생각이 난다. 교수와 학습이 동시에 이뤄지는 수업 현장에서 가져야 할 몸과 마음의 자세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