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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유배지 답사기 - 조선의 귀양터를 찾아서
박진욱 지음 / 알마 / 2015년 3월
평점 :
[남해 유배지 답사기/알마/박진욱]한 서린 남해 유배지 답사, 비움과 내려놓음을 배우다.
남해를 생각하면 유배 문학이 먼저 떠오른다. 정치적 부침에 따라 권력을 휘두르던 자에서 죄인의 몸이 되어 갇혀 있어야 했던 대표적인 유배지가 남해였으니까. 죄인의 몸이 되어 때로는 남해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복권이 되어 다시 권력자가 되기도 했던 한 많은 귀양살이였으니까. 이들은 대개 학식과 덕망이 있던 자들이었고, 권모술수나 당쟁에 휩쓸려 유배를 당한 이들이었기에 바쁘고 치열한 정치 세계를 떠난 홀가분함도 있었을 것이다. 해서 억울함을 내려놓고 자연과 벗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온 것이 보석 같은 유배문학이었으리라. 언젠가 남해유배문학관을 가고 싶었기에 반갑게 읽은 책이다.

남해 유배지 답사기!!
저자인 박진 욱은 200여 년 전 류의양(숙종 44년~ 미정)이 자신의 유배지 삶을 담은 <남해문견록>을 읽고 13일 동안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남해 일대를 답사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기록물이다.

남해 금산에 단군성전이 있다니, 처음 알았다. 보리암은 가 본 적 있지만 단궁성전은 있는 지 조차 몰랐는데…….
예로부터 곳곳에 대웅전을 짓고 환인, 환웅, 단군, 세 영웅을 모셨다고 한다. 사찰이 지어지면서 대불전이 아니라 영웅 웅‘자를 사용해서 대웅전이라고 부르는 것도 오랜 토속신앙 때문이라고 한다. 절마다 있는 삼신당도 삼신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럼 이 삼신당이 단군성전이란 말인가. 더 자세한 설명이 없는데…….

언젠가 남해 여행에서 본 죽방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곳이다. 바다 안에 설치된 죽방렴을 보면서 선조들의 지혜에 얼마나 감탄했던가. 남해의 죽방렴은 바다에 동그랗게 참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고 입구를 V자 형으로 말뚝을 박는다. 끝에는 원통형 대나무 통발(죽방렴)을 매어둔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멸치가 자동으로 들어가도록 한 뒤 물이 빠지면 저절로 문이 닫히게 되어있는 전통 멸치잡이 도구라니, 신기한 어업 도구다. 그 곳에 가서 멸치가 잡히는 모습도 직접 보고 싶다.

서포 김만중의 처음 묻혔던 노도의 무덤가엔 지금도 소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나중에 김만중의 자손들이 김만중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간 뒤에도 소나무가 자라지 않은 연유가 무엇일까. 김만중의 초당, 초당 옆의 우물 등 유배문학의 꽃을 피웠던 장소를 보니 김만중이 지은 <사씨남정기>, <구운몽>, <서포만필> 등이 읽고 싶어진다.



책에서는 충무공 사당인 충렬사, 이락사, 정지석탑, 남해 유림이 재를 올리던 녹동정사, 관음포, 가칭이, 비란산성, 대국산성, 남해섬, 장량산의 동정 마애비, 봉천사 묘정비, 남해 향교, 다정리 고인돌, 백이정 난곡사, 삼혈포, 임진산성, 백 정승의 묘, 암수바위, 벽작개 암각화, 양아리 고대문자, 노도, 미조항, 최영 장군의 넋을 위로한 무민사, 단군 성전을 모신 금산, 어부방조림, 죽방렴, 500살 왕후박나무, 정철의 흔적, 김구의 <화전별곡>, <사씨남정기>, <구운몽>, 숙종에 대한 이야기로 버무려져 있다.
험난한 시절, 목숨이 바람 앞에 등불 같던 시절이었기에 당파싸움 한 번에 귀양과 유배를 가기도 했던 학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귀양살이에서 글을 쓴 김만중, 윤선도, 정약용, 정약전 등이 있었기에 조선의 유배문학은 꽃 피울 수 있었으리라. 한 서린 남해 유배지 답사기를 읽으며 비움과 내려놓음을 배우게 된다. 책을 읽다 보니, 나도 남해 유배지 탑사를 제대로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