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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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손아람/자음과모음]서울대 운동권을 배경으로 한 젊은 청춘들의 잃어버린 시간들

 

간혹 지나간 푸른 청춘의 시절을 잊고 산다. 간혹 성적에 저당 잡힌 학생의 때를 잃어버린 듯 억울해 하기도 한다. 살다보면 잃어버리는 게 어디 한둘인가. 때론 잃어버려야 얻는 게 있는 법이다. 때론 비워내야 채워지는 게 있는 법이 듯.

사노라면 누구나 사회체제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저 묻혀 사는 게, 남들에 묻어가는 게 점점 편해진다. 그래도 생각과 행동이 가장 자유로운 때가 푸른 스무 살이 아닐까.

 

저자의 이십대인 잃어버린 10년의 이야기로 판을 펼쳐놓은 이야기엔 154편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스무 살, 그 새파란 나이에 한 번쯤 경험했을 이야기가 접점을 이루는 일화들이다.

 

 

 

 

저자인 손아람은 1980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미학과 학생인 주인공 박태의를 통해 1997년에서 2007년의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의 뜨거웠던 자취를 투영하고 있다. 그가 잃어버린 10년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기에 공감 되거나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건들이다. 저자가 미학과 출신이어서 일까, 대화 속에 떠다니는 언어의 유희를 낚는 즐거움도 있다.

 

살다가 보면 이자가 붙기도 하고 부채가 늘기도 한다. 대단한 이자가 붙기도 하고 엄청난 부채가 붙기도 한다. 학생에게 성적은 부채 일까. 자신을 위해 투자해주는 부모나 사회에 대해 갚아야 할 최소한의 채무의식이 있다면 그건 부채일 것이다. 그러니 디 마이너스라는 성적표는 그런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마지노선일 것이다.

 

이야기는 군대에 가지 않았던 서울대 공대생 진우의 청첩장을 받았지만 결혼해서 살면서 어쩌다 보니 결혼식 날짜를 넘기게 되었고, 불현 듯 태의가 옛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태의는 철학연구학회라는 서클을 통해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알게 된다. 서클에는 어릴 적 미국에서 살았다는 예쁘면서도 터프해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미쥬 선배, 술을 마시면 자작시를 안주 삼는 현승 선배, 공대생이지만 주체사상 등 철학에 관심 있어 하던 진우, 한 때 미쥬 선배의 남자 친구이기도 했던, 부조리한 세력에 체 게바라적인 조리 있는 폭력을 숭배했던 대석 형, 도지사 아버지를 둔 경수 등이 있다.

 

이들은 인문학적 논쟁을 하다가 잠깐 주체사상의 정서적 호소력에 호기심을 느끼기도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이야기 하다가 상대적인 약자들 편에 서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수업도 듣지 않으면서 시험을 치르는 대석 형은 특유의 궤변으로 성적을 받아내기도 한다. 상대적 약자들 편에 서겠다며 농활을 떠나고, 가진 자의 횡포에 맞서 약자들 편에서 데모하기도 한다.

 

때로는 학생운동에 모든 것을 쏟느라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들은 원칙대로 F를 주려는 교수에게 D⁻를 달라고 농성하기도 한다. 전공 필수 수업에서 수업에 들어온 적도 없는 학생에게 D⁻를 줄 수 없다는 교수를 상대로 농성을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 이건 정당하지 않다. 불의를 위해 싸운다는 학생들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불의를 보게 된다. 모순의 양면성은 언제나 함께하는 걸까.

 

 

D⁻를 주세요, 교수님!

싫어.

 

어쨌든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시위대를 조용히 제압하는 교수의 모습에서 완력보다 강한 원칙의 힘, 기본적인 양심의 힘을 보게 된다. 정의를 위해 시위농성을 한다면, 출석은 수업에 대한 학생의 최소한 예의인데......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며 새해 선물로 전원 A⁺을 날렸던 띄엄띄엄 철학의 지존인 강정환 교수, 성추행의 전력이 있지만 미인대회의 심사위원이 되기도 하는 안민 교수, 학생 시위 전력이 있었다는 소문만 무성한 학교의 전설인 미친 사람,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떠돌이 개, 교정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등도 추억의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데모, 화염병, 경찰특공대, 대공분 실, 월드컵, 공장의 파업농성, 해고 노동자 농성, 미군 궤도 차량에 치인 여중생 미선이와 효순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황우석 교수 사태, 이명박 대통령 당선, 서울대 출신의 현직 연예인인 이적, UN의 김정훈, 김태희가 대중예술의 경험이 없는 교수의 대중예술론을 들으러 오는 아니러니 등 154편의 이야기에는 우리 모두의 청춘의 역사가 들어 있다.

 

 

 

 

개인사가 모여 사회의 역사가 되는 법이다. 하루하루가 모여 시대 역사가 되는 법이다.

살다보면 잃어버리는 게 어디 한둘인가. 잃어버려야 얻는 게 있다. 하지만 누구나 푸른 청춘 시절의 뜨거웠던 시공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법이다. 잊고 싶지 않는 법이다.

 

살다보니 세상의 부조리에 점점 무신경해지고, 세상의 불의를 돌아볼 틈이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약자의 편에 서려했던 열혈 청춘의 시절은 있었다. 그런 잊지 말아야 할 뜨거웠던 이십대에 대한 오마주다. 이십대 청춘의 자화상을 그린 에세이 같은 소설이다.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의 다큐를 보는 것 같다.

지금도 우리의 삶은 디 마이너스의 언저리에 불안하게 놓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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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2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 시절엔 철학이란 말이 낯설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 공학과가 생겨나고 철학이란 학문이 사라지는듯 하다가 다시 찾는걸보면 결코 버릴수있는 학문이 아닌거 같아요ㅋ저두 읽어보고 싶네요ㅋ

봄덕 2015-01-26 15:41   좋아요 0 | URL
전 시대적 아픔도 공감하지만 언어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더라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