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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 <열하일기> 박지원과 함께한 청나라 기행 ㅣ 샘터역사동화 4
김종광 지음, 김옥재 그림 / 샘터사 / 2014년 12월
평점 :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박지원의 『열하일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기행문이다. 이전에 경마잡이 소년 창대가 화자가 된 청소년 전문 탐출판사의 『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어린이를 위한 ‘샘터역사동화’로 나온 『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다.
『열하일기』는 양반들이 청나라를 배척하던 시기인 정조 4년에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와 청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의 문물과 발전상을 담은 여행기다.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고, 자신의 생각과 소소한 일화들까지 담은 일기 같은 견문 기록이다.
사신단은 원래 청나라 황제의 만수절(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이었다. 사신단 281명의 5개월이 넘는 사행 길에는 굶주림과 병, 추위와 죽음이 함께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하지만 박지원은 여행 내내 호기심을 가지고 선진 문물을 관찰하고 체험하며 즐긴다. 청의 문물을 배워 조선사회를 풍요롭게 하고자하는 열의가 넘친다. 여행길 내내 관찰과 깨달음은 기본이고, 친화력과 가르침은 덤이고, 여유와 농은 보너스다.
이 책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열세 살 머슴 장복이의 시점에서 쓴 역사동화다. 장복이는 앓아누운 아버지를 대신해 사신단에 오른 짐꾼이다. 열세 살이기에 순진하고 실수가 많지만 음식과 괴나리봇짐 등을 지고 가면서 언문도 익히고 세상물정도 익히게 된다. 창대는 열아홉 살의 경마잡이 소년이다. 영리하고 허풍과 수다가 많다. 박 선비는 뚱뚱하고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이야기를 잘 건네고 웃음소리도 호탕하다.
쌀 다섯 섬을 미리 받았기에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연경으로 떠나는 장복이의 여정에는 청의 문화, 조선 사절단의 풍습, 조선의 풍물, 양반과 종의 차별문화, 쇠락한 몽골족(원)의 모습도 만나게 된다.
구경 욕심 많고 호기심에 투성이의 박 선비, 신분에 따라 다르게 배급되는 식량, 호위무사 백동수의 활약, 천재 역관 학생 조수삼, 평양성의 광대 달문이의 신출귀몰하는 재주와 줄타기, 천재화가 김홍도의 화첩 분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유구국) 공주와 조수삼의 로맨스, 일지매의 등장 등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무엇보다 청나라의 문물에 감탄하는 박 선비의 모습이 흥미롭다.
거름 똥을 모으는 농촌, 담장을 벽돌로 쌓은 모습, 물건을 이롭게 쓸 줄 알고 토지를 유용하게 쓰는 사람들, 무엇보다 농민을 위하는 엄한 법률들을 보며 박 선비는 감탄을 한다.
요양성의 백탑 구경, 관제묘, 권법 하는 사람들, 전기수처럼 책을 읽어주는 사람, 꼭두각시 놀음, 비파 타는 사람, 심양성, 몽고 수레, 입에다 흙을 넣고 때리고 무시하는데도 화낼 수 없는 몽고 사람들의 신세, 낙타 구경, 청심환을 좋아하는 중국인들, 상갓집 구경, 호랑이 구경, 조선에는 없던 극장의 존재, 거대한 상점 거리, 연경의 유리창 거리 등 신천지를 구경하는 박 선비의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책에서는 한양을 시작으로 임진강 나루터, 압록강, 책문, 요양성, 심양, 만리장성, 연경까지의 여정이 실려 있다. 원래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압록강을 넘을 때부터 열하까지의 여정이 들어가 있다. 열하는 북쪽 국경지역에 위치한 온천이 많은 곳이다. 각 나라의 외교사절단이 몰려와 국제적인 풍경을 이룰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조선의 실학자이자 북학파인 박지원은 『허생전』, 『양반전』, 『열하일기』로 잘 알려진 영·정조 때 선비다. 당시 지배권을 쥔 노론에 속했지만 과거시험에서 그림을 그려내거나 백지를 낼 정도로 벼슬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탑골 근처에서 백탑파와 함께 이야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그렇게 신분을 뛰어넘는 교류를 즐겼다고 한다. 책에서도 신분 차별을 뛰어 넘어 대화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선진 문물을 보고 즐기는 여행은 눈을 놀라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조선의 선비 박지원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런 설렘을 안고 좋은 것을 받아들여 조선 백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책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정조로부터 옛 글의 권위를 허물고 선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문체반정’의 주범으로 낙인 되어 백여 년간 금서였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다.
어린이용, 청소년용 열하일기를 만났으니, 이젠 제대로 된 열하일기를 만나고 싶다. 완역본은 없으려나.